BLOG ARTICLE 그때그때 | 587 ARTICLE FOUND

  1. 2021.09.16 20210916 - 명절 즈음 아버지 생각
  2. 2021.08.22 20210822 - 요즘 한 생각
  3. 2021.08.03 20210803 - 홍어 먹고 생각(비관)
  4. 2021.07.19 20210719 -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 생각
  5. 2021.07.12 20210712 - 헌혈 생각
  6. 2021.07.04 20210704 - 7월 3일 일기
  7. 2021.07.01 20210701 - 유명해지고 싶다는 말을 아무데서나 하고 다니는 병에 걸린 일기
  8. 2021.06.20 20210620 - 주말 일기( 친구 아이 생각)
  9. 2021.06.13 20210613 - 주말 일기
  10. 2021.06.08 20210608 - 아버지 꿈을 꾸다.
  11. 2021.06.07 20210607 - 완두콩 생각
  12. 2021.06.05 20210605 - 잘해주는 것에 대한 생각
  13. 2021.05.24 20210524 - 알츠하이머 생각
  14. 2021.05.20 20210520 -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
  15. 2021.05.16 20210516 - 어느 일요일의 일기
  16. 2021.04.30 20210430 - 휴가 끝 생각
  17. 2021.03.29 20210329 - 스벅과 아버지 생각 2
  18. 2021.03.25 20210325 - 병가 생각
  19. 2021.03.18 20210318 - 한 동안 못 만나는 아버지 생각
  20. 2021.03.04 20210304 - 치매 확정과 아버지 생각
  21. 2021.02.16 20210216 - 명절끝에 아버지 생각
  22. 2021.01.29 20210129 - 아버지 생각
  23. 2021.01.15 20210115 - 아버지랑 엄마 생각
  24. 2021.01.11 20210111 - 아버님 생각에서 이어진 아버지 생각
  25. 2021.01.05 20210105 - 아버지 생각
  26. 2020.12.28 20201228 - 해넘이 생각
  27. 2020.12.22 20201222 - 아버지 생각
  28. 2020.12.04 20201204 - 아버지 생각
  29. 2020.11.06 20201106 - 아버지 꿈
  30. 2020.11.03 20201102 - 아버지 생각

우리 회사 별로 안 바쁘다고 떠들고 다닌 죄로 한 달 넘게 매우 바쁘다. 출근해서 사진 몇 장 찍을 여유는 있으니 상관없다. 요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한다. 먼저 서울 다녀오고 두 달간 얼굴을 못 봤다. 전화 통화는 매일 하지만 두 달이란 시간은 꽤 멀게 느껴진다. 작년 이맘때를 생각하면 상황이 나쁘진 않다.

아버지는 혼자서 약통에 7개의 알약을 채워 넣는다. 계절을 잊지는 않는다. 날짜 개념을 가지려고 한다. - 평일에는 어떤 알람이 울리는지 정확히 아침 7시 20분에 내게 전화를 하는데, 토요일 일요일은 나 쉬는 날이라고 먼저 전화하지 않아서 아침에 내가 먼저 전화한다. - 요 며칠 정해진 시간에 전화가 오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앞산에 운동을 간다기에 어제 퇴근길에 전화해서 저 일찍 일어나니까 아무 때나 전화해도 된다고 했더니 오늘은 7시 10분에 산에 가려고 한다면서 영상통화로 전화를 하셨다. - 영상통화 하려고 한 게 아닌데 그렇게 된 것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 아버지에게 코로나 재난지원금에 대해서 두 번에 걸쳐서 한참을 설명했고 생년 끝자리 대상 요일이 아닌데도 은행에서 친절하게 ‘그거’ 해줬다고 한다.

걱정되는 점은 약을 잘 먹고 있다는데, 정말 잘 먹고 있는지, 잘 씻고 다니시는 건지, 먹는 것도 걱정하지 말라는데, 엄마가 두 달 전에 해 준 그거가 – 명칭은 앞으로도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 아직도 냉장고에 있다는데, 뭐 드시고 사시는지 등이다. 막상 만나보면 <초기치매 독거노인>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구나, 할 수도 있다.

요즘 피곤하다거나 바쁘다고 하면 아버지가 괜한 걱정을 하시니 그런 말은 안 하려고 한다. 내 목소리에 침울하거나 부정적인 기운이 들어있을 때도 금방 알아채기 때문에 가능하면 밝은 목소리로 통화하려고 한다. 부정(父情)이다. 엄마랑 가끔 통화하면 항상 아내 잘 있는지 물어본다. 장인어른도 아내랑 통화할 때 내 얘기를 묻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부모가 돌보지 않으면 아이는 죽으니 거기에서 시작된 정의 고리는 끊기 어려운 것이다.

명절에 경기도 오산 엄마 집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23일에는 고용센터에 가야 해서 서울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23일은 내 생일인데, 아버지가 내 생일을 기억할까? 내가 먼저 얘기할까? 71살 아저씨가 44살 먹은 큰아이 생일이 언제인지 기억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 다음달 19일에는 병원 두 군데 들러서 약 타고 인지검사를 한다. 추석 한 달 후에는 할머니 제사가 있고 음력 11월 초가 아버지 칠순이다. 아버지 자주 보겠구나,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사랑인가?

아내에게 사랑이야? 묻거나 사랑이네. 확정하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랑인지 생각하거나 묻는 순간 사랑이다. 어제는 마루에서 운동 시작할 때 반지 좀 받아달라고 아내에게 건넸다.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모습에서 사랑이네,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짜증을 낸다고 사랑이 없는 건 아니다. 짜증과 화는 같은 말인가? 짜증은 사랑과 같은 말인가? 엄마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는가 짜증을 내는가? 답을 아는 질문들로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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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덜 깬 상태로 새벽에 일어날 때가 있다. 그런날은 오전내내 울고 싶은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지난주 토요일 새벽에도 그랬다. 온갖 슬픈 노래 다 찾아듣다가 정승환이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부르는 클립을 봤다. 노래 듣는 엄마 눈가가 촉촉한데, 엄마가 슬픈 걸 눈치챈 어린 아들이 엄마 왜 울어, 표정으로 울지 말라고 마스크 쓴 채 뽀뽀하는 장면이 나왔다. 엄마 표정이 금방 행복해져서 둘이 꼭 끌어 안았다. 슬픔의 알고리즘을 따라가다 보니 정형돈이 어느 토크 프로그램에서 평생 아팠던 엄마에게 다시 태어나도 자기를 낳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클립도 봤다. 나는 우리 엄마에게 정형돈처럼 말할 수도 있고 젊어져서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길 찾아갔으면 좋겠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엄마나 나나 정형돈 쪽이 더 가깝지 않나 싶다. 가족이란 그런것이다. - 20년 전에 그냥 모든게 다 힘들 때 어둠속에서 오랜만에 만난 엄마 손 잡고 누워서 울었던 기억이 났다. -

영화 모가디슈를 봤다. '죽거나...' 보고 류승완 영화 처음인데 죽거나가 90년대 초반 이하늘의 랩이라면 모가디슈는 2020년 창모의 랩 같다 생각했다. 아내한테 말했더니 뭔말인지 알거 같다고 했다. 대충 말해도 뭔말인지 아는것도 사랑의 한 가지다. 영화는 유려하고 군더더기 없다. 무엇보다 아주 나쁜 새끼가 안 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아주 나쁜놈 나오는 건 싫은데 나이 먹을수록 더하다. 영화는 말이 통하는 동포애(인류애) 같은걸 말하고 있다.

가족애 > 동포애 > 인류애. 이런 수식이다. 가까울수록 사랑도 강하다. 그 반대의 감정도.

영화는 탈레반이 아프칸을 장악한 현실과 많은 부분이 겹친다. 한국 대사가 극적으로 탈출한 뉴스를 봤다. 한국 사람 다 탈출했으니 이제 남의 나라 일이다. 여기서 멈추는게 보통이다. 난민이 된 사람들과 그땅에 남겨진 사람들을 더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으니 거기까지만 해도 괜찮다. 보편적이다. 인류애 같은거 없어도 된다.

오늘 <아프칸 난민 한국에?> 란 기사를 봤는데, 혐오로 가득한 댓글리스트를 보고 실망과 좌절과 무력감에 빠졌다. 전두환은 아직도 살았는데 다행이 혈액암에 걸렸다고 한다. 혐오병자들 다들 죽을병 걸려서 돌봐주는 이 없이 고통스럽게 죽었으면 좋겠다.

쓰다보니까 또 무력하네.

아버지는 잘 지낸다. 여전히 하루 한 두번 목소리를 듣는다. 작년과 비교해 본다면 많이 명쾌해졌다. 계절을 모를까봐 걱정하진 않아도 될거 같고, 토요일 일요일엔 내가 출근 안 하는 걸 아니까 푹 자라고 일부러 전화 안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요일 개념도 어느 정도 돌아왔다. 그러다 갑자기 다시 많은 걸 잊게되도 상황 맞춰 헤쳐나갈 뿐이다. 머릿속엔 그 정도의 여유가 있지만 현실은 또 모를일이다.

영상 만드는 강의를 하나 듣고 있다. 재미있다. 시도 쓰고 일기도 쓰고 유튜브도 하고 술도 먹는다. 여름은 생각보단 짧았다. 2021년이 이렇게 지나간다.

엄마한테 전화나 해야겠다. 하는 얘기는 늘 '별일 없나 전화했어요.' 다. '어제 잘 주무셨어요?'로 시작하는 아버지와의 통화랑 차이점이 없네. 가족이란 그런것인가?

회사에선 낙엽송 열매 따고 있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나무 위쪽을 잘라내는 작업을 하면 떨어진 나무를 다시 작업하기 좋게 잘라내고 낙엽송 열매를 자루에 주워 담는다. 나무 위에 올라가는 일이 고역이다. 아보리스트라고 수목등반 기술자격이 있는데, 하루에 두 세 나무만 작업해도 의뢰인에 따라서 일당 30만원 이상을 받기도 한다. 우리 기간제선생님들 중에 나무를 탈 줄 아는 분이 세 명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 c형만 나무를 타고 있다. c형은 하루에 열 나무 이상 작업한다. 다른 분들은 이제 나이도 먹고 겁이 난다고 한다. 당연하다. 일당이 나무 자르는 사람도 10만원 하늘에서 떨어진 가지 정리하는 사람도 10만원이다. 땅에서 하는 작업도 어려움이 있지만 많이 불합리하다. 기간제 선생님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원칙대로 잘해 드려야겠지만 나무 타는 이 형은 혹시라도 섭섭하지 않게 말 한 마디라도 더 신경 쓰고 있다. 지난주에는 외부에서 온 아보리스트 선생님 한 분이 본인 방식대로 천천히 안하고 우리 방식대로 사다리 타고 나무 올라가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많이 다치지 않은 건 다행인데 정말 위험한 일이고 큰일날 빤 했다. 어제 출근해서 c형이 작업하는 걸 봤는데, 보는 내 마음이 불안하고 내가 보고 있으면 작업하는데 신경쓰일까 싶어서 금방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를 어렵게 생각하는 기간제 선생님들에게 생색내지 말아야지. 요즘 이 생각을 많이한다. 내가 이 선생님들 월급 계산을 하고 이 선생님들이 기간제 근로자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한 우리들 사이는 평평하지 않다. 나도 나 월급주는 회사에 100프로를 다 드러내진 않는다. 이게 인간의 사회다.

-> 튼튼해 보이는 집은 있어도 튼튼한 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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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갑자기 술을 먹게 됐다. 술을 자주 먹고 대체로 즉흥적으로 먹기 때문에 갑자기란 말을 써놓고 지금 이 문장을 적으면서 웃는다. 나한테 술 잘 사주는 친한 형이랑 회사 관사에서 먹었다. 원래는 피자를 한 판 시켜 먹을 생각이었는데, 배달앱을 열어보니 JK형이 좋아해서 몇 번 같이 갔던 홍어집이 첫 페이지에 보이길래 홍어삼합을 주문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홍어 냄새가 나서 배달이 나보다 빨리 도착한 걸 알았다. 엘리베이터의 홍어 냄새와 양손에 두 병씩 든 소주 때문에 11층에 내린 아주머니 앞에서 약간 민망했다. 14층에 도착, JK형은 치킨을 한 마리 시켜놓고 날 기다렸는데, 갑자기 홍어가 와서 놀랐고 좋아하는 안주를 먹게 되서 좋아했다. 치킨은 튀긴 걸 좋아하는 내 안주 홍어는 형 안주. 배려하는 인간관계란 이런 것인가 생각하며 술을 마셨다.

나는 맛있게 먹고 약간 많이 먹는다 = 잘 먹는다. 그리고 먹는 일에 진심이다. 기왕 먹을 것 가성비 따지지 말고 비싸고 좋은 거 먹자, 는게 내 기조다. 작년부터 그렇다. 기후파괴로 세상이 끝장날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비관(90%), 일확천금이 갑자기 생기지 않는한 내집 마련은 어렵다는 비관(10%)에서 나온 결론이다. JK형은 나랑 자주 먹기 때문에 이런 내 생각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세계 멸망에 대한 내 비관에 한결같이 세상이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홍어랑 치킨 조합을 - 사진 찍어둘 걸 - 앞에 두고 형과 대화했다.

- 형, 이렇게 좋은 거 먹는 것도 올해가 끝이란 생각이 들어요.
- 뭔 말이야. 내년에 세상이 망할거 같애?
- 아뇨. 그게 아니라 내년이면 기왕 먹는 거 좋은 거 먹자는 생각이 안 들것 같네요.
- 먹는 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눈앞에 있는 걸 먹어라.

말을 내뱉을 땐 내년부터 그럴것 같았는데, 말을 내뱉고 나니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건지 기분을 실천에 옮기는 건진 헷갈린다. 집에서 대충 먹고 점심 도시락도 대충 먹기 때문에 술 마실 때나 외식할 때는 잘 먹어야지란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도 사그라드는 중이다.

애호박 가격이 폭락했다. 역대 3번째로 짧은 장마였다. 이건 우리나라 얘기다.
이란에는 마실물도 없다. 아프리카 최대 도시는 물에 잠기고 있다. 독일과 벨기에에는 역대급 비가 왔다. 중국의 어느 지역에는 1년치 비가 하루만에 내렸다. 터키, 시베리아, 캘리포니아에는 산불이 났고, 캐나다와 미국은 역대급으로 덥고 그래서 캘리포니아 농사는 망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나라들은 역대 최대기온을 매일 갱신중이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이건 다른 나라 얘기다.

아직까지는 기후 파괴를 심각하게 느끼지는 못하는 지역에 사는 것에 감사해야 할까. 올해는 세 번 바닷가에서 수영을 했다. - 지난 6년간 1번 함 – 멀리서 보면 잘 모르지만 바닷물에 들어가서 보면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가 정말 많다. 바다는 거대한 쓰레기통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입을 벌리고 받아주진 않을 것이다. 이게 내 비관이다. 아이가 없다보니 세상이 좋아져야 한다는 생각도 없고 육아에 집중할 시간에 비관에 집중하고 있다. 아니, 아이가 있었다면 더 비관적이었을 수도 있다. 이게 또 내 비관이다.

국제곡물 가격이나 선물 시장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돈이 있으면 밀이나 옥수수 선물에 투자하고 싶다. 세상이 망햐가는 걸 이용해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미국내 농지를 자꾸 사들이고 있다는 빌게이츠랑 다르지 않다. 지난주에 k 선생님에게 사람 다 똑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류전체가 다 한통속이다.

jk형이 어제 남은 홍어를 얼릴수도 버릴수도 없어서 아침으로 먹고 왔다고 해서 사무실에서 같이 웃었다.

하루하루가 즐겁지만 무겁다.

여름날 산길을 걷는다. 땡볕아래 힘들다가 나무 그늘이 았어서 잠깐 쉬는데 마침 시원한 바람이 불면 살 것같다. 그늘에서 나가기 싫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목적지에 닿거나 되돌아가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봐주지 않는다.

희망에서 1미리미터만 벗어나도 비관이 있다.

8월 잣나무 채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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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약 타는 날이라 서울에 왔다. 강릉역 여덟 시 삼십 분 차, 집에서 역까지 걷는 길에 하늘이 쾌청했다. 지금 강릉으로 휴가 온 사람들 좋겠군. 코로나 시작되고 2년도 안됐는데 전염병과 여름휴가가 공존하는 세상이 됐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12시에 아버지 집에 도착해서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었다. 엄마는 내가 아버지 보러 오는 날은 꼭 서울에 온다. 아버지를 보러 오는 건지 나를 보러 오는 건지 모르겠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둘 다 조금씩 있는거겠지. 엄마는 오산에서 아버지 먹을 걸 잔뜩 만들어왔다. 너무 끓여서 양파가 다 녹아버린 카레 한 솥, 양념한 고기, 고춧가루가 없어서 청양 고춧가루만 넣고 만들었다는 겉절이 등이다. 겉절이는 맵고 미원맛이 났다. 맛있었다. 막국수 집을 차려도 될거 같다고 했더니, 미원을 안 넣으면 안된다고 하며 웃는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어려서 세상 제일 맛있다 생각했던 엄마의 김치맛이 미원맛이었단 걸 안 사람이 됐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올 때 싸오는 음식은 책임감인가 죄책감인가 사랑인가 세상의 많은 일들 중에 하나인가.

이버지랑 병원을 두 군데 옮겨 다니며 많은 얘기를 했다. 역시 나랑 둘이 있을 때는 당신 어렸을 때 얘기를 많이 한다. 할아버지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되는 건 흥미롭다. - 일 년에 꼭 두 번 바닷가로 물놀이를 갔고 음식 준비해야 하는 할머니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라 그 나들이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 치매병원에서 혈압약 타는 병원으로 가려는데 스콜이 쏟아졌다. 카카오 택시를 불렀는데 뒷자석에 탄 아버지가 본인 카드를 내게 건넸다. 이미 선결재된 거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받았다. 집에 돌아와서 잠깐 설명해 봤는데, 내 생각대로 아버지는 전혀 이해를 못한다. 치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 옛날 사람인 것이다. 그냥. 그냥. 아버지는 그냥 있는 사람이 됐다.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됐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지난달에 아버지랑 엄마가 강릉에 왔었다. 그때 일을 잘 기억하는지 약간은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는데 잘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오전에만 둘째 이모가 두 번 다녀갔다는데 어제 다녀갔다고 했고 동생과 엊그제 통화했다는데 열흘은 됐다 했다. 강릉 다녀온 건 큰 이벤트였기 때문에 잘 기억하는 건가? 아버지 머릿속을 알 수 없다. 스콜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아버지 머릿속에 낀 단백질도 잠깐 스쳐가는 강한비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부한 비유다. 진부함도 희망이라면. 택시가 길 건너편으로 오는 바람에 아버지랑 빗속을 뛰었던 일을 기억해 둔다.

집에서 아버지 약(매일 일곱 알)을 매일 약통에 담으면서 이모들과 얘길 나눴다. 병점 사는 셋째 이모를 오랜만에 봐서 많이 반가웠다. - 살을 빼는 걸 보면 의지가 대단하다. 아버지 술 끊은 걸 보니 유전인 것 같아요. 의지는 닮아도 되지만 밤새 술먹는 건 닮으면 안된다. 아버지 앞으로 일은 못할 것 같아요. 무슨 소리냐 하는데까지는 해봐야지 나한테 다 계획이 있다. 이모가 제일 자주 보시니까 이모 의견이 가장 정확한 거 같은데 어떤거 같아요. 예전에 비해서 많이 좋아졌다. 근데 똑같은 말을 반복해도 너무 말을 안듣는다. 움직임이 많이 둔해진 것 같진 않나요. 니 아버지가 원래도 기민한 사람은 아니잖니 - 이모들 용돈 좀 많이 드려야지. 추석 때는 꼭 추진해야겠다. 이건 미안함이나 책임감이 아니라 사랑과 고마움이다. 이모들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엄마도 아버지도 없었다. 돌아가신 큰이모 보고 싶다. 언젠가 엄마 집에 갔다가 막내이모 만나서 얘기할 때 자주 연락은 못하지만 항상 생각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모가 다 안다고 본인도 그렇다고 그러면 된다고 고맙다고 했다. 그 말이 참 고마웠다.

돌아가는 기차에서 쓸랬는데 청량리 오는 지하철에서 다 써버렸네.

추가. 위스키에 취미가 붙은 친구 부탁으로 글을 하나 써줬는데 3등 했다고 연락왔다. 아버지도 괜찮고 이래저래 기분 좋다.

아침 강릉역과 저녁 청량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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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 헌혈했다. 27번째 헌혈입니다, 헌혈센터 간호사가 친절하게 말해줬다. 고등학생 때 첫 헌혈을 했으니까 틈날 때마다 한 건 아니지만 25년 동안 27번 이라면 어떤 의미로는 틈날 때마다 헌혈을 했다. 헌혈하고 문화상품권이나 영화표 받는 것도 좋지만 내가 헌혈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피를 뽑는다는 행위 자체에서 느끼는 쾌감 때문이다. 이웃사랑, 인류애, 봉사 같은 건 1%정도 될까. 매혈에 대해서 관심(즐거움)을 가진건 '허삼관 매혈기'가 원동력이 됐고 비교적 최근에 읽은 옌렌커의 '딩씨 마을의 꿈'에도 중국사람들의 매혈 얘기가 나온다. 어른들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나라도 가난하던 시절에는 피를 많이 팔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공식적인 헌혈도 현금 오천원을 줬다. 땟거리 떨어졌을 때마다 피를 뽑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스토리는 어딘가 짠한데가 있다. 자기 피를 판 돈으로 다른 생명의 피를 먹고 자기 피를 다시 채우는 (악)순환을 생각한다.

강릉 헌혈센터에는 내가 갈 때마다 사람이 많다. 토요일에만 가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강릉센터의 혈액 공급이 - 표현이 맞나? - 전국에서 상위권인 걸로 봐서 기본적으로 강릉에 헌혈인이 많은 것 같다. 보통은 간호사 5명 정도가 일하는데, 엊그제는 셋이 일하고 있었다. 뭔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평소보다 북적댔다. 예약한 사람도 많아서 1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헌혈을 하는데, 내 팔에 바늘을 꽂던 간호사가 너무 지쳐보여 한 마디 했다. '너무 힘드시겠는데요, 퇴근하면 독주를 마셔야 될 것 같아요.' 돌아온 대답은 '기절해요'였다.

퇴근후에 기절할 정도로 일에 치이고 열심히인 사람이 있는데, 나는 뭐하고 있지? 생각했다. 정말로 나는 뭐하고 있지?

생각이 채종원에서 같이 일하는 기간제 선생님들에게로 이어졌다.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내 일의 핵심은 이 선생님들 작업 스케줄 짜고 월급주는 것이다. 12명은 예전에 산불 아저씨들하고 일할 때보다 한참 적은 숫자지만 채종원 특성상 밀접한 관계로 일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 산에서 노가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치는 분들도 있다. 어떤분은 산재를 진행하고 어떤분은 산재 신청하기 싫다고 병가를 진행한다. 어떤분은 자동차를 도로 한복판에 세워두고 자다가 음주단속에 걸리고 어떤분은 도벽이 있고 어떤분은 생활에 여유가 있고 어떤분은 이 일이 절박하며 어떤분은 내가 좋아하는 내 친구고 어떤분은 불만이 많고 어떤분은 돈 받는 만큼만 일하고 싶고 어떤분은 작업반장이다.

이 작업반장님을 중심으로 76,000원 일당에 풀베기 너무 많이 시킨다는 불만이 터져서 내가 그래도 어느정도는 진도를 나갔으면 좋겠다했고 그 다음날 하루 진도를 나가보더니 그 다음날부터 일 못하겠다고 이틀동안 단체로 안 나오셨다. 지난주의 일이다. 하루 더 안나오시면 해고 및 징계 절차 진행하겠다고 했더니 다음날 다 나오셨다. 하루에 400분 기계 돌리는 숙련된 분들이 일당 20만원 받는다. 150분 돌리는 - 실제는 그보다 덜 돌리지만 - 우리 아저씨들은 지금만큼만 일하면 일당 대비 충분하단 생각일 것이다. 뭐 나도 그 정도면 좋다는 생각이지만 회사에 나만 있는 건 아니고 내가 회사 원탑도 아닌데다가 어쨋든 내가 아저씨들 담당자니까 이번엔 어떤 정치적인 이유로 조금 강하게 했다. 원칙에 어긋난건 아닌데 마음에 걸린다. 일 적게 하고 싶은 사람과 일 시키는 사람의 관계. 어떤 선생님이 나에게 당근과 채찍을 말했는데, 나는 당근도 채찍도 없는 사람이라고 답해줬다. 그리고 당근과 채찍을 말하는 순간 갑을관계를 용인하는 것이라서 그 말이 싫었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계속 당근이기 때문에 이번에 한 번 강하게 나간 일로 채찍만 있는 담당자가 됐다.

어쩌겠나. 그게 삶인 걸. 내가 아저씨들 한 푼이라도 더 받게 하려고 애쓰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렇게 하는 게 내 직업적 사명감이니까 그렇다.

결국 기간제 선생님들은 본인들 뜻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예전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일하게 됐다. 그 단체 행동에 참여하기 싫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지금 당장 일을 그만두더라도 가진 돈으로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수 있는 선생님도 있다. 내가 좋아한다는 내 친구는 오늘 퇴근하고 전화해서 본인들 이틀 빠진 거 월차로 처리되는지 결근으로 처리되는지 물었다. 이 질문은 월차로 처리해달란 말이지만 내가 회사 원톱이 아니고 단체 행동에 참여하지 않고 출근한 선생님도 있기 때문에 결근 처리할 수 밖에 없다. 내 친구는 집도 있고 땅도 있지만 형편이 좋은편은 아니다. - 그럼 나는 집도 땅도 없지만 형편이 좋은편인가? - 친구 전화받고 짠했다. 사는 일은 짠내가 난다.

단체 결근 사건의 원인에는 일이 힘든것도 있지만 그보다 깊은 곳에는 누구는 누구랑 친하고 누구랑 누구랑 친해서가 있었다. 사는일이 짠하고 바보같고 지리하다. 꽤 오랫동안 지리하단 말을 생각했다.

다들 출근한 날 오전에 모여서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날의 메모에는 바보같다는 말과 다 내 잘못이라는 말이 반씩 뒤엉켜있다.

-> 산에 여름이 왔다.

AND

오전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같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연작꿈으로 꾸곤 하는데, 이버지 치매 이후로는 하늘에 떠서 지구를 뱅뱅도는 죽은자들의 열차에서 유일하게 죽은자가 아닌 기관사와 내가 주인공인 꿈을 꾼다. 나와 기관사는 소설 <마의 산>에서 카스트로프와 세템브리니 같은 관계다. 내꿈이니까 내가 주인공인게 당연하겠지. 열차는 어떤 이상적인 공동체 같은 곳인데 내가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어젯밤 꿈에는 유난히 아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오랫동안 연락 안했던 B 선생님이 내 손만보고 일우구나, 해줘서 반가웠다. 친구 한 명은 열차 안에서 죽어라 운동만 했다. 아버지도 중간중간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엔 어떤 상황이 벌어져서 내가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700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 기차가 내 생각보다 낮은 고도에 있었다 -죽지는 않았고 푹신한 곳에 등부터 떨어진 이후에 욕을 하면서 잠이 깼다. 잠이 깰 무렵에는 꿈인걸 인지했기에 욕을 했던거 같다. 얼마전에 다른꿈을 꿨을때도 욕하면서 잠이 깬적 있는데. 좋지않다. 아내말대로 약을 잘 챙겨 먹어야겠다.

토요일 아침. 아내를 목적지에 태워주고 두 시간 기다리는 동안 처음 생겼을때부터 좋아했던 테라로사 경포호수점에 갔다. 아침부터 사람이 많고 혼자 온 사람은 나 뿐이고 집이 강릉인 사람도 그런거 같았다. 코로나 프로토콜 때문에 관광객들이 대부분인 식당이나 카페도 일단 들어가면 쾌적하게 즐길 수 있다. 테라로사 커피는 항상 맛있다. 좋다. 엄마랑 둘이 여행온 팀이 내가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았는데 젊은 사람 쪽의 여린 옷차림과 가는 팔다리가 보기 좋아서 잠깐 쳐다봤다가 눈 한 번 마주쳤다. 이런.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랑 둘이 어디 놀러 가고 싶다거 생각한지 몇 년 됐는데, 아직 한 번을 못갔다. 엄마가 건강할 때, 좋은데 가서 좋은거 먹고 잘 쉬고 싶다. 여기서 좋은건 비싼걸 말하는데 나도 그런 걸 못해봤고 엄마도 그렇다.

어제는 귀찮아도 설거지를 해야지 생각했었는데, 아내가 아이스크림통 뚜겅을 열면 붙어 있는 둥근 비닐을 개수대에 넣어둔 것을 보고 기분이 상해서 관뒀다. 왜 그걸 20리터 쓰레기 봉투에 넣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런일로 기분이 상했을까? 빨래비누같은 설거지 비누 말고 남들 쓰는 거품 잘 나는 세제 쓰고 싶다. 세탁 세제도 마찬가지다. 최근엔 날씨를 핑계로 빨래방에서 빨래 하는데, 남들 쓰는 빨래용 세제가 집에 있었으면 그냥 세탁기 돌렸을거다. 집에 비누가 떨어졌는데, 아내가 비누를 안 만들어 오길래 비누 사온다는 말을 어렵게 꺼내서 오이비누를 쓰고 있다. 아내랑 나는 뭔가 갈라진건가? 기분 좋은 날에는 대화라도 몇 마디 하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가 - 친구들은 아내랑 몇 주씩 말을 안 하기도 한다고 한다. - 나를 운전기사로만 생각하는 거 같은 오늘같은 날은 왜 같이 살고 있지, 생각도 한다.

친구 h랑 맘 편한 직장 다니면서 자기 하고 싶은거 한 두가지 하면 제일 좋은 삶인 거 같다는 얘기를 나눴는데, 나는 직장 조건이 좋으니 그렇게 할 수 있다. 아내는 나랑은 달리 본인 하고 싶은건 다 하려는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끈기도 부족하고 몸도 마음도 따르질 않는다.

흐린 하늘 바라보며 자동차 운전석 제껴 놓고 쓰고 있다. 아내는 열한시 반에는 끝날거라고 했다. 벌써 지났다. 먼저도 그랬다. 미안한지 곧 끝난다고 전화가 왔다. 집에 태워주면 피곤해서 자야한다고 잘 것이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뭘 먹고 들어가자고 할텐데 먹고 싶은거 말해보라하면 답이 없을 것이고 내가 돈까스나 짬뽕 먹자고하면 그건 싫다고 할 것이다.

담배나 피워야겠다.

아내랑은 밥 안 먹고 무사히 집에 왔고 정답게 얘기도 나눴다. 역시 사랑인가? 사랑인지 아닌지가 중요한가?

되게 오랜만에 좋아했던 글을 찾아 읽었다. 서른둘에 이걸 처음 읽었고 나는 지금 마흔 넷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죽는거라면

<그 책 마지막 장을 무심코 읽어가다가 다음과 같은 한 구절에 눈이 멈췄다. “나라는 인간이 올해 벌써 42살이 됐습니다…”
나는 들었던 책을 내려놓고 말없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58살이다. 말하자면 그 책은 쓴 지 15~6년이나 된 책이었다. 새삼스럽게도, 마치 진귀한 발견이라도 한 양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럴 때 보통 사람들은 어떤 감회를 느끼게 될까? “앞으로 20년은 더 살아야지”라거나 “여든살까지는 살아야지” 하는 식으로 생각할까? 그렇다면 나는 보통 사람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때 인생이 끝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것이 그때 내 마음을 채운 감회였다. 42살이었을 때가 행복의 절정기였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전혀 쓸모없었다는 얘기도 아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죽는 거라면, 설사 그때 인생이 끝났다고 해도 그뿐, 별로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오후


2주전에 아이와 왔던 친구가 또 삽당령에 방문했다. 이번엔 아이 둘이랑 같이 왔다. 친구가 내 직장을 좋아해서 좋다. 고기를 굽고 술을 먹고 아이들도 좋아하는 거 같고 어른들은 신이 났다. 친구는 먼저 왔다간 다음에 아내랑 한 마디도 안 했다고 한다. 얘길 안나눠도 사랑이고 얘기를 나눠도 사랑이다. 서로 욕을 해도 사랑은 사랑이다. 사랑인가 떠올리는 순간 사랑이고 사랑인가 묻는 순간 사랑이다. 사랑없이 뭐가 제대로 돌아가겠나. 너도 나도 특히 나는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에 집착하나보다.

오전은 길고 오후는 짧은 일기가 됐다. 혼자인 시간은 느리고 길게 가기 때문이다.

-> 출근하면 매일 찍는 자리. mi8로 찍어봄.

AND

허망한 욕심을 버리고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야지 적었다가 웃는다. 유명해지고 싶은 게 허망한 욕심인지, 하루하루 충실히 사는 건 어떤건지, 유명해지려고 하루하루 충실히 살면 안되는지, 그런 삶에는 나다운 게 없는건지. 글이며 음악이며 지금보다 더 꾸준해야 나답고 충실한건지. 이렇게 쭉 이어지는 물음에 웃고 만다.

부자가 되고 싶은건 아니다. 어쩌면 천재가 되고 싶은가? 나이 마흔 넷에 그건 아닐거 같고, 로또 당첨되서 돈이 많이 생기듯이 갑자기 유명해지고 싶다. 노력도 없이?

산책 중에 매한테 쫓기는 작은새를 봤다. 작은새는 허둥대는데 매는 여유가 있다. 작은새는 숲으로 달아났고 매는 하늘로 치솟았다. 한쪽에는 불행한 결과다. 그게 매 쪽일수도 있지만 의외로 불행한 쪽은 작은새였을지도 모른다. 모른다는 것, 그것이 삶이다.

삶이란 말이 무겁다. 밭침이 두 개인 말들은 다 그렇다. 앎만 예로 든다. 바닥이 튼튼한데 왜 무겁지? 삶을 안다는 건 얼마나 무거운가. 생각을 멈추자. 사랑을 멈추자. 그렇다고 삶을 멈추진 말자.

뉴스에는 오늘도 수 많은 죽음이 나오고, 뉴스에 나오지 못한 죽음은 죽음도 아닌 세상. 어느 시인의 죽음이 떠오르고, 그 사람은 죽어서 더 유명해졌을까? 그 시인은 단지 살고 싶었을 수도 있다.

채워지지 않은 뭔가가 있다. 그것을 갈망한다. 누군들 아니겠는가. 갈망하지 않는 순간 삶은 멈춘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는 무엇을 갈망하나. 아내는 친구들은 동료들은 무엇을 갈망하나. 사랑받고 싶다. 더 많이.

-> 참좁쌀풀의 계절이 돌아왔다. 계절은 어김이 없다. 아직까지는.

AND

친구랑 친구 아이가 다녀갔다. 친구 아이가 바다보면서 핸드폰 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친구는 서울에 10억 아파트가 있고(빚은 다 갚았는지 모르겠으나) 양쪽 부모님들이 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나랑 학교를 같이 다닌적은 없는데, 한 동네에 오래 같이 살았고 친구 부모님이랑 우리 아버지는 아직도 그 동네에 산다. 어렸을 때 이 친구가 말 없이 소주 먹고 싶다고 연락와서 말 없이 소주 두병씩 먹고 헤어졌던 적 있는데, 만나면 그때 얘기를 하곤 한다. 좋았다고. 친구가 좋았다고 하니 나도 좋았다. 친구 아이는 올해 6학년인데, 마음이 좀 아파서 먼저 친구가 혼자 왔을 때 걱정을 많이 했었고 나도 얘기 듣고는 신경이 좀 쓰였었다. 삽당령에서 만나서 셋이 등산을 했다. 시간은 짧지만 오르막이라 힘든 코스인데 어린이가 끝까지 잘 올라왔다. 친구는 이 코스가 두번째인데, 먼저 다녀간 이후로 자꾸 생각이 났다고 했다. 자꾸 생각이 난다는 건 열망, 의지, 살아있음이다. 바다보면서 핸드폰 하고 싶다는 마음도 살아있음이다. 산을 내려오면서 아이에게 유명해지고 싶다고 했더니 바로 관종이란 답이 돌아왔고 맞다고 했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말도 살아있음이다. 아이도 나도 항우울제를 먹지만 살아있으니 예쁜것도 보고 숯불에 고기도 구워 먹는다. 친구는 위스키를 먹고 나는 소주랑 맥주를 마셨다. 아이는 맥주병은 갈색 소주병은 초록이니 둘을 합치면 나무가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밤이 깊은 후에는 화로에 장작불 붙여놓고 놀았다. 술과 불. 사람을 흥분시키는 두 가지. 아이는 반만 즐거웠고 어른 둘은 풀(full)로 즐거웠다. 나는 불을 보면 금각사랑 남대문에 불지른 아저씨를 생각한다. 이거 위험 요인인걸. 아침에 라면 먹고 해산했다. 아이에게 숲속에서 보낸 하루가 좋은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십년 후나 이십년 후에 어제일을 즐겁게 기억하고 싶다.

집에 도착해서는 아내 운전기사 노롯을 하고 있다. - 대기중에 이 글을 쓴다. - 살아 있으니 운전기사 역할도 한다. 체념인가

술 취해서 또 여기저기 전화했는데, 병이다. 고쳐야지.

AND

운동하고 씻고 집을 나섰다. 은행에서 만원을 찾고 복권방에 들러서 로또복권을 샀다. 잔돈 오천원을 새지폐로 받았다. 이번주 느낌이 좋군. 남대천을 따라 걸으며 물고기들의 춤을 봤다. 오늘 하늘이 좋군, 자외선이 강해도 반짝이는 공기가 좋다. 낚시하는 사람들, 저게 잉어떼라며 멀리서 강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을 지나서 어제 세워둔 자동차를 찾아서 강릉역으로 갔다. 13시 30분 친구들이 도착했다. 오징어가 한 마리 만원이라 오징어회는 다음에 먹자고 하고 마트에 들러서 장을 봤다. 돼지고기 네 팩 포함 17만원. 넷이 다 먹을 수 있나? 생각했다. 암튼 산에 올라왔고 자동차로 온 친구가 합류했다. 다 모였으니 이제 시작이다. 나무랑 산이랑 하늘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 자동차 타이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올라가면서 다음달 월급 받으면 타이어 바꿀 계획이라고 했는데, 말이 씨가 됐나? 다행히 오랜만에 비포장을 타면서 돌에 부딪친 앞쪽 바닥 커버가 찢어진 일이었다. 가위로 터진 부분을 잘라냈다. 안좋은 조짐이기도 하고 아무일도 아니기도 하고 좋은 조짐이기도 한 사건이다. 하루는 대체로 이런일들의 연속으로 흘러간다. 숯불에 고기구워 먹기 시작했다. 맛있다. 얘기 얘기 웃음 웃음 고기 고기 술 술 불 불 별 별. 넷이 즐겁게 다 먹었다. 이런게 친구겠지. 푹 자고 다음날. 산을 내려와서 국밥을 먹고 자기차로 돌아갈 친구는 줄을 서서 닭강정을 사고 기차로 돌아가는 둘은 번갈아 화장실을 가고 바닷가에 잠깐 커피 가게에 잠깐 친구 하나 집으로 돌아가고 대관령에 잠깐 다시 바닷가에 잠깐 하늘도 바다도 예쁜날. 이틀연속 반짝이는 날은 드문데. 좋은 징조인가, 생각나서 맞춰본 복권은 꽝. 강릉역에서 토스트를 먹으며 또 한 번 즐겁고 포옹 후 15시 30분 차로 해산. 집에와서 운동하고 씻고 기타치고 놀았다. 23시 30분엔 다시 강릉역에 왔다. 서울갔던 아내가 돌아왔다. 주말에 잘 놀았다. 내일은 출근.

-> 2021년 6월 12일 남대천변 접시꽃.

AND

아버지 꿈

제삿날. 기억에 없는 대궐 같은 시골집. 친척들이 다 모였다. 돌아가신 할머니도 보이고 친척들과 이런저런 대화. 엄마도 기분 좋아보이고. 나쁘지 않았다. 나는 창가에 편안하게 걸터 앉아 있고 갑자기 소 냄새가 났다. 아버지랑 jd 작은 아버지가 긴 복도를 지나 전 부친 기름 냄새가 남은 마루로 들어왔고 나는 농담처럼 아버지가 오시니까 소냄새가 나네, 라고 했다. 할머니까지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웃었다. 아버지랑 포옹을 했는데, 아버지 넥타이를 보고 문득 우리 아버지 치매지, 떠올랐다. 아버지를 안은채 아버지 귀에 대고 아버지 오늘이 몇월 몇일이죠, 묻는데. 울음이 터졌고 그 장면에서 깼다. 사랑인가?

2021년 6월 8일 아침 3시 30분.

-> 낮에는 예쁜걸 보고 밤에는 격정과 걱정이 묻은 꿈을 꿨네.

AND

또 곰이 겨울잠 자듯 자버렸다. 몇 번을 깼는데 깨자마자 다시 잠들길 반복했다. 누군가를 취조하고 있는데 당최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꿈이 계속 이어졌다. 다시 꿈속으로 돌아가 정답을 찾고 싶었다. 새벽 두 세 반, 다섯번 쯤 같은 꿈에서 깼을 때 포기했다. 포기가 빠른건가?

토요일엔 ds랑 ssy를 만났고 잘 마시고 놀았다. 남의 인생에 내 말을 보태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이다. 말을 하는 쪽도 듣는 쪽도 과하면 안되겠지. 과하지 않은것이 친구일까? 연예인들 얘기가 대화의 주제가 되는것도 같은 경우다. 결국은 니(내) 할일이나 잘해(하자)가 된다.

ds랑은 그냥 이렇게 살면 되지란 말로 헤어졌다. 인생이 다 잘 풀릴 순 없지만 살아있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언젠가부터 나를 지배하고 있는 이 생각에 안네 프랑크를 예로 들때가 많다. 저녁 뉴스를 틀어놓고 운동을 한다. 수 많은 죽음이 귓속에 들어왔다가 숨을 내뱉을 때 빠져나간다. 죽으면 다 소용없다. 내 이런 생각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라 체념인가 싶기도 하다.

출근전에 실외 베란다에서 - 우리집의 자랑 - 아버지 약 드시라고 통화하고 담배 피우다가 아내의 완두콩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꽃 피었던 자리마다 콩 꼬투리가 달려 있다. 많은 생의 운명이 그러하다. 구시대의 유물같은 사람이 되지말자 생각했다. 나는 어떤 꽃을 피웠나? 꿈속의 정답을 찾았어야 했나? 아버지는 어떤 꽃을 피웠나? 뭔가 어지럽게 시작되는 여름이다.

AND

잘해주는 것에 대한 생각

어젯밤 공부 모임 마치고 j랑 길을 걷다가 말했다.
- 이 집이 팥빙수를 잘해준다던데.
- 전 여기는 한 번도 안 가봐서 팥빙수 좋아하세요?
- 아니오. 잘 해주는 걸 좋아하죠.
- 아, 예...
어제는 대수롭지 않은 대화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가며 흘리듯 한 말에 팥빙수 좋아하냐고 물어봐 준 마음이 좋다. - 고마운 건 아니고 좋다. -

당연한 얘기지만 나한테 잘해주는 곳, 잘해주는 사람이 좋다. 친구는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이고 단골집은 나한테 잘해주는 곳이다. 나한테만 잘해주는 건  찐사랑인가? 엇나간 사랑인가?

첫 줄 대화의 팥빙수 가게, 영일군이랑 만나면 가는 양갈비를 구워주는 가게, 기름을 삼 만원만 넣어도 화장지를 주는 주유소 - 내가 잘해주는 곳의 예로 들곤 함 - 는 표면적인 잘해줌이고 진짜 잘해주는 건 좀 느낌이 다르다.

토요일 아침 나한테 잘해주는 곳 두 곳에 다녀왔다. 카센터랑 이발소. 카센터랑 이발소에 들어갈 때는 오랜만에 왔습니다, 라고 하고 나오면서는 항상 고맙습니다, 라고 한다. 오늘도 그랬다. 들를 때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는데, 두 가게 사장님 모두 제가 고맙죠, 라고 받아줬다. 내가 모르고 스스로 할 수 없는 분야인 자동차와 수리와 이발을 친절하게 해주시니 고마운 것인데, 서로 고마운 마음이 있다면 그건 수리비와 이발비를 떠나서 참 좋은일이다. - 이발하면서 이 아저씨 돌아가시면 어디가서 머리 자르지? 면도까지 해주고 만 삼천 원 이발비는 너무 싼 게 아닌가? 생각했다.

지금은 나한테 잘해주는 봉봉방앗간에 왔다. 아르바이트 하시는 분이 이발했는지 물어봐 주고 커피도 늘 두 잔 내려주고 안 바쁠때는 세 잔도 내려주는 좋은 곳이다. 대표님도 내가 커피 좋아하는 걸 알아서 그런건지 누구에게나 그런건지 늘 커피 더 마시고 가라고 한다. 지금 첫 번째 커피가 비어가고 있다. 잠시후엔 한 잔 더 드릴까요, 한 잔 더 주시겠습니까, 둘 중에 한 마디로 한 잔 더 마시게 된다. 좋다.

대접받는 걸 좋아하는 나는 누구에게 잘해주고 있나? 솔직함에 대한 강박을 핑계로 매일 독설만 늘어놓고 다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유명해지고 싶다.(유명해지면 대접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지도. 적어 놓고도 웃기네.)

짤은 사무실 마당 6월 층층나무 - 내 나무2

AND

<술 때문은 아니고 뇌에 찌꺼기가 있음.
경증치매고 PET상 알츠하이머로 보임. 젊으면 진행이 빠른 경우가 많음.
기억력약은 한알반 두 달 먹고 최종적으로는 두 알고 늘릴것임 - 현재 쓸 수 있는 약은 이것뿐
맥박이 느리다 - 계속 느리다면 약을 바꿀수도 있음
집에서 혈압 재볼 것 - 혈압약 받는 병원에서 혈압약 줄일 수 있는지 확인>

오늘 아버지 약타러 병원가서 의사에게 들은 내용이다. 동생은 충격을 받았고 나는 그러려니 하고 엄마는 여전히 보험료가 걱정이고 아버지에게 치매란 말이 나쁜 것이 아니고 아버지는 치매라고 하니 아버지는 그러려니 한다. 아버지가 그러려니 하는 사람이라 좋다. 나는 아버지의 그러려니 하는 점을 닮았다. 술을 정말 잘 끊었고 약만 잘 드시면 된다는 얘기는 만날 때마다 열 두 번도 넘게 하고 있다.

아버지는 뭔가 깔끔하게 하지 못해서 그렇지 혼자서 씻고 혼자서 밥 먹고 혼자서 청소하고 혼자서 은행에도 간다. 오렌지를 사 드시기도 한다고 한다. 의사가 하루에 두 번 맥박을 재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혈압계를 사와서 혼자 해보시도록 했는데, 어설프게나마 혈압을 쟀다. 아침 저녁으로 체크라하니까 매일 저녁에 전화해서 혈압 체크했는지 확인하면 된다. 그 핑계로 하루에 두 번 전화하게 됐다. 잘된것도 잘못된것도 없다. 아버지 머릿속에 찌꺼기는 물건의 명칭을 관장하는 부분에 쌓인것인지 물건, 운동 갔다온 장소, 매일보는 드라마 제목 같은 건 전혀 떠올리지 못한다. 기억하지 못하는게 아니라 머릿속엔 있는데 말로 안나오는 건가? 그게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이틀에 한 번은 아버지를 만나는 둘째 이모는 아버지 만나면 많이 답답하다고 하는데, 나는 자주 보지 않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러려니 하는 사람이니까 아버지는 원래도 약간 어설펐으니까 아버지가 많이 답답하진 않다. 엄마는 아버지 만나러 서울 온 날은 잔소리를 많이 해서 저녁때가 되면 목이 쉰다고 한다. 사랑인가? 기대인가? 욕심인가? 암튼 엄마도 그런 마음을 조금은 놓아야 한다.

어제 고교동창들 만났다. 대충 27년 된 사이다. 5인방 중에 넷이 만났는데, 먼저 강릉에서 NH만났을 때도 말했던 거지만 특별히 생활고에 시달리지도 않고 감옥에 가거나 크게 다치거나 죽은 일도 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다들 이 세상에 잘 안착했다고 해야 하나? 이 얘기를 했더니 KH가 맞다면서 그렇지만 그러니까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아버지는 구치소도 갔다오고 일리걸로 미국에도 갔다오고 빚에도 시달리고 생의 말년에는 치매에도 걸렸지만 결과적으로는 크게 잘못하거나 잘못된 일 없이 살았다는 생각이다. 예외도 있겠지만 살아있으면 온전하게 산 것이다. 언제부턴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큰 포션을 차지하고 있다.

아버지 파이팅!!

-> 목이대병원근처 열영합발전소 굴뚝. 서울 살때 많이 좋아핬던.

AND

초록에 겨운 초록을 매일 본다. 좋은 마음이 한 시간은 간다. 험난한 삶에 그것만으로도 복에 겹다.

뭔진 모르지만 유명해지고 싶다. 유명해질 거란 희망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닌다. jk형이 명쾌한 답을 줬다. '외로워서 그래' 아내에게 그 얘길 했더니 아내도 명쾌한 답을 줬다. '야 인간은 원래 다 외로....' 나랑 놀아주는 사람들에게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지.

달라질 게 없을 줄 알았지만 회사로 돌아왔어도 달라진 건 없다. 회사에선 나도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당연하다. 다만 회사 외적으로는 매일 운동을 하고 일주일에 두 번의 모임이 있다.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어떤 자극을 준다.

어느 시점부터 나도 지쳐버려서 아버지랑은 하루에 한 번만 통화한다. 아버지 머릿속은 여전히(영원히) 알 수 없고 이모를 통해 듣는 몇 가지 소식을 종합해보면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아침에 내가 먼저 전화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먼저 전화하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아버지가 '어, 일우냐' 하면서 전화받을 때 굉장히 반가워하는 게 느껴진다. 우리 아버지 외롭구나 그동안 외로웠구나, 감정이 가슴을 후벼 판다. 아버지, 전화 더 자주 할게요.

12세대가 두 개 동에 모여 사는 옥천 연립은 얼마 전에 우리 집 계량기가 고장 났다고 해서 교체했고 나는 모르는 수도 공사를 했는데 그 후에 우리 집 변기에서 물 새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변기 옆에 물 잠그면 괜찮음 - 어제는 아랫집에 사는 줄은 몰랐던 아줌마가 자기집 부엌에 물 샌다고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집주인한테 전화해서 일련의 상황을 알려야 할 것 같은데 전화하기가 너무 싫다.

출근, 전화처럼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막상 해보면 별것 아닌 경우가 많으니 변기도 확실하게 고치고 주인한테 전화도 해야지. 근데 그게 오늘은 아니다.

-> 삽당령 박달나무 채종원

AND

곰이 겨울잠 자듯이 잤다.
술도 안 마셨는데. 피곤했나?
곰이 강가에서 물고기 잡아 먹듯이 무력을 떨쳐야지.
이마에 뿔이 났다.
최근에 나쁜 생각을 한 적이 없으니 벌을 받은 건 아니다.
언젠간 곪아 터지겠지.
예전엔 수시로 돋아나던 뿔이니 신경쓰지 말아야지.
오늘의 첫 활동으로 귀를 판다.
귀지는 노란색이 아니라 누런색인데 그것도 정확한 색 표현은 아니다.
갈색과 노란색의 그라디에이션인가? 옅은 노랑인가?
rgb 숫자로 내 귀지 색깔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그게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참어. 버텨. 최근에 위로가 된 말이다.
근데 나는 왜 위로 받아야 하지.
인간은 왜 위로 받아야 하나?
위로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정확히 떠오르진 않는다.
귀지를 모아서 변기에 집어 넣고 똥을 눈다. 어제 뭘 먹었더라?
귀지, 똥, 코딱지, 땀, 잠까지
몸은 정신보다 정직하다.
변기 물을 내리고 물을 한 잔 먹는다.
기브앤 테이크.
귀 파는 도구 끝에는 앵그리버드가 화내고 있지만 나는 화가 난 건 아니다.
현재시간 12시 51분. 자 오늘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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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끝이네.
5월 3일 출근이다.
40일 정도 쉬었다. 잘 쉬었단 생각이다.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던 것처럼 더 쉬면 정말로 회사 그만두고 싶을 거 같아서 그만 쉬고 복귀하기로 했다.

약을 잘 먹고 있고 최애 커피가게에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 지금도 봉봉에 앉아 있음 - 운동을 꾸준히 했고 술도 끊이지 않고 마셨다. 아버지 일도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다. 단막단막 적어보니까 정말 다 잘되고 있네.

항우울제는 세 알로 늘어났고 대상도 없는 욕을 하면서 운동을 하고 기억을 잃기 위해서 술을 마시고 아버지는 경증 치매가 확정 됐다. 짤막짤막 적어도 나아진 것도 없다.

모든 체념하는 삶이 그러하듯이.

나는 나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흘러갈 뿐이다. 이 문장에는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없다.

엊그제 태백에서 친구가 다녀갔다. 내 글을 좋아해줘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다. 5년만에 봤고 그 사이에 둘 다 나이의 앞 자리가 하나씩 늘었지만 아무런 위화감 없이 잘 놀았다. 그 친구 글이 잘되서 유명해지면 유명한 사람이랑 옛날부터 친구인 것이 너무 좋을 거 같다고 농담으로 말했는데. 글이 잘 되는 거랑 상관없이 그 친구가 즐겁게 지내면 좋겠다. 나도 그래야겠지.

어제 친구를 강릉 터미널까지 태워주는 길에 함께 봤던 초록이 좋았다. 미세먼지 때문에 쾌청한 공기도 아니었고 비가 내릴 듯 흐린 하늘이었는데 그 때문에 길가에 목련이랑 벚나무 은행나무 이파리가 가장 원초적인 초록인 4월 중에서도 비정상적으로 또렷하게 예뻐서 기분이 좋았는데, 둘이 같이 그런 걸 느꼈다. 기억해 둔다. - 아내는 바빠서 차 안에서도 풍경이 아니라 카톡을 많이 들여다 봄 ㅠ.ㅠ -

휴가가 끝났으니 어디로든 돌아가자.

-> 휴가끝 첫번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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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검사 흉부엑스레이 심전도 뇌mri 뇌파검사 인지검사

아버지가 여섯 가지 검사를 했다. 아홉 시 반에 시작해서 세 시 반에 마쳤다. 아버지는 병원 일 있을 때마다 내가 서울로 오는 것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럴 필요 없다. 엄마도 나한테 그런 마음이 있는데, 엄마도 그럴 필요 없다.

4월 14일이 의사 얘기 듣는 날이다. 아버지가 치매인 건 명확한 사실이지만 그때는 좀 더 명확해진다. 무언가를 전문가의 입을 통해서 정확하게 듣는 일은 안도감을 준다. 바뀌는 건 아버지가 제대로 된 치매약을 먹을 거라는 것뿐이다.

오전 검사 마치고 점심으로 무교동 낚지를 먹었다. 아버지랑 같이 먹은 가짓수가 점점 늘어난다. 기억할만한 식사는 아니었다.

mri검사까지 시간이 비어서 스타벅스에서 돌체라떼를 마셨다. 아버지 덕분에 오랜만에 스타벅스에 갔다. 아버지는 내일이면 오늘 나랑 커피 마신 일을 기억 못하겠지만 처음이자 마지막 스타벅스일 것이다. 아버지랑 기억할만한 곳에 가고 싶었다. 내 욕심이다.

돌체라떼 같이 마시면서 아버지 인생이 달콤했던 시절도 있었겠지 생각했다. 아버지는 날 만나면 어렸을 적 얘기를 많이 한다. 오늘은 시골에서 면서기 할 뻔했던 일이랑 내가 영등포구 도림동에서 태어난 얘기, 직장인 문래동에서 집인 도림동이 가까워서 가끔 집에 와서 점심을 먹기도 했다는 얘기를 했다. 아버지가 28살까지의 일이다. 아버지랑 매일 통화하고 자주 만나니까 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하다가 그거그거 하면서 머뭇거릴 때, 무슨 말을 하려는지 거의 안다. 어차피 하시려는 얘기가 거기서 거기라 누구라도 알 수 있지만 아버지를 조금은 아는 것 같아서 좋다.

돌체 라떼 먹은 걸 기억해 둔다.

아버지, 다음엔 기억할만한 걸로 먹어요.

p.s.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프론트에 간호사 중 한 명이 모두에게 친절했던 것을 기억해 둔다. 나라면 매일 퇴근후에 독주를 마셔야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은 일을 하는데, 치매환자들이 많고 노인들 뿐인 병동에서 너무 밝고 친절해서 임팩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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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적응장애와 상세불명의 우울 에피소드로 - 의사는 자세히 듣지 않는다 - 30일간 병가 중이다. 어제 어느 라디오 프로 오프닝에서 지금 현재의 행복지수를 1부터 10까지 중에 어쩌구저쩌구 했다. 아내한테 넌 몇 점인지 물었더니 6점이라 해서 놀랐다. 나는 내가 5점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더니 아내가 놀랐다. 아내 생각에 나는 2점 정도인 것 같다는 것이다. 내 기준에 아내는 8점은 된다.

기준점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의 행복 기준이 아내보다 높은 곳에 있는 건 낙천적인 성격에 기인한다. - 아내는 아니라고 할 듯 -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생을 가볍게 대하는 아버지의 낙천성을 나는 어느정도 물려받았다.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엄마 말마따나 아버지는 너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어서 치매가 빨리 왔을 수도 있다. 내 핏속에는 아버지의 낙천성과 엄마의 걱정이 섞여있다. 어느쪽이 작용했다고 확신은 못하지만 항우울제를 먹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먼저 서울 갔을 때, 본인을 가정폭력범으로 신고한 아내와 이혼하겠다는 친구와 '나에게 못되게 굴면 가만히 안둔다'는 기조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는데, 이후 아무 연락도 없는 걸로 봐서 친구는 이혼하지 않을 것 같고 나도 내 돈 들여 법 절차를 두 번 진행하고도 떼 먹힌 전세 보증금 50만 원을 못 받은 처지다. 내가 지금 병가를 쓴 것도 나를 화나게 만든 몇몇 사람들에 대해서 갚아주는 의미가 있는데, 결국 아픈 건 나다. 뭐가 잘 안되네.

암튼 직장에서 자꾸 문제가 생기니 내 문제도 있겠지 싶어서 상담을 받아볼까 한다. 그냥 이렇게 지내다가 병가 마치고 어영부영 출근할 수도 있겠지.
갚아주는 일을 만들지말고 살아야지.

누군가의 불운을 간절히 바라는 건 아니지만 마음 한켠에 그런 마음이 있는 내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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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에 병원 때문에 아버지한테 다녀왔고 29일에 병원 때문에 다시 만난다. 최근 10년간 아버지 만난 횟수보다 지난 6개월간 만난 횟수가 더 많다. 연을 끊지 않은 부모가 아프다는 건 그런건가?

아침에 약드시라고 전화를 한다. 오늘 뭐하실 건지, 날씨가 어떤지, 몇 시에 주무셨고 몇 시에 일어나셨는지 같은 걸 묻는다. 통화는 길어봐야 2분이다. 요즘은 저녁약을 안 드시니까 여러번 통화 안 해도 되는데 정오쯤 또 전화를 하게 된다. 밥은 뭘 드셨는지 운동은 다녀오셨는지 지금 뭐하시는지 같은 걸 묻는다. 통화는 길어봐야 2분이다. 저녁에도 생각나면 전화를 하게 된다. 오늘 잘 보내셨는지, 저녁은 뭐해서 드셨는지, 지금 TV에서 뭐가 나오는지 같은 걸 묻는다. 통화는 길어봐야 2분이다. 내 질문에 답하는 것 말고 아버지가 많이 하는 얘기는 '운동을 많이 하는까 몸 상태가 좋다.' '난 괜찮은 거 같다.' '잘 지내' 같은 말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 중간에 커피 마시다가 전화했는데, 아버지가 '지금 그.... 출근... 그래 출근하는 중이야?'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출근이란 단어가 생각나서 기분 좋은 거 같았다. 낮에 전화한다고 하고 전화 끊었다.

아버지한테는 그저 잘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요즘은 10시에 자서 7시에 일어난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시간 개념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지난 7년간 24시간 경비일 하느라 많이 못 잔 것을 지금 푹 주무시는 걸로 아버지 기억력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면 좋겠다. 당신 눈 앞에 지금 먹고 있는 반찬이 있는데 아들이 전화로 뭐 드시고 있냐고 물어보면 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그거 먹고 있다고 대답하는 아버지 본인이 제일 답답할 수도 있다.​

​ 아버지랑 자주 통화하니까 내 목소리에 힘이 없으면 아버지가 바로 알고 뭔 일 있냐고 한다. 별일 없다고 하지만 뜨끔하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내 목소리를 듣고 내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핏줄끼리 할 수 있는 찐 걱정인가? 피는 뜨겁고 진한 이미지인데, 줄이라는 말로 두 사람의 피를 잇는다고 생각하면 울컥 솓아오르거나 왈칵 무너지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혈연이란 말도 그렇고 그다지 아름다운 이미지는 아니다. 핏줄에 대해서 쓰니가 꼰대가 된 거 같다. ​

​ 뭔 일 있냐는 질문에 (회사에서 짜증나는 일로 상태가 안 좋지만) '별일 없고 다 잘되고 있다. 아버지도 잘하고 있다'고 하고 만다.

​ 요즘 다시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말의 앞이나 끝에 욕이 붙는다. 아내 얘기로는 <C8 망할 놈의 새끼들>이 한 세트로 쓰인다고 한다. 그렇다는 건 말을 꺼내기 전 머릿속의 생각에도 욕이 붙는다는 얘기다.

​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한다. 'C8, 아버지 29일에 만나요' 아버지를 욕하는 건 아니다.

​ 내 욕 들어주는 아내한테 미안하다. 망할 놈의 새끼들을 욕하는 거지 아내를 욕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미안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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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이랑 어제 서울 다녀왔다. 어제는 아내도 같이 다녀왔다. 그리고 아버지는 치매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로 한동안 멈췄던 업무를 다시 시작했기 때문인지 양천구치매안심센터는 환자와 보호자로 붐볐다. 작년 11월에 받은 검사와 보호자 작성 서류를 바탕으로 의사랑 면담을 했다. 나랑 의사 나랑 아버지 또 나랑 의사의 순서다. 목동이대병원 교수가 센터장인데 그 사람이랑 면담을 해서 안심했다. - 대단히 세속적인 이유다. 그런 삶을 살지 않았는데,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은 없으니 내가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세속적이란 걸 인정하고 넘어가자. 세속은 세속적인 단어니까 보편적이라고 할까 -

면담 내용
- 아버지는 혼자 산지 오래됐다. 가족들은 작년 여름에서야 아버지가 안 좋다는 걸 눈치챘고 그러고 나서야 아버지에 대해서 신경쓰기 시작했다. 현재 아버지는 숫자, 문자 등 많은 것을 상실한 상태고 언제 길을 잃어버리거나 한밤 중에 집 밖을 배회할지 모른다. 나이가 어리고(우리나라 70세)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이 보이기 때문에 피검사, MRI 검사를 받고 그 결과에 따라 PET란 것도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격이 너무 온순하다는 것은 현재로써는 아주 긍정적인 요소지만 급작스럽게 성격이 바뀔 수도 있다.
-> 40년 넘게 살면서 최근에서야 아버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걸 실토하는 면담이었다. 약간의 죄책감과 그것에 대한 부정이 계속 왔다갔다 한다. 동생은 본인이 결혼하고(2015년) 아버지가 완전히 혼자가 되면서 치매가 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핏줄이란 그런 것이다.

결론
- 우리 아버지는 치매다. 혼자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등급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안 나올 수도 있겠지) 요양급여를 신청해야 한다.
-> 예상은 했지만 의사가 치매라고 말했기 때문에 가슴속에 아주 작은 희망은 이제 없다.

엄마는 본인이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말했다. - 엄마, 알고 있으니까 자꾸 얘기하지 않아도 돼요. - 잘 안 되겠지만 아버지에게 책임감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엄마의 할 일인 거 같다. 그리고 오늘 엄마는 몸살이 났다.

나는 전체 진행을 총괄하고 아버지의 거주지 이전이나 요양급여 신청, 실업급여 계속 수급 등 중요한 결정에서 엄마와 동생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어제 엄마가 말하길 본인은 나처럼 차분할 수가 없다고 했는데, 내가 차분할 수 있는 건 - 회사 동료들도 아버지랑 나랑 통화하는 걸 들으면 어떻게 아버지한테 그렇게 차분하게 말을 잘할까,라고 함 - 아마 아버지에게 깊게 베인 것 같은 애정은 없기 때문이다. 병원 예약 날짜 통지가 올 때까지 아버지 약 드시라고 전화하면서 기다릴 뿐이다. 치매로 확정이 됐기 때문에 더 이상 기다리는 초조함은 없다.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고 내가 모르던 정보를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아버지 치매인 얘기를 여기저기 하고 다닌다. 며칠 전에 정선에서 일할 때 알던 아저씨를 우연히 만나서 아버지 얘기를 했더니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는 답을 들었다. 집에 틀어박힌 13살 아이를 걱정하는 친구도 그렇고 이혼 준비 중이라고 톡을 보낸 친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돈 걱정하는 엄마도 그렇고 사돈이 신경 쓰이는 아버님도 그렇고 다들 걱정 속에 산다. 걱정이 격정까지 가지 않더라도 거기에 삶이 있다.

진단에서 병원 예약까지 양천구치매안심센터의 시스템은 효율적으로 보였고 담당 의사는 매우 친절했다. 는 것을 기록해 둔다. - 그 뒤에 LH공사 직원들이 시흥에 땅을 산 것 같은 꼼수가 숨어있지는 않을 것이다. 적고 보니 생각이 너무 나갔다. -​

최근 며칠 아버지랑 같이 지낸 엄마가 파악한 아버지 증상
- 핸드폰이든 지갑이든 그게 뭐든 한 번 쓰기만 하면 어디에 뒀는지 몰라서 자꾸 찾는다
- 돌아가신 외삼촌 잘 지내는지 물어봄
- 본인 나이 모름, 계산도 못함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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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걷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잘 아는 길인데, 엄마랑 통화하면서 아버지 얘기하는 중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전화 끊고 나서도 아버지 생각하면서 무심히 걷다가 한참 후에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반대편으로 온 것을 알았다. 내 갈 길을 아는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길 위에 서 있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명절 연휴에 아버지랑 같이 지낸 엄마에게 들은 아버지 부정적 요인
- 한계가 없이 먹는다
- 지갑이나 핸드폰을 찾는다며 자꾸 가방을 뒤진다
- 하루에 돈 50만 원을 찾았는데, 어디에 썼는지 모름

긍정요인
- 동생이 아버지 은행 공동 인증서 만듦(Thanks, Bro)
- 카톡으로 영상통화를 시도해봤는데, 전화를 잘 받으심

약을 못 챙겨 먹는다. 잘 안 씻는 것 같다 외에도 새로운 증상들이 추가된다. 가방을 뒤진다는 얘기를 듣고 자꾸 짐가방을 싸던 할머니 생각도 나면서 '우리 아버지 이제 되돌아올 수는 없겠구나' 했다.

아버지는 길을 모르는 사람이 됐다. 나아갈 수도 되돌아 갈수도 없다. 그래도 어딘가에 서 있으니 인생인가? 잘 모르겠다.

치매안심센터에서 받은 검사는 코로나로 결과도 알지 못한 채 멈춰있고 - 전화를 한 번 더 해봐야겠다. - 치매든 경도인지장애든 정확한 의사 소견이 있어야 지금 먹는 비타민 같은 약이 아니라 치매약을 먹을 텐데. 엄마는 다른 병원 알아보지 말고 자꾸 좀 더 미루자고 한다.(치매 보험금 때문인가) 요양원 하는 선배랑도 통화해보고 여기저기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다. 아버지 본인은 답답하지 않아서 다행인데, 엄마랑 나는 답답함을 느낀다.

엄마랑 아버지는 같이 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 같이 산다면 엄마가 먼저 병에 걸릴 거 같다고 함 - 결국은 아버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일들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 어떡할까.

하루에 두 번에서 세 번 아버지 목소리를 듣는다. 아버지 목소리는 매번 밝다. 그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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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만나고 돌아가는 길이다. 청량리에서 출발한 기차가 양평에 닿기 전에 글을 끝내야지, 생각한다.

 어젯밤 11시 반에 신월동에 도착해서 여전히 내 삶에서 가장 긴 세월의 지분을 갖고 있는 588 종점 근처 여관에서 잤다. 잠든 아버지 깨워서 그 옆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아버지 실업급여 1차 수급일이다. 사람들이 많이 너무 많이 몰려서 교육은 일찍 끝났다. 아버지 서류를 대신 작성하면서 둘러보니 고용센터 직원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라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두 명 있았다. 내가 없었으면 아버지도 그 그룹에 포함됐겠지. 실업급여 교육을 담당한 직원은 일과 사람에 찌들어 지쳐있고 실업급여 타러 온 사람들 사이로는 나라에서 주는 돈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의구심이 흘렀다. 2015년 겨울에 실업급여를 타 봤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고용센터에는 항상 어떤 절박함이 흐르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피로감을 두르고 있게 된다. - 현재 정식 명칭은 <고용플러스센터> -

 고용센터를 나와서는 인터넷뱅킹을 신청했다. 은행을 나와서는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다. 오늘 만난 의사는 차트를 쭉 훑어보더니 치매인지 아닌지 빨리 확정이 되어야 지금 먹는 혈액순환 비타민약(글리아타민)이 아니라 정식 치매약을 먹을 약을 먹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란다.

 병원을 나와서는 밥을 먹었다. 내가 밖에서 먹자고 했더니 아버지가 오리집에 가자고 했다. 오리집주인이 오랜만에 오셨네요, 했다. 조기축구 동료들이랑 자주 가던 집인가 보다. 로스가 뭔 뜻인지 모르지만 오리로스를 먹었다. 아버지는 세상 일의 많은 뜻을 잊거나 잃어버렸으니까 로스의 뜻이 중요하진 않다.

 식당을 나와서는 아버지 집에 갔다. 약을 챙겨드리고 매일 하는 얘기를 또 반복했다.
- 아버지, 약은 제가 전화했을 때만 드시고요.
- 티비를 보더라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집중해서 보시고요.
- 남들이 무슨 얘기를 하면 뭔 말을 하는지 잘 들으시고요.
- 아버지는 지금 잘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원래도 욕망이 드러나지 않던 사람인데 지금은 욕망이 아예 없어진 거 같다. 단 하나 의무감으로 생각하는 건 엄마한테 매달 돈을 보내고 싶다는 것인데, 실업급여 다 받고 나면 그것도 끝이다.

 남은 생을 멍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선 뭔가 집중할만한 재미있는 걸 찾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아버지랑 티비를 보면서 낱말 맞추기 게임 같은 걸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봤는데, 그렇게 하려면 아버지가 강릉 와서 살아야 하고 막상 강릉 와서 살면 지금보다 아버지에 대한 신경을 덜 쓸지도 모른다. 그러니 엄마 말대로 아직은 아버지가 서울에 있는 게 나을지 모른다.

 친구 가게에 와서 아버지 공인인증서를 만들다가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랑 통화하면서 목소리가 커졌다. 아버지한테 화가 난 건 아니다. 목소리를 높이고 나면 수화기 너머 아버지가 괜히 주눅 드는 거 같아서 기분도 안 좋고 반성하게 된다. 공인인증서 만들기는 월요일에 다시 시도하면 된다.

 아버지랑 그냥 같이 있으면 괜찮은데, 뭔가를 하려고 시도하면 진이 빠진다. 진이 빠지고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적는다. 

 청량리에서 강릉으로 가는 ktx산천 859열차는 아직 양평역에 닿지 않았다. 굿.

 오늘자 아버지 부정 요인
 - 밥 먹기 전에 엄마랑 통화했는데, 밥 먹던 중에 통화한 거 잊어버리고 또 전화하려고 함

 긍정요인
 - 계절을 헷갈리면 끝이라고 하니, 알았다고 함(그리고 지금이 겨울이라 대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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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할아버지 제사였다. 최소인원이 모였다. 삼촌 둘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엄마, 아버지, 나 셋이 엄마집에서 잤다.

남은 제사음식으로 셋이 앉아서 아침을 먹었다.
- 탕국이 시원하네
- 아들, 시금치 더 먹어라
- 당신, 조기 한 마리 더 먹어

밥을 다 먹고 이렇게 밥 먹을 일이 별로 없다는 얘기를 했다. 나랑 엄마가 제 수명을 살아도 앞으로 얼굴 보는 건 40번 정도겠다. 아버지까지 셋이 앉아서 밥을 먹는 건 이번이 마지막 인지도 모른다.

아침 먹고 아버지랑 서울에 왔다. 고용센터(고용보험 관련), 신한은행(퇴직금 관련), 신한카드(소득공제 관련) 등의 일처리를 했다. 아버지 집에 와서는 요일 약통을 다시 채워드렸다. 아버지 워크넷이랑 고용보험 회원 가입하고 구직등록까지 마치니 오후 여섯 시였다.

오늘 확인한 우리 아버지 부정적인 모습
- 자동차 안전벨트를 잘 못 채움
- 지하철 타고 내릴 때 교통카드가 핸드폰 지갑에 있는지 돈지갑에 있는지 헷갈림
- 고용센터에서 교육 듣는데 집중을 못해서 체크만 하면 되는 걸 못함(나는 밖에서 지켜보고 고용센타 직원이 해줌)

긍정적인 부분
- 낙관적이다(항상)
- 본인 인지능력이 정상이 아닌 걸 알고 있다

앞으로 구직활동할 일이 걱정이다

아버지랑 둘이 있을 때 아버지가 한 얘기
- 내가 미국 가기 전에 돈 아낄려고 담배 끊었잖아
- 내가 미국에 한 이 년 있었나?(일리걸로 가있었음) 올림픽 때 왔잖아(아버지 월드컵이요). 미국에 있을 때 엄마한테 한 번인가 돈도 보냈어.
- 너희도(나랑 동생) 그렇지만 엄마가 고생을 많이 했어. 그래서 뭐라고 해도 가만히 있잖아
- 엄마가 고생을 많이 했어. 그래도 지금 정도면 성공한 거지(집이 있는 상황을 말하는 듯)

아버지는 빚에 쫓길 때 많이 힘들었고 그 문제가 해결됐을 때 많이 기뻤다. 그리고 아버지는 엄마에게 미안함이 많다.

아버지 일처리를 다 마치고 엄마랑 카톡이 오갔다
- 아들 수고했어. 조심해서 내려가.
- 수고는 뭘 알았어요. 이모들이랑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오늘 셋이 같이 아침 먹은 게 자꾸 기억에 남네
- 그래, 엄마도 너무 좋았어

'엄마도' '너무' '좋았어'
이 대화에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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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아내가 장인어른이랑 통화하다가 통화 말미에 우리 아버지의 치매 증상에 대해서 알렸다. 언젠가는 말씀드려야지, 통화가 한 시간 넘게 이어지는 바람에 예기치 않게 얘기가 진행됐다. - 아버님이 먼저 시댁 어른들 괜찮은지 물어봤을 것이다. - 아버님이 나 바꾸라고 해서 잠깐 통화했다. 며칠전에 나랑 통화했을 때, 내가 아무말도 안 한 것에 조금 섭섭함을 느낀 말투였다. - 아내가 본인 부모는 본인이 알아서 하는거지, 라고 말한 것에도 약간 충격 받으셨을지도 모른다. - 상황이 심각하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시지 말라고 태연하게 얘기했다.

 통상적으로는 시집간 본인 딸이 힘들어질 수 있으니 걱정하는 것이 정상이고, 아버님은 통상적인 사람이다. 어머님이 암투병도 하셨고, 평소에도 건강에 관심이 많으시니 걱정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진작에 알려드리지 않은 것이 죄송했다. 헌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사돈이 아프든 말든 아무소식 없으니 그저 잘 지내겠구나 생각하면서 사는 게 아버님, 어머님한테는 더 좋을 것이다. 암튼 그렇게 아버지 소식이 사돈댁에 알려졌다. 어서방 자네 어깨가 무겁게구만 열심히 살어, 란 말을 들으니 진짜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열심히 살어'는 아버님이 자주하는 말인데, 당신 성에 차지 않을 뿐인지 나도 아내도 열심히 살고있다. 

 요즘 내 관심분야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지난달 30일로 일을 그만뒀다. 지금 상태라면 먼저했던 경비일이 마지막 직장이다. 앞으로 아버지는 마지막인 것만 많아지는 삶 속에 있을 것이다. 월급은 잘 들어왔고, 퇴직금은 아직인데, 조금 알아보니까 퇴직금은 따로 통장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서 먼저 통화했던 사무실 직원과 다시 한 번 통화해야 할 거 같다. 15일에는 나랑 같이 고용센터에 갈 계획이다.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건 좋은데, 현재 아버지 상태로 구직활동이 가능할까? - 구직활동을 증빙해야 실업급여가 나옴 -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양천구치매안심센터 간호사랑 한참을 통화했다. 의사 선생님이 진단검사 결과를 알려줘야 하는데, 코로나로 치매안신센터의 많은 활동이 멈춰있는 상황이라 언제 연락할지 모르겠고, 본인들도 환자 가족들의 답답한 상황을 알고 있으나 어쩔수가 없다는 내용이다. - 지금이라도 대학병원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나? 엄마랑 상의 좀 해봐야겠군 - 통화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새겨진다. 아버님이 말한 '어깨가 무겁다'는 이런 걸 내가 챙기는 상황을 말하는 건가? 그런거라면 아직 어깨가 무겁지는 않다. ​

 우리 아버지 현재 긍정 요인
 - 밥을 혼자서 잘 끓여 드심
 - 규칙적으로 매일밤에 잠을 자게 됨
 - 엊그제 혼자 은행에 가서 ATM으로 마지막 월급 들어왔는지 확인함
 -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고 함
- 아침에는 약 네 알, 저녁에는 약 한 알이란 걸 알 때가 있음
- 계절을 헷갈리진 않음(내 생각엔 이게 제일 중요)

 우리 아버지 현재 부정 요인
- 외롭다, 여전히, 아마 앞으로도 

​ 아버지 힘내세요. 어깨가 무거워져도 열심히 도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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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31일에 아버지 병원 때문에 엄마가 아버지한테 다녀갔다. 내가 갔어도 되지만 12월의 마지막 날 아버지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았고 12월 초에 내가 다녀왔기 때문에 마지막 날은 엄마가 아버지를 만나기로 했다.

엄마가 속상하다고 전화했는데, 엄마가 얼마전에 새로 사다준 겨울 점퍼의 단추를 아버지가 다 뜯어놨고 옷도 많이 찢어져 있다고 했다. 아버지 본인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입을 꾹 다물고 있다고 했다. 듣기만 해도 속상한데, 옆에서 본 엄마는 오죽했을까?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얘기에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 치매 초창기에 당신 듣기 싫은 얘기를 하면 입을 꾹 다물었댔다. 나한테 잔소리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눈만 껌뻑거리면서 유난히 다부진 모양으로 입을 굳게 닫고 있던 할머니 얼굴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피가 섞인 사이는 아니니까 입을 다물고 있는 일이 유전은 아니겠고 치매 환자의 일반적인 모습 중에 하나겠지. ​

'치매' '단추' 키워드로 검색을 해봤다.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검색 결과로 추측하건대, 아버지는 단추를 푸는 일에 어려움을 겪다가 급기야 화가 나서 단추를 다 뜯어버렸다는 결론에 닿았다.

- 엄마, 아버지한테 화내지 마시고 다 잘하고 있다고 하세요.
- 화난 건 아닌데 자꾸 목소리가 커지니 어떡하냐?​

병원에 다녀온 결과 아버지 약 목록에 고지혈증 약이 추가됐다. 올해 칠십이다. 혈압, 아스피린, 고지혈증 약은 평균적인 진행이다. 약 드시라고 그때그때 알려드려야 하는 건 보통의 진행은 아니다. 대답을 못할걸 알면서도 오늘 몇 시에 일어났는지 밥때셨는지 자꾸 묻게 된다.

- 어.... 몇시?..... 어두울 때 일어났어.
- 어.... 그 뭐냐.............
- 국수! 그게 먹고 싶어서 어........ 그 뭐냐.....
- 고추장이랑 양념해서..........
- 아버지, 비빔국수요.
- 어, 그래. ​

기록을 보니 아버지가 치매 증상을 보인 이후에는 한 달에 한 번은 아버지를 만나고 있다. 아버지가 아프지 않았다면 명절이랑 제사 때, 1년에 세 번 정도 만났을 테니까 아버지가 80살까지 산다고 해도 횟수로는 서른 번 정도 얼굴을 볼 예정이었다. 엄마 얼굴 보는 일도 그 정도였을텐데, 아버지 때문에 엄마 얼굴을 좀 더 자주 보게 돼서 다행인 건가?

이번 주에,

아버지는 기초연금 문제로 동사무소에 가야 되고 실업급여 문제로 고용센터에 가야 된다. 고용센터는 다음주나 다다음주에 나랑 같이 가는 게 나을 거 같다.

14일이 할아버지 제사다. 둘째 삼촌이 식구들을 모으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엄마에게 전해듣고 헛웃음이 나왔다. 코로나보다 무서운 게 조상인가? 아무튼 그때 맞춰서 아버지 관련 일처리를 몇 가지 하기로 한다. - 약, 고용보험, 퇴직금 - 엄마는 할아버지 제사 전후로 아버지랑 열흘 정도 오산에서 같이 지낼까 고민 중이라고 한다. 같이 있으면 자꾸 목소리가 커진다고 하면서도 잠깐 같이 지낼까 고민하는 마음이 사랑일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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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넘어간다. 2000년 이후로 해가 바뀔때마다 그 숫자를 받아들임에 현실감이 떨어진다. 2020년이 됐을때, 그 느낌이 특별히 더 강했는데, 2021은 좀 더 현실감이 없게 느껴진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미래 소설과 SF 영화들보다 미래를 살고 있다.

​24일에 아버지가 해고통지를 받았다. 10시 쯤 약 드시라고 전화했는데, 황급한 목소리로 좀 있다가 전화할게,라고 해서 해고통지 중인 거라고 짐작했다. 아버지랑 관련된 부분은 계획 또는 예상에서 어긋남 없이 진행중이다. 어긋남이 좀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같은날 오전에 자동차 검사를 받았고 오후에 헌혈 하고 돌아오다가 잠깐 정신줄 놓은 사이에 가벼운 사고가 났다. 90프로 이상 내 책임이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준비하는 좋은 날에 안좋은 일이 겹쳤다. 가벼운 접촉이라 다행이다. 운전하던 두 사람은 서로 괜찮은지만 묻고 각자의 보험회사에서 온 두 사람이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한다. 횟집에서 인간이 양식한 활어회를 먹는것처럼 세계가 나를 양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액땜이라 했다. 뭔 액땜이냐고 했더니 2021년 액땜이라 한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주변에서 다들 좋게 얘기해주니까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앞 차에 타고 있던 두 사람이 대인처리를 했다고 하는데, 자동차 번호판이 약간 구겨지는 가벼운 접촉사고였으니 실제로는 아프지 않길 바란다. - 교통사고 냈(났)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나도 죄짓고 살기는 틀린 사람이라 다행인건가 - 

​연휴 내내 누웠다가 엎드렸다를 반복하며 게임과 유튜브를 왔다갔다 했다. 나이 마흔 셋에 이럴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게 다행스런 일이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불행한 일이기도 하다. 만들던 노래는 멈춰 있고, 매일 강박적으로 붙잡고 있던 기타연습도 손에서 떠났다. 책이라도 읽어볼까 하면, 그게 다 뭔 의민가 싶다.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오늘이 아버지 마지막 출근날이다. 현재 아버지 상태라면 아버지가 월급을 받는 직장에는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이다. 지금 건물에서 경비일을 7년 반동안 했다. 24시간 근무서고(중간에 두 시간 정도 잠) 다음날 쉬고 또 24시간 근무서는 일의 반복. 아버지는 지겹지 않았을까? 언젠가 '너무 외로운 고슴도치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가시를 다 뽑고 너구리랑 친구가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겨움과 외로움은 같은 말이다. 아버지는 외로웠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버지가 소속된 경비 용역회사 사무실 직원과 통화했다. 아버지가 아픈건 술로 문제가 있었던 6월에 이미 알았고, 아프지 않았으면 계속 가고 싶었지만 계약기간이 끝나서 재계약을 안하는걸로 했다고 한다. 퇴직금도 매년 정산했던 것이 아니라서 7년치를 한꺼번에 준다고 하고 만 65세 이전 취업했기 때문에 실업급여 수급 대상자라고 한다. 잠깐 통화했을 뿐인데,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말투에서 우리 아버지 참 괜찮은 회사에 다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정상이 아니란 걸 알았을 때, 바로 퇴사 조치할 수도 있었을텐데 6개월을 봐줬다. 고마운 일이다. 내가 아버지 아들인 것도 아버지한테 다행인 일이길 바란다.  

​아버지는 돈을 모아두는 인생을 살지 않았고 엄마는 당장 고정 수입이 없어져 매달 나가는 보험료가 큰 걱정이다. 엄마는 꽤 심란하겠지만 아버지는 회사 그만두게 된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듯 보인다. - 물론 속으론 안 그럴수도 있다. - 희망적으로 생각하면, 일이야 다시 구하게 될 수도 있고 당장은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주무실 수 있게 되서 좋다고 생각한다. 

​올해 나는 운이 좋아서 전세계 인구로 따지면 100명 중에 한 명꼴로 걸리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살아 있는다는 건 복권보다 확률이 높은 행운일 뿐이다. 그저 운이 좋아서 올해도 살아 남았다. 살았으니 살아야 한다. 무력해도 살아야 한다. 어쨋든 살아야 한다. 

​몇 가지 결심들로 올해를 넘어 내년으로 가본다. 일단 담배는 사 놓은 한 갑만 마저 피우기로 하자. 체중감량해서 약간은 건강해지도록 해야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력해지지 말아야지.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엔 내가 어제 술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 가끔은 있음 - 자꾸만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은 평소에 내가 무례하거나 무례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심해야지. 운이 좋아서 살고 있으니 겸손하게 살자. 이것도 새해 결심에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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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버지한테 다녀왔다.

아버지가 아픈 이후로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면 늘 기분이 안 좋다.

아버지랑 같이 있을 때 기분이 안 좋은 건 아니다.

어제는 혈압약 복용과 관련해서 간단한 피검사를 받았다. 아버지 담당의사를 처음 만났다. 전화상으로는 아버지가 깜빡거리는 건에 대해서 잠깐 얘기했었고 아스피린도 처방해 달라고 했었댔다. 의사는 치매 진단검사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혼자서 생활이 가능하니 나쁜 상태는 아니고 술을 끊었기 때문에 점차 좋아질수도 있으며 '글리아타민'이란 뇌 영양제는 본인도 처방해 줄 수 있으니 약 떨어졌을 때마다 신경과에 방문할 필요는 없다고 시원시원하게 얘기했다. 의사가 아버지에게 달력을 가리키며 오늘이 몇일이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잠깐 머뭇거렸지만 21일이라고 정확하게 답했다. 때려 맞춘걸 수도 있지만 - 병원 가기전에 오늘이 21일이라고 세 번 정도 얘기했다. - 대답 잘하셔서 좋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다녀와서 전날 저녁에 사온 소불고기를 데워서 아침밥을 먹었다. 18일이 아버지 생일이었다. 아버지 생일은 엄마가 꼭 챙겼고 보통 이모들이랑 모여서 밥을 먹었다. 올해는 코로나도 있고 부러진 엄마 팔이 붙지 않은 관계로 패스하기로 했다. 내년이 칠순이다. 내년에는 아버지 상태랑 상관없이 친척들 여럿이 모여서 밥을 먹겠지. 어쩌면 그게 아버지 생전에 마지막으로 여럿이 모인 즐거운 날일지도 모른다. 그날은 술을 한 잔 드셔도 괜찮지 않을까?

밥 먹은 그릇 씻고, 저녁 때 드실 곰탕 국물 끓여 놓고, 요일 약통에 약 세 알씩 잘 담아서 아버지 가방에 넣고 주무시는 거 보고 아버지 집을 나왔다.

아버지랑 병원에 있을때부터 내 담당이 아닌 일로 업무 전화가 자꾸 와서 짜증이 났다. 사무실 동료는 우리 아버지도 아닌데 내가 지것까지 챙겨줘야 되나, 생각하니 화가 더 올랐다.

청량리에서 강릉 오는 한 시간 반 동안 슬픈 노래를 들으면서 화를 삭였다. 집에 와서 보니 휴대전화 충전기가 안 보였다. 서울에 두고 온 줄 알고 바로 마트에 가서 새걸 샀다. 알고보니 서울갈 때 가져갔던 옷 아래 깔려 있았다. 내 부주의함에 또 화가 났다. 

요즘은 약 먹을 때가되면 아버지가 먼저 전화하기도 한다. 긍정적인 변화다. 저녁에 엎어져서 게임하고 있는데,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자신있는 목소리로 약 먹었다고 해서 확인해보니 아침에 드셔야 되는 약을 드셨다. 내가 먼저 전화해서 오늘 저녁은 약 드시지 마세요,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게 화가 났다.

- 아버지 저녁은 뭐 드셨어요?
- ..........
- 아버지 저녁은 뭐 드셨어요?
- 뭘 먹긴 뭘 먹어 그냥 먹었어.

곰탕 국물이 있길래 그거랑 먹었다고 하시면 되는데, 그 말씀을 못하시니 화가 나서 약간 언성이 높아졌다. 아내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나를 진정시켰다. 방금 뭘 먹었는지는 아는데, 그 단어가 기억 안나는 아버지가 나보다 더 답답하겠지. 그래도 자꾸 뭘 드셨는지 묻게 된다. 아버지는 출근한 날 점심에는 '제육볶음'을 자주 드시는 거 같고 저녁은 거의 '김밥'을 드시는데, 내가 먼저 얘기하지 않으면 그 말을 못 떠올린다. 잘 모르실걸 알면서도 계절도 날짜도 요일도 자꾸 묻게 된다. 

아버지 얼굴 보면서 얘기해보면 괜찮은거 같다가도 약은 언제 어떤 걸 먹어야 하는지, 방금 뭘 드셨는지, 오늘인 무슨 요일인지 모르는 아버지 목소리를 들으면 안 괜찮다는 걸 알게된다. 우리 아버지 아프구나. 아버지한테 언성 높인게 미안해서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러 나가서 바로 전화했다.

- 아버지, 약도 잘 드시고, 술도 잘 끊었고 지금 잘하고 있어요.
- 어, 그래. 칭찬을 받으니 좋다. 
- 예, 아버지. 푹 주무시고, 내일 출근 잘 하시고 아침 약 드실 때 또 전화할게요. 그리고 아버지, 약은 제가 약 드시라고 전화했을때만 드세요.
- 어, 그래. 알았어. 잘 지내.

​'잘 지내'란 말이 가슴을 때리고 또 하루가 갔다. '잘 지내'란 말은 평소에 자주 연락 안했던 나에게 내려진 벌이다. 자꾸 화가 나는 나에게 내려진 벌이다.

아버지가 아픈걸 알고 아버지 얘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기록을 남기는 자식이 있어서 다행인가, 생각한 적 있는데. 다행이란 말조차도 그저 내 만족이다. 기록이 내게 위로가 된다.

어제는 화가 났다. 그러지 말아야지. 아버지한텐 화내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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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로 쓰는 거 참 오랜만이다. - 찾아보니 일 년 만이다. -

 하루에 두 번 이상 아버지랑 통화하고 있다. 아침 저녁 약은 꼭 먹어야 하기 때문에 두 번이 기본이다. 중간중간 별일 없는지 전화하기도 한다. 일단 전화를 받아야 안심이 되는데, 전화를 안 받는 일은 거의 없다. 다행이다. 

 건강은 누구도 자신 못한다고 그렇게나 건강하던 아버지가 4번이랑 5번 디스크 사이가 터진 것도 모르고 그저 다리가 많이 저린 줄 아는 사람이 됐다. 허리수술은 잘 됐다. 다행이다.

 술을 안드신지는 세 달 이상 됐다. 스스로 어떤 결심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잘 하고 있다. 

 양천구치매안심센터에서 선별검사랑 진단검사를 했다. 선별 검사 결과지를 보고 아버지 머릿속에 어떤 부분들이 사라진 걸 알았다. 진단검사 결과는 의사랑 얘기해야 한다고 하는데, 코로나로 일이 밀려서 올해 안에는 의사가 판단하는 아버지 병세가 어떤지 알 수 없다. 최초에 선별검사를 마치고 급한 마음에 동네 병원 신경과에서 뇌 MRI를 찍었는데, 치매 전문이 아닌 뇌신경 전문 의사라 '치매'입니다, 라고 하지 않았다. 애초에 대학병원은 예약이 많이 밀려있긴 했지만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될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대형 종합병원으로 갈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다만 아버지의 현재 상태는 '치매'로 확정되건 안되건 '좋지 않음'이다. 어찌보면 괜찮고 어찌보면 괜찮지 않다. 나는 그만하길 다행이다, 생각하는 쪽이라 다행이다.

 긍정적인 부분 - 지하철 타고 여의도로 출퇴근, 혼자 밥 끓여 드심, 전화를 잘 받음, 갑자기 성격이 변하지 않았음, 계절을 헷갈리지는 않음(어제 처음 물었을 때는 가을이라고 했다.), 카드나 현금으로 상거래 가능, 집 비밀번호를 잊어버리진 않음, 사람 이름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음

 부정적인 부분 - 사람이름을 제외한 많은 명사가 머릿속에서 사라짐(진단 검사 받을 때, 밖에서 들어보니까 첫 음절을 불러주면 단어를 곧잘 기억해 냄), 날짜랑 요일 개념 상실(직장 다니는데 지장 없음), 1분 전에 나눴던 얘기 잊어버림(자꾸 말해주면 됨), 정상적인 은행업무 불가(서울 가서 은행계좌 한 번 더 정리해야 함), 약을 전혀 못 챙겨 먹음(전화해서 구체적으로 뭘 드시라 알려주면 됨), 샤워를 자주 안 하는 것 같음(전화해서 지금 씻으시라 하면 됨), 화장실에 들렀다가 욕실 슬리퍼 신고 나와서 집안을 배회함

 적으면서 보니까 부정적인 부분도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

 방금 저녁 약 드시라고 전화하려고 했는데, 먼저 전화가 왔다. 아버지한테 먼저 전화가 오는 건 긍정 요인이다. - 무슨일 있거나 뭐가 잘 안되면 무조건 나한테 전화하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음 - 요일 약통에서 아무 색깔이나 뽑아서 네 칸이 맞는지 확인하고 세 알짜리랑 한 알짜리 중에 한 알짜리 드시면 된다고 했다. 알았단 소리를 듣고도 마음이 안 놓여서 바로 드셔야 하니까 손에 알약 한 알을 올려 놓으라고 했더니 살짝 화난 말투로 "걱정 마라, 소리 안들려?" 하면서 플라스틱 약통에서 알약 흔들리는 소리를 들려줘서 안심했다.

 참으로 안심했다. 

 

 아버지는,

 동생이 결혼한 2015년부터 완전히 혼자 살기 시작했다. 경비 업무 특성상 매일밤 규칙적으로 잠을 자지 않았다. 아침에 퇴근해서 저녁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출근한 일이 많았다. 혼자서라도 자꾸 술을 마셨다. 같이 술 먹던 사람들 사이에서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직장에서 짤릴뻔했다. - 근무일지를 항상 다른 사람이 썼다고 하는데, 근본 이유는 술인 거 같다. - 그러다가 식구들이 아버지 증상을 알게 됐다. 평소에도 남의 말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아니었고, 어딘가 덜렁대는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알아채지 못하고 조금은 늦게 알게됐다.

 

 아버지는,

 많이 외로웠다.

 

 나는, 

 무심했다. 지난 10년 동안 아버지랑은 일년에 한 두 번 통화하고 명절이랑 제사 때 얼굴보는 게 다였는데, 요즘은 하루에 몇 번씩 통화를 한다. 병원 때문이긴 하지만 서울에 가서 얼굴도 자주 보는 편이다.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자기 삶을 살았을 뿐이다. 무관심이 후회되지는 않는다. 다만 아버지, 동생, 나 이렇게 셋이 소지섭이랑 임수정이 나왔던 '미안하다 사랑한다' 드라마 보던 생각이 난다. 아버지랑 동생은 드라마에서 감정을 고조시키는 장면이 나올때마다 '너무 감동적이야' 같은 말을 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우리 아버지는 스포츠 신문을 통해서 읽은 연예계 소식에 밝았고 젊은애들이나 좋아할 드라마를 참 좋아했다. 아버지는 그때도 많이 외로웠지만 그때까지는 아버지의 시대였다.

 

 "아버지,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분이랑 얘기할 때, 이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들으시고, TV 뉴스를 보더라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들으면서 보시고, 뭐가 잘 안되면 그게 뭐든 어떻게 하라고요?" " 어일우한테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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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꿈을 꾸었다.


신월동에서 목동 오목교쪽으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뭘 하러 가는지는 모르겠다. 오목교 사거리에 다 도착했을 때, 왼쪽 뒷타이어가 펑크나는 소리가 났고 자동차의 왼쪽 뒤가 푹 꺼졌다. 가까운 주차장을 찾아서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서 보험에 긴급 출동 전화를 하려고 했다. 분명 야외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내린곳은 아버지 방이었다. 아버지는 없고 내 자동차는 작은 방을 가득 채우고 서 있었다. 깊은 한숨을 쉬고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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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다. 하루만에 겨울이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은 때다. 가을이 그랬던것처럼 오늘 하루만에 겨울이 왔다. 가을과 겨울사이, 계절은 네 개지만 시간은 항상 두 개의 계절 사이에만 있다.

오늘도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버지 목소리를 못 들었다. 아버지 쉬는 날마다 한 두번씩 통화하면서 확인해 본 결과 일단 술은 끊으신 거 같다. - 이것도 알 수 없지만 - 그렇다고 아버지의 인지능력이 좋아지진 않는다. 몇년 몇월 몇일 무슨 요일을 잘 모른다. 그나마 엊그제 계절을 물어봤을 때, 한 번에 가을이라 하셔서 약간 안심했다. 약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다. - 동생에게 요일별 약통을 구입하라 했다. - 엄마는 오늘 오랜만에 서울에 가서 자동으로 꺼지는 가스렌지와 자동 잠금 밸브를 설치했고 고장난 전기장판을 새 것으로 바꿨다. - 아버지가 전기장판을 안 틀어봐서 고장난 걸 몰랐던 거면 좋겠지만 고장난 걸 잊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 상황을 처음 알았을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많이 당황스럽지는 않다. h누나가 돌봄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듯 말했는데, 나도 그런가보다 받아들였다. 부모가 아이를 돌보고 커버린 아이는 늙은 부모를 돌본다. 부모님과 근처에 산다면 핸드폰 가입부터 병원 다니는 일까지 이것저것 신경 써드릴 것이 많고, 다들 어느시점부터는 부모님을 돌보고 산다. - 엄마가 우리 동네에 살았다면 무심결에 속아서 잘못 가입한 인터넷 티비 결합상품 해지하느라 몇날며칠을 속상해하다가 아들에게 하소연하고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큰소리 낼 일은 없었을 거다. -

엄마한테는 당신이 아버지를 보살필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엄마도 전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둘이 같이 살고 싶진 않은 거 같다. - 같이 산 게 20년 떨어져 산 게 24년 이혼한지는 10년이다. -

아내가 아버지가 강릉에서 살고 우리 부부가 자주 들여다보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먼저 말했다. 앞에선 안 울었는데, 그 마음이 고마워서 다음날 혼자 울었다. 

걱정이 되서 얼른 아버지 이사 준비하고 싶은데, 엄마 마음은 그렇진 않다. 일단 지금 하는 경비일을 할 수 있을때까진 하는 걸로 하자고 한다. 환자건 보호자건 현실은 비용이 문제다. 엄마는 정신없는 아버지를 불러다 치매 보험을 들었다. 처음이는 화가 나서 당장 해약하라고 했지만 이달 19일에 확실히 치매로 판정 받은 후에 해약해도 늦지 않다.

아버지가 강릉으로 옮기려면 이것저것 처리할 일이 많을텐데, 지금 내 걱정은 하루만에 바뀌는 계절처럼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전화하나 보다. 

지금 아버지는 가을과 겨울 두 계절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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