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그때그때 | 622 ARTICLE FOUND

  1. 2025.01.14 20250114 - 강릉 10년
  2. 2025.01.06 20250106 - 심란(心亂)
  3. 2024.12.31 20241231 - 2024년
  4. 2024.12.27 20241227 - 이사, 생각
  5. 2024.12.23 20241223 - 부역자, 오만방자, 모리배
  6. 2024.12.14 20241214 - 탄핵 소추안 국회 통과 생각
  7. 2024.12.13 20241213 - 월세 계약, 생각
  8. 2024.12.07 20241207 - 서울 가는 중에 생각 1
  9. 2024.12.05 20241205 - 계엄 생각
  10. 2024.11.25 20241125 - 일기, 걱정에 관한
  11. 2024.11.17 20241117 - 꿈에서 아버지가
  12. 2024.11.11 20241111 - 집안 잔치와 인기 많은 아버지
  13. 2024.10.31 20241031 - 갑자기 아버지 생각
  14. 2024.10.26 20241026 - 나훈아 라스트 콘서트 보고나서 생각
  15. 2024.10.14 20241014 - 아버지랑 고모 생각
  16. 2024.10.10 20241010 - 일기 1
  17. 2024.09.24 20240924 - 생일, 숫자 2
  18. 2024.09.20 20240920 - 연휴 끝 생각
  19. 2024.09.09 20240909 - 벌초, 성묘, 주말생각
  20. 2024.09.02 20240902 - 9월 시작 생각
  21. 2024.08.26 20240826 - 잡생각
  22. 2024.08.21 20240821 - 자동차가 있는 세계로 발을 들인 아내 생각
  23. 2024.08.20 20240820 - 우울
  24. 2024.08.12 20240812 - 주말 생각
  25. 2024.08.05 20240805 - 외로워서 어쩌나 아버지 생각
  26. 2024.07.26 20240726 - 우울증 괜찮아 진건가? 생각
  27. 2024.07.10 20240710 - 연달아 터진 자동차 이슈에 대한 생각
  28. 2024.07.07 20240707 - 주말 일기, 엄마 생각
  29. 2024.06.29 20240629 - 어쩔 수 없고 잘하고 있는 것에 대한 생각
  30. 2024.06.24 20240624 - 괜찮은건가 생각 1

 며칠 있으면 강릉와서 10년 살게 된다. 권불십년이 아니라 강릉십년이다. 타 지역으로 이사 가야 되나? 3,650일, 인생의 오 분의 일 이상을 강릉에 와서 살았네. 아내가 알려주길 엊그제가 아내랑 나랑 같이 산지 4,000일 째였다고 한다. 생일 지나고 네 달 정도 되가니까 태어나서 16,900일 정도 살았다. 자고 일어난다는 건 그런 것이다.

 10년 동안 뭐 했는지 모르겠다. 요즘 들어서는 더 모르겠다. 이제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다. 한 때는 내 삶이 내 통제 안에 있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내가 바라보기는 하면서 그럭저럭 지나가는 줄 알던 때도 있었다. 그때는 뭣도 모르니 행복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그러하므로 그리그리 살아야지, 생각은 하는데. 머릿 속에 못 다 이룬 열망들이 가득차 있어서 말은 자꾸 엊나가고 그 엊나간 말들이 뒤통수에 쌓이고 답답함을 술로 식히고 술로 삭히다 죽을 것 같다. 

 지난 10년동안 제일 잘 한 일이 정규직 직장 얻은 일이라 생각하는데, 업무 때문에 내가 나에게 보낸 메일함을 열어보면 제목이 다 18이다. 내 메일함은 18의 연속이다. 세상에 이렇게 순응하며 늙어간다.

 

 뭐가 어떻게 되든 유순하게 살아야지 생각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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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 온 집에 바퀴벌레가 있다. 아기 바퀴벌레들이 내 방을 휘젓고 다닌다. 바퀴벌레 약을 사서 집안 구석구석 붙였다. 
 이사 온 집에 세탁기 호스 연결이 잘 안되서 화가 많이 났다. 우여곡절 끝에 아내가 <강릉 맥가이버>를 검색해서 해결했다. 앞으로는 처음에 잘 안되면 바로 사람을 부르도록 하자.
 이사 온 집 다용도실(세탁기 있는 곳)에서 냄새가 올라온다. 냄새가 올라올 구멍이 총 세 갠데, 두개는 막았다. 냄새가 계속 올라오는 걸 보니 세탁기 물 빠지는 구멍에서 냄새가 올라오는 거 같다. 어떻게든 막아야지, 생각하고 있다. 
 
 윤석열이 체포 영장 집행하는 게 CIA에서 멕시코 마약왕 붙잡는 것 보다 어려운 걸 전세계가 실시간으로 봤다.
 공화정의 의미를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은 사람들이 '동료시민' '자유민주주의' 를 되풀이하는 일에 지친다.
 이 나라는 이미 갈라치기 당했다. 나는 윤석열이 전두환처럼 되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의 지지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가 전두환처럼 되는 것이 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이사온 집에 10kg 짜리 나라미가 두 포 왔다. 기분 나빠서 그냥 문 앞에 두고 있다. 쌀은 잘못이 없지만 한 달 정도 내버려둬도 찾아가지 않으면 버릴까 싶다. 우리 집에 먼저 살던 노부부가 나라에서 쌀 받아 먹었던 모양이다. 이 선생님들은 전광훈 교회에 다니고 윤석열 탄핵 무효 집회에 나간다. 이사 나가면서 받은 월세보증금 삼 천 만 원 전광훈이한테 다 갖다 바쳤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헌법은 잘 모르지만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가 나의 민주주의와는 다르다는 건 확실하다.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가 내 자유를 억압하려고 했다는 것도 확실하다. 그래서 나는 싸워야한다.
 음력 정월이면 을사년이다. 10*12 = 120년 만에 을사년이 돌아왔다. 을사오적과 그 일당의 후손들은 지금도 떵떵거리면서 잘 살고 있다. 나라 팔아먹고도 잘 사는 놈들을 120년 동안 방치하는 게 말이 되나? 올해 뭔 일 있을까봐 불안하다. 점쟁이들이 윤석열이한테 음력 정월까지만 버티라고 했을 것만 같다. 
 김성수의 '아수라'를 보면서 성남시장 이재명을 떠올렸었다. 이재명에게는 그런 독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퇴색한 것 같다. 권력에 붙어서 죄 지은 놈들 싹 쓸어버릴 수 있는 다음 대통령을 원하지만 제도 정치란 사람을 타협하게 만들고 유순하게 만든다.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법대로 하려고 하는 게 법치주의인가? 올해 '묻지마 사건'이 많이 발생할 것 같은 안 좋은 예감이 든다. 당장 나부터도 법을 뭐하러 지키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윤석열은 무법의 법치주의 수괴가 되려고 했나.
 
 음력 12월 2일이 할아버지 제사다. 엄마가 올 것 없다고 해서 가지 않았다. JJ작은 아버지가 독감에 걸린채로 제사에 참석했다가 엄마한테 독감을 옮겨놓고 갔다. 장남이 치매로 요양원에 있어도 형과 이혼한 형수집에서 아버지 제사를 지내는 고집,을 생각한다. 그 고집을 받아주는 엄마를 생각한다. 난 제사 안 지낼거다.
 아버지는 날 만나면 '니가 최고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점점 '니'가 누군지 모르면서 그 말을 하고 있다. 나를 못알아보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게 맞나? 생각하면서, 지난 주말에 아버지 만나러 가지 않았다. 스스로 못난놈이 된 것 같다.  
 
 인생살이가 바퀴벌레 약이나 맥가이버, 배수구 냄새 막이처럼 수월하지 않은 걸 안다. 그런데도 상실감과 무력감, 땀구멍을 파고 들어 세포 가장 깊숙한 곳까지 배어있는 우울감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부끄러움은 누구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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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31 - 2024년

그때그때 2024. 12. 31. 19:31

계엄. 부역자. 친일파 후손. 오만방자. C8. 인과응보

이사함. 산림기사가 됨. 계속 우울함. 더 우울함.

일리걸 알츠하이머. 이문(interest). 우울함.

웹툰, 웹소설, 게임, 우울함  계속 우울함.

우울함.

올해의 노래 - 슈퍼내츄럴(뉴진스)
올해의 영화 - 만다라(임권택)
올해의 책 - 이처럼 사소한 것들(클레어 키컨)
올해의 마지막사진 -강릉 남대천 가죽나무

새 희망은 0.1도 없이 올해가 갔다.

가는 해가 아무렇지도 않은 나이.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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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이사했다.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돈 잘 주고 받았으니 됐다. 강릉 이사와서 처음 살았던 집주인이 우리 이사 나갈 때 전세 보증금 2700만원 중에 50만원 빼고 줬던 지랄같던 악몽이 아직도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소송에서 두 번이나 이기고도 결국 그 돈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집주인들이 국힘이랑 윤석열 찍어주는 사람들이다. 어제 이사온 집에 먼저 살던 사람들도 본인들 월세 보증금 받기 전까지는 출발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이사짐 다 싸놓고서도 현관 비번도 안 알려줬다. 그 사람들은 전광훈 새끼 교회에 다니고 서울로 집회 다닌다. 쓰다보니 울화가 치미네.

 2015년에 강릉 내려와서 홍제동 -> 홍제동 -> 옥천동 -> 홍제동. 다시 홍제동이다. 홍제동이랑 인연이 있나? 5년 10개월만에 기름 보일러로 돌아왔다. 기름 채우고 세제랑 고무장갑 받았다. 기름보일러에 기름 채우면 고무장갑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전통이다.

 입주청소를 못하고 들어왔기에 너무 찝찝했다. 짐을 대충만 풀고 오늘 입주청소를 불렀다. 아침에 청소하시는 분들 얼굴 보고 출근했다. 어떤 결벽증인지는 모르지만 청소 전에는 똥도 싸고 싶지 않고 씻고 싶지도 않다. 똥은 어쩔 수 없지 쌌는데, 출근해서 샤워했다.

 2012년에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TV가 생겼다. 큰 화면으로 유튜브 보려고 샀는데, 잘 샀다. 인터넷이랑 TV를 내 방에 설치했는데, 방이 커서 43인치가 아니라 55인치 샀어도 좋았을 걸 생각했다. 지난 일은 잊자.

 아내가 짜장면 먹어야 한다고 해서 짜장면 먹으러 갔는데, 내가 짬뽕 먹는다고 하니까 아내도 짬뽕을 먹었다. 이러면 나가린데, 생각했지만 맛있게 먹었다. 저녁에도 외식(닭갈비)했다. 

 이사비용, 청소비용, 계약기간보다 두 달 먼저 이사가는 바람에 월세 두 달치 더 내는 것 등 돈을 생각하면 손해가 막심하다. 이쪽 집주인, 저쪽 집주인 이쪽 세입자, 부동산, 이사업체, 청소업체랑 연락하면서 받는 심적 스트레스도 심하다. 

 다음엔 집을 사기로 하자. 아내가 아파트를 싫어하지만 자꾸 얘기해서 내가 봐둔 아파트로 가자. 

 나라는 계속 개꼴이고 - 얼마전 단골 찻집에서 J누나를 우연히 만났기에 모든 것이 정리되면 한 번 찾아뵙겠다고 했더니, 누나가 그런건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래도 계엄 부역자놈들 깔끔하게 감옥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라가 망해가도 이사는 가야하니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집주인 건물주인 세상이다.

 이사 =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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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에 아버지 면회 다녀왔다. 아버지는 휴대전화 화면에 비친 동생을 잘 못알아봤고 나도 아들이라기 보다는 본인을 찾아온 어떤 사람으로 인식한 것 같다. 최근 아버지의 인지능력을 보면 괄목상대, 점입가경이란 말이 떠오른다. 아버지를 잘 챙겨주는 남자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아버지가 화내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 때문에 여자 선생님들이 조금 힘들어 한단 얘기를 해줬다. 소식지를 통해서 - 화를 내심, 이 자주 보인다 - 알고는 있었지만 얘기를 직접 전해들으니 좀 더 기분이 싸하다. 뭔가 본인 뜻대로 안될 때 화를 내는 것인데, 말로만 화를 내는게 아니라 폭력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 직전에 그랬고 현재 아버지가 그렇다. 나도 그럴까? 아마 그럴 것 같다. 안 그러려고 노력해야지. 나는 아버지랑은 달리 평소에도 화를 많이 내는 편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모르겠다.
 
 12월 3일로부터 20일이 지났다. 그날 이후로 자다가 몇 번씩 깬다. 안 깨고 잔 날이 딱 하룬데, 술을 왕창 마셨던 날이다. 화가 난다. 화가 난다. 미친 대통령을 아직 집 밖으로 끌어내지 못했다. 법의 테두리와 절차 때문이겠지만 답답하다. 국힘 국회의원들은 얼마나 뒤가 구리길래 대놓고 부역자 노릇을 하는가? 권성동이는 - 나 강릉 산다 - 왜 이리 오만방자한가? 모리배들이 너무 많다. 성조기 들고 다니면서 탄핵 반대 집회하는 전광훈이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보기엔 나도 나라 팔아 먹는 놈인가? 머릿속이 어지럽다. 지금이야 말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데서 시작한 모리배들의 나라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법대로만 해도 다 때려잡을 수 있을텐데, 진행이 원활하지는 않네.
 
 대통령 대리가 양곡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서울지방 경찰청장 대리가 트랙터 끌고 올라오는 농민들을 남태령에서 막으라고 명령했다. 대통령실 경호처에서는 해군 소령을 상대로 별 개지랄을 다 했다. 내가 보기엔 이들이 다 부역자고 모리배다. 위에서 시킨다고 시키는대로 하는 사람이 부역자다. 윤석열이는 전두환처럼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참수형에 처하고 싶다. 유나이티드 헬스케어 CEO가 괜히 피살 당한게 아니다. 남의 나라 일이어서가 아니라 범인이 붙잡힌 게 안타깝다. 이런 경우가 인간의 분노가 끝까지 간 경우다. 마음이 계속 어둡다. 안쪽에 어둠이 자꾸 쌓인다. 암에 걸릴 것 같다는 게 이런거구나 생각한다. 지금 정도 상황에도 마음이 이리 흑빛인데, 독립투사 선생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리로 나가는 것이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거리로 나가야겠다. 의인 한 명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세상을 바꾸자고 거리에 모인 사람들이 다 의인이다.

 부역자의 후손들이 오만방자한 모리배가 되었구나. 뼛속까지 갈아 죽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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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갔다가 강릉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오늘로 대한민국은 21세기에만 세 번째, 대통령을 탄핵 심판으로 보낸 나라가 됐다. 이제부터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시민들 눈치를 더 많이 보게 될거다. 오만방자한 대통령을 뽑은 것도 민주주의고 끌어내리고자 탄핵하는 것도 민주주의다.

이제 한 고비 넘었다. 계엄 부역자들 끝까지 색출해서 이번에는 과거처럼 봐주지 말고 제대로 처벌하면 좋겠다.

여의도에 일찍 도착했기에 국회의사당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국회의장이 '가 이 백 네 표'라고 했던 순간을 오랫동안 못 잊을 거 같다. 탄핵 소추안 국회 통과되고 나서 느껴지는 희망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2002 월드컵 4강 때 그러했을까? - 월드컵 때 거리응원을 안 가 봄 - 사람들이 큰 일 있으면 모여서 소리치게 된 것에 2002 월드컵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오늘, 역사에 남을 한 순간에 내가 현장에 있었다는 게 조금은 뿌듯하다. 오늘은 그래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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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부동산에 가서 월세 계약하고 왔다. 평생 처음으로 월세 살아본다. 아내가 일을 한다면 한 달 50만원이 큰 부담은 아니지만 아내가 일을 못 구하는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암튼 26일에 지금 사는 집보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간다. 신나지도 서운하지도 않다. 이사에 대한 귀찮음만이 있네. 내 집이 없이 셋방을 전전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부동산, 이사업체, 지금 사는 집주인과 수 차례 통화가 오고가는 일이 번거롭고 짜증났지만 무던한 말투로 잘 해냈다.

 지금 사는 집 계약이 내년 3월 초에 끝난다. 올해 집주인이 바뀌었고, 두 달 전쯤인가 올해 연말에 전세 보증금 내어 줄 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 전세 보증금 못 돌려받을까 두려운 마음도 있고 주인이 새 집을 빨리 꾸미고 싶구나, 싶은 생각에 알겠다고 했다. 꼬장꼬장한 사람이었으면 이사비라도 좀 보태줘야 연말에 나가줄 수 있다고 했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올해 11월 부터 내년 2월까지 강릉에 신규 아파트 입주가 꽉 실려 있기 때문에 아파트 시장이 대충 정리가 된 2월말이나 3월초에 이사가는 게 나에게는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이다.

 이사갈 집은 6세대가 사는 건물인데, 주인은 인천 송도에서 공인중개사를 하는 사람이다. 우리 이사갈 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방을 빼고 싶다고 한 것 같고 월세 보증금 내 줄 돈이 없어서 - 무슨 건물주가 이래 -  빨리 이사올 사람 찾던 중에 나랑 아다리가 맞았다. 집이 비어있어야 입주청소를 할 수 있기에 지금 주인에게 26일 전에 보증금 일부만 먼저 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 내가 돈을 줘야 이사갈 집에 사는 사람이 나갈 수 있는 상황임 - 본인 부모님에게 물어보고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답이 왔다. 집 주인의 부모님은 우리 동네에서 금은방을 하는데, 옛날 사람들이니까 그럴 수 있다. 고 생각하고 임대차계약이란 게 그렇게 돈이 오고가는 게 맞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야박하다는 마음이 드니 일찍 나가는 대신 이사비라도 달라고 할 걸 그랬나 싶다. 하지만 지나간 일이다. 내가 손해보는 것 같아도 미지의 상대방과 서로 마음 상하는 일 없이 내 마음이 편한 게 중요하다.

 

 나는 이문에 밝은 편이지만 이문을 추구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를 몇몇 사람들에게 했는데, 얘기 들은 사람들이 다 웃었다. 이사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나는 정말 이문에 밝은가? 갑자기 생각해 본다.

 

 아버지가 평생 착하다는 소리만 들으면서 살았던 게 이문에 어둡고 본인이 손해를 보고도 '허허' 웃고 넘기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어제 요양원에서 요양보호 급여 기록지가 왔다. 우편물을 읽다보면 아버지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단편적으로 알 수 있다. 이달에 특이한 점은 나랑 아내가 아버지 면회 가서 너무 오래 있으니 아버지를 부러워하는 어르신이 있어서 면회는 가급적 요양원 내부가 아니라 면회실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는 똥 누고 뒷처리를 못하는 사람이 됐다. 완벽하게. 본인 똥 뒷처리를 스스로 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고 응당 그래야 한다고 믿지만 피치못할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아버지처럼 치매가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보살핌을 통해 그걸 해결해야 한다. 아버지의 상태를 덤덤하게 받아들이지만 슬픈 건 사실이다. 

 아버지는 평생 손해만 보면서 살다가 나이 72에는 본인이 싼 똥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윤석열이는 똥보다 더 한 걸 싸 놓고 본인이 스스로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어제 본인 잘못한 것 없다는 담화문을 읽었다. 윤석열이 추종자를 포함해서 전국민이 이 새끼가 저지른 일의 뒷처리를 하게 됐다. 우리 아버지는 미안하다 고맙단 말을 할 줄 아는 치매 노인이  됐지만 윤석열이는 그냥 먹고 쌀 줄만 아는 악인이다. 전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이다.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사람 욕을 써내려도 화가 풀리진 않네. 집회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화가나면 소리라도 질러야 한다. 더 크게 질러야 한다. 그러다가 더 화가나면 불을 지르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 시국이 불 지르는 일 없이 잘 넘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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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동생이랑 아버지랑 셋이 순댓국 먹었다. 신월동 살 때 가끔 셋이 곰달래길이나 남부순환도로 주변에 뼈해장국 같은 거 먹으러 다녔었다. 셋이서만 밥 먹은 거 진짜 오랜만이다. 4일이 아버지 생일이었고 그걸 아는 동생이 강릉에 일이 없는데도 일부러 시간내서 찾아왔다. 아버지는 좋다는 얘기를 연발했다. 동생에게 '아빠' 소리 듣는 것이 좋았었으리라. 동생도 인지 능력이 떨어질만큼 떨어진 아버지 상태를 잘 알기에 '아빠가 기분 좋으니까 좋네' 라고 했다. 난 그거면 됐다.

 아버지는 본인 아이 얼굴도 한 번에 못 알아보는 72세가 됐다. 나는 가까운 거리에서 아버지를 걱정하는 46세 아들이고 동생은 멀리서 아버지를 생각하는 44세 아들이다. 나이로 적으니까 세월이 야속하단 생각이 드네. - 떠난 당신이 무정하단 생각도 - 하춘화 노래였나? 야속과 무정은 비슷한 뜻이다.

 탄핵 집회하러 서울 가는 중이다. 기차표가 없어서 입석으로 올라간다. 이번 계엄 사건 때문에 정말 울화가 울화로 치민다. 박근혜는 양반이었네. 소리를 자르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윤석열이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되면 울적함이 좀 가실까?

 강릉으로 오는 사람 강릉을 떠나는 사람, 역무원, 던킨 도너츠 알바, 역 근처 흡연실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 커피 사 먹는 사람. 이 시국에도 세상은 굴러간다. 계엄이 통과됐어도 세상은 굴러 갔을 거다. 다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제 살 길은 제가 찾아야 하니까. 인간은 먹고 싸고 자는 동물이니까.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다.

 얼마전부터 유튜브로 성경을 듣는다. 잠이 잘 와서 듣는다. 구약의 앞부분을 반복해서 듣다가 생각한 게 있다. 하나님은 한 놈 찍어서 잘해줘야지 생각하면 같은 잘못 반복해도 끝까지 잘해준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라 반복해서 속이는 게 대표적이다. 하나님은 한 놈 찍어서 용서하는 습성이 있지만 진짜 윤석열은 용서하면 안된다. 하나님이 진짜 있다면 세상에 인과응보가 있다면 이래서 내가 교회를 안간다, 에 추가 이유를 만들어 주면 안된다. 암튼 난 교회에 안간다.

 대통령 탄핵 집회에 가기 위해서 ktx타고 서울에 가는 자유, 5호 열차와 6호 열차 사이 간이석에 앉아서 윤석열이랑 연루자들 때려 죽이고 싶다는 글을 쓸 수 있는 게 윤석열이가 떠드는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아니라 진짜 자유다. 이 자유를 위해 흘린 피눈물을 생각한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춥고 배고팠을 독립투사 선생님들을 생각한다.

 잡스럽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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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제일 열받는 점 - 뭔가 말할 때마다 거들먹 거리면서 자유민주주의를 끼워 넣음(들먹거림). 근데 이 양반의 자유민주주의는 이승만 박정희 때 자유민주주의임. 본인과 주변 사람들만 그걸 모름.

이 새끼 본인 불리하니까 또 숨어버리고 진짜 울화통 터지네.

서울에 아파트 있는 친구들 중에 지난 대선에 윤석열 찍은 애들이 있는데, 생각해보면 그 놈들도 열받음. 

예전에 어떤 누나가 자기 딸 욕하면서 '이년아 어떤 시어머니가 너 같은 며느리 만나서 마음이 쑥밭이 되겠냐'고 했는데, 지금 내 마음이 쑥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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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금요일에 건강검진 받았다. 수면 위내시경 처음 해봤다. 내시경 방에 있는 선생님들이 수면은 준비할 게 많아서 귀찮다고 하길래 다음부턴 다시 쌩으로 하겠다고 받아쳤더니, 그래 달라고 하면서 웃었다. 약물에 의해서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고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경험을 처음 해봤다. 첫경험은 늘 새롭지, 라는 진부한 문장을 남겨두고 싶다. 약에서 깨어나서 의식이 돌아온 후에, 약물로 사람 하나 조용히 보내는 건 일도 아니겠구나 생각했다.

 건강검진 마치고 서울가서 친구들 만났다. 26년전 처음 알았던 사람들이 모여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이런저런 얘기들을 쏟아내는 자리, 후련해지기도 하고 찝찝해지기도 하는 그런 자리였다. 얼마전에 아내가 남들 걱정하지 말고 자기 걱정해달라고 했는데, 실상은 친구 daniel이 늘 걱정이다. 회사 그만 두는 게 큰 의미가 없어서 회사 그만두지 않은 것처럼 내가 남들 걱정하는 일로 그들이 크게 달라질 게 있겠나.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걱정이다. s 선배도 걱정이고 친구 s도 걱정이다. 생각해보니까 내 걱정의 주된 요인은 돈 문제와 관련이네. - 동네에 새로 개업한 가게를 걱정한다거나 하는 일 - 나의 21세기에는 돈과 사랑만 남았네. 이제부터 이사갈 집 알아봐야 하는데, 나도 걱정이다.

 

 토요일 밤에 꿈을 꿨다. 명절 앞두고 엄마에게 가는 길이다. 신월동에서 출발해서 혼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개봉동 정도에 있는 우체국에 돈 찾으려고 들렀다. 엄마가 은행문 열었을 때, 창구에 가서 돈 찾으라고 했는데, ATM으로 찾으면 된다고 대답했다. 우체국 ATM이 내 돈을 두 번 먹었다. 액수는 10만원 정도다. 마음이 급해졌다. 경비 서는 사람이 두 명 있길래 사정을 말했더니 담당자가 지금 자리에 없다면서 담당자 집으로 찾아가보라면서 집을 알려줬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화를 내면서 ATM 주변에서 고장신고 전화번호를 찾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당황한 채 잠에서 깼다. 별거 아닌 꿈이다. 돈도 없는데,  왜 돈 꿈을 꿨을까? 생각했다. 이사 스트레스 때문인가?

 

 어제는 아내랑 같이 아버지 면회 다녀왔다. 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하면 아내가 꺄르르 웃는 일의 반복이다. 아내가 웃는 걸 보는 게 좋다. 아내에게 왜 아버지 면회 자꾸 같이 가냐고 물으면 아버지 귀여워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게 맞는 건가 싶지만 아내가 웃으니 좋고 웃는 며느리를 보고 아버지도 기분 좋으니까 좋다. 어제 아버지는 두 번 정도 나를 본인 동생과 헷갈렸는데, 그 동생이 어느 동생인지  모르겠다.

 

 아버지 면회 마치고 아내 차로 잠깐 드라이브를 했는데, 아직 운전이 서툰 아내가 내게 이것저것 물어올 때,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있었다. 아버지 면회를 막 마친데다가 아내 운전이 서투니까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거긴 한데, 싸움이 안 난게 다행이다. 아내에게 화가 나서 큰 소리를 낸다기 보다는 내 안의 화를 표출하는 방법이다. 아내도 그걸 알기 때문에 가끔 본인에게 큰 목소리로 말하지 말라고 얘기해준다. 아내 말을 듣고 아내에게 큰소리 내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일로 마음이 많이 진정되기도 한다. 날 걱정해주는 아내가 늘 고맙다. 근데 나는 친구들은 걱정되는데, 남들 걱정말고 본인 걱정하라는 아내는 별로 걱정이 안되네. 걱정하지 않는 사랑인가? 걱정하지 않는 것도 사랑인가? 사랑이다. 걱정하면 돈이고 걱정하지 않으면 사랑이다. 그게 나의 21세기 자본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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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아버지 면회 다녀왔다. 아버지는 지난 주말에 고모랑 찍은 사진을 보더니, 누나라면서 고모를 알아봤다. 그런데 사진 속 고모 옆에 본인이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동생이랑 영상통화 했을 때, 동생의 첫 마디가 '이제 나도 못 알아봐?' 였다. 요양원에서 한 달에 한 번 우편물이 오는데 그 안에 기록지가 있다. 매달 그래왔듯이 이번달 기록지에도 아버지 인지능력이 급격하게 안 좋아진다는 내용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쉽게 다 잊을수가 있나? '어떻게' 가 참 슬픈말이구나. 요양원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평소엔 이런 생각 안 하는데, 어제는 생각했다. 아이고, 아버지 

 

 새벽에 꿈을 꿨다.

 - 요양원에 면회 가서 아버지를 엄마랑 나랑 JJ 삼촌이 있는 집으로 데려왔다. 같이 시간 보내다가 요양원에 도로 데려다 주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멀쩡해져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요양원에 돌아가기로 했다. 밤에 자다가 아버지가 사라진 걸 알았다. 다급하게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가 베란다 쪽으로 나가는 미닫이 문을 열었을 때, 유리로 만든 네모난 상자에 발가벗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아버지를 차에 태워서 요양원으로 돌아가로 했다. 내가 운전하고 엄마가 옆에 앉고 아버지가 뒷자리에 앉았다. 요양원까지 가는 길이 유난히 길었다. 운전 중에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아버지가 사라졌다.

 -> 꿈에 동생이랑 내 아내는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랑 같이 있던 집은 우리가 살아본 적이 없는 오래된 한옥을 개량한 형태의 주택이었다. 아버지는 첫 등장부터 '신의 산'이라는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 책에 대한 대화를 아버지랑 했는데, 뭐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인상적인 꿈을 꾸면 내용 해석을 좀 해보려고 하는 편인데, 이 꿈은 해석이 잘 안되네. 벌거벗은 아버지는 이번달 우편물에 옷을 벗고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가 들고 있던 책은 어째서 제목까지 구체적으로 등장했는지 조금의 실마리도 없다.

 

 심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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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토요일에 강릉 고모(작은 고모) 아이 결혼식이 강릉에서 있었다. 형 때문에 담배 배웠으니 책임지라고 나한테 장난치던 그 아이가 올해 서른 아홉이다.

 구미 고모(큰 고모)는 3주전부터 아버지 면회를 기대하고 있었고, 동생은 아버지한테 아이들 보여주려고 벼르고 있었다. 엄마는 둘째 이모랑 함께 강릉에 오게 됐다. 아버지는 만나면 항상 애들(동생 아이들) 얘기를 한다. 둘째 이모는 나에겐 엄마나 마찬가지이고,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오래 못 살 수도 있다. 또 이모는 아버지가 요양원으로 옮기기 전까지 한 동네에서만 45년 이상을 같이 살았기에 아버지에게는 처형 이전에 절친이다. 큰 고모는 아버지의 누나고 아버지 동생들부터는 엄마가 다르다. 고모가 서울에 올라와서 살 때, 둘째 이모랑 이웃에 살았고 아버지는 누나집에 엄마는 언니집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하는 바람에 지금의 내가 있다.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내 임무는 요양원과 연락해서 면회 시간 등을 조율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 얼굴을 보게 하는 일이었는데, 시작부터 잘 안됐다. 요양원 근무하시는 사회 복지사 선생님과 금요일부터 통화를 했는데, 이 선생님이 1층 면회실이 아니라 4층 생활실에서 3명씩 짝을 지어서 2타임, 한 타임당 10분씩만 면회를 하는 게 좋겠다고 단호하게 말하기에 알았다고 했다. 요양원은 입소자 때문에 운영이 되지만 입소자의 보호자와 요양원 사이의 관계에서는 보호자가 을이 되는 현실을 잠깐 생각했다.

 암튼 엄마, 이모, JJ삼촌이 먼저 도착해서 4층에서 면회를 추진하려고 했는데, 마침 4층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해서 구급차가 오고 1층 사무실도 소란스러웠다. 해서 1층 면회실에서 면회를 하게 됐다. 응급상황이 럭키가 되는 아이러니. 이모는 아버지를 만나자 마자 눈물이 터지고 이모 딸아이는 엄마 심장 터진다고 울지 말라고 하고 아버지는 처형을 알아봤고 처형이 우니까 따라 울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엄마랑 이모한테 '내가 미안해요'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모가 또 울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우연히 그 모습을 보고 '어르신이 예민하니까 울면 안돼요'라고 했다. 그 후에 이모는 구석에서 혼자 울었다. 아버지는 면회 시간이 30분 정도 지나면 슬슬 지겨워 하면서 이제 그만 가라고 할 때가 많은데, 그날은 계속 뭔가를 얘기했다. 그때 마침 고모가 요양원에 도착했고 요양원 원장 선생님이 '아버님이 인기가 많네'라고 하시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 다 만나라고 했다.

 우는 문제에 있어서 고모가 가장 위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모는 울지 않았다. 아버지는 고모가 마스크를 벗자마자 '누나'라고 불렀다. 핏줄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고모는 요양원에서 아버지 괴롭힐까봐 걱정하는 타입인데, 아버지의 평온한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누나 입장에서는 동생이 자주 보고 싶겠지만 구미에서 강릉은 너무 멀다. 암튼 고모가 아버지 보고 안심한 일로 내가 안심이 된다.

 이 면회의 아수라 장에서 동생은 결국 그날 면회를 포기했다. 다음에 큰 아이 데리고 따로 온다고 한다. 동생이 와서 아이들까지 보여주는 진행이 됐으면, 너무 소란스러웠을 것 같다. 땡큐 브로. 

 외가집 친척들 다 같이 모여서 놀던 시절에(주로 우리집에서 많이 만남) 이모들이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늘 하던 얘기가 '일우 아바이는 너무 착해서 탈이다' 인데, 너무 착한 덕분에 본인 인생에 모질지 못했던 아버지가 그 덕분에 아직까지는 착한 치매라서 너무 다행이다. 아버지, 지금처럼만 쭉 가보자구요.

 

 잔치는 즐거웠나? 나는 신랑측 축의금 받고 돈 셌다. 동생네 애들하고 얘기를 제대로 못 나눈게 아쉽네. 엄마랑도 많은 얘기는 못 나눴다. 그래도 엄마는 엄마니까. 작은 고모가 아들 결혼식은 처음이라 - 큰 아이는 딸인데 몇 년 전에 결혼함 - 많이 긴장했길래 좀 웃겨드렸다. 작은 고모는 우리 집안에 어떻게 이런 애가 있냐면서 평상시에도 나를 듬직하게 생각하고 내 유머를 좋아하신다. 밥먹으면서 5촌 고모들을 비롯해서 집안 어른들이랑 이런 저런 얘기 나눈 게 기억에 남는다. 고모님 한 분 큰어머니 한 분과는 기념셀카를 찍었다. 이 두 어른은 몇 년 전에 집안 어른 장례식 끝나고 무덤가에 나란히 앉아 계시길래 내가 사진 한 컷 직어뒀다. 그 컷이 구글포토에 남아 있을 것이다. 밥 다 먹고 예식비랑 식대 계산하고 어르신 두 분 내 차에 모시고 예식장을 떠났다. 그 어르신들 중에 한 분은 나랑 셀카 찍은 큰어머니고 한 분은 누군지 몰랐는데, 올해 97세 이신 큰 고모란 걸 나중에 알았다. 97세면 27년생 정도 되는건가? 밥 먹을 때 고모님이 내 농담에 '아가 재미있다'고 맞장구 쳐주실 때는 고모 나이가 70대 중반 정도일거라 생각했다. 건강이 이렇게 중요하다. 97세 시누이랑 70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 보내고 있는 큰어머니를 생각해본다.

 고모를 집앞에 내려드리고 기쁜일이 될지 슬플일이 될지 모르지만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인사드렸다.

 살아 있다면 다음에 또 만날 수 있는 거구나, 깊게 생각했다. 아버지도 엄마도 다들...... 살아 있다면..... 그날은 이 정도 까지만 생각했는데, 이 글을 마치려는 지금

 오랜만에 죽음을 생각한다.

 몇 년 전 컷을 굳이 찾아서 올린다. 왼쪽이 큰 어머니, 오른쪽이 서해(왜 이렇게 불리는지 모름) 고모다. 큰 어머니는 기본 심성이 너무 고우신 분이고 고모는 10여년 전에 내가 농사 짓는다고 강릉 내려와서 작은집에 얹혀 살 때, 객지에 와서 얼마냐 고생이 많겠냐면서 나한테 만원짜리 한 장 용돈으로 주신 멋진 분이다. 몇 년 전 강릉 산불 때 두 분의 집이 모두 탔다. 큰 어머니는 아파트로 이사했고 고모는 집을 새로 지었다.(고모네 집은 터 좋음) 일제치하에 태어나 어려서 전쟁을 치르고 늙어서는 산불에 집이 탔다. 살면서 몸의 주름 갯수 보다 많은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겠지. 헤아릴 수 없지만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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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시점에서 인생에 큰 문제가 없어서 그런지 아버지 요양원이 집이랑 가까워서 그런지 수시로 아버지 생각을 한다. 아버지 생각을 길게 하면 눈물이 나기 때문에 짧게만 한다. 이게 좀 웃기는게 나는 아버지 생각을 자주 할 만큼 아버지랑 친하거나 아버지에게는 엄마에게 느끼는 것과 같은 깊은 정이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렇다.
 
 지난 일요일에는 오랜만에 요양원 사무실 옆 별도 공간이 아니라 4층 생활관에 올라가서 아버지를 만났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문을 열었을때, 아버지는 정면에 보이는 소파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눈을 반짝 뜨며 반가워 했다. 아내가 내가 많이 힘들다고 한 얘기를 듣고 아버지는 횡설수설 했지만 나를 걱정하는 말을 했다. 고마워서 잠깐 울뻔했다.
 어렸을 때, 술 드시고 집에 온 아버지가 나랑 동생이 누워 있는 방에 들어와서 용천혈이라면서 발바닥 가운데를 눌러주던 일이 요즘들어 자꾸 생각난다. 그게 아버지의 애정표현이었다.
 
 아버지는 동생이랑 영상 통화할 때, 내 전화기에 비친 본인 모습을 신기하게 보면서 이게 지금이냐고 묻기도 하다가 동생이 전화 받으면 동생 얼굴보고 놀라면서 <어, 너구나. 잘 지내지?>라고 한다. 아버지는 내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동생 이름을 먼저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동생은 먼저 아버지를 직접 보고 갔기 때문에 아버지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받아들이게 됐다. 못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받아들이는 게 낫지만 점점 더 본인을 잊어가는 아버지를 체념한듯 받아들이는 상황이 슬프다. 그 와중에 나는 아버지가 가장 늦게 잊어버리는 이름이 내 이름이길...... 하는 이상한 욕심이 들기도 한다.
 
 아버지 요양원 가기전에 아버지 자주 봐서 참 다행이다. 거의 매주 서울에 가는 게 정말 힘들긴 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된 대화랄 것도 없었지만 아버지랑 말을 주고 받을 수는 있었던 그때가 참 좋았다.
 
 10월이 다 갔다. 내 시간도 아버지의 시간도 공평하게 흘러간다. 아버지, 내일 모레 또 만나자구요.
 

동생이 전화 받기 전에 본인 얼굴 보면서 신기해 하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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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해도 나훈아 뒤로 해도 나훈아 공연을 다녀왔다.
 
 치매 걸린 아버지가 지금도 프로그램 시간에 부르는 노래가 나훈아의 '가지마오'다. '가지마오'는 나한테는 '찻집의 고독'이랑 한 세트인 곡인데, 어렸을 때는 노래방에서 두 곡 다 자주 불렀다. 오늘 공연에선 이 곡을 안 불렀다.
 
 어렸을 때부터 나훈아를 좋아했다. 이모랑 외삼촌들이 다 노래를 잘하는데 나훈아를 좋아했다. - 철이 삼촌이 '청춘을 돌려다오'를 특별히 좋아했던 게 기억난다. - 아버지가 강원도고 엄마가 경북이라 그런지 우리집 어른들은 나훈아랑 남진을 비교하기 보다는 - 경상도 사람들에게 남진은 나훈아랑 비교 대상이 아님 - 화투 치면서 나훈아랑 조용필 중에 누가 더 노래를 잘하는지 얘기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집안의 영향으로 나는 조용필도 좋아하고 나훈아도 좋아한다.
 
 나훈아 공연히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말 좋았다. '고향역'이 첫 곡일거라 생각햇는데, 오프닝에 "코스모스~~" 하는 순간 살짝 울컥했다. '사랑'에서 '영영'으로 바로 이어 부른것도 좋았다. - 나한테는 이 두 곡이 한 세트다 - 공연에서 제일 좋았던 건 이진관의 '인생은 미완성' 이미자의 '울어라 열풍아' 배호의 '누가 울어' 본인의 '무시로'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부른 세션이었다. 특히 '누가 울어'가 정말 좋았다. 50년 이상 프로 가수로 살면 평범한 기타 코드를 쳐도 간지가 줄줄 흐르는구나 생각했고 브라이언 맥나잇이 가끔 어쿠스틱 기타 치면서 본인 노래 업로드 하는 것도 생각났다. 
 
 '공' 이라는 노래 중간에 멘트를 굉장히 많이 했다. 난 좀 지루했는데, 관람객들이 대체로 나훈아의 말솜씨를 좋아했다. '공'은 비교적 최근 곡인데, 조용필의 최신곡인 '그래도 돼'랑 주제가 닿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거장들의 인생에 대한 인식이 -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본인 멋대로 살면된다 - 일맥상통하는 느낌? 이 같은 주제의식은 요즘 아이돌 노래도 마찬가진가?
 
 나훈아는 84년에 '청춘을 돌려다오'를 불렀고 2005년 에는 '고장난 벽시계'를 불렀다. 이 두 곡 사이에 20년이란 시간이 있고 같은 듯 다른 두 곡의 노랫말의 간극이 기묘하다. 조용필은 84년에 '아시아의 불꽃' 이 실린 앨범을 냈고, 송창식은 83년에 '우리는' 을 불렀다. 각자 본인들의 길로 간 거장들의 현재 모습이 다 보기에 좋다.
 
 본인 성기가 절단 당했다는 루머에 그렇게 시달리고도 - 직후에 나온 곡이 '테스형'이었던 듯 - 세월 흐르고는 공연장에서 웃으면서 그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연예인이다. 나훈아의 은퇴 공연을 봐서 아내랑 같이 봐서 너무 좋았다. 정말 너무 잘하시더라. 은퇴 후에 행복하시길 바란다.
 
 조용필 신보를 들으면서는 폴 매카트니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나훈아는 비교 대상이 없네.
 
 조용필 공연도 죽기 전에 꼭 한 번 보고 싶다. 글을 마치는 지금 BGM으로 조용필의 '꽃바람'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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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한테는 누나가 있다. 나에겐 고모가 두 명 있다. 아버지 누나는 나에게 큰 고모가 된다. 아버지에게 여자 형제가 셋이었다면 큰고모 중간고모 작은고모가 되나? 큰 고모는 아버지네 육남매 중에 첫째다. 학교를 어디까지 나왔는지는 정확하지 않은데,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은 건 확실하고 일찍 고향을 떠나서 서울에서 봉제공장에 다녔다. 아버지는 방위를 마치고 고향을 떠났고 서울 영등포에서 누나랑 같이 살았다. 그 당시에 고모는 나의 이모들과 친분을 쌓았고 아버지는 엄마를 만나서 결혼했다. 고모를 몹시 때리던 고모부가 있었다. 나는 고모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름은 기억한다. 엄마랑 이모들이 고모부 이름을 부르면서 나쁘 소리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고모는 알콜중독으로 죽은 고모부의 폭력을 피해서 우리집을 자주 찾았다. 한쪽 눈이 멍든 채 울면서 우리집에 왔던 고모가 생각난다. 고모에게는 나랑 동갑인 아들이 하나 있다. 우여곡절 끝에 고모는 서울 집을 팔고 구미에 가서 손주들 돌봐주면서 아들 내외랑 같이 산다.

 

 아버지가 치매 걸린 이후로 고모가 가끔 나에게 전화를 한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간 후로는 더 자주 전화를 한다. 동생이 치매로 요양원에 있다고 해서 본인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즐겁게 살다가도 가끔씩 아버지가 생각나면 나에게 전화를 한다. 울먹이면서 요양원에서 아버지에게 못되게 굴까봐 걱정하기도 하고, 아버지에게 전화기를 하나 주면 어떻겠냐는 얘기도 한다. 내가 고생이 많다는 얘기도 하는구나. 아버지는 요양원에 가기 바로 전날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때는 아버지의 인지능력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았다. 고모에게 그 통화가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로 남았다. 내 생각에 아버지 머릿속에는 아직 누나가 남아 있을 것 같다.

 

 어제 고모한테 전화가 왔다. 11월 초에 강릉에서 둘째 고모 아이 결혼식이 있는데, 식장에 아버지를 데리고 나올 수 없겠냐고 했다. 아버지가 기저귀를 차고 있으니 데리고 나오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하고 면회만 추진하기로 했다. 

 고모, 아버지 잘 지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난 금요일에 동생이 강릉에 왔기에 같이 아버지 보러 갔다. 아버지는 나랑 동생을 보고 '아들'이란 말을 먼저 꺼내지 못했다. 사람 이름은 아버지 머릿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간다. 동생이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는 나랑 동생에게 결혼 - 이 단어도 먼저 꺼내지 못함 - 해야지. 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컨디션이 좋은 편인 것 같았는데도 그랬다. 아버지는 컨디션이 좋을 때 말을 많이 한다. 정리되지 않는 그 얘기를 듣는게 좋다. 아버지 컨디션이 좋은 게 좋다. 아버지 얘기의 핵심은 본인은 걱정하지 말아라, 남들한테 못되게 굴지 말고 잘 살면된다, 회사에 잘 다니면 그걸로 됐다, 정도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혼자 아버지 보러 갈까 싶었는데 내 안의 우울로 그러하지 못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아버지 보러 가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다.

 

 아버지, 아버지가 저 알아보는 동안이라도 더 자주 보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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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0 - 일기

그때그때 2024. 10. 10. 13:11

 10월 10일이네 엊그제가 한로였고 며칠 있으면 상강이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흘러 지나가는 것이 시간이다.

 

 아침에 출근하다가 왜 이렇게 출근하기가 싫은지 생각했는데,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지쳤다는 결론이다. 그렇다고 이 직장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고 싶은 건 아니다. 업무 분장도 그렇고 예기치 않은 일로도 남들 뒤치닥거리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일들에 지쳤다. 돈도 명예(?)도 싫다.

 

 올 봄에 집주인이 바뀌었는데 엊그제야 전화가 왔다. 올해 연말부터 전세보증금 내줄 수 있다고 한다. 내년 3월초가 계약 만기다. 내년 정월이 지나기 전에는 이사를 가야겠다. 사실 서두를 필요 없는데, 당근마켓 부동산을 자꾸 들여다 보고 있다. 강릉 집값과 내가 가진 돈을 생각하면 그 동안 뭐하고 살았나 속만 상한다. 차분하게 있다가 11월 말에 부동산으로 가자. 10년에서 15년 갚을 것을 생각하고 주택담보대출 받아서 나 보기에 위치가 좋은 아파트 하나 사고 싶은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지금 집에서 5년 7개월을 살았다. 10년 가까이 된 직장 생활만큼은 아니지만 지금 집도 지겹긴 하다. 내 집이 있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런지 어느집에 살아도 집에는 정이 들지 않는다.

 

 지난주에 아버지 요양원 계약서 갱신했다. 아버지 장기요양인정이 갱신 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4등급(시설급여)이 됐다. 사회복지가 선생님이랑 계약서 쓰면서 아버님이 착한 치매라 정말 다행이다, 불결 행위가 점점 심해진다, 는 얘기를 들었고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을 많이 힘들게 하지 않는 치매가 온 건 좋은 일이네, 생각했다. 아버지는 엄마, 동생이랑 영상통화 할때, 얼굴 보면 반가워 하고 보고 싶다고 한다. 동생에게는 한 번 와라, 라고 하는데 엄마한테는 보고 싶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아내는 그 모습을 보고 웃고, 나도 웃고 만다. 언젠가는 보고 싶다는 말도 못하고 나도 못 알아볼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날이 아주 천천히 오길 바란다.

 

 기후 파괴의 시대에도 인구수로만 보면 세계(인류)는 여전히 팽창하고 있다.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올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래요,란 말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한다. 거기에 나도 포함이다. 어딘가에 포함되지 않는 인간은 없으니 이런걸로 우울해 하지 말자. 가을이 왔음에,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닥치는 대로 살자. 삶에 감사할 수 없는 날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 아버지 말마따나 '살자'

 

 이대로 무너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무너지지 말아야지." 매일 생각한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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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부터 46세가 됐다. 머릿속에 첫날인지 둘쨋날인지 약속의 혼란이 있었지만 오늘은 46세 2일차다. 16790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모든 지나간 일들은 과거라는 한 단어에 합쳐져서 결국은 잊혀진다.


 1978년 9월 23일은 음력으로 팔월 스무하루고 어제도 양력 9월 23일이 음력 8월 21일인 날이었다. 0세 생일과 양력음력 생일이 같은 날로 검색을 해보니 60년 의견과 대략 19년 의견이 있는데, 정확하진 않다. 지나간 내 생일 중에 한 번 정도는 어제와 같은 날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지난 명절에 만난 엄마가 이번 생일은 특별한 날이니 복권을 사라고 했는데, 복권을 안 샀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사야지. 한국에서 1978년에 태어난 사람이 75만 명이다. 365일로 나누면 하루에 2054명이다. 단순 계산으로 나랑 같은 날 태어난 사람이 우리나라에만 2000명이 넘는다. 그 중에 가수 나얼도 있고 초등학교 때 친구 호철이도 있다. - 초등학교 졸업후엔 얼굴 못 봄 - 전 세계로 따지면 더 많겠지. 그러니까 특별한 날이란 건 관계자들끼리의 얘기다. 아들 생일을 특별하게 생각해준 엄마가 고맙다. 충주로 출장 가는 바람에 집에 늦게 돌아왔는데, 집에 미역국이 있었다. 신랑 생일을 특별하게 생각해준 아내가 고맙다. 고마운 마음과 특별함으로 힘내서 살아야 되는데, 힘이 안난다.  


 강릉에서 로또 1등 당첨되신 분이 빚 갚은 후에 미뤘던 수술 받고 나서 돌아가셨단 얘기를 들었다. 인생이란 그런것이다. - 나 이 말 진짜 좋아하네. - 아픈데가 있건없건, 빚이 있건없건 로또 됐으면 좋겠다.

 

 직장 그만두는 생각을 많이 한다. 여기저기 물어보면 다들 그렇다고 한다. 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고 살아야지 생각한다. 그래도 출근하기 싫다. 출근하기 싫은건지 그만두고 싶은건지 헷갈린다. 다들 그렇다고 한다. 그런 줄 알고 살아야지. 우리 아버지 말마따나 살아야지. 다만 아버지는 인지능력이 점점 더 떨어지는 중이고 - 이미 바닥인 것 같음 - 그 때문에 더 이상 '살아야지'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살자. 복권도 사고, 출근도 하고, 일단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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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연휴에 엄마 집에서 하룻밤 잤다. 엄마가 해준 밥 먹었다. 엄마 밥은 맛 없어도 맛있다. 엄마가 싸준 반찬 잔뜩 싸가지고 돌아왔다. 사랑이다. 동생에게 아이가 둘 있다. 조카들을 몇 년만에 봤다. 큰 아이는 초등 2학년이고 작은 아이는 다섯살 터울이던가? 확실히는 모르겠다. 자주 안 보면 미취학 조카 나이는 잘 모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아버지 면회가서 동생이랑 영상통화하면 동생이 항상 본인 큰 아이를 불러서 인사를 시킨다. 조카 아이는 늘 전화기 너머로 수줍게 '안녕하세요' 라고 한다. 큰 아이는 할아버지랑 함께 했던 기억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를 안다. 다 잊고 있는 사람을 잊지 않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고 뇌가 살아있는 사람의 특권이다. 작은 아이는 할아버지를 잘 모른다. 동생이 구체적으로 알려줘서 애들 장난감 두 개 사갔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좋았다. 큰 아이가 어릴적에 프로레슬링 한다고 놀아주면서 '베어허그'를 먹여준 적 있다. 그 아이는 나를  '큰아빠'가 아니라 '베어허그 삼촌'으로 기억한다. 좋은일이다. 애들봐서 좋았다. 어쨋든 핏줄이라 그런지 조카들 일 년에 한 번은 보고 싶고 <엄마 없는 날>  재미있게 놀아준 삼촌으로 기억되고 싶다. 언젠간 그럴 기회가 있을 거다.

 

 연휴 동안 아버지 면회를 두 번 갔다. 같은 시간에 갔는데, 두 번 모두 간식 먹고 휴식 시간에 남자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아버지를 데리고 요양원 앞에 나와 있기에 밖에서 만났다. 아버지 육체가 건강하고 많이 답답해하기에 이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담배 피울 때, 아버지를 데리고 요양원 앞에 나오는 경우가 있다. 고맙습니다. 담배 한 보루 사 드리고 싶은데, 얇은 담배를 피운다는 것 까지만 알아냈다. 요양원에 코로나가 퍼진 덕분에 면회시간이 짧다. 마스크도 써야하고 코로나 검사도 해야 한다. 면회 신청서 쓰다가 간호사 선생님으로부터 아버지 인지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이제 기저귀를 차고 있고 점점 더 다른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되고 있다. 요양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받아보는 우편물에 아버지가 어찌 지내는지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최근 받아본 내용에 똥과 관련된 것이 많았다. 아버지가 나를 알아봤고 반가워했으니 그걸로 됐다.

 

 엊그제 S누나집에 쌀이랑 양말 갖다주러 갔었다. 누나가 어떻게 지내는지 묻길래, 그럭저럭 잘 지낸다고 했다. 그럭저럭이 우울이다. 우울증이 여전해서 병원에 다시 가야지 싶다. 날씨가 문젠지 아버지가 문젠지 회사가 문젠지 내가 제일 문젠지. 9월말  날씨가 8월말 날씨같다. 아버지 만나고 돌아서면 울고 싶다. 회사에서는 전화라도 한 통 받으면 아무일도 아닌데도 울렁거리고 짜증이 치솓는다. 이루지 못한 무언가 있는가? 물으면, 대답은, 있다. 많다. 사정이나 형편 같은 말이 자주 떠오른다. 내 멋대로 사는 것도 세상의 흐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걸 안다. 나는 내 멋대로 살고 있지도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도 않다. 답답하네.

 

 허리, 어깨 등 군데군데가 아파서 운동을 쉬고 있다. 우울증에 달리기가 좋다고 해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체육관에 등록해볼까 한다. 미친놈처럼 달리면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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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토요일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벌초랑 성묘 행사가 있었다. 산소는 강릉에 있고 작은아버지 한 분만 강릉에 있으니까 벌초는 대행업체에 맡기려고 했는데, JJ삼촌이 본인들 부모니 본인들이 알아서 한다고 하길래 신경 끄기로 했다. 나랑 아내는 벌초 다 끝난 다음에 가서 절만 하고 왔다. 편했다. 막내 삼촌이 25살 사촌동생을 강제로 데리고 와서 오랜만에 얼굴 봤다. 동생이 직장 다니기 너무 싫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아내가 나에게 돈 쥐어줘서 동생한테 밥 사 먹으라고 용돈 줬다. 잘한 일이다. 엄마를 오랜만에 봐서 좋았는데,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별 대화는 못나눴다. 10명이 점심 먹으러 옹심이 집에 갔는데, 엄마랑 마주 보고 먹은 게 좋았고 엄마 옆엔 아내가 앉았다. 나를 지탱해주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게 좋았다. 기억해 둔다.

 

 아버지 있는 요양원에 코로나 이슈가 있어서 엄마를 비롯한 친척들이 면회를 못했다. 면회 가능한지 묻느라 사회복지사 선생님이랑 통화할 때 아버지 잘 지내는지 물었더니, 행복하시죠, 라고 대답해서 약간은 안심이 됐다. 대화 나눌 상대가 없는 아버지는 혼자서 생각의 나무를 키우다가 밥 먹으라 하면 밥 먹고 간식 먹으라 하면 간식 먹고 머리 자르자고 하면 머리를 자를 것이다. 그때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에게 고맙습니다, 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생각의 나무를 처음부터 다시 키울 것이다. 얼른 아버지 면회가서 컨디션 좋은 아버지가 한 시간 내내 떠드는 거 듣고 싶네. 사랑인가?

 

 어제는 아내랑 횡계에 있는 자생식물원이랑 월정사에 다녀왔다. 월정사를 처음 가봤네. 유명하다는 전나무 숲길도 걸었다. 어느 나무에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길을 걷는 일의 시작이다, - 원문은 '명상의 시작이다.' - 라고 적혀 있었다. 요즘 우울증 핑계로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보내는 나를 잠깐 돌아봤다.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가을이 어쩌구 저쩌구 하길래, 올 가을엔 나에게 편지를 쓰겠다는 사연을 보냈는데, 내 사연 읽혔다. 블로그에 종종 쓰는 일기가 나에게 쓰는 편지니까 어차피 쓸 편지를 쓰겠다는 사연이었는데,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는 내가 보낸 사연이 본편적인 얘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것. 인생이란 그런것이다. 점심으로 아내랑 보리굴비 정식을 먹었다. 아내가 맛있다고 하면서 잘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알펜시아 리조트 근처에 있는 카페도 갔다. 교동 보헤미안에 아내랑 커피 마시러 가는 게 자주 간다. 아내랑 같이 커피 마시러 가는 게 참 좋다. 내가 전날 커피 마시러 가자고 말하면 다음날 억지로 일찍 일어나 주는 아내가 참 좋다. 사랑이다.

 

 직장 일을 포함해서 모든 일은 추석뒤로 미루기로 했다. - 이런 여유가 있다는 게 고맙다. -  이번주 잘 보내고 연휴가 기니까 추석엔 차로  세 시간도 안 걸리는 엄마한테 다녀올까 싶다. - 엄마가 연휴 때 나를 보고 싶어하는 것 같은 맥락의 말을 함 - 회사에서의  세 시간은 너무나 길지만 엄마에게 가는 세 시간은 너무나 짧지. 사랑인가? 

 

 사랑? 사랑. 사랑? 이 다 사랑이다. 여전히 사랑으로 산다. 사랑으로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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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가 9월 1일이었다. 어제는 9월이구나, 싶지 않았는데 오늘 출근하니까 9월이 왔다는 실감이 난다. 사무실 근처에서 각시취 꽃이랑 용담꽃을 보니 가을이구나 싶다. 이렇게 세상 속에 동화되어 간다.
 
 주말엔 거의 누워 있었다. 어떤 의욕없음이 여전히 나를 지배한다. 토요일 아침엔 아내랑 데이트를 했다. 보헤미안 본점에서 커피 마셨고 양양 휴휴암에 다녀왔다. 아내랑 뭘 같이 하는 게 활력을 준다. 집에서 밥을 같이 먹고 옆에 누워서 각자 휴대전화를 보는 일들도 그러하다. 오늘 아침 출근 전에 아내가 곱게 자는 모습을 봤는데, 그것도 위안이 됐다. 안심이 더ㅣㄴ다고 해야하나?. 어제 아침에 아버지 친구들을 잠깐 만났다. 전날 코로나로 면회가 금지된 요양원에 가서 유리 칸막이 너머로 아버지를 봤다고 한다. 아버지가 반가워했다고 전해들었다. 위로금 100만원을 받았고 엄마한테 줬다. 치매 걸린 친구를 위해서 위로금을 모으는 친구들을 생각해본다. 아버지 친구들이니까 52년 전후에 태어난 분들인데, 건강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람이 일단 안 아프고 볼 일이고 아프더라도 치매는 피해야 한다. 치매는 치명적이라 치매다.
 
 지난주에는 일주일 전에 만난 DJ 선배 생각을 많이 했다. 누구 한 명 만나면 그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프로 뮤지션인 선배랑 프로 얘기를 하다가 선배가 '프로는 선택받는 거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나도 선택받고 싶은가? 강렬한 열망은 아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선택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선택받지 못해서 우울한 건 아니다. 이번달부터는 본격적으로 노래 녹음을 해볼까 싶기도 하네.
 
 프로야구 프로축구에서는 내가 응원하는 팀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야구는 2패 했고 축구는 막판에 동점골을 허용해서 비겼다. 나야 그 결과에 잠깐 화를 내거나 속상한 마음을 가지면서 지켜볼 뿐이지만 선수들과 감독들은 간절하게 뛰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정말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다. 이게 프로의 세계다. 냉정.
 
 나는 선택받고 싶은가? 일단 글이 좀 잘됐으면 좋겠네. 글쓰기도 노래만들기도 어느 지점에서 멈춘 느낌이다. 2024년 9월 나의 시간은 이렇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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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 잡생각

그때그때 2024. 8. 26. 14:48

 무력감이 가시질 않는다. 죽고 싶은 건 아니니 그냥 이대로 살자. 무너지지만 말고 살자.
 
 지난 토요일에 대학 선배, 동기, 후배 만났다. 후배 섭외로 선배가 횡계에 와서 공연을 한 덕분이다. 술 마시고 노래방엘 갔다. 학교 다닐때 개별적으로는 많이 놀았어도 넷이 모여서 술 한 잔 마셔본 적 없다. 첫 만남이 25년 이상 지나면 모든 만남이 이렇게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풍화되는게 아닌가, 생각해봤다.
 선배는 앨범을 낸 가수고 주업으로 요양원을 했는데 최근에 건강원으로 업종을 바꿨다고 한다. 동기는 강릉에 사니까 자주 보는 편이고 중고등학생들 수학 가르친다. 후배는 올해 고향인 평창으로 귀농했다. 나는 이일저일 하다가 산림청에 취직했다. 다들 짧은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간다. 단편적으로는 그러하지만 그 속은 다들 복잡하다.
 가수로 약간은 성공의 맛을 본 선배, 본인 시나리오로 감독 데뷔 직전까지 갔던 동기, 가족들 춘천에 두고 부모님과 살고 있는 후배, 나는..... 음..... 다들 먹고 사는 걱정 없었으면.
 
 토요일, 일요일에 아버지 만났다. 이번주는 아버지 컨디션이 안 좋았다. 먼저처럼 혼자서 막 떠드는 거 듣는게 좋지 아버지가 별말 없이 먼데만 보고 있으면 기운이 빠진다. 그래도 엄마랑 애들 한 번 보고 싶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애들도 애들인데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 것 같다. 9월 첫 주말에 추석성묘 예정이라 그때는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동생은 일이 있어서 못 온다고 하고, 요양원에 코로나 환자가 발생해서 당분간 면회가 중단된다는 문자를 오늘 받았다. 어제 아버지 보고 오길 잘했다. 아버지가 9월초에 엄마 못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렇다.
 
 오늘 아침도 여지없이 출근하기 싫었는데, 출근했다. 기간제 선생님 중에 한 분이 벌에 쏘였다. 요즘 벌쏘임 사고가 많다. 더워서 벌이 많다는데,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잽싸게 태워서 강릉의료원 다녀왔다. 장수말벌에 쏘인 것 같고 쏘인 곳이 가렵고 많이 부어서 응급실에서 수액 맞았다. 벌에 쏘인 선생님은 나보다 한 살 형이다. 병원에서 이 형 기다리면서 46세 남성이 5년 전에 정선군 임계면으로 이사 와서 혼자 살면서 최저임금 받는 산림청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것을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나도 마찬가진가? 오늘 날을 제대로 잡았는지 기간제 선생님 중에 한 분이 내가 병원 갔다 오는 사이에 뭔가에 쏘여서 병원에 내려갔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아이가 고3인데, 정선군 임계면에 살면서 매일 술을 마시고 매년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는 일자리에 지원하는 삶을 생각했다. 내가 계산한 병원비는 어떻게 돌려받나? - 액수가 적지 않다. - 다들 먹고 사는 걱정 없었으면.
 
 보통일이 아니네, 란 말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살아가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우울하다고 술 마시고 무너지지 말아야지. 나에게는 술 마시고 무너질 수 있는 여유는 있는건가, 깊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올해 발초는 업체에 맡긴다고 작은집에 전화해야 하는데 전화를 못하겠네. 자동차 보험도 전화해야 하는데 전화를 못하겠네. 보통일이 아니네.
 
 선배가 노래방에서 light my fire 부른 걸 기억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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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2000년에 운전면허를 땄다. 아내는 나보다 일찍 땄다. 아내는 쭉 운전을 안했다. 작년에 어떤 결심이 섰는지 운전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8월에 새차를 샀다. 꼬마차라면 탈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경차를 샀다. 새차를 3달 이상 그냥 세워뒀다. - 좀 열받았었지. - 겨울이 깊어질 무렵 운전연수를 받았다. 도로주행 선생을 자주 봐서 불편했는지 마지막 타임은 건너뛰었다. - 그게 다 돈인데. - 

 아내는 운전을 곧잘 한다. 비보호 좌회전도 회전교차로 진입도 잘 한다. 아내는 주차에 애를 먹는다. 차 폭과 길이에 대한 감각이 떨어져서 그렇다. 한동안 집 앞에 차를 세우지 못하고 널찍한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아내는 차를 타고 밭이랑 사회복지사 실습받은 요양원에 오고갔다. 가끔은 주문진에도 간다. 운전을 곧잘 하니까 괜찮다. 다만 비오는 날 운전과 밤운전은 피했으면 한다.

 집 앞에 차를 세우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첫 번째 사고가 났다. 차 빼다가 서 있는 남의 차를 들이 받았다. 상대방이 쿨하기에 보험처리하지 않고 35만원에 수리하시라하고 끝났다. 아내 차는 뒤쪽이 많이 다쳤는데, 언제 또 사고 날지 모르니 차량용 스티커 사서 붙이고 말았다. 얼마전에 두 번째 사고가 났다. 집에 돌아와서 차를 세우다가 실수로 엑셀을 밟아서 앞 바퀴를 지탱해주는 높은 턱을 넘고 연립 입구 계단에 자동차 앞쪽을 긁었다. 밖에 나와있던 이웃 주민들이 그 사고를 목격했고 그 후로 아내는 운전에 침울하다. 하지만 침울할 필요 없다. 두 개의 사고 모두 혼자 들이받은 사고라 그렇다. 다친 사람이 없는 사고라 그렇다. 귀요미야 힘내.

 서울에선 운전 안해도 살아가는데 큰 불편이 없지만 지방 소도시에서의 삶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강릉 이사온지 8년만에 아내가 운전을 결심한 것이다. 본인 자동차가 생긴다는 일에 설레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동차가 있다는 건 신경쓸 것이 많아짐을 뜻한다. 보험가입과 갱신, 세차 - 차 사고 6개월 만에 첫 세차를 했는데, 떼가 안 지워졌다. - 정기점검 - 이건 아내가 다녀왔고 정기점검 가던날 첫 사고가 났다. -  타이어 펑크나면 긴급출동도 불러야 하고 경고등 뜨면 뭔지 확인해야 한다. 그때그때 기름도 채워야 한다. 얼핏 사소할 수도 있는 이런 일들이 나에게는 다 스트레스다. 운전을 오래한 나에게도 그러하니, 아내에게는 더 스트레스다. 그래도 내 아내가 본인 자동차 기름은 혼자 넣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차차 나아지겠지 생각한다. 아내가 두 번째 사고의 후유증을 훌훌털고 꼬마차 타고 훌훌 날아다니길. 다 쓰고 나니까 배가 고프네. 귀요미야 기운내.

 요즘하는 생각인데, 왕복 54km 출퇴근 너무 힘들다. 자동차 없어도 살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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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 - 우울

그때그때 2024. 8. 20. 14:40

 단어의 정의를 오랜만에 찾아본다. 우리말의 정의는 누가 내리는 걸까?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 만드는 사람들이? 인간은 정의하는 동물이고 우울이란 단어의 뜻을 알기에 나는 더 우울하다.  

 우울 - 근심스럽거나 답답하여 활기가 없음, 사전상의 정의다. 위키백과에서는 활동력 저하를 특징으로 하는 정신적 상태라고 하고, '우울 정의'로 구글에서 검색하면 슬프고 희망이 없고 무기력한 기분을 느끼는 상태,라고 나온다.

 다 맞는말이다. 근심스러운 일이 있으니 답답하고 답답함은 활기 없음과 같다. 활기가 없으니 활동력이 떨어지고 무기력을 동반하게 된다. 내 근심의 원인은 결국은 나다. 그걸 아니 더 우울하다. 우울의 뜻을 뒤적거리다 보니 번민이란 단어가 나온다. 

 번민 - 마음이 번거롭고 답답하여 괴로워함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누구와도 얽히고 싶지 않다. 그런데 출근을 해야한다. 출근하기 싫다. 직장 동료들과 인사도 하고 싶지 않다. 괴롭다. 흔히 말하는 쉬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가만히 있고 싶다. 혼자서 어둠의 끝까지 다녀오고 싶다. 중간에 자체적으로 약을 끊은 게 실수였나? 약을 다시 먹어야겠다. 

 이번주가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 다음주엔 아무 일도 없길, 아무 일도 만들지 않는 내가 되길. 출퇴근만 하는 식물이 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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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덥다. 강릉은 최장 열대야 기록을 세웠다. 기온 상으로는 오늘아침까지도 열대야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최저기온이 30도가 넘는 날들에 비해서는 한결 나아졌다. 시간의 흐름을 이런식으로도 느낀다.
 
 좀 웃긴 표현이지만 베프 중에 베프 Y가 중3 아들이랑 같이 강릉에 다녀갔다. 친구는 산에 온 게 세 번째고 아이는 처음이다. 친구가 삽당령을 좋아해서 좋다. 친구 아이는 개미, 메뚜기, 거미를 신기해했다. 중학교 3학년이 이게 맞나? Y는 자수성가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어느샌가 사람의 가치를 본인이 그냥 내어줄 수 있는 돈의 액수로 평가하는 사람이 됐다. 어제 저녁에 술 한참 마시다가 본인 친구 중에 내가 1등이라 필요하다면 돈 4천만원은 그냥 줄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내 베프가 그런 사람이 됐다는 게 씁쓸하다. 본인은 아나? 나중에 얘기 한 번 해줘야겠다. 혹시 나도 모든 걸 돈의 액수로만 평가하고 있지는 않나? 그 와중에 내가 일등이라 난 기분 좋은건가? 아싸 1등. 지금 본인 모습이 본인이 살아온 결과이고 열심히 산 친구를 탓할 생각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친구 아이가 굉장히 부주의하다고 느꼈다.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는 느낌. 원래 그 나이때 많이들 그런지. 친구는 본인 아이라 크게 이상한 점을 못 느끼는 건지 생각했다. 내 아이도 아니고 부모가 알아서 하겠지. 친구를 2주 전에 서울가서 봤지만 강르에서 또 만난 게 좋았다. 고기가 익는 화로 앞에 마주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 주로 옛날 얘기 - 나눈 순간이 특별히 좋았다. 친구도 그랬으리라 기억해두자.
 
 아버지를 만났다. 지난주에는 한 시간이 넘게 조금도 쉬지 않고 말을 뱉었던 아버지가 이번에는 별 말이 없었다. 동생이랑 영상통화를 했다. 동생 큰 아이가 9살인데, 동생은 아버지랑 영상통화할 때마다 그 아이를 아버지와 인사시킨다. 아이가 뭔가 희생당하는 느낌이랄까. 그런게 있다. 그래도 자꾸 얘기하면 아버지가 아이 이름도 얘기하고 알아보니까. 괜찮은건가? 아버지는 언젠가 어씨 일족이 다 만나기를 희망하고 있고 - 추석 성묘 때 아버지 외출 하는 쪽으로 내 마음이 기울었다. - 어씨들이 착해서 잘 산다는 '어씨부심'이 있다. '어씨부심'은 아내의 표현인데, 좀 재미있다. 아버지랑 나랑 이런저런 얘기하는 중에 아내 얼굴을 보면 아내가 '꺄르르꺄르르' 웃을 때가 있는데, 그 모습을 보는 일이 좋다. 사랑이다. 아내 말로는 아버지가 귀여워서 웃는다고 한다.
 
 또 한 번의 주말이 이렇게 지나갔다. 이번주도 별탈없이 보내자. 이번주는 광복절에도 아버지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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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아내랑 같이 아버지 만나고 왔다. 토요일에는 서울에 있었기에 주 2회 아버지 만나고자 하는 계획을 실천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지난주에 특별히 외뤄웠는지 한 시간 넘게 쉴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제대로 알아 들은 얘기는 없고 마무리는 본인은 잘 지낸다, 였던 것 같다. 아버지가 했던 얘기를 일일이 기억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다음주에는 아버지가 말하는 걸 좀 더 신경써서 들어봐야겠다.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일어나서 밥 먹고 간식 먹고 점심 먹고 프로그램 있는날은 프로그램 진행하고 낮잠도 자고 저녁 먹고 잠들었다가 다음날 다시 일어나서 밥 먹고....의 반복을 산다. 이 반복 속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가족이라던가 본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외롭다는 것과 현재 본인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랑 관계 없이 현실을 받아 들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다. 내가 매일매일 바짝 붙어 지내면서 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하든 다 들어준다면 아버지는 지금보다 덜 외롭겠지. 불가능한 일이다. 브루스 윌리스 선생님은 어떻게 지낼까? 생각해본다. 
 어제는 내가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면회 가는 바람에 아버지가 동생과 영상통화를 못했다. 내 불찰이다.
 이번주에는 별일 없으니 토요일 일요일 아버지 면회를 가기로 한다.
 우리 아버지 외로워서 어쩌나?
 
 현재 우리 아버지는
 - 우리 집이 요양원에서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고 너무 외로워서 집에 오고 싶어한다.
 - 본인이 현재 있는 요양원을 학교라고 할 때도 있고 회사라고 할 때도 있다.
 - 아들 둘이 회사에 잘 다니는지 궁금해하고 회사를 학교라고 할 때가 있다.
 - 한글을 읽는 법을 완전히 잊지는 않았다.
 - 애들이라고 하는 건 손주들을 지칭한다.
 - 엄마라고 하는 건 내 엄마(본인 전처)를 지칭한다.
 - 내 쪽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먼저 말하지 않으면 이름을 말하지 못한다.
 - 어씨들이 다 착하다는 말을 매번 반복한다.(이 말은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다.) 
 - 불결 행위는 어쩔 수 없게 됐다.
 
 아버지의 상태를 단편적으로 적어 내려가는 게 현재 아버지에 대한 나의 마음인가? 이런 아버지가 추석 때 성묘 행사에 참석하는 게 아버지에게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아버지 형제자매들과 가족들은 다들 밖에서 만난 아버지를 좋아할 것 같으니 아버지에게도 의미가 있는 걸까?
 내일 모레 입추네.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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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우울감은 많이 줄었다. 약발이 받는다. 다만 자다가 자주 깨는 일은 여전하고 레피졸에 발기부전이나 정력감퇴 부작용이 있나? 생각해 본다. 그런일로 우울하진 않다. 

 며칠 전에 사무실 뒷동산을 걷던 중에 어디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벌한테 쏘였다. 하루 지나니까 쏘인 왼손이 주먹왕 랄프가 되기 직전이길래 병원에 다녀왔다. 선생님이 약 먹는 거 있는지 묻는 바람에 외과 선생님과 잠깐 신경정신과 상담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정하지 않고 시간 나는 날에는 아버지를 보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은 편해지나? 아무튼 그렇게 하기로 했다. 엄마한테는 굳이 아버지 보러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영상통화로 대체가 가능하다. 지난 토요일 영상통화 때, 아버지가 엄마 보고 유난히 좋아했던 게 기억난다. 그보다 더 기억나는 건 아버지가 혼자 있는 시간에 울었다는 사실이다. -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또 울면 안돼요, 라고 해서 알게 됐다. - 아버지, 울지 말아요.

 전자렌지를 샀다. 2012년에 혼수로 샀던 오븐겸 레인지가 고장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 것 테스트 하려고 냉동 피자를 돌렸다. 우리 연립의 전력 총량의 문제인지 새 전자렌지도 잠깐 돌아가다가 꺼지길 반복했다. 내년에 이사 가야 하나? 이런 사소한 일들로 스트레스 받는게 싫다. - 큰 스트레스는 아니다.

 중복날 아내랑 소고기 구워 먹었다. 고기를 잘 안 먹는 아내가 흔쾌히 오케이 해줬다. 고기가 맛있진 않았지만 아내가 맛있게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무빙'이란 시리즈가 생각났다. 무빙에 울적한 류승룡이 아내랑 고기 먹는 장면이 나온다. 무빙은 '부부가 한 달에 한 번 저녁 식탁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일의 위대함' 을 알려주는 시리즈란 생각을 했고 아내에게 말해줬는데, 아내는 '무빙'을 보지 않았다. 아내랑 뭘 같이 먹을 때, 그 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먹는 다는 행위 자체를 좋아해서 그럴수도 있다.

 회사는 인사철이 끝났다. 인사 조치로 전에 있었던 직장 상사가 다시 오게 됐다.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고 실제로도 좋은 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 나도 좋은 놈은 아니지 -  여긴 직장이니까 오거나 말거나 내 할일이나 하고 이 사람이 나한테 뭐 시키면 부당하지 않은 선에서 하면 될 일이다. 그래도 기분이 좋지는 않다.
 회사에서 바쁜 일이 몇 건 끝나서 당분간은 큰 건수 없이 자잘한 업무만 처리하면서 지낼 계획이다.

 계속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예정이다. 여름을 거치면서 우울감이 계속 줄어들면 좋겠다.
 
 정치 뉴스를 보면 나라가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 밖에 안든다.
 날씨를 느끼고 생각하면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 뿐이다.

 괜찮은 건가?  내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것이다. 아내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괜찮은 것이다.

 여전히 사랑으로 산다. 사랑으로만 산다.

 엄마 젖 만지는 꿈 꾸고 벌에 쏘였기에 복권을 샀는데 꽝이었다. 어렸을 때 엄마 젖 만지는 버릇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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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주 토요일에 손윗 처남이 본인 자동차를 나에게 줬다.
 
 - 지난주 일요일에 먼저 타던 자동차 키를 잃어버렸다.
 
 - 어제(7월 9일) 아내가 첫 번째 교통 사고를 냈다.
 
 
 처남이 준 자동차는 맘에 든다. 쉐보레에서 나온 아베오란 차다. 명의이전을 하는 문제가 있는데, 내 이름으로 보험을 들면 할증이 많이 붙는 문제가 있어서 일단은 처남 이름으로 타는 게 현실적이다. 더구나 아내가 교통사고를 냈는데, 아내차도 명의랑 보험이 내 이름이다. 처남과 대화를 나눠봐야 하는데, 선뜻 전화기에 손이 가질 않는 현실이다.
 
 140만원 주고 사서 올 초에 보험료만 130만원 내고 잘 타던 내 자동차는 잃어버린 키를 찾지 못해서 뒷유리 부수고 - 이웃들이 도와줌 - 짐 빼고 오늘 아침에 보험 불러 견인 후 카센타로 보냈다. 나에게 본인 차를 팔았던 카센타 사장님이 알아서 폐차해주기로 했다. 이 건 처리하느라 오늘 두 시간 지각처리했다. 전륜차에 전자식 사이드브레이크가 잡혀 있어서 바퀴 안굴러 갈까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앞바퀴가 굴렀다. 무사히 잘 끝났다.
 
 아내는 차를 빼려고 후진하다가 D인줄 알았는데 R에서 엑셀레이터 밟아서 사고를 냈다. 아내 말로는 큰 소리가 났다고 하는데, 내가 사무실에 있어서 현장에 갈 수 없으니 일단 상대차 번호 받아서 연락을 시도했다. 근데 전화를 안 받네. 오후엔 전화를 두 번 받았는데, 받자마자 '여보세요' 한 마디 없이 전화를 끊었다. 뭐 어쩌자는 거지? 아내차는 좀 크게 다쳤지만(견적 80이상 나올 것 같음) 아내가 찍은 사진으로 확인한 상대방 차는 그냥 타자면 탈 수도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 자동차가 어제 5시까지는 집 앞에 있었다는데, 6시 40분에 내가 퇴근했을 때는 사라졌다. 그래놓고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버린다. 어지럽다. 어지러워. 일단 우리 연립이나 동네 차는 아닌 것 같다. 기다려봐야지 어쩌겠나. 찝찝함이 계속 남아 있다. 
 

 세 가지 자동차 이슈로 여기저기 연락하고 머리 굴리느라 마음이 반파됐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세 건이 다 연결돼있네. 아내는 첫번째 사고로 충격을 받아서 마음이 반파됐다. 반파된 사람들끼리 맛있는 거 사 먹어야겠다. 처남한테는 언젠가 전화를 하면 되는데. - 처남이 은근히 쿨함 - 아내의 사고 건은 언제가지 기다려야 하나. 첫 번째 교통 사고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법인데 - 나는 2000년대 초반에 60킬로 미터 정도로 지나가다가 거리감을 잘 몰라서 서 있는 대형트럭을 지나치면서 백미러 하나 해 먹었던 게 첫 사고였다. -  아내가 침착하게 잘 대처했다.
 
 
 아내에게 내가 반파상태라 하니 본인은 완파상태라고 한다. 반파된 마음으로 어지럽게 살아간다. 저녁에 소주 마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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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에 회사 휴가 냈다. 6시에 운동 갔다오고 김밥 한 줄 사 먹고 지난번에 혈압 문제로 못했던 헌혈하고 - 혈장 부족하대서 혈장 헌혈함, 헌혈하면 연가를 공가로 바꿀 수 있음. very good - 머리 자르고 집에 잠깐 앉았다가 13시 30분 차로 엄마 보러 오산에 갔다. 차에서 한 시간 잤는데 낮잠이 정말 오랜만이라 무척 개운했다. 오산으로 오던 중에 손윗 처남이 자동차 한 대 나한테 주는 걸로 결정 됐다.

 토요일 아침에 자동차 받으러 봉천동엘 갔다. 쉐보레 자동차가 생겼다. 처남은 직장내 스트레스 문제로 세 달 휴직 중이다. 중년의 직장생활 위기와 3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에 사는 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 봤다. 봉천동에서 신월동으로 차 끌고 갔다. 서울 운전 오랜만이네. 영일군한테 차 보여주니 관리 잘한 차라고 했다. 처남한테 고맙다고 문자 보내고 아내에게 오빠가 차에 관심이 많고 관리를 잘 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자기 오빠가 그럴리가 없다고 한다  흩어져 살면 자기 오빠 관심사가 뭔지 성격이 어릴 때랑 어떻게 달라졌지도 모르는 실정이다. 나도 내 동생이 애 둘 키우는 거 말고는 뭐하고 사는지 잘 모르겠다. 저녁엔 친구들이랑 한 잔 했다. 신월동 화곡동 전통적인 멤버 넷이 - 아내한테 사총사라 하니 웃겨 죽음 - 모일라고 했는데, 한 친구가 정신이 아픈 동생을 혼자 둘 수 없어서 못나오는 바람에 셋이 만났다. 술을 많이 안 마셨고 리쌍 노래를 부를 땐 즐거웠지만 그 순간 뿐이었다.

 일요일 아침 여섯시에 일어났고 일곱시에 모텔을 나와서 엄마한테 갔다. 신월동에서 강릉 가는 길에 약간만 돌아가면 오산 지나서 갈 수도 있고 그저 엄마가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엄마한테 물건이나 돈으로는 효도 하기가 힘드니 자주 오겠다고 하니 엄마가 알았다고 했다. 엄마가 싸준 조미김 차에 싣고 강릉으로 쌩하니 왔다. 좀 쉬다가 아버지 만나고 왔다. - 아버지 인지능력이 점점 안 좋아진다. 치맨데 좋아지는 게 있겠나. - 중간중간 여자들 공 치는 걸 봤고 - 18언더 3인 연장전 잼있었다. - 지금은 축구보러 와서 경기 시작 기다리면서 쓰는 중이다.

 엄마 집에서 세 끼를 먹었다. 금요일 저녁엔 삼계탕과 수박 - 삼계탕에 통마늘이 너무 많았지만 그냥 맛있게 먹었다. - 토요일 아침엔 김치찌개, 오늘 아침엔 제육볶음과 김치찌개를 먹었다. 엄마밥을 세 끼나 먹은 게 인상적이다. 엄마도 너무 좋아했다. 엄마가 호박을 볶아놔서 옛 추억을 생각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내가 기억도 못하는 시절에 제일 좋아하던 엄마 반찬이다. 엄마한테 새 자동차 보여주고 미용실에 마늘 가지러 가는 엄마차에 손 흔들고 차창 너머의 이별을 했다. 회사 형 증에 하누명애 어머니 돌아가시고 정신을 멋차리고 있다. 함께 산 세월이 길어서 어머니랑 각별하다. 나는 엄마랑 같에 산 시간보다 떨어져 산 시간이 더 길긴한데, 각별하긴 한 가지다. 모든 부모 자식이 그러하다. 엄마에 대해서 나열하자면 끝이 없고 엄마한테 잘해야지. 엄마한테 더 잘해야지. 다짐해본다.

 주말에 많은 일들이 다 잘됐는데, 원래 타던 차키를 잃어버린 걸 방금 알았네. 이런… 어디다 흘렸지? 아버지한테 갔다가 흘렸나? 갑자기 또 머리 아플라고 하네.

엄마집 앞 수변 공원 버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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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만나고 나서 올해 안에 영업종료 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드는 단골 커피숍에 와서 쓴다.

쓸쓸한 일 두 가지가 붙었네. 쓸쓸한 노래를 만들어야겠다. 언젠가 기분이 좋았던 일요일에는 일요일 아침같은 노래를 만들거라고 메모장에 적어뒀다. 그 노래는 아직인데, 쓸쓸한 곡은 금방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제목 - 0.1

오늘은 일요일
지금은 아침
계절은 5월
계절은 봄이 맞고
반짝반짝 하늘

0.1도 기분좋지 않다
0.1도 네 생각이 안난다
0.1도 0.1도
하나도 하나도


이렇게 가사 초안을 적어 본다


우울증은 좀 괜찮나? 회사 가기 싫은 건 여전하지만 이전만큼은 아니고 자다 깨는 횟수도 두 번 정도로 많이 즐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일이었을 수도 있지만 계속 우울한 거 보다 약의 힘으로 빨리 나아지는 게 마냥 기다리는 것 보다 낫다.

오늘은 아버지 컨디션이 괜찮았고 어쩔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 요양원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본인이 일등이고 잘하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본인이 요양원 어르신들 중에 제일 건강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아버지는 어쩔 수 없고 잘 하고 있다.

아버지한테 내일 또 온다고 했다. 면회가 너무 잦으면 요양원에서 별로 안 좋아할 거 같단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닌 걸 알기에 그렇다. 요양원 남자 직원 한 분이 아버지를 데리고 4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아버지가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시는데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라고 했다. 그 직원분이 얼마전에 감자전도 같이 먹으러 다녀왔단 사실을 알려줬다.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커피숍 사장 형이랑 담배 피우면서 잠깐 얘기 나눴다. - 소중한 시간이다 - 영업종료 없을거란 얘길 듣고 안심했다. - 그게 뭐라고 - 하지만 사람일은 어찌될 지 모든다. 내가 회사를 못 그만두는 걸 포함해서 - 잘 하고 있는 거다 -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늘 있는 것이다. '봉봉방앗간'이 어쩔 수 없이 계속 영업 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이 뭔가를 하는데 그게 잘 하고 있는 케이스들을 생각해 본다. 아버지 걱정을 안하는데 걱정이 되는 것괴 비슷한 건가?

두 잔 째의 커피를 마시는 중에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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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 저녁에 고구미 만나서 산 속에서 오붓하게 돼지고기 두 팩 구워 먹었다. 술은 꽤 먹었지만 과하지 않았고 베프랑 오랜만에 만나서 좋았다. 고구미는 대학에 이어서 농업학교도 내 후배가 됐다. 좋다. 마트에서 장보는 중에 항정살을 집어드는 나를 보면서 기름기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생각했다. 내가 연어랑 참치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튀김도 뺄 수 없구나. 고구미가 내가 올해 만든 '첫봄'이란 노래를 들어주고 좋다고 했고 한 번 더 불러 달라고 했다. 기분 좋아서 시도 두 개 읽었다. 이런 순간이 내게 힘을 준다.

 고구미는 토요일 아침 다섯 시에 피망 농사 지으러 평창으로 돌아가고 같은 시간에 인천에서 출발한 건쓰짱을 여덟 시에 만났다. 커피 마시고 몇 나디 나누고 점심 먹고 누워 있다가 저녁 일곱시에 프로 축구 봤다. 11,000명이 넘는 관중이 들었다. 빗속에. 건쓰짱은 축구장은 첨이라고 했고 응원에 들뜨는 모습을 보였다. 강원 서포터즈 응원에 들뜨는 정도면 수원 삼성 응원을 보면 기절할 판이다. 강원이 졌지만 경기는 잼있었다. 강원은 올해 폼이 좋은데 상무랑은 두 번 붙어서 두 번 다 졌네. 연패했다고 상대팀이 천적인건 아니다. 스포츠 경기란 그런 것이고 인생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친구들 사는 거 보면 나는 괜찮은 건가 싶기도 하다. 신경정신과에 우울증 약 타러 세 번째 들러서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그런 생각에 드네. 아버지 만나고 나면 우울한거랑 - 어제도 아버지 만났다. - 집이 없는 것 - 10억은 부자도 아니지만 10억 부자가 아닌 것 - 회사가기 싫은 것 제외하면 큰 스트레스는 없다. 아이가 없고 빚이 없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뭔가가 없기에 생기기도 하지만 뭔가가 없기에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내 스트레스 요인 중에 허리 통증과 어깨 통증 재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인데. 아프지 않다면, 통증이 없었다면..... 생각해 본다. 친구들은 자녀들의 학폭 연루, 아파트 대출금, 피곤한 직장생활, 아내와의 갈등 등의 문제가 있다. 몸 아픈건 우리 나이엔 공통이다.

 우울증의 해결책으로 연애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현이를 보면 맞는 것 같다. 이 친구는 카톡으로만 대화해봐도 원래보다 더 선량해졌고 예쁜말을 쓰는 사람이 됐다. - 원래도 나쁜 말을 쓰는 놈은 아니다. - 나는 기본적으로 아내랑 잘 지내니까 - 얼굴 본다고 설레는 건 아니지만 내 아내는 귀엽다 - 만일 내가 아내가 아닌 사람과 연애를 하면 우울증의 해결대신 배덕감에 정신병 수준의 희열을 느끼거나 죄책감에 미쳐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일 거라 생각한다.

 약발이 잘 드는지 최근 2주 동안 딱 한 번 울었다. 근데 자다 수시로 깨는 건 여전하다.

 머릿속이 맑게 살고 싶어서 조만간 담배를 끊으려고 한다. 담뱃갑에 그려진 10종류의 담배 경고 문구를 모으는 중인데, 간접흡연 피해 하나 남았다. 근데 그 한 갑이 잘 안 걸리네. 그 담배 한 갑을 마지막으로 금연 하고자 한다.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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