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그때그때 | 585 ARTICLE FOUND

  1. 2022.09.02 20220902 - 일주일만에 만난 아버지 생각
  2. 2022.08.27 20220827 - 벌초와 아버지와 엄마와 이런저런 생각
  3. 2022.08.16 20220816 - 일기
  4. 2022.07.18 20220718 - 정점에서 내려오는 생각
  5. 2022.07.08 20220708 - 자본주의와 나와 아버지와 가족주의
  6. 2022.06.14 20220614 - 아버지 만나고 엄마한테 가는 길 생각
  7. 2022.06.04 20220604 - 엄마 아픈 생각
  8. 2022.05.26 20220526 - 바퀴벌레 생각
  9. 2022.05.06 20220506 - 가정의 달 생각
  10. 2022.04.14 20220414 - 서울 나들이
  11. 2022.03.21 20220321 - 주말에 서울 다녀온 생각
  12. 2022.02.28 20220228 - 2월이 간 생각
  13. 2022.02.18 20220218 - 아버지 생각
  14. 2022.02.10 20220210 - 친구 생일 생각
  15. 2022.01.28 20220128 - 올해가 다 간 생각
  16. 2022.01.10 20220110 - 아버지 만나고 돌아와서 일기
  17. 2021.12.25 20211225 - 크리스마스 생각
  18. 2021.12.14 20211214 - 장기요양 인정 조사 생각
  19. 2021.12.14 20211214 - 너에게 가는길
  20. 2021.12.04 20211204 - 아버지 70세 생각
  21. 2021.11.30 20211130 - 0.1도 손해 보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생각
  22. 2021.11.18 20211118 - 2021년 11월 14일 생각
  23. 2021.11.11 20211111 - 요즘 생각
  24. 2021.10.19 20211019 - 아버지 생각
  25. 2021.10.18 20211018 - 선배 다녀가고 생각
  26. 2021.10.13 20211013 - 치과 생각
  27. 2021.10.08 20211008 - 필수의 반대말 1
  28. 2021.09.29 20210929 - 9월 끝 생각
  29. 2021.09.16 20210916 - 명절 즈음 아버지 생각
  30. 2021.08.22 20210822 - 요즘 한 생각

아버지 만났고 서울 올라온 김에 친구 만나려고 기다리는 중이다. 영등포(양평동) 오랜만이다. 친구는 대기업에 다니고 싶다는 꿈을 이뤘고 이혼을 했다. 나는? 45세의 가을, 금요일 밤에 만날 친구가 있다는 건 괜찮은 인생의 방증인지도 모른다.

지난주 벌초하면서 봤을 때 눈치챘지만 아버지는 더 나빠졌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얘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버지, 하고 큰 소리로 불러서 주위를 환기 시키고 어떤 얘길 해도 끝까지 듣지 않고 다른 얘길 한다. 바깥 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에 금방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또 해야 알아듣는 척 한다. 오늘 이대 목동병원은 다음달에 간단 말을 20번 정도 했다. 오늘 데이케어센터 가는 날 아니고 2시간 후에 날 만날거라고 8시에 통화했는데, 9시에 센터에서 어르신 나왔다고 전화왔다. 센터 선생님들이 보기에도 아버지가 처음보다는 좋지 않다고 한다. 물론 여전히 센터 안에서는 가장 밝고 적극적인 사람이라지만 그것과 치매 증상은 별개다. 담주에 장기요양등급 변경 신청을 해보려고 한다. 5등급 못 받으면 자부담이 들더라도 최대한 데이케어센터를 많이 이용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동생과 나만 부담한 센터 이용료를 엄마까지 부담하게 되겠지. 일단, 센터 나가는 날은 저녁식사도 하고 집에 오시는 걸로 변경했다. 센터쪽도 입장이 있어서 한달을 풀로 이용하는 입소자가 있는 쪽이 좋을 것이다. 입소자를 제소자라 쓸뻔했다.

오늘은 집근처 병원에서 혈압약을 탔고 - 혈압약 함부로 끊으면 안된다고 의사한테 한 소리 들었다. 내 불찰이다. -, 은행 두 곳에서 통장 정리했고 핸드폰대리점에 들러서 요금제 등을 확인했다. 점심은. 오리 먹을까 하다가 염소탕을 먹었다. 아버지는 오늘도 특이었다. 잘 드시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고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아버지는 특으로 할까 싶네. 아버지는 고기 찍어먹으라고 장이랑 기름이랑 식초 들깻가루 섞어 만들어 준 양념을 내가 잠깐 한눈판 사이에 탕에 때려 넣어버렸다. 바깥 소리를 안 들어서 그렇다. 아버지는 오늘도 나에게 수고했다고 했고 이별할 때 아쉬운 눈빛을 보냈다.

- 아버지, 금방 또 만날거니까요.
- 사람들이 뭔가 큰 목소리로 얘기하더라도 아버지한테 화 내는게 아니니까 아버지도 흥분해서 화낼 필요 없어요.

엊그제 사무실에 유기견 한마리가 알랑거려서 잡아 묶어서 물이랑 생컵라면 주고 강릉시동물사랑센터에 신고했다. 신고하고 두 시간만에 거기 직원이 와서 기계적으로 개를 데려갔다. 그 개인은 주인이 버린건지 주인을 잃어버린건지. 사람을 보니까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사람이 눈 앞에 안 보이면 컹컹 짖었다. 그 개를 보면서 아버지 생각을 했다. 이렇게 연결해서 생각해도 되나, 나도 아버지에게 너무 기계적인가, 자책감 들면서 아버지를 생각했다.

오늘 청량리역에 두고 내린 전화기를 서울역에서 찾는 바람에 서울역에서 신월동 올 때는 버스를 탔다. 20대 때 참 많이 다니던 노선. 신촌 홍대 양화대교 강서구청 화곡역 라인이다. 시내버스 맨 뒷자리에 앉으니 자리가 높은만큼 풍경이 -시선의 기준점- 약간 올라가 있다.

아버지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보고 있나?

오늘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앞으론 더 많을거고 꼭 아버지 때문은 아니지만 어지러운 하루다.

모레까지 서울에 있으니 오늘은 친구랑 잘 놀고 내일도 아버지 집에 가서 서프라이즈 점심밥 먹어야겠다. 지금 마음은 그러하다.

AND

오늘 벌초했다. 1년에 한 번 하는 벌초. 아버지 고향이 강릉이고 할아버지랑 할머니 두 분 산소가 강릉에 있고 나는 강릉에 살고 장손이라 벌초는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근데 작년에는 빠졌다. 핑계 거리가 있었는지 진짜 빠질만한 이유가 기억이 안난다. 내가 빠지면 강릉에 사는 작은 아버지가 벌초 독박을 쓰게된다. - 삼촌은 혼자 해도 별일 아니라 생각하는 것 같긴 하다. - 암튼 올해는 엄마 뇌수술과 막내 작은엄마 암수술로 벌초하고 산소에 절하는 걸로 추석 차례를 대신하기로 했기에 큰 행사가 됐다.

아마도 아버지 생전에 아버지 남자형제 넷이 다 모인 마지막 날이 아니었나 싶다. 원래 계획은 아버지한테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엄마랑 둘째 삼촌만 강릉에 오려고 했는데, 이모들이 ‘그래도 일우 아바이 정신 조금이라도 있을때,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벌초를 같이 가는게 좋겠다’ 고 해서 아버지도 오게 됐다.

아버지는 어제 데이케어센터에 갔다와서 강릉갈거니까 오산 엄마집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들뜬 기분으로 금요일 퇴근 시간에 가리봉(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가기 위한 버스를 탔다. 그런데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혼란이 와서 어딘지 모르는 곳에 내렸다. 나는 지난번에 아버지가 혼자서 엄마집에 찾아오지 못한일이 신경 쓰여서 계속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가 버스에서 어디서 내렸는지 모르고 현위치를 헷갈리길래 택시를 타고 가리봉역으로 가시라고 했다. 아버지는 택시에서 전화를 했고 택시기사가 구로역으로 가는 중이라고 말하라는 소리가 아버지의 말과 겹쳐들렸다. ‘아버지, 구로역에 내리시면 인천가는 것도 오니까 헷갈리지 말고 천안, 오산, 신창 가는 열차 타세요.’ 얼마후 아버지에게 신창가는 열차를 타는 중이라고 전화가 왔다. 안심했다. ‘아버지 주무시지 마시고 오산역에서 잘 내리세요.’ 아버지가 잘 도착했나 궁금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흥분한 목소리로 방금 집에 도착했고 아버지가 오산역이 아니라 오산대역에서 내렸고 역 앞에 있지 않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바람에 택시타고 돌아다니면서 아버지를 찾았다고 했다. - 오늘 만나본 엄마는 어제 소리를 너무 지른 탓에 편도선이 부었다. - 애가 많이 났을 일이다. 엄마는 아버지랑 집에 돌아오자 마자 왕만두 두 개 넣고 아버지 드실 라면을 끓이는 중이라 했다. 이게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어제, 정처없는 모험가가 되어서 목적지는 있지만 어떻게 가야하는지는 헷갈리는 방랑을 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아버지는 어제부로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으로 확정됐다. 내가 그렇다고 하니 엄마도 쿨하게 받아들였다. 엄마가 잘 받아들여서 좋다.

산소 풀 다 깎고 절하고 술 뿌리고 절 받은 음식 좀 먹다가 강릉 작은 고모까지 9명이 막국수를 먹고 막국수 집 옆에서 커피를 마셨다. 어른들은 수다를 떨었고 나는 아버지랑 많은 얘기를 했다. 주로 한 얘기는 ‘아버지, 잘 하고 있어요.’ ‘아버지, 저희 다음주에 만날거에요.’ 두 가지다. 아버지는 강릉에 오니 어릴때 생각이 났는지 초등학교 두 번 옮겨 다닌일과 학교 주변에 살던 친구들이 멀리서 오는 친구들한테 텃세 부린 일을 내게 말했다. 여름이면 할아버지가 주도해서 안목해수욕장에 물놀이를 두 번 이상 갔는데, 한 번은 괜찮지만 두 번째부터는 음식 준비하는 할머니가 무척 싫어했다는 얘기도 했다. 이 얘기는 저번에 들었던 얘기라 내가 맞장구를 잘 쳐주니까 아버지가 좋아했다. 아버지, 친구들이 텃세부린 얘기도 제가 기억할게요.

다른 친척들은 몰라도 강릉 작은 아버지랑 강릉 고모는 자주 연락하고 싶고 방문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마음처럼 잘 되진 않는다. 작은 아버지 쪽은 아무래도 작은 어머니가 부담스러워서 그렇고 고모쪽은 별 이유도 없는데, 그렇다. 집이 중앙시장근처고 고모 수선집이 중앙시장에 있으니까 가끔 방문해서 이런저런 얘기 좀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잘 안된다.

커피 다 마시고 다들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갔다. 암수술과 뇌수술, 벌초, 형제자매, 두 명의 할머니, 죽어 잊혀진 형제, 잠깐의 즐거움, 명절이라는 부담은 가족이라는 부담, 점점 멍해지는 아버지, 마음같이 되지 않는 일들.

친구 전화를 받고 술 마시러 가기 전에 쓴다.

아내가 엊그제 술 마셨는데 왜 또 술을 먹냐고 해서 삶이 괴로워서 그렇다고 했다. 진심이다. 아내는 그러면 몸도 안좋고 머리도 안좋고 그러면 안된다고 했다. 두 번 연속 거절했기에 세 번 연속 거절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것도 진심이다. 아내가 걱정하는 일이 사랑이다. 우울도 전염되는 것이 사랑.이라고 얼마전에 적어뒀다. 하지만 우울이 전염되는 건 별로다. 내 우울은 기후 우울과 치매 우울과 무주택 우울이다. 세상에 흔한 우울이다. 가을이 왔고 내가 치매에 걸린건 아니고 집도 빚도 없으니 안심하자.

오랜만에 만난 고모가 인상적인 얘기를 했다. 내가 아버지한테 자꾸 아버지라고 하니까, 아버지란 말이 너무 듣기 좋다고 하면서 알려줬다. 본인 어릴때, 다른 애들은 다 밖에서 놀고 집에 돌아올 때, ‘엄마’ 부르면서 오는데, 본인만 ‘아버지’부르면서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고모는 기본적으로 정이 무척 많은 사람인데, 할머니도 좋아했지만 할아버지도 많이 좋아했던가 보다.

오늘은 아버지를 오랜만에 봐서 좋았고 강릉 삼촌이랑 이런저런 얘기한 게 좋았다.

아버지, 다음주에 만나요.

AND

20220816 - 일기

그때그때 2022. 8. 16. 20:18

뭐라도 적으려고 무작정 패드를 켰다. 무작정 살고 무작정 쓴다,면 작정이 있는 삶이고 난 그저 무작정 패드를 켰다. 이 글을 못 끝낼수도 있겠지.

무력, 무감정, 무정, 무작정, 무질서, 무기력, 그리고 인생은 미완성. 요즘 ㅁ의 길을 가고 있다. 언제부터 시작됐다. 항상 내 안에 잠재하지만 발현은 오랜만이다.

출근, 운동, 퇴근, 가끔 술, 무력, 무력, 무력 삶의 곳곳에 무기력이 널뛰고 있다. 그나마 운동 때문에 버티고 있는듯하다. 시간을 내서 체육관에 운동을 하러 오는 사람들, 나도 그 중에 하나라는 게 안도감을 준다. 출퇴근과 술자리는 그렇지 않다. 회사도 술도 재미없다. 회사는 술보다 재미없다. 술은 처음 몇 잔 마시는 동안만 재미있다. 친구가 삽당령에 다녀갔고 또 한 친구가 다녀갈거고, 나의 첫번째 자동차는 몇 년전부터 바꿀때가 됐지만 이제 정말 폐차할 때가 됐고, 엄마가 대뇌동맥류관련 보험료를 많이 타는 바람에 아내랑 나랑은 생명보험에 들었고, 아내는 생애 첫 보험가입이 내키지 않았지만 난 잘했다고 생각하고, 우크라이나 땅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고, 기후파괴로 서울 강남이 물바다가 됐고, 뉴스에서는 침수된 자동차 중에 고가의 외제차가 1,000대란 말을 굳이 하고, 청주시도 물바다가 됐는데, 서울 강남 아니라서 뉴스에서 다루는 비중이 적고, 강릉은 6월에 많이 더웠지만 기후파괴를 심각하게 느낄 정도는 아니고, 아버지는….., 아버지는….., 아버지는 데이케어센터를 좋아하고, 혼자서 드실때는 뭘 드시는지 모르겠고, 아버지를 애정하는 둘째이모는 아버지의 치매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버지는 더 나빠진 것 같은데, 더 나빠진게 어떤건지 구체적으로는 모르겠고, 아버지는 정말로 멍~하고, 아버지야말로 ㅁ을 살고 있고, 아버지는 자다가 깨서 비 떨어지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고, 그 모습을 본 엄마 마음은 심란 심각하고, 그래도 보험왕이 됐으니 덜 심각하고, 나는 집이 없어서 심각한데 더 심각한 사람들도 많고, 그 사람들 때문에 위안을 얻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집있는 사람들이 막 부러운 건 아니고, 어릴때부터 부자들을 싫어했고, 허리통증은 많이 나아졌지만 왼쪽 허벅지가 살짝살짝 저리고, 아내는 집에 없을때가 많고, 집에 있으면 예쁘고 잘 먹으면 사랑스럽고, 독서 모임이 아니면 책을 읽지 않고, 독서모임 덕분에 이상의 날개와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었고, 읽으니 어떤 생각을 하고, 그러니 아직 완전히 무력한건 아니고, 멍하니 있고 싶어서 유튜브 틀어 놓은채 진짜로 멍하니 누워있고, 닌텐도 스위치를 사서 끝나지 않는 모험의 세계에서 한동안 살아볼까 싶기도 하고, 새기타를 샀지만 기타를 많이 치지는 않고, 집에 비싼 악기 하나 정도는 장식으로 있어도 좋다는 누군가의 말을 생각하고, 밤에 잠 못드는 게 커피 때문인지 모기 때문인지 습기 때문인지 모르겠고, 그러다가 들이붓듯 술을 마시면 그날은 푹 자고, 인스타랑 페북을 끊었지만 별일없고, 그러니 처음부터 안했어도 되는건가 싶고, 출근하면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풍경을 찍고 그걸 왜 기록으로 남기는지 아직은 모르겠고, 가끔은 집에서 캔맥주를 마시고, 마시면서 세상의 모든 물건들과 그 경로를 생각하고, 기록에 남지 않은 신화도 떠올려보고 그 말의 이율배반과 언어의 근원을 생각하고, 나는 신화가 되기엔 너무 미래를 살고있고, 그 미래가 견고하거나 견실하지 않고, 내 삶고 마찬가지고,

세상살이가 다 바보같다.


AND

7월도 끝나간다. 언제부턴가 어떤 날짜 뒤에도 올해가 다갔네라고 한다. 의식적인게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다. 작년까지는 춘분지나 하지가 가까워지는 일이 좋았다. 매일 출근길마다 조금씩 길어지는 밝음과 그에 따라 차 안으로 들어오는 빛의 변화 - 매일 비슷한 시간에 출근하니까 - 같은 걸 느끼는 일이 좋았다. 하지는 생의 정점이라는 본능적인 의식 같은 게 있었다.

올해는 그런거 없이 하지를 맞았다. 아버지에게 계속 신경써야 하고 엄마가 갑자기 아프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내 생의 정점을 지났다는 무의식이 내 안에 자리잡았기 때문인 듯 하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나날이 짧아지는 낮의 길이를 느끼면서 퇴근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상승, 정점, 하락. 전성기를 맞아보지도 못하고 요통이 찾아왔다는 얘기를 농담처럼 하곤 하는데, 농담이 아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하락세의 끝을 향하고 있나? 나이 71살에? 내 허리통증과 다리저림은 하락의 시작을 알리는 실제(체)다.

짧아지는 태양과 전지구적인 기후파괴를 자연스럽게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다. 지구도 정점을 찍었고 태양도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나도 내려오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억울하단 생각도 있다. 하지만 인류문명 전체가 쇠락을 향해가고 있으니 나도 나의 사랑도 그 흐름속에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지금은 사상최대의 더위 때문에 난리지만 결국은 차갑게 식어버릴 태양과 지구를 생각한다. 하루하루 사는 수 밖에 없다. 열심히, 최선을 같은 말을 붙이고 싶지 않다. 정점을 찍은 후에는 그저 살아갈 뿐이다. 나의 희망 없음은 허리 통증 때문은 아니다. 이번 계절이, 지금 먹는 게, 이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마흔 다섯에 이런 생각으로 살고 있다.

지난 주말, 아내랑 원주 평창 정선찍고 강릉집까지 잘 돌아다니면서 놀았는데도 그렇다. 뉴스 같은거 보지 말고 '우영우' 드라마 같은 것만 볼까? 네루다의 질문 - 한때 나였던 소년은 어디에 있을까. - 에 답하자면 내 안의 소년은 이미 죽었다.

- > 출근하면 매일 찍는 자리. 2022년 7월의 나는 이런 하늘빛이다. 먹구름이 아니라 다행인가?

AND

엄마 대뇌동맥류 시술이 잘 끝났다. 결전을 앞두고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수화기 너머로 엄마가 웃었다. 아버지는 변동없다. 학교에 간다고 하면서 한달에 12번 데이케어센터에 간다.

a형 아버지랑 s씨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조문은 가지 않고 조의금만 했다. a형 어머니는 최근에 치매로 확정됐고 s씨 어머니도 치매였다고 한다. 치매. 치매. 치매. 환절기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여름이 시작될 때 찾아오는 노인들의 죽음.

함께 살지 않더라도 피로 이어진 누군가가 죽는 건 큰일이다. 아버지랑 추억이랄 게 별로 없는 나도 아버지 치매 확정되고 나니까 옛일 생각이 많이나고 - 유일하게 아버지한테 맞았던 날 같은 거 -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아버지를 만나게 되니까, 아버지 돌아가시면 함께했던 게 더 많이 떠오를거다. 아버지 만난 날을 기록해두고 있으니까 더 그렇다.

아버지는 최근에.
싱크대 배관을 건드렸다가 망가뜨렸다. 왜 건드렸는지는 모른다. - 믈이 잘 안된다고 해서 싱크대에 물이 샌다는 걸 알기까지 5분 통화했다. - 전기밥솥 밥이 안된다고 고장났다고 했는데 고장난 게 아니었다. 왜 안된다고 했는지 모른다. 밥솥뚜껑을 끝까지 잠그지 않아서 취사 버튼이 안 눌렸다고 추측해본다. 에어컨이 돌아가는데 실내온도는 30도인 채로 잠을 잤다. - 두 번 그랬다. - 에어컨 리모콘을 왜 건드렸는지 모른다. 그냥 이버튼저버튼 눌렀으리라 추측만 해본다. 데이케어센터에 가지 않는날 아버지는 심심하다. 센터에 가는 날이라도 돌아와 혼자인 시간이 오면 아버지는 심심하다. 아버지는 심심하다.

둘째 이모는 아버지 살피는 일에 지쳤다. 아버지는 엄마에게도 이모에게도 화를 낸다고 한다. 본인이 한 일을 본인이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이모나 엄마가 아버지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건 아버지의 상태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인가? 내가 아버지에게 덤덤한 것은 아버지에게 기대감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 아닌가? 거의 모든 말을 잃어버린 아버지에게 사랑이 중요한가? 지금 아버지의 삶을 생활이라 할 수 있나? 아버지 거처를 강릉으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게 잘 안되면 돈이 많이 들더라도 데이케어센터에 매일 가는 게 좋을 거 같다. 근데 돈이 없네.

엄마 수술할 때 엄마 옆에 없었고 지금 어느정도 회복이 됐기 때문에 아내랑 엄마한테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 엄마를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아내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런 마음 가질 필요 없는데.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보편적인 정서인가? 배우자의 부모님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님이 엄마 수술한다고 돈 30만 원 보낸것도 그런 종류의 보편 정서란 생각이다. 그 돈을 엄마 보살펴 준 막내이모 드렸다. 엄마가 고맙다고 했다. 막내이모는 내 마음이 고맙다며 또 울었을지도 모른다. 가족주의인가? 마음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형편이 문제다.

이렇게 고도화된 자본의 세계에서 무한리필 고깃집에 가지 않고 셀프주유를 싫어하는 - 고기 얼마나 더 먹는다고. 구워주는 집에서 더 시켜 먹으면 되지. 자동차 기름까지 내 손으로 넣어야 하나? - 내 안의 자본주의가 형편이란 단어로 나를 무겁게 한다. 복권은 맞지 않는다. 아내가 집 갖고 싶어하고 친구들 중에 거의 나만 집이 없다. - 나보다 더 어려운 친구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 자동차를 바꿔야 한다. 집은 글렀고 차를 바꿀 형편은 되지만 새 차 갖고 싶다고 집 갖고 싶어하는 아내한테 말 못하겠다.

얼마전 책모임에서 김수영 시를 읽었는데. 생활 형편 여유 같은 단어가 머릿속에 많이 박혔다.

지구는 더워도 나는 살았으니 일단은 살자. 걱정이 있어도 살자.

-> 돈 보내고 이모랑 톡.

AND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인데, 오늘은 강릉행 기차 안에서가 아니라 엄마한테 가는 길에 쓴다. 가리봉에서 오산 가는 국철. 예전에 많이 다녔던 길 위헤서 지금의 내가 쓴다.

아침에 KTX 청량리역에 내려서 국철로 갈아타면서 바깥의 온도, 습기, 햇살, 냄새 같은 것 다 잊을 수 있어서 지하철이 좋구나, 생각했는데, 국철을 바깥이 보이는 구간이 많다. 그러니까 그 생각은 아버지 만나러 오는 내 어두운 마음을 반영한 거였다.

아버지는, 정체 상태라고 해야하나?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않은 가운데 약간은 물러서는 형국이다. 지난달에 엄마가 아버지를 호출했는데, 가리봉에서 헷갈린 건지 개봉역에서 헷갈린 건지 결국 엄마 집에 못 찾아오고 집으로 돌아갔다. 엄만 많이 속상해했고 나는 아버지 조금 나빠졌나, 생각했다. 둘째 이모 얘기로는 최근에는 정리한다고 그릇을 다 꺼내놓고는 그 상태로 정리했다고 한다고 한다. 아머지는. 오늘도 나를 아침부터 기다렸고 병원에 한 시까지 가야하고 나는 열 두시에 집에 도착하니 식사를 하시라 했는데, 뭔가를 먹었다 했지만 그게 뭔지는 모르고, 그러니 아무것도 안 드셨을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혈압을 재보니 여전히 맥박이 느리고 – 맥박이 점점 느려지다가 죽는 일을 떠올려본다. - 혈압약을 끊었지만 120대의 최고 혈압을 유지하고 있다. 아1버지 육체는 엄마보다는 많이 건강하다. 좋은건가? 좋은거다.

아버지는 오늘 나랑 같이 뭔가 먹지 못한 게 많이 아쉬웠다. 아버지랑 다채롭게 먹고 싶다는 내 마음속의 약속을 나도 못 지키고 있다. 내 의지의 문제다.

아버지 약통 새로 채우고 핸드폰 선택약정(할인) 신청하고 믹스커피랑 두유사서 데이케어센터 들렀다.복지사 선생님과 잠깐 얘기를 나누고 현장에서 6월 가정통신문에 회신했다. 커피 고맙다고 문자가 와서 형편이 이 정도로 죄송하다 했는데, 진심이다. 작은 엄마가 할머니 보러 요양우언에 갈 때 항상 뭐든 사갔다. 나도 몇 번 같이 갔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운일이다. 현금을 잘 갖고 다니진 않는데, 주머니에 돈이 있고 대리운전을 이용하며 운전해 주신 분에게 대리비랑 별도로 만 원짜리 한 장 드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어른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은건가. 나도 그정도의 호의는 받으며 살아왔다. 안 그랬으면 벌써 죽었겠지.

센터 나와서 편의점에서 맥주랑 담배를 샀다. 친구 가게에 들었다. 몸에 안 좋은 걸 한 가지 더 샀어야 뭔가 딸 들어맞는데. 소주가 아니라 다행인건가. 친구랑 짧고 빠르게 얘기 마치고 엄마한테 가는 길이다. 급행을 타서 곧 수원역이다. 굿. 내 인생은 이런 흔한 행운과 그렇지 않은 일, 로또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일이 전부다.

엄마는 내일 입원에서 혈관조영술 한다. 어제 저녁에 전화했을 때, 돼지고기 사러 마트에 왔다고 고기 볶아줄테니 꼭 집에 와서 밥 먹으라 했다. 방금도 문자가 와서 수원역 근처라 했더니 밥솥 전기 꼽는다고 답이 왔다. 직계존속의 존속력이랄까. 끊어지지 않는 어떤 마음들.

언제부턴가 가만이 있어도 화가난다. 국내외 정세, 집안 정세, 지금의 내 모습 때문이다. 아내에게 화를 많이 보이는데 너무 친하니까 과할때가 많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온순해진다,고 결론 지으려는데, 내게 그런 대상은 엄마뿐이고 엄마앞에서 온순해지는 건 사랑보다는 애틋함 때문이다. - 막내 이모는 엄마 머릿속의 꽈리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언니 젊은날 술만 먹다가 늙어서 좋은날도 못보고 죽으면 어떡하냐면서 울었다. - 정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이런모습 저런모습 다 보이게 되는건가?

아버지가 옛날에 말하길, 먼저 전화 온다는 건 누군가 나를 찾는거니까 좋은일이라 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거고 아버지도 엄마도 나를 기다린다. 좋은거다. 나는 부모님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누굴 기다리지? 곧 엄마집에 도착하는데 살짝 어지럽네. 친구 가게에서 마신 맥주 때문은 아니다.

-> 이대목동병원근처 열병합발전소 굴뚝. 인생은 일방통행이 아니고 오늘도 아버지는 사진찍는 나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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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딜라이트란 이름이 붙은 커피를 처음 마셨는데 인생은 그리 밝지 않다.

머릿속 혈관이 꽈리 모양으로 부풀었다는 엄마 때문에 인디아나존스 영화에 나왔던 원숭이 머리 요리처럼 머리 위쪽이 잘린 대형 조형물이 손을 내밀고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에 동생과 함께 왔다. 보호자는 한 명만 출입 가능한 관계로 엄마랑 동생을 들여보내고 혼자서 커피를 마셨다. 엄마 병명은 대뇌동맥류, 얼마전 강수연 배우를 죽음으로 몰고간 그 병이다. 대뇌동맥류와 관련해서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들을 읽고 읽고 또 읽는다. 수술, 부작용, 죽은, 장애. 그런것들.

지난 몇 주간, 세상은 망해도 지금은 열심히 즐기면서 살자는 마음으로 친구들을 만나고 술을 먹고 맛있는 걸 먹고 또 친구들을 만나고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새 기타를 사고 단오제 구경을 한 게 다 바보같다. 안네프랑크며 6.25전쟁 때 피난가던 사람들은 다 뭔 소용인가. - 언제부턴가 맛있는 걸 먹을 때 안네프랑크 생각을 많이 한다. 맛있지 않아도 뭔가를 먹을때면 - 어제 엄마가 아프다는 걸 알았고 저녁엔 아내가 보자고 해서 시릴디옹이 만든 영화 ‘animal’을 봤다. 그건 또 무슨 소용인가.

얼마전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뭔가를 먹을 수 없을 것 같은데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일을 오랜만에 생각했는데, 엄마가 아프단 얘기를 듣고 나서 계속 소설 속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 목숨이 쇠심술 같아서 너를 잃고도 밥이 먹어졌제. - 셋째 이모는 엄마 소식을 듣고 실제로 밥을 못 먹는다고 한다. 사랑인가? 둘째 이모는 그냥 계속 울고 막내 이모는 큰언니(큰이모)가 엄마 나이에 죽었다며 운다. 이모들 없었으면 우리 엄마 어떻게 살았겠나. 고맙습니다.

대학병원에서 교수도 아니고 레지던트가 지금 당장 터지진 않고 터지기 전엔 징후가 있으니 예약해둔 화요일에 와서 외래진료 보면 된다고 한 얘기에 이모들이 안심했다. 대형병원의 권위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6시에 강릉 출발 20시 40분 강릉 도착했다. 당일치기 운전 힘들다. 원주에서 일보고 돌아오는 아내에게선 밥 좀 안쳐주면 고맙겠다고 톡이 왔다. 그게 뭔 대수겠나.

수술까지 다 잘되서
몇 년 후에는 이모들이랑 둘러앉아서 엄마 아프다해서 다들 울었던 얘기하면서 웃는 일로 끝났으면 좋겠다.

지금 내 마음은 소변기마다 주변 바닥에 오줌이 막 튀어있는 연휴 첫날의 고속도로 휴게소 남자화장실 같다.

어제는 오랜만에 자다가 가위 눌렸는데, 목이 잘린 기타를 들고 사라진 엄마를 찾으러 다녔다.

수원 아주대병원에는 단풍나무가 많고 이 동상 제목은 ‘어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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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바퀴벌레를 세 마리 죽였는데, 그 중에 두 마리가 어제였다. 세 마리 모두 예전부터 미국 바퀴벌레라고 부르던 대략 성인 엄지손가락 크기의 대형 바퀴벌레다. 미국은 큰 나라 큰 바퀴는 미국바퀴, 이렇게 쉽게 이름 지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이런 경향들이 남아 있다. 크기에 압도되는 경우에 미국 카페, 미국 헬쓰클럽, 미국 사람 같다거나 하는 일이 그렇다.

내 유년시절인 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는 집에 바퀴벌레가 많았다. 우리집만 많았던 건 아니고 집집마다 많았다. 그때는 무좀도 많았다. 류마티스 관절염도 많았다. 무좀약, 관절염약, 바퀴약 모두 종류도 많고 TV 광고도 많았다. 집에 바퀴가 출몰하면 처음에는 때려잡다가 숫자가 많아지면 끈끈이를 이용했다. 집 구석구석 바퀴가 좋아할만한 곳에 끈끈이를 설치한다. 일단 설치했으면 바퀴가 얼마나 잡혔나 수시로 관찰하게 된다. 끈끈이랑 관련해서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알을 달고 다니던 바퀴가 끈끈이에 잡혔는데, 알이 부화하는 바람에 몇 백마리 바퀴애벌레(?)가 알을 깨고 기어나오면서 그대로 끈끈이에 붙어 죽어 죽음의 하얀 산을 만들었다. 엄마가 이리 와보라 해서 그 광경을 엄마랑 같이 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도 악취미다. 탄생과 함께 죽는일을 생각해본다. 어느시점부터 집안에서 바퀴벌레 보는 일이 거의 없다. 90년대 후반에는 바퀴 잡으면 뒤집어서 태워죽이는 악취미를 가진적이 있으니 2000년대 들어서 바퀴벌레를 대면하는 일이 줄었다. 바퀴 약이 점점 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인간 생활권의 바퀴 숫자는 줄었겠지만 핵전쟁이 나도 멸망하지 않는 동물이 바퀴니까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생각했는데, 우리집에 바퀴벌레가 있다. 그것도 미국바퀴가. 작년부터.

우리집엔 아내가 식물 키우고 내가 올해 고추 한 포기를 심은 야외 베란다가 있다. 거길 가려면 세탁기랑 가스보일러가 놓여있는 공간을 - 아파트로 치면 다용도실인가? - 지나가야 하는데, 그 공간에 미국바퀴가 있다. 작년에는 스무마리 이상 잡았다. 그러고나서 안 보이길래 다 끝났구나 생각했는데, 올해 또 등장했다. 밤에 담배 피우러 나가려고 다용도실 불을 키면 미국 바퀴가 있다. 갑자기 불이 켜져서 얼어붙어 있다. 나도 같이 얼어붙었다가 얼른 쓰레빠를 신고 밟아 죽인다. 좀 더 오래 얼어붙어 있는 쪽이 당한다. 생명을 없애는 일이 기분 좋지는 않은데, 본능적으로 짓밟게 된다. 야외 베란다랑 왔다갔다 하며 사는 애들이니 그냥둘까? 하는 생각을 이 글을 적으면서 한다. 그래 그냥 두자. 어제 바퀴벌레에 대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인간 세상이 끝나가는데, 세상이 끝나도 살아남을 바퀴를 내가 죽여서 뭐하겠나, 란 맥락으로 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어제가 아니다. 바퀴벌레를 살려두자는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바퀴벌레에 대한 작품은 테라포마스가 떠오르는데 만화도 애니도 영화도 다 끝까지 보진 않았다. 화성에 정착한 바퀴에게 인간이 당하는 스토리다. C8 당해도 싸다. 초거대화된 바퀴에게 내가 밟혀죽는 상상을 해본다.

-> 바퀴랑 별개로 2022년 5월 26일, 올해 가장 쨍했던 날을 이 짤로 기억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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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산림총회에 참석하는 건이 있어서 서울 출장 다녀왔다. 4일에 코엑스에 갔다. 서울에서 오래 살았지만 강남 한복판은 여전히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고 어색하다. 출장 마치고 경기도 오산 엄마한테 갔다. 올해 음력과 양력 날짜가 같이 가고 있다. 지난달 24일이 엄마 생일인 걸 알았는데, 따로 연락을 못했다. - 물론 수시로 통화는 한다. - 아내가 용돈 챙겨줘서 엄마 주고 막내 이모네 부부랑 저녁 같이 먹었다. 막내이모 나이가 올해 60이다. 내가 45인건 그런가보다 하는데, 막내이모가 60인 건 어색하다. 이모들 쪽은 아버지 동생들쪽과는 달리 어떤 편안함이 있다. 이모가 엄마 바로 옆에 실면서 엄마를 잘 지켜줘서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밥은 넷이 먹었지만 이모랑 나랑 둘이는 소주도 마셨다. 막내 이모랑 먹는 소주,는 좋다. 노숙자도 자리를 옮기는데, 잘 안풀리면 집도 옮겨야 한다는 얘기랑 이모 작은 아이 처갓집이 돈이 많은 집이라 안심이라고 했더니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철들었다는 얘기 들은 게 기억에 남는다. 걱정이 없는 삶은 없지만 걱정을 적게 하는 쪽이 좋다는 생각이다. 이게 나이 드는 건가?

엄마가 용돈을 보낸 아내에게 연락해야겠다고 하길래 안 그래도 된다고 했다. 문자라도 보낼까?라고 하길래 그럴 것 없다고 했다. 엄마가 웃으면서 알았다고 했다. 며칠 전 메모에 '엄마만큼 애틋한 것도 없다.'고 적었다. 박근혜를 사무치게 좋아하는데 윤석열도 좋아하는 엄마, 골다공증 주사를 맞고 너무 아파서 며칠을 꼼짝도 못한 엄마, 무릎에 자꾸 물이 차는 엄마, 65살이 된 엄마, 아침부터 딸기 갈아서 아들 먹이고 허리 아픈 아들 기치료 데려다 주고 염색하러 가는 엄마, 염색을 하면 많이 젊어보이는 엄마, 어려보인다 하니 좋아하는 엄마, 여전히 계란말이에 양파를 많이 넣는 엄마, 엄마 계란말이 특유의 느끼한 맛이 있다고 하면 양파를 넣어서 그렇다고 하는 엄마, 당신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는 엄마, 아버지 때문에 머리 아픈 엄마, 내 명의로 집을 하나 사지 않은 걸 후회하는 엄마, 계속 당신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는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말 잘 듣는 아이인 것이 좋은 45세의 나.

어제 저녁에는 아내쪽 식구들 7명이 모여서 밥을 먹었다. 밥 먹고 차 마시는 동안 아버님이 올해 고등학생이 된 손주 앞에서 손주 자랑을 하는 레파토리다. 아버님은 7명이 다 모이는 것에 대단히 큰 의미를 두고 있는데, 이버님이 살아온 인생에서 어떤 결핍이 나은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다 모인 건 2년 6개월만이라고 한다. 내 결핍은 어떤 결과를 낳고 있나? 짐작 가는 일들이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게 부자 혐오, 강남 혐오다. 혐오라 할 정도로 혐오하진 않지만 그냥 혐오라 쓰기로 한다.

집에 오는 내내 피곤했다. 낮에 아버지한테 들리는 계획이 있었는데, 엄마 집에서 지체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 혈압이 너무 낮다고 데이케어 센터에서 연락을 받았기에 아버지 약통에서 혈압약을 빼고 아버지 얼굴도 보고 오고 싶었다. 그러지 못한 찜찜한 마음이 남아 있는데 기차 안에서 아버님이 아내가 아니라 내게 전화를 해서 - 낮에도 아내가 전화를 안 받아서 내게 전화하심. - 뿔이 났다. 기차에서 내려서는 아내가 택시 타고 가자고 해서 택시를 탔다. 평상시에 아내가 강릉역에서 집에 갈 때 어디로 가자고 하는지 궁금해서 어디로 가잔 말을 안 했더니 아내가 어디로 가는지 말 안하냐고 해서 목적지를 말했다. 도착해서 계산을 안 했더니 뒤에 앉은 아내가 본인이 계산하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 네가 택시 타자고 했으니 행선지도 네가 말하고 계산도 네가 하라는 마음이다. - 아내도 내 불편함 심기를 알았다. 나도 기분이 나쁘고. 아내가 그러지 말라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서로 풀었지만 이런 상황이 내 결핍이 나은 부작용 중에 구체적인 실례가 된다.

가정의 달은 처음에 누가 만들어서 공표했을까?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이니 가정의 달이란 말이 어색한 건 아니지만 영 입에 붙질 않는다.

요즘 삐딱해서 그런지 어제 아버님이 그래도 문화생활은 다 하고 산다고 말했을 때도 - 오늘 이문세 공연 본다고 했더니 -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영화 한 편만 봐도 문화생활이라 하는 문화는 어쩌다 한국사회에 자리잡게 되었나? 문화생활 앞에 그래도라는 말은 왜 붙는건지.

다음 주말에 문화생활 때문에 서울에 가는데, 아버지 만나서 이것저것 살펴보는 걸 주목적으로 삼아야겠다.

-> 엄마집 앞 오산천. 버드나무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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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다

꼭 갔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은 아버지를 만나야 할 거 같고 데이케어센터에서 보낸 가정통신문에 회신도 해야해서 서울 나들이를 했다. 서울가는 기차에서는 비구름이 불러가려는 날씨가 예쁘단 생각을 했다. 고여있는 물에도 생기가 돌았고 농산 준비를 마친 논밭이 선명했다. 어느밭 한 귀퉁이에 어린 나무가 어린 잎을 피웠다. 아직은 나보다 적게 살았지만 나보다 천년을 더 살지도 모르는 나무. 서울에 오니가 비가 그친 날씨가 예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날씨가 이뻤던 건 연두 때문이었다. 양평 지나서 아파트가 많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순식간에 마음이 삭막해졌지만 청량리 역 앞 화단에 봄이 온 걸 보고 안심했다.

아버지를 만났다. 문자랑 카톡, 통장잔고를 확인했다. 약통에 약을 확인하고 전파사에서 사온 티비 리모콘 세팅하고 변기에 앉으면 눈앞에 보이는 벽에 ‘변기 물 내릴 것’ 써 붙이고 늘 그렇듯 잘 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밥 먹었다. 별다른 옵션이 없어서 또 순댓국 먹었다. 난 보통, 아버지는 특. 먼저 나랑 먹고 또 드신적 있냐고 물으니 그때 먹고 처음이라고 한다. 배부르면 억지로 다 안 드셔도 된다고 했는데, 꽤 많은 양을 천천히 다 드셨다. 아버지는 원래 천천히 드시는 편이다. 최근에 뭐든 조금 급하게 먹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천천히 드시는 모습에 안심했다. 밥 먹으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에 대해서 꽤 자세히 설명을 했는데, 나는 뭔 말인지 대충 알아들었지만 명사를 하나도 떠올리지 못하니 설명이 잘 안됐다. 뭐든 촉촉할 때가 맛있다는데 아버지랑 먹는 순댓국 안에 고기를 항상 먹먹하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를 좋아해서 다행이다. 뭔 일 있으면 나한테 알려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좋을텐데,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구나. 아버지 얼구링 먼저보다 좋아보였다. 그것도 좋은 일이다. 날 만나서 아버지가 많이 좋아했다. 그게 제일 좋은 일이다. 날 만나는 아버지 마음에는 미암함과 좋은이 뒤섞여 있다. 혈연인가. 사랑인가. 조만간 낮에 통화할 때, 오늘먹은 집에서 순댓국 2인분 포장 주문 – 아버지는 포장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못함. 순댓국이란 단어도 – 하도록 유도해 봐야겠다.

1호선 타고 청량이 오는 길에 멀리 남산타워가 보이고 남산 중턱에 벚꽃이 아직 환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다. 언제가지 봄이 차자오려나. 일단 올해는 봄이 찾아왔다. 아버지도 괜찮다. 그러니 됐다.

당일치기 서울 왔다갔다 피곤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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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엔 삽당령에 눈이 20센티미터 이상 왔고 - 사무실 바로 앞에 기상청 관측 장비가 있고 사무실 모니터로 그 내용을 볼 수 있다. - 토요일엔 강릉 시내에도 눈이 왔다. 세차게 떨어지는 눈을 뚫고 점점 무거워지는 우산의 무게를 느끼면서 아내랑 강릉역에 도착했고 청량리역 근처도 하늘이 무거웠다. 아내는 기다리던 이승윤 단콘 보러 잠실에 가고 나는 아버지 만나러 신월동에 갔다. 아버지는 최근 두 달 사이에 이 두 개를 뽑고 틀니를 했다.

- 아버지, 치과에서 또 오래요?
- …..
- 아버지, 치과에서 틀니를 어떻게 하래요?
- …..
- 아버지,
- …..
- 잘 하고 있어요.
- 어, 그래.

데이케어센터에서 준 가정통신문(?)에 회신할 사항이 있어서 내용 작성했다. - 아버지, 월요일에 잊지 말고 갖다주세요. - 아버지가 약을 잘 드시고 있는지 남은 약을 확인했다. 약이 모자라거나 남지 않아서 안심했다. - 아버지, 잘 하고 있어요. - 혈압약은 4월초, 치매약은 6월 중순에 받으면 된다. 아버지 핸드폰에 온 문자랑 카톡을 확인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글자를 잊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문자나 카톡을 전혀 확인하지 못한다. 아버지 친구 엄마가 돌아가셨고 통장에 돈이 없어서 지난달 카드요금이 1,040원만 인출됐고, 이달에는 카드 누적사용이 130만원을 넘었다. 지난달에는 치매약값 때문에 이달에는 틀니 때문에 카드 사용량이 많다.

- 아버지, 돈 떨어지면 얘기하세요.
- 알았어.
라고 했지만 아버지 머릿속에 돈에 관한 것은 생활비를 아껴서 살아야한다는 것과 매달 공과금을 빼 먹지 말고 내야한다는 것 두 가지 뿐이다. 두 가지라도 유지하니까 다행이다. 나머지는 내가 챙기면 된다, 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이 착찹하다.

나이 먹는 건 무너지는 일이다. 정신이 무너지고 이가 무너지고, 그렇게 하나하나 무너지다가 마지막엔 사람이 통째로 무너진다.

아버지랑 같이 저녁 먹을까 하다가 왠지 내키질 않아서 그냥 잠실에 왔다. 몽촌토성역 앞에 버거킹이 있어서 오랜만에 와퍼를 먹었다. 서울이라 그런지 (씨팔) 송파구라 그런지 강릉에서 보다 맛있었다. 버거는 맛있는데, 아버지랑 같이 밥 안 먹은 거 후회했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에 눈 쌓이듯 후회가 쌓인다. 눈녹듯 녹을날이 있겠나? 4월초엔 꼭 순대국 아닌걸로 같이 먹어야겠다. 꼭.

일요일엔 이승윤 공연을 봤다. 잘 하더라.

스스로 정치적으로 극좌파라고 하면서 3년안에 내 집을 갖고 싶어서 부동산 학원에서 부동산을 배우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먼저 우리집에 왔을 때, 얼마 안되는 돈을 어디에 투자해야 하나 포트폴리오 짜고 있던 게 기억났다. 봉쇄수녀원과 명리학과 투자 포트폴리오와 부동산 학원과 부모님과 함께 사는 21억 짜리 아파트와 대선에서 3번을 찍는 행위를 생각한다. 언젠간 네가 싫어하는 네 아버지가 네 집을 사줄 것이다.

인생이란 그런것이지, 란 말을 많이 하는데. 체념에 가깝다.

오늘은 3월 21일, 춘분, 사무실 뒤쪽 소각장에 고양이 공간을 마련했는데 주말 사이에 눈밭을 뚫고 고양이가 밥 먹으러 다녀가서 기분 좋았다. 눈이 많이 왔기에 가뭄이 약간은 해소된거 같아서 안심이다. 눈의 낭만보다는 해갈이란 현실이 중요한 40대 중반이다. 기후 파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지만 오늘은 춘분이니까, 봄은 살아야 하니까, 오늘만큼은 부정을 나열하지 않기로 한다. - 이미 위에 해버렸나?

체념하더라도 살아야지.

-> 지난주 금요일 사무실 창고 위쪽, 딱 이 정도의 낭만만 있는 40대 중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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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친구가 다녀갔다. 서울에서 여섯 시에 출발한 친구랑 아침에 만나서 보헤미안 모닝세트 먹고 삽당령으로 올라와서 두 시간 등산 후에 불 피워놓고 술 마셨다.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유튜브에서는 뭘 보는지,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는 시간이 좋다. 친구란 그런 것이다. 친구가 삽당령을 좋아해서 좋다. - 지난해 초에 처음 왔는데 올해 안에 10회 방문 채울 듯 -

중학교 올라가는 친구 큰아이가 자살충동과 우울증에서는 다소 벗어났고 중학교 때는 본인 모르는 친구들 있는 학교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 살아온 경험치가 적을수록 다 잊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을 먹는 조건을 갖추는 일이 더 중요하다. - 토요일에 잘 놀고 일요일 아침부터 친구가 심각한 통화를 하길래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아이가 친구집에서 돈을 훔쳤다고 하면서 괴로워했다. 나한테 ‘어떻게 하냐’고 자꾸 묻는데, 괴로웠다. 나도 괴로운데 친구는 훨씬 괴롭겠지. 아침밥도 안 먹고 올라간 친구에게 칭찬 자꾸 해주고 부모가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라는 톡을 보냈다. 삶이 너무 팍팍한데 고맙다고 답이 왔다.

친구야, 또 와.

어젯밤에 오늘 출근하기 싫다고 했더니 아내가 안쓰럽게 바라봐줘서 좋았다. 진짜 출근하기 싫은건지 아내의 위로가 받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반반이다. 삶은 계속되고 출근은 해야 한다. 오늘 출근길에는 아내를 터미널까지 태워줬다. 터미널 오거리에서 선거운동 하는 사람들을 보던 아내가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확보했는데, 잘했으면 윤석열이 국힘대선 후보로 나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다. 뭘 잘했어야 하는거지? 중대재해처벌법? 차별금지법? 검찰개혁? 딱히 뭘 잘했어야 하는지 떠오르질 않는다. - 이번 정부의 코로나 대응과 외교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 확실한 건 나랑 아내가 속 시원할 일은 한국 사회에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정치에는 정치만의 공학이 있으니 완전히 새로운 판이란 건 없다는 걸 안다. 한 친구가 대선 후보 중에 찍고 싶은 사람이 없다면 투표 안하는 것보다는 무효표를 만드는 것으로 정치적 주장을 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는데, 그런 소신이 부질없다 느꼈다.

영화 제목이랑 친구들처럼 아버지가 되지는 못했지만 하루하루 점점 아재가 된다.

아버지가 된 아버지는 치매에 걸렸고 주간보호시설에 몇 번 가보시더니 거기 가면 재미있고 좋다고 하신다. 다행이다. 아무 때고 전화해도 된다고 했더니 아침 5시 반에도 6시에도 6시 반에도 전화한다. 아버지가 나한테 전화하는 걸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다. 아버지에게는 주말에는 내게 전화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는데, 그걸 잊고 나한테 먼저 전화하는 쪽이 안심이 된다.

내일부터 3월이네, 어떻게든 되겠지.

속수무책으로 남의 나라 전쟁을 바라보는 일이 나를 무력하게 만든다.

- > 4월이면 이 근처에서 또 붓꽃이 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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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에 아침부터 늦게까지 아버지랑 함께했다. 아버지는 장기요양보험에서 인지지원등급을 받았다. 등급서류를 실수로 버린 줄 알았는데, 옷장 안 깊이 둔 것이었고 그러는 바람에 찾느라 애 먹었다. 치매약은 네 달치를 받아왔고 주간보호시설(데이케어센터) 입소 계약서를 썼다. 입소를 위한 건강검진을 받았고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증명하는 가족관계 증명서를 뗐다. 이리갔가 저리갔다 하는 바람에 많이 지쳤다.

나도 지쳤는데, 아버지도 지쳤을 것이다. 어김없이 함께 순댓국을 먹고 아버지 약통 28칸에 약 일곱 알씩 넣으면서 ‘잘하고 있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반복이 약간 지겹기도 한데, 아버지는 외로운 삶에 아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일이 좋다. 병원에 갈 일이 없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아버지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순댓국 말고 다른것들을 아버지랑 함께 먹고 싶다.

2014년 12월, 섬 생활 정리하고 강릉으로 이사오기 전에 아버지 집에 한 달 정도 머물렀었는데, 아버지 생일에 고추잡채 만들어서 아내, 나, 아버지 이렇게 셋이 먹었다. 나는 술 안 먹고 아버지 소주 한 병 따라드렸다. 그날이 아버지 온전하던 시절에 함께 밥 먹은 마지막 날이고 아버지한테 처음이지 마지막으로 술 따라드린 날이고 내가 먹을거 만들어 드린 유일한 날이다. 그때로부터 6년이 넘게 지났다. 허망하다.

아버지는 다음주부터 일주일에 세 번, 한달에 열두번 데이케어센터에 갈 것이고 센터에 가는 날은 우리 아버지 오늘은 뭘 드시나 걱정 안해도 된다. 장기요양보험에서 월 597,600원을 지원받고 본인 부담금 40% 감경대상자로 센터이용에 대한 본인부담율을 9%다. 밥값 10,000원 지원대상이 아니지만 하루에 14,000원 정도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숫자로 계량되는 세계, 숫자는 질서, 어떤 질서가 있는 세계, 숫자가 주는 편안함이 있다.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좋지만 앞으로는 복지시스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될 것 같다.

15일에 검사받은 건강검진 증명서랑 코로나 음성확인서 원격으로 떼느라 애 먹었다. 나는 수화기 너머로 애먹었지만 당사자인 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답답했을 것이다. 아버지 수고했어요.

지쳤다와 지겹다와 지루하다
지쳐서 지겹고 지겨우니 지루하다
몸이 지쳤지 아버지한테 지쳤던 건 아니다. 미치도록 지겨운 건 아직 없다. 다행이라 생각하자.

아버지랑 별개로 요즘 전반적으로 지겹고 지루하다. 지루할 틈도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배부른 소린가? 오래 살았다,는 느낌은 아니고 충분히 많이 살았다는 느낌이다.

치매약 받아서 집에 가는 길, 약국 근처에 먼저까진 안 보이던 커피집이 생겨서 아버지랑 2,800원짜리 라떼를 한 잔씩 마시면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열영합발전소 굴뚝을 보면서 추운날은 연기가 더 하얗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잠깐 멈춰서 굴뚝 사진을 찍고 아버지는 그런 나를 기다렸다가 함께 좌측으로 코너를 돌아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 장면이 그림처럼 기억에 남았다. 커피가 맛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자.

아버지, 잘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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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2월 10일, 올해가 다 갔다. 숫자로 계량해도 10분의 1이 지났다.

곧 봄이다. 아직 통계가 나오진 않았겠지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일교차가 큰 느낌이다. 겨울 가뭄은 일상화 됐다. 올해가 다 갔지만 산불도 그렇고 농사도 그렇고 대선도 그렇고 남은 올해가 걱정이다. 걱정하는 중년이다. 별거 아니다.

1979년 2월 6일은 친구 세 명의 생일이다. 친하니 친구라 하겠지만 세 명 다 친하고 그 중에 둘은 그냥 친한 것 이상의 감정이다. 역학이나 별자리 같은 것으로 내가 태어난 날인 1978년 9월 23일과 79년 2월 6일의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까? 가수 나얼이 나랑 같은 날 태어났는데, 나얼 베프 중에도 79년 2월 6일에 태어난 사람이 있지 않을까? 78년 2월 6일에 태어난 학교 선배는 밥 딜런과 본인 생일이 같다는 얘길 종종 했는데, 알만한 사람은 아는 뮤지션이 됐다. 생일은 365개로 분류한 혈액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걸 단순화하면 별자리가 되겠지. 생일이란 건 살아가는 사소한 재미 중에 하나다.

세 친구로 돌아가서 그네들 생일이면 잊지 않고 간단한 메시지라도 보내주곤 했는데, 올해는 일절 연락하지 않았다. 왠지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연락하고 싶지 않아, 생각하면서도 계속 신경은 쓰였다. Y에게는 생일 다음날 전화했다. DS에게는 오늘까지도 연락하지 않았다. MJ는 인스타에 본인 생일 관련된 포스팅을 올렸는데, 그걸 보고도 나는 하트를 누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왠지란 말로 모든 대답이 이루어지는 세상과 그 세상의 혼돈을 생각한다. 왠지 귀찮았다? 왠지..... 답을 찾는 과정이다.

의미 없는 것에 대한 답을 찾는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중년이 됐다. 그럴듯하지 않다. 15,000일 넘게 어찌어찌 살았고 중년이 됐다. 그럴듯하다. 15,000원이 별거 아닌 듯 15,000일도 별거 아니다. 15,000광년은? 아늑하지만 별거 아니다. 숫자는 그런 것이다. 삶도 그렇고.

다시 세 친구로 돌아가서 Y는 전문 기술직이고 건물주고 재산이 많아서 중산층이라 부르기엔 너무 부자지만 그렇다고 최상위 부자는 아니다. MJ는 전문 기술직이고 20대 때도 이미 본인 명의로 마포구에 아파트가 있었다. 고급 기술자라 먹고 사는데 문제 없다. DS는 고정된 직업이 없고 자유롭게 사는 것 플러스 이런저런 일들로 Y에게는 얼마 안되는 8자리 숫자의 빚이 있고 현재는 빚 갚으면서 친형이 하는 요식업 일 도와주고 있다.

얘네들을 보면서 같은 날 태어나서 다르게 사는 것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나얼이랑 나도 다른 삶을 살고 초등학교 때 친구 중에 나랑 생일이 같았던 호철이도 떠오른다.

일찍 자면 꿈을 길게 꾸는 경우가 많은데, 어제 일찍 잤고 연작으로 꾸는 꿈을 꿨다. 나이도 먹었고 직업도 있는데, 졸업을 못해서 <여전히 학교에 다니는 꿈>이다. 꿈에 대학 동창들이 많이 나왔다. 나는 뭣 때문인지 텐션이 100까지 치솟은 채로 친구들에게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여전히 학교에 다니는 꿈>에서 졸업을 위한 마지막 시험을 봐야 하는데 강의실이 어딘지 몰라서 답답해 하다 깨는 경우가 많은데, 어제 꿈은 그 내용은 아니었다.

같은 설정의 꿈, 뭔가 풀리지 않는 일이 있나? 그 답은 나만 알겠지.

생일 축하 연락을 안하면서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 DS에게 이번주가 가기 전에 연락 한 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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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1월이 다 갔다. 올해가 다 갔다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하지 무렵이면 한 해가 다 갔단 생각이 들었는데, 나이들수록 그 시기가 빨라진다. 작년인가 재작년에는 2월이 시작하자마자 올해가 다 갔다는 느낌이 들었고 올해는 1월 첫 주가 지났을 때, - 사실은 1월 2일에 첫 출근을 했을 때 – 한숨 쉬면서 ‘올해가 다 갔네’ 했다. 나이 먹는 거랑 관계있는 거 같은데, 나이 들면 시간이 빨리 가는지 늦게 가는지 아인슈타인은 시간의 상대성에서 그런 걸 얘기하기도 한 건지. 나는 시간이 빨리 간단 생각을 할 정도로 열심히 않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는 우울하다. 아내가 중년 우울증이나며 장난으로 말했는데, 우울증은 아니다. 약간 침체기긴 하다. 원인은 크게 세 가지 정돈데, 비율로 치면 아버지, 내 허리통증, 내년 3월의 – 올해가 다 갔기에 - 이사다.

아버지는 안 좋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요양인정등급을 받았다. 주간보호 – 시설에 가는 것 – 를 받을 수 있다. 아버지는 상태가 어떻고 저떻고 말할 것 없이 그냥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다. 겉으로 멀쩡한 거 같아도 실제론 온전하지가 않다. 설 지나고 서울가서 주간보호 어디로 갈지 등을 정하고 함께 방문도 해보고 해야 한다. 핏줄이 뭔지 이런저런 일처리가 귀찮은 건 아니고, 아버지가 걱정될 뿐이다.

허리 아픈 건 많이 나아졌다. 프롤로 주사 치료를 오늘까지 두 번 받았다. 고농도 포도당 주산데, 의사 얘기로는 힘줄을 재생시켜 준다고 한다. 먼저는 너무 아팠고 오늘은 덜 아팠다. 암튼 효과가 있다. 허리 아파서 운동을 못하니까 약간 스트레스다. 일상이 깨졌다. 운동을 안하는 일상에 아직 적응이 덜 되서 스트레스가 있나, 생각한다. 수영장에서 걷기라도 해야겠다.

이사는. 음......언젠간 내 집을 가질 수 있을까? 의문 속에 산다.

아내가 빌려온 ‘긴긴밤’을 읽었다. 이렇게 쓰면 대상을 받을 수 있다. 심리적 침체 원인 중에 신춘문예 또 탈락한 것도 있구나. ‘긴긴밤’은 슬픈 얘긴데, 울지는 않았다. 아버지도 슬픈 상탠데 아버지 때문에 울지는 않는다. 두 가지 울지 않음이 같은 맥락이다. 이 역시 나이 먹음과 연관지어 본다. 요즘 자꾸 네 시 반에 눈이 떠지는 것도.

59p.
노든은 악몽을 꿀까 봐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날은, 밤이 더 길어진다고 말하곤 했다. 이후로도 그들에게는 긴긴밤이 계속되었다.

페이지 미상.
하지만 치쿠가 걱정을 시작하면 윔보가 희망적인 얘기를 해주고, 윔보가 걱정을 시작하면 치쿠가 희망적인 얘기를 해 주었기 때문에 둘은 괜찮을 수 있었다. 알을 품는 하루하루가 치쿠와 윔보에게는 값진 날들이었다.

26p.
노든이 얼굴을 이리저리 더듬어 보았지만 딸은 움직이지 않았다. 노든은 아내에게로 갔다. 아내는 뿔이 깊게 잘려 나간 채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노든은 아내의 코에 자신의 코를 맞댔다. 노든의 코에 피가 묻었다.
밤보다 길고 어두운 암흑이 찾아왔다.

어젯밤에는 술 취해서 ‘중년의 사랑’ 이란 걸 적었는데, 아내랑 나도 윔보와 치쿠처럼 서로 희망적인 얘기를 해주면서 괜찮을 수 있는 사랑을 해야겠다.

세상이 무너져도 사랑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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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어둡다,고 기차에서 적어뒀다. 동지는 지났지만 해 길어지려면 한참이고 오후 7시 22분 기차를 타서 더 그렇다.

     아버지 장기요양보험 때문에 의사 소견서 받으러 다녀왔다. 원래는 1월 4일에 갔어야 하는데, 담당의사 개인 사정으로 일주일 밀렸다. 아버지 치매를 인지한 게 햇수로 3년이고 알츠하이머 진단서 받은 것도 6개월은 넘었는데, 이제 장기요양등급 심사받는 절차를 밟고 있으니 일주일 밀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일처리를 조금 더 급하고 빠르게 했어야 하나, 생각도 해보지만 너무 늦지만 않으면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3시 45분 예약이었고 3시 30분 정도에 병원에 도착했다. 진료가 끝난 건 4시 50분이었다. 긴 기다림의 시간동안 아버지랑 나는 똑같은 대화를 나누고 나누고 나누고, 병원 안 편의점에서 망고 주스를 사 먹고 똑같은 대화를 또 나누고 나누고 나눴다. 코로나만 봐도 그렇지만 병의 가짓수가 사람 숫자를 따라잡을 수 없어서 세상에는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참 끝에 만난 담당 의사의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인사가 기계처럼 느껴졌다. 의사를 욕하는 건 아니다. 직업이란 기계적이고 오래 기다린 내 마음이 의사의 진심을 부정적으로 느낀 걸 수도 있다.

     같이 저녁을 먹으면 강릉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늦기도 하고 일부러 아버지와 저녁밥을 같이 먹고 싶진 않은 내 마음에 끌려서 병원 나와서 아버지랑 헤어졌다. 나는 건강보험공단에 소견서 제출하고 지하철로 청량리 이동, 아버지는 동네에 종점이 있는 버스를 타고 이동이다. 아버지는 당연히 어디서 버스 타야 하고 몇 번 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 목동이 일방통행이라 익숙하지 않으면 어른들도 어려움 - 아버지 버스타는 곳에 바래다줬다. 길 건너편에서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걷는데, 아버지가 작아보였다. - 차선 네 개 건너에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 뒤쪽을 보니 아버지가 타야하는 버스가 보였고 아버지랑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 지금 이 차 타시면 돼요’ 소리를 지르고 아버지가 버스에 타서 버스 요금 결재하는 걸 한참 지켜봤다. 아버지의 버스가 20미터도 못 가서 신호에 걸렸고 우리 아버지 어디 앉았나 버스 안을 들여다보다가 아버지랑 눈이 마주쳤다. 서로 반갑게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30분 후에, 방금 집에 도착했고 오늘 수고했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차비하라고 5만원 주길래 몰래 지갑안에 다시 넣어줄까 하다가 그냥 받았다. 살면서 아버지한테 용돈 받은적이 별로 없는데 - 아버지가 돈이 있었던 적이 별로 없어서 - 아버지의 무의식에는 아들 용돈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닌데, 아버지도 엄마도 항상 수고했다는 말을 하는 것도 조금 마음에 걸린다.

     아침의 강릉역에서 지난 세기의 99년에 나온 에이치오티4집을 틀어놓고 나보다 어린 게 분명한 사장이 활기차게 영업준비를 하는 토스트 집에서 커피를 한 잔 사 먹었다. 아버지 동네 시장에서는 활짝 핀 배춧잎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버지는 반복해서 들어도 계속 잊어버리는 사람이 됐고 나도 사진 속의 배춧잎 같은 시기는 지났다. 살면서 어떤 성취감을 느끼지 않는다. 뭔가 쓸쓸하네.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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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다. 밤사이에 눈이 왔다. 3시부터 6시 사이에 집중적으로 눈이 올거라고 한 일기예보가 정확했다. 다섯시 반에 일어났다. 눈은 이미 30센티미터 가까이 쌓였다. 특설령, 성탄제같은 오래된 단어들이 떠오르고 그 단어들이 들어간 시를 떠올렸다. 크리스마스라서 일찍 일어난 건 아니다. 그저 어제 일찍 잤다. 나이 먹음이란 설레임이 사라지는 일인가 생각해본다. 1984년 7살 때 크리스마스가 기억난다. 당시에 태권도장을 빙자한 유치원에 다녔다. - 영어, 수학, 미술까지 가르치는 한국 태권도장의 교육 시스템이 멀리 구미에도 위용을 떨치고 있다는 얘기를 어디서 읽었다. 암튼 그 한국적인 태권도장에 이종사촌 아이랑 두 살 어린 내 동생도 같이 다녔는다. 크리스마스때 산타 복장을 한 선생님이 우리집에 와서 선물을 주고 갔다. 내 건 소리만 나는 광선총이었고 동생 건 광선총보다는 값싼 장난감이었다. 나랑 동갑인 이종사촌 아이는 나랑 같은 걸 받았다. 산타 할아버지가 동화 속 이야기란 걸 안 건 내 또래들이 같은 선물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기 전이다. 엄마랑 이모가 선물값을 얼마씩 내야 한다는 얘기를 나누는 걸 들었더랬다. 그렇다고 내가 뭐 엄청 조숙한 아이였던 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의 얘기 듣는 걸 좋아했다. - 엿듣기와 엿보기, 어른들의 세계란 아이들에게 항상 흥미로우니까 - 나이 먹음이란 설레임이 사라지고 어린시절의 어떤 순간을 머릿속에서 각색해 내는 일인가 생각해본다.

설레임은 기대, 기대는 소망, 암튼 다 크리스마스랑 어울리는 말들이다. 올해 유일하게 기대했던 일이 신문사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해서 상금도 타고 작가 소리도 듣는 거였는데, 실패했다. 상심했지만 세상에 잘 쓰는 사람이 많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등단이 간절했다면 사람들이랑 이런 얘기를 주고 받지도 못할 것이다. 매년 떨어지는 일인데, 올해 유난히 기록에도 남기게 되는 건 허리가 아파서 상심이 더 크게 느껴져서다. 살면서 허리 아파본 일이 없는데, 지난주부터 허리가 아프다. 스쿼트 자세를 바꿨는데, 그게 잘못됐는지 거동이 불편한 지경에 이르렀다. 버티다가 어제 병원에 갔다. 너무 아파서 작년의 아버지처럼 디스크가 터진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디스크 쪽은 아니고 근육이 아주 많이 경직돼 있다는 진단이었다. 여자 프로배구 중계를 즐겨본다. 운동선수들은 운동이 직업이니까 시합전후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풀어준다. 내 운동에는 그게 없었다. 아픈 건 내 탓이다. 그래도 화가 난다. 허리 아픈건 핑계고 허리 안 아팠으면 등단 실패에 대해서 며칠동안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어제 퇴근길에 요약할 수 없는 삶을 산다는 게 어떤걸까, 막연히 생각해 봤다. 얼마전의 메모에는 ‘나는 곤조는 있지만 신념으로 살진 않는다.’ 고 적었다.

신념이 있다는 건 박근혜 사면에 대해서 너무 화가 나서 며칠동안 잠도 못 자고 청와대 앞에 피켓이라도 들고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박근혜 사면 속보가 뜨자마자 ‘이 아주머니가 몸이 많이 안 좋나? 감옥에서 죽으면 여러가지로 곤란한 일들이 많을테니 사면을 하나’ 생각했다. 피노체트의 아내가 99살까지 살고 죽었다는 소식에 기쁨에 겨운 칠레 시민들이 노래부르고 축제를 벌이는 영상을 봤다. 이순자는 전두환보다도 더 조용히 죽겠지. 나도 누군가에겐 나쁜 놈이지만 확실하게 나쁜놈은 욕하고 보는 솔직한 세상에 살고 싶다.

시베리아 제트 기류가 어쩌구 하는 때문에 중국 대부분 지역에 한파가 몰아닥쳤다는 날씨 뉴스를 보고 오늘부터 우리나라에 온 한파도 그 영향이겠구나 생각했다. 어떤일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 기후파괴에 관심이 많음 - 이렇게 연관해서 생각할 수 있다. 세계지도적으로 보면 기후파괴의 피해 측면에서 한국은 중국과 같은 라인에 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긍적적이지 않다. 지금, 최고 풍요의 시대를 살아본 것이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적은 시에는 살아야겠다, 살아야한다, 는 느낌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생각이 잘 안 든다. 그래서 예전만큼 시를 많이 못 쓰나보다. 설레임도 화도 신념도 살아야겠다는 희망도 없다. 그럼 뭐가 남지?

사랑인가?

인류의 미래야 흘러가는대로 흘러갈 것이다. 이 일기를 쓰는 일을 포함해서 뭔가 하고 있다는 건 살아있고 싶다는 뜻이고 바로 그게 사랑이다.

- > 예쁜 걸 많이 보지만 엊그제 상고대는 정말 예뻐서 잘 걷지도 못하는 허리를 부여잡고 회사 근처로 나가서 찍었다. 예쁜 걸 쫓는다는 건 살아있단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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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만나고 강릉 돌아오는 길이다. 오늘도 기차 안에서 글을 끝내야지.

노인장기요양 인정 때문에 건강보험공단 직원이 아버지 집에 방문했다. 몇 가지 묻고 절차 얘기해 주고 돌아갔다. 우리 아버지의 담당자로 지정된 사람. 장기요양인정 신청서를 접수해 줄 사람. 직업 때문에 수시로 치매환자를 만나는 사람. 고된 일이다. 의사소견서 받는 병원 예약이 올해 안에 어려워서 소견서 제출일자를 조금 미뤄 달라고 공단에 전화를 했다. 전화 끊으면서 진심으로 고생 많으십니다, 했는데 상대도 진심으로 선생님이 더 힘드시죠, 해서 위로가 됐다.

지금의 아버지는 가볍게 생각하면 20년 먼저 90살이 된 사람이다. 아버지가 무거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무겁게 생각하지는 않을란다.

오늘 아버지는 누룽지를 꼬들꼬들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공단 직원이 말한 세 개의 단어를 방금 따라 읽고도 10초 만에 다 잊었다.

오늘 내가 아버지한테 한 얘기는 아버지 지금 잘하고 있어요. - 항상 가장 많이 하는 말- 요새 잘 못 드시는 거 같애 얼굴을 보니까 좀 야위었어. 많이 주무시는 게 좋아요. 억지로 일찍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아버지 허리 펴고 천천히 걸으세요. 등이다.

공단 직원이 돌아가고 시장에 가서 아버지랑 순댓국을 먹었다. 왠지 허기가 져서 둘 다 특으로 시켰다. 아버지가 나에게 특별하던 시절을 지나 내가 아버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됐다. 아니면 부모 자식 관계는 항상 특별한 것이리라. - 이놈의 가족주의 - 내가 그릇을 비우자 아버지는 그거 처음에 돈 더내고 먹는 그거 먹을 걸 그랬다고 한다. 아버지 지금 먹는게 특이예요. 했다. 그랬어? 그러면서 이버지가 웃었다.

순댓국이 먹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먹었다는 뉘앙스의 얘기가 나왔다. 한 달에 편히 쓸 수 있는 돈이 15만원이니 그럴 수 있다. 아버지 드시고 싶은거 있면 사 드시고 돈 떨어지면 얘기하세요, 했다. 아버지는 돈이 없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상태다. 돈이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건 긍정 요인인가?

노인일자리 신청한다고 해서 그러시라고 했다. 잘 되면 좋은 거다. 수입도 생기고 외로움도 덜할 것이다. 오늘 나를 만나는 일 때문에 들뜬 아버지는 전화기도 챙기지 않고 시장통에서 나를 기다렸다. 집에 갔는데 아버지가 없어서 아버지 찾으러 나갔다가 터덜터덜 집쪽으로 돌아오는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가 아직은 길을 잃어버리진(잊어버리지) 않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1월 4일에 또 만날 거라고 했더니 얼마남지 않았다며 좋아했다. 아버지가.

아버지, 저랑 1월 4일에도 만나고 15일에도 만나고 2월 15일에도 만날거에요. 드시고 싶은거 있으면 사 드시고 돈 떨어지면 저한테 전화하세요.

-> 신월동 이미지. 김포공항 없앤단 얘기가 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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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성소수자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다가가는 얘기다. 뉴스나 소설에는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해치는 얘기가 많지만 보편적인 부모 자식 관계는 서로 다가가는 관계다. 애정이 있는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통칭 인류애라 하자. 사랑이라 할까?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세상에 알리는 영화이기도 하다. 성소수자도 소수고 그 부모도 소수인데, 그 부모 모임에 나오는 부모는 더 소수다.

인간이란 개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조금만 생각해봐도 누구나 다 소수자다. 권력을 가진 소수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다. 직업으로 생각해보면 재벌 총수, 판사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몇 명 없다. 대통령은 얼마나 외로울까? 내가 대통령이라면 외로워서 우울증 걸릴 것이다. 재벌들은 다 마약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차별을 모른다. 모든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그들은 가해자다.

나는 어떤 면에서 소수자인가? 영화 보고나서 머릿속에 이 문장을 넣어놓고 생각해 봤다. 나는 한국에서 남자고 장손이고 공사감독관 같은 걸 해야하는 직장에 다니고 운동신경은 별로지만 힘은 세고 고등학교 때는 공부도 곧잘 했다. 이런 기본 조건만으로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어느정도 권력이 있다. - 남들 상처 주지 않게 조심해야지. - 가난이라는 측면에서 소수자인가? 집은 없지만 월세가 아니라 전세고 강제철거가 발생하는 동네에 살지는 않는다. 어렸을 때는 진짜 가난했지만 - 지금도 부자들 싫어함 - 지금이야 밥은 벌어 먹고 사니까 가난 쪽으로도 소수자는 아닌 것 같다. 적어 놓고 보니 조건이 나쁘지 않다. 혼자 사는 아버지가 치매 환자인 건 소수자 조건에 들어가는 것 같다.

소수자란 건 비율로 따진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얼마나 약자인가를 따지는 것이겠지. 우리 아버지는 정말 소수자고 난 소수자 보호자다.

영화에 차별금지법 얘기도 나온다. 본인이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제 무덤 파는 것도 모르고 lgbt 페스티벌 반대 시위를 하고 차별금지법에도 반대한다. 그런 일로 우월감을 느낀다고 생각하니 정말 한심하다. 인터넷 악플도 마찬가지다.

진짜 차별하는 소수의 권력층은 약간의 선동만으로 지들 원하는 걸 다 누리면서 세상을 우습게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울화가 치민다.

쥐뿔도 가진 건 없지만 세상에 지고 싶지 않다. 가진놈, 힘있는 놈들에게 수그리고 싶지 않다.

영화 재밌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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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오산 엄마집에 가서 아버지 70세 생일밥 먹고 왔다. 왕복 350km 자가운전 당일치기. 힘들다.

아버지는 1952년 음력 11월 4일에 태어났다. 2021년 양력 12월 7일이 아버지 만 69세 생일이다. 환갑은 만 60세 생일에 하고 칠순은 우리나이로 70세인 해의 생일에 기념하는가. 어른들 생일은 늦춰서 하면 안되고 당겨셔 해야 된다는 속설이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이가 됐으니 죽기 전에 잔치라도 한 번 하라는 옛 사람들의 생각인듯하다.

아침에 아버지랑 통화했을 때, 아버지는 들뜬 목소리로 버스를 타고 개봉역에 가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 개봉역으로 가면 인천가는 지하철만 와요’ 가리봉역(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을거라고 짐작하면서도 그렇게 얘기했다. 아버지는 한참을 당황했고, 가리봉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년 2월 15일에 치매약 타러 가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만이 현재 아버지에게 확정된 이벤트인 것이다. 슬프기도 하고 그냥 그렇기도 한 일이다. 그 중간 중간 제사, 명절, 혈압약 타러갈 일, 의사 소견서 받으러 갈 일 등이 있을 것이다. 아무런 이벤트가 없는 삶에서 오늘처럼 엄마가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오라고 하면 아버지는 마냥 좋다. 나보고 작은 일 때문에 서울에 올 것 없다고 하지만 나를 만나는 일이 좋다. 현재 그런 상황이다.

나는 처음 간 엄마 단골 갈비집에서 이모들이랑 고기를 먹었다. 이모들 테이블에서 ‘무병장수’란 얘기가 나왔다. 내가 그 말은 ‘일확천금’과 같은 맥의 말이라 했더니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촌동생이 그런것 같다고 했다. 아직은 좀 이르지만 나도 실제적인 죽음에 대해서 점점 깊게 생각하는 나이로 가고 있다. 죽음에 대해서 어려서부터 많은 생각을 했지만 내 몸이 실제로 느끼는 죽음과는 다르다. - 요절한 시인은 죽음을 다루지 않는다. - 윗줄에 사촌동생이 뭔 식구들이 외식만 하면 밥을 두 시간씩 먹는다며 프렌치스타일이란 얘기를 해서 한참 웃었다.

‘항상 생각은 하고 있는데 마음처럼 되지는 않아서’ - 내가 했던 멘트 그대로임 - 둘째(식당) 이모, 셋째(병점) 이모, 막내 이모한테 아버지 생일 기념으로 용돈 조금씩 드렸다. 이모들이 좋아해서 좋았다. 이모들을 생각하면 돈 많이 벌어야 하는데, 그것도 마음처럼 되지는 않아서….. 먼저 막내이모 만났을 때 오늘이랑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 이모가 ‘다 안다고’해서 짠했더랬다.

모든 인간은 관계속에 살아가지만 이모들 없었으면 우리 가족도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을 거다. 엄마가 무너져 버렸을 수도 있고, 뭐 이런저런 배드 엔딩이 의심된다. 오늘처럼 여럿이 모인날 이모들이 나는 여러번 들어 다 알고 있는 옛날 얘기를 하고 그 얘기를 듣고 아내가 웃는 일이 좋다.

아버지, 연락은 매일 하지만
가끔은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하자구요.
항상 하는 얘기지만 지금 잘 하고 있어요.
생일 축하하고 더 나빠지진 말자구요.

-> 최근 찍은 겨울 이미지 중에 아내가 좋다고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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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밥 해주는 선생님이 있는데, 이 선생님은 기간제근로자다. 이 선생님이 해주는 점심을 나를 제외한 직원 포함 15명 정도가 먹는다. 그 수가 많은 때는 20명이 넘기도 한다. 이 누나가 해주는 밥을 먹는 사람들끼리 이해 관계가 있는 일이라 나는 거기 끼기 싫어서 밥을 따로 먹는다. 이해 관계라 했지만 다 지들 편하자고 하는 일이다. 예를들면 우리회사에서 제일 직급이 높은 사람은 스스로 밥 해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 이 누나가 점심 먹고 남은 것을 많이 챙겨 준다. 암튼 이런 관계에서 밥값으로 한 달에 5만원 씩 내고 점심을 잘 챙겨 먹는다.

어제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는데, 기간제 선생님들 - 밥 누나 포함 10명 - 이 12월 10일에 본인들 일이 끝나고 본인들 월차가 3~5일까지 남았으니 12월에는 밥값도 내기 싫고 자기들 도시락 싸가지고 다닐테니 이 누나한테 오늘까지만 밥 해주면 된다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 이 누나는 자기랑 같은 기간제근로자들 때문에 강제로 작업을 종료 당하는 꼴이 된다.

참아볼까 싶었지만 아까 낮에 한 마디 했다.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당신들과 같은 선에 있는 사람을 무장해제 시켜버리느냐는 맥락이었다. 누군가는 이해했고 누군가는 이 새끼가 갑질한다 생각했다. 잠깐 마주친 눈빛으로도 그걸 알 수 있다.

인구 비례로 따지면 시골 사람들만의 일은 아니겠지만 시골 사람들 특유의 내 손해는 0.1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싫다. 그런 삶을 살아도 여지껏 잘 살아온 사람들이 싫다. 누가 봐도 빤히 보이는 그런 일들이 싫다.

그걸 알 수 있는 내가 너무 싫다. 오늘의 첫 문단을 쓴 내가 너무 싫다. 자기들 손해는 0.1도 보고 싶지 않은 시골 아저씨들이 싫고 그 무리에 나의 뮤즈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속해 있는 것이 싫다.

그런 마음을 아는 내가 싫고 그런 나를 혐오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내가 그들과 똑같이 행동할 것이 아니므로, 지금은 그런 마음을 아는 지금의 내가 좋다. 이것은 또 다른 권력인가?

오늘 퇴근하면 H누나네서 커피 한 잔 먹고 집에 와서 운동하고 잘랬는데, 현실은 회사에서의 어떤 일들로 술 한 잔 먹고 집에와서 바보같이 일기 쓰고 있다.

-> 회사에 출근하면 찍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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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둘째 아이 돌이라 지난 주말에 엄마집에 아버지랑 이모들 동생네 식구 다 모여서 밥 한끼 먹었다. 나는 산불근무라 못갔다. 가고 싶었던 건 아니고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아버지 얼굴을 못 봐서 그런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일요일 근무서고 8시 퇴근해서 집에 가다가 엄마한테 전화했다. 자다가 받은 목소리, 손님들 다 가고 집을 치웠는데 아직 다 못 치웠고 kbs주말 드라마 틀어 놓고 누워 있다고 했다. 몇 마디 오고 갔는데 기억나는 건 없다. 전화 끊고 나서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느꼈다. 눈물이 났다. 바로 이어서 이버지한테 전화했다. 어린이들 보니 좋았는지, 집에 잘 왔는지, 얘기하고 전화 끊었다. 아버지랑 통화하고 아버지가 나를 걱정하는구나 느꼈다.

사랑과 걱정. 같은말인가.

2021년 11월 14일을 기억하고 싶어서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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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친구에게 풀 죽어 있지 말라고 했다. 아직 법적으로 이혼 절차가 끝나진 않았다. 몇 달 전에 이혼한다고 했을 때, 이혼을 독려했었다. - 어차피 이혼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 이번에는 고소장까지 보여주면서 이혼한다기에 ‘순리대로 하라’고 메시지 보내고 가만히 있었다. - 이번엔 진짜구나 싶었다. - 먼저 연락했을 때 어린이를 너무 오래 못 봐서 미칠 것 같다고 했었는데, 오늘 연락에는 지난 주말에 같이 영화도 보고 밥도 먹었다고 한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모든 관계에서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상충하면 서로 얼굴 안 보는 게 답일 것이다.

부모님이 이혼해서 그런지 이혼에 무심한 편이다. - 우리 부모가 내가 나이 먹고 이혼한 탓도 있겠다. - 이혼이 뭐 대순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진다고 인연이 끝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꼭 자식 때문은 아니다. - 자식이 없어서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지도 모른다. -

아버지 노인장기요양보험 신청을 미루고 있다. 신청하고 의사 소견서 받으러 갈 때, 아버지 만나면 된다. 먼저 같이 병원 다녀온 지 거의 한 달이다. 아버지가 어떤 상태인지. 매일 통화하는 걸로는 알 수가 없다. 한 동네 산다고 해도 일정 시간 이상을 함께 보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가장 좋은 건 한 집에 사는 건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고 아버지가 고향이나 다름없는 서울 신월동 떠나서 태어난 강릉으로 오는 게 좋은 일인지도 알 수 없다. 이달 안에 장기요양보험 신청까지는 해야겠다.

오늘 아침에 통화했을 때, 아버지는 들떠있었다. 동생 아이 돌잔치 때문에 경기도 오산 엄마 집에 가는 일 때문이다. 명절, 제사, 기타 등등 엄마 집에 가는 날이면 늘 밝은 목소리가. 그때마다 우리 아버지 많이 외롭구나, 생각한다. 많이 외로웠고 지금도 많이 외롭다. 외롭다는 사실은 알까? 나는 아내 앞에서도 막 던지는 외롭다는 말을 아버지가 하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조만간 ‘아버지 안 외로워요?’ 물어봐야겠다.

‘울화가 치미는 사랑’ 은 사랑인가? 사랑인가, 물으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다. 울화란 건 시간이 지나면 덜 치미게 되고 사라지는 법이다. 분노의 사랑은 사랑으로 끝나도 사랑이 아니다. 나는 왜 아내에게 울화가 치밀었나? 그걸 꼼꼼하게 생각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나랑 안 놀아줘선데, 별로 화낼 일도 아니다. 바빠서 못 놀아주는 걸 어쩌겠나. 나는 술이나 마셔야지. 울화의 속성은 사라지는 것인데, 사랑의 속성은 뭘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예전에 ‘일자무식 뮤즈’란 시를 썼는데, 나의 뮤즈랑 토요일에 산에서 놀기로 했다. 회사에서 나는 관리자고 이 친구는 기간제근로자(말이 기간제지 일용직)다, 친구니까 난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이 친구는 내가 아무 말 안해도 약간 내 눈치를 보게 된다. 친구는 여전히 나에게 어떤 영감을 주고 ‘살아야지’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여름에 이 친구네 집에서 한 번 놀았다. 자기 집에 와서 자고가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때 이 친구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토요일에 함께할 생각에 친구가 요즘 약간 들떠있는데, 아버지가 들뜬 것과 같은 느낌이다. 동네 사람 5명인 산골짜기 마을에 혼자 사는 44세 독신남의 외로움을 헤아려 볼 뿐이다. 토요일에 ‘KP야 외로워?' 물어봐야겠다. 친구야. 네 얘기로 등단하면 한턱 쏠게.

갑자기 생각나서 혼자 웃고 말았는데, 요즘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형, 오늘 한잔 하나요?' 다. 회사에서 JK형에게 하루에 한 번씩 묻는다. 나는 한 잔 하고 싶은건가? 자꾸 웃음이 나네.

세상과 반대로 나는 대체로 다 잘 되고 있다.

-> 산엔 겨울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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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행


강릉역 아침 8시, 얼마전 위생 문제가 뉴스에 나온 도넛 체인점에서 커피를 사 먹고 출발. 뚜껑은 빼고 주세요. 뉴스 덕분에 도넛이 덜 팔려서 알바들은 몸은 편하고 마음이 불편해졌을까?

청량리역 1번 출구 계단에서 사람들 지나칠 때마다 연신 고개를 숙이고 구걸하는 사람을 지나칠 때는 나도 옆 사람도 계단을 내려가는 걸음이 빨라지고 그 속도 그대로 계단 끝까지 내려옴.

누가 사 먹는지 모르는 아홉 개 이천 원짜리 호두과자는 지하철 역 가판대에 냄새도 없이 자리잡고 있고 오늘도 사 먹지 못했다. 호주머니에 잔돈이 있었어도 사 먹지 않았을 거란 생각.

끼치산역에서 내려 백구사 언덕 넘어 신월동으로 향하는 고갯길엔 기울어진 언덕에 가지런히 자리잡은 빌라라 부르는 집에서 수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아버지 아픈 이후로 종종 발발하는 엄마, 아버지, 나 이렇게 세 사람의 점심식사. 어린시절로 돌아간듯 편안하면서도 왠지 어색한 식사. 오늘은 고등어조림과 임연수 구이. 셋 중 어색한 건 나 뿐인가?

혈압약을 타러간 동네 병원의 익숙함. 병원에 들어가자 마자 커피랑 빵 냄새 맡으며 곧바로 2층으로 54×××× 아버지 주민번호를 대고 의사와 잠깐의 대화. 약 3개월치 드릴게요.

치매약을 타러간 대학병원의 익숙함. 환자와 보호자 출입증을 출력하고 - 내가 아버지의 보호자구나 - 예약 종이에 찍힌 바코드를 수납 기계에 갖다대고 긴 복도를 기역자로 돌아 그 끝에 신경과. 담당 의사의 나긋한 말투도 귀에 익는다. 6개월 전 첫 검사랑 큰 차이는 없네요. 약 4개월치 드릴게요.

처음 떼 본 아버지 진단서. 최종진단 병명은 '상세불명의 알츠하이머병에서의 치매'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계속 진단서를 들여다보며 머릿속엔 장기요양등급에 관한 생각. 어떤 드라마를 본다는데 채널도 제목도 주인공도 모르고 줄거리도 설명 못하는 우리 아버지. 계속 혼자 살아도 되는걸까?

아버지 집 나와 시장통에서 만난 엎드려 기는 걸인을 노점상 좌판 반대편으로 비켜 지나쳤다. 얼마나 많은 일들을 무심한듯 지나쳐야 생이 맨 끝으로, 끝으로 향하는 생의 끝으로 향할까.

본인 때문에 자꾸 서울에 오는 내게 미안해 하면서도 날 만나면 좋아하는 아버지, 병원 가기 며칠 전부터 전화기 넘어 목소리가 들떠있는 아버지, 내가 태어났을 때 본인이 몇 살이었는지 내게 묻는 아버지, 40대의 내가 아버지의 그때를 닮아버린 70살의 아버지.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술 취한 아저씨의 전화를 받았다. 일감이 있다는 소개로 전화핬다기에 어디 사시냐 물었더니 안산이라 했다. 아저씨는 술이 많이 취했지만 내게 미안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먹고 사는 일은 술에 취해서도 짠내가 난다.


- >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강박적으로 뭔가를 적는다. 그래도 끝나는 건 없지만 그래야 뭔가는 끝나는 것 같기에 그렇다.

아버지가 나빠지지 않고 있는 건 정말 다행스랍고 좋은 일이다. 이제 문제는 돈이다. 아버지한테는는 엄마에게 생활비를 줘야 한다는 깊은 강박이 있다. 실업급야 수급이 끝나고 아버지 수입은 연금 등 월 75만 원. 기초연금 30만 원 아버지가 쓰고 국민연금 45만 원 엄마가 쓴다. 엄마는 수입 제로인 상태에서 보험료 등으로 월 100만원이 기본으로 나간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보면 이게 큰 액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수입 없이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오늘 아버지 검사비랑 약값이 30만원 나왔다. 네 달치 약값이니까 큰 액수는 아니다. 일단 체크카드만 쓰는 내 통장에 돈이 없어서 아버지 신용카드로 계산했다. 이제 아버지 수입이 없으니까 담달 카드결제일 전에 아버지 통장에 돈 채워 놔야지. 가까운 사람이 아프다면 빚을 내서라도 낫게하고 싶은게 인간이고 사랑이다(인지상정). 엄마에겐 어떤, 계획이 있을까?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픔은 돈이고 돈은 걱정이다.

-> 이버지한테 주 5회, 아침마다 배달되기 시작한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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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쓰고 잔다고 하니 아내가 ‘이벤트가 있었네’라고 한다. 이벤트가 없어도 일기는 쓸 수 있지만 뭐 아무래도 좋다.

삽당령, 해발 680미터, 정선과 강릉의 경계, 우리 회사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올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친구 하나는 네 번 다녀갔는데, 올해 안에 한 번 더 올 것 같다. 책길피에 꽂아둔 '영' 누나랑은 해발 1000미터에 위치한 막사에서 라면 끓여 먹었고 다른 방문객들과는 사무실 옆에 유리온실에서 화로에 고기 구워 먹었다.

삽당령에 SJ형이 다녀갔다. 대학교 2년 선배다. 20살에 만났으니 20년 넘게 알고 지냈다. 이 형 얼굴 보기도 전에 다른 선배들이 ‘너 SJ랑 닮았다’고 했고 꼭 그 얘기 때문은 아니지만 학생 때 많이 붙어 다녔다. - 10년 전에 서울 떠난 후론 자주 연락하진 않았지만 내가 무척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는, 그래도 형인데 너무 막 대하는 건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는데, 이제는 둘다 오십 바라보는 나이고 이 나이에 그럴일도 없으니 그저 좋은 관계다. 한 달 전에 밤 11시에 문득 문자를 보냈다. ‘형, 나 술 안 마셨어’ - 진짜로 안 마심 - 문자 보내고 바로 전화 와서 오랜만에 통화했다. 놀러 한 번 오라고 했더니 진짜 왔다. 좋다. 마지막으로 얼굴 본 게 강화도 살 때니까 거의 칠 팔년만에 얼굴 봤다.

제목에 선배라고 쓰는 바람에 생각 - 선생은 먼저 태어난 사람인데, 선배는 뭐지? 먼저 배를 탄 사람인가? 한자를 찾아보니 어떤 무리(학교, 직장, 업계)에 먼저 있었던 사람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

금요일 저녁에 고기 먹고, 토요일 아침엔 채종원 투어, 그 후엔 보헤미안 본점에서 하우스 블랜드, 점심은 막국수, 봉봉에 들러서 커피 두 잔씩 마시고 우리 집에도 잠깐 들렀다. - 30개월 넘게 살고 있는 지금 우리집에 들어와 본 사람이 입주청소 해주셨던 분들 포함해서 10명 안 넘음 -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나이 먹었어도 예전이랑 달라진 건 없어서 내가 투정하면 형이 받아주는 식이다. 나의 어떤 토로에 몇 가지 얘기를 해줬고 그게 위로가 됐다.

오래된 사람에 대해서 생각한다. 본인 나이를 반으로 잘라서 그것보다 오래 알았고 여전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오래된 사람은 편하다. 부끄러웠던 과거를 함께 했고 기억하는 사이라서 그렇다. 경포 호수에서 오리배를 같이 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이랄까? 이번에 선배랑은 오리배를 타지 않았지만 다음번에 오래된 사람을 강릉에서 만나면 오리배를 타야겠다. 친구 NH랑은 재작년에 2인용 자전거를 타고 경포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2년 전에 아내랑 오리배를 탔는데, 그게 내 인생 첫 오리배였다. 나는 누구랑 두 번째 오리배를 타게될까? 중요하진 않다.

2011년에 부안에서 이 형이 나를 찍어준 사진이 내 구글 포토에 들어있다. 이번에도 이 형이 나를 많이 찍어줬다. 나를 찍어준 사람은 누가 있지? 생각해보니 세 명이다. 아내, 이 형, 고구미. - 아니다. DS까지 네 명이다. - SNS에 자기 애들 사진 많이 올라오는데, 사랑이다. 누군가를 찍어주는 건 사랑이다. 나도 사람은 좀처럼 찍지 않는데, 아내는 많이 찍는다. 사랑인가? 물으니 사랑이다. 위에 네 사람은 다 내가 찍어줬던 사람들이다. 너 나한테 딱 찍혔어, 이런 의미로 사진을 찍는다는 표현을 쓰나보다.

내가 사진에 담았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엄마는 몇 번 찍었었고 컷들도 기억이 나는데, 아버지는 찍은 기억이 없다. 내일 만나면 아버지도 기록에 남겨둘까? 억지로 그러고 싶진 않다. 찍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이미지로 남기는게 더 어색해져 버렸다. 요즘 아버지랑 통화할 때, 아버지가 나를 빨리 만나고 싶어하는 걸 느낀다. 내 마음은 약간의 부담과 그 정도의 덤덤함 사이에 있다. 아버지랑 나 사이는 사랑인가? 아버지의 의존인가? 나의 책임감인가? 그게 뭐든, 중요한 건 아버지는 아프고 나는 아버지를 그냥 두고 싶지 않다는 거다.

선배 얘기가 아버지 얘기로 끝나버렸다. 중요하진 않다.

선배한테 내 생활 터전을 보여준 일이 좋았다. 나는 관종이 천성이다.

2011년, 부안에서 SJ형이 찍어준 나. 이때 서른 넷인데, 마흔 넷에 보니 많이 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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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 2차 백신 맞았다. 8시 반에 병원 도착. 나랑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접수 시작합니다, 말 나오자 마자 접수대에 앉은 덕분에 1등으로 주사 맞았다. 무슨 의미가 있겠나. 현재 시간 17시 가까워지고 있는데, 몸에 열감이 없다. 다행이다. 이건 의미가 있다.

오후엔 치과에 다녀왔다. 2015년에 강릉에 이사와서 그 해였는지 그 다음해였는지 왼쪽 아래 센터 어금니에 신경치료 받고 금을 씌웠다. 오른쪽 아래 센터 어금니에 - 오늘 갔던 병원에선 7번이라고 불렀다. 뭔가 순서가 있겠지. - 떼운 자리가 떨어져서 혀를 갖다대면 구멍을 느낀지 2년 이상 된 것 같은데, 최근에 그 이가 시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임플란트 얘기는 나오지 않았고 - 아직은 임플란트 하고 싶지 않다. - 구멍난 자리를 금으로 메꾼다고 한다. 무식하게 버티지 않고 빠르게 치과에 가길 잘 한 것 같다.

사실 더 아플 때까지 치과에 갈 생각이 없었는데, 요즘 운동하면서 ‘갯마을 차차차’를 보고 있고 - 주인공이 치과 의사임 - 지난주에 삽당령 다녀간 친구가 이 아픈거 묵히지 말고 병원 빨리 가라는 얘기를 했기에 적절한 시기에 잘 다녀왔다. 이런 의미없을 수도 없는 인과관계에 의해서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일이 마음에 든다. 낮에 어떤 가수에 대해서 한 참 얘기했는데, 퇴근길 라디오에서 그 가수의 노래가 나올때 세계가 다 연결되어 있는 걸 느낀다. 어떤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편이다.

치과 마취도 오랜만에 했다. 인간의 몸에서 가장 말랑말랑하고 연약한 부위인 잇몸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는다. 순대 허파에 이쑤씨개를 찌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 아닐까. 내가 치과 의사라면 환자를 압도하는 그 상황에 기분 좋을 것 같다. 다른 의사들도 마찬가지고 면도를 해주는 이발사도 마찬가지다. 의사란 건 누군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직업이다. - 마음대로 해선 안되지만 - 나는 항상 당하는 쪽이지만 면도도 그렇고 치과 마취도 좋다. 최초에 주삿 바늘이 들어가는 따끔함과 마취약을 주입하는 잠깐의 시간에 짜릿함을 느낀다. 통증을 사랑하는게 아니라 무방비로 누워있는 걸 좋아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무방비 상태도 좋아하지만 무방비란 단어 자체에 희열을 느낀다.

오늘 다녀온 치과는 xx치과 강릉점이다. 치과도 체인점인 세상이다. - 마지막까지 체인점이 되지 않을 업종은 무엇일까? 철물점? - 강릉에 치과가 억수로 많지만 JK형이 임플란트 하러 다니는 치과라 선택했다. 환자맞이와 진료, 예약까지 뭔가 시스템화가 잘 된 느낌을 받았다. 시스템은 안락하고 사람들은 그 시스템에 편안함을 느낀다. 나야 겉으론 안그런 척하면서도 알고보면 시스템을 동경하고 그 앞에 나약해지는 타입이지만 얼핏봐서는 전혀 그럴거 같지 않은 JK형이 - 정선군 임계면 50세 독신남 - 주식시장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고도화된 자본주의 시스템을 좋아한다는 건 의외긴 하다. - 대형마트에서 일했던 경험이 어느정도 형에게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 인생살이란 건 곱씹어 생각해 볼 수록 내 마음에서 빗겨나간 일 뿐이다.

황정은 에세이가 나와서 읽고있는데, 제목이 ‘일기’라 나도 일기 써봤다. 황정은을 읽으면 뭐라도 써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책에는 작가의 동거인 얘기가 나온다. 그 동거인에게 약간의 질투를 느꼈다.

-> 사무실 마당 백합나무. 시작하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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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기타줄을 갈았다. 1번줄 반대로 감은 걸 뒤늦게 알아채고 풀어서 다시 감았다. 가지런하고 예쁘게 감긴 4번줄 빼고는 다 성에 안찬다. 16%의 성공. 어찌보면 높은 확률이다. 작은 성공으로 생각하면 긍정이고 철저한 실패로 생각하면 부정이다. 나는 어떤 쪽인가. 성에 안찬다는 것은 부정이다. 나는 부정적인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 때때로 부정적이 된다.

 지난주에 친구랑 술 먹고 노래방에 갔다. 친구가 나 노래 부르는 걸 찍어줬다. 다음날 그걸 보다가 놀때는 진심으로 노는구나, 생각했다. 다른 일에도 그러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다. 술 취했을 때 쉽게 진심이 된다. 나는 쉬운 사람인가. 그렇진 않다. 술을 자주 먹지만 진심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엊그제 사무실 형들하고 술을 마셨다. 늘 그렇듯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마셨다. 나는 확실히 술로 해소하는 무언가가 있다. 술을 빨리 많이 마실 뿐이지 술 중독은 아니다. 술 취해서 집에 돌아오다가 길에서 잠들지 말아야지 결심한 후로 그러지 않았다. 잘하고 있다.

 머릿속에 넓은 길이 끝없이 펼쳐지는 상상을 해본다. 성공, 미래 뭐 그런 이미지다. 이번주에는 오랜만에 복권을 사야겠다. 아내가 복권 왜 사냐고 물으면, '일확천금'이라고 답한다. 돈의 크기에 따라서 길의 넓이와 길이가 달라진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해서 확실하진 않다. 머릿속이 시원하게 트이는 걸 한 번 느껴 보고 싶다. 그게 꼭 돈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일단 돈만 떠오르네. 그게 나다.

 만화 원피스를 아직도 매주 보고 있다. 끝없이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로는 내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5년 안에는 끝나겠지. 30년을 연재하는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 내 안의 소년이 아직 나도 뭔가 할 수 있다고 자꾸만 나를 독촉하기 때문에 이 만화를 끊을 수가 없다. 만화는 현실이 아니다. 인간이 어떤 작품에(게임, 만화, 미술, 영화, 문학... 통칭 예술이라 하자.) 몰두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에서 부재한 것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나를 예로 들면 끝나지 않는 모험의 이야기라고 하면서 일본식 턴제 rpg 게임을 주기적으로 클리어한다. 파판3는 공략이 필요없을 정도로 많이 했는데도 여전히 재미있다.

 기타를 살까? 스위치를 살까? 턴테이블 오디오를 살까? 무선이어폰을 살까? 청소기를 살까?

 뭔가를 살까, 싶다가도 생각해보면 그 물건들 없어도 그만이어서 사지 않게 된다. 어제 마트에 가서 쌀과 김치를 샀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자동차에 기름을 넣었다. 어디까지가 필수이고 어디까지가 재미인가? 삶은 필수인가 재미인가? 필수의 반대말을 생각해본다.

 뭔가 답답해서 적었다.

 내일 친구가 딸 아이랑 삽당령에 오기로 했다. 아이가 세 번째 방문이니까 친구는 네 번째 방문이다. 친구가 오는 건 좋지만 친구 아이가 여전히 아프기 때문에 내 마음도 편치않다. 친구는 오죽할까. 친구가 삽당령 산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나도 친구가 오는 게 위로가 된다. 서로 위로가 되는 셈이다. 마음은 여전히 어둡지만 술 마시고 놀때는 진심이니까 잼있게 놀아야겠다.

매일 보는 전나문데 그저께 아침에 유난히 이쁘게 보이길래 찍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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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에 코로나 백신 1차 맞았다. 대략 그때부터니까 20일 넘게 기운이 안 좋다. 기운이 안 좋으니까 기분도 안 좋다. 백신 맞기전에 송충이 털 알러지로 고생한 일이 있었다. 그때부터 침체가 시작됐으니 다운된지 한 달이 넘었다. 뭐가 안 좋냐고 묻는다면 명쾌하게 답할 순 없다. 확실한 건 하락흐름이라는 것이다. 그 기간 중에 명절도, 내 생일도 있었는데 왜 그럴까? 해가 짧아지고 있어서인가. 뭔가 맘에 안든다. 아니, 다 맘에 안든다. 나한테도 아버지한테도 사람들한테도 아내한테도 지쳤다. 회사일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면 다 괜찮지 않은가, 묻는다면 항상 그렇진 않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포괄하므로 항상 그런 것과 항상 그렇지 않은 것 모두 사랑이다. 사랑은 긍정적이다.

존재 증명에 대해서 생각한다. 누군가가 읽을 것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쓰는 것, 노래를 만드는 것, 시를 쓰는 것,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는 것, 유튜브를 하는 것처럼 외부에 드러나는 활동이 아니더라도 혼자서 하는 활동을 제외하면 인간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존재  증명이다. 가장 존재 증명이 아닌일이 혼자 사는 사람이 잠을 자는 행위인 것 같다. 그마저도 나 어제 2시간 뿐이 못잤어, 하고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SNS에 올리면 존재 증명이 돼버린다. 존재 증명은 유명해지고 싶다는 마음과 같은 맥락이다.

의뢰를 받고 노래를 하나 만들었는데, 클라이언트가 좋다고 했다. 기분이 막 좋아야 하는데, 막 좋지는 않다. 인스타에 올린 턱걸이 동영상에 댓글이 달린다. 이 역시 기분이 막 좋아야 하는데, 막 좋지는 않다. 만약에 내가, 소망대로 유명해져서 인스타에 사진 올리면 몇 만명이 좋아요 누른다고 기분이 막 좋을 거 같지 않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마음도 허상이다.

이럴 때 자주 나오는 해답이 너 자신의 삶을 살아라, 류다. 내가 나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 않나?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런 의지가 있는 걸 보면 나는 어느정도는 나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오늘 출근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털복숭이가 되서 산에서 혼자 사는 생각을 했다. 자연인처럼 티비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만 증명하면 되는 존재 증명의 삶. 이런 생각한 게 엄청 오랜만이다.

C8 나아지겠지.

급작스럽게 찾아온 안개 속에 혼자 일찍 찾아온 가을 (삽당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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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 별로 안 바쁘다고 떠들고 다닌 죄로 한 달 넘게 매우 바쁘다. 출근해서 사진 몇 장 찍을 여유는 있으니 상관없다. 요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한다. 먼저 서울 다녀오고 두 달간 얼굴을 못 봤다. 전화 통화는 매일 하지만 두 달이란 시간은 꽤 멀게 느껴진다. 작년 이맘때를 생각하면 상황이 나쁘진 않다.

아버지는 혼자서 약통에 7개의 알약을 채워 넣는다. 계절을 잊지는 않는다. 날짜 개념을 가지려고 한다. - 평일에는 어떤 알람이 울리는지 정확히 아침 7시 20분에 내게 전화를 하는데, 토요일 일요일은 나 쉬는 날이라고 먼저 전화하지 않아서 아침에 내가 먼저 전화한다. - 요 며칠 정해진 시간에 전화가 오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앞산에 운동을 간다기에 어제 퇴근길에 전화해서 저 일찍 일어나니까 아무 때나 전화해도 된다고 했더니 오늘은 7시 10분에 산에 가려고 한다면서 영상통화로 전화를 하셨다. - 영상통화 하려고 한 게 아닌데 그렇게 된 것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 아버지에게 코로나 재난지원금에 대해서 두 번에 걸쳐서 한참을 설명했고 생년 끝자리 대상 요일이 아닌데도 은행에서 친절하게 ‘그거’ 해줬다고 한다.

걱정되는 점은 약을 잘 먹고 있다는데, 정말 잘 먹고 있는지, 잘 씻고 다니시는 건지, 먹는 것도 걱정하지 말라는데, 엄마가 두 달 전에 해 준 그거가 – 명칭은 앞으로도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 아직도 냉장고에 있다는데, 뭐 드시고 사시는지 등이다. 막상 만나보면 <초기치매 독거노인>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구나, 할 수도 있다.

요즘 피곤하다거나 바쁘다고 하면 아버지가 괜한 걱정을 하시니 그런 말은 안 하려고 한다. 내 목소리에 침울하거나 부정적인 기운이 들어있을 때도 금방 알아채기 때문에 가능하면 밝은 목소리로 통화하려고 한다. 부정(父情)이다. 엄마랑 가끔 통화하면 항상 아내 잘 있는지 물어본다. 장인어른도 아내랑 통화할 때 내 얘기를 묻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부모가 돌보지 않으면 아이는 죽으니 거기에서 시작된 정의 고리는 끊기 어려운 것이다.

명절에 경기도 오산 엄마 집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23일에는 고용센터에 가야 해서 서울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23일은 내 생일인데, 아버지가 내 생일을 기억할까? 내가 먼저 얘기할까? 71살 아저씨가 44살 먹은 큰아이 생일이 언제인지 기억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 다음달 19일에는 병원 두 군데 들러서 약 타고 인지검사를 한다. 추석 한 달 후에는 할머니 제사가 있고 음력 11월 초가 아버지 칠순이다. 아버지 자주 보겠구나,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사랑인가?

아내에게 사랑이야? 묻거나 사랑이네. 확정하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랑인지 생각하거나 묻는 순간 사랑이다. 어제는 마루에서 운동 시작할 때 반지 좀 받아달라고 아내에게 건넸다.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모습에서 사랑이네,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짜증을 낸다고 사랑이 없는 건 아니다. 짜증과 화는 같은 말인가? 짜증은 사랑과 같은 말인가? 엄마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는가 짜증을 내는가? 답을 아는 질문들로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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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덜 깬 상태로 새벽에 일어날 때가 있다. 그런날은 오전내내 울고 싶은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지난주 토요일 새벽에도 그랬다. 온갖 슬픈 노래 다 찾아듣다가 정승환이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부르는 클립을 봤다. 노래 듣는 엄마 눈가가 촉촉한데, 엄마가 슬픈 걸 눈치챈 어린 아들이 엄마 왜 울어, 표정으로 울지 말라고 마스크 쓴 채 뽀뽀하는 장면이 나왔다. 엄마 표정이 금방 행복해져서 둘이 꼭 끌어 안았다. 슬픔의 알고리즘을 따라가다 보니 정형돈이 어느 토크 프로그램에서 평생 아팠던 엄마에게 다시 태어나도 자기를 낳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클립도 봤다. 나는 우리 엄마에게 정형돈처럼 말할 수도 있고 젊어져서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길 찾아갔으면 좋겠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엄마나 나나 정형돈 쪽이 더 가깝지 않나 싶다. 가족이란 그런것이다. - 20년 전에 그냥 모든게 다 힘들 때 어둠속에서 오랜만에 만난 엄마 손 잡고 누워서 울었던 기억이 났다. -

영화 모가디슈를 봤다. '죽거나...' 보고 류승완 영화 처음인데 죽거나가 90년대 초반 이하늘의 랩이라면 모가디슈는 2020년 창모의 랩 같다 생각했다. 아내한테 말했더니 뭔말인지 알거 같다고 했다. 대충 말해도 뭔말인지 아는것도 사랑의 한 가지다. 영화는 유려하고 군더더기 없다. 무엇보다 아주 나쁜 새끼가 안 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아주 나쁜놈 나오는 건 싫은데 나이 먹을수록 더하다. 영화는 말이 통하는 동포애(인류애) 같은걸 말하고 있다.

가족애 > 동포애 > 인류애. 이런 수식이다. 가까울수록 사랑도 강하다. 그 반대의 감정도.

영화는 탈레반이 아프칸을 장악한 현실과 많은 부분이 겹친다. 한국 대사가 극적으로 탈출한 뉴스를 봤다. 한국 사람 다 탈출했으니 이제 남의 나라 일이다. 여기서 멈추는게 보통이다. 난민이 된 사람들과 그땅에 남겨진 사람들을 더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으니 거기까지만 해도 괜찮다. 보편적이다. 인류애 같은거 없어도 된다.

오늘 <아프칸 난민 한국에?> 란 기사를 봤는데, 혐오로 가득한 댓글리스트를 보고 실망과 좌절과 무력감에 빠졌다. 전두환은 아직도 살았는데 다행이 혈액암에 걸렸다고 한다. 혐오병자들 다들 죽을병 걸려서 돌봐주는 이 없이 고통스럽게 죽었으면 좋겠다.

쓰다보니까 또 무력하네.

아버지는 잘 지낸다. 여전히 하루 한 두번 목소리를 듣는다. 작년과 비교해 본다면 많이 명쾌해졌다. 계절을 모를까봐 걱정하진 않아도 될거 같고, 토요일 일요일엔 내가 출근 안 하는 걸 아니까 푹 자라고 일부러 전화 안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요일 개념도 어느 정도 돌아왔다. 그러다 갑자기 다시 많은 걸 잊게되도 상황 맞춰 헤쳐나갈 뿐이다. 머릿속엔 그 정도의 여유가 있지만 현실은 또 모를일이다.

영상 만드는 강의를 하나 듣고 있다. 재미있다. 시도 쓰고 일기도 쓰고 유튜브도 하고 술도 먹는다. 여름은 생각보단 짧았다. 2021년이 이렇게 지나간다.

엄마한테 전화나 해야겠다. 하는 얘기는 늘 '별일 없나 전화했어요.' 다. '어제 잘 주무셨어요?'로 시작하는 아버지와의 통화랑 차이점이 없네. 가족이란 그런것인가?

회사에선 낙엽송 열매 따고 있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나무 위쪽을 잘라내는 작업을 하면 떨어진 나무를 다시 작업하기 좋게 잘라내고 낙엽송 열매를 자루에 주워 담는다. 나무 위에 올라가는 일이 고역이다. 아보리스트라고 수목등반 기술자격이 있는데, 하루에 두 세 나무만 작업해도 의뢰인에 따라서 일당 30만원 이상을 받기도 한다. 우리 기간제선생님들 중에 나무를 탈 줄 아는 분이 세 명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 c형만 나무를 타고 있다. c형은 하루에 열 나무 이상 작업한다. 다른 분들은 이제 나이도 먹고 겁이 난다고 한다. 당연하다. 일당이 나무 자르는 사람도 10만원 하늘에서 떨어진 가지 정리하는 사람도 10만원이다. 땅에서 하는 작업도 어려움이 있지만 많이 불합리하다. 기간제 선생님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원칙대로 잘해 드려야겠지만 나무 타는 이 형은 혹시라도 섭섭하지 않게 말 한 마디라도 더 신경 쓰고 있다. 지난주에는 외부에서 온 아보리스트 선생님 한 분이 본인 방식대로 천천히 안하고 우리 방식대로 사다리 타고 나무 올라가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많이 다치지 않은 건 다행인데 정말 위험한 일이고 큰일날 빤 했다. 어제 출근해서 c형이 작업하는 걸 봤는데, 보는 내 마음이 불안하고 내가 보고 있으면 작업하는데 신경쓰일까 싶어서 금방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를 어렵게 생각하는 기간제 선생님들에게 생색내지 말아야지. 요즘 이 생각을 많이한다. 내가 이 선생님들 월급 계산을 하고 이 선생님들이 기간제 근로자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한 우리들 사이는 평평하지 않다. 나도 나 월급주는 회사에 100프로를 다 드러내진 않는다. 이게 인간의 사회다.

-> 튼튼해 보이는 집은 있어도 튼튼한 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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