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그때그때 | 622 ARTICLE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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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2023.03.04 20230304 -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 기다리면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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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3 - 논김매기 시작, 농활 끝


한적골 아랫논에 가서 논김을 맸다. 혼자 두 시간 반 정도 풀들을 뽑았다. 이어폰에서 The very thought of you가 흘러 나왔다.

밭에서도 마찬가진데, 김을 매다보면 무아지경에 이를때가 있다. 나와 잡초만이 존재하는 시간에서 나만이 존재하는 시간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이 좋다. 그래서 내가 논김매는 일을 좋아하나? 

논 세 자리 중에 가장 크기도 작고 김도 없는 논을 시작으로 논김을 매기 시작했다. 아침, 저녁으로 부지런히 다니면 열흘이면 마치겠지. 그러고 나면 물을 뗀다.

오늘로 농활이 끝났다. 학생들! 수고했어요. 마지막 날이라고 학생들이 작은 잔치를 준비했다. 부녀회에서 많이 도와주셨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같이 행복한 것과 나를 기준으로 남을 판단한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20130706 - 서울나들이


간만에 서울에 다녀오는 중이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위험요소가 많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는 마네킹 로봇을 보고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렸다. 어딘가에 인공지능이 부착된 초기 불량 모델들이 돌아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미래에 살고 있다.

목이 말라서 파워에이드를 먹었는데, 통을 읽어보니 그 안에 작물 재배에 필요한 미량원소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수용성 비료는 효과가 즉시 나타나는 법인데.라면서 아내랑 히죽히죽 웃었다.  



20130707 - 텃밭근황, 바다


고추 두 판을 한판씩 다른 곳에다 심었다. 집 옆에 심은 것들은 잘 자라고 있다. 고춧가루를 낼 만큼 따지는 못하겠지만 둘이서 이런저런 반찬해 먹기에는 그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집 뒤에 심은 것들은 고라니 침략 후에 관리를 안했고, 볕이 잘 들지 않아서 내 마음처럼 자라지 않고 있다. 현재는 완전한 자연농 고추밭이 됐다. 나쁘지 않다.

오이는 집 뒤쪽에 두 자리에 나눠서 심었는데, 집 바로 뒤에 심은 친구들은 내일 모레면 몇 개 따 먹을 수 있는 지경이다. 다만 자연농 고추밭 바로 옆에 있는 녀석들은 아직 오이 열매가 달리지 않았다. 자리가 안 좋은 건가?

토마토는 7월 중순이 지나면 큼직하고 빨간 녀석을 따 먹을 수 있을것 같다. 크게 신경쓰지 않고 키운것치고는 대단한 성과다.(아내의 얘기로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밤에 P형이랑 바다에 다녀왔다. 저녁에 바다에서 회나 먹자고 해서 아내도 함께 나갔다. 병어를 썰어 먹었다. 병어는 고소하다. 바다에서 바로 잡아 먹는 것들은 다 맛있다. 형이 반찬해 먹으라고 병어, 밴댕이, 새우, 꼴뚜기, 전어를 많이 줬다. 감사합니다. 종종 이렇게 얻어 먹기만 해도 되는 것인가 생각한다.

이렇게 하루가 갔다.



20130708 - 먹고 놀기


오늘은 비를 핑계로 먹고 놀았다. 점심엔 아내랑 만찬을 차려먹었다. 저녁 먹고 조금 있다가는 꼴뚜기 썰어 넣고 김치 부침개 해 먹었다. 맛있었다. 먹고 노는 일은 참 좋다.

다만,
한적골 논에 안 갔다. - 날은 궂고, 이동수단은 두 다리 뿐이고 타이밍도 안 맞았다. 내일은 꼭 가자.

고구마 밭에 안 갔다. - 위와 같은 이유 + 어제와 같은 폭우에 돼지가 다녀가지는 않았을거라는 생각에서 안 갔다. 내일은 꼭 가자.

그래도,
뒷밭에 도랑 치고 쓰러진 고추도 곧추 세웠다.

어제 심은 들깨는 다들 살았다.



20130710 - 논김을 매야하는데


엊그제 비가 많이 왔을 때, 당연히 한적골 윗논, 아랫논에 모두 물이 빵빵하게 찼을거라고 생각했더랬다. 아랫논은 그 아랫논으로 이어지는 파이프가 뻥 하고 뚫려서 물이 시원하게 새고 있었고 윗논은 어디로 샜는지 모르게 물이 말라있었다. 비 오는날 놀고 먹는 것도 좋고 교통수단이 없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걸어서라도 논에 갔었어야 했다. 윗논에 물 샌 곳을 못 찾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JS형한테 전화가 왔다. 표시를 해 두었으니 막으라는 것이었다. - 이것이 경륜이다. - 감사합니다. 드렁허리가 두 곳에 구멍을 내 놨다. 이제 배웠으니까 앞으로는 스스로 해결하자.

이렇게 구멍이 있으면
구멍을 막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막는다. 구멍을 막으면 드렁허리가 또 구멍을 내 놓는다고 한다.

논김을 매야 하는데, 이런저런 일로 계속 미뤄진다. 아직 늦은 것은 아니다. 장마가 끝나기 전에 마치자. 천천히.

급하게 먹은 똥이 거칠다.고 들깨 심는 것 도와드리는 중에 KK할머니가 말했다.



20130711 - 고라니, 호랑이 소리


어젯밤에 개구리가 집에 들어왔다. 이러다 뱀도 들어오는거 아니야.하고 농담을 하고 넘어갔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다섯시에 뒷밭에 갔더니 고라니님이 강림하셨다. 나를 보고는 도망가다가 그물을 넘지 못했다. 얼른 포비를 풀어줬다. 포비가 쫒아가니까 놈은 그물을 넘어서 달아났다. 뒷밭에는 수수, 흰콩, 검은콩, 팥, 들깨가 자라고 있는데, 고라니님께서는 검은콩만 100여대 잘라 먹었다. 맛있었겠다.

그래서

먼저 다운 받아뒀던 호랑이 울음소리를 밭에 틀어놓는 플레이어 재생목록 중간중간에 집어 넣었다.

오늘부터 포비를 풀어놓고 자기로 마음먹었다. - 우리개는 짖지 않는다.

사흘에 한 번은 3~4시 사이에 일어나서 밭에 가보기로 했다.

다행으로

고구마밭에 돼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동물들이랑 같이 먹고 살아야지 어쩌겠나.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척 신경 쓰인다. 내 밭이 당하고 있는 것을 직접 목격한 탓이 크다. 작년에 서리태 심었다가 전혀 수확하지 못해서 올해부터는 콩 사 먹기로 했다는 동네 누나 얘기가 자꾸만 머릿속을 지나다닌다. 강원도 고성에 사는 형이 전화해서는 자기네 옥수수를 고라니들이 다 먹었다는 얘기를 무척 쿨하게 했다. 그럴수도 있다는 듯이 - 고라니가 옥수수도 먹는구나. -  나도 지나간 일은 쿨하게 잊고 앞으로 잘 하자.



20130713 - 장마, 상합(백합조개)


장마다. 이번주에만 일륜차가 두 번 넘쳤다.

비가 많이 왔지만 논도 밭도 무탈하다.  

그저께는 '타인의 삶'이란 영화를 봤다. 남의 삶을 훔쳐보는 이야기는 늘 재미있다.

어제는 하루종일 기타 연습했다. 나이 먹으면서 유일하게 느는것이 기타실력일까? 

오늘은 P형을 따라 갯벌에 나갔다. 마침 비가 그쳐서 하늘이랑 바다랑 갯벌이 아주 멋졌다. 그레질을 했다. 생애 처음으로 상합을 잡았다. 많이는 못 잡았지만 지후랑 실컷 먹을 만큼은 된다. P형이 상합이랑 꽃게를 추가로 더 주셨다. 너무 얻어 먹는다. 여튼 감사합니다. 기회 있을때마다 상합 잡으러 나가야겠다. 팔면 돈이 될 것이고 못 팔아도 지후랑 실컷 먹으니 좋다.



20130716 - 면회


인천구치소에 M아저씨 면회를 갔다. 5명이 갔더랬는데, 면회는 3명까지여서 나는 순번에서 밀렸다. 구치소 대기 창구에 마련된 종이에다(서신이라는 표현을 쓰더군) 편지를 써서 서신함에 넣었다.

서도면 농업인 상담소장인 김성진 형도 함께 갔다. 개발과 발전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그 형이 이런 얘기를 했다. 어머니께서 처음 전철을 탔을 때, 차표를 손에 꼭 들고 계시길래 왜 그래세요?라고 했더니 차장에게 차표 주려고 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어머니께서 커피 자판기를 처음 봤을 때, 안에 있는 사람이 참 덥겠다.고 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인간이 어떤 새로운 상황과 조건에 적응한다는 것이 나이 먹을수록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나도 점점 그렇게 되겠지.

48년생인 M아저씨는 D할머니의 큰 아들이고 두 분이 함께 사시며 농사를 짓는다. 모내기랑 고구마 심는 일이야 동네 사람들이랑 이렇게 저렇게 마쳤다지만 M아저씨가 얼른 나오셔야 다른 일들도 돌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D할머니가 너무나 외롭다. 지나가다 들러봐야지 생각하면서도 마음처럼 되질 않는다. - 그래도 어제 선창에서 들어오는 길에 D할머니랑 오토바이 함께 타고 오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내일 들어갈 때, 떡을 사가야겠다. - 내 생각에 볼음도는 외로움을 대표하는 섬인데, M아저씨의 부재로 인해서 D할머니, JS형이 무척 외롭고 늘 티격태격하던 O형도 무척 심심해 하는 눈치다. 나는 지후랑 함께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후가 없었다면 볼음도에 들어오지도 못했겠다.

수인복을 입은 아저씨는 수척해진 얼굴로 동생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평소의 강직하고 고집있는 모습을 생각했을 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갇혀 있다는 것은 그런것이다.

다행으로, 아저씨께서 이달 말에는 보석으로 나올 거라고 했다고 한다. 얼른 나오세요.

구치소 접견 대기 창구는 마치 은행이나 터미널 대합실같은 분위기다. 표를 뽑아서 볼일을 보고 상담창구로 들어가거나 표를 사서 개찰구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구치소 정문에서 출입하는 이들의 신분증만 확인하는 경찰관이나 접견 신청서를 접수하는 경찰들을 보면서 지하철 표를 팔거나 고속도로 톨비를 받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주고 정리하는 분들과 같다는 생각도 했다. (내 기준으로 볼 때) 좋은 직업이다. 병원에 가면 아픈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구치소에 가면 갇혀 있는 사람(범죄자?)이 이렇게나 많다니.하고 생각하게 된다. 안에 있는 사람도 밖에 있는 가족도 모두 고생이다.

예전에 영등포 구치소에 아버지 보러 갔던 일이 생각났다. 20살의 나는 아버지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아주 무뚝뚝한 아들이었다. 지금은 그냥 무뚝뚝한 아들이다. 

오훗배가 풍랑으로 결항됐고 서울에 와서 아버지를 만났다. 요즘 아버지는 어떤 사정으로 인해서 내 이름을 달고 일했던 시절의 퇴직금을 받기 위해서 무척 애쓰는 중이다. 힘내세요.



20130718 - 해무


저녁마다 안개가 자욱하다. 섬이 작으니까 섬 전체가 안개로 가득하다. 이 안개 때문에 볼음도 쌀이 맛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다.

파노라마 어플 테스트. 장맛비에 바다 쓰레기들이 백사장에 밀려왔다. 주민들이 힘을 모아 치우면 좋겠다.



20130720 - 파리


이 집에 사시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쓰시던 항아리에다 매실청을 담갔다. 지후가 두 항아리 담갔다. 항아리 하나가 새는지 아래쪽에는 개미가 득실거리고 주변으로는 파리가 많다. fly down - 후리 다운 - 을 설치했더니 금세 잔뜩 붙었다. 징그럽다. 새는 항아리는 위치를 옮겨야겠다.



20130723 - 답장


구치소에 계신 M아저씨한테 답장이 왔다. 먼저 JS형한테 온 편지를 읽었을 때도 느낀거지만 M아저씨는 글을 참 잘 쓰신다. 60대가 되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걸까?

함께 일하면서 좋은 햇빛 받으며 웃을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랑 시골일은 시작과 끝이 없다. 항상 시작이고 끝이니 무리하지 말고 놀면서 천천히 일하라는 얘기가 계속 마음속에 빙빙 돈다. 나도 40대가 되면 좋은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12시까지 비가 왔다. 어제 중경제초기에 이상이 생겼는데, 용접을 해야해서 오늘은 논김을 못맸다. 대신 고구마 밭이랑 콩밭에 풀 뽑았다. 지후가 논에 김을 꼭 다 매야 하냐고 물어서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그렇지는 않지만 하면 나도 좋고 벼도 기분 좋은 것이다. 고구마 밭도 현 상태에서는 그냥 둬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풀을 뽑고 나면 나도 좋고 고구마 줄기도 기분 좋은 것이다. 그 뿐이다. 지금 정도로 일하는 게 M아저씨가 편지에 언급한 무리하지 않고 쉬면서 하는 정도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나저나 이제 햇빛 좀 봤으면 좋겠다. M아저씨가 나오셔야 해가 뜨려나?

물론, 이런 날씨가 일하기는 좋지만 몇몇 고춧잎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팥잎이 누렇게 된 것도 날씨탓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20130725 - 포비


포비는 태어난 지 5개월 조금 넘었다. 사람 나이로는 7살이다. 도사견 잡종 답게 크기도 엄청 크고 먹기도 엄청 먹는다. 진드기가 너무 많아서 내가 미친듯이 잡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볼 때마다 몸을 샅샅히 살핀다. 진드기는 엄청 징그럽지만 그래도 떼준다. 엊그제는 50마리 잡았다. 어떤 진드기는 피를 많이 빨아먹어서 콩알 만하다. 우리가 너무 못해줘서 진드기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주사를 못 맞춰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 여튼, 진드기가 재발한 후에 목줄을 풀어줬다. 그랬더니 이놈이 무척 신났다. 

포비는 겁이 많다. 내가 목욕 대신 우물에 두 번 빠뜨렸더니 트라우마가 생겨서 내가 우물에서 물 먹고 올라오는 모습만 봐도 비칠비칠 뒷걸음 질을 친다. 진드기 잡는다고 에프킬러를 몇 번 뿌렸더니 내가 에프킬러 통 들고 '포비야'하고 부르면 나를 외면한다. 그렇지만 우리 개식구 포비는 귀엽다. 

밤에 고라니 보이면 잘 쫓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내일 나가면 진드기 약 사올게. 에프킬러 뿌린건 미안해. 현재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단다.



20130727 - 안개


일주일에 네 번 이상 저녁마다 안개가 낀다. 5시가 넘으면 슬금슬금 눈앞을 가리기 시작했다가 밤 열시 정도가 되면 20미터 전방도 뚜렷하지 않다. 이 안개는 다음날 오전까지 이어진다. 먼저도 적었었는데, 이 안개 때문에 볼음도 쌀이 맛있다는 얘기가 있다. 여전히 믿거나 말거나다.

우리 옆집은 빈집이다. 집 근처 가로등이 이 집을 비춘다. 밤에 호랑이 소리 틀으러 나가서 안개 구경을 했다.  



20130730 - 참외


참외 모종을 세 개 사와서 심었더랬다. 초반에 순을 잘못질렀더랬다. 참외는 못 먹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용케 참외가 열렸다. 얼른 장마가 끝나고 누렇게 익은 참외를 먹게 되길 바란다. 내년엔 수박에도 도전해 봐야지. 히히

 

20130731 - 장갑 2


오늘은 비가 안 와서 콩밭에 풀 뽑았다. 적당히만 했다. 내일도 비가 안 온다길래 집 밖에 장갑을 널었다.

포비가 점프해서 하나 물고 가길래 장갑 한짝 들고 쫓아가서 등허리를 때렸다. 포비는 얼른 물고 있던 장갑을 내뱉었다. 밤사이에 장갑들이 무사해야할텐데.

AND

20130603 - 해당화


동네에는 이런저런 추잡스럽고 후진일들이 있고 길가에는 찔레꽃이 논둑에는 해당화가 피었다. 해당화한테는 미안한 소리지만 해당화는 추잡하게 생겼다.



20130605 - 한련화


아내가 하루 집을 비운 사이에 아내가 씨앗부터 공을 들인 한련화가 피었다.가 아내가 돌아오니까 졌다.

인생이란 그런것이다.



20130607 - 달팽이, 애벌레


모내기 마쳤다.

새벽에 텃밭에 나갔다가 달팽이랑 애벌레를 봤다.

달팽이 귀여워.



20130611 - 이런저런


57분 교통정보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제 시간을 지킨다. 시보는 00으로 끝나기 때문에 제 시간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단 생각이 드는데, 항상 정확하게 57분을 지키는 일은 놀랍게 느껴진다. 나는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는가?

o형이 일하는 방식은 이렇다. a부터 z까지 해야할 일이 있다. a를 마치고 b로 b를 마치고 c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a를 마치고 b를 하러 가다가 k가 생각나면 k를 m이 생각나면 m을 한다. a를 하러 가다가도 갑자기 다른일이 떠오르면 다른일을 한다. 이런식으로 먼저 할 일들이 뒷전으로 밀려난다.

o형이 일하는 방식은 또 이렇다. 어떤일을 꼭 해보고 싶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반대해도 반대하는 말만 귀로 듣고 그냥 자기 하자는 대로 하고 얼마후에 그 일에 대해서 잊는다.

그러니까 o형은 그때그때 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일을 한다. 아이들이 그렇다고 한다. 한마디로 같이 일하기 힘든 스타일이다. 그래서 내가 좀 힘들다.

이 형이 아침 여섯시에 일 하자고 와서는 왜 아침에 논에 가보지 않냐고 얘기하거나 - 제가 다섯시에 논에 다녀와서 형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게 아니잖아요? - 고구마 모종값을 비싼데 왜 지불했느냐고 얘기할 때는 - 그럼 고구마 모종 사서 다 심고 돈을 주지 말란 말입니까? - 정말 빡친다.

신경 써줘서 고마운 건 고마운거고 빡치는 건 빡치는거다.

세대차이와 지역정서, 개인의 성향까지 세 가지를 맞춰가면서 일 하려니까 힘들다. 이렇게 부닥치면서 접점을 찾고 적응을 하고 삶은 계속되는 것이겠지.

결과적으로 일은 크리티컬 데미지 없이 흘러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농사일은 크리티컬만 맞지 않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어젯밤에는 p형네 그물에 다녀왔다. 물이 빠진 바다 한 가운데서 손님들이랑 밴댕이, 병어를 썰어 먹었다. 지후도 함께 갔다. 집에 오니 12시가 넘었다. 어제는 계획대로 콩도 pot에 넣었다. 결혼 1주년 기념일이 그렇게 흘러갔다.

아내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우리는 이 섬이 좋고 수입이 없는것을 제외하면 생활도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지나고 나면 다 아무것도 아니다. 삶도 죽음도 다 부직없다랑 비슷한 맥락이다.

짤방은 흰색 조뱅이. 흰색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게 다리는 잘라도 다시 돋아 나온다는 사실도 어제 처음 알았다.



20130615 - 여러가지, 개국


고구마밭에 가서 풀쟁기로 고랑을 밀었다. 풀이 짧을 때, 사용하면 효과가 좋겠다. 긴풀도 힘으로 밀면 다 잘려나가긴 한다. 콩, 팥, 수수 심었고 중간에 논에 물댔다. 논에 물대는 것은 JS형이 알려주셨다. 앞으론 제가 잘 할게요.

시영네 아줌마가 아내가 일하는 걸 보더니 나한테 친정엄마한테 연락해서 데려가라고 해야겠다고 말했다. 지후야 일단 월요일 오전까지만 고생하자. 일단!!

점심에는 개국을 먹었다. 우리 동네분들은 보신탕을 개국이라고 한다. 우리엄마가 닭백숙을 닭국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개국 맛있었다. 수박도 먹었다. 수박도 맛있었다.

저녁에는 숭어찌게랑 숭어구이를 먹었다. 지후가 요리하는 걸 즐기지 않았으면 우리는 주로 라면만 먹거나 간장에 밥 비벼 먹었을지도 모른다. 혼자 산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부부가 함께 사니까 맛있는 걸 같이 먹는쪽이 좋다. 얼른 회 써는 기술을 향상시켜서 둘이 숭어회 썰어 먹어야겠다. - 아직은 다듬기도 버거운 상태. 



20130617 - 비, 기다린다


오늘부터 비가 온다는 정보를 지난 수요일에 입수하고 며칠동안 바빴다. 콩, 팥, 수수 심고 콩 포트에 넣고 다섯 구역으로 나뉜 뒷밭의 가장 넓은 자리에 비닐 씌웠다. 적어 놓으니 별로 바쁠것도 없었을까? 아니면 지나고 나니 그런걸까?

집 앞엔 양귀비가 피었고 점심엔 꽃반찬을 먹었고 지금은 비를 기다린다.



20130621 - 하지(감자)


5시에 일어날랬는데, 6시에 일어났다. 한적골 논에 가서 아랫논에서 윗논으로 물을 퍼주던 모터를 껐다. 아랫논이 많이 말랐다. 당분간 비소식은 없다. 심란하다. 고구마 밭에 갔다. 멧돼지는 안 들어오고 고라니는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풀쟁기로 두 고랑 풀을 밀었다. 집에 와서 가볍게 아침을 먹고 동네 할머니가 주신 들깨모를 뽑아서 뒷밭에 심었다. 귀찮아서 물은 주지 않고 뿌리에 물만 적셨다. 지후가 남의 집 일한 덕분에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메인 메뉴는 농어회랑 지리였다.

오후에 한 숨 자고 들깨 마저 심으려고 했는데, 여러가지 일들이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7시 30분 정도에 한적골 논에 들렀다. 동네 논들에 다 물이 돌길래 혹시나 해서 한 번 들러봤다. 역시나 물을 푸고 있었다. 논에 물을 대고 집에 돌아와서 오전에 심은 들깨에 물을 줬다. 오늘 낮이 뜨거워서였을까, 내가 물을 주지 않고 심어서였을까. 축축한 땅에 심은 녀석들만 쌩쌩하고 나머지들은 흐물흐물했다. 미안해서 얼른 물을 줬다. 물뿌리개를 들고 꽤나 먼 거리를 몇 번 왔다갔다했다.

아침에 텃밭을 보니 잎이 누래진 감자들이 보였다. 오늘이 하지니까 날은 어둡지만 기념으로 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후가 캐고 좋아했다. 감자 농사는 반성할 부분이 많다. 올해 잘못한 것들이 많아서 내년엔 무조건 올해보단 잘 할 거다. 

여러가지 일들은 제외하곤 무난했던 하루다.

하지만 항상 문제는 이 여러가지 일들이라는 거. ㅋ 



20130625 - 625고라니


새벽에 뒷밭에 갔다. 콩 심어 놓고는 매일 논에 가기전에 뒷밭부터 확인한다. 새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오디가 익어가는 때라 그런가보다. 하고 짐작만 하고 있다. 포비 똥 누이려고 목줄을 잡고 밭에 올랐다. 고라니 한 마리가 놀라서 그물 안 쪽에서 못 튀어나갔다. 개 목줄을 놓았다. 포비가 고라니 쪽으로 튀었다. 고라니가 160cm 높이의 그물을 도움닫기도 없이 우습게 뛰어 넘었다.

고라니는 오이랑 고추를 잘라 먹었다. 콩은 건드리면 안되는데. 한 번 들어 왔으니 또 들어올터인데 나는 아무런 방비도 없이 읍내에 가는 배를 탔다.

아침의 선창은 항상 흥성흥성하다. 물에 걸린 병어, 밴댕이를 배에 실어 보내려고 가져온 아저씨들과 백합 조개, 소라를 갖고 나온 할머니, 아주머니들에 오늘은 볼음도의 유일한 선장님인 ks형네 배까지 더해졌다. 아저씨들은 논에 김이 많네 적네, 요즘 밴댕이가 잘 걸리네 안걸리네 하는 얘기를 한다. 나도 아저씨들과 스스럼 없이 대화를 주고 받는다. 그들과 아무런 이해관계에도 얽혀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정도의 거리감이 좋다. 이 거리가 유지되어야 모든일이 나 할탓이고 내탓이 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 고라니들을 어쩐다? 내가 오늘 저걸 먹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울타리는 얼마든지 뛰어 넘을 수 있단 사실을 알았다. 내가 어떻게 그네들을 말릴 수 있단 말인가?



201300628 - 농활


성대 학생들이 농활을 왔다. 정식명칭은 강화도생태평화농활이다.

어쩌다보니 내가 학생들 일정관리를 맡았다. 마을일이니까 내가 맡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제는 50대 형들 때문에 빡치는 일이 있었다. 이러다 50대 혐오증이 생기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후우!

20살, 21살 학생들은 참 밝고 명랑하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까? 나의 스무살때를 생각하면서 최대한 학생들이 불편하지 않게 해주고 싶다고 결심한다.

젊은이들이 몰려다니는 것만으로도 마을에 활기가 돈다. 좋다.



20130630 - 농활 2


올해가 막 가네. 농활도 막 지나가는 중이다. 오늘은 한 타임 쉬어가는 날이라 농활대는 오전일 하고 바다에 다녀왔다. 동네분들이 트랙터랑 경운기 여러대에 나눠서 태워주셨다. 이렇게 주민들이 조금만 협조하기만 한다면 농활은 좋은 것이다. 학생들이 먼저 밝게 방긋방긋 웃으면서 다닌다면 농활은 좋은 것이다.

사고없이 마무리하자.

그리고 칠월엔 고양이를 키워야겠다. 바로 이놈으로. 

AND

20130501 - 오리알


오월이네. js형네 못자리에서 오리알을 봤다. 신기했다. 참으로 먹은 국수에 달걀대신 풀려 나왔다. 덤덤했다.

오늘까지로 유박을 다 뿌렸다. 지게차랑 트랙터가 없어도 되는 벼농사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부터 논을 간다.



20130504 - 장갑


꽃이 그러하듯이 장갑도 모여 있으면 예쁘다.



20130505 - 마을사업


현재 섬에 마을 사업이 하나 들어와 있다. 25억 예산으로 작년에 시작해서 내후년에 끝난다. 이름하여 볼음도 저어새 생태마을 사업이다. - 추진 위원장님은 생태계 마을 사업이라고 부른다. -

사업이 진행되는 모양을 가만히 살펴보면 볼음 1리와 2리 주민들간의 갈등, 교회 다니는 주민들과 아닌 주민들 간의 갈등,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이 없는 일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 자기 할 말만 하고 집으로 가는 회의 문화, 절차를 무시하는 일 진행이 마음에 걸린다. 볼음도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사업에 대해서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해야한다고 하는 것도 짜증나는 일이다. 생태마을 사업을 하면서도 마을에 광산 개발을 하겠다는 업자에게 돈 얼마씩에 주민들 동의서를 받아주는 일도 짜증나는 일이다. 1억원의 용역비를 받고 건축 사무소에서 만든 사업 설계는 그럴듯하다. 그런데 그 건축 사무소 직원이 이곳에 왔다가 갔는지 왔으면 얼마나 있다가 갔는지에 대해서는 마을사람들 누구도 모른다.

암튼 진행하는 모양새가 빡치는 부분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업을 통해서 섬 곳곳의 쓰레기나 좀 치웠으면 좋겠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확실하게 할 수 있도록 분리수거장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 명색이 저어새 생태마을인데, 섬에 쓰레기가 너무 많다. 어떤 분들은 쓰레기를 산에 갖다 버리기도 한다고 한다. 비닐이며 플라스틱까지 다 드럼통에 넣어서 태우는 것 만큼이나 부끄러운 일이다.

볼음도는 60만평의 논이 모두 유기농 인증을 받았고, 밭 주위나 길가에 쓰레기가 없는 섬이라고 소문나는 쪽이 저어새가 오는 섬 볼음도라고 소문나는 것보다 더 쉽고 섬 홍보에도 좋지 않을까? 아까 낮에 외부에서 새 사진 찍으러 오신 어떤 분이 마을 사업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길래 살짝 짜증이 났더랬다. 그런김에 썼다. 

2리 저수지 옆(나들길 바로 옆)에 있는 2리 쓰레기장, 1리 쓰레기장은 따로 있다. 작년까지는 적당히 쓰레기를 버리면 업자가 와서 가져가서 분리수거 했다고하는데, 분리수거 했는지는 모를일이다. 올해는 쓰레기 치워갈 업자도 아직 결정 안됐다고 한다. - 올해를 넘길 가능성도 있는 것 같다. -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 2리 주민은 맥시멈으로 잡아도 30명정도인데, 1리 주민은 미니멈으로 잡아도 180명이다. 쓰레기 저어새 생태마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뭔가 확실한 조치가 필요하다.



20130508 - 어버이날, 불놀이


어제, 오늘은 논둑에 불놨다. 모내기 때, 논둑에 모판 내려놓는 등의 일을 함에 걸리적 거리지 않도록 논둑에 불을 놓는다. 불은 활활 잘도 탔다. 불도 타고 속도 탔다. 불이 지나간 논둑도 타고난 속도 후련해진다.

한적골 논 두 배미 중에 윗논에 물이 차다 말아서 막힌 곳을 뚤어줬다. 이제부터 매일 다녀야 한다.

어버이날이다. 마을 회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젊은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들 밥을 해 드린다는 취지다. 내년에는 작목반 차원에서 카네이션이라도 준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버이 날인데, 엄마랑 통화는 못하고 불장난만 했다. 자다가 엄마 찾게 생겼다.



20130510 - 인삼


오전까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js형, mj누나랑 산에 갔다. 왜 가는 줄도 모르고 가자니까 갔다. 난 조금 그런 스타일이다.

삼을 캤다. 산에서 삼을 본 것이 처음이라 신기했다. 2구짜리는 그냥 두고 3구, 4구 짜리만 캤다. 예전에 인삼을 키웠던 집들이 많았는데, 그 씨가 산으로 번진 것 같다는 것이 js형의 결론이다.

덕분에 삼을 먹었다. 힘내서 일해야겠지?



20130513 - 가재장


작목반 차원에서 볼음도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을 가공하는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로 가재장을 만들었다. 식품허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맛을 잘 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일을 벌였다. 아는 사람들에게 맛이나 보여주자는 취지여서 부담 없이 만들었다. 지후, 나, JS형 이렇게 셋이서 만들었다.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JS형은 간장을 손가락으로 휘휘 저으면서 손맛이 들어가야 더 맛이 있다는 등의 얘기를 했다. 생협에서 간장, 멸치, 다시마, 양파를 구입했다. 하여 원가가 비싸다. 하루 지나서 먹어봤는데, 맛있었다. O형이 강화에 가지고 나가서 20통을 다 풀었(팔았)다. 이제 문제는 수금이다.



20130518 - 인삼 2


js형이랑 산에 다녀왔다. 또 삼 캐 먹었다. 뇌두는 떼어내고 줄기랑 잎으로 삼을 둘둘 말아서 한입에 꿀꺽했다. 맛있다.

돌아와서 잠깐 삽질을 했다.

이렇게 밭 모양 만들어서 뭐든 심어 먹으면 되지. 농사가 뭐 별건가? 생각했다.

인삼을 먹어서 그런가 보다.

내일 비 그치면 남은 고추 한 판 마저 심어야겠다.



20130521 - 90일


이사 온지 세 달 지났다. 기분에는 한 십년 산 것 같다.

아내가 외출하는 날이라 아침에 선창에 나갔다. 쏟아지는 하늘을 봤다.

집에 와서 여러가지 일을 하려고 했는데, 오후 세 시까지 O형이랑 같이 있었다. O형은 우리 일을 본인 일처럼 해주신다. 그래서일까, 일 하는데 있어서 내가 할 말을 다 못하는 느낌이 있다. 오늘도 일을 했다기 보다는 끌려다니는 느낌이었달까? 둘이 함께 할 일이 아닌데, 자꾸 같이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겨우 헤어져서 내 할일을 했다. 땀을 좀 흘리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올해는 배우고 지켜보는 한 해니까 너무 조급해 하지 말아야지.하면서도 그게 잘 안된다.   



20130523 - 바느질


봄, 여름, 가을에 걸쳐 입을 수 있는 작업복 바지가 하나다. 꿰맨다는 것이 왠지 귀찮아서 가랑이가 많이 터지고도 한 달을 그냥 입고 다녔는데, 오늘 단단히 꿰맸다. 국민학교 6학년 실과 시간에 바느질 했던일이 생각났다.

바느질 하는 도중에 문자왔다. 어제부터 kt전화도 먹통이었다. 섬에 산다는 실감이 났다.



20130526 - 구속


오늘 오전에는 o형네 고구마 심었다. 3일 연속으로 새벽부터 고구마를 심었고 어제랑 오늘은 네시 사십분에 일어나서 다섯시에 일 시작했다. 피곤하다. 피곤한데,

m아저씨가 구속됐다. 작년에 동네 사람들 차에 태우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한 분이 돌아가셨다. 그 때문에 계속 재판을 받았더랬는데, 결국 구속됐다.

작은 섬에서 발생한 큰 사건이다. 돌아가신 분의 자녀들이 합의를 해주지 않은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60이 훌쩍넘은 큰 아들을 "아 젠장 육실하게 아는것도 많지." 라고 구박하시던 80대의 노모는 혼자 남겨졌다.

논과 밭은 작목반 차원에서 공동으로 짓는 것으로 결정났다. 그나마 다행이다.



20130527 - 비가 온다


아침에 아내랑 다퉜다.

"우리 별로 사이가 안 좋은거 같아. 뭐 하러 같이 사는지 몰라?" 란 소리를 들었다.

열무 다듬다가 잠깐 기분이 나빴던 그 순간에 사이가 안 좋았던 것 뿐이지. 우리 사이는 좋다.고 생각한다.

함께 예능을 보면서 기분을 풀고 점심 먹고는 오랫동안 잤다. 몸도 마음도 회복이 필요한 시점에 마침 비가 왔다.

자고 일어나서는 텃밭 배수로를 수선했다. 나름대로 대공사였다. 비에 흠뻑 젖었다. 남들이 보면 왜 이렇게 하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공사를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열무 다듬는 일도 마찬가지다. 할머니들은 왜 그렇게 하느냐고 얘기하겠지만 그 양반들이 대신 다듬어 주지는 않는다. 뭐든 남의 얘기는 참고만 하고 직접 해보고 점점 잘 하게 되는 것이 답이다.

저녁으로 지후가 만들어준 칼국수 먹었다. 완전 맛있어.

아내랑 자꾸 다투는 것은 답이 아니다.   

AND

20130401 - 바다


P형이랑 바다에 다녀왔다. 말장(작대기)은 다 박았고, 오늘은 말장에 그물을 묶었다. 말장의 위 아래로 그물을 묶는것이 오늘 일이다. 샛멀 할아버지들 세 명과 김정택 목사님, 아주머니 한 분까지 해서 여럿이 갔다. 처음하는 일이라 걱정 했는데, P형이 알려준대로 하니까 잘 됐다. 나는 매듭에는 자신이 없는데, 한 번 해보니까 됐다. 그러니까 그렇게 기술적인 일은 아니다. 다만 바닷일은 힘이 든다. 여럿이 일한 덕분에 일을 다 마쳤다. 이제 잡는 일만 남았다.

바다는 물이 살짝 차 있을 때, 그러니까 반영이 확실할 때 무척 아름답다. 다음에는 꼭 사진으로 남겨야겠다.

일을 마치고 P형네서 밥 먹으면서 그물에 걸렸던 웅어회, 생새우를 먹었다.

오전에는 씨감자 자르고 나뭇재 묻혔다. 나뭇재를 묻히는 것은 밭에 살충제를 뿌리는 대신이다. 처음 씨감자를 받자마자 자르고 싹을 틔웠어야 했는데.....

내년에는 그렇게 하자.

일단 올해는 감자 무병을 기원한다. 



20130403 - 냉이, 달래


간밤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믹스를 먹는 꿈을 꿨다. 브랜드는 네스카페였다. 커피 믹스 중독이구나. 집에 있는 것 다 마시면 커피 믹스는 집 밖에서만 마시기로 한다.

오전에는 뒷밭에 냉이 캐고 비닐 치웠다. - 이제 진짜 밭만 갈면 된다. - 아침에 혼자 일할 때, 냉이라고 생각해서 잔뜩 채집했던 것이 냉이가 아니었다. 지후한테 지적당했다. 나는 아주 강한 냄새가 아니면 냄새를 잘 못 맡는데, 그래서인지 냉이 냄새도 잘 모른다. 하여튼 잎모양으로 냉이를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오후에는 산책을 갔다. 볼음도에 와서 처음 가보는 길 - 군부대가 보이는 길 - 을 걷는데, 달래가 눈에 띄었다. 집 근처에 달래가 없어서 달래 반찬을 한 번도 못 먹었다. 군락을 이뤘길래 지후랑 둘이 손으로 막 캤다. 우연한 발견이라 재미있었다. 아무도 건드린 흔적이 없었던 것으로 봐서 동네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 분명하다. 저녁 때, 먹은 달래 무침이 무척 맛있었다. 내일 또 가야지. 



20130404 - 바빴다


오전 - c이장님네 컴퓨터 잠깐 봐드리고 p형이 버섯 종균 나무에 넣는 거 구경하고 막걸리 마시며 사는 얘기 했다. 집에 와서 텃밭에 감자랑 시금치 심었다. 올해 첫 파종이다. 감동은 없었다.

오후 - 전기요금 문제로 한전 콜센터 직원 두 사람과 한참 통화했다. 도서 지역이라 두달에 한 번 검침한다는 사실과 요금도 두달 요금을 균일하게 나눠서 낸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랑 고구마 심을 밭에 비닐 걷었다. 비닐 안 걷고 고구마 캔 자리라 비닐 위로 흙이 두텁게 덮여있다. 집에 와서 채집활동을 했다. js형이 밖에서 나무를 사다 주셔서 - 감사합니다 - 집 뒤꼍에 대추나무 두 그루, 옻나무 아홉 그루 심었다.

하루가 휙 갔다. 바쁜 건 별론데. ^^*



20130407 - 아침부터


마셨다. 아내를 찾는곳이 많았는데, 모두 무시했다.

숭어 새끼를 안주로 먹었다. 꼬리쪽을 잡고 머리쪽을 양념에 찍으면 물고기가 막 튄다.

숭어새끼 - 모치라고 부른다. ^^*



20130409 - 우리집에서 마셨다


표고버섯 종균 넣을 나무들 옮겼다. 나무가 많았는데, JS형이 도와줘서 금방 끝났다. 오늘 작업하는 표고목은 나랑 O형이 함께 하는 것인데, JS형은 그냥 두와주셨다. 감사합니다. 어제 볍씨 소독이 강화에서 오셨던 분들 때문에 일찍 끝났던 것처럼 오늘 일도 JS형이 트랙터 빌려줘서 일찍 끝났다. 그래서 우리집에서 다 함께 저녁 먹었다. 다들 많이 마셨는데, 혼자 한 모금도 안 마신 아내가 자기 할 얘기를 다 해서 좋았다. 지후야 잘했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할 말은 하고 삽시다.



20130412 - 버라이어티


요즘 내가 몇 시에 잠이 드는지 잘 모르고 잔다. 그러니까 그냥 누워있다가 잠든다.

m아저씨네 하우스에 가서 d할머니랑 열무 심었다. d할머니는 m아저씨의 엄마다. m아저씨는 우리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고 이들이 나보다 한살 어리다. 그러니까 할머니랑 손주가 사이좋게 열무를 심었다. 풀 뽑고 땅 좀 일러서 골타고 물 흠뻑 주고 씨 뿌리고 흙 덮었다.

그러고는 작목반 형, 아저씨들과 논 흙 뜨러 다녔다. 볼음도는 친환경 벼농사 지역이라 대부분의 논이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논흙은 인증 재심사에 사용한다.

점심 먹고는 m아저씨네 감자 심을 밭 갈고 비닐 씌웠다. 내일 심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는 집 뒷산에 칡 캐러 갔다. - 이런 여유가 있다. - 진달래가 25% 정도 개화했다 예뻤다. 곧 만발하면 많이 예쁠것 같았다.

이것 말고도 여러가지 액티비티가 있었다. 하루 일과가 참으로 버라이어티 하다. 내일까지 바쁘게 보내고 일요일엔 좀 쉬어야겠다.



20130413 - 버라이어티 2


표고종균작업
감자심기
밭에 비닐 걷기
모아둔 쓰레기 자루들 버리기
점심밥 - 아내는 휴식
휴식(거의 기절상태) - 아내는 허브파종, 부엽토 채취
강낭콩 심기 - 순녀 할머니 고맙습니다.
p형네 볍씨소독 - 아내는 ys 형한테 숭어 다섯 마리랑 바닷가재 40마리 얻었음.
저녁밥 - 아내는 쌀가루 만들고 쑥 버무리 제조
어제 캔 칡 씻기 - 내일 잘라서 말리자.
아내랑 기타 치고 노래 부르기 30곡

밤 열시 사십분에 세수도 안 하고 누워서 오늘 한 일 기록 중임.

바빴던 중간에 벼랑에 매달린 제비꽃을 찍을 여유가 있었다.



20130414 - 호박구덩이


호박 심었다. 삽으로 작은 구덩이를 팠다. 퇴비를 넣었다. 흙을 덮었다. 그 위에 심을까 하다가 혹시나 퇴비 독에 호박이 안 나올까 싶어서 구덩이 옆쪽으로 심었다. 구덩이도 괜히 깊이 파면 안 좋을것 같아서 한삽 정도 깊이만 팠다. 호박은 심은 사람 마음이 고와야 잘 자란다고 하는데, 씨앗은 아내가 놓았으니 잘 자라겠지.

오후에는 아내, 포비랑 뒷산에 올라갔다. 우리 강아지 완전 귀엽고 돼지다. 진달래 꽃이랑 생강나무 꽃을 채집했다. 아내가 진달래 화전을 해줬다. 완전 맛있다. 칡 자르다가 손에 톱이 살짝 닿았다. - 휴우~~ - Y이장님이랑 토양검정할 흙 말려둔 것 내일 센터에 보낼 수 있게 준비했다. 이장님이 휘발유 한 말 주셨다. - 감사합니다. -  KJ아주머니가 부추랑 쪽파를 많이 주셨다. - 감사합니다. -

그러니까,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



20130419 - 친구


친구가 놀러왔다. 좋다.

볼음도에 놀러온 첫번째 손님이다. Thanks, DS.

DS는 내 술친구가 돼줬고, 선반과 미니 하우스를 만들어줬다. 우리는 일도 같이 하고 불장난도 하고 가재찜도 먹었다.

어제는 내가 만취했다. 오늘은 오이랑 사과를 주전자에 썰어넣고 소주를 부은 술로 해장을 했다. 안주는 삼겹살, 군고구마, 가재찜이었다. 나는 고구마를 안주로 먹는 소주가 좋다.



20130427 - 돼지 잡았다


어제 1차 못자리를 했다. 내일 모레 2차 못자리를 한다. 못자리 하고 모내기 하려면 고생해야 한다고 마을을 떠난 누군가가 돼지 한 마리를 배에 실어 보냈다. 그래서 돼지를 잡았다. 우리들은 돼지를 묶고 내리치고 찔렀다. 피가 튀고 돼지는 몸부림을 치며 울었다.

잡은 자리에서 내장도 삶아 먹고 갈비도 구워 먹었다. 저녁에는 오리지널리티가 살아있는 순댓국을 먹었다. 손에는 아직 돼지 냄새가 남았다.



20130428 - 바쁘네


o형네 못자리 할 논이다. 아침에 모터 코드 뽑으러 나갔다가 저어새 봤다. 물이 잠긴 논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규산 걸름망 만들었다. 교회 다녀왔다. 집주인 아저씨가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집정리를 했다. 유박 뿌리는 일 도왔다. ds가 놀러왔다. 저녁 먹고 작목반의 향후 논농사 일정을 잡는 회의를 했다. 중간중간(?) 소주를 마셨다.

농사 시즌이다. 형들, 아저씨들이 다들 지쳐있다. 일이 많아서 그렇다. 애초에 생각했던 마음을 잊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하루하루 지내야겠다. 올해는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는 느낌이 있는데, 내 할일은 확실하게 해야겠다.

내일은 무슨일이 있어도 눈개승마 파종을 해야겠다.

AND

20130303 - 쓰레기, 오토바이, K형


볼음도 분들 중에 갯벌에 그물을 치는 분들은 많지만 배를 가지고 조업을 하시는 분은 한 사람 뿐인데, 그게 K형이다. 엊그제 K형네 가서 마을의 문제점, 삶의 자세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일단 내 가정(테두리)의 안정이 먼저다. 그리고 그 안정의 99%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나도 머릿속으로는 항상 생각하고 있는 내용인데, 실천이 되겠나? 노력하자.

언제든 배에 태워주신다고 해서 무척 고마웠다. 내가 배고프다고 남이 밥 먹여 주는 거 아니다. 그러니 밭 빨리 만들어 놓고 농사일 중간중간 시간 날 때 마다 배에 타면 일당도 벌고 반찬거리도 생기고 좋지 않냐고 하셨다. 내 생각에도 K형 말대로 하는 게 가을이 왔는데 소득이 없으면 불법으로 개구리를 잡겠다는 생각보다는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K형이 안 쓴다고 버려둔 드럼통을 하나 주워와서 집 주변의 쓰레기를 태웠다. 우리집도 그렇지만 옆집도 비어있은지 오래돼서 집 주변으로 쓰레기들이 많다. 플라스틱을 골라낸다고 골라냈지만 어찌어찌 일부는 그냥 태웠다. 그랬더니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냄새는 집안으로도 들어왔다. 조금 귀찮아도 마음속의 원칙대로 생활하는 게 그렇지 않은 쪽보다 항상 낫다. 집 주변에 풀이 무성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도 제초제는 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쪽이 낫다.는 말이다. 물론 몸을 부지런히 놀려서 풀이 무성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먼저다. 그 정도의 부지런함은 미덕으로 갖고 살고 싶다.

지난 주에 어찌어찌해서 1년 간 방치된 오토바이를 어찌어찌해서 덜컥 사버렸다.

시동이 걸리지 않았더랬다. 어쩔까 고민했는데, 배터리만 충전하면 문제 없을거란 영일군의 얘기를 들었다. 트럭이랑 고무바로 연결해서 일단 p형네까지 끌고 오기로 했다. 끌고 오는 중에 시동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은 배터리 충전중이다. 굴러가지도 않는 것을 어영부영하다가 사는 바람에 걱정이 많았는데, 잘 됐다. K형도 싸게 잘 샀다고 했다. 일단 생겼으니 후회없이 타는 수 밖에 없다. 지후가 나 태워주면 좋겠다. 

여러 사람들이 도와줘서 발이 생겼다. 감사합니다.



20130307 - 개발없자


c 이장님네 갔다가 김포에서 사업을 하는데, 볼음도에 밭을 2,000평 샀다는 사람을 만났다. K장로님도 함께 있었다. K장로님은 김포 한강 신도시랑 인천의 아파트들이 미분양돼서 국가적인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면서 자기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나는 이 양반이 돼도 않는 소리를 왜 하실까 생각했다. 볼음도의 본인 땅 팔아서 미분양 단지에 아파트 비싸게 사셨나보다. 

김포에서 사업 한다는 사람은 아파트 값은 더 내려도 상관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건물도 짓고 사업 좀 해보려고 하는데, 볼음도에 규제가 너무 많다는 불평을 했다. 이 양반은 아파트로 투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기 입장 속에서 산다. K장로님은 자기네 산이 높은 건물을 올리기에 좋으니 구입할 생각 있으면 얘기하라고 했다. 개발업자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시골에서 흔히 있는 개발업자와 땅 주인간의 대화였을까?

볼음도에는 아무런 사업도 들어오지 않고 관광객도 지금만큼만 있는 것이 더 좋은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많은 관광객을 원하고 있다.   

C 이장님이 시금치 씨를 주셨다. - 감사합니다. 내일 뿌릴게요. -

마을회관에서 저녁을 먹었다. K형이 간재미를 사오셔서 간재미 회를 먹었다. 맛있었다. - 잘 먹었습니다. -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 하루였다.



20130308 - 정리


집 주변을 정리했다. 드디어 쓰레기 드럼통 안의 쓰레기가 다 탔다. 못이랑 쇳덩이, 은박지는 건져내고 재는 집 잎 묵은 논 자리에 - 오래 묵어서 미나리 꽝이 됐단다. - 버렸다. 집 안도 정리할 것이 많은데, 집 주변을 정리해야 뭐라도 심을테니, 집안 정리는 비 오는 날 해야겠다.

아내가 오이랑 꽃 심을 자리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완전 깔끔해. 지후는 깔끔하다.

p형네 갔다. 작부 계획이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지후의 걱정을 얘기했더니, 할머니들이 뭐 안 심어? 하고 물어보면 그때 그거 심으면 된다고 쿨하게 알려주셨다. 그런것도 좋지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힐링 캠프를 봤다. 한석규가 어머니와 낚시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하면서 직업적 성취감이 주는 행복은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왠지 기억에 남는다.

푸른 풀이 올라오기 전에 겨울을 품은 풀들을 긁어모아 태운다. 내일도 모레도 태운다.



20130309 - 불조심


집 뒤에 밭이 있다. 한 삼 년 묵었다. 사람이 오래 안 살다보니 고라니들이 집 근처까지 내려와서 활동을 했다. 집 뒤에 풀을 치우는데, 고라니 똥들이 여기저기 널렸다. 갈퀴로 긁어낼 건 긁어내고 손으로 뽑아야 되는 건 뽑아낸다. 그리고 그것들을 그러모아 태웠다. 저녁 먹고 한 번 나가봐야지 했는데, 저녁 먹자마자 손님이 찾아왔다. 의용소방대 아저씨다. 연기가 나서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아마 그 신고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나는 한 번 나가 봐야지 했던 생각을 잊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불이 날 뻔 했다.

강릉에서는 화목 보일러 재를 퇴비장에 버렸는데, 불이 100% 꺼지지 않은 것을 버려서 불이 날 뻔 했고, 작년에는 화목 보일러에 있던 큰 나무를 다시 화구에 넣는 것을 잊어서 집 다 태워 먹을 뻔 했다.

나는 불조심을 하지 않는다. 이래선 안된다. 아내 말을 잘 듣고 항상 안전에 유의하자. 포항에서 산불이 났다는 뉴스를 봤다. 그리고 이런 일로 동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하자.

그리고 열심히 일했다. 지후가 일을 한다. 꼼꼼하게 잘 한다. 어제도 놀랐지만 오늘도 놀랐다. 나는 듬성듬성 한다. 히힛


20130311 - 정리


집 안팎으로 정리할 것이 많다. 마음에도 안팎이 있는 것 같은 요즘이다.

지후가 아침배로 서울에 갔다. 월요일 아침의 선착장은 사람들로 넘실거렸다. 그래봐야 20명도 안 됐으려나? 오토바이 뒤에 탄 지후가 장갑을 낀 손으로 내 귀를 감싸줬다. 심정적으로 따뜻한 이런 순간들이 나를 기쁘게 한다.

혼자 돌아오는 길은 엄청 추웠다. 몸을 녹이려 잠깐 눈을 붙이면서 오늘은 뭘 할까. 생각했다.

눈 뜨자마자 화장실에 갔다. 그 동안 포기하고 있었던 화장실 변기에 수도연결을 했다. 왠일인지 성공했다. 오늘 탄력 받는 날이구나 싶어서 부엌에 3구짜리 콘센트를 갈았다. 그리곤 이사오던 날부터 눈엣가시였던 큰방에 있는 2구짜리 콘센트를 교체하기 시작했다. 덜렁거리는 통에 전기선을 마음 놓고 빼지도 못하고 있었다. 차단기를 내리고 전선을 끊을까 하다가 그냥 끊었는데, 전기가 나갔다. 차단기는 안 내려갔다. 

이런 상황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병상에 누워있는 영일군이다. 카톡으로 물어봤다. 차단기 내리고 전선 끊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면서, 퓨즈가 나갔을거라고 했다. 지난 가을에 고향인 볼음도로 이사온 M형한테 물어봤더니 상세하게 퓨즈 위치까지 알려주셨다. 감사합니다.

그러던 중간에 자동차 검사 때문에 선창 앞에 다녀왔다. 괴산에 가 있는 O형이 2.5t 덤프 검사를 내게 맡겼다. 운전석 쪽 문짝이 떨어져나간 차다. 내가 차를 끌고 가니 미리 나와 있던 동네 형들이 30년 전에 타던 차다. 그게 굴러 가느냐.며 말을 걸었다. 선창에 동네 차들이 잔뜩 모여서 검사를 받는 모습은 섬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급하게 나오느라 검사비를 안 가져왔는데, P형이 빌려줬다.    

다음은 오토바이다. 이번주에 꼭 해야할 두 가지가 오토바이를 제대로 손보는 것과 현관문 고리 새로 다는 것이다. 엔진 오일을 사러 농협에 갔다가 C이장님을 만났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봐주신다고 했다. 이장님 댁에 가는 길에 K형도 합류했다. 일단 오일을 교체했다. 앞바퀴에 바람이 슬슬 빠진다고 했더니 물에 담가서 빵꾸난 곳을 찾고 지렁이 - tire seal(USA) - 로 때워주셨다. 자 이제 오토바이는 배터리만 새걸로 바꾸면 된다.  

이런일들을 다 내가 혼자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늘 잠자코 집중해서 잘 봤으니까 이제 혼자도 할 수 있겠지.

영일군, M형, 이장님, K형, P형 아무튼 감사합니다. 여기저기에 고마운 일들이 많다. 그런 삶을 살고 있다.  



20130315 - 바다, 그릇


P형이랑 바다에 나갔다. 형수가 주문도에 갈 일이 있어서 내가 형수 대신 갔다. 갯벌에 말장(긴 작대기)을 박는 첫날이었다. 미리 잘 깎아놓은 참나무 12개를 트랙터에 싣고 15분 정도 갯벌을 달려서 목적지에 닿으면 동력 분무기에서 물을 뿜어서 뻘에 구멍을 내고 거기에 말장을 박는다. 뭐 대충 이런식이다. 바다에서 돌아와서는 내일 작업할 45개를 트랙터에 실어 놓고 일을 마쳤다. 형수가 나랑 일하러 가서는 겨우 12개만 작업하고 내일 자기랑 일 할때는 자기를 죽일 셈이냐고 농담을 해서 웃었다. P형이랑 형수는 유머가 있다. 좋다. 

바다에는 일요일에 또 나가기로 했다.

엊그제 부엌살림을 정리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쓰시던 그릇을 정리해서 안 쓰는 냉장고에 넣었다. 하나 가득이다. 살아간다는 건 그릇이 쌓여가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20130317 - 바다


바다에 나가서 (말)장 박았다. P형이랑 형수도 함께였다. 형수가 내가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해서 고마웠다. 내가 어딘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란 게 참 좋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여기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보다는 일을 꽁으로 해 줘서 고맙다는 느낌이 더 큰 것같다. 어떻든 나한테는 좋은 일이다.

P형네서 저녁을 먹고 당나귀 아줌마네서 한 잔 마셨다. P형네서 밥 먹고 있는데, M형이 숭어를 가져다 줬다. 그 숭어를 회 떠서 당나귀 아줌마네서 마셨다. JS형이랑 HH형도 함께였다. 이런게 섬에서의 생활이겠지?

마음먹고 사진을 찍어볼랬는데, 마음처럼 잘 나오진 않았다. 다음번엔 잘 찍어보자.



20130319 - 바다


p형네 내외랑 말장 박았다. 세 번째라 일이 몸에 많이 익었다.

한참 일하는 중에 형수가 물 들어온다고 했다. p형은 괜찮다고 마무리 하고 나가자고 했다. 나는 그런가보다 했다.

엊그제 형수가 말하길 내가 있는 자리만 물이 안 들어오는 것이지 실제로는 U자로 들어오다가 합쳐지기 때문에 바다에서는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잠깐 일 하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정말로 내가 있는 자리만 빼고 물이 다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사태를 파악한 p형이 얼른 정리하고 나가자고 했다. 트랙터가 물이 들어온 바다를 한참 달려서 안전지대에 도착했다.
 p형이 시동을 끄더니 한 잔 먹고 나가자고 했다. - 이런 여유라니 - 한 잔 먹고 있자니 물이 우리 바로 뒤까지 들어왔고 우리는 얼른 자릴 떴다. 형수가 오늘이 조금이라 망정이지 사릿날이었으면 다 죽었을거라고 했다.

그물일 하시는 아주머니들은 바닷물이 자신을 쫓아오는 경험을 몇 번이고 하셨겠지? 바다가 무섭다고 했던 몇몇 아주머니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바다는 넓은만큼 예쁘고 그만큼 무섭기도 하다.



20130323 - 흙살림, 우울증


괴산 흙살림 토종연구소에서 퇴비 교육을 받았다. O형네서 밥 두끼랑 하룻밤을 제공받았다. 감사합니다. 보통이라면 이렇게 신세지는 상황에 짜증을 냈을 지후가 (돈도 없고 차도 없으니) 어쩔 수 없잖아.하고 받아줘서 고마웠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내 각시가 우울증 걸릴까 봐 걱정한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거나 많이 봤기 때문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아내가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괴산 흙살림 매장에서 구입한 통밀가루 2kg랑 엿기름 한 봉지를 내 가방에 넣고 볼음도까지 돌아가는 중이다. 우리가 도선료를 내더라도 강화도에 하나 뿐인 생협에서 상품을 보내주면 좋겠다.

나는 교회 가면 멍하니 성경을 읽거나 찬송가를 들여다 보거나 하기 때문에 - 아~멘은 보통 4도나 5도에서 1도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 또 믿음 보다는 동네 분들과의 교류 때문에 교회에 가기 때문에 덜 하지만 아내는 교회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부분이 많다.

아내는 말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믿음을 가져보려고 교회에 가 보는 것인데, 교회에서 만날 듣는 얘기가 믿지 않는 사람은 인간도 아니라는 것이고, 부흥회니 속회니 심방이니 하는 행사에 자꾸 나를 끌어드리려고 하니까 교회 가기가 더 싫다. 교회는 교회가 왜 욕을 먹는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지후는 참 생각도 깊고 말도 잘한다. 난 죽었다 깨어나도 이렇게 논리정연하고 사리분별하지 못한다.

그렇고

흙살림 교육은 도움이 많이 됐다. 우리 섬에는 조개랑 굴 껍질을 구하기가 쉬우니까 식초랑 섞어서 칼슘제를 만드는 것은 당장도 시도해 볼 수 있겠다. 그것 말고 다른것들도 시도해 볼 것이 많다.

집에 돌아가면 바빠지겠다. 계획을 세우고 가다듬고 실천하고 가다듬고 해야겠다.



20130525 - 비닐


텃밭에 심을 씨감자 묻었다. 싹이 조금 나왔고 목요일엔 최저기온도 영상이니 목요일까지 묻어뒀다 심어야겠다. 양이 얼마 안되기 때문에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은 채로 땅에 묻었다. 내일 최저기온이 영하 4도라는데, 괜찮겠지? 혹시나 잘못될 수도 있으니 5kg 중에 1kg 정도는 그냥 실내에 뒀다. 감자가 국가관리 5대 작물에서 제외되면서 씨감자 생산이 지자체랑 민간으로 넘어갔다. 결국 씨감자 생산하고 유통하는 사람들만 돈을 버는 구조가 됐다.

뒷밭에 비닐 제거했다. 두둑에 남아 있는 비닐도 있고, 밭 주변 구석구석에 잘 묻혀있는 것들도 있다. 마대에 담고 담고 또 담았다. 소출이 적더라도 비닐은 무조건 안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전분으로 만든 썪는 비닐도 있다는데, 그래도 제일 좋은 건 비닐 안 씌우고 농사 잘 짓는 것이겠지. 평생 남이 버린 비닐만 제거하다가 내 농사는 제대로 지어보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우울한 생각을 잠깐 했다.



20130326 - 일하고 술마셨다


오전에는 화단 만들 돌 줍고, 퇴비에 쓸 가지들 태웠다. 일륜차에 돌 싣고 몇 번 왔다갔다 했다고 힘들었다.

점심 먹고는 잠깐 잤다.

일어나서는 감자 심을 두둑 만들었다. 한 줄은 두둑에 심고 한 줄을 고랑에 심어서 덮으려고 한다. 돌이랑 쑥 뿌리가 많이 나왔다. 쑥한테는 미안하지만 감자를 심어야겠다. 100% 맘에 들진 않았지만 75%정도는 된다. 텃밭에 괜히 오기를 부릴 필요는 없다. 애초에 내 성격이 줄을 딱딱 맞추는 스타일이 아니다. ^^;

그리고는

뒷밭에 쓰레기를 주웠다. 어제 비닐 줍던 것에 이어서 마저 주웠다. 이제 집 뒤에 밭은 마른 풀 좀 뽑아 내고 밭 갈고 고라니 망만 치면 된다. 한 일보다 할 일이 더 많은데, 쓰레기 줍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에 꽤 일을 많이 한 것 같다. ㅋ

그리고는

저녁에 M아저씨네 가서 JS형이랑 셋이 닭발 볶음이랑 술 마셨다. 이렇게 하루가 갔다. 내일은 옻닭 먹는날이다. 아침에 JS형이랑 옻나무 자르러 가기로 했다. 내일 할 일이 있는 하루하루가 즐겁다.기 보다는 나쁘지 않다. 

 

20130327 - 일도 안하고 먹었다


m아저씨네 하우스에 가서 잠깐 일했다. 고구마 묻어둔 자리에 활대 치고 그 위에 비닐 덮고 부직포 씌웠다. 대나무 활대가 인상적이었다.

아침은 js형네서 얻어 먹고 점심은 회관에서 개국 먹고 하우스 갔다 와서는 m아저씨네서 옻오리 먹었다. 술도 꽤 먹었다. 이렇게 먹어도 되나? 싶은 걸 보니 이렇게 먹으면 안될 것 같다.



20130330 - 강아지


생겼다. 샛말 어느 아저씨가 바닷가에서 키우던 팔 남매 중에 튼튼하게 생긴 암놈 한 마리를 데려왔다. 그게 어제다. 어제는 고구마 쪄주고, 된장찌개에 밥 말아주고, 설탕물 줬다. 처음부터 집 안에 들이면 나중에 밖에서 못 키운다고 해서 부엌 뒤꼍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리고 강아지 이름 지었다. 아내는 포비라고 부르고 나는 뽀비라고 부른다. 가족과 떨어져 나온 뽀비는 밤새 울었다. 서럽게도 울었다. 나랑 아내는 얼른 적응하라고 나가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사람 아이가 그렇게 울었으면 옆에 앉고 잤을텐데, 강아지한테 못할짓 하는 것 같았다.

오늘이 왔다. 강아지 값을 치렀다. 강아지는 그냥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어제 들었더랬다.

뽀비는 오늘도 사람이 안 보이면 낑낑대지만 어제보단 덜 낑낑댄다. 튼튼하고 강하게 자라다오. 밥은 굶기지 않을게. 그리고 추우니까 찬 바닥에서 울다가 졸지 말고 바닥에 옷 깔아 놓은 집에 들어가서 자라.



20130331 - 3월 정리


맛있었다. - 병어 튀김, 숭어회, 숭어껍데기 샤브샤브, 간재미 회, 망둥어 튀김, 옻오리

4월엔 좀 더 다채롭게 먹을 수 있겠다.

3월엔 - 많은 일이 있었다.

4월엔 - 생활비를 줄인다. 조개를 캐러 나가본다. 고구마 밭 비닐 걷고, 울타리를 친다. 집 뒷밭에 울타리를 친다. 표고버섯 종균 주입한다. 콩/팥/수수 종자를 확보한다. 눈개승마 씨를 발아시킨다.

모토 - 양적 농업보다는 질적 농업을 한다. 기록을 잘 한다. 너무 무리하게 일하지 않는다.  

걱정 - 금전적으로, 지금으로 괜찮을까?

AND

20130222 - 이사


이사했다.

어젯밤에 잠깐 짐을 쌌고 오늘 아침에 잠깐 차에 실었다.

외포리에서 순댓국을 먹었다. 먼저는 무척 맛있었는데, 오늘은 돼지 비린내가 났다. 순댓국을 사먹는 것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먹었다. 이런 각오를 빈번하게 한다.

이삿배를 탔다. 갈매기들이 많이 울었다. 갈매기는 끼룩끼룩 날고 끼룩끼룩 운다. 내게도 한결같은 뭔가가 있다면 좋겠다.

새주소는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리 385번길이다. 옆집과 우리집 사이에 우물이 있는데, 옆집이 빈집이라 우물은 우리꺼다. 마을분들 얘기로는 그 물이 무척 좋단다. 지금은 이끼가 많이 꼈다. 틈날 때마다 물을 퍼주고 언제 날 잡아서 대대적으로 청소도 해야겠다. 그러고나면 우물물을 먹고 살 수 있다. - 어느 아저씨는 개구리가 오줌을 많이 싸서 좋은 물이라고 했다. -

우리집은 심야전기 보일러로 난방을 하는데, 겨울동안 아무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물을 채워야 한다. 그런데 수도가 얼어서 보일러에 물이 안 돌았다. 아저씨들 몇 분이 농협의 젊은 직원을 강제로 설득해서 대형 석유 난로를 우리집에 틀어주셨다. 하루만 틀어 놓으면 다 녹을거라고 하셨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수도가 하나씩 녹기 시작했다. 안마당의 수도, 부엌, 화장실 샤워기, 세탁기 더운물, 세탁기 찬물 순서대로 물이 나왔다. 와 신기하다. 그런데 화장실 물은 아직 안 내려간다. 화장실은 물이 아니라 다른 문제일 수도 있으니 내일 확인해 봐야겠다.

초지리 집은 나무 보일러가 나무를 너무 많이 먹었다. - 그 집의 화목보일러는 아무도 살지 않는 옆 방과 이어져 있다. - 그리고 천정이 너무 높아서 바닥은 따뜻해도 공기는 찼다. 볼음도에 이사온 첫날 우리 부부는 작은 전기장판을 깔고 딱 붙어서 자야한다. 바닥은 따뜻한데, 공기는 차다. 강화도에 와서 너무 춥게만 산다. 따뜻하게 자고 싶다. 역시 겨울보단 여름이다. 난방비 걱정을 안한다.

점심은 교회에서 저녁은 1리 이장님 - 이사용 트럭도 빌려주셨다. 감사합니다. - 댁에서 얻어먹었다. 호의는 그저 호의로 받으며 살아야지. 왜 우리에게 잘 해줄까?를 생각하는 건 좋지 않다. 내일 아침에 교회에 간다. 이장님 내외가 오라고 하셨다. 척사대회(擲柶大會 - 숟가락을 던진다.는 뜻으로 윷놀이 대회를 뜻한다.)를 한다. 왜 우리에게 잘 해줄까?를 생각하는 건 좋지 않다. 호의는 그저 호의로 받아야지.

인터넷을 설치했다. 이런 도서지역에 인터넷이 설치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너무 좋아.

지후에게 너무 고맙다. - 지금 추워서 잠바 입고 쪼그린 채 인터넷 하고 있다. -



20130223 - 어, 어, 어


내 이름은 어일운데, 어제랑 오늘이 어, 어, 어 하다가 갔다. 내일도 그럴까? 농사철이 아닌데도 하루종일 밭에서 일한것 마냥 피곤하다. 지금 엎드렸는데, 뒤돌아 누우면 바로 잠들겠다.

척사대회는 재미있었다. 상품을 걸고 남자대회 여자대회를 했다. 일등은 무려 전기밥솥이다. 마을 규모에 비해서 대회 규모가 크다. 대회가 벌어진 회관 앞에서는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점심은 마을회관에서 먹고 중간중간 술도 먹었다. 전형적인 마을 잔치랄까? 전형적인 마을잔치 좋다.

대회가 끝나고 목사님이 기도를 마치고 사람들이 사라지고 우리도 집에 왔다.

어제 이사와서 집에서 한끼도 안 먹었다. 이 시간들이 얼른 지나가야 안정을 찾을텐데. 시간은 시간만이 해결해 주니까. 기다린다.

오늘들은 얘기 중에 '남의 인생이 우습게 보이면 자기 인생도 우습다는 거야'란 말을 새겨둔다.



20130224  - 교회


교회엘 갔다. 와 완전 적응 안돼. 교회 나간단 소리를 괜히했나 싶었다. 나는 괜찮아도 아내까지 말려들게 한것 같아 미안했다.
목사님은 세상을 살아가는 복을 바라느냐, 주님의 영광 바라느냐는 문제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복을 바라기 때문에 오늘 교회에 간 것일텐데, 딱히 그런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휘둘린 결과다. 내 업보다. 

예배 시간엔 주님, 하나님이란 단어가 무척 많이 들린다 그리고 목사님이 뭐라 할 때마다 사람들이 아멘을 쏟아낸다. 그 아멘이 아, 네! 로 글려서 지후가 듣게 아네 라고 했더니 지후가 웃었다 기분이 좋았다. 아내가 웃으면 기분이 좋다. ^^*

봄은 아직인데 아직 보일러가 안돈다. 집안 화장실에 호스 연결이 안돼 있는데 집 바깥에 화장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오늘 이사 후 첫 똥을 눴다. ^^*



20130225  - 명언


j 아저씨네 갔었다. 아침부터 소주를 한 잔 얻어 먹었다. 돈이 복이 되어 쏟아지라고 사진의 글씨를 적어서 붙여 놓으셨다. 아이디어 쩐다. 커피에 설탕을 넣지 않겠다는 p형에게 "당뇨도 아닌데 왜 설탕을 안 넣고 그냥 마시냐."는 명언을 남기셨다.



20130226  - 보일러 돈다


새벽에 깨서 이불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내민 발을 바닥에 살포시 갖다댔다. 미지근하다. 어제는 똑같은 상황에서 얼음같이 차가운 장판에 발바닥이 놀랐더랬다. 아, 보일러 돈다. 이제 살았다. 머리도 감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다 잠들었다. 동네 분들이 보일러에 대해서 이런저런 조언들을 해주셨지만 본인이 사는 집도 아니고 보일러 전문가도 아닌 관계로 100% 해결이 되지 않았다. 보일러 AS센터에 전화했더니 강화도 대리점의 아저씨와 연결해줬다. 아저씨의 원격지시에 따랐더니 결국 밤사이에 보일러가 돌았다. 이런것이 직업이다.

오늘은 표고버섯 키울 참나무를 잘랐다. 표고목은 겨울이 올 때, 잘라놓고 잘 말려두는 것이 가장 좋지만 봄이 와서 나무에 물이 오르기 전에 자르는 것도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표고버섯은 내가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품목은 아니지만 일단 시작은 한 것이니 내일부터 공부해야겠다. 아내가 버섯을 좋아하니까 상업적으로 재배하지 않더라도 배워두면 좋겠다. 강화산림조합에 전화해서 버섯종균도 주문했다. 한 상자(20판)에 7만원이다. 1판으로 1미터 크기의 표고목 10개 정도를 커버한다고 한다. 나무 자르는 일에 꼬박 하루를 더 투입해야 원하는 만큼의 표고목을 준비할 수 있겠다.

비가 왔다. 오후엔 안갯속에 비가 흩날렸다. 동네가 예뻤다. 



20130228  - 부정적인 마음


오늘도 참나무 잘랐다. o형님이 자르면 내가 정리하는 식이다. 200개가 필요한데 거의 다 했다. 나는 내일 오전에 강화에 가야해서 내일은 o형님 혼자 일하게 됐다. - 죄송합니다.

저녁엔 교회에 갔다. 삼박사일짜리 부흥회의 마지막 밤이었다. 낮에 동네에서 마주친 동네분들이 부흥회에 왜 안오냐고 했다. 애초에 오늘은 가려고 했었다. 근데 막상 갔더니 괜히 갔단 생각이 들었다. 옆에 앉은 아내에게 무척 미안했다. 외부 교회에서 온 목사님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전도하라고 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얘기들도 했다. 여튼 영 이질적이고 맘에 안 들었다. 앞으론 교회에 가지 않기로 했다. 동네분들과의 화합도 중요하지만 귀농해서까지 마음 생기지 않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밤에는 지후가 여기서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넌 여기 평생 살려고 왔어? 라며 부정적인 얘기를 해서 살짝 빡쳤다. 왜 그런 얘길 하는지 이해는 가지만 이사온 지 일주일도 안 됐다.

아직은 모든것이 어설프다. 그래서 걱정도 많겠지. 나도 걱정이 많은데, 아내는 더 하겠지. 에효.


AND

 12일에 엄마 생일 축하 겸 오산에 간 걸 시작으로 어제 저녁 친구 결혼식까지 2박 3일 수도권 일정을 마쳤다. 피곤하네.

 13일에 아버지랑 뼈해장국 먹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뼈에서 살을 발라내는 일이 서툴다. 먹는 일에 절차가 포함되는 건 - 아내 말로는 복잡한 건 - 가급적 안 먹던가 내가 많이 도와드리거나 해야겠다. 14일에는 짬뽕 먹었다. 섭이라고 하나? 통칭 홍합이라 부르는 것이 한 그릇에 네 개 뿐이라 아버지가 뼈해장국 보다는 수월하게 먹었다.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다고 해서 기분 좋았다. 아버지는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못한다.) 13일 저녁에 동네 친구들하고 술 먹고 14일 오전에는 아버지 침대에 누워서 쉬었다. 침대에 누워서 아버지 뭐 하시나 좀 살펴보니 중간중간 어떤 메모들을 하고 그걸 제외하면 그냥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의 시간을 생각해본다. 시간 개념이 사라져 가는 사람의 시간. 달력과 시계 보는 법이 헷갈리는 사람의 시간. TV리모콘을 잘 못 다루시길래 볼륨과 채널 컨트롤을 한 참 알려줬지만 아버지는 계속 이게 뭔지를 물었다. 어떤 때는 본능적으로 채널을 돌리고 그게 안될 때는 그냥 틀어져 있는 채널을 틀어놓는 듯하다. TV가 틀어져 있어도 TV를 보는 것은 아니고 실수로 셋톱박스라도 끄면 티비를 못 보는 실정이다. 지갑에 돈이 있었으면 하시길래 13일에 돈 10만원 찾아서 넣어드렸다. 14일에 몇 번이고 돈이 없다고 말하길래 나도 몇 번이고 어제 돈 찾았기 때문에 지갑에 돈이 있다고 말해줬다. 위암 수술 영향인지 63~65kg정도 나가던 체중이 60kg으로 줄었다. 데이케어 센터에서 먹는 것 말고 따로 뭘 챙겨 드시는 것 같진 않다. 많이 먹어서 좋을 건 없다. 12일에 엄마집에 갔다가 동생 아이들을 오랜만에 봤는데, 8살 먹은 큰 조카 아이랑 아버지는 어설프게 몸 쓰는게 비슷하다. 다만 조카 아이는 점점 제 몸을 잘 컨트롤 하게 되겠지. 엄마, 이모, 내가 자꾸 반복해서 아침에 샤워하라는 얘기를 하니까 아침에 샤워를 하게 됐다. 그 동안은 샤워 꼭지로 물이 나오게 하는 법을 몰라서 샤워를 못한것 같다. 해서 물을 틀면 샤워 꼭지로만 물이 나오게 조치했다. 뼈해장국의 뼈를 잘 못 발라드시는 거, 티비 리모콘을 잘 못 다루는 거랑 같은 맥락이다. 아버지는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일들에 도움이 필요하다.

 내일 아버지 병원 가는 날이다. 엄마가 간다고 한다. 데이케어센터에 약을 전달하는 일도 엄마가 해주기로 했다. 전처가 치매약을 데이케어센터에 전달해주는 모양새가 내가 보기에는 좋지 않다. 막상 엄마는 그런일이 아무렇지 않을수도 있다. 가급적 아버지 치매 진행을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엄마가 힘들면 안된다는 내 마음이다. 엄마는 내가 힘들면 안되고 나는 엄마가 힘들면 안된다. 사랑이다. 1957년 음력 3월 25일이 엄마 생일이다. 12일에 내가 만든 생일축하 노래 불러줬는데, 엄마가 좋아했다. 아버지 거처를 강릉으로 옮기는 문제가 계속 머릿속에 있는데, 이번에도 내 뜻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간 아버지는 내가 사는 지역으로 오긴 해야한다. 아직까지 길을 잃어버리진 않으니까 느긋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어제 친구 결혼식에서 축가 불렀다. 사랑도 건강해야 한다. 건강하게 사랑하라고 방명록에 적었다. 대학 동기들 선후배들 잔뜩 만났다. 살아있으니 다시 만나게 되서 반가웠다. 다들 군데군데 아프고 많이 늙었다. 74년생 동기 Y형 딸아이가 너무 예뻤는데, 그 아이가 결혼식 후에 노래 아저씨랑 사진 찍는다고 해서 최근 들어 가장 기뻤다. 내 폰으로도 한장 찍고 아이 엄마 폰으로도 한장 찍었다. 박제해 둬야겠다. 이쁜 애들은 기쁨을 준다. 동생 가족도 엄마집의 작은방에 이불 깔아놓고 자기들끼리 꽁냥꽁냥 잘 놀더라. 그런게 동생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겠지. 

 살아있으니 만나게 되고 살아있으면 다들 살아간다. 이건 체념의 일종은 아니다. 나는 살아 있다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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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시 30분에 아버지랑 통화, 7시에 아버지랑 통화, 9시 10분에 아버지랑 통화했다. 아내가 엄마한테 용돈 보내고 메세지도 보냈다고 하길래 11시에 엄마랑 통화했다. 점심 먹고 아내에게 어머니랑 통화했나 물었더니 통화했다고 하길래 13시에 어머님과 통화하고 바로 아버님과 통화했다. 아버지랑은 매일 통화하고, 엄마 목소리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듣는다. 아버님과도 가끔 통화하는데 이상하게 어머님께는 선뜻 먼저 전화하게 되지 않는다. 어머님은 어떤 쿨함을 갖고 있는데, 이를테면 오늘 오랜만에 목소리 듣는 사위에게 '사는게 쉽질 않네.' '너네들 잘 살고만 있으면 연락 자주 안해도 돼.' 같은 멘트를 던지셨다. 일년에 한 두 번 가족 외식을 하게 되는데, 그때 내가 잘 먹는 사람이란 걸 아시고 '어서방 많이 먹어.' 하실 때도 좋다. 어머님은 아내 오빠가 아파서 병간호차 광양에 내려가 계시는데, 나는 아내 오빠보다 어머님 무릎이 더 걱정이다. 아버님께 어머님과 통화했다 했더니 '안 그렇다고 말은 해도 자식들이 먼저 전화하고 그러는 걸 어른들이 좋아한다' 며 무척 좋아하셨다. 장모님이 내 목소리 듣고 '우리딸 잘 사는구만' 생각하셨길. 

 다음주에 엄마 생일이고 다음달 초에 어머님 생일이다. 어머님 생일은 70세 생일이다. 예전에는 60세만 되도 60갑자가 돌아왔다고 회갑이라 하며 축하했다. 우리 엄마도 어머님도 한 바퀴를 살았다. 엄마들의 삶은 다 살고 추가로 살고 있는 느낌은 아닌데,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치매 걸린 이후로는 추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주변에 갑자기 죽는 사람도 많고 부모님이 치매인 사람도 많다. 이런 시대를 신문물 받아들이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AI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보다 더 내가 만든 것 같은 노래를 만드는 AI를 나보다 더 나처럼 글을 쓰는 AI를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AI가 창작영역을 다 씹어먹게 되지 않을까 요즘 가끔 생각해본다. 그렇게 되기 전에 뭘 많이 쓰고 노래를 많이 만들어 놔야겠다. 이세돌이 알파고랑 바둑 두고나서 바둑계를 은퇴한 일도 자꾸 생각난다. 이세돌은 정점에 도달해보기라도 했다. 나는? 

 지난주에 똑같은 돼지꿈을 연달에 꾸었기에 복권을 두 장 샀는데 당첨 안됐다. 지난 주에 술 두 번 마셨는데, 두 번 다 내가 술값을 안냈다. 어제랑 오늘은 출근이 급한데 배터리 문제로 긴급출동 불러서 차 시동 걸었다. 오늘 출근길에는 쓰레기 수거하는 차 옆을 지나는데, 뭔가 튀어서 조수석 빽미러가 깨졌다. 마침 카센타 사장님은 서울에 가 있다고 했다. 짜증이 차올랐지만 별일 아니란 생각에 금방 사라졌다. 깨진 것은 길조인가? 복권을 사던가 술 한 잔 얻어 먹어야겠네.

 물욕이 거의 없는 편인데, 요즘은 자꾸 돈이 갖고 싶고. 돈 생기면 친구 빚 갚아주고 집이랑 차 사고 싶다. 그래서 복권을 산다. 나이 40이 넘어서야 보편적인 욕망을 생각하게 됐다. 뻔히 들여다보이게 본인 잇속만 챙기는 사람은 여전히 싫다. 오직 나를 중심으로 내 이익만을 생각하며 앞으로 어떻게 어떻게 할 거라고 술 취해서 떠들고 있는 내 모습을 가끔 본다.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세속에 쩌든 얘기를 알심히 떠드는 내 모습이 한심할 때가 있다.

 물욕이 없는 점은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는 지난주에 평소보다 더 많이 횡설수설했고 오늘아침에도 세 번 통화 중에 두 번은 횡설수설했다. 횡설수설하는 걸 닮으면 안되는데.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6개월 전에 봤을 때 아랫목 이부자리에 누워서 병치레 하시면서 무어라무어라 중얼거리시던 게 생각난다. 오늘은 어버이 날이고 부모 자식은 발가락과 콧구멍이 닮는 것 뿐 아니라 늙어 횡설수설하게 되는 일로도 대를 잇는다. 그나마 아버지 치매는 최선으로 둔화되고 있다. 

 부모님 네 분과 통화하고 뭔가 효도한 거 같은 날에 이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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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토요일 저녁에 아버지랑 순댓국 먹었다. 보통은 아버지만 특을 시켜드렸는데, 나도 특 시켜 먹었다. '특' 이란 말에 자꾸 의미를 부여하는 게 웃기지만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라 그런걸로 치기로 했다. 배부르면 다 먹지 않아도 된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남겼다. 아버지가 순댓국 남긴 거 처음 봤다. 아직까지 위암 수술의 여파가 남아 있다고 봐야겠지. 혼자서는 순댓국을 못 사 먹게 된 아버지. 앞으로는 아버지 만나면 메뉴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순댓국 먹는 걸로 정했다. 아버지가 페브리즈를 손에 분사해서 화장품 처럼 얼굴에 바르길래 그러면 안된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아버지가 본인 몇 살이지 나한테 물어봤다. 아버지가 나한테 고맙다고 했다. - 살짝 눈물이 났다. - 아버지랑 같이 있으면 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건지 많이 들으려고 한다. 아버지랑 프로축구 울산vs포항 후반전을 TV 중계로 봤다. 게임은 명승부였는데, 아버지는 TV화면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세탁기를 못 돌리는 사람이 됐다. 예전에 동생 와이셔츠 다려주던 아버지 모습이 생각난다. 일요일에 드시라고 전복죽을 사 놓고 갔는데,  아버지는 먹지 않았다. - 못했다. -  
 
 아버지랑 헤어지고 엄마집에 왔다. 다 커버린 아기새가 늙은 어미새와 아비새 둥지를 번갈아 방문하는 모양새다. 엄마는 본인은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진짜 잘 사는 거 맞나? 엄마에게는 오산에서 살면서 형성한 엄마만의 세계가 있긴 하다. 엄마가 딸기 갈아줬다. 엄마가 끓여놓은 김치찌개랑 밥을 먹었다. 엄마가 김치를 싸줬다. 김치 싸주면서 김이랑 깡통햄도 같이 줬다. 나는 아버지를 챙기는데, 엄마는 여전히 자식들을 챙기고 있네. 어미새는 늙어서도 아기새를 돌본다.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엄마를 잊으면 안된다. 우리집에서 엄마집까지 210km, 별 것 아닌 거리다. 엄마를 자주 봐야겠다. 엄마랑 둘이 여행가는 프로젝트는 마음속에 항상 살아 있다. 
 
 곧 장모님 70세 생일이다. 장모님의 아기새는 요즘 울적하다. 나도 울적한지 오래됐다. 다 잘 될거라고 하니까 나의 작은새가 웃었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그 웃음으로 내가 산다. 장인어른이 나한테 전화 안한지 좀 됐다. 굿. 각자 본인 부모님 챙기면서 사는게 결혼생활이겠거니 한다.
 
 3월에 좀 덥더니 어느덧 날씨가 제자리를 찾았다. 출퇴근길과 현장에서 봄을 맞아 요동치는 산과 나무를 본다. 예쁘다. 4월에게 자리를 내주는 중이지만 여전히 계절의 여왕은 5월이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괜찮다. 자꾸 괜찮다고 하는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안다. 다 잘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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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끈한 토요일 오후, 친구 가게에 앉아서 아버지 데이케어센터에서 돌아오는 거 기다리면서 쓴다.

 어제 서울 왔다. 어제 친구한테 차 보여주고 - 좋은 가격에 잘 샀다고 함 - 오늘 저녁에 아버지랑 순댓국 먹고 - 이버지 얼굴 본지가 좀 됐고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가 아버지가 혼자 있는 시간이라 일요일에 혼자 먹을 죽과 빵을 사 놓으려고 한다. - 밤에는 엄마한테 가서 이런저런 얘기 좀 하다가 내일 아침에 강릉으로 출발하는 작전이다. 아직까진 순조롭다.

 어제는 동네 친구들이랑 저녁 먹었다. 집에서 아내와 별 대화가 없는게 40대 중후반 기혼 남자의 보통인가, 생각했다. 건스짱은 현장을 강릉으로 옮기려고 한다고 하면서 '그래야 너라도 보지' 라고 했다. 그 말이 마음속에 울린다. 만날 친구도 별로 없는게 40대 중후반 기혼 남자의 보통인가. 나도 너라도 보고 너도 나라도 보고 그런게 친구 사이겠지. 강릉에 대학 동창이 한 명 있어서 가끔 얼굴 보는게 나한테 위로가 된다. 그 친구도 그럴거다. 애들이라도 자주 보게 다시 서울 살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지만 부질없는 생각인 걸 안다.

 내가 간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들뜬 목소리로 추임새까지 넣어가면서 오랜만에 본다고 말한게 좋았다. 아버지는 아직 나를 잊지 않았고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다.

 오늘 강릉에선 6촌 형(얼굴본지 오래됨) 큰 아이 - 7촌 조카(애기때 얼굴보고 못 봄) - 결혼식이 있고 화성시에선 이종사촌 동생 결혼식이 있다. 5월 14일엔 친구가 결혼한다. 이런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모르겠지만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이런 세상에서 다들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는 게 신기하다. 내가 결혼해서 사는 것도 마찬가지고. 어떤 세상에 살더라도 사랑이 있는 한은 희망이 있고 전성기라 부를 수 있는 것 같다.

 아침에 일찍 깨서 서서울 호수공원을 한바퀴 돌았다. 공원안에 식물들이 다 이뻤고 미루나무가 특히 이뻤다. 나에게는 아내를 포함한 직계 가족과 식물에 대한 사랑이 있구나 생각했다. 그러니까 다 텅 비어버린 것 같고 다 잘못되거는 것 같아도 핏속 어딘가에는 뭔지 모를 희망이 있다.

 아버지 전기요금 계좌이체하고 핸드폰 충전기 잘 되는 거 확인했다. 이제 순댓국 잘 먹는것만 확인하면 되겠네. 이렇게 쓰고 나니까 한결 가벼워졌다.

서서울 호수공원 미루나무. 포지션의 동명 노래를 흥얼거림. 노래가 나왔던 드라마에서 엄정화가 연기를 참 잘했던 게 기억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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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강릉에 불 났다. 산에서 시작했으니 산불이라고 하나보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국유림관리소 산불 담당자였다. 정선은 산불이 자주 나지 않지만 소소하게 산불이 발생하고 동해안 쪽 대형산불 지원을 포함해서 현장에 많이 갔다. - 담당자니까 당연하겠지. - 처음 산불 현장에 갔을 때, 말로만 듣던 산불을 직접 보는 것에 대한 신기함이 있었는데 그때 한 번 뿐이었다. 직업인 입장에서는 산불현장에 가면 울화가 치민다. 힘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무들 타는 걸 보면 속이 상하다. 잿더미인 산을 보면 윗줄과 다른 종류의 울화가 치민다. 세상이 끝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뭐 여튼 그렇다. 어제 산불은 건물을 많이 태웠다. 터전이 타버린 사람들은 이루고자 했거나 이루었던 모든 것이 한 번에 무너진 느낌이겠지. 전쟁의 결과가 그러할 것이다. 아직 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으니 다행인걸까? 언젠가 내게도 모든 게 무너지는 날이 올까? 다들 그러지 않으려고 사는 것이다. 

 아버지는 본인이 무너진 걸 모르는 채 무너져버렸다. 그건 불행 중 다행인건가? 어제 아버지 친구가 대전에서 아버지를 찾아왔다. 핸드폰 충전하는 법을 잊어서 수시로 전화기가 꺼져있는 아버지 핸드폰 통화목록이나 카톡 대화창에 그 친구분 이름을 많이 봤다. 엄마한테 물어보니 예전에는 한 동네 살아서 자주 만났던 친한 사이라고 했다. 아버지 친구는 아버지가 요양병원 같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면회라는 단어를 썼고 내가 그런게 아니라고 알려줬다. 아버지의 얘기에 따르면 데이케어센터에서 아버지를 데리고 나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한 걸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친구랑 저녁도 잘 먹고 호수공원에서 산책했다는 얘기를 어제 네 번 오늘 아침에 두 번 했다. 그만큼 좋았단 얘기겠지. 아버지를 찾아 주셔서 고맙다고 했더니 니가 더 고맙다고 했다. 고맙단 말 오랜만에 들었다. 그 말이 말이 위로가 됐다. 고맙단 말을 위로의 말로 등록해둔다. 출근길에 데이케어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아버지 전화기가 꺼진걸 알았다. 다행히 센터 직원이 출근하다가 시장통에 있는 아버지를 발견해서 같이 센터에 왔다고 한다. 그러지 않았더라도 아버지 혼자 센터에 찾아갔을 것이다. - 집에서 센터까지 100미터 안됨. -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만해도 정말 다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조금은 맘 편하게 강릉에서 아버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전세 계약기간 종료되는 10월에는 강릉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 엄마가 반대하더라도. -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강릉 전체가 쑥대밭이 됐을수도 있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을 항상 생각하면서 살려고는 하는데,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들 때문에 그 사실을 자주 잊는다. 오늘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저녁식사 자리에 희생양으로 가게 되서 기분이 안 좋은 찰나에 가지 끝에서 새로 시작하는 층층나무 잎을 봐서 고맙다는 말 만큼이나 위로가 됐다.

20220412 시작하는 층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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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얘기 빼고 써보려고 한다. - 동생한테 토요일에 아버지 만나서 순댓국 먹으라 했고 미션 수행이 잘 됐다. - 
 
 지난 금요일에 태백에 다녀왔다. 친구를 만났다. 인생에 공유한 것은 별로 없지만 대화의 합이 잘 맞는 친구다. 내 일기를 좋아해 주는 친구다. 내가 더 많은 말을 하게 되고 그 친구는 대꾸를 잘 해주는 것 뿐인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태백에 친구가 있다는 게 좋다.
 
 수도권 제외하고 많은 곳이 그렇지만 태백은 쇠락을 대표하는 도시다. 폐광 후에 급감해버린 인구수가 원인이다. 10년 전만해도 쇠락했거나 쇠락해가는 도시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충남 서천 장항읍, 태백 황지동이 우선으로 떠오른다. 한 때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지금은 황량한 거리 위 빈 건물들 사이로 무심한 바람이 지나는 그런 동네들. 사멸하는 것은 아름답다는 인식 때문에 그런 마음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마모되어 사멸 또는 소멸하는 것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지금 마음은 그 동네에 살고 싶지는 않다.  
 
 마이클잭슨(또는 마이클 조던)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어느 분야든 전성기는 짧다고 생각한다. 가수들은 음반 3장 연속으로 히트하기가 어렵고, 시인이나 소설가도 마찬가지다. 지속적으로 작품이 히트를 하더라도 그 작품이 그 사람의 정점에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다. 정점 이후에는 익숙함과 완숙함이 있다. 아이유의 노랫말도 - 아이유 가사를 너무 잘 씀 - 최전성기에서 내려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영리한 사람들은 적절한 시점에 은퇴를 택하기도 한다. 이건 유명세를 한 번이라도 떨친 사람들 얘기고, 세상에는 원히트원더 가수가 꿈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전성기는 언제 오나? 어느 분야에서? 이미 지났나? 애초에 올 일이 없나? 헛된 바람인가? 나는 왜 이름을 떨치려고 하나? 나는 왜 사람들을 만나면 정점에서 내려오는 얘기를 하나? 
 
 벚꽃지고 나면 튤립 핀다는 걸 알기에 어제 아내랑 수목원에 갔다. 절정을 보기 위해서. 햇빛을 받은 튤립은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반짝거리고 벚나무에는 곧 열매가 달리겠지만 바람불면 열매든 꽃이든 다 떨어지는 게 인생이다. 나무나 꽃이나 사람이나 한 번 왔다 간다는 건 똑같다.
 
 영화판에 미련을 두고 있지만 확실한 크레딧이 없는 친구들을 본다. 그 친구들에게는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해서 40대 중반이 되어도 이름을 떨칠 희망이 있다는 얘기를 해준다. 그 얘기가 나한테 하는 얘기란 걸 이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AI가 글을 쓰는 세상에 내가 쓰는 글이 기록 말고 다른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내 일기를 좋아하는 확실한 한 명이 있다. 사실은 그거면 족하다.
 
 올해도 강릉은 봄바람이 거세다. 내년에도 삶과 마음이 꺽이지 않아서 봄바람이 거세다고 쓸 수 있었으면 한다.
솔향 수목원 튤립 202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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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에 브루스 윌리스가 알츠하이머란 뉴스를 접했고 디즈니플러스에서 다이하드 1편을 봤다. 다이하드는 1편이 제일 재미있다. 브루스윌리스의 첫 장편영화 주연작이고 감독은 존 맥티어넌이다. 시트콤 프렌즈에서 조이가 좋아했던 영화다. 이런 정보들이 아직은 내 머릿속에 있다. 언젠간 사라지겠지만. 

 오늘 아침에는 부르스 윌리스 생일 파티 뉴스를 봤다. 69세라고 한다. 미국나이는 만 나이고 우리 아버지는 만으로 70세다. 아버지 치매 시작이 2년 전이라 치면 둘 다 이른 나이에 치매가 왔다. 치매는 사람을 가려서 오지 않는다. 브루스 윌리스 기사에는 '초점 잃은 눈' 이라고 하면서 몇 장의 사진이 붙었다. 우리 아버지 눈빛도 그러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아버지 삶인가, 생각한다. 요즘들어 더 자주. 부쩍 자주.

 아버지 목소리 듣고 나면 항상 울적해짐. 하루에 세 번 통화하니까 하루에 세 번 기본으로 울적해짐. 본인이 다 괜찮다고 먼저 말하기도 하고 내가 잘되고 있냐 물으면 그렇다고 해도 나는 안 괜찮다. 왜 내가 안 괜찮은지 모르겠다. 아내는 힘들면 얘기하라고 하는데, 뭐가 힘든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괜찮다고 한다. 아버지가 나에게 다 괜찮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이런 경향도 유전자 때문이라 생각한다. 엄마 빼고 아내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물어보면 힘들다고 해야겠다.

 아버지 혈압이 너무 낮다고 데이케어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어제 아침 통화할 때 아버지가 코피가 났다고 했다. 아버지는 코피가 자주 난다. '노인 저혈압과 코피' 같은 걸 검색해보지만 소용없다. 금요일에 서울가서 아버지 혈압약 처방해주는 의사 선생님 만나볼까 싶다. 

 고혈압이라 혈압약을 먹는데, 최고 혈압이 너무 낮고 위암 수술을 받은 이후로 체중이 빠지고 있는 치매 3년차 노인. 이게 현재 우리 아버지다.

 뭔가 쓸쓸하네. 답답해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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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0일이네. 올해가 점점, 다 갔다.

 지난 금요일에 회사 하루 쉬었다. 너무 피곤해서. 주말에 산불근무 한 걸로 평일에 쉴 수 있는, 당연하지만 누구나 다 누리지는 못하는 좋은 시스템이고 괜찮은 회사다. 오랜만에 노래를 하나 만들었고 운동을 했고 은행에 다녀왔다. 단골 커피숍 사장님이 코로나 때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를 했고 나는 어려울 때일수록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 이게 진심이란 게 현재 내 문제다. - 그런 때일수록 버티라는 위로의 말을 들었다. 고맙습니다. 이때까지 순조로웠다. 오후 늦게 친구 만나러 태백에 올라가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아버지 압박에서 벗어나서 일상으로 돌아온 첫 주 금요일에. 일상이 다시 깨졌고 울화가 치밀었다. 사고란 게 항상 그렇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허리에 약간의 충격이 있지만 나는 괜찮다. 상대 운전자도 멀쩡하게 돌아다녔기 때문에 크게 다친게 아니면 좋겠다. 내가 뒤에서 받았기 때문에 상대 운전자에게 괜찮냐고, 진심으로 물어봤고 이후에는 보험회사에서 알아서 처리했다. 편리한 시스템이다. 다만 차는 엉망이 됐다. 내 마음처럼.

 사고 나고 앞차가 길 옆에 차 세우고 운전자 멀쩡하게 내리는 거 보자마자 폐차와 차를 새로 구하는 일과 그 비용을 생각했다. 이게 현실이다. 감당할 수는 있지만 귀찮은 현실, 보편적인 욕망을 사는 사람의 마음. 다친 사람 없으니 괜찮다는 평범한 위로의 말을 듣고 마음이 풀리는 일.

 최근에 아내에게 보편적인 욕망이란 얘기를 했다. 어느 취한날 밤의 메모에는 신랑 마음도 모르고…라고 적었길래 바로 지웠다. 말을 해도 모르는데, 말도 안하는 남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나. 내 집을 갖고 싶고 기왕이면 그 집이 좋은 집이면 좋겠고 새차 사고 싶고 비싸고 맛있는 것 먹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복권에 당첨됐으면 좋겠는 마음. 그게 내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욕망이다. - 20대 초반에 동생이 아파트에 살아보는 게 꿈이라고 한 적도 있다. - 돈을 많이 벌거나 부자가 되기 위한 노력은 나에게도 없지만 아내는 애초에 그런 욕망이 부족하다. 이렇게 살아선 강릉에선 집을 사기도 편안한 마음으로 살기도 어려울 것 같아서 아내에게 동료들이나 친구들에게 전남(순천, 목포, 여수)에 가서 살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다닌다. 이건 보편에서 시작한 나의 개별적인 욕망이고 이쪽이 복권 당첨보다는 실현성이 높다. 사고 나고 레카차랑 보험회사 직원 오는 거 기다리는 동안 강원도에서의 운을 다 썼나,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삶이 들떠 어지럽기 때문이다. 차분하지 못한 이유에 아버지 비중이 크지만 그게 다 아버지 때문은 아니다

 그랬더라면, 하는 마음은 일이 잘못됐을 때만 든다. 주유소에 들르지 않았더라면 태백에 가기로 하지 않았더라면 미용실 예약에 빈 자리가 있었더라면 엄마한테 보낼 택배 보내러 다녀왔더라면, 휴가를 쓰지 않았더라면 하면서 후회가 시간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게 좋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까지는 가지 않는다. 보통은 다 그렇지 않을까?

 친구한테 몸 구석구석 짜증이 박혀있다고 했더니 이 나이 땐 짜증이 베이스로 깔려있다고 답장이 왔다. 다들 그렇구나, 이런 말과 생각으로 위로 받는다.

 뭔가 들뜬 마음을 가라 앉히라고 사고 났다 생각해야지. 다친 사람 없으니 됐다. 뭐 어떻게 되는건 없고 내가 알아서 해야한다. 그게 어른이다. 진단서 미첨부 병가를 쓸 수 있는 회사를 당분간은 그만두지 말아야겠다.

 보통의 마음 같은 걸 생각해보면서 어지럽게 봄이온다.

 금요일에 만든 노래 가사. 제목은 ‘봄’

마당엔 꽃잎이 듬성듬성
마음엔 그리움이 드문드문
문득문득 당신생각 피어오른 그리움을
오늘일까 내일일까 사라질까 겁이나서
두손 모아 빌었지만 그대 마음 알 수 없네

마당엔 꽃잎이 듬성듬성
마음엔 그리움이 드문드문
담장 너머 뛰어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살랑살랑 봄바람에 그대 마음 어딜가나
아지랑이 어지러워 내 마음도 알 수 없네

봄_초안.mp3
1.08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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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엄마, 나 셋이 오랜만에 같이 다녔다. 같이 다닌건 이혼할 때 후로 처음인가? 처음에 의미를 두는 인간이란 존재가 참 무의미하다.

아버지는 건강하고, 의무 기록도 다 발급받아서 우체국 보험 신청도 했다. 아버지는 데이케어센터에 돌아가서야 마음이 편해보였다. 현재 아버지의 모든것은 아버지가 학교라 부르는 그곳에 있다. 좋다. 아버지 평생에 여기처럼 본인을 챙겨준 곳도 없을 것이다.

엄만 많이 야위었고 아버지도 체중이 줄었다. 멀쩡한 건 나 뿐인가? 나도 피로가 가시질 않는다. 힘들다. 친한 사람들 만나면 힘들단 말부터 한다. 그만큼 힘들다.

서울 강릉 왕복 기차표가 52000원인데 먼저 일요일에 아버지랑 은행 두 군데 돌면서 잔고 확인하고 아버지 현금 찾아주니까 아버지가 차비하라고 만 원 줬다. 돈이란 건 치매에 걸려도 아끼고 싶은 것이다.

그런 세상을 아버지도 나도 산다. 여전히. 많이 함드네. 강릉 가는 기차 기다리면서 잠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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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침대 위에 반대로 누워서 쓴다. 아버지 암 수술은 잘 끝났고 2월 28일에 퇴원했다. 의사는 젊은이들보다 회복이 빠르다고 했다고 하고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는 건강하다. 당분간 죽을 먹어야 하는데 데이케어센터에서는 토요일 점심밥까지만 아버지를 돌봐줄 수 있어서 내가 올라왔다. 내일 올라올까 싶었지만 한 끼니라도 내가 직접 아버지 보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그냥 오늘 왔다. 전화기 들고 뭐 해라 뭐 하지마라 백 번 말하는 것 보다 가까이서 보는 게 안심이다. 아버지 집에는 엄마가 사 둔 죽, 요플레, 두유와 내가 방금 사온 카스테라와 아버지가 사둔 달걀이 있다. 달걀은 내일 삶아 드리고 오늘은 나머지를 두 번에 나눠서 하나씩 먹고 아버지랑 같이 자는 작전이다.

아버지는 건강하다. 본인도 아픈곳 없다고 하고 그냥 봐도 아픈데 없어 보인다. 잘 됐다. 수면 마취 때문인지 입원 중에는 많이 횡설수설했다는데, 내가 보기에 지금은 수술 전과 비슷하다. 치매의 증상은 나빠지지만 않으면 또는 급격히 나빠지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아버지에게는 두 개의 암보험이 있다. 죽고 나서 보험은 소용 없는데, 수술 후 건강한 상태에서의 보험은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엄마처럼 보험 맹신주의자는 아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보험료를 타기 위해 일일이 증빙을 하는 수고로움이 싫다.

계속 적고 있지만 아버지는 건강하다. 아버랑 수술 입원 내내 같이 있던 엄마는 녹초가 되서 오산으로 돌아갔다. 인생 모르는 거지만 아버지가 엄마보다 오래 살 것 같다. 나라면 그런 순간이 와도 그뿐이라고 하고 말겠지.

목요일 오후에 아버지 데이케어센터에 데려다 주면서 아버지 약도 다 맡겼다. 앞으로는 내 전화로 약을 먹는 것보다 샌터에서 챙겨 주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다. 열흘만에 아버지를 본 센터 선생님들이 명교 어르신 오셨다고 엄청 좋아했다. 같이 지내는 정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거다. 좀 있다가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나를 보고 반가워 하겠지. 나도 아버지가 나를 반기는 모습을 보면 좋을 거 같다. 부모 자식의 정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거다.

초중고등학교 개학하고 나서 거리에서 몰려 다니는 학생들 무리를 자주 본다. 초딩들은 초딩대로 종종거리는 게 귀엽고 중고딩들도 걔네들대로 어설픈 모습이 보기 좋다. 오래 46살이다. 학생들 몰려 다니는 것만 봐도 기분 좋아지는 나이가 됐다.

아버지, 제가 할 수 있는데까진 챙겨드릴테니까 어쩔 수 없는 건 그냥 두고 일단 건강하자구요.

오즘은 아버지 핑계로 무너지지 말아야지 생각을 많이한다. 세상의 일들이 한 순간에 벌어지니까 갑자기 무너지지 않도록 어두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된다.

-> 아버지 퇴원한 날 영상통화. 괜찮으니 의사가 퇴원하라 했겠지만 이때도 아버지 몸 상태가 괜찮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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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운동 끝내고 샤워하다가 <집>을 생각했다. 이유도 없이 머리에 뜨거운 물 맞다가 갑자기. 집에 대한 욕망은 단순한 것이다. 주인에게 쫓겨날 걱정없는 내 집을 갖고 싶다. 빚 없이 내 집을 갖고 싶다. 한 번도 내 집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 내 집을 갖고 싶다. 변기 수압이 세고, 부엌도 넓고, 거실엔 커다란 텔레비젼이 있고, 퇴근하고 돌아올 때 주차할 곳 없을까봐 걱정할 일 없는 내 집을 갖고 싶다. 이 정도의 보편적인 욕망이 나에게는 있다.

 아버지는 어제 입원했고 오늘 수술이다. 다음주 초 퇴원할 때까지 엄마가 아버지를 돌보기로 했다. 아버지 일로 내가 서울 오갈 때, 왜 엄마가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엄마 생각을 하니까 나도 눈물이 난다. 엄마는 나를 대신하고 나는 엄마를 대신한다. 그 대신하는 마음에서 나온 눈물이다. 그 안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한 움큼 섞여있다. 엄마는 나를 걱정하고 나는 엄마를 걱정한다. 사랑이다. 걱정이 많은 사랑. 아버지랑 엄마는 병실에서 무슨 얘기를 할까? 살아가는 얘기를 나눌 수 없는 사이란 건 슬프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도 사랑일까? 난 아닌데, 엄마 마음은 모르겠다.

 수술은 별 걱정 안한다. 수술 후에는 문제가 있다. 한 달 정도 밥을 아주 천천히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치매 걸린 이후에 먹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데이케어센터를 이용하지 않는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 아버지 밥 먹는 걸 어떻게 컨트롤 하는냐가 문제다. 한 두달 정도라면 나랑 동생이랑 번갈아 가면서 아버지를 만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동생은 동생대로 아버지가 암 수술을 하는데, 본인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로 마음이 어둡다. 아버지 사업 실패 - 사업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 때문에 산산조각 났던 가족이 아버지 치매랑 위암 때문에 대동단결하게 됐네. 씁쓸하다.

 아버지는 스스로를 잘 컨트롤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나에게 인생은 어떤것이다, 라고 한 적이 없다. 아버지에게는 인생이 어떤 것이라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스스로는 삶에 자신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뚜렷한 목표라던가 계획이 없었다. 그저 80년대 중후반을 관통한 경제 호황이라는 시대 분위기에 따라서 막연히 다 잘될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아버지와 비슷한 종류의 자신감을 피로 이어 받았다. 그게 너무 싫을때가 있다. 모든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그렇지 않을때가 많네. 그래서 아직도 내 집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도 인생을 관통하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 엄마는 그저 열심히 살라고 했다. - 아, 옛날사람 - 아쉬움을 갖고 이런 얘기를 적지만 밥을 굶거나 맞고 자라지 않은 것만해도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냥 산다. 너로 산다. 사랑으로 산다. 술로 산다. 그냥 사는 걸 포함해서 뭘로든 살기만 하면 되는건가? 그냥 사는 거랑 되는대로 사는 건 많이 다른 느낌이네. 그냥 사는 것에는 의지가 들어있다. 되도록이면 그냥 살자. 아버지 걱정은 퇴원 후로 미루자.

 아버지 입원한 날 <집>에 대해서 생각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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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 1시 52분에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마침 자다가 깨서 잠깐 멍하게 있던 중이라 바로 전화를 받았다. 머릿속에서 시간 혼란이 온 아버지는 아무도 없는 그 시간에 1시간 정도 걸리는 산책코스를 돌고 왔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내가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네, 안녕하세요.' 하고 전화를 받았다. 데이케어센터에서 차 타러 나오라고 전화한 줄 알았던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새벽에 나한테 전화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고 뭔가가 이상했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엊저녁에 통화할 때도 했다. 이 정도만 말똥말똥해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다만 새벽에 시간개념 없이 밖을 돌아다닌 걸 처음이라 살짝 걱정이다. 아버지한테는 사람 없을 때는 어디 돌아다니시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가 체크카드를 사용하면 나한테 알림이 온다. 데이케어센터에 있는 날이 많으니까 알림은 한 달에 많아야 10개 정도 온다. 마트에서 뭘 사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김밥을 사먹거나 이런거다. 8000원 이하가 많다. '8000원 이하만 소비하는 삶' 짠하다. 어제는 빵집에서 빵을 샀다는 알림이 왔고 - 센터에서 저녁을 먹었지만 빵이 드시고 싶었나보다 생각함 - 커피가 먹고 싶은데, 커피가 떨어져서 커피 사러 나왔다고 하길래, 아버지는 위암이라 커피 드시면 안된다고 했다. 위암이라 반복해서 얘기해줘도 자꾸 잊는 걸 보면 아버지 머릿속에는 애초부터 본인이 '암'에 걸릴수도 있다는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세상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아버지의 지금 상태는 어떤면에선 좋고 어떤면에선 좋지 않다. 햄버거와 찬물의 공통점은 위 아래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많은 것들도 그러하니까.

아버지가 위암 판정 받고 서울 몇 번 왔다갔다 한 이후에 부쩍 우울해졌다. 산불조심 기간이라 주말에 사무실에서 근무를 섰다. 일요일 오후 늦게 친구 N이 어렸을 때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고등학생이던 나, 20대 초반이던 나를 봤다. 친구들이랑 부석사 갔던 것도 생각나고 고교동창들 이름이랑 별명도 떠올랐다. 뭔가 위로가 됐다.

나는 지금 어떤 추억을 쌓고 있나? 아버지와의 추억을 쌓고 있네. 아버지한테도 추억이 쌓일까?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 중요한가? 과거가 아름답게 기억된다면 그것은 그게 다 지나간 일이기 때문이다. 먼저 아버지 만났을 때는 아버지 회사 다닐 때 얘기를 들었다. 사장이 아들한테 회사를 물려줬고 그 사장이 술 먹고 노는 것만 좋아해서 많은 직원들이 몰래몰래 돈을 빼 가고 그러다가 회사가 망했다는 얘기였다. 아버지의 기억은 내가 바로 위에 쓴 문장보다 약간 길 뿐이다. 짧게 요약할 수 있는 기억. 짧게 기억되는 과거. 아버지는 아직 나를 알아보고 내 이름도 안다.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를 짧게 기억할 뿐이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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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강경. 구멍 2-3개. 가벼운 수술이다. 위 3분의 2를 잘라내고 남은 위에 소장을 끌어올려서 붙인다. 수술은 총 4시간 이상 소요.
남은검사 - 엑스레이 심전도 혈액형 검사 순환기 내과 진료의뢰 - 입원 전에 진행해야 함
2.22. 점심 때 수술하기로 함
20일에 코로나 검사(이대병원에서 진행)
21일 오후 입원
보호자 상주하려면 코로나 검사, 아니면 간병인 구할 것
수술 5-6일 후 퇴원
수술 후 밥을 매우 천천히 먹어야 함
1기로 예상 되지만 수술 후에 1기가 아니라면 항암치료 해야됨.

어제, 아버지 수술해 줄 의사 만나서 들은 얘기다. 나보다 어려보이는 의사가 말을 시원시원하게 해서 듣기 좋았다. 엄마한텐 말로 설명하고 동생이랑 아내한테는 텍스트로 보냈다. 그래도 또 말로 설명해야 된다.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는 아버지보다는 20일부터 누가 어떻게 아버지 일을 진행할지가 더 걱정이다.

어제는 지치고 힘들었다. 데이케어센터, 병원 세 곳, 약국 두 곳, 식당 두 곳 한 번 다녀왔다. 병원 안에서도 여기저기 막 돌았는데, 신경과 선생님이 새해 복 많이 받고 수술 잘 받으시라 한 것과 - 전신마취 후 섬망증상이 나타나도 너무 걱정 말란 얘기도 함 - 가정의학과 선생님이 혈압약 약한 걸로 바꿔주면서 수술 잘 받으시라 한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형식적이고 사소할 수도 있는 말이 힘이 될 때가 있다. 예정에 없게 하루 더 서울에 있게되서 울적했다. 모텔 욕조에 목욕물 틀어놓고 담배 피우면서 힘들다. 힘들다. 했다. 스스로에게 하는 힘들단 말 말고 나를 위로해 줄 말이 없다, 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7시반에 병원 도착해서 두 시간만에 네 군데를 돌았다. 검사 다 마치고 만난 의사가 심전도도 좋고 청진기로 들어본 소리도 좋으니 수술 잘 받으시라고 했다. 여기까지로 일단 안심이다. 데이케어센터 가서 아버지 수술 일정 설명하고 지금 청량리역 가는 중이다. 오늘은 이동이 많지 않아서 어제보다 덜 힘들지만 힘들다. 심적으로. 아버지랑 함께 있는 건 덩치 큰 어린이랑 함께 있는 것 같다. 엄마는 내가 너무 고생해서 눈물이 난다고 하는데,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을 엄마가 하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엄마한테 같이 살자고 하는 아저씨들이 있었을텐데 엄마는 왜 재혼하지 않았나? 자식들(나랑 동생) 때문이라 생각한다. 부모 자식이란 게 서로 눈물 흘리는 사인가 보가.

서울은 어제 오늘 미세먼지가 심하고 강릉은 몇 달 째 가물다. 아버진 머릿속은 먼지낀 듯 뿌옇고, 엄마도 나도 동생도 마음속이 점점 메말라간다.

소변검사 하는데 오줌 잘 못 받아서 내가 종이컵 받쳐줘야 되는 아버지가 이제 봄이 오나보다, 말했다. 아버지한테도 아직까지는 봄이 온다.

어쩌겠나 살아야지. 여전히 위로받고 웃는 순간이 있으니까.

수요일 오전인데 일주일이 다 간 것 같다. 청량리역 가는 중인데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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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버지 만났다. 병원가서 검사 결과 들었다. 의사가 수술을 권한다고 했다. 의사말을 따라야지. 6일에 수술해 줄 내과 의사 만나고 7일에는 수술 전 준비 과정으로 심장초음파 검사 하고 신경과 선생님도 만나야 한다. 6일은 동생이 7일은 내가 맡는다. 동생이 있어서 다행이다. 치매 때는 여러가지 자료를 많이 읽어봤지만 위암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암은 그냥 암이니까 도려내면 되니까.

아버지는 요새 좀 말똥말똥한 느낌이다. 통화할 때 나한테 고맙단 얘기도 자주하고 약도 먼저 챙겨 먹은 일이 많다. 실제로 만난 아버지도 말똥말똥한 느낌이었다. 물론 이미 잃은 능력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병원에서 진료지연으로 대기 시간이 좀 있었는데, 아버지가 엄마는 건강하지? 물었다. 젊어서부터 지하실에서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 건강할리가 있냐고 살짝 부아가 나서 말했다. 작년에 뇌수술도 하지 않았냐고 하자. 웃으면서, 그랬나? 해버리는 아버지를. 나는 사랑하진 않는다.

정월대보름이 가까워서 신월동 시장에 잡곡이랑 나물이 눈에 많이 띄었다. 취나물 다래순 고구마줄기 도라지 봄동 아주까리 같은 것들이 수입 체리와 뒤엉킨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았다. 체리 빛깔이 매혹적이라 그런것 같다. 아직까지는 대보름 풍속이 살아있다. 입춘대길도 그렇고 뭔가 복이 되고 돈이 되고 좋다고 하는 풍습이 오래 살아 남는다. 정월대보름은 언제까지 가려나? 아버지는 내가 케어하면 되는데 내 더위는 누가 사가나?

아버지 데이케어센터에 모셔드리고 국철타고 오산 엄마한테 왔다. 예전에는 수원역 전후로 초록 들판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와이 슈운지의 릴릴슈슈의 모든것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겨울이기도 하고 새 건물도 많이 올라가서 수원역에서 오산역 사이에 그런 들판은 없다.

엄마는 장사할 때 알던 아줌마 아저씨들과의 관계 속에 살고 있다. 그 관계에서 크게 스트레스 받는일은 없는 거 같다. 그러면 됐다. 엄마가 해 준 찰밥 먹었다. 엄마랑 얘기 많이 했다. 내 태몽이 복숭아가 아니라 통장과 도장이란 걸 알았다. 여지껏 왜 복숭아로 알고 있었을까. 이웅평 대위가 남한 상공을 날 때, 마침 짜장면을 시켜놔서 울면서 많이 먹으라고 했단 얘기도 다시 들었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장사할 때 원도한도없이 고생했단 얘기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런 얘기를 하게 된 엄마를. 장사할 때는 힘들단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엄마를. 정말로 열심히 했다(살았다)는 엄마를. 나는 사랑한다. 해 준 것도 없는데 얘기를 또 하길래 앞으로는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했다. 나도 동생도 아버지도 이미 충분히 받았다.

윤석열이가 같이 술 먹고 놀자고 쫓아오는 꿈을 꿨는데, 도망가다가 붙잡히질 않아서 복권을 사진 않았다는 엄마 얘기를 기억해 둔다. 엄마 삶이 여러가지로 뒤엉킨 꿈이라 샹각한다. 엄마, 복권은 제가 살게요.

아버지가 위암 판정을 받고 꽤 지났고 나름대로 빠르게 진행했는데, 아직 수술 날짜도 잡히지 않았다. 이게 세상의 속도고 당장 아버지 숨이 넘어 가는것도 아니니 순서대로 차분하게 진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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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에 ys형 만났다. 그래봤자 며칠전이다. 내 구글 주소록에 영어로 저장된 넷 중에 한 명이다. 떠돌이 같던 인생에 지금 직장 알려준 고마운 사람이다. 한참 마시던 중에 형은 요새 이슈가 뭐에요? 물었는데, 없다고 했다. 사람들 만나면 요즘 이슈가 뭔지 가끔 묻곤 하는데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 처음 봤다. ys형은 집 살 때 진 빚도 다 갚았고 아내랑 같이 벌고 아이도 없으니 이슈가 없다고 했다. 와, 이슈가 없는 사람도 있구나.

내게는 크게 두 가지 이슈가 있다. 아버지랑 집이다. 곧 만 4년을 채우는 전셋집은 집주인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고 나도 나갈 마음이 없기 때문에 자동으로 계약이 2년 연장됐다. 2년 후에 이사 가게 되면 전세 보증금 돌려 받을 수 있나? 하는 문제가 남았지만 일단 집 문제는 해결됐다. 치매인데 위암에 걸린 아버지는 아마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나의 이슈로 남을 거다. 2월 3일에 의사 만나서 검사 결과를 듣고 수술 등 날짜 잡아야 하는데, 벌써부터 걱정된다.

며칠 전에 아내한테 이슈가 뭔지 물었는데 없다고 했다. 없으니까 좋은건가? 혹은 체념인가? 아내는 말 길게 하기 귀찮아서 없다고 했을거다. 나는 나도 걱정, 아버지도 걱정, 엄마도 걱정, 나라도 걱정, 국제 정세도 걱정이다. 체념하는 삶을 사는 것 처럼 말하고 다니지만 걱정이 많으니 진짜 체념은 아닌가? 유명해지고 싶다는 열망을 여전히 갖고 있으니 체념은 아닌 것 같다. 그저 거짓말쟁이인가?

40대 중반 나이에 여전히 마음속에 열망이 꺼지지 않았다는 건 좋은 일인가? 당장 땟거리 걱정이 없으니 드는 배부른 생각인가?
잘 모르겠다.

p.s. 이슈의 반댓말은 체념인 거 같고 체념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반댓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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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에 병원 도착해서 수납, 피검사, ct촬영 동의서 작성, 나만 커피 한 잔 마시고 - 아버지 미안해요. - 초음파 내시경 마쳤다. 병원 안에서만 다섯 군데를 돌아다녔네. 아버지 힘들었겠다. 그래서 그런지 검사 마치고 택시에서도 집에 와서도 잔다. 잠든 아버지 몸에 내 몸을 얹어도 아버지는 그저 곤히 잔다. 시장에 죽 파는 곳이 있길래 전복죽 사서 아버지 침대 근처에 두고 나왔다.

ct 찍으러 온 사람들 중에 바퀴달린 병원 침대에 누워서 '아' 소리를 계속 내던 할아버지가 기억에 남았다. 아픈것도 있지만 외로움의 절규 같은 '아'였다. 기력이 없어서 큰 소리로 내지도 못하는 '아'. 우리 아버지도 외로운데. 아버지가 저 사람은 아파서 소리내는 거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다.

초음파 내시경은 먼저 만났던 담당의사가 직접 진행했다. 사진 찍는 사람은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담당 의사가 진행해서 다행이었고 안심이 됐다. 내일 ct결과도 봐야겠지만 내시경 상으로는 깊게 파고들지 않은 조기암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 얘길 전했더니 엄마랑 동생이 좋아했다. 나도 그들만큼 좋은 건 아니지만 마음이 나쁘지 않다.

내시경 찍을 때까지 한 시간 정도 기다리는 중에 아버지 손을 잡았다. - 둘이 멍하게 있을 땐 손 잡고 있는 편이다 - 따뜻하다, 너도 열이 많아, 묻더니 금방 잠든 아버지가 기억에 남았다.

오늘 아버지는 (당연히) 왜 병원에 왔는지 몰랐고 난 잘못한 거 없어라고 자꾸 말했다. 얼마전에 속이 상한 엄마한테 한 소리 들어서 그런 것 같다. 누구나 다 걸리는 암에 아버지도 걸렸고 나도 아버지가 크게 잘못한 거 없다고 생각한다. 느긋하게 생각하면 아버지 치매도 술 보다는 유전적인 게 강한지도 모른다. - 할아버지 돌아가실 무렵에 횡설수설 하던게 희미하게 떠오른다. - 그렇다면 나도?

아버지, 아버지는 잘못한 거 없어요. 어제 금식 잘 하셨고 오늘 검사 받느라 고생 하셨어요. 좀 있다가 전화 할테니까 그때 죽 먹기로 해요. 내일은 작은 아들이랑 손주들 만나서 좋겠네.

아버지, 잘 하고 있어요.

신길역에서 출발한 1호선이 청량리역 도착하기 전에 글이 끝났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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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에서 강릉가는 19시 22분 기차 기다리면서 쓴다. 귀에 이어폰 안 꽂고 쓰는 거 오랜만이네.

청량리역에 18시 50분에 도착했다. 까치산에서 5호선을 타고 신길과 종로 3가 중 어느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탈지를 고민했다. 퇴근 시간의 혼잡도를 고려해서 5호선에서 자리에 앉은김에 종로 3가까지 앉아서 오는 쪽을 선택했다. 지금의 아버지의 삶에는 스스로 하는 이런  종류의 선택이 없다. 위암이라고 반복해서 얘기해도 그게 뭔지 몰라서 그저 웃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 편한 부분도 있다. 괜히 심각해 질 필요는 없지.

내시경 사진 상으로는 암덩어리가 두 개 있고 덩어리의 모양만 봐서는 초기 단계는 아닐거란 얘기를 들었다. 두 개의 덩어리 다 위치는 좋다고 했다. 수술하기 좋단 얘기겠지. 암에 걸렸는데 위치는 좋은 모순을 생각해본다. 19, 20일에 초음파 검사랑 CT 찍기로 했다.

엄마는 어제 다 울었는지 오늘은 울지 않았다. 자꾸 나한테 미안해 하길래 그럴 필요도 없고 며칠 뒤 검사도 동생이랑 의논해서 진행할테니 아버지 일에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어제 목욕도 하고 푹 잤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몸살 기운이 느껴져서 텅빈 아버지 집 아버지 침대에 전기 장판 틀고 누워서 땀을 흘리면서 잤다. - 병원 예약이 오후라 아버지는 아침에 데이케어센터에 감 - 개운해졌다. 전기장판 작동 못 시키는 아버지, 치매인데 위암에 걸린 아버지, 엎친데 덮친 아버지인가?

병원 다녀와서 순댓국 먹었다. 위암이란 걸 얼었으니 짜게 먹을 순 없는 노릇인데, 아버지는 내가 안 본 사이에 다대기도 넣고, 젓가락으로 새우젓을 잔뜩 집었다가 나한테 제지 당하기도 하고 내 눈치를 보면서 짜게 먹었다.

아버지 너무 짜게 드시지 마세요. 검사 잘 받아 보자구요.

-> 땀 흘리고 잔 후에 신월 3동 스타벅스에 갔다. 노트북이랑 공부할 거 없으면 혼자서 스타벅스 오면 안되는 세상에 살고 있나? 잠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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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9시 40분 강릉역에서 쓴다.

 아버지한테 가려고 10시 30분 기차 기다리기 시작했다. 의사 만나서 건강검진 결과 확인하고 데이케어센터 가정통신문 회신해 주는 간단한 일정이다.

 어제 저녁에 아버지랑 통화 마치고 아내가 한 마디 했다. 때때로 내가 아버지를 구박하거나 핀잔을 주는 말씨를 쓴다고 한다. 기분은 안 좋았지만 바로 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 말이 맞겠지. 막바로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아버지한테 부드럽게만 말해야지' 생각했다. 세상 모두가 아버지한테 화내고 막 대해도 나만은 그러면 안된다. 현재 아버지에겐 내가 최고의 의지니까.

 어제 억양이 올라간 이유가 바로 윗 문장인 게 아이러니다. 평소처럼 학교(센터)에 가 계시면 오후에 모시러 간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내 말을 듣지 않고 그럼 학교는 안 가도 되겠네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니까 어젯밤 아버지 머릿속에는 내일 큰아들 - 요즘 아버지는 내 이름을 잘 말 안(못) 함 - 만난다.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그저 그 뿐인데, 나는 그게 싫고 부담되고 남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버지가, 나만 기다리는 아버지가, 엄마에게 계속 부담인 아버지가 얄밉다.

 치매는 세계라는 시스템에서 동떨어지는 일이고 내가 보기에 아버지 인생이 시스템에서 멀어진 건 30년도 넘었으니, 자연인이 되지 않은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치매가 치맥같이 가볍고 얼렁뚱땅한 일이면 내 마음도 지금보단 편할텐데.



 아버지랑 헤어지고 신월동 모텔방 욕조에서 쓴다.

 아버지랑 오리로스 먹었다. 감자탕과 오리로스 중에 아버지가 골랐다. 나는 감자탕이 먹고 싶었다. 아버지랑 같이 돼지등뼈를 뜯는 이미지를 떠올려서 그렇다. 아버지는 위암이다. 대학병원 가라고 의사가 써준 소견서에 stomatch cancer라고 적혀있다. 의사가 별의별 병에 다 걸리시네요,라고 쿨하게 말했다. 내가 이 의사 선생님을 좋아한 이유다. 진료실 뒤쪽에는 꽤나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는 운동기구가 놓여있었다. 여태까지 이걸 몰랐다니. 무심했다. 병원 입구에서 별일 았으면 큰일이라고 했는대, 진짜 별일이 있었네. 위암이란 걸 알고 나서 오리 로스를 먹었다. 아직은 일상이 유지되도 괜찮으니까. 아버지는 분명 12시에 센터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4시에도 많이 잘 드셨다. 지갑에 돈 갖고 있고 싶다고 해서 은행에 들러서 돈 10만원 찾아드렸다. 아버지 지금 상태론 ATM 이용 못한다. 카드 비번을 몇 십 번 알려줬다. 나는 말하고 아버지는 흘린다. 목동이대병원 금요일로 예약했다가 무리인 것 같아서 내일로 바꿨다. 당일치기 강릉 서울 왕복은 자동차로도 힘들고 기차로도 힘들다. 아버지가 또 나만 기다리는 게 싫어서 내일 또 만날거라고 얘기 안했다. 회사를 포함해서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다.

 엄마는 머릿속이 까맣다고 했다. 아내에게 엄마가 까맣다는 얘기를 전했더니, 가슴이? 라고 했다. 머릿속이든 가슴이든 까만 건 까만거지. 엄마는 집안에 우않(우환)이 겹친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정정해 줄까 하다가 별일 아니니 걱정 말라고 답장했다. 그리고 엄마는 머릿속이 까매서 자꾸 울었다.

 땀난다. 내일 잘 마치고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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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가 할아버지 제사였다. 12시 반 정도에 오산 엄마집에 도착했다. 여태까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제사 준비하면서 사람(아버지)이 아파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제사가 다 무슨 소용인가 생각했다, 고 엄마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더구나 법적으로 엄마랑 아버지는 남이다. 그런 미안함이 아버지 동생들에게 있기를 바란다. 아마 있겠지. 없으면 안되지. 아버지는 JJ 작은 아버지가 모시고 왔다.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양반이니 당연히 본인이 아버지를 모시고 와야겠지. 동생네는 안 왔다. 막내 작은 아버지 내외까지 총 7명이 제사를 치렀다. 제사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이왕이면 이 정도 소규모가 좋다. 23일 아침에 아버지랑 통화하고 그날 저녁에 통화를 못했는데, 24일에 만난 아버지는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이름으로 알뜰폰 하나 새로 해 드려야지 생각했다. 제사 마치고 저녁 먹고 강릉으로 돌아왔다. 강릉오산 당일치기 왕복 운전은 언제나 힘들다. 25일에는 종일 누워 있었다. 아직은 누워 있는 일로 피로가 풀리는 나이다.

어제 아침에 건강검진 받고 바로 서울로 왔다. 친구 잠깐 만났다. 인생에는 여러가지 경우가 있다. 한 친구는 절반쯤 갚고 남은 빚이 오천이고 한 친구는 숫자 열자리의 ‘나의 자산’을 보여줬는데, 그 둘은 태어난 날이 같다. 내가 엮어준 사이고, 둘이 친해서 다행이다. 그들도 서로를 바라보면서 또 나를 바라보면서 인생에는 여러가지 경우가 있다고 생각할 거다.

오늘 아침에 혹시나 싶어서 아버지한테 전화했는데,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와, 아버지 전화기 찾았네. 데이케어 센터에서 오는 차를 타고 내리는 골목이 있는데, 그 골목에 휴대전화를 두고 지난 금요일 아침에 센터에 갔던 것으로 최종 확인했다. 아닐수도 있다. 중요한 건 아버지가 전화기를 찾았다. 해가 세 번 지는 동안 길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아무도 들고가지 않았다. 세상에 물건이 흔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딱 봐도 초구형의 스마트 폰을 주워도 어디 팔아먹을 곳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는 오늘 아버지 건강검진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3일동안 아스피린을 드시면 안되다고 해서 토요일로 예약을 미뤘고 올해의 마지막 날 아버지를 만나는 일은 동생에게 미뤘다. 자식이 둘인데, 둘 다 아버지를 포기하지 않았으니 시간나는 놈이 아버지 관련 일을 진행하면 된다. 은행에 가서 자동이체 전 마지막 가스요금을 냈고, 마그네틱이 손상된 통장을 새로 발급 받았고, 몇 번의 에러 끝에 아버지가 통장 비밀번호를 기억해 내는 일이 있었다. 먼저 서울왔을 때, 고생해서 만든 체크카드가 아버지 지갑에 없는 걸 알았고 은행에 간 김에 새로 만들까 하다가 왠지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핸드폰을 들여다 보다가 핸드폰 지갑에서 체크카드를 발견했다. 굿. 오늘도 아버지랑은 순댓국을 먹었다. 맛있는 집이 있다는 아버지 손에 한참을 끌려갔고, 아버지는 순댓국을 다대기 국으로 만들어서 먹었는데, 맛있다고 했다. 아버지 먹는 모습을 보면서 예전부터 가졌던 느낌이 확실해졌는데, 아버지는 뭔가를 먹는 일도 어설퍼졌다. 그걸 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실제로는 빨리 먹지 않는데도 보기에는 급하게 먹는 것 같고 입 주변에 음식을 많이 묻히고 바닥에 많이 흘린다. 밥 먹고 데이케어 센터에 아버지 모셔다 드렸다. 일이 빠르게 잘 진행된 날이다.

강릉에 도착해서 엄마 전화를 받았다. 올해 뇌수술 한 것 때문에 지난주에 mri를 찍었고 오늘은 그 결과 들으러 가는 날이었다. 엄마는 아버지 때문에 신경쓰게 해서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럴 것 없다고 했다.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끊기전에 사랑한다고 말할까 하다가 - 엄마가 살짝 바라는 것 같았지만 엄마도 먼저 사랑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이런것도 유전이지. - 몇 번의 타이밍을 놓치고 그냥 끊었다. 내일 전화해서 꼭 사랑한다 해야겠다. 전화를 끊고 오랜만에 만난 엄마 앞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엄마가 차려준 밥을 우걱우걱 먹고 싶은 기분이 됐다. 엄마가 뭘 차려주면 맛이 없더도 배가 터지도록 먹게 된다. 차려주는 쪽도 먹는 쪽도 어떤 결핍이 있다. 해준것도 없는데란 말과 수고했단 말을 엄마에게 듣고 싶지 않다. 엄마, 아버지에 대해서는 너무 신경쓰지 마시고 본인 몸 관리 잘 하세요. 저도 엄마 말대로 건강 신경 쓸게요.

오늘 아버지가 나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정신 차려야겠다.’ 고 내가 아버지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정신은 안 차려도 되는데, 핸드폰이랑 지갑은 어디 두고 잃어버리지 말고 항상 챙기세요’ 다. 아버지는 여전히 날 만나면 좋고 내가 본인 일 때문에 서울에 자주 올라오는 것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지금이 아버지의 가장 좋을 때라는 생각이다. 그 생각 때문에 슬퍼지는 건 아니다. 아버지, 설 연휴에 또 만나요. 다음달에 만났을 때도 ‘정신 차려야겠다’고 말해 주세요.

청량리 역 비둘기들은 한결 같이 등빨이 좋았다. 기억해 둔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학교)에서 만들었는데, 나보고 가져 가라고 해서 가져왔다. 우리 아버지 잘 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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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아버지랑 한참 통화했다. 나한테 뭔가 말할 게 있다는데 그게 뭔지 생각이 안 난다고 해서 그게 뭘까, 생각하면서 계속 말을 걸었다. 아버지는 자고 일어났더니 코피가 났다고 했다. 아스피린 복용 때문에 코피가 쉽게 안 멈출수도 있어서 그렇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추운데 괜찮냐고 물었더니 다 괜찮다고 했다. 아버지, 보일러 만지시면 안돼요. 출근하고 얼마 안 있다가 데이케어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어제 넘어졌고 나한테 얘기했다는데 알고 있냐는 내용이었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보니 데이케어센터에서 문자가 와 있다. 얼굴이 까진 아버지 사진이 내 전화기로 전송됐다. 어딘지 멍한 아버지 얼굴이 까져서 더 멍해 보이는 아버지. 마음이 터질 것 같았다.

 엄마한텐 아버지 다친 걸 전달 안하려고 했는데, 이번 주말 할아버지 제사 문제로 전화가 먼저 오는 바람에 아버지 넘어진 얘기를 해버렸다. 어디서 왜 넘어졌는지 아는 게 중요하지 않은데, 엄마는 그게 알고 싶다. 어제는 아침에만 약 드셨는지 간단하게 통화했는데, 어제 저녁에도 전화를 해서 아버지가 본인 넘어진 걸 얘기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없다. 마음은 계속 터질 것 같지만 소용없는 일에는 집착하지 말자. 아버지가 일요일 조기축구 운동 끝나고 밥 먹는 중간에 화장실 다녀오다가 넘어진 걸 알았다. 아마 눈길에 미끄려졌겠지. 다들 술에 취해서 치매 걸린 노인네가 넘어졌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고 병원에도 안 데려갔다며 엄마가 화를 냈다. 나는 조기축구 아저씨들 마음도 이해가 간다. 아버지가 일요일마다 운동을 오는 일이 그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 마음속으로는 이 노인네 그만 나왔으면 할 것이다. 엄마 말마따나 그게 남이다. 수십년간 함께 운동하고 술을 마신 사이지만 그게 남이다. 난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 머릿속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하지만 올해 회비를 냈으니 끝까지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분명히) 그리고 일요일에 혼자 집에 있으면 외롭다.(더욱 분명히) 아버지는 여전히 외롭다.

 아버지, 주말에 할아버지 제사 때 봐요. 그 사이에 또 넘어지진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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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4강이 결정됐다. 우리나라 경기 말고도 몇 경기를 봤다. 축구는 공 하나 두고 차고 달리는 스포츠다. 예전에 어딘가 적은 적 있는데, 구기종목은 대체로 사람보다 공이 바쁘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 16강 진출하면 좋고 아니면 말곤데, 조별리그 마지막 게임에서 역대급 게임을 했다. 4년전 독일전이 끝나고 대단한 게임이었다, 가 머릿속에 훅 들어 왔는데, 그걸 갱신했다. 대단한 게임이었다. 일본이 철저하게 숏패스 게임 중심인데, 우리나라는 롱볼이 가능한 게 인상적이었고 수준이 많이 올라서 예전같이 '어이없는 실수'는 하지 않게 됐다. 그건 월드컵에 출전한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다.

 일본, 사우디, 호주 - 호주는 엄밀히 아시아 국가는 아니지만 사우디도 엄밀히 말하면 중동 국가니까 - 한국 사람들은 아시아라고 하면 동(남) 아시아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나도 좀 그렇다. - 아시아로 통칭하기로 한다. 이란까지 포함해서 카타르를 제외하고는 멋진 게임을 했다. 일본은 지금 스타일에 좀 더 거친 플레이와  롱볼(독일전 두 번째 골 멋있었음)을 가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시아의 젊은이들 화이팅.

 크로아티아 - 유고슬라비아 사람들은 왜 이렇게 운동을 잘하나? 농구를 포함해서 흑인들 중심인 엘리트 스포츠 계에서 미국같은 나라한테 유일하게 비벼볼 수 있는 백인 나라가 아닌가 생각한다. 다득점 팀은 아니지만 많이 먹어야 한 골 먹는 게임을 하는 팀. 이런 팀들이 토너먼트에서 오래 살아 남는다.

 스페인 - 일본보다도 더한 숏패스 축구, 코스타리카한테 7골 넣은 경기를 봤는데, 숏패스 버튼 밖에 없는 축구 게임 보는 줄 알았다. 토너먼트에서 더 올라가기 위해서는 특급 선수(음바페, 네이마르, 메시)  또는 몸빵형 스트라이커(여기에도 음바페는 들어간다.)가 필요했다.

 브라질, 잉글랜드 - 멤버 구성 좋고 공도 깔끔하게 잘 찼지만 두 팀 모두 자기들보다 좀 더 거친 팀들에게 졌다. 영국과 프랑스 게임은 내가 본 이번대회 베스트 게임이었다. 양 팀 선수들의 기술적인 부분은 같다고 보고, 영국은 음바페를 잘 막았지만 좀 더 거친 축구를 구사하는 프랑스가 이겼다. 브라질은 2002 월드컵때 뛰었던 호나우두 이후로 그런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항상 전력은 최상위권이지만 결승에도 못 가는 건 토너먼트에서 골을 못 넣기 때문이다. 프랑스처럼 거친 축구를 하는 크로아티아에게 패배. 

 프랑스 - 첫 두 게임을 보고, 이 팀은 질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선 마지막 게임에서 튀니지에게 졌지만 16강, 8강에서는 다시 이 팀은 질 것 같지가 않다는 포스를 풍김. 음바페는 혼자는 막을 수가 없음. 본인도 상대가 본인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뜀. 현재 세계에서 공 제일 잘 차는 선수가 음바페가 아닐까 생각이 듬.

 아르헨티나 - 질 것 같지 않은 이미지는 아니지만 지저분하게(네덜란드와 8강전 개싸움) 올라온 팀들이 끝까지 가는 경우가 많고 나는 여전히 메시가 좋다.

 스포츠는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경기가 재미있다. 그런데 만화 슬램덩크(대 산왕공고 전)에도 나왔지만 막상 강팀이 약팀에게 진짜로 지는 순간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원래 강했던 팀이 승리하길 바란다. 브라질이 8강에서 탈락한 것에 대해 느끼는 실망감이 - 나만 그런가? 살짝 그런게 있다. - 그런 것이다. 사우디가 아르헨티나를 이겼을 때, 와우! 하면서 환호했지만 아르헨티나가 16강에 못 올라가기를 바라진 않는 마음 같은 거랄까? 독일은 결국 16강에 못 갔지만 그럴만 했다.

 나에게 월드컵 축구는 못 사는 나라가 잘 사는 나라 혼내주는 대회다. 식민지배를 받던 나라가 서구 열강을 축구로라도 때려 잡는 대회다. 축구라는 스포츠는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맨발로 공 차던 아이가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축구 배운 사람들보다 돈 많이 벌어야되는 종목이다. - 아프리카 이민자 후손들이 프랑스, 독일 축구 국가대표가 되는 일 - 그래서 남미팀이나 동유럽팀이 서유럽팀(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잉글랜드)을 이기는 게임을 보는 일이 즐겁고, 아프리카 팀이 잉글랜드와 (특히)프랑스를 이기는 게임을 보는 일은 더 즐겁다. 질 것 같지 않은 프랑스는 예선에서 튀니지에게 졌고 4강에서 모로코를 만나는데, 모로코에게 지기를 바란다. 

 모로코 경기를 한 경기도 못 봤는데, 준결승은 봐야겠다. 위에 적은 글들을 종합해서 내 희망을 적어보면 모로코랑 아르헨티나가 결승에서 만나서 메시가 한 골 넣고 아르헨티나가 이겼으면 좋겠다. 

 21세기가 4분의 1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국가대항전이 유효하고 흥미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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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한마리 집에서 점심 먹고 혈압약 타러 병원, 아버지 안경 두고와서 점심 먹은집 다시 들렀다가 의사 만나고 약국, 신한은행 통장 찍어보고 농협에 신용카드 없애러 갔다가 직원이랑 언성 좀 높이고 처음 카드 발급 받은 농협으로 가서 체크카드 발급 - 여기 직원은 친절했다. - 이동중에 건강보험, 가스요금 자동이체 신청 - 수화기 너머로 본인 확인을 이유로 아들 두 명 이름 말하라고 했는데 뭔 말인지 못 알아들은 아버지가 동생 이름만 말하고 내 이름 말 못함 - , 미납 주민세 계좌이체, 치매안심센터에서 약값지원비 신청, 동사무소 들러서 가족관계증명서 등 발급받고 치매안심센터에 팩스 보냄, 집에 들러서 약통에 약 채우고 데이케어센터 방문.

아버지 많이 힘들었겠다. 나도 많이 힘들었다. 아버지가 내 이름 말 못할 때 언성을 조금 높였지만 아버지한테 화를 낸건 아니다. 의사가 건강검진 받으라고 했는데, 걱정이다. 대장 내시경은 나중에 따로 하더라도 일반 건강검진이라도 받는게 낫겠지. 가능한지 모르겠다.

힘들었으니 놀아도 된다. 청라에서 건쓰짱 만났다. 영일군도 일 마치고 건너와서 잼있게 놀았다. 내일 모레가 건쓰짱 생일인데 생일 기념으로 아내, 어머니랑 양양에 놀러 간다고 한다. 엄마 꼭 안고 잘거라고 해서 45살 아이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직업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져서 사는 고달픔도.

나는 먹고 노는 일로 개운해졌는데, 뭔 일인줄도 모른채 온종일 나 따라다닌 아버지는 뭘로 기분을 풀지? 보고 싶다던 나를 만나서 오랫동안 같이 있었으니 그저 좋았을까?

아버지, 건강검진 작전을 잘 세워 볼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물론 다 잊어서 아무 걱정 없다는 거 잘 알아요. 그리고 통장에 돈 많으니까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먹 사드시고요. 물론 돈 많이 안 쓸거라는 것도 통장에 돈이 얼마 있는지 모른다는 것도 잘 알아요.

아버지랑 관련된 걱정을 하나씩 줄이는 게 내 일이다. 아버지가 걱정이 없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짤은 아버지 지갑에 들어있던 아버지 글씨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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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에 아버지 만난다. 혈압약 타고, 치매지원센터에 치매약값 지원금도 - 그 동안 미뤄왔음 - 신청할까 한다. 아버지 핸드폰도 좀 들여다보고 카드 쓴 것 포함해서 재정상태도 살짝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니까 금요일에 서울 가는 거는 일상적인 점검방문 이다. - 아버지 잘 있나 보러 가는거 - 엊그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한테서 보고싶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가 뭔가 얘기하다가 갑자기 '좀 보고싶고' 라고 했다. 아버지 나 보고 싶구나, 생각이 들면서 짠했다. 오늘 아침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7시에 걸려온 아버지 전화를 못 받았는데, 7시 20분에 전화걸어서 아버지가 전화 받자마자 '아버지,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요' 라고 했다. 아버지도 나도 무심결에 한 말이다.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나온 말. 보고 싶다와 미안하다. 보고 싶다는 말은 거짓말로 하기 어려운 말이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하니까 엄마 보고 싶네. 미안하다는 말은 기계적으로도 쓸 수 있는 말이다. 가족들끼리는 가짜로 미안하다고 하기 어렵다. 가족주의는 아니고 결국은 거짓없는 사람들이 남는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주말마다 부고 문자가 많이 오는 계절이고 지난주에 K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K  오빠가 내 또래라고 했던 것 같으니까 돌아가신 분은 우리 아버지랑 또래일거라 생각한다. 70대 초반, 요즘 시대에는 아직 정정한 나이, 그렇지만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 육체적으로 대단히 튼튼하던 우리 아버지도 계단을 내려올 때 내가 손을 잡아주면 더 편하게 내려오는 지경이 됐다.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만 주변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 현재까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죽음이 큰이모 돌아가신 일이다. - K에게는 잘 추스르라는 말 정도 하고 말았다. 누구나 그 앞에 무력한 것이 죽음이고 그렇게 죽음은 공평한 사실이 된다. 죽음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반댓말이다. 친구가 로또복권 3등에 당첨된 것도 아버지를 만나러 서울에 가는 일도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지금도 다 죽음의 반댓말이다. 결혼식과 장례식, 부의금과 축의금 같은 말과 항상 주변에 죽음이 따라다니는 사람을 떠올려봤다.  

 동생이 아버지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럴거라고 했다. 아버지가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보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며느리 이름은 잊어서 '니 와이프도 보고 싶은데 같이 한 번 안 오냐' 고 하지만 내 이름은 잊지 않아서 지금처럼 '어, 일우야' 하면서 전화 받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노래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노래를 만들었다. 가사에 반백년을 살았단 얘기가 들어갔다. 거의 반백년을 살았지만 아직은 고꾸라지고 싶지 않다.

 아침에 죽은 새를 봤다.

죽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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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시 옥천연립 104호에 영화 ‘그랜 토리노’에 나왔던 클린트이스트우드랑 비슷한 이미지의 아저씨가 산다. 우리집 바로 아래아래 집이다. 2019년 3월에 이사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란 별명을 지었고 아내도 어느정도 공감했다. 마르고 다부진 몸, 앙다문 입술, 거친풍파를 헤쳐온 듯한 강인한 얼굴, 청바지와 티셔츠, 딱딱하게 받아주는 인사, 항상 연립 입구 가장 구석에 비스듬히 세워두는 쌍용에서 나온 오래된 4륜 구동 자동차의 이미지들을 종합해서 지은 별명이다. 이 집에 거의 4년을 살며서 말은 섞은 적은 없고 내가 인사를 하면 아저씨가 인사를 받아주는 정도다. 내 나이가 마흔다섯이니까 아저씨라고 하는거지, 평범하게는 - 딱딱하고 강해 보이지만 남을 헤칠것 같지는 않은 이미지의 - 할아버지다.
  아저씨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는 아들이 둘 정도 있어서 명절 같은 때 타지에서 온 아들 차를 타고 외출을 한다는 것과 차 트렁크에 노가다 장비가 - 기술이 있는 일을 했던 것 같음 - 실려있다는 것 정도다. 올 봄에 우리 연립으로 들어오는 좁은 골목에서 - 차로 갈 수 있는 도로 끝에 옥천 연립이 있고 그 도로 끝에 사람이 둘 정도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이 있음 - 술에 많이 취한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가 옛동료로 생각되는 어떤 아저씨랑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비틀 걸어와서 한 귀퉁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내 모습은 보지도 못한 채 환한 웃음으로 아저씨 친구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집으로 들어가던 뒷모습이 내 머릿속에 남았다. 지난 여름 어느날 아저씨의 자동차가 사라졌다. 얼마후 나는 아저씨의 자동차랑 비슷한 모양의 검정색 4륜 구동 자동차를 샀고 아저씨가 주차하던 자리는 240만원 짜리 내 자동차가 차지했다.
  갑자기 이 아저씨 얘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엊그제 집에 올라오다가 아저씨 집 앞에 뜨거운 물 부어먹는 칼국수 한 상자와 20kg짜리 쌀이 놓여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 서울에 혼자사는 우리 아버지도 동사무소를 통해서 종종 받는 그것이다. 그걸 보자마자 아저씨 어디 아프신가,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아저씨 차 자리가 내 자리가 된 직후에는 종종 얼굴을 봤지만 최근에는 동네 다른주민들과 양지달임을 하러 나온 - 한 연립에 오래 살았고 연배가 비슷해서 그런지 우리집 빼고는 주민들끼리 친하다. -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를 못 봤다. 약간 걱정이다.

  아저씨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들들이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고 옥천연립 104호가 이 아저씨가 돈 벌어서 산 아저씨 집이었으면 좋겠다.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우리 아버지 주변에도 내가 이 아저씨를 보듯이 아버지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런 건 세상에 없는 일이니까, 역시나 아버지를 강릉으로 모셔와야겠다.

  지난 토요일에 동생이 아버지를 만나서 같이 갈비를 먹었다. 나는 아버지랑 맛있는 거 먹으라고 동생에게 10만원 보냈다. 아버지가 그거라고 하지 않고 갈비 먹었다고 해서 기뻤다. 나는 다음주에 아버지 혈압약 타러 간다. 아내가 너도 갈비 먹어, 라고 했지만 그럴건 없다. 아버지 기억에는 안 남아도 내 기억에 남는 걸 먹어야겠다. 방금 데이케어 센터에서 ‘어르신 집에 모셔다드렸습니다.’ 문자가 왔다. 아버지한테 바로 전화했는데, 전화를 안 받으신다. - 좀 있다가 하면 받을 거다. - 축구를 참 좋아했던 아버지는 지금 월드컵이 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국가대항전 축구를 본다. 나라를 위해선지 나를 위해선지 젊은이들이 정말 사력을 다해서 공을 찬다. 나는 인생에 전력을 다한적이 있나? 월드컵에 나온 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것이 공을 차는게 본인들 직업이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뭘까? 전력을 다하면 뭔가가 바뀔 수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 나이인데도 그러지 않게 된다. 예를들면 가끔 노래는 만들지만 기타 연습을 열정적으로 하진 않는다거나 굶으면 체중 감량이 될 것을 알지만 굶지 않는다. 이게 나이 먹음인가? 그렇다고 인생에서 큰 요행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얼마전에 노무사 2차 시험에서 떨어진 10살 어린 친구에게 ㅇㅇ씨는 희망이 있다는 얘기를 진심으로 해줬다. 나이 먹는 일은 슬프다.

  글 쓰는 중에 세르비아랑 카메룬이 3대 3으로 비기는 중이다. 나는 세르비아가 유고에서 분리됐다는 걸 안다.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는 냉전의 시대를 냉전 이후의 시대보다 오래 살았다. 나는 냉전 이후의 시대를 오래 살았지만 냉전이 뭔지는 안다.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는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고 나도 요즘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인지 모른다. 그건 애들을 키워도 모른다. - 친구 아이들이 대체로 중학생이다. - 계절 바뀌듯 휙휙 세대가 바뀐다.

  아버지, 오늘 별일 없었죠? 곧 봐요. 마지막 문장 적고 바로 전화할게요. 생일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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