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31일에 아버지 병원 때문에 엄마가 아버지한테 다녀갔다. 내가 갔어도 되지만 12월의 마지막 날 아버지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았고 12월 초에 내가 다녀왔기 때문에 마지막 날은 엄마가 아버지를 만나기로 했다.

엄마가 속상하다고 전화했는데, 엄마가 얼마전에 새로 사다준 겨울 점퍼의 단추를 아버지가 다 뜯어놨고 옷도 많이 찢어져 있다고 했다. 아버지 본인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입을 꾹 다물고 있다고 했다. 듣기만 해도 속상한데, 옆에서 본 엄마는 오죽했을까?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얘기에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 치매 초창기에 당신 듣기 싫은 얘기를 하면 입을 꾹 다물었댔다. 나한테 잔소리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눈만 껌뻑거리면서 유난히 다부진 모양으로 입을 굳게 닫고 있던 할머니 얼굴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피가 섞인 사이는 아니니까 입을 다물고 있는 일이 유전은 아니겠고 치매 환자의 일반적인 모습 중에 하나겠지. ​

'치매' '단추' 키워드로 검색을 해봤다.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검색 결과로 추측하건대, 아버지는 단추를 푸는 일에 어려움을 겪다가 급기야 화가 나서 단추를 다 뜯어버렸다는 결론에 닿았다.

- 엄마, 아버지한테 화내지 마시고 다 잘하고 있다고 하세요.
- 화난 건 아닌데 자꾸 목소리가 커지니 어떡하냐?​

병원에 다녀온 결과 아버지 약 목록에 고지혈증 약이 추가됐다. 올해 칠십이다. 혈압, 아스피린, 고지혈증 약은 평균적인 진행이다. 약 드시라고 그때그때 알려드려야 하는 건 보통의 진행은 아니다. 대답을 못할걸 알면서도 오늘 몇 시에 일어났는지 밥때셨는지 자꾸 묻게 된다.

- 어.... 몇시?..... 어두울 때 일어났어.
- 어.... 그 뭐냐.............
- 국수! 그게 먹고 싶어서 어........ 그 뭐냐.....
- 고추장이랑 양념해서..........
- 아버지, 비빔국수요.
- 어, 그래. ​

기록을 보니 아버지가 치매 증상을 보인 이후에는 한 달에 한 번은 아버지를 만나고 있다. 아버지가 아프지 않았다면 명절이랑 제사 때, 1년에 세 번 정도 만났을 테니까 아버지가 80살까지 산다고 해도 횟수로는 서른 번 정도 얼굴을 볼 예정이었다. 엄마 얼굴 보는 일도 그 정도였을텐데, 아버지 때문에 엄마 얼굴을 좀 더 자주 보게 돼서 다행인 건가?

이번 주에,

아버지는 기초연금 문제로 동사무소에 가야 되고 실업급여 문제로 고용센터에 가야 된다. 고용센터는 다음주나 다다음주에 나랑 같이 가는 게 나을 거 같다.

14일이 할아버지 제사다. 둘째 삼촌이 식구들을 모으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엄마에게 전해듣고 헛웃음이 나왔다. 코로나보다 무서운 게 조상인가? 아무튼 그때 맞춰서 아버지 관련 일처리를 몇 가지 하기로 한다. - 약, 고용보험, 퇴직금 - 엄마는 할아버지 제사 전후로 아버지랑 열흘 정도 오산에서 같이 지낼까 고민 중이라고 한다. 같이 있으면 자꾸 목소리가 커진다고 하면서도 잠깐 같이 지낼까 고민하는 마음이 사랑일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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