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주는 것에 대한 생각

어젯밤 공부 모임 마치고 j랑 길을 걷다가 말했다.
- 이 집이 팥빙수를 잘해준다던데.
- 전 여기는 한 번도 안 가봐서 팥빙수 좋아하세요?
- 아니오. 잘 해주는 걸 좋아하죠.
- 아, 예...
어제는 대수롭지 않은 대화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가며 흘리듯 한 말에 팥빙수 좋아하냐고 물어봐 준 마음이 좋다. - 고마운 건 아니고 좋다. -

당연한 얘기지만 나한테 잘해주는 곳, 잘해주는 사람이 좋다. 친구는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이고 단골집은 나한테 잘해주는 곳이다. 나한테만 잘해주는 건  찐사랑인가? 엇나간 사랑인가?

첫 줄 대화의 팥빙수 가게, 영일군이랑 만나면 가는 양갈비를 구워주는 가게, 기름을 삼 만원만 넣어도 화장지를 주는 주유소 - 내가 잘해주는 곳의 예로 들곤 함 - 는 표면적인 잘해줌이고 진짜 잘해주는 건 좀 느낌이 다르다.

토요일 아침 나한테 잘해주는 곳 두 곳에 다녀왔다. 카센터랑 이발소. 카센터랑 이발소에 들어갈 때는 오랜만에 왔습니다, 라고 하고 나오면서는 항상 고맙습니다, 라고 한다. 오늘도 그랬다. 들를 때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는데, 두 가게 사장님 모두 제가 고맙죠, 라고 받아줬다. 내가 모르고 스스로 할 수 없는 분야인 자동차와 수리와 이발을 친절하게 해주시니 고마운 것인데, 서로 고마운 마음이 있다면 그건 수리비와 이발비를 떠나서 참 좋은일이다. - 이발하면서 이 아저씨 돌아가시면 어디가서 머리 자르지? 면도까지 해주고 만 삼천 원 이발비는 너무 싼 게 아닌가? 생각했다.

지금은 나한테 잘해주는 봉봉방앗간에 왔다. 아르바이트 하시는 분이 이발했는지 물어봐 주고 커피도 늘 두 잔 내려주고 안 바쁠때는 세 잔도 내려주는 좋은 곳이다. 대표님도 내가 커피 좋아하는 걸 알아서 그런건지 누구에게나 그런건지 늘 커피 더 마시고 가라고 한다. 지금 첫 번째 커피가 비어가고 있다. 잠시후엔 한 잔 더 드릴까요, 한 잔 더 주시겠습니까, 둘 중에 한 마디로 한 잔 더 마시게 된다. 좋다.

대접받는 걸 좋아하는 나는 누구에게 잘해주고 있나? 솔직함에 대한 강박을 핑계로 매일 독설만 늘어놓고 다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유명해지고 싶다.(유명해지면 대접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지도. 적어 놓고도 웃기네.)

짤은 사무실 마당 6월 층층나무 - 내 나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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