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다. 하루만에 겨울이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은 때다. 가을이 그랬던것처럼 오늘 하루만에 겨울이 왔다. 가을과 겨울사이, 계절은 네 개지만 시간은 항상 두 개의 계절 사이에만 있다.
오늘도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버지 목소리를 못 들었다. 아버지 쉬는 날마다 한 두번씩 통화하면서 확인해 본 결과 일단 술은 끊으신 거 같다. - 이것도 알 수 없지만 - 그렇다고 아버지의 인지능력이 좋아지진 않는다. 몇년 몇월 몇일 무슨 요일을 잘 모른다. 그나마 엊그제 계절을 물어봤을 때, 한 번에 가을이라 하셔서 약간 안심했다. 약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다. - 동생에게 요일별 약통을 구입하라 했다. - 엄마는 오늘 오랜만에 서울에 가서 자동으로 꺼지는 가스렌지와 자동 잠금 밸브를 설치했고 고장난 전기장판을 새 것으로 바꿨다. - 아버지가 전기장판을 안 틀어봐서 고장난 걸 몰랐던 거면 좋겠지만 고장난 걸 잊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 상황을 처음 알았을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많이 당황스럽지는 않다. h누나가 돌봄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듯 말했는데, 나도 그런가보다 받아들였다. 부모가 아이를 돌보고 커버린 아이는 늙은 부모를 돌본다. 부모님과 근처에 산다면 핸드폰 가입부터 병원 다니는 일까지 이것저것 신경 써드릴 것이 많고, 다들 어느시점부터는 부모님을 돌보고 산다. - 엄마가 우리 동네에 살았다면 무심결에 속아서 잘못 가입한 인터넷 티비 결합상품 해지하느라 몇날며칠을 속상해하다가 아들에게 하소연하고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큰소리 낼 일은 없었을 거다. -
엄마한테는 당신이 아버지를 보살필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엄마도 전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둘이 같이 살고 싶진 않은 거 같다. - 같이 산 게 20년 떨어져 산 게 24년 이혼한지는 10년이다. -
아내가 아버지가 강릉에서 살고 우리 부부가 자주 들여다보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먼저 말했다. 앞에선 안 울었는데, 그 마음이 고마워서 다음날 혼자 울었다.
걱정이 되서 얼른 아버지 이사 준비하고 싶은데, 엄마 마음은 그렇진 않다. 일단 지금 하는 경비일을 할 수 있을때까진 하는 걸로 하자고 한다. 환자건 보호자건 현실은 비용이 문제다. 엄마는 정신없는 아버지를 불러다 치매 보험을 들었다. 처음이는 화가 나서 당장 해약하라고 했지만 이달 19일에 확실히 치매로 판정 받은 후에 해약해도 늦지 않다.
아버지가 강릉으로 옮기려면 이것저것 처리할 일이 많을텐데, 지금 내 걱정은 하루만에 바뀌는 계절처럼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전화하나 보다.
지금 아버지는 가을과 겨울 두 계절 사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