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넘어간다. 2000년 이후로 해가 바뀔때마다 그 숫자를 받아들임에 현실감이 떨어진다. 2020년이 됐을때, 그 느낌이 특별히 더 강했는데, 2021은 좀 더 현실감이 없게 느껴진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미래 소설과 SF 영화들보다 미래를 살고 있다.
24일에 아버지가 해고통지를 받았다. 10시 쯤 약 드시라고 전화했는데, 황급한 목소리로 좀 있다가 전화할게,라고 해서 해고통지 중인 거라고 짐작했다. 아버지랑 관련된 부분은 계획 또는 예상에서 어긋남 없이 진행중이다. 어긋남이 좀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같은날 오전에 자동차 검사를 받았고 오후에 헌혈 하고 돌아오다가 잠깐 정신줄 놓은 사이에 가벼운 사고가 났다. 90프로 이상 내 책임이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준비하는 좋은 날에 안좋은 일이 겹쳤다. 가벼운 접촉이라 다행이다. 운전하던 두 사람은 서로 괜찮은지만 묻고 각자의 보험회사에서 온 두 사람이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한다. 횟집에서 인간이 양식한 활어회를 먹는것처럼 세계가 나를 양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액땜이라 했다. 뭔 액땜이냐고 했더니 2021년 액땜이라 한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주변에서 다들 좋게 얘기해주니까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앞 차에 타고 있던 두 사람이 대인처리를 했다고 하는데, 자동차 번호판이 약간 구겨지는 가벼운 접촉사고였으니 실제로는 아프지 않길 바란다. - 교통사고 냈(났)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나도 죄짓고 살기는 틀린 사람이라 다행인건가 -
연휴 내내 누웠다가 엎드렸다를 반복하며 게임과 유튜브를 왔다갔다 했다. 나이 마흔 셋에 이럴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게 다행스런 일이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불행한 일이기도 하다. 만들던 노래는 멈춰 있고, 매일 강박적으로 붙잡고 있던 기타연습도 손에서 떠났다. 책이라도 읽어볼까 하면, 그게 다 뭔 의민가 싶다.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오늘이 아버지 마지막 출근날이다. 현재 아버지 상태라면 아버지가 월급을 받는 직장에는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이다. 지금 건물에서 경비일을 7년 반동안 했다. 24시간 근무서고(중간에 두 시간 정도 잠) 다음날 쉬고 또 24시간 근무서는 일의 반복. 아버지는 지겹지 않았을까? 언젠가 '너무 외로운 고슴도치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가시를 다 뽑고 너구리랑 친구가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겨움과 외로움은 같은 말이다. 아버지는 외로웠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버지가 소속된 경비 용역회사 사무실 직원과 통화했다. 아버지가 아픈건 술로 문제가 있었던 6월에 이미 알았고, 아프지 않았으면 계속 가고 싶었지만 계약기간이 끝나서 재계약을 안하는걸로 했다고 한다. 퇴직금도 매년 정산했던 것이 아니라서 7년치를 한꺼번에 준다고 하고 만 65세 이전 취업했기 때문에 실업급여 수급 대상자라고 한다. 잠깐 통화했을 뿐인데,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말투에서 우리 아버지 참 괜찮은 회사에 다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정상이 아니란 걸 알았을 때, 바로 퇴사 조치할 수도 있었을텐데 6개월을 봐줬다. 고마운 일이다. 내가 아버지 아들인 것도 아버지한테 다행인 일이길 바란다.
아버지는 돈을 모아두는 인생을 살지 않았고 엄마는 당장 고정 수입이 없어져 매달 나가는 보험료가 큰 걱정이다. 엄마는 꽤 심란하겠지만 아버지는 회사 그만두게 된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듯 보인다. - 물론 속으론 안 그럴수도 있다. - 희망적으로 생각하면, 일이야 다시 구하게 될 수도 있고 당장은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주무실 수 있게 되서 좋다고 생각한다.
올해 나는 운이 좋아서 전세계 인구로 따지면 100명 중에 한 명꼴로 걸리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살아 있는다는 건 복권보다 확률이 높은 행운일 뿐이다. 그저 운이 좋아서 올해도 살아 남았다. 살았으니 살아야 한다. 무력해도 살아야 한다. 어쨋든 살아야 한다.
몇 가지 결심들로 올해를 넘어 내년으로 가본다. 일단 담배는 사 놓은 한 갑만 마저 피우기로 하자. 체중감량해서 약간은 건강해지도록 해야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력해지지 말아야지.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엔 내가 어제 술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 가끔은 있음 - 자꾸만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은 평소에 내가 무례하거나 무례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심해야지. 운이 좋아서 살고 있으니 겸손하게 살자. 이것도 새해 결심에 추가한다.
BLOG ARTICLE 그때그때 | 622 ARTICLE FOUND
- 2020.12.28 20201228 - 해넘이 생각
- 2020.12.22 20201222 - 아버지 생각
- 2020.12.04 20201204 - 아버지 생각
- 2020.11.06 20201106 - 아버지 꿈
- 2020.11.03 20201102 - 아버지 생각
- 2020.10.10 20201010 - 아버지 생각 1
- 2020.09.29 20200929 - 아버지 생각
- 2020.09.16 20200916 - 마스크에서 시작한 생각
- 2020.09.07 20200907 - 남매의 여름밤
- 2020.08.17 20200817 - 휴가, 몇 가지 생각
- 2020.08.05 20200805 - 안부, 걱정
- 2020.05.15 20200515 - 배달 생각
- 2020.04.02 20200402 - 비관
- 2020.02.11 20200211 - 무력감에 대한 생각 1
- 2020.01.21 20200121 - 비관
- 2020.01.13 20200113 - 청국장 생각
- 2020.01.10 20200110 - 이발소에 관한 생각 2
- 2020.01.07 20200107 - 신년 생각
- 2019.12.20 20191220 - 피로와 안정과 불안
- 2019.12.01 20191201 - 12월, 생각 없음
- 2019.11.05 20191105 - 달콤한 세상에 대한 생각
- 2019.10.21 20191021 - 지난 주말 그리고
- 2019.10.06 20191006 - 대충 사는 것에 대한 생각
- 2019.09.26 20190926 - 열정에 대한 생각 1
- 2019.09.10 20190910 - 일기
- 2019.09.02 20190902 - 주말 일기
- 2019.08.16 20190816 - 치앙마이 생각
- 2019.08.02 20190802 - 우울에 대한 생각
- 2019.07.18 20190718 - 발 뒤꿈치와 닿는 부분이 터진 운동화 생각 1
- 2019.07.15 20190715 - 주말에 한 생각
어제 아버지한테 다녀왔다.
아버지가 아픈 이후로 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면 늘 기분이 안 좋다.
아버지랑 같이 있을 때 기분이 안 좋은 건 아니다.
어제는 혈압약 복용과 관련해서 간단한 피검사를 받았다. 아버지 담당의사를 처음 만났다. 전화상으로는 아버지가 깜빡거리는 건에 대해서 잠깐 얘기했었고 아스피린도 처방해 달라고 했었댔다. 의사는 치매 진단검사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혼자서 생활이 가능하니 나쁜 상태는 아니고 술을 끊었기 때문에 점차 좋아질수도 있으며 '글리아타민'이란 뇌 영양제는 본인도 처방해 줄 수 있으니 약 떨어졌을 때마다 신경과에 방문할 필요는 없다고 시원시원하게 얘기했다. 의사가 아버지에게 달력을 가리키며 오늘이 몇일이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잠깐 머뭇거렸지만 21일이라고 정확하게 답했다. 때려 맞춘걸 수도 있지만 - 병원 가기전에 오늘이 21일이라고 세 번 정도 얘기했다. - 대답 잘하셔서 좋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다녀와서 전날 저녁에 사온 소불고기를 데워서 아침밥을 먹었다. 18일이 아버지 생일이었다. 아버지 생일은 엄마가 꼭 챙겼고 보통 이모들이랑 모여서 밥을 먹었다. 올해는 코로나도 있고 부러진 엄마 팔이 붙지 않은 관계로 패스하기로 했다. 내년이 칠순이다. 내년에는 아버지 상태랑 상관없이 친척들 여럿이 모여서 밥을 먹겠지. 어쩌면 그게 아버지 생전에 마지막으로 여럿이 모인 즐거운 날일지도 모른다. 그날은 술을 한 잔 드셔도 괜찮지 않을까?
밥 먹은 그릇 씻고, 저녁 때 드실 곰탕 국물 끓여 놓고, 요일 약통에 약 세 알씩 잘 담아서 아버지 가방에 넣고 주무시는 거 보고 아버지 집을 나왔다.
아버지랑 병원에 있을때부터 내 담당이 아닌 일로 업무 전화가 자꾸 와서 짜증이 났다. 사무실 동료는 우리 아버지도 아닌데 내가 지것까지 챙겨줘야 되나, 생각하니 화가 더 올랐다.
청량리에서 강릉 오는 한 시간 반 동안 슬픈 노래를 들으면서 화를 삭였다. 집에 와서 보니 휴대전화 충전기가 안 보였다. 서울에 두고 온 줄 알고 바로 마트에 가서 새걸 샀다. 알고보니 서울갈 때 가져갔던 옷 아래 깔려 있았다. 내 부주의함에 또 화가 났다.
요즘은 약 먹을 때가되면 아버지가 먼저 전화하기도 한다. 긍정적인 변화다. 저녁에 엎어져서 게임하고 있는데,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자신있는 목소리로 약 먹었다고 해서 확인해보니 아침에 드셔야 되는 약을 드셨다. 내가 먼저 전화해서 오늘 저녁은 약 드시지 마세요,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게 화가 났다.
- 아버지 저녁은 뭐 드셨어요?
- ..........
- 아버지 저녁은 뭐 드셨어요?
- 뭘 먹긴 뭘 먹어 그냥 먹었어.
곰탕 국물이 있길래 그거랑 먹었다고 하시면 되는데, 그 말씀을 못하시니 화가 나서 약간 언성이 높아졌다. 아내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나를 진정시켰다. 방금 뭘 먹었는지는 아는데, 그 단어가 기억 안나는 아버지가 나보다 더 답답하겠지. 그래도 자꾸 뭘 드셨는지 묻게 된다. 아버지는 출근한 날 점심에는 '제육볶음'을 자주 드시는 거 같고 저녁은 거의 '김밥'을 드시는데, 내가 먼저 얘기하지 않으면 그 말을 못 떠올린다. 잘 모르실걸 알면서도 계절도 날짜도 요일도 자꾸 묻게 된다.
아버지 얼굴 보면서 얘기해보면 괜찮은거 같다가도 약은 언제 어떤 걸 먹어야 하는지, 방금 뭘 드셨는지, 오늘인 무슨 요일인지 모르는 아버지 목소리를 들으면 안 괜찮다는 걸 알게된다. 우리 아버지 아프구나. 아버지한테 언성 높인게 미안해서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러 나가서 바로 전화했다.
- 아버지, 약도 잘 드시고, 술도 잘 끊었고 지금 잘하고 있어요.
- 어, 그래. 칭찬을 받으니 좋다.
- 예, 아버지. 푹 주무시고, 내일 출근 잘 하시고 아침 약 드실 때 또 전화할게요. 그리고 아버지, 약은 제가 약 드시라고 전화했을때만 드세요.
- 어, 그래. 알았어. 잘 지내.
'잘 지내'란 말이 가슴을 때리고 또 하루가 갔다. '잘 지내'란 말은 평소에 자주 연락 안했던 나에게 내려진 벌이다. 자꾸 화가 나는 나에게 내려진 벌이다.
아버지가 아픈걸 알고 아버지 얘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기록을 남기는 자식이 있어서 다행인가, 생각한 적 있는데. 다행이란 말조차도 그저 내 만족이다. 기록이 내게 위로가 된다.
어제는 화가 났다. 그러지 말아야지. 아버지한텐 화내지 말아야지.
컴퓨터로 쓰는 거 참 오랜만이다. - 찾아보니 일 년 만이다. -
하루에 두 번 이상 아버지랑 통화하고 있다. 아침 저녁 약은 꼭 먹어야 하기 때문에 두 번이 기본이다. 중간중간 별일 없는지 전화하기도 한다. 일단 전화를 받아야 안심이 되는데, 전화를 안 받는 일은 거의 없다. 다행이다.
건강은 누구도 자신 못한다고 그렇게나 건강하던 아버지가 4번이랑 5번 디스크 사이가 터진 것도 모르고 그저 다리가 많이 저린 줄 아는 사람이 됐다. 허리수술은 잘 됐다. 다행이다.
술을 안드신지는 세 달 이상 됐다. 스스로 어떤 결심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잘 하고 있다.
양천구치매안심센터에서 선별검사랑 진단검사를 했다. 선별 검사 결과지를 보고 아버지 머릿속에 어떤 부분들이 사라진 걸 알았다. 진단검사 결과는 의사랑 얘기해야 한다고 하는데, 코로나로 일이 밀려서 올해 안에는 의사가 판단하는 아버지 병세가 어떤지 알 수 없다. 최초에 선별검사를 마치고 급한 마음에 동네 병원 신경과에서 뇌 MRI를 찍었는데, 치매 전문이 아닌 뇌신경 전문 의사라 '치매'입니다, 라고 하지 않았다. 애초에 대학병원은 예약이 많이 밀려있긴 했지만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될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대형 종합병원으로 갈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다만 아버지의 현재 상태는 '치매'로 확정되건 안되건 '좋지 않음'이다. 어찌보면 괜찮고 어찌보면 괜찮지 않다. 나는 그만하길 다행이다, 생각하는 쪽이라 다행이다.
긍정적인 부분 - 지하철 타고 여의도로 출퇴근, 혼자 밥 끓여 드심, 전화를 잘 받음, 갑자기 성격이 변하지 않았음, 계절을 헷갈리지는 않음(어제 처음 물었을 때는 가을이라고 했다.), 카드나 현금으로 상거래 가능, 집 비밀번호를 잊어버리진 않음, 사람 이름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음
부정적인 부분 - 사람이름을 제외한 많은 명사가 머릿속에서 사라짐(진단 검사 받을 때, 밖에서 들어보니까 첫 음절을 불러주면 단어를 곧잘 기억해 냄), 날짜랑 요일 개념 상실(직장 다니는데 지장 없음), 1분 전에 나눴던 얘기 잊어버림(자꾸 말해주면 됨), 정상적인 은행업무 불가(서울 가서 은행계좌 한 번 더 정리해야 함), 약을 전혀 못 챙겨 먹음(전화해서 구체적으로 뭘 드시라 알려주면 됨), 샤워를 자주 안 하는 것 같음(전화해서 지금 씻으시라 하면 됨), 화장실에 들렀다가 욕실 슬리퍼 신고 나와서 집안을 배회함
적으면서 보니까 부정적인 부분도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
방금 저녁 약 드시라고 전화하려고 했는데, 먼저 전화가 왔다. 아버지한테 먼저 전화가 오는 건 긍정 요인이다. - 무슨일 있거나 뭐가 잘 안되면 무조건 나한테 전화하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음 - 요일 약통에서 아무 색깔이나 뽑아서 네 칸이 맞는지 확인하고 세 알짜리랑 한 알짜리 중에 한 알짜리 드시면 된다고 했다. 알았단 소리를 듣고도 마음이 안 놓여서 바로 드셔야 하니까 손에 알약 한 알을 올려 놓으라고 했더니 살짝 화난 말투로 "걱정 마라, 소리 안들려?" 하면서 플라스틱 약통에서 알약 흔들리는 소리를 들려줘서 안심했다.
참으로 안심했다.
아버지는,
동생이 결혼한 2015년부터 완전히 혼자 살기 시작했다. 경비 업무 특성상 매일밤 규칙적으로 잠을 자지 않았다. 아침에 퇴근해서 저녁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출근한 일이 많았다. 혼자서라도 자꾸 술을 마셨다. 같이 술 먹던 사람들 사이에서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직장에서 짤릴뻔했다. - 근무일지를 항상 다른 사람이 썼다고 하는데, 근본 이유는 술인 거 같다. - 그러다가 식구들이 아버지 증상을 알게 됐다. 평소에도 남의 말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아니었고, 어딘가 덜렁대는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알아채지 못하고 조금은 늦게 알게됐다.
아버지는,
많이 외로웠다.
나는,
무심했다. 지난 10년 동안 아버지랑은 일년에 한 두 번 통화하고 명절이랑 제사 때 얼굴보는 게 다였는데, 요즘은 하루에 몇 번씩 통화를 한다. 병원 때문이긴 하지만 서울에 가서 얼굴도 자주 보는 편이다.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자기 삶을 살았을 뿐이다. 무관심이 후회되지는 않는다. 다만 아버지, 동생, 나 이렇게 셋이 소지섭이랑 임수정이 나왔던 '미안하다 사랑한다' 드라마 보던 생각이 난다. 아버지랑 동생은 드라마에서 감정을 고조시키는 장면이 나올때마다 '너무 감동적이야' 같은 말을 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우리 아버지는 스포츠 신문을 통해서 읽은 연예계 소식에 밝았고 젊은애들이나 좋아할 드라마를 참 좋아했다. 아버지는 그때도 많이 외로웠지만 그때까지는 아버지의 시대였다.
"아버지,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분이랑 얘기할 때, 이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들으시고, TV 뉴스를 보더라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들으면서 보시고, 뭐가 잘 안되면 그게 뭐든 어떻게 하라고요?" " 어일우한테 전화"
이런 꿈을 꾸었다.
신월동에서 목동 오목교쪽으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뭘 하러 가는지는 모르겠다. 오목교 사거리에 다 도착했을 때, 왼쪽 뒷타이어가 펑크나는 소리가 났고 자동차의 왼쪽 뒤가 푹 꺼졌다. 가까운 주차장을 찾아서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서 보험에 긴급 출동 전화를 하려고 했다. 분명 야외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내린곳은 아버지 방이었다. 아버지는 없고 내 자동차는 작은 방을 가득 채우고 서 있었다. 깊은 한숨을 쉬고 잠에서 깼다.
11월이다. 하루만에 겨울이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은 때다. 가을이 그랬던것처럼 오늘 하루만에 겨울이 왔다. 가을과 겨울사이, 계절은 네 개지만 시간은 항상 두 개의 계절 사이에만 있다.
오늘도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버지 목소리를 못 들었다. 아버지 쉬는 날마다 한 두번씩 통화하면서 확인해 본 결과 일단 술은 끊으신 거 같다. - 이것도 알 수 없지만 - 그렇다고 아버지의 인지능력이 좋아지진 않는다. 몇년 몇월 몇일 무슨 요일을 잘 모른다. 그나마 엊그제 계절을 물어봤을 때, 한 번에 가을이라 하셔서 약간 안심했다. 약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다. - 동생에게 요일별 약통을 구입하라 했다. - 엄마는 오늘 오랜만에 서울에 가서 자동으로 꺼지는 가스렌지와 자동 잠금 밸브를 설치했고 고장난 전기장판을 새 것으로 바꿨다. - 아버지가 전기장판을 안 틀어봐서 고장난 걸 몰랐던 거면 좋겠지만 고장난 걸 잊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 상황을 처음 알았을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많이 당황스럽지는 않다. h누나가 돌봄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듯 말했는데, 나도 그런가보다 받아들였다. 부모가 아이를 돌보고 커버린 아이는 늙은 부모를 돌본다. 부모님과 근처에 산다면 핸드폰 가입부터 병원 다니는 일까지 이것저것 신경 써드릴 것이 많고, 다들 어느시점부터는 부모님을 돌보고 산다. - 엄마가 우리 동네에 살았다면 무심결에 속아서 잘못 가입한 인터넷 티비 결합상품 해지하느라 몇날며칠을 속상해하다가 아들에게 하소연하고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큰소리 낼 일은 없었을 거다. -
엄마한테는 당신이 아버지를 보살필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엄마도 전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둘이 같이 살고 싶진 않은 거 같다. - 같이 산 게 20년 떨어져 산 게 24년 이혼한지는 10년이다. -
아내가 아버지가 강릉에서 살고 우리 부부가 자주 들여다보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먼저 말했다. 앞에선 안 울었는데, 그 마음이 고마워서 다음날 혼자 울었다.
걱정이 되서 얼른 아버지 이사 준비하고 싶은데, 엄마 마음은 그렇진 않다. 일단 지금 하는 경비일을 할 수 있을때까진 하는 걸로 하자고 한다. 환자건 보호자건 현실은 비용이 문제다. 엄마는 정신없는 아버지를 불러다 치매 보험을 들었다. 처음이는 화가 나서 당장 해약하라고 했지만 이달 19일에 확실히 치매로 판정 받은 후에 해약해도 늦지 않다.
아버지가 강릉으로 옮기려면 이것저것 처리할 일이 많을텐데, 지금 내 걱정은 하루만에 바뀌는 계절처럼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전화하나 보다.
지금 아버지는 가을과 겨울 두 계절 사이에 있다.
잃어버린 것
강릉시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엔 잃어버린 것들이 많다. 신분증, 카드, 지갑을 많이 잃어버리고 주인과 집을 잃은 강아지랑 고양이도 많다. 아주 가끔은 사람을 잃어버리고 찾았다는 소식도 있다.
우리 아버지는 기억을 잃어버리고 있는 중인데, 차라리 지갑이나 신분증을 잃어버렸으면 좋겠다.
오늘 아버지는 또 뭘 잊으셨을까. 전화 달라는 문자랑 카톡을 매일 보내는데 이버지에게선 전화가 오지 않는다.
지난 몇 년 동안 혼자 사는 아버지에겐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안 그래도 순한 양같은 사람인데 술을 안 드시니까 더 순한 양이 됐다. 원래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는 분인데, 엄마 말로는 내 말은 잘 듣는다고 한다. 장남이 뭐라고. 술 먹으면 안된다는 결심도 매일 잊으시는건 아닌지.
10월 5일 밤, 아버지 집에 갔다. 집을 쭉 둘러봤다. 오래된 물건들과 또 오래된 물건들. 70세 독신남의 집. 씨발, 우리 아버지 사는 게 안됐네. 마음속에 '아버지 사는 게 안됐다'는 문장이 계속 돌고 결국 울어버렸다.
머리가 마음보다 늦고 마음은 몸보다 늦다. 우리 아버지는 머릿속이 몸과 마음의 속도를 못 따라오는 상태다.
10월 6일에 병원에 다녀왔다. mri촬영결과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는 아니지만 인지력은 술로 인해서 심각한 손상이 있다고 한다. 치매약을 처방받았고 하루에 두 번씩 약 드셨는지 별일 없는지 확인하고 술 드시면 안되고 가계부 꼭 쓰시라고 통화하고 있다. 매번 전화를 끊을때마다 잘 지내라고 하신다. 그동안 연락을 너무 안했고 나랑 매일 통화하는 걸 기억 못하셔서 하는 말 같다. 마음이 너무 안좋다.
올해가 몇년인지도 모르는 울 아버지가 술을 끊고 지금 상황을 이겨내길 바란다. 못 이겨내도 할 수 없지만.
아버지와 워크맨
아버지와 추억이 별로 없다.
첫 번째 기억이 대중 목욕탕에서 동생편 들어준다고 대들었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회초리 맞았던 것이다. 그 다음은 동생이 초딩 2학년때, 시험 잘 봤다고 피아노 사주신 거. 그 피아노는 내가 잘 쳤고, 20세기 후반에 집에 정말 돈이 없을 때 팔았다. 나랑 직접 연결된건 91년, 내가 중1때 워크맨을 사주신 일이다. 나는 물건에 대해서 조르는 법이 없는 편인데, 게임기도 컴퓨터도 없는 집에서 워크맨만은 갖고 싶다고 졸랐다. 나는 당연히 소니나 아이와 제품을 기대했는데, 아버지는 어느날 술에 잔뜩 취해서 빨간색 산요 워크맨을 내게 건냈다. 외부스피커도 있고 티비 주파수도 잡히고(아날로그 방식) 녹음 기능도 있는 만능 워크맨이었는데 나는 처음 보는 브랜드가 싫었고 아버지가 술 취해서 문래동 어느 노점상에서 바가지 써서 사온 것 같은 그 물건이 싫었다. 그 워크맨으로 배캠 초창기 방송을 들었고 서태지를 들었다. 그렇게 애송이 시절을 보냈다. 나중에는 그런 워크만을 가져 본 게 나 뿐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80번대 후반 주파수에 당시 서울방송 tv 소리가 라디오로 잡히던 시절 얘기다. 엄마가 물장사 하기 전까지.우리집에 유일하게 돈이 돌던 시절 얘기다.
요즘 아버지 때문에 걱정이 많은데, 퇴근길 운전 중에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시절의 흐름대로 생을 산 우리 아버지는 이제 어느 시절로 가는걸까?
마스크 쓴 얼굴이 본 얼굴이 되버린 시대다. 신분증 사진도 마스크 쓰고 찍어야 할 판이다. 불편해도 인간은 적응한다. 노예로도 살고 나치의 홀로코스트때도 살아남고 일제 강점기에도 살아낸 게 인간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중에 가장 적응력이 좋은 게 인간인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모든 생명 중에 가장 늦게 절멸할 거 같다. 물론 인구수가 급격히 줄어든 상태로 겨우 버티는 게 고작이겠지만 말이다.
생명이 근본적으로 가진 이기심이라는 게 다른 종들과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기 보다는 일단 자기가 먼저 먹고 살고 많이 번식하는 것이 우선이기 마련이다. 그 개체수를 조정해 주는 것이 지구다. 칡이 전세계를 뒤덥지 못하는 것이나 아프리카 초원에 포식 동물만 뛰어다니지 않는 일이 그렇다. 공룡도 지들끼리 너무 막나가다가 멸종했을 것이다. 이 와중에 유독 인간만 쭉쭉 개체수를 늘리고 있다. 인간의 개체수도 지구가 조정해 주기를 바란다.
작년 호주 산불 때 시작된 우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는 극지방 빙하 소멸이나 캘리포니아 산불처럼 먼데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서 코로나 블루는 평생 안고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일 매일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매 끼니를 마지막 끼니라고 생각하고 먹는다. 그러자면 맛없는 걸 먹어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
살면서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공포에 휩싸여있다. 퇴근하고 저녁에 아내와 함께 있으면서 느끼는 안도감이 그나마 위안이다. 널 사랑하는 것 그것 밖에 없다.
남매의 여름밤
아빠는 이혼을 했고, 나와 동생을 버린 엄마 얼굴은 보고 싶지 않다. 아빠는 여름방학 동안 할아버지 집에 동생과 함께 있자고 한다. 내키지 않지만 그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다. 할아버지가 싫지는 않지만 서로 할 말이 있는 사이는 아니다. 초등학생인 동생은 어딘지 아직 철이 없는듯하고 아빠는 돈이 없다. 고모부와 크게 다툰 고모도 할아버지 집에서 같이 살게 됐다. 좋아하는 남학생은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다. 중학생(고등학생?) 옥주의 상황이다.
아이와 청소년의 경계에 있는 주인공의 심리를 몇 가지 상황들을 통해 잘 표현했다. 동생과 같이 자고 싶진 않지만 같이 잘 수도 있다. 짝퉁 신발 거래에서 상대방에게 추궁을 당하자 그 자리에서 달아난다.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줬던 신발을 빼앗아 도망친다.
옥주는 할아버지 집에 잠깐 살기 위해서나 할아버지 집을 팔기 위해서는 할아버지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을 아는 나이다. 그런데 아빠와 고모는 일단 저질러놓고 허락받거나 허락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어른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에서는 인물들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둘러앉아서 콩국수, 잡채, 생일케잌, 포도같은 걸 먹는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는 엄마까지 함께 국밥을 먹는다. 단, 그것만 현실이 아니고 엄마는 엄마인데도 가족은 아니다. 가족의 증명은 뭘 같이 먹는 것이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인물 한 명, 한 명이 국밥을 먹는 초상화 씬이 좋았다.
감독의 첫 작품인 것 같은데 여러 감독들이 겹친다. 아빠의 작은 봉고차를 정면에서 찍은 장면들과 사람들이 프레임 안에 갖혀서 뭔가를 먹는 컷이 좋다.(장률 영화에서 많이 보이는)
아빠랑 고모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예상했지만 옥주는 예상하지 못했고, 장례식장에 엄마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을 것이다. 결국 엄마는 또 다시 동생 얼굴만 보고 가버렸다. 엄마가 보고 싶었을까? 영화 마지막에 옥주는 엉엉 울고만다. 예상이 빗나가기를 바라는 시간들, 바람대로 되지 않는 시간들이 쌓여서 어른이 된다.
옥주의 겨울은 여름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 영화 보고 뭘 써보는 게 정말정말 오랜만이다. 학교 때 이후로 처음인가?
지난주 목요일부터 오늘까지 5일 쉬었다. 이렇게 오래 쉰 것이 오랜만이라 좋았다. 서울식물원에 다녀왔다. 두 번째 방문인데 서울식물원 온실이 너무 좋다. 아내 부모님을 만났다. 오랜만에 딸을 만나서 기분이 좋으신 거 같았다. 이 만남이 나와 장인어른의 통화로부터 시작됐다. 아내는 부모님 만나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불평을 했지만 네 사람 다 기분이 좋았으니 잘한 일이다.
서울에 이틀있는 동안 코로나 긴급문자가 많이 왔다. 확진자가 많은 지역에 살면 긴급문자 스트레스도 상당하겠단 생각을 했다. 코로나랑 기후이탈로 전세계의 우울이 짙다.
어제는 어렸을때부터 모아둔 카세트 테잎을 엘피바-바이닐 펍-에 기증했다. 사장님이 받아주셔서 다행이다. 인간은 컬렉팅의 동물이고 카세트 테잎은 내가 최초로 모으기 시작한 물건이다. 돈이 없어서 씨디가 아니라 테잎을 모았고 내 주변에는 씨디로 음악듣는 애들이 없었다. 친구들 부모님 직업도 사字 들어가는 건 하나도 없고 다 그냥 노동자다. 지금은 모바일 게임 아이템이나 모으지만 어렸을 때는 영화를 좋아해서 신문에 나온 개봉영화 포스터를 곱게 잘라서 화집 사이사이에 넣어두기도 했다. 영화 한 편을 백 만명이 보려면 몇 달씩 걸리던 시절의 얘기다. 옛날이 좋았단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 지금의 풍요로움으로 세상이 곧 끝날거라고 생각하면 진짜로 옛날이 좋았다. 나는 역대 최고의 풍요를 다 누려 보았으니 세상이 끝나도 미련은 없다. - 엊그제 장인어른이랑 베이징 덕 먹었다. -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 앞에 옥천동 체육공원을 걷기 시작한지 두 달이다. 비가 안오거나 술을 먹는날이 아니면 매일 걷는다. 체육공원은 긴 티원형 모양으로 흙트랙과 보도블록 트랙이 있고 트랙 안쪽에는 잔디밭이 트랙 바깥쪽에는 몇 가지 운동 기구가 있는 형태다. 걷는 사람들이 많고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모르지만 99퍼센트가 시계 반대방향으로 걷는다. 가끔 시계 방향으로 걷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걸으면서 반대편 사람들을 마주치고 그들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너무 외로워서 그런거라고 생각한다.
운동 생각이 든 것처럼 술도 일차만 먹어야지 생각했다. 해야겠다 생각했으니 앞으론 그렇게 될 거다. 담배도 끊어야겠단 생각이 들면 좋을텐데, 아직이다.
일기 안 쓴지가 오래되서 뭐 하나 써야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까 블로그에 글을 모으고 있구나. 인간은 컬렉팅의 동물이고 나는 돈 안드는 컬렉팅이 좋다.
동생, 엄마, 장인어른 순서로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었다. 아버지랑은 엊그제 짧게 통화했기에 전화하지 않았다. 동생은 휴가 중이라고 했고 아버지 무슨일 있는지 물으니 아버지 문제에 대해서 아는대로 얘기해줬다. 엄마는 부러진 팔이 빨리 붙지 않는 것만 빼면 계속 잘 지내는 중인데, 동생네 회사가 이달 말에 폐업을 할거란 사실과 아버지 문제를 아는대로 얘기해줬다. 아버님(장인어른)은 여전히 두꺼운 책을 많이 읽으시고 - 최근에 국부론을 읽으셨다고 함 - 형님(아내 오빠)네도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아버지랑 통화할 때 회사에는 별일 없는지 무심히 물었다. 아버지 대답은 뭔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다는 것이었다. 뭔 일이 있었단 한 마디가 마음에 걸려서 오늘의 전화 릴레이가 시작됐다. 결론은 술 문제다. 거기에 더해서 자꾸 깜빡깜빡 한다고 한다. 그게 술과 관련됐을 수도 있다. 아버지가 혼자 살기 때문에 깜빡하는 정도가 어느 정돈지 알려 줄 사람이 없다. 엊그제 통화할 때, 며느리 잘 지내는지 묻고 싶은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빠르게 알려주고 말았다. 약간 마음에 걸린다.
안부(安否)란게 편안한지 아닌지를 묻는 것이라 편안하지 않다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문제가 있으면 신경이 쓰이고 걱정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동생은 내가 신경쓸까봐 회사 얘기를 안 했고 엄마도 본인 팔이 부러진 것을 팔이 부러진 날 바로 알려주지 않았다. - 근데 아버지 얘기는 왜 자세히 알려주는 거지? 이건 신뢰와 관련있는 것 같다. - 걱정하기 위해서 안부를 묻는 것은 아닌데, 말이 길어지다 보면 가족 중에 왕후장상이 있어도 걱정할 일은 있게 마련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걱정거리가 있는 것이 걱정 없음보다 우선 순위다. 그래서 '네 걱정이나 해'란 말도 있다. 아버지가 걱정이다.
엄마, 아버지가 서류상 이혼한 지 10년 됐다. 같이 살지 않은 건 20년이 넘었다. 따져보면 결혼하고 둘이 같이 산 기간보다 그렇지 않은 기간이 더 길다. 이번 추석때도 엄마 집에 아버지 형제들이 모이겠지. 엄마 팔은 그때도 금이 간 상태겠지. 엄마 입장에서는 이게 사랑인가? 아버지 걱정과 별도로 맘에 안든다.
며칠 내로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술 적당히 드시라고 정중하게 한 소리 해야겠다.
지난주 어느날 출근길에 여느때처럼 커피 마시러 편의점에 들렀다가 지나가던 차에 탄 사람이 알려줘서 자동차 왼쪽 뒷타이어에 바람이 빠진 것을 알았다. - 고맙습니다. - 자연스럽게 자동차보험 긴급출동에 전화를 했고 안내에 따라 번호를 몇 개 눌렀다. 전화 끊고 10분만에 도착한 긴급출동 아저씨는 도착한지10분 만에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갔다. 타이어가 펑크났는데, 지각도 안했다.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긴급출동을 부르는 일도 처음에는 뭔가 어렵고 어색한데, 한 두 번 경험하고 나면 금방 익숙해진다.
하던대로 하는 건 익숙하다. 익숙한 건 쉽다. 쉬운 건 편하다. 편하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다. 나도 편하고 싶어서 노력 끝에 근무지를 옮겼고 실제로 마음이 편해졌다. 인간은 점점 편해지려는 노력으로 산다. - 안 그런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 중에 훌륭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서 처음 생각한 거니까 오래된 생각인데, <시스템은 안락하다.> 물자의 이동이 대표적이다. 먼 나라에서 생산한 원유가 내 자동차의 연료가 되기까지의 과정, 아르헨티나 바닷가에서 잡힌 홍어가 지구 반대편 나라의 슈퍼마켓에서 팔리기까지의 과정에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물건의 원산지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안락한 시스템이 택배를 포함한 각종 배달이다. 배달 대행 서비스가 '배달(의 민족)'이란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고 나니까 '배달' 시스템이 더 도드라진다. 땅만 있으면 집도 배달해 주는 지경이다.
라디오 광고를 듣다가 운전대행 서비스가 있다는 걸 알았는데, 대리운전 비슷한 것이고 대리운전이란 건 사람 배달이다. 물론 크게 보면 많은 서비스업이 사람 배달이다.
편리란 이름으로 인간이 물건이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서비스를 강요하는 세상이다.
우리집은 비닐이랑 1회용품 쓰기 싫어서 음식 배달을 시키지 않는다. 다만 몇 가지 물건은 택배로 받는다. 아내는 슈퍼에서 장 볼 때도 포장된 야채는 구매하지 않으려고 한다. 작지만 대단한 노력이다. 모든 물건이 포장되어 있는 세상에서 아내의 노력을 소용없는 것처럼 얘기할 때가 있다. 체념이다. 체념에는 술이 약이다.
가끔은 음식 배달 시켜서 아내랑 오붓하게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고나면 죄책감에 시달릴테니 그러지 말아야지.
죄책감에도 술이 약이다. 술 먹고 싶어서 '배달 생각'을 적은 건 아니다.
인간은 어디까지 편하고 싶을까? 헤아려본다. 헤아림은 끝이 없고 그것이 인간이다.
출근길에 늘 같은 편의점에 들러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 먹는다. 플라스틱 뚜껑은 안 씌우지만 자동차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종이컵이 쌓인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해 버렸다. 커피 한 잔 사 먹는 일로도 양심과 비양심의 경계를 넘나든다.
점심밥은 회사에서 먹는다. 한 달 식대 5만원, 싸게 잘 먹고 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요즘은 더 전투적으로 먹는다. 전쟁나서 피난 중에 따뜻한 밥 한 끼 먹게 됐다는 심정으로, 지금 먹는 밥이 풍족하게 먹는 마지막 끼니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먹는다.
저녁밥은 집에서 먹는다. 점심과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먹는다. 아내 왈 '이렇게 잘 먹는데, 내가 손이 작아서 미안하다.'고 해서 같이 웃었다. 가끔 야식으로 집에서 비비고 만두를 먹거나 집 앞에 나가서 순대를 사 먹는다.
잘 먹고 산다.
아침에 북극 오존층이 뚫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세상이 끝났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막 살고 막 먹고 해야 하는데, 실제로 어떤 상황이 닥치기 전에는 그러기 쉽지 않은 게 삶의 속성이다.
호주에 산불이 났고 코로나 19가 인류를 덮쳤다. 틀린 작명은 아니지만 코로나 블루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우울이 있다. 세상이 끝났다는 나의 비관도 큰 그림에서는 코로나 블루다. 푸른 별 지구에서 푸른빛으로 죽는다? 나쁘지 않다.
오늘은 날이 쨍하길래 출근길에 차를 잠깐 세우고 꽃구경을 했다. 예뻤다. 지금보는 벚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잠깐의 시간을 즐겼다. 차 앞유리에 꽃이 떨어져서 공중에 멈춘 것처럼 보였다. 나도 언젠가 이렇게 멈출 것이다. 남은 삶은 이렇게 우연으로만 살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루고 싶은 일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 없다. 나이 먹을 수록 먹고 자는 일처럼 단순한 열망만 남는다. 그래서인지 가끔 클래시컬하게 맨 탕수육에 양조 간장 찍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오랜만에 쓰는 일기가 제목부터 비관이다. 지금 나에게는 비관과 낙관이 공존하고 있지 않다.
보름 사이에 차키를 차 안에 두고 차 문을 잠근 게 두 번이다. 어제는 '카에타노 벨로조'랑 '묻어버린 아픔' 이 기억나지 않았다. - 가사는 기억났다. - 이 두 가지가 어제 일이라서 그렇지. 실은 언제 뭘 기억하지 못했는지 기억도 못하는 지경이다. 월요일 오후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난 토요일에 뭘 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하지 못한 것들의 리스트를 날짜별로 만들어야 볼까. 명사부터 서서히 잊으면서 노화가 시작된다고 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스스로 인식하게 될 정도로 횟수가 잦다.
몸도 마음도 늙는 것을 체감하고 있고 뚜렷한 삶의 목표랄까 뭐 이런것도 없다보니 - 아내 말로는 나는 원래 그런게 없었다고 함. - 세상을 다 살고 나서 그냥 덤으로 더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세상에 종말이 와도 나만은 악착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세상에 종말이 오기 전에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지난 주말에 머리를 잘랐는데, 면도를 끝냈을 때 느끼던 새로 태어난 기분이 사라졌다.
집에 그냥 누워서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있을 때가 많고 계속 그러고만 있고 싶은 충동이 인다. 사람들이 뭔가를 하는 것이 다 바보같고 그게 다 뭐고 무슨 소용인가 싶다.
삶이 슬로우 모션으로 내리는 눈발같다.
하루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것이 인생의 최고 행복이다.
그런날이 많기 때문에 더 추구할 게 없는걸까?
무력이란 말은 딱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새로 옮긴 일터는 마음이 편하다. 아직 얼마 안되서 그런 것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여기는 느리다. 사람도 늙고(느리고) 컴퓨터도 느리다. 나도 따라 느려지는 중이다. 당분간 이 페이스에 맞춰 살아야지, 생각한다.
뭔가를 반대하려면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라고 어느날의 메모에 적었다. 아내 생일이라 아내 칭찬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지후는 자신의 신념에 맞게 행동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지후를 따라가면 되니까 고마운 일이다.
기후 변화로 구상나무가 고사하는 것을 두고 한 연구자가 50년 후에도 이 숲이 이대로 있다는 보장이 없다며 통탄했다. 모든건 다 변하니까 50년 후에도 그 숲이 그대로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구상나무가 사라지는 게 땅을 치며 울분을 토할 일은 아니다. 다만 기후 위기가 닥친 건 현실이다. 그러니 어쩌면 좋을까? 이런 게 나의 냉소다.
지난 토요일에 안인에 화력발전소 짓는 쪽에서 - 타워크레인도 보이고 이미 건물 많이 올라갔음 - 화력발전소 건립 반대 청어엮기 퍼포먼스를 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통진당 해산과 이석기 내란 음모 의혹을 다룬 영화 '지록위마'를 봤다.
나는 화력발전소를 반대하나? 잘 모르겠다.
땅을 팔 것도 없이 그냥 퍼내기만 하면 된다는 호주의 광산업과 산불, 유난히 따뜻한 이번 겨울, 점점 심해지는 미세먼지, 미세먼지의 주범 중 하나라는 화력발전소, 예뻤던 시골 동네를 볼품 없게 만들어 버린 태양력 발전, 풍력으로 한 몫 잡아보려는 발전소 업자들과 에이전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 그리고 이미 몸에 익숙해진 생활의 편의를 손톱만큼도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다 연결돼 있다. - 물건들, 물건들, 물건들. 인간은 물건으로 태어났고 물건으로 망한다. -
퍼포먼스 자체는 즐거웠지만 음악과 컵라면을 위해서 기름을 먹는 발전기가 돌아갔다. 일단 거기서 기분을 망쳤다. 나랑 아내는 간식을 담당했다. 만두랑 김밥을 뜨겁게 유지할 것이 필요했는데, 새것과 다름없는 스티로폼 상자가 길가에 너무나 쉽게 버려져 있었다. 발전기는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자기 먹을 건 자기가 들고오는 방식으로 현장에서는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방식으로 했으면 좋았을거다. 이게 다 어떤 편의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통진당 해산 때, 볼음도에 살았다. 내란 관련 뉴스는 접했지만 이게 말이 되나? 웃어 넘기고는 생업에 열중했다가 정당이 해산됐을 때, 이게 뭐지? 잠깐 화났다가 그냥 잊고 말았다. 마음속에 화는 있었지만 참 어이없다고 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자세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랑 직접 관련 없는 일이니까 침묵했다. 침묵했다기 보다는 어떤 일이 있는지 알고만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많은 일들에 대해서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저 알고만 있는 일이 많다.
나는 이석기 씨가 석방되기를 강렬하게 바라지 않는다. 한상균이 사면되기를 강렬하게 바라지 않았다.
소소한 하루하루가, 내 삶이, 생활이, 내 주변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영화 '지록위마'는 어쩌면 좋을지 해답을 찾아보자는 맥락으로 마친다. 청어엮기 퍼포먼스는 해답을 찾는 과정이었을까? 다들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걸까? 나는?
부자가 되기를 내 집을 갖기를 내 농토를 갖기를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 뭘 좀 바라면서 살아야 되나?
해가 바뀌고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도 비관은 사라지지 않는다. 2020이란 숫자가 무력하다.
세상에 친환경 에너지가 있나. 풍력? 조력? 태양력? 인류의 모든 물건이 다 죄다. 그냥 다 죄로 산다.
청국장을 끓이려고 장을 봤다.
지역에서 생산했지만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두부, 누군가 이 겨울에 하우스에 난로 틀어가며 열심히 농사 지어서 하나하나 비닐로 싼 애호박, 언젠가부터 당연하게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서 랩으로 포장되어 팔리는 느타리 버섯, 한 줌씩 비닐 소포장된 청양고추를 샀다.
플라스틱(비닐) 때문에 마음 한 끝이 아리지만 포장이야 어쩔 수 없다치고 하나로마트는 수입산을 일절 안파는 곤조라도 가졌으면 한다.
냉동실에는 의지를 갖고 친환경 농사를 짓는 친구네서 일 회 분씩 비닐에 싸서 그걸 또 스티로폼 상자에 넣어서 보내준 청국장이 있다.
맛있게 끓이려고 했는데, 짜게 됐다. 결혼식 축하해줬다고 답례품으로 받은 소금, 종이 상자와 스티로폼 완충제로 과대포장 됐던 소금을 많이 넣어서 그렇다.
청국장은 물 붓고 간이라도 맞출 수 있지만 인류의 질주는 점점 짜지기만 한다.
내 탓이다. 아니다. 세상탓이다. 아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탓이다.
'물질의 위계 질서는 폐기되었다. 단 하나의 물질이 모든 물질을 대체한다.' - 롤랑 바르트 -
지난 주말엔 목욕탕에 갔댔는데, 어제는 이발소에 다녀왔다. 다녀오면 새롭게 태어난다는 점에서 두 장소는 같은 카테고리다. 중고등학생 때 이발소에 다녀 버릇해서 그런지 나는 미용실보다 이발소가 더 푸근하다.
미장원이나 미용실이란 명칭도 꽤 예전에 쓰던 말이다. 말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미용실> 보다는 <헤어>가 들어가는 간판이 많다. <헤어>도 옛날 말인가? 40대인 내 세대만 해도 이발소에 가는 사람이 많지 않고 이발소란 곳은 이발사도 손님들도 최소 60살은 넘어 보이는 분들이 대부분이니 지구 멸망보다 이발소란 말이 사라지는 일이 먼저 일지도 모른다.
머리를 자른다는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보니 자르는 사람과 잘리는 사람의 합이 중요하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곳에 쭉 가게 된다. - 정선에서는 주로 예쁜이 미용실엘 갔다. 여기 아주머니는 머리 감을 때, 머리를 시원하게 눌러주셨다. - 어제 갔던 세영이발소는 친구와 이름이 같아서 몇 해 전에 처음 갔었는데, 70은 훌쩍 넘었음이 분명한 아저씨가 혼자 운영한다. 오직 가위로만 머리를 잘라주는데, 그 속도가 빠르다. 말도 많이 안 하시고 이발소의 하이라이트인 면도도 아주 깔끔하다. 눈썹을 제외한 얼굴의 모든 털이 사라지면 얼굴이 미끈해서 아기같고 새로 태어나는 일이 완성된다. 커트만 하면 만 천원인데 먼저 천원짜리가 없어서 이 만원을 드렸더니 만 원짜리 한 장만 받기도 했다. 그래서 왠만하면여기서 머리 자르려고 한다.
한 번은 여기가 휴가인 줄 모르고 찾아 갔다가 머리가 너무 자르고 싶었기에 바로 옆에 로얄 이발소에 갔다. 아저씨가 말은 많고 단순 커트에 머리도 감기는 둥 마는 둥 하고서 2만원을 달라길래 따지지 않고 그냥 줬는데 엄청 기분 나빴다. 다시는 안 간다. - 세영이발소는 면도 포함 13000원 - 바로 옆에 붙은 가게고 주인장의 연령대도 비슷한데 그렇게 차이가 난다. 고약한 노인들이 있다. 아니, 고약한 사람들이 있다.
친구 S가 영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을 참 좋아했는데, 그 영화는 여자 이발사와 이발사의 남편 얘기다. 남장을 한 여자 이발사가 나오는 한국 단편 영화도 생각난다. 두 영화 다 사랑에 대한 영화다. 내 머리칼을 잘라주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 "당신 머리칼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그 머리칼로 날 죽여주세요." -
미용실에선 누워서 머리를 감겨주지만 이발소는 엎드려서 머리를 감겨준다. 내가 이 얘기를 했을 때, 어느 시인이 겸손하게 살라고 그러는 것이라고 해서 감탄했었다. 겸손하게 살아야지. 남의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건 무척 솔직한 직업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몸으로 무언가를 대하는 솔직한 직업은 부모들이 바라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발소 얘기가 주저리 길어졌다. 오랜만에 단골 이발소에서 머리 자르고 면도까지 해서 기분 좋다는 얘기.
면도에 관한 짧은 글을 남긴다.
수염과 면도칼이 교차되고 그 사이로 나와 이발사가 교감하는 시간
2020년이다. 2020 이라고 쓰니까 뭔가 묘하다. 반복되는 숫자가 주는 기분일까? 인류가 멸망하고 지구가 사라져도 202020년은 오겠지. 21세기가 끝난 거 같다. 나는 2020원더키디 세대긴 한데, 그 만화는 안 봤다.
올해는 뭘 어떡하나? 잠깐 생각했는데, 이렇다 할게 없다. 직장 안 그만두고 잘 다니는거랑 술 많이 안 먹는거랑 담배 끊는거 정도다. 직장은 계속 다니는 거고 담배는 끊는 거지만 부정과 근절이란 측면에서는 둘이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까 술 까지 세 가지는 올해는 뭘 어떡하나가 아니라. 뭘 안한다 카테고리다.
그럼 뭘 어떡하지?
요새는 새 기타가 갖고 싶다. 그렇지만 참아야지. 기타를 더 잘 치고 싶다. 연습을 더 하기로 한다. 밴드에서는 노래를 하게 됐는데, 윤도현이 부른 '잊을게' 너무 높다. 내가 만든 '플라스틱'도 재훈씨가 밴드 편곡 해줬는데, 확실히 편곡이 들어가니까 좋다. 노래도 너무 심플하지 않은 걸로 몇 개 더 만들어야지.
아내 농업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줘야지. 그동안 흙에서 너무 멀어졌다. 아내는 농사 때문에 자주 절망한다. 작년엔 크게 실망했다. 같이 해야한다. 그런데 나도 농사에 자신이 없다. 그러니까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
지난 토요일에는 몇 년 만에 목욕탕에 다녀왔다.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는 아니고 좀 씻고 싶었다. 목욕탕, 나에게는 옛날말이 되서 그런지 푸근한 단어다. 어려서는 아버지, 동생이랑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갔다. - 더 어렸을 때는 엄마랑 갔다. - 비슷한 시간에 가니까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 목욕탕 주인도 나를 알고 나도 목욕탕 주인을 알고 목욕탕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뭔가 다들 한 동네 산다는 느낌이 있었다. <응답하라 1988> 시절 얘기다.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니다. 그래서 옛날이 그리운가하면 그렇지는 않다.
목욕을 하고는 친구랑 둘이 낮술을 마셨다. 늦게까지 마셨다. 아내한테 많이 미안하다. 마시기로 한 술이라서 끝까지 마시게 됐는데, 술을 안 마시는 아내에게 몹쓸짓을 한 느낌이다. 이제 돌아가야지 생각할 때 즈음 아내에게 화가 잔뜩 묻은 카톡이 왔다. 토요일이라 나랑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놀고 싶었던가 보다. 두 사람의 마음이 뭔가 안 맞았다. 그렇지만 술 자체는 기분 좋게 마셨다. 기분 좋은 상태로 마시는 술은 좋다. 그렇지만 술이 꼭 먹고 싶은 건 아니고 아내가 싫어하니까 이런 자리는 당분간 없는 것으로 하기로 한다.
정초부터 겨울비가 촥촥 내린다. 공기가 청량하다. 숨쉴 맛 난다. 공기, 물 같이 기본적인 것이 중요하다. 한국 생수시장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 지하수 마름, 생수공장 주변 농업 용수 없음 - 우울하다. 물은 그냥 수돗물을 먹고 끓여 먹는 시절이 지금보다 나았다. 지금보다 덜 풍요로운 시절이 전체적으로 지금보다 나았다. 19세기 말부터 풍요를 향해 치고 올라가 인류가 20세기 말부터 정체된 느낌이다. 어쩌면 꼭지점에서 내려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비가 호주에 내리면 좋을텐데.
이것저것 적다보니까 그냥 막 살아야되나, 하는 생각에 닿으려고 한다. 그래서는 안되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말장난이지만 하지 말야야 할 것도 해야 할 것에 포함된다. 하지 말아야 할 것 한 가지와 해야할 것 한 가지가 늘었다.
올해도 시작하자마 끝난 느낌이 든다. 어떡하지?
정선에 산불이 났다. 원인 조사 결과 등산객 또는 약초꾼들이 불을 피운 흔적을 발견했다. 등산객들이 뭘 끓여 먹는 경우는 별로 없고 약초꾼들이 몇 년 전에 드론을 이용해서 도라지 씨를 많이 뿌렸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걸로 봐서는 약초꾼들 때문인 것 같다. 불이 났던 당일날 비가 약간 왔다. 불 피워놓고 뭔가 끓여 먹고 방심했겠지. 불은 한 순간이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나도 그런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 두렵다.
불이 밤에 나는 바람에 퇴근했다가 다시 정선으로 올라왔다. 워크숍에 간다고 부산가는 길에 안동까지 갔다가 돌아온 친구도 있다. 차에서 대충자고 불 끄러 올라갔다. 잔불이 남아서 또 올라갔다. 여전히 잔불이 남아서 또 올라갔다. 3일 동안 네 번 산 꼭대기에 올랐다. 한 번 빨았는데도 산불잠바에서는 불냄새가 난다. 피곤해서 입술에 헤르페스가 발생했다. 불은 다 껐고 대상포진이 아니라 단순 포진이라 다행이다.
임계로 근무지를 옮긴지 거의 두 달이다. 심신이 안정을 찾았다. 몇 년 만에 찾아온 안정이다. 화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 쓰는 일기도 오랜만이다. 하지만 내 신상에 어떤 급격한 변화가 있을지 모르니 지금 이 순간을 아껴줘야지. 집에서 출퇴근 하는 것만으로 술과 담배가 줄었다. 아내 얼굴을 매일 보는 것이 행복하다. 봄에 메인 파트만 외워뒀던 코타로 오시오의 황혼을 다 외웠다. - 나는 끈기가 있는 편이다. - 생활에 어떤 루틴이 생겼다. 의사가 얘기한 일상을 찾았다. 대성공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다 얼굴 좋아보인다고 한다. 사실이다. 아내가 인상적인 말을 했는데, "너는 술을 많이 마시는 때가 있었을 뿐이지 몸이 안 좋았던 적은 없어." 맞는 말이다. 건강하게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
장인어른 70세 생일이라 지난 주말에 서울 다녀왔다. 27일은 할아버지 제사다. 엄마 가게는 1월 한 달간 영업정지를 당했다고 한다. 위로해 주고 와야겠다. 이제 장사 그만하시고 가만히 쉬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엄마 입장도 그렇고 내 입장도 그렇다. 입장과 노릇과 현실은 같은 말이다. 한 분야 한 직장 한 우물을 판 장인어른의 안정된 노후 생활과 - 장모님이 백화점 VIP란 얘기를 들었다. - 한 우물을 팠지만 일을 그만두면 땟거리가 없는 엄마의 입장을 생각해 본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노후대비를 생가해본다. 이제껏 생각해보지 않은 분야다. 나랑 지후는 어떻게 될까? 어제 강릉부동산 사이트를 같이 보면서 우리가 가질 수 없는 집과 땅들을 실컷 봤다. 아내는 체념하여 입버릇으로 이번생은 집 없이 가는 거라고 한다. 내가 짜증나도 지금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공무원 연금이 뭔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못하는 것도 결국은 이런 생각들과 관계있다.
이렇게 나이를 먹는건가? 그렇다면 남들보다 늦었다. 상관없지만.
안정속에도 피로와 불안이 있다.
컴퓨터로 쓰는 거 오랜만이다.
12월이 됐다. 어제 알고서 아, 12월이구나, 했다. 세월은 지나가기만 하지만 숫자는 지나가기만 하지는 않는다. 곧 다시 1월이다. 계절도 다시 돌아온다. 세월은 지나가기만 하지만 어떤 명사들은 되돌아온다. - 지나가기만 하지는 않는다. -
임계로 옮겨서 한 달을 지냈다. 보기 싫은 사람 얼굴을 안 보게 됐고, 일도 줄고, 아내 얼굴도 매일 보니까 우울감과 화를 많이 떨쳤다. 지난달엔 술을 한 번만 마셨다. 무지하게 피우던 담배도 하루에 한 갑 이하로 줄었다. 내 몸에 간만에 찾아온 긍정적인 변화다. 매일 왕복 70km를 출퇴근 하느라 차에 넣는 기름값이 정선 있을 때, 술값보다 적게 든다. 아주 좋다.
내가 갑질 신고한 사람은 양양으로 발령났다. 징계 같은 건 없겠지. 99.8% 장담한다. 산림청 후진 클라스다. 애초에 세상이 후졌으니 별 수 없는 일이다.
99.9%를 말할 때는 100%랑 비슷한 느낌인데, 99.8%는 100에서 많이 비는 느낌이다. 0.1 차이가 크다. 세상에 100%란 건 이미 진행된 일 밖에 없으니 99.9%는 100%랑 같다, 는게 내 생각이다. 생각나는 대로 막 적다 보니까 이렇게 적게 됐다. 적으면서 생각하는지, 생각하고 적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어떤 영화(넘버 쓰리)에서 한석규가 이미연한테 50.1%만 믿어도 100% 믿는거라고 했던 게 생각난다.
의사를 네 번 만났는데, 만날때마다 일상생활만 잘 유지해보라고 한다. 그 일상생활이라는 말이 뭐라고 출근했다가 퇴근하고 아내랑 저녁 먹고 낮에 땀 흘린날은 저녁에 씻는 보통의 일로 위로가 된다. 책도 몇 권 읽었다. 밤에는 아내 옆에서 기타도 치고 게임도 하고 유투브도 본다. 이런 게 일상생활이다. 정선에서는 술만 있고 생활이 없었다.
정선에서 어떻게 살았던건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회사 동료들도 내 생각을 안 하고 나도 동료들 생각을 안한다. 직장이란 일이 아니면 부딪칠 일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곳이고 사람은 이렇게 쉽게 망각하는 존재다. 좋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지금의 안온함을 당분간은 유지하고 싶다. 뭐라도 적고 싶어서 적는다.
화는 다소 가라 앉았다. 잠들었다가 새벽에 욕하면서 잠에서 깨는 일도 횟수가 줄었다. 시간과 약효가 같이 작용한 것이리라. 시간이 약이고 약도 시간이다.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나는 알고 있다, 고 생각하지만 내가 어렴풋이 인지하거나 전혀 인식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 화가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하면 다 그런 것이 된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웃긴다.
의사가 일상생활만 잘 유지해 보라고 한다. 일상이 뭐고 생활이 뭔지 그 말이 위로가 된다. 사무실에서나 집에서나 딱 할일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무력하게 유투브와 함께 한다.
전국체전 달리기 영상을 몇 개 봤더니 육상관련 영상이 많이 따라와서 높이뛰기며 멀리뛰기 같은 것을 본다. 뜀박질 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가만히 보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나도 달리기를 해볼까. 육상 동영상을 보는 와중에 마이클 존슨의 400미터 세계 신기록이 깨진 것을 알았다. 그걸 알고서 나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졌구나, 생각했다. 인간새 세르게이 부브카의 장대높이뛰기 기록이 깨진 것도 최근에 알았다. 인간사에 깨지지 않는 기록이란 없는 것이다. 깨지지 않는 인간도 없다.
농촌 생활자에서 도시 생활자로 돌아온지 5년이다. 부지런히 몸을 놀리며 내 몸뚱이로 뭔가를 하는 일에서 급격하게 너무 멀어졌다. 직업적인 영향도 크다. 내가 주로 하는일이 법에서 어긋나지 않게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고 그 결과를 문서로 보고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좀 바보같다. 지난주에 아주 오랜만에 아내랑 떡볶이랑 순대를 사 먹고 생각했다. 돈으로 하는 일은 떡볶이 일 인분을 사 먹는 것조차 달콤하고 나는 달콤한 세상 속에 너무 깊숙히 들어왔다.
단골 커피숍에서 커피 사 마시면서 적는다. 달콤한 세상에서.....
작은 엄마가 생일 취떡을 잔뜩 싸줬는데,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이 먹을 게 별로 없던 시절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아침까지 맛있게 먹었다. - 냉장고엔 아직 남아 있다. - 삼촌이랑 작은 엄마부부는 쯕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회사에서는 계속 화가 난 상태다. 화가 나서 오늘 새벽에 짐 싸서 내려왔다. 계속 정선에 있게 되더라도 출퇴근 할 계획이다. 참다참다 갑질 신고도 했다. 너무 많이 참아서 병이 왔다. 주말 내내 유투브 보면서 짜증만 냈다. 잠시만 틈이나면 회사에서 짜증났던 일이 머릿속을 가닥 채운다. 내 짜증을 내가 아니라도 컨디션 안좋은 아내가 듣는다. 너무 바보같다. 어제도 원래는 오늘 아침에 정선 가려다가 아내한테 너무 악영향만 가는 거 같아서 자녁에 정선 올라왔다가 미친놈 만나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 결국 이렇게 될 일이었다.
화가 가라앉질 않는다. 지난 목요일엔 옆방 팀장 하나가 손가락을 까딱까딱 하면서 나를 불러서 손가락 잘라버릴까 생각을 했다. 산불진화 장비를 사는데 동료가 그 물건이 맞다고 해서 샀더니 다른 업체 제품이었다. 금요일에는 퇴근하고 천금같은 내 시간에 물건 찾으러 관대에 들렀는데 알고보니 강릉원주대였다. 이 건도 내가 낮에 동료에게 주소 보여주니 맞다고 했던 건이다. 아내는 몸이 안 좋다는데. 집에 있어야 될 시간에 엄한데 가서 30분을 헤맸다.
C8 싹 다 불질러버릴까.
상담 받으러 병원 가는 길에 쓴다.
어제 빗속을 걷던 모자간의 대화를 들었다. <엄마, 난 먹을 게 없어지면 그냥 자살할거야. 야, 그땐 농사지으면 되지.> 돼지열병에서 시작된 대화였겠지. 그때가 오면 농사는 마음대로 지을 수 있나? 아들보다 엄마쪽이 순진하단 생각을 했다. 살던대로 살다가 다 같이 죽는 게 대충 사는 거 같다. 세상의 비참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조카뻘의 회사 동료 하나가 자기는 다 같이 멸망하는 건 상관 없다고 했다. 그게 대충 사는 것이겠지.
하던 일 계속하면서 지금 사는대로 사는 것. 서초동이나 광화문에 나갈 사람은 주말마다 나가고, 먹방 유투버들은 계속 열심히 먹고, 비건인 친구는 계속 비건으로 살고, 내 아내는 우울과 괜찮음을 반복하고, 나는 술에 취했다 깼다를 반복하고, 시덥잖은 일기를 블로그에 계속 남기면서 사는 게 대충 사는 것이겠지.
온종일 천정만 들여다 보고 누워 있는 날이 있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싫은 것들 중에 내가 제일이다. 이렇게 생이 허무로만 밀려들기도 하는 여유가 있다. 나에게 그런 여유가 있다는 사실이 싫다. 이 여유를 즐기는 게 대충 사는 것이겠지.
영화 조커를 보고 아내에게 조커처럼 살아야겠다고 했더니 조커처럼 살지 말라는 게 영화의 교훈이라고 했다.
대충 살기로 했다. 간절하게.
어제 같이 걷다가 운동장에서 불을 밝히고 축구를 하는 사람들을 봤다. 조금 있다가는 족구클럽 사람들이 족구 하는 걸 봤다. 밤 10시 경의 일이다. 올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29살 친구가 자기는 족구하는 사람들 같은 열정이 없어진지 오래된 것 같다며, 저런 사람들보면 부럽다고 했다. 나는 잠깐 생각해보고 어렸을때부터 열정이 없었던 것 같다고 한 다음 웃고 말았다.
열정이란 게 불같은 사랑과 비슷한 걸까? 기타를 처음 시작해서 하루에 10시간을 치기도 했던 일을 열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동료가 그런 열정을 얘기한 거라면 그 친구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 것도 열정에 포함된다. 20대 중반에 지금 아내 만난다고 용인에서 술 먹다가 택시타고 대학로 왔던 생각이 났다.
열정 얘기를 마음속에 담고 있다가 또 다른 조카뻘의 직장 동료랑도 열정 얘기를 했다. 공무원 시험 합격한 사람들을 보면 눈이 동태 눈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신도 열정으로 공부한 게 아니라고 했다. 얘기의 결론은 가장 열정이라고 할 수 있는 열정은 사랑 뿐인 것으로 났다.
그리고 나는 동태눈깔로 회사 다니고 있다.
평생을 가져가는 열정이 있나? 그런 사람들도 있긴 한 거 같다. 혜은이 노래도 생각나고, 열정이 있으니 울었을 것이다. 안개속에서든 어둠속에서든.
처음 열정을 얘기했던 친구는 서울시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해서 서울시로 가기로 했다. 계절마다 한 명씩, 잘 가라.
아내의 우울이 나에게로 옮겼다. 그렇다고 아내가 쾌활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둘 다 깝깝한데, 내가 더 깝깝하다. 바위에 꽂힌 엑스칼리버를 뽑아내려는데, 손이 칼손잡이에 붙어서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느낌이다. 칼도 못 빼고 손도 안 떨어지는 찝찝함. 아직 울지 않았지만 이런 기분은 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하필 이럴 때 토요일 당직이었다. 일요일 아침에 집에 내려갔다. 각자 자기 할 거 하면서 놀아도 아내랑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좋다.
'유열의 음악앨범'을 봤다. 정해인 멋있더라, 목소리도 좋았다. 정해인도 우울할 때가 있겠지. 영화는 만날 사람은 만나고 헤어질 사람은 헤어진다, 는 얘기다. 그 사이사이에 선택이 있다. 라디오 영화라 봤는데, 나보다 네 살 많은 사람들 이야기라 어느정도 몰입이 됐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있기 싫은 곳(정선)에 있는 것도 배우자와의 사별만큼은 아니지만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 그런 사람들이 잔뜩 있는 회사가 어떻게 잘 굴러가겠나.
어제 윗줄까지 적었다.
오늘은 몸살이 났다. 출장을 가느라 운전을 하는데 무릎이 뜨거웠고, 잠시 커피 마시다 화장실에 들렀는데 오줌에서 피로의 냄새가 났다. 요오드 냄새 같은거라고 해야하나? 암튼 그런 게 있다.
추석에 근무가 잡혔다. 9월 중순인데 추석이라고 산불근무를 서게됐다. 근무서라고 하는 사람이나 그걸 중간에서 커트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근무 서는 놈이나 똑같다.
피곤한 계절이다.
근무는 안서게 됐다.
그래도 피곤한 계절이다.
변화
가을로 가는 주말
아내는 우울병에 걸렸고
멀리서 친구가 다녀갔다
다른 친구와는 커피를 마셨고
아내랑 호수를 한 바퀴 돌고서
바다 옆에 한참을 있었다
뭔가 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밤 비행기로 여길 떠난다.
치앙마이는
기념품 가게 악어들도 합장을 하고 있고 들개가 많은데 개들이 대체로 말랐다.
야시장이랑 - 낮에는 더워서? - 마사지 가게가 많다
풀밭에 땅콩이 많고 - 밥 볶을 때 땅콩기름을 쓴다고 함. 짜장면에 돼지기름 쓰는 거랑 비슷한 느낌. - 나무들이 크고 시원시원하다.
치앙마이에서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영화 '기생충'을 봤다. 초중반이 지루했지만 마지막에 몰아칠 때는 임팩트가 있었다. 남의 집을 제집처럼 생각했다가 사단이 나는 스토리.
온통 태국어에 사진도 몇 장 없는 메뉴판이 있는 식당에서 저녁 사 먹었다. 두 가지는 제대로 나왔는데 족발덮밥 대신 모닝글로리 볶음이 나왔다. 맛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마사지를 받았다. 시원했다.
인피니티 풀이 뭔지 알았고 거기서 수영했다. 좋았다.
먹고 걷고 먹고 걷고 먹고 걷지 않고 먹기도 했다. 주로 먹었는데 다 맛있었고, 아내 입맛에 맞아서 좋았다. - 난 대체로 뭐든 다 잘 먹음 - 볶음밥 먹느라 국물 쌀국수는 몇 번 못 먹었다.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싼 나라에 와서 그 나라 사람들은 시세로 사 먹는 밥을 싸다고 생각하면서 사 먹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보다 물가 비싼 나라도 별로 없지. 깊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계획이 없는 게 최고의 계획일 수 있듯이 생각이 없는 게 최고의 생각일 때도 있으니까.
아내의 결정에 따라서 앞으론 비행기 타고는 제주도도 안 가기로 했다. - 기후 위기에 악영향을 주는 일을 줄이겠다고 함 -
며칠 잘 놀았다.
우울 또는 생의 허망은 빈틈이 없어 보이는 삶에서도 작은 구멍을 찾아서 기어이 밀고 들어온다.
체험만 하다가 끝나는 인생, 이라고 얼마전에 적어뒀다. 특별히 잘 하는 게 하나도 없고 돈도 없고 당장 내년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내의 우울과 관련이 있고, 내 우울과도 관련이 있다.
누구나 한 가지씩은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 있다고 말은 쉽게 하지만 모두가 '생활의 달인'에 나오거나 이름을 떨치는 예술가나 유명인사가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삶은 자기가 잘 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흘러가는 삶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진다. 살면서 직업으로 삼거나 돈을 벌었던 여러가지 일들처럼 농사를 지었던 2년도 체험들 중에 하나 뿐이었을까, 생각하면 뜨끔하고 우울하다. 농사 지을 때 농사에 100프로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지 못할 여러 조건들이 있었지만 내가 좀 더 기술이 있고 생각이 있고 농사에 적성이 있었다면 '체험'이란 단어를 떠올리진 않았을 거다. 그렇다고 지금 일은 천직이라 생각하고 초집중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어영부영 산다.
기술자나 전문가가 되지 못하는 삶. 근데 그게 어때서!
인류는 망해가고 있지만 인류의 시작부터 세상은 다 서로에게 기대서 - 착취라는 말도 좋다. - 돌아가고 있고 모두가 어느 부분에선가 지금의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 - 기여하고 있다, 는 말도 좋다.
어제 '정원가의 열두달'을 읽었다. 카렐 차페크는 정원을 가꾸고 글을 쓰고 그의 형은 삽화를 그리고 출판사에서는 책을 만들고 사람들이 책을 읽는다. 시간이 흘러서 한국의 출판사에서 번역을 해서 출판하고 절판된 것을 다시 복간해서 출판하고 서점과 도서관으로 책이 옮겨지고 나는 빌려읽은 책을 반납하고 누군가는 또 그 책을 읽고 그 책 속에서 내 머리카락이나 눈썹을 발견하기도 할 것이다. - 어쩌면 말라붙은 고추가루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 이 모든일에 연루된 수 많은 사람들과 만남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이런식이다.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왜 이런 얘기를 썼냐면 어제 저녁에 회사 사람 하나가 나한테 욕하길래 나도 같이 욕했다. - 나는 술을 안 마셨고 상대방이 혼자 술에 취한 상태라서 때리지는 않음 - 나는 마음의 어느 구석에 나한테 못되게 굴면 가만히 안 있는다, 란 문장을 품고 있다. 나한테 먼저 욕한 사람도 마음속에 뭔가를 품고 있는데, 그게 터져나왔을 것이다. 이해는 하는데, 이해만 한다. 그래도 때리지는 말아야지.
우리 회사에 일용직 아저씨들까지 50명 정도가 다니는데, 각자 자신들의 체험으로 살아온 50명이 있다보니 당연히 여러가지 갈등이 있다. 생이 끝날때까지 아니, 인류가 끝날때까지...
생이 어지러운 친구 하나가 좋은 삶은 헷갈리지 않는 삶인 것 같다고 했는데, 좋건 나쁘건 어중간하건 헷갈리면서 가는게 삶이고 살아 있으면 누구나 다 어떤 삶을 산다, 는게 내 생각이다.
우리집은 신발 벗고 들어오는 현관이 넓다. 네모난 현관자리가 네모난 마루의 한 가운데로 침입한 모양새다.
마루에 누워 있으면 내 신발과 내 눈높이가 같은데, 나는 그 사실이 참 좋다. 누운 신발과 누운 나. 오즈의 다다미샷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나는 운동화 한 켤레만 신다가 떨어지거나 바닥에 구멍이 나서 비오는 날 못 신게 되면 새로 산다. 장례식장에서만 신는 오래된 구두는 자동차 트렁크 안에 들었고, 회사에서 신는 등산화는 회사 신발장에 있다. 아내도 물건 욕심이 적어서 신발 숫자가 적다.
지난 주말에 넓은 현관에 달랑 네 켤레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사막 한 가운데 띄엄띄엄 나무가 서있는 느낌이랄까.
신발은 신으면 닳는다. 안 신어도 닳는다. 신으면 더 빨리 닳는다. 시간의 이치다.
지난해 겨울부터 신기 시작한 지금 운동화는 발뒤꿈치랑 닿는 안쪽이 좌우 모두 터졌다. 터진 것까지는 좋은데, 터진 자리에 뭔가 딱딱한게 튀어나와서 내 뒤꿈치를 자꾸 찌른다. 맨발로 신을 신고 걸으면 금방 상처가 생기는 지경이다. - 양말 신고 신으면 괜찮음. -
지난 주말에 마루에 주저 앉아서 아내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 운동화 사야돼, 란 말을 시작하는 바람에 아내가 내 운동화의 실체를 알아버렸다. 아내는 막 웃으면서 어떻게 그 자리가 터지냐, 왜 운동화에 딱딱한 게 들었냐, 는 말을 했다. 운동화 안쪽 바닥에 Reebok 글씨가 좌우 대칭으로 조금씩 흐릿해진 것을 - 왼발은 Ree자가 남고 오른발은 bok자만 남음 - 발견하고는 또 막 웃었다.
아내가 웃으면 기분이 좋다. 그까짓 터진 운동화가 뭐 그렇게 즐겁게 웃을일인가.
사랑이다.
터진 운동화에 대해서 말하고, 그 신발을 보면서 웃고, 그 웃음에 마음이 무방비 상태로 해제되는일은,
사랑이다.
지난 목요일부터 안 좋던 몸 상태가 주말까지 이어졌다. 수요일에 비 맞으면서 일한 데다가 밤 기온에 아랑곳 않고 항시 문을 열어놓고 자기 때문이다.
20대에 운동으로 만들어 둔 몸을 30대에 다 소진하고 40대에 와서는 전반적으로 힘이 딸리는 것을 느낀다. 내 몸상태는 대한민국 평균이라고 할 수 있는 흐름안에 있다. 평균이란 건 어떤 값들의 중간치이기 때문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보통으로 산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보통으로 사는 사람이 어디있나? 결혼 출산 대출 아파트 같은 큰 구찌안에 들어가는 삶, 혹은 필수라 부르는 일들이 보통인 걸까?
주말 내내 밥 먹을 때 빼 놓고는 누워 있었다. 흔히 하는 말처럼 방바닥에서 등을 떼기가 힘든 것이 아니다. 그저 무력한 상태로 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K선배 꿈에 내가 나왔다고 해서 복권을 사지는 않고 번호만 맞춰봤다. 1등 번호에 내가 항시 사는 숫자가 세 개 포함되어 있었다. 5천원 짜리 꿈에 나왔다고 생각하니 웃겼다. 지난밤엔 열 시간을 넘게 잤는데, 꿈에서 우리 부부한테 사기 칠라는 놈들한테 잘 대처했다. 안심안심.
정선으로 출발하기 전에 아내랑 몇 가지 얘기를 했다. 오늘 생긴 아내의 멍, 우리 회사 얘기, 사람들 얘기, 우리만 아는 발뒤꿈치 닿는 부분이 터진 내 운동화 얘기.... 그 10여 분이 허무하게 지나간 주말을 잊게 한다. 나도 하지 못하는 내 걱정을 해 주는 건 당신 뿐이다. 당신 팔에 생긴 멍을 걱정해 주는 것도 나 뿐이다. 걱정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 아니다. 걱정은 사랑의 몫이다.
정선 올라오는 차에서 넥스트의 <홈> 앨범을 들었다. 중고등학교 때 참 많이 들었던 앨범이다. '인형의 기사'는 노래방에서 누가 부르던 꼭 불렀었다. '아버지와 나 '에서 아버지와 함께 세월속으로 걸어간다는 신해철 목소리가 어리다. ' 턴 오프 더 티비'는 지금 들어도 참 좋다. 신해철은 이 다음 앨범과 그 다음 앨범에서 이전의 (작은)성공을 집대성한 곡들로 본인 음악의 정점을 찍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은 세상에 없다.
사람이란 게 게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니 내가 만든 노래는 다 비슷하고 내 일기도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고 언젠가 나도 세상에 없다.
뭐랄까. 30대의 나는 20대의 나를 파 먹고 지금의 나는 그 전의 나를 파 먹고 산다. 그러니까 일정 나이 이후의 삶이란 건 자꾸 자기 자신을(과거를) 파 먹고 사는 느낌이랄까. 예전에 좋아했던 앨범을 듣는 일도 같은 맥락에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이상하게 흘렀는데, 사랑의 힘으로 이번주를 잘 지내보고 싶어서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