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덜 깬 상태로 새벽에 일어날 때가 있다. 그런날은 오전내내 울고 싶은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지난주 토요일 새벽에도 그랬다. 온갖 슬픈 노래 다 찾아듣다가 정승환이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부르는 클립을 봤다. 노래 듣는 엄마 눈가가 촉촉한데, 엄마가 슬픈 걸 눈치챈 어린 아들이 엄마 왜 울어, 표정으로 울지 말라고 마스크 쓴 채 뽀뽀하는 장면이 나왔다. 엄마 표정이 금방 행복해져서 둘이 꼭 끌어 안았다. 슬픔의 알고리즘을 따라가다 보니 정형돈이 어느 토크 프로그램에서 평생 아팠던 엄마에게 다시 태어나도 자기를 낳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클립도 봤다. 나는 우리 엄마에게 정형돈처럼 말할 수도 있고 젊어져서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길 찾아갔으면 좋겠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엄마나 나나 정형돈 쪽이 더 가깝지 않나 싶다. 가족이란 그런것이다. - 20년 전에 그냥 모든게 다 힘들 때 어둠속에서 오랜만에 만난 엄마 손 잡고 누워서 울었던 기억이 났다. -

영화 모가디슈를 봤다. '죽거나...' 보고 류승완 영화 처음인데 죽거나가 90년대 초반 이하늘의 랩이라면 모가디슈는 2020년 창모의 랩 같다 생각했다. 아내한테 말했더니 뭔말인지 알거 같다고 했다. 대충 말해도 뭔말인지 아는것도 사랑의 한 가지다. 영화는 유려하고 군더더기 없다. 무엇보다 아주 나쁜 새끼가 안 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아주 나쁜놈 나오는 건 싫은데 나이 먹을수록 더하다. 영화는 말이 통하는 동포애(인류애) 같은걸 말하고 있다.

가족애 > 동포애 > 인류애. 이런 수식이다. 가까울수록 사랑도 강하다. 그 반대의 감정도.

영화는 탈레반이 아프칸을 장악한 현실과 많은 부분이 겹친다. 한국 대사가 극적으로 탈출한 뉴스를 봤다. 한국 사람 다 탈출했으니 이제 남의 나라 일이다. 여기서 멈추는게 보통이다. 난민이 된 사람들과 그땅에 남겨진 사람들을 더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으니 거기까지만 해도 괜찮다. 보편적이다. 인류애 같은거 없어도 된다.

오늘 <아프칸 난민 한국에?> 란 기사를 봤는데, 혐오로 가득한 댓글리스트를 보고 실망과 좌절과 무력감에 빠졌다. 전두환은 아직도 살았는데 다행이 혈액암에 걸렸다고 한다. 혐오병자들 다들 죽을병 걸려서 돌봐주는 이 없이 고통스럽게 죽었으면 좋겠다.

쓰다보니까 또 무력하네.

아버지는 잘 지낸다. 여전히 하루 한 두번 목소리를 듣는다. 작년과 비교해 본다면 많이 명쾌해졌다. 계절을 모를까봐 걱정하진 않아도 될거 같고, 토요일 일요일엔 내가 출근 안 하는 걸 아니까 푹 자라고 일부러 전화 안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요일 개념도 어느 정도 돌아왔다. 그러다 갑자기 다시 많은 걸 잊게되도 상황 맞춰 헤쳐나갈 뿐이다. 머릿속엔 그 정도의 여유가 있지만 현실은 또 모를일이다.

영상 만드는 강의를 하나 듣고 있다. 재미있다. 시도 쓰고 일기도 쓰고 유튜브도 하고 술도 먹는다. 여름은 생각보단 짧았다. 2021년이 이렇게 지나간다.

엄마한테 전화나 해야겠다. 하는 얘기는 늘 '별일 없나 전화했어요.' 다. '어제 잘 주무셨어요?'로 시작하는 아버지와의 통화랑 차이점이 없네. 가족이란 그런것인가?

회사에선 낙엽송 열매 따고 있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나무 위쪽을 잘라내는 작업을 하면 떨어진 나무를 다시 작업하기 좋게 잘라내고 낙엽송 열매를 자루에 주워 담는다. 나무 위에 올라가는 일이 고역이다. 아보리스트라고 수목등반 기술자격이 있는데, 하루에 두 세 나무만 작업해도 의뢰인에 따라서 일당 30만원 이상을 받기도 한다. 우리 기간제선생님들 중에 나무를 탈 줄 아는 분이 세 명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 c형만 나무를 타고 있다. c형은 하루에 열 나무 이상 작업한다. 다른 분들은 이제 나이도 먹고 겁이 난다고 한다. 당연하다. 일당이 나무 자르는 사람도 10만원 하늘에서 떨어진 가지 정리하는 사람도 10만원이다. 땅에서 하는 작업도 어려움이 있지만 많이 불합리하다. 기간제 선생님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원칙대로 잘해 드려야겠지만 나무 타는 이 형은 혹시라도 섭섭하지 않게 말 한 마디라도 더 신경 쓰고 있다. 지난주에는 외부에서 온 아보리스트 선생님 한 분이 본인 방식대로 천천히 안하고 우리 방식대로 사다리 타고 나무 올라가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많이 다치지 않은 건 다행인데 정말 위험한 일이고 큰일날 빤 했다. 어제 출근해서 c형이 작업하는 걸 봤는데, 보는 내 마음이 불안하고 내가 보고 있으면 작업하는데 신경쓰일까 싶어서 금방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를 어렵게 생각하는 기간제 선생님들에게 생색내지 말아야지. 요즘 이 생각을 많이한다. 내가 이 선생님들 월급 계산을 하고 이 선생님들이 기간제 근로자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한 우리들 사이는 평평하지 않다. 나도 나 월급주는 회사에 100프로를 다 드러내진 않는다. 이게 인간의 사회다.

-> 튼튼해 보이는 집은 있어도 튼튼한 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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