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별로 안 바쁘다고 떠들고 다닌 죄로 한 달 넘게 매우 바쁘다. 출근해서 사진 몇 장 찍을 여유는 있으니 상관없다. 요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한다. 먼저 서울 다녀오고 두 달간 얼굴을 못 봤다. 전화 통화는 매일 하지만 두 달이란 시간은 꽤 멀게 느껴진다. 작년 이맘때를 생각하면 상황이 나쁘진 않다.

아버지는 혼자서 약통에 7개의 알약을 채워 넣는다. 계절을 잊지는 않는다. 날짜 개념을 가지려고 한다. - 평일에는 어떤 알람이 울리는지 정확히 아침 7시 20분에 내게 전화를 하는데, 토요일 일요일은 나 쉬는 날이라고 먼저 전화하지 않아서 아침에 내가 먼저 전화한다. - 요 며칠 정해진 시간에 전화가 오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앞산에 운동을 간다기에 어제 퇴근길에 전화해서 저 일찍 일어나니까 아무 때나 전화해도 된다고 했더니 오늘은 7시 10분에 산에 가려고 한다면서 영상통화로 전화를 하셨다. - 영상통화 하려고 한 게 아닌데 그렇게 된 것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 아버지에게 코로나 재난지원금에 대해서 두 번에 걸쳐서 한참을 설명했고 생년 끝자리 대상 요일이 아닌데도 은행에서 친절하게 ‘그거’ 해줬다고 한다.

걱정되는 점은 약을 잘 먹고 있다는데, 정말 잘 먹고 있는지, 잘 씻고 다니시는 건지, 먹는 것도 걱정하지 말라는데, 엄마가 두 달 전에 해 준 그거가 – 명칭은 앞으로도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 아직도 냉장고에 있다는데, 뭐 드시고 사시는지 등이다. 막상 만나보면 <초기치매 독거노인>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구나, 할 수도 있다.

요즘 피곤하다거나 바쁘다고 하면 아버지가 괜한 걱정을 하시니 그런 말은 안 하려고 한다. 내 목소리에 침울하거나 부정적인 기운이 들어있을 때도 금방 알아채기 때문에 가능하면 밝은 목소리로 통화하려고 한다. 부정(父情)이다. 엄마랑 가끔 통화하면 항상 아내 잘 있는지 물어본다. 장인어른도 아내랑 통화할 때 내 얘기를 묻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부모가 돌보지 않으면 아이는 죽으니 거기에서 시작된 정의 고리는 끊기 어려운 것이다.

명절에 경기도 오산 엄마 집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23일에는 고용센터에 가야 해서 서울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23일은 내 생일인데, 아버지가 내 생일을 기억할까? 내가 먼저 얘기할까? 71살 아저씨가 44살 먹은 큰아이 생일이 언제인지 기억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 다음달 19일에는 병원 두 군데 들러서 약 타고 인지검사를 한다. 추석 한 달 후에는 할머니 제사가 있고 음력 11월 초가 아버지 칠순이다. 아버지 자주 보겠구나,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사랑인가?

아내에게 사랑이야? 묻거나 사랑이네. 확정하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랑인지 생각하거나 묻는 순간 사랑이다. 어제는 마루에서 운동 시작할 때 반지 좀 받아달라고 아내에게 건넸다.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모습에서 사랑이네,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짜증을 낸다고 사랑이 없는 건 아니다. 짜증과 화는 같은 말인가? 짜증은 사랑과 같은 말인가? 엄마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는가 짜증을 내는가? 답을 아는 질문들로 맺는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