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약 타는 날이라 서울에 왔다. 강릉역 여덟 시 삼십 분 차, 집에서 역까지 걷는 길에 하늘이 쾌청했다. 지금 강릉으로 휴가 온 사람들 좋겠군. 코로나 시작되고 2년도 안됐는데 전염병과 여름휴가가 공존하는 세상이 됐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12시에 아버지 집에 도착해서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었다. 엄마는 내가 아버지 보러 오는 날은 꼭 서울에 온다. 아버지를 보러 오는 건지 나를 보러 오는 건지 모르겠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둘 다 조금씩 있는거겠지. 엄마는 오산에서 아버지 먹을 걸 잔뜩 만들어왔다. 너무 끓여서 양파가 다 녹아버린 카레 한 솥, 양념한 고기, 고춧가루가 없어서 청양 고춧가루만 넣고 만들었다는 겉절이 등이다. 겉절이는 맵고 미원맛이 났다. 맛있었다. 막국수 집을 차려도 될거 같다고 했더니, 미원을 안 넣으면 안된다고 하며 웃는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어려서 세상 제일 맛있다 생각했던 엄마의 김치맛이 미원맛이었단 걸 안 사람이 됐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올 때 싸오는 음식은 책임감인가 죄책감인가 사랑인가 세상의 많은 일들 중에 하나인가.

이버지랑 병원을 두 군데 옮겨 다니며 많은 얘기를 했다. 역시 나랑 둘이 있을 때는 당신 어렸을 때 얘기를 많이 한다. 할아버지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되는 건 흥미롭다. - 일 년에 꼭 두 번 바닷가로 물놀이를 갔고 음식 준비해야 하는 할머니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라 그 나들이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 치매병원에서 혈압약 타는 병원으로 가려는데 스콜이 쏟아졌다. 카카오 택시를 불렀는데 뒷자석에 탄 아버지가 본인 카드를 내게 건넸다. 이미 선결재된 거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받았다. 집에 돌아와서 잠깐 설명해 봤는데, 내 생각대로 아버지는 전혀 이해를 못한다. 치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 옛날 사람인 것이다. 그냥. 그냥. 아버지는 그냥 있는 사람이 됐다.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됐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지난달에 아버지랑 엄마가 강릉에 왔었다. 그때 일을 잘 기억하는지 약간은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는데 잘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오전에만 둘째 이모가 두 번 다녀갔다는데 어제 다녀갔다고 했고 동생과 엊그제 통화했다는데 열흘은 됐다 했다. 강릉 다녀온 건 큰 이벤트였기 때문에 잘 기억하는 건가? 아버지 머릿속을 알 수 없다. 스콜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아버지 머릿속에 낀 단백질도 잠깐 스쳐가는 강한비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부한 비유다. 진부함도 희망이라면. 택시가 길 건너편으로 오는 바람에 아버지랑 빗속을 뛰었던 일을 기억해 둔다.

집에서 아버지 약(매일 일곱 알)을 매일 약통에 담으면서 이모들과 얘길 나눴다. 병점 사는 셋째 이모를 오랜만에 봐서 많이 반가웠다. - 살을 빼는 걸 보면 의지가 대단하다. 아버지 술 끊은 걸 보니 유전인 것 같아요. 의지는 닮아도 되지만 밤새 술먹는 건 닮으면 안된다. 아버지 앞으로 일은 못할 것 같아요. 무슨 소리냐 하는데까지는 해봐야지 나한테 다 계획이 있다. 이모가 제일 자주 보시니까 이모 의견이 가장 정확한 거 같은데 어떤거 같아요. 예전에 비해서 많이 좋아졌다. 근데 똑같은 말을 반복해도 너무 말을 안듣는다. 움직임이 많이 둔해진 것 같진 않나요. 니 아버지가 원래도 기민한 사람은 아니잖니 - 이모들 용돈 좀 많이 드려야지. 추석 때는 꼭 추진해야겠다. 이건 미안함이나 책임감이 아니라 사랑과 고마움이다. 이모들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엄마도 아버지도 없었다. 돌아가신 큰이모 보고 싶다. 언젠가 엄마 집에 갔다가 막내이모 만나서 얘기할 때 자주 연락은 못하지만 항상 생각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모가 다 안다고 본인도 그렇다고 그러면 된다고 고맙다고 했다. 그 말이 참 고마웠다.

돌아가는 기차에서 쓸랬는데 청량리 오는 지하철에서 다 써버렸네.

추가. 위스키에 취미가 붙은 친구 부탁으로 글을 하나 써줬는데 3등 했다고 연락왔다. 아버지도 괜찮고 이래저래 기분 좋다.

아침 강릉역과 저녁 청량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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