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이랑 어제 서울 다녀왔다. 어제는 아내도 같이 다녀왔다. 그리고 아버지는 치매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로 한동안 멈췄던 업무를 다시 시작했기 때문인지 양천구치매안심센터는 환자와 보호자로 붐볐다. 작년 11월에 받은 검사와 보호자 작성 서류를 바탕으로 의사랑 면담을 했다. 나랑 의사 나랑 아버지 또 나랑 의사의 순서다. 목동이대병원 교수가 센터장인데 그 사람이랑 면담을 해서 안심했다. - 대단히 세속적인 이유다. 그런 삶을 살지 않았는데,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은 없으니 내가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세속적이란 걸 인정하고 넘어가자. 세속은 세속적인 단어니까 보편적이라고 할까 -

면담 내용
- 아버지는 혼자 산지 오래됐다. 가족들은 작년 여름에서야 아버지가 안 좋다는 걸 눈치챘고 그러고 나서야 아버지에 대해서 신경쓰기 시작했다. 현재 아버지는 숫자, 문자 등 많은 것을 상실한 상태고 언제 길을 잃어버리거나 한밤 중에 집 밖을 배회할지 모른다. 나이가 어리고(우리나라 70세)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이 보이기 때문에 피검사, MRI 검사를 받고 그 결과에 따라 PET란 것도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격이 너무 온순하다는 것은 현재로써는 아주 긍정적인 요소지만 급작스럽게 성격이 바뀔 수도 있다.
-> 40년 넘게 살면서 최근에서야 아버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걸 실토하는 면담이었다. 약간의 죄책감과 그것에 대한 부정이 계속 왔다갔다 한다. 동생은 본인이 결혼하고(2015년) 아버지가 완전히 혼자가 되면서 치매가 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핏줄이란 그런 것이다.

결론
- 우리 아버지는 치매다. 혼자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등급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안 나올 수도 있겠지) 요양급여를 신청해야 한다.
-> 예상은 했지만 의사가 치매라고 말했기 때문에 가슴속에 아주 작은 희망은 이제 없다.

엄마는 본인이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말했다. - 엄마, 알고 있으니까 자꾸 얘기하지 않아도 돼요. - 잘 안 되겠지만 아버지에게 책임감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엄마의 할 일인 거 같다. 그리고 오늘 엄마는 몸살이 났다.

나는 전체 진행을 총괄하고 아버지의 거주지 이전이나 요양급여 신청, 실업급여 계속 수급 등 중요한 결정에서 엄마와 동생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어제 엄마가 말하길 본인은 나처럼 차분할 수가 없다고 했는데, 내가 차분할 수 있는 건 - 회사 동료들도 아버지랑 나랑 통화하는 걸 들으면 어떻게 아버지한테 그렇게 차분하게 말을 잘할까,라고 함 - 아마 아버지에게 깊게 베인 것 같은 애정은 없기 때문이다. 병원 예약 날짜 통지가 올 때까지 아버지 약 드시라고 전화하면서 기다릴 뿐이다. 치매로 확정이 됐기 때문에 더 이상 기다리는 초조함은 없다.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고 내가 모르던 정보를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아버지 치매인 얘기를 여기저기 하고 다닌다. 며칠 전에 정선에서 일할 때 알던 아저씨를 우연히 만나서 아버지 얘기를 했더니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는 답을 들었다. 집에 틀어박힌 13살 아이를 걱정하는 친구도 그렇고 이혼 준비 중이라고 톡을 보낸 친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돈 걱정하는 엄마도 그렇고 사돈이 신경 쓰이는 아버님도 그렇고 다들 걱정 속에 산다. 걱정이 격정까지 가지 않더라도 거기에 삶이 있다.

진단에서 병원 예약까지 양천구치매안심센터의 시스템은 효율적으로 보였고 담당 의사는 매우 친절했다. 는 것을 기록해 둔다. - 그 뒤에 LH공사 직원들이 시흥에 땅을 산 것 같은 꼼수가 숨어있지는 않을 것이다. 적고 보니 생각이 너무 나갔다. -​

최근 며칠 아버지랑 같이 지낸 엄마가 파악한 아버지 증상
- 핸드폰이든 지갑이든 그게 뭐든 한 번 쓰기만 하면 어디에 뒀는지 몰라서 자꾸 찾는다
- 돌아가신 외삼촌 잘 지내는지 물어봄
- 본인 나이 모름, 계산도 못함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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