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토요일, 즐거운 토요일, 출근 안하는 날은 항상 좋은 날이다.
춘천 가서 친구랑 점심 먹고 왔다. 단지 점심을 먹으려고 스마트폰 음악을 블루투스로 들을 수 있는 자동차를 타고 강릉에서 춘천까지 당일치기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바로 지금이 나의 호시절이다.
친구는 나보다 두 달 늦게 입사 했고 정선에서 같이 직장 생활의 초년 시절을 보냈다. 정선에서는 질 떨어지는 팀장 새끼들을 만나서 개고생을 했지만 태백에서는 좋은 팀장들을 만났고 가족이 있는 춘천으로 옮긴지 4년째인데, 춘천 근무도 행복하다고 한다. 행복해서 다행이다. 세상 많은 일이 어떤놈과 함께 하느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빛과 어둠으로 갈린다. 팀장 복 없기는 나도 매 한 가지긴 했지만 그 친구 정도는 아니다. 나도 현 직장으로 옮기고서는 행복한 편이다.
친구는 교육환경이 좋은 동네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친구는 내년에 학교에 가는 7살 - 70개월 밖에 안 살긴 했지만, 윤석열 나이로는 5살이네 - 딸이 있다. 아내와 맞벌이를 하고 직장에선 칼퇴근을 한다. 아내 직장이 12시 출근 21시 퇴근이라 5시 퇴근하고 나서 21시까지 아이와 함께 한다. 아이와 함께 있는 게 즐겁기도 한데, 지겹기도 하고 아이가 학교에 가면 지금보다는 본인만의 자유가 생길 것 같다고 했다. 아이는 아빠 엄마를 적절히 닮았고 귀여운 편이었다. 나한테도 말을 잘 걸어줬다. ‘최애의 아이’ - 애니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 오프닝 곡을 틀어줬더니 한글도 이제 알기 시작했다는 아이가 일본어 노래를 중간중간 따라 불렀다.
친구랑 먹은 숯불 닭갈비는 아주 맛있었고 - 친구는 항상 춘천 놀러오면 숯불 닭갈비 사준다고 했더랬다. - 커피를 마시러 간 카페는 야외 공간을 포함해서 엄청난 규모였다. 춘천은 수도권이 가까워서 그런가? 생각했다. 드립 커피를 두 잔 마셨는데 플라스틱컵은 에러였지만 커피는 맛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토요일 오후 도심 외곽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정도로는 호시절을 보내고 있다.
친구랑은 옛날에 같이 일하던 시절 얘기랑 현재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했다. 같은 업종에 있다는 건 그런 거다. 일로만 따지면 내 직장은 아주 행복한 편이다. 일 얘기 중간중간에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앞으로의 계획들을 얘기했다. 친구란 그런 것이다. 친구네 집 앞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헤어졌다. 친구는 나를 무척 반겨줬다. 아이 돌보느라 또래 친구들을 따로 만나는 일이 오랜만이라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나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참 반가웠다. 위로가 됐다. 춘천까지 갔다는 것과 술을 안마셨다는 걸 빼면, 평범하게 친구를 만난 하루였다. 강릉에서 친구랑 술 마셨으면 진짜 평범한 하루였나? 보편적인 거, 평균적인 거, 평범한 걸 생각해 본다. 이런 생각한지 오래됐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보헤미안 경포점에서 모닝세트에 커피 추가해서 마셨다. 올 여름 이후로만 모닝세트 먹으러 다섯 번은 간 것 같네. - 아내는 자고 있다. - 강문해변에 생겼다는 머슬비치에 가봤다. 주차할 곳이 호텔 주차장 밖에 없어서 내가 일부러 찾아가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고 지역주민들이 산책하다가 운동하기는 좋을 것 같았다. 턱걸이 몇 개 하고 집 근처까지 와서 오랜만에 농구를 했다. 오랜만에 해서 그런가? 자유투도 삼점슛도 잘들어 가서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 삼점슛을 클린으로 넣고 집에 와서 씻고 세탁기 돌리고 아내가 집을 나가자마자 라면 끓여 먹고 지금까지 대충 10시간 누워 있었다. 배캠 듣다가 잠들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와서 나에게 어떤 부탁을 했다. - 나한테 또 부탁을 했네. - 잠이 안 깼으면 저녁 안 먹고 그냥 잘까도 싶었는데, 잠이 깨는 바람에 피자 시켜 먹었다. 나는 피자를 좋아한다. 치즈의 짠 맛이 좋다. 보통은 동네에서 가장 싼 피자집에서 시켜 먹는데, 얼마전에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피자헛 피자를 시켰다. 맛이 없다. 다음엔 할인도 거의 없고 세트메뉴 같은 거 없는 파파존스에서 시키자. 배달 시키면서 싸거나 할인 많이 해주는 곳을 찾는 게 보편적이긴 하다. - 이러면서 보편적인 걸 또 생각해 본다. - 최근 네 달 사이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페리카나 양념치킨도 할인 적용으로 포장 2만원 이하일 때만 두 번 사 먹었다. 이렇게 하루가 갔네. 내일 출근하면 또 바로 퇴사하고 싶을까? 궁금하네.
친구의 삶은 그 나름대로 보편적인 삶이고 내 삶도 내 나름대로 보편적인 삶이다. 그 뿐이다. 그러니 세상에 화내지 말자 사람에게 화내지 말자.
아버지랑 두 번 통화했는데, 아버지는 오늘 무탈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굿.
아침에 커피 마실 때, 교회가기 전에 모닝세트 먹으러 온 네 명의 아주머니가 돌아가면서 며느리 욕을 하길래, 엄마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해봤다. 엄마한테 아주머니들 얘기를 했더니 엄마가 웃었다. 일단 엄마는 며느리 욕할 친구가 없고 - 이모들이 있나? - 며느리 욕을 할 만큼 며느리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암튼 엄마가 웃어서 좋았다. 엄마가 웃었던 그 순간을 기억해 둔다.
BLOG ARTICLE 그때그때 | 622 ARTICLE FOUND
- 2023.09.03 20230903 - 친구 만나고 와서 생각
- 2023.08.30 20230830 - 8월이 다 간 아버지 생각과 짜증
- 2023.08.27 20230827 - 서울 다녀온 생각
- 2023.08.15 20230815 - 광복절에 무기력한 생각
- 2023.07.31 20230731- 여름과 에어컨과 아버지 생각
- 2023.07.26 20230726 - 멀리서 생각만 해보는 아버지 생각
- 2023.07.20 20230720 - 잡생각
- 2023.07.12 20230712 - 기간제근로자 생각
- 2023.07.11 20230711 - 집 생각
- 2023.07.02 20230702 - 젊은이들 생각 1
- 2023.06.22 20230622 - 요즘 머릿속
- 2023.06.19 20230618- 주말에 아버지 만나고 돌아와서 생각
- 2023.06.13 20230613 - 거처를 얼른 옮겨야 하는 아버지 생각
- 2023.06.09 20230609 - 결혼 기념일 생각
- 2023.06.01 20230601 - 몸이 아픈 나이 그리고 아버지
- 2023.05.25 20230525 - 옛날 생각?
- 2023.05.25 2014년 11월
- 2023.05.25 2014년 9월, 10월
- 2023.05.25 2014년 7월, 8월
- 2023.05.25 2014년 6월
- 2023.05.25 2014년 5월
- 2023.05.25 2014년 4월
- 2023.05.25 2014년 3월
- 2023.05.25 2014년 2월
- 2023.05.25 2014년 1월
- 2023.05.25 2013년 12월
- 2023.05.25 2013년 11월
- 2023.05.25 2013년 10월
- 2023.05.25 2013년 9월
- 2023.05.25 2013년 8월
아버지 집 벽에 5월까지는 커다란 달력이 걸려 있었다. 날짜, 요일 개념은 없지만 아버지가 그 달력에 동그라미도 치고 '병원' 같은 단어를 적어 두기도 했고 내가 손가락으로 날짜를 가리키면서 오늘은 무슨 요일이라고 하면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6월에 아버지한테 갔을 때, 달력이 없어졌다. 날짜 가는 줄 모르고 한 장씩 찢다가 끝까지 넘어가 버린 것이리라. 새 달력 구해 드려야지 생각은 몇 번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없어도 그만인 물건이니 간절하게 생각하지 않는건가? 내 일 아니니까, 란 생각인가?
일요일 오후에 아버지랑 1시간 통화했다. 이렇게 길게 통화한 경우는 처음이다. 날짜랑 요일, 학교 가는 날, 지금은 밤인지 낮잊지 계속 헷갈려 하길래 계속 알려주면서 얘기 들어줬다. 마지막엔 내 목소리가 살짝 높아지기도 했지만 통화는 온화하게 잘 끝났다. 아버지 얘기를 잘 들어보니까 점심 때 즈음 조기축구 멤버들이 밥 먹는 식당에 혼자 찾아가서 그들과 함께 밥을 먹었고 밥을 먹으면서 그들이 따라주는 술을 마셨고 집에 돌아와서 술기운에 낮잠을 잤는데, 긴 낮잠을 자는 바람에 머릿속에 깊은 혼란이 온 것 같다. 외로워서 그런거다.
지금 다니는 데이케어센터가 참 좋긴한데,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곳으로 옮겨야 하나, 생각했다.
내일이 아버지 병원 가는 날이다. 위암 수술 경과를 보게 된다. 벌써 수술하고 6개월이 흘렀다. 올해 초에 정말 힘들었지. 아버지 건강 상태로 봐서 결과는 좋을 것 같다. 오늘 내일 바빠서 동생에게 부탁했는데, 동생이 알겠다고 한 것을 엄마가 본인이 맡겠다고 했고, 동생도 엄마한테는 회사일이 바쁘다고 한 모양이다. 뭔가 기분이 안 좋다. 지난주 토요일에 아버지가 정확한 말로 '준석이 본지 오래됐어.' 했다. 동생은 애도 둘이고 삶이란 건 누구나 다 바쁘지. 그래도 기분이 안 좋다. 서울로 직장 옮기는 걸 계속 추진해야겠다.
월요일에 출근하자 마자 회사 그만둘까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수요일이다. 다들 그러고 사는거겠지. 근데, 진짜 그만두고 싶다. 다 때려치우고 싶다. 산에 들어가고 싶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가만히 있고 싶다. 그게 직장인들의 주말인건가? 곧 마흔 다섯살이 되는데, 이제야 나도 보통 직장인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건가? 모르겠다.
어제를 포함해서 최근에 아내한테 두 번 화냈다. 아내가 부탁이란 말로 자꾸 본인 일 심부름을 나한테 시킨다. 어제는 울화가 치밀어서 밤 10시에 와퍼 두 개 시켜 먹었다. 체할뻔했다. 울화가 치미는 사랑이란 말을 가끔 하지만. 나를 폭식으로 몰고가지 마라. 그러지 마라. 그러지 마라. 날 그냥 내버려둬라. 복권 사라는 얘기 말고 내가 너에게 하는 유일한 부탁이다.
금요일에 기차 타고 서울 갔다가 새차 뽑은 거 찾아서 토요일 밤에 내려왔다. 친구들도 만나고 아버지도 만나고 엄마도 잠깐 만나는 일정이었다.
데이케어 센터 선생님들 만나서 아버지 관련 얘기를 주고 받았다. 아버지는 일단 건강하다. 내가 보기에도 센터 선생님들이 보기에도 현재 아버지의 치매는 정체기다. 이 정체기가 쭉 오래 갔으면 좋겠다고 간호부장 선생님이 말했다. 내 마음은 잘 모르겠다. 센터의 간호부장 선생님이 아버지가 처음 센터에 갔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많은 신경을 써 준다. 어떤 결이 맞는거겠지. 항상 고맙습니다.
아버지랑 순댓국 먹는데, 아버지가 연신 깍두기를 집어 먹으면서 이런거 먹은지가 언젠지 모르겠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데이케어센터 식단표를 보니 배추김치가 80프로 열무김치가 20프로다. 깍두기를 오랜만에 먹은 게 맞다. 아버지가 영 정신줄을 놓은 건 아니라 안심인가? 잘 모르겠다.
사물의 이름을 잊은 것을 시작으로 시작된 아버지의 치매 증상은 최근에 사람 이름도 잊는 것으로 번졌다. 밥 먹으면서 아버지한테 몇 가지 이름을 확인했다. 내 이름, 동생 이름, 엄마 이름은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이름은 다 잊었다. 혹시나 싶어서 동생 큰 아이 이름을 물어봤는데, 어호연이란 이름을 잊지 않았다. 아버지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외웠을 이름이다. 아버지 인생에서 손주가 태어난 것이 굉장히 큰 사건이었구나, 싶었다. Fucking blood. 혈육…..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엄마한테 잠깐 들렀다. 막내 이모 생일이라 함께 밥 먹고 돌아온 둘째 이모랑 이종사촌 동생, 셋째 이모랑 이모부를 만났다. 잠깐 만났으니까 잠깐 대화했고 그 대화가 무탈하게 흘러갔고 약간의 농담과 걱정과 인간에 대한 존중이 섞여 있었다. 운전해서 강릉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떤 만족감이 있었다. 인간은 서로에 대한 존중 같은 것에서 만족감을 얻는다. 그 존중의 방법이 커뮤니케이션이다.
금요일 밤에 남현이 만났을 때, 예전에 남현이에 대해서 쓴 일기를 보여줬다. - 나도 그런 걸 쓴 줄 몰랐다가 최근에 알게 됐다. - 투박하게 쓴 글인데, 남현이가 좋아했다. 내가 친구에 대한 글을 쓴 게 나에게는 우정의 증명 같은 거고 친구가 그 글을 잃고 좋아한 게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만족감 같은 거다. 남현이가 지금 만나는 애인 잘 만난거 같다고 얘기했다. 남현이는 내가 빈말 잘 안 하는 걸 아니까, 본인의 연애가 존중받는 걸 느꼈을거라고 생각한다. 선비처럼 살 수는 없지만 욕보다는 좋은 말을 많이 해야지 생각했다.
영일군이 새차 사는 거 전적으로 도와줬다. 영일군은 직업상 자동차랑 관련된 일로 친구들 도와주는 거 좋아하긴 하지만 일정 때문에 술 한잔 못 사주고 내려와서 미안하네. 강릉으로 출발하기 전에 고맙다고 문자 보냈는데, 별 말씀을 답장이 왔고 담에 내가 한 잔 사기로 했다. 영일이가 운동 얘기 자동차 얘기 어린이 얘기하면 나는 맞장구 쳐주면서 들어주는데, 이런 것도 존중의 방법이다. 일단은 워낙 친구니까 뭔 얘기든 다 들어주겠지만.
31일이 아버지 위암 수술 6개월 경과 건강 검진이다. 월말에 회사에 좀 바쁜일이 있긴한데, 방법을 찾아서 30일 밤에는 올라가 봐야겠지. Fucking blood. 아버지, 금방 또 봐요.
광복절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도는 짤 중에 10대에 독립운동하다가 붙잡힌 조상님들 흑백 사진이 있다. 일본애들이 촬영한 범죄자 머그샷 모음이다. 다들 눈빛이 총명하고 조선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하고 있다. 나라 잃은 빡침을 겪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눈빛이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오늘 제가 삽니다.
집, 회사, 운동 또는 술의 반복으로 무력하게 보내고 있다. 앞으로도 쭉 이럴까봐 두렵다. 원인은 미상인데, 미상이 아니다.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주변일들 때문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이다.
올들어 k리그 하이라이트를 유튜브에서 보기 시작했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뛰던 시절 이후로 참 오랜만에 - 참 오래도 살았다. - 축구에 관심이 생겨서 후반기 들어 강릉종합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쓰는 FC강원 홈경기를 세 게임 봤다. 아는 형이랑 한 번, 아내랑 한 번, - 수원 삼성 응원단 짱 - 친구랑 한 번 봤다. 이번 주말 경기도 표는 사 놨는데, 누구랑 보게될지 모르겠다.
FC 강원은 재작년에 2부로 떨어질 뻔 했는데, 최용수가 감독으로 와서 극적으로 팀을 1부에 잔류 시켰고, 작년에는 안정적으로 1부리그에 남았다. 올해는 남은 게임 잘 치러도 1부 12팀 중에 10위다. 2부로 갈 가능성도 있는 10위까지는 무조건 확정인 만큼 못했다. 10위나 11위를 해야 1부리그 잔류를 두고 벌이는 데쓰매치라도 할 수 있다. 대표이사가 김병지로 바뀌고 시즌 중에 감독이 윤정환으로 바뀌면서 어떤 팬들에게는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하면 어떻게 팀이 맛탱이가 가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그 내막은 알기가 어렵다. - 정치란 비밀스러운 부분이 90프로니까 - 감독도 코치도 선수도 직업이 축구인 사람들인데, 얼마나 이기고 싶겠나. 그렇지만 상대방도 이기고 싶다는 것이 인간 세계의 생리와 닮았다. 직업의 영역에 즐기면서 같은 건 없다. 그래서 영화 머니볼이 명작이다. 윤정환 감독은 어느날의 인터뷰에서 선수들의 절박함이 없다는 얘기를 했고 강원은 그 후에도 몇 게임을 비기거나 지기만 하다가 지난 주말에 현재 1위 팀을 상대로 이겼다.
포메이션, 선수 교체 등 감독의 작전이 잘 맞아 떨어졌고 상대팀은 요즘 잘 안풀리는 중이었고 선수들의 승리에 대한 절박함도 있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주말 경기는 운전에 자신있는 사람이 대형면허 따듯 순조로웠다. 강원 골수팬은 아니지만 지금 강원도에 살고 있고 상대팀보다 약팀이니까 강원이 이기기를 바랐다. 첫 골, 두 번째 골이 들어갈 때 소리를 질렀다. 쌓여있던 어떤 것이 약간은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감독도 선수들도 팬들도 다 기뻤다. 이긴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나는 누구와 경쟁하나? 나는 어떤 목표를 향하고 있나? 내게는 원하는 목표를 위해 성실함을 발휘해서 성취한 경험이 있나? 지금 기분엔 없는 것 같다.
사람이 늙는 시기가 있다고 하는데, 요즘 내가 그런것 같다.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기후 파괴가 덮치지 않는 곳이 없고 일단 피해는 가난한 사람들부터 받는다. 아내가 경차 타고 싶다고 해서 경차 새차로 계약했다. 집 주인이 터무니 없는 가격에 내 놓은 집은 아무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 회사에선 직원들과도 기간제 선생님들과도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다. 나랑 같은 직종에 있던 형님들 둘이 최근에 죽었다. 안면도에서 근무하는 형은 근무기간 20년을 채우자 마자 명퇴를 결정했다. 아내 동료는 우리보다 10살 어린데, 암진단을 받았다. 아버지는 한결같이 엉망이고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마음쓰는 일에 점점 지쳐간다.
아내는 책이라도 읽으라고 하지만 술을 먹는게 낫다. 그런데 최근에 술을 좀 줄였다. 그래서 무력한가? 그건 아니다. 퇴근하고 운동할 때는 기분이 좋은데, 운동 마치면 곧바로 기분이 다시 다운된다. 축구 경기도 경기가 끝난 날에는 흥분이 남아 있는데, 다음날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술도 마실 때만 기분 좋은 거랑 비슷하다.
무력감이야 평생을 따라다니고 있는 것이고 이러다가 괜찮아지곤 하는데, 이번에는 괜찮아 질 것 같지가 않네. 잼버리 케이팝콘서트가 끝난 상암 월드컵 경기장 잔디 같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괜찮아지면 괜찮아지는데로 아니면 아닌대로 살아보기로 한다. 욕망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을 생각한다.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는 것도. - 운동화를 사야하고 머리를 잘라야 하고 차에 기름을 넣어야 하고 밥도 먹고 살아야 해서 너무 오랜만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
주말에 아버지한테 갈까하다가 오늘 축구표를 예매했다. 아버지한테 별로 미안하지가 않네. 다음주에 보면 되니까 그런가?
내 마음 고요하고 어지럽다.
토요일에 서울 가서 아버지 집에 들렀다가 에어컨 틀어놓고(7시간 후 꺼짐) 나와서 친구 만났다. 친구 만나던 중에 데이케어센터에서 돌아온 아버지에게 전화와서 '에어컨 건드리지 마시고 내일 아침에 만날거다' 라고 했다. 아버지가 아이처럼 좋아했다. 아버지가 날 만나는 일에 아이처럼 좋아하는 반응을 보일 때, 내 마음에는 커다란 부담과 그와 같은 크기의 안심이 함께 자리한다. 둘 다 무겁다. 일요일 아침에 아버지를 만났다. 에어컨 리모콘에 건전지가 사라졌다. AAA건전지가 들어가는 리모콘인데, AA건전지가 방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버지 옷장을 찾아보니 아버지가 리모콘에서 빼 놓은 AAA건전지가 있었다. 토요일 오후에 아버지는 혼자 에어컨 리모콘을 만지작 거리다가 뭔가 잘 안되서 건전지를 빼고 새 건전지를 사서 끼워보려는 시도까지는 했다, 는 걸 알 수 있다.
아버지가 배고프다 해서 오전 10시에 순댓국 먹었다. 아버지가 맛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한 그릇 다 먹지는 못했다. 위암 수술의 영향인데, 많이 먹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뚝배기에서 고기 꺼내서 간장 소스에 찍어드렸더니 맛있다고 하면서 잘 드셨다. 아버지는 소스에서 약간 단맛이 나는 것도 얘기했다. 아버지랑 밥 먹는 건 이 정도면 만족한다. 은행에 가서 돈 찾아서 지갑에 채워드렸다. 지갑에 돈이 없으면 불안한 어떤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카드 쓰는 것보다 현금 쓰는게 익숙하고 카드 쓰다가 카드 잃어버리는 것 보다 현금 쓰는게 나은 것 같다. 슈퍼에 가서 카스타드 케잌이랑 과자 두 가지 골랐다. 과자 중에 '사브레'는 '단거...'라고 하면서 아버지가 골랐다.
에어컨 9시간 후에 꺼지도록 설정하고 아버지 집을 나왔다. 3시 기차를 탔다. 기차 타기전에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에어컨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는 알았다고 했다. 리모콘을 옷장에 넣어뒀지만 아버지는 금방 찾아낼거다. 아버지가 집에 도착했냐고 하길래, 거의 다 왔다고 했다. 앞으로 두 시간을 더 가야하지만 청량리역까지 왔으니 거의 다 온거다. 어제 저녁이랑 오늘 아침에 아버지랑 통화했다. 아버지는 어제 서울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 걸 알고 있었다. 에어컨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했는데, 진짜 안 건드렸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에어컨에 관해서 물어보니까 자꾸 핸드폰이 주머니에 있다는 얘기를 했다. - 손에 들고 나랑 통화하고 있는데. -
아버지는 에어컨을 정말 좋아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전기 콘센트에 플러그 꼽는 법도 잊고 리모콘을 다룰 줄도 몰라서 혼자서는 에어컨을 틀지 못한다. 누군가는 딱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 아버지 딱한가? 우리 아버지 딱하네. 사상 최고의 더위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더워서 죽는 일을 생각한다. 그게 우리 아버지다. 데이케어센터 선생님들이랑 한 때는 같이 살았던 가족들이 있어서 지독하게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 혼자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8월 말에는 병원도 한 번 가야하니 8월에는 아버지를 두 번은 만나야겠다.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그래야겠다.
이달엔 타이밍이 잘 안 맞아서 아버지를 못 만났다. 이번주 토요일에 올라갔다가 일요일에 내려오는 기차표를 끊어놨다. 아버지 치매 컨디션이 안정적인 것 같아서 하루 세 번 이상 하던 전화통화를 두 번으로 줄였다. 내가 먼저 전화할 때랑 아버지가 먼저 전화할 때가 있는데, 아버지가 먼저 전화할 때가 아버지 컨디션이 더 좋다고 봐야겠지. 최근에는 내가 먼저 전화할 때가 많은데,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엄마는 2주 전에 아버지한테 다녀왔다. 당신도 아버지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는 얘기를 나에게 했다. 걱정 좀 덜 했으면 좋겠다고 내가 답했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신경 쓰는 건 같이 살았던 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이모가 자꾸 엄마에게 아버지 돌보란 얘기를 하다고 한다.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한 엄마가 아버지를 돌볼 일은 없을 거니 엄마가 그런 얘기 좀 안 들었으면 좋겠다. 또 언젠가는, 동생이 엄마가.... 어쩌구 저쩌구 하길래 아버지 일에 엄마를 자꾸 연루시키려고 하지 말라고 - 문자로 보냈으니 동생이 내 짜증을 알았을 것 같진 않다. - 했더니 알았다고 했다. 동생은 나에게 섭섭했을까?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어젯밤에 아버지한테 전화가 안 오길래 내가 먼저 전화했더니 통화중이었다. 엄마랑 통화중인가 싶어 5분 후에 다시 전화했다. 둘째 이모가 전화를 받았다. 둘째 이모가 종종 아버지 집을 둘러본다. 아버지 먹을 것을 챙겨준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모가 보일러 전원을 꺼놔서 뜨거운 물이 안나온 관계로 그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몸을 씻지 않았다는 것과 데이케어센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막걸리를 한 병 사왔다고 알려줬다. 엄마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너무 속상해 했다고 했다. 나는 '이미 끝났는데, 어쩌겠어요.' 라고 했고 이모도 놔둬야지 어쩌겠냐고 했다. 이모랑 전화 끊고 엄마한테 전화할까 하다가 같이 울 것 같아서 전화하지 않았다. 엄마가 엄청 잔소리를 했을테니 아버지가 막거리를 먹진 않았을거다.
오늘 아침에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막걸리 얘기랑 샤워 얘기를 했다. 아버지는 약간 역정을 내면서 잘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 말이 끝나자 마자 '저는 아버지 걱정 안해요. 엄마가 걱정하지.' 했다. 아버지가 이모랑 엄마를 싸잡아서 '여자들이.....' 어쩌구 저쩌구 계속 횡설수설하길래 정확하게 알아들을 때까지 '저는 아버지 걱정 안해요'라고 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잔소리를 한다. 나는 아버지에게 잔소리는 안하고 잘하고 있다고만 한다. 엄마는 아버지를 걱정하고 나는 아버지를 걱정하진 않는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
무심결에 나온말에 본심이 있다. 나에게 아버지는 이미 끝난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나? 인류애도 정도 아니다. 연민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선가? 나의 무엇을 위해서? 생각 좀 해봐야겠다.
우기 끝나고 이제 여름 시작이지만 아버지의 여름도 나의 여름도 이미 끝났다.
집 주인이 집을 1억 3천 5백만원에 내놨다. 5백은 에누리고 정말로 1억 3천에 팔아 볼 생각인가 보다. 이사비용 줄테니 집 팔리면 나가줄 수 있겠냐고 해서 숨도 안 쉬고(홧김에) 알았다고 했다. 1억 3천이란 숫자를 들은 순간 이미 지금 집에 정이 떨어졌다. 이사비용을 준다면 이사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집이 안 팔리면 좋겠다. 가장 중요한 건 나중에 전세 보증금 못 돌려받는 일 없어야 한다.
지난 주말에 아버님과 20분 정도 통화했는데 19분 동안 고등학교 2학년 다니는 손주(아내 오빠 아이) 자랑을 하셨다. 그냥 장단 맞춰 들어드렸다. 아버님 인생의 유일한 낙이 손주가 공부 잘하는 거다. 조기졸업 조건을 갖췄다니 본인 계획대로 대학도 조기입학하길 바란다. 다만 아버님이 너무 손주 자랑을 하니까 어떤 때는 내 안의 악마심이 발동해서 이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가면 아버님은 어떤 반응일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엄마가 막내 이모 도움을 받아서 내년 2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ELS 낙인(원금 손실 됐단 얘기임) 발생 문자를 카톡으로 전달해줬다. 문자를 전달하는 법도 모르는 엄마가 은행직원 말 듣고 ELS 가입하는 게 자본주의다. 어차피 원금 손실은 피할 수 없고 중국 경기가 살아날 가망도 보이진 않지만 홍콩 항생지수가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것 같진 않으니 그냥 만기까지 갖고 있으라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엄마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자본주의다. 잠 안자고 술 팔아서 번 돈에 손실이 생겨서 잠을 잘 못잔다는 우리 엄마도 자본주의인가? 자본주의다.
신용카드를 아직 안 없앴는데, 8월부터는 서울 갈 때랑 기름 넣을 때만 써야겠다. 신용카드를 써보니까 체크카드만 쓸 때보다 돈을 더 쓰게된다. 이달에 쓴 휴대전화 요금을 다음달 말에 내는 것 처럼 애초에 빚을 깔고 시작하는 개념이라 그렇다. 이게 자본주의다. 자꾸 돈 생각을 하는 게 자본주의다.
우리나라에 폭우가 내리는 사이에 미국 남부랑 남유럽은 또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남유럽 여름 고온 뉴스를 처음 접한 게 5년 이상 된 것 같다. 여름마다 사상 최고 기온을 갱신하는 상황이다. 남유럽이면 대략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포루투갈, 프랑스 남부 정도인데, 그곳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포루투갈 리스본은 외국사람들이 집을 많이 사서 월세 폭등으로 한 달 월급 받아서 월세도 못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리스본 외곽에 얼기설기 지어진 판자촌을 TV에서 봤다. '생방송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을 매주 본다. 전쟁과 기후 파괴. 매주 세계가 끝장나는 현장을 방에 누워서 라이브로 보고 있다. 이게 맞나?
더워서 죽는 사람들은 가난해서 죽는 거다. 미술하는 젊은 친구 한 명이 가난해서 죽는 상상을 자주 한다고 했었는데, 나는 내가 가난해서 죽을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암에 걸렸는데, 수술비가 없어서 죽는 건 가난해서 죽는 건 아니란 게 내 생각이다. 가난해서 죽는 것보다 비참한 죽음이 있을까? 은석이 삼촌은 고시원에서 고독사 했는데, 원인이 알콜이었겠지만 결국은 가난해서 죽은 거다. IMF 때 사업 망해본 사람들은 지금도 '다 IMF 때문이다.' 라고 한다. 가난해서 죽는 게 자본주의는 아닌데, 자본주의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다.
얼굴과 이름만 서로 아는 사이인 어떤 형이 췌장암에 걸렸고 의사가 손을 쓸 수 없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은 게 1주일 전인데, 오늘 그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형은 1971년 생이다. 일론 머스크랑 동갑이다. 한국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태어난 해에 태어났고 또래들 평균보다 훨씬 일찍 죽었다. 전세계 인구가 70억이 넘는다. 사람이 많은 만큼 죽음도 흔하다. 나도 언제 갑자기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나 보다는 나이가 위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내 또래들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자주 들어서 그런가보다.
견실하고 차분하게 절제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과 막 살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시절이다. 내 마음속에는 항상 막 살고 싶은 충동이 있다. 어떤 경우라도 <물의를 일으키진 말자>고 거의 매일 생각한다.
물의를 일으키지 말자.
지금 직장 다니기 전까지 정규직 일한 게 딱 한 번이고 최저임금 정규직을 6개월 정도 했다. 비정규직 지겹네, 생각할 무렵에 아다리가 잘 맞아서 지금 직장에 취직했다. 아다리, 시험 한 번 면접 한 번에서의.
지금 직장에 기간제근로자가 있다. 15명 뽑았으나 현재는 10명이다. 짜증나서 그만두고 몸 안파서 그만두고 이러저런 이유로 중간에 그만두시는 분들이 있다. 기간제근로자란 말은 일용직도 통칭하는 말이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기간제 선생님들이 그러하다.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일한 날짜만큼, 일의 종류에 따라 정해진 액수만큼 정산된 돈을 매달 급여로 받는다. 일 년에 10개월 일하고 두 달 정도 실업급여 받고 다음해 3월에 다시 돌아오시는 분들이 많다. 정규직 채용을 안하니 실업급여까지 포함한 게 우리 기간제 선생님들 직업이다. 2015년이랑 16년 5월까지는 나도 이분들과 같은 처지였다. 일의 종류에 따라 일당에 차등이 있지만 거의 최저임금 받는다고 보면 된다.
실업급여를 날로 먹는 사람들이 정치권에서 이슈화 됐다. 진짜 날로 먹는 사람들도 있다. 최대 수급 기간 8개월에 해당되는 만큼만 나라에서 돈 주는 일자리 이것저것 하다가 계약 만료 후엔 실업급여를 받는 경우다. 나는 이것도 날로 먹는다기 보다는 삶의 한 방식으로 보인다. 실업급여가 최저임금보다 이익인 것도 맞는 말이다. 기름값, 밥값, 국민연금 이런거 다 제하면 최저임금 직장 다니는 것 보다 집에서 실업급여 받는 게 훨씬 금전 이익이다. 우리 기간제 선생님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매년 사람 뽑을 때마다 오시겠지. 채종원 노동이 최저임금 받으며 나라에서 월급 받는 기간제 일자리 중에 좀 빡센 편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성실하신 분들이다.
산이서 하는 노가다란 게 보통 오후 4시 조금 넘으면 끝나게 마련이고 일의 종류 따라 다르지만 30분 일하면 30분 쉬고, 여름에 더우면 낮에는 많이 쉬고, 비가 오면 비 맞고 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채종원은 나무 심고, 약 치고, 풀 베고, 열매 잘 따서 종자 잘 생산하는 게 핵심이다. 시기사업들이 늦어지지 않고 잘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회사에 나랑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지소장이다. 비가 오면 비옷을 입고 일하고 - 비옷을 사줬으니 - 17시 30분까지 현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식이다. 지소장은 노가다를 안 해봐서 기간제 선생님들이 컨베이어 벨트위의 노동자들처럼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에 관리 직원이 있는데도 기간제 선생님들이 5시 30분까지 현장에 있는지 감시하러 다니니 기간제 선생님들이 지쳤다. 이 양반이 비 오는 날은 외부 작업은 안하고 싶다고 한 선생님들에게 비 올 것 같으면 미리 알려줄테니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 - 비 핑계로 한 달에 이틀만 나오시지 말라고 해도 월 수입이 15만원 적어진다. - 그 첫 적용이 오늘이다. 근데 비가 안오네. 지소장은 자기가 날씨의 신이라도 되는 줄 아나보다.
기간제 선생님들 중에 한 분이 비가 와서 쉬면 수입이 적어지니 토요일이라도 나오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기간이 정해진 계약인데, 비가 온다고 출근을 안 하는게 말이되냐고 주 40시간이라 근무시간이 명시되어 있는 근로계약서을 들고 와서 따지는 것도 아니고. 조건을 수용할테니 토요일에 나와서 휴일근무 수당을 받고 싶다? 화가났다. 이 선생님은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면사무소 산업 계장까지 했던 분인데, 투쟁이 아니라 물러서서 눈치 봄을 선택했다. 바보 같다. 기간제 선생님들을 자기 아래로 보는 지소장도 짜증나고 그 눈치만 보는 기간제 선생님들도 짜증난다.
아내 말마따나 화를 내면 나만 손해고 내가 화낸다고 사람이 바뀌는 것도 아니니, 아내 말대로 가만히 있어야지. 나도 이렇게 한 발 물러난 건가. 이런식으로 물러나다가 공식명칭이 '오염수'인 후쿠시마 오염수가 전 세계 바다를 떠돌게 되는 건가. 이런 생각의 과정이 보편적인 체념인가?
지소장이 여름 정기 인사 때 민원이 많은 곳으로 전출 가기를 희망한다. 그곳에서 공무원이 왕이 아니란 것과 공짜밥은 없다는 걸 깨닫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인간 존중을 배우길 바란다. 그리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힘들다. 세상 어디에도 공짜밥은 없다.
-> 인사 발령이 나진 않았지만 비가 와도 출근하는 걸로 최종 결정됐다. 괜히 기간제 선생님들 이 달에 두 공수 까였다.
3월 초에 전세 기간 자동으로 2년 연장됐다. 당시에 집주인으로부터 계속 살 건지 전화를 받았고, 그러겠다고 했다. 엊그제 아내랑 같이 차에 있을 때 집주인한테 전화가 왔다. 집을 팔려고 하는데, 내가 이 집에 오래 살았으니 나랑 먼저 협상해 보고 싶다는 얘기였다. 내가 가격 제시하라고 했더니 나보고 먼저 제시하라고 해서 다음날 다시 통화하기로 했다. 내가 사는 연립은 우리 집 주인이 2017년에 구입한 이후로 거래가 없기 때문에 시세란 것이 없다.
경기도 모처에 사는 다주택 임대 사업자인 주인이 5천 만원에 사서 샤시 등 약간의 인테리어를 하고 5천 5백에 첫 번째 전세를 줬다가 2년 후에 전세 7천에 우리가 들어왔다. 강릉 집값이 쭉 오르던 시절엔 그렇지 않았지만 슬슬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우리집도 깡통 전세가 됐다고 생각한다. 말이 깡통 전세지 TV에서 나오는 전세 사기 등 부동산 관련 뉴스는 최소 2~3억 이상인 신축 빌라나 아파트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사는 집은 해당되지 않는다.
옥천연립, 1983년 준공, 12세대, 나랑 또래로 보이는 부부가 사는 한 집 빼고 입주자들 나이가 많음. 101호 아저씨의 어떤 얘기에서 추론해 보면 우리집 빼고는 다 자가인 듯. 우리집만 방이 두 개지만 아랫집들이 방으로 쓰는 자리 위쪽에 넓은 외부 공간이 있음. 구 시가지 중심지라 교통 등 편리한 점이 있으나 젊은이들 감각으로는 신도시 느낌 나는 택지 아파트에 사는 게 더 편하다고 느낄 듯.
집값이 6천이나 6천 5백 정도면 구입을 해서 인테리어를 완전히 새롭게 해서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강릉에서 평균연령이 가장 높은 동네긴 하지만 남대천, 중앙시장, 홈플러스가 다 가깝고 5년 째 살면서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 공인중개사 자격증 있는 친구, 아는 형에게 소개받은 공인중개사와 상담을 했다.
'제가 가격 제시하는 건 좀 그러니 사장님이 먼저 원하는 가격을 알려달라' 했더니 1억 3천을 불렀다. '전 못 사겠습니다. 집 내 놓으시죠.' 라고 했다. 집주인이 알았다고 했다.
집 구입 문제가 그렇게 끝났다. 주인이 집을 싸게 내 놓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던 내 마음속의 해프닝이다.
집을 살 일은 한 동안 없을 것이다. 어제 집주인과의 대화 내용처럼 내가 생각하는 집 가격과 세상이 생각하는 집 가격의 갭이 너무 크다. 사는 사람은 싸게 파는 쪽은 비싸게다. 본인 생각보다 비싸다고 생각한 집이더라도 일단 집을 구입하면 그 집을 팔 때는 비싸게 팔려는 쪽이 된다. 이게 보편적인 욕망인가?
세상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그냥 즐겁게 살면 된다. 빚을 내가면서 펑펑 돈 쓰면서 살자는 건 아니고 저축은 많이 못하더라도 약간의 돈지랄 - 명품 가방을 사자는 건 아니고 대출 이자가 없이 먹고 싶은 거 사 먹는 삶 - 을 하면서 재밌게 사는 게 집 사는 거 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외제차를 많이 사는 거겠지. - 차 할부 못값는 사람들이 많다는 뉴스를 얼마 전에 보긴 했다. - 집은 부모님이 안해주면 영원히 못 사니까 자동차라도 좋은 걸 타고 싶은 마음. 나는 그 마음을 잘 알겠다.
한국의 고령화 추세로 봐서는 주택 공급이 수요를 압도적으로 앞지르는 때가 언젠가 오긴 할 것 같다. 집은 그때가 오면 사는 걸로 하자. 물론 그 전에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인류가 반쯤 멸망할 수도 있다. 주택 청약 통장 없애야겠다. 혹시 대출로 집을 사게 될까봐 신용등급 올리려고 작년에 살면서 처음만든 신용카드도 없애야겠다.
보편적인 욕망을 너무 많이 생각하다가 세상에 놀아난 기분이다. 아니. 한 번 쯤, 세상에 놀아나고 싶었다.
편하게 살자. 편하게.
그 가격엔 안 팔릴 것 같지만 혹시 집이 팔리더라도 25년 3월까지인 계약기간 꽉 채우고 나가고 싶다. 이사 다니기 번거롭다.
7월 2일이다. 일년의 반이 지났고 하지도 열흘 전에 지나갔다. 해도 인생도 기울어져 떨어질 일만 남았다.
지난주 화요일에 서초구청 다니는 친구를 만났다. 정선에서 두 달 같이 근무했다. 서울시랑 산림청에 동시에 합격해서 서울시로 갔다. 서울시로 간다고 회사 그만두던 날 비가 왔다. 친구는 사무실 근처 주차장에서 우산을 들고 빗물처럼 엉엉 울었다. 나는 울컥했지만 울지는 않았고, 안아주면서 씩씩하게 살라고 했다. 마이쩡이란 별명을 내가 지어줬다. 정씨고 나랑 친해서 붙인 별명이다. 친구는 나보다 10살 정도 어리다. 어린 친구 알아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헤어지고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는데, 친구가 강릉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4년 만에 만났다. 반가웠다. 친구는 대출받아 코인하다가 75프로 손해본 상태고 아이는 없지만 이혼 경력이 있는 여섯살 연상 애인이 있다. 어머니가 아시면 쓰러질 일이 두 가지나 있으니 삶이 다이나믹 하구나. 그게 젊음이다.
어제는 태백에 가서 J를 만났다. J는 마이쩡과 또래다. 내 일기를 좋아해주니 나에게는 정말 고맙고 귀한 친구다. 어떤 코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맞는다. 그러니 내 일기도 좋아하는 거겠지. 35번 국도를 타고 사무실을 지나 계속 직진만 하면 J의 집이다. 태백시 황지동. 보이지 않는 실이 서로의 정수리끼리 연결되어 있어서 강릉과 부산을 잇는 35번 국도처럼 구부러지는 일 없이 일직선으로 순탄한 이미지다. J는 한참 쉬다가 오랜만에 일을 시작했는데, 두 달 일해서 받은 월급으로 소곱창을 사주고 본인 집 지저분 하다고 모텔방도 잡아줬다. 나는 성격 자체가 마음속 얘기를 여기저기 떠드는 편이긴 하지만 마음이 맞는 J같은 친구에게는 나도 몰랐던 내 속내가 드러나는 얘기를 하게 될 때도 있어서 좋다. 둘 다 좋은 글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J를 부를 때 이름 끝에 씨를 붙이는데, 그것도 좋다.
아침 다섯 시 반에 잠이 깨서 담배를 피우려고 라이터를 찾다가 차키가 없어진 걸 알았다. - 이런 이번 차는 키가 하난데. - J에게 차키 없어졌다고 6시에 문자를 보냈는데, 6시 14분에 어제 먹은 곱창집에서 차키 찾았다고 연락이 왔다. 고마운 일이다. 둘 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태백역 앞에서 해장국 먹고 헤어졌다. 우리 둘은 올해 안에 두 번 이상은 얼굴을 보게 될거라 생각한다.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젊음의 특권은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니까 J가 좋은 글을 쓰기를 바란다.
젊은이들 얘기하니까 생각이 났는데, 체육관에서 운동할 때 젊은이들 열심히 운동하는 걸 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44살이면(만 나이 적용) 늙은 건 아닌데, 마음이 많이 늙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나? 초등학생들이 자기들끼리 떠들면서 편의점에서 라면 먹는 것만 봐도 마음 속에 생기가 돈다. 체육관 트레이너 중에 나이 어린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나한테 운동 꾸준히 오시네요, 하기에 술 마시는 날 빼고는 다 오려고 하는데 힘든 일(아버지)이 있어서 술 마시는 날이 많다,고 답했더니 주먹을 쥐고 머리에서 가슴쪽으로 내리면서 '운동으로 푸셔야죠.' 라고 했다. 그 일이 굉장히 큰 위로가 됐다. 엊그제 우연히 그 트레이너랑 담배 피우면서 잠깐 대화를 하게 되서 그때 그 말을 해준 게 위로가 많이 됐다고 알려줬다.
나보다 10년 정도 적게 산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거 좋은 거 같다.
아버지 거처 문제 - 내 직장을 서울로 옮기느냐, 아버지를 강릉으로 옮기느냐. 둘 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아내 자동차 - 아내가 장농면허를 접고 운전을 한다고 해서 차를 사야된다. 작은차를 사는 것까지는 결정됨. 나는 새차를 사면 좋겠는데, 중고차를 사고 싶다고 한다. 아내 뜻에 따를까? 내 뜻대로 할까? 아내뜻에 따르자.
사건사고 1 - 초등학교 앞에서 우회전하다가 아이를 친 운전사와 병원근처에서 우회전하다가 유명한 의사를 친 운전사를 생각한다. 죽은이의 가족들과 운전사의 가족들을 생각한다.
사건사고 2 - 강릉에서 노동자의 분신이 있었다. 나라꼴이 개꼴인데, 진짜 분노는 어디에 있나? 용산, 세월호, 이태원 사건을 거치면서 모든 사건이 생중계 되는 시대를 살면서 나랑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니면 모든 일을 뉴스보듯 남일 보듯 한다. 나만 해도 KBS에서 하는 <특파원보고 세계는 지금> 을 즐겨보는데, 보면서 세계의 운명을 걱정할 때도 있지만 그냥 남의 나라 일이거니 하면서 무심하게 볼 때가 훨씬 많다.
허리통증 - 4번과 5번 사이에 미세한 어긋남이 있다. 의사가 별것 아닌것처럼 얘기해서 좋다. 운동을 열심히 하자.
시든 식물 - 아내에게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식물처럼 가만히 있고 싶다고 했다. 식물을 사랑하는 아내가 - 나도 식물 사랑함 - 식물이 얼마나 치열한 줄 알아?, 하길래 '시든 식물' 처럼 이라고 하니 아내가 웃었다. 아내가 웃으니 기분이 좋았다. 각종 프로필을 시든 식물로 바꿀까 싶다. 아직까지는 마음속에 어떤 열정이 남아 있지만 내가 봐도 겉보기에 나는 아무런 열정없는 40대 남자다. 우리 아버지는 이미 시든 식물인가?
자유 - 어제 술 한 잔 먹고 집에 들어와서 아내랑 얘기하다가 섬에 살 때는 자유가 있었네, 라고 했는데. 정말 그랬던 것 같고 그게 10년 전 일이다.
피곤하다. 지난주에 몰아치는 일정이었다. 충주 출장이 두 번 있었고 두 번째 출장을 마치고는 강릉이 아니라 서울로 갔다. 금요일엔 친구들 만나고 토요일엔 아버지 만났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친구들은 어떻게든 살고 있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살아있으면 살아야 하는게 인생이라 그렇다.
아버지는 많이 야위었고 순댓국 한 그릇을 70%정도만 먹었다. 위 절제술의 영향이다. 영양제라도 드시게 해야 할까? 종합영양제를 사서 저희 아버지 좀 챙겨주세요, 하고 데이케어센터에 맡기면 아버지가 지금보다는 건강해 보일까? 나이탓도 있겠지만 건강한 70대 초반 아저씨들에 비해서 아버지는 그냥 보기에도 많이 쇠약해 보인다. 아프면 그렇다. 아버지는 코 밑에 수포가 잔뜩 생겼다가 가라앉는 중이었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니 젊었을 때부터 피곤하면 코 밑에 같은 증상이 있었다고 한다. 독감 후유증이거나 면역저하 같은 것이겠지. - 아버지 낫고 있는 중이니까 얼굴 그만 만지세요.
지금 같은 페이스로 아버지 몸이 약해지면 2~3년 후에는 요양병원에 가야할 판이다. 그때까지 직장을 서울로 옮겨서 아버지랑 같이 살까, 생각해봤다. 아버지가 뭘 잃어버리거나 어딘가 안 좋거나 할 때마다 둘째 이모한테 부탁할 순 없는일이니까, 아버지 거처를 강릉으로 옮기면 집 나온 아버지가 수시로 길을 잃어버리고 실종된 사람을 찾는 문자에 아버지 이름이 나올까 걱정되니까,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나는 아버지를 자주 찾아가지 않을 거니까 몇 년 정도 아버지랑 같이 사는 것도 괜찮단 생각이다. 그냥 생각뿐이다. 계획대로 되는 건 거의 없으니까.
엄마는 악몽을 자주 꿔서 머리맡에 칼을 두고 잘까 생각한다고 한다. 아마 그 원인은 은행직원 말만 듣고 홀랑 가입한 ETF가 반토막이 났기 때문이겠지. 엄마는 예전에도 머리맡에 칼을 두고 자서 두통이 사라진 적 있다고 한다. 걱정이지만 무속신앙 같은 것이라도 의지할 것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버지는 의지할 것이 없다.
- 아버지 저희 주말에 얼굴 볼거에요.
- ……..
- 아버지 제가 토요일에 갈거에요.
- ……..
- 아버지 저희 금방 만날거에요.
- 아이고 좋아라.
날 만난다고 하니까 아이처럼 아이고 좋아라 하는 아버지를, 본인 때문에 서울 올라오느라 내가 힘든걸 아는 아버지를, 그래도 아버진데 니가 해야지(목적어 없음) 라고 하는 아버지를………
직장(옮김)도 아버지(거처)도 돈(없음)도 다 어렵다. 이 세 가지가 연결돼 있다.
아침 6시 30분에 아버지한테 전화왔다. 어제 두 시 넘어서 잤는데. 새벽에 전화 오는 건 흔한일이다. 아버지는 엄마한테도 새벽에 전화를 한다. 엄마는 아버지한테 애 자는데, 왜 전화하냐고 나한테 전화하지 말라고 한다는데, 아버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잊는 사람이 됐고 나는 새벽 다섯시라도 아버지한테 전화가 오는 쪽이 마음이 놓인다. 아버지는 학교(데이케어센터) 가려고 집 앞 골목에 나와 있다고 했다. ‘아버지 아직 한 시간 반 남았어요. 미리 나가 계시지 마세요.‘ 30분 후에 또 전화가 왔다. 같은 말 반복, 30분 후에 또 전화가 왔다. 같은 말 반복. 또 전화오기 전에 내가 먼저 전화했다. ’미리 나가 계시지 마세요.‘ 반복. 일요일 낮에 통화했을 때, 아버지 목소리가 쉬고 있음을 느꼈다. 오늘 아침엔 목이 더 쉬었다. 얼마전에 아버지가 이불을 다 치웠다는 소식을 들었다. 날씨가 변덕인데 아무것도 안 덮고 주무신데다가 보일러도 전기장판도 활용할 줄 모르니 감기는 당연한 결과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일 때문에 충주 본사에 갔다가 오는 길에 데이케어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목이 많이 붓고 열이 나는 상황이니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다. 일감으로 둘째 이모를 떠올렸다. 엄마를 통해 이모한테 부탁해서 내일 아침에 이모랑 같이 병원에 가는 방안이다. 엄마가 아버지 병원 혼자 갈 수 있다고 해서 센터에 얘기해서 아버지를 일단 병원으로 보냈다. 그 병원 간호사랑 통화하기까지 아버지랑 몇 번의 통화가 오고 갔다. 그 병원은 여전히 불친절하다. - 먼저는 감기로 병원에 갔는데, 치매약을 처방해 줬다. - 거기도 거기의 사정이 있겠지. 나랑 통화한 간호사는 자식 새끼들은 뭐한다고 치매 노인을 혼자 병원에 보내나, 같은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아버지는 병원비를 내지 않고 처방전을 받지 않았고 병원에 휴대전화를 두고 나왔다. 결국 둘째 이모가 현장에 투입됐다. 가까이 살아서 다행이긴 한데, 이모가 일일이 챙겨줄수는 없다. 내가 챙기는 게 낫다. 아버지 전세 만료되면 바로 강릉으로 오는 게 낫겠다고 100프로 확신했다. 아버지는 점점 중증으로 가고 치매 상태에 비해서 신체는 매우 건강하다. 언제까지가 될 진 모르지만 아버지 몸 건강한 동안에는 주말에 아버지랑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나다. 아내는 ’우리가 해야지 아버지잖아‘라고 하지만 - 참 고마운 말이다. - 나도 언제까지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을진 모른다. 아버지는 병원을 나와서 데이케어센터에 돌아갔다. 센터에서는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났지만 남은 밥이 있어서 아버지 저녁 챙겨줬다. 너무 고마운 일이다. 센터에 간호부장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도 당연히 그 애정을 알고 그 선생님이 휴가로 며칠 센터에 출근하지 않았을 때, 목소리에 불안감이 있었다. 본인 직업에 춭실할 뿐일수도 있지만 너무 고마운 선생님이다.
지금 내가 느끼기엔,
엄마에겐 엄마의 삶이 동생에겐 동생의 삶이 있고 나에겐 아버지랑 함께 하는 나의 삶이 있는 것 같다.
오늘 아버지 병원 가는 일로 전화 통화 20번 넘게 했고 고속도로에서 계속 전화기 붙들고 있었다. 그러다 교통사고로 내가 훅, 갈 수도 있었다.
아버지랑 계속 통화하다보면 진이 빠진다. 힘들어서 한 잔 하고 싶은 날인데, 집에서 혼자 맥주 먹었다.
내일이 결혼 기념일이다. 오늘은 결혼한지 3650일 플러스 365일째다. 11년이 하루처럼 흘렀다. 나랑 아내 둘 다 11년 만큼 늙었고 그 만큼 삶에 관록(고집)이 붙었다. 사랑이냐고 묻는다면 사랑이다. 신법으로 44세고 나랑 동갑인 아내를 부를 때 주로 귀요미라고 부르는데 귀여워서 귀요미라고 부른다. 아내가 귀여운 작은새처럼 보일 때가 많으니 사랑이다. - 아내도 날 부를 때 내 이름을 부르니 사랑이다. 이름을 부르면 사랑이니까 - 아내가 악마나 적으로 보이면 이혼이다. 성격차이가 대부분인 협의 이혼 이유의 대부분이 견디기 힘들만큼 상대방이 싫기 때문일 것이다. '성격차이 = 네가 싫어, 정말 싫어' 가 성립된다.
메모장에서 결혼을 찾아봤다. k형에게 작년에 들은 말을 기록해 뒀다. '결혼 - 당신이 내 인생 최고의 사업 상대' 인생의 많은 것을 담은 결혼에 관한 명언이네. 또 어떤 메모에는 '결혼은 왜 했나 몰라 화를 내고 지하철에서 내 어깨에 고개를 묻고 잠든 아내' 라 적어뒀다. 아마 볼음도 살 때인 거 같고 이때는 아무 대꾸도 안했던 것 같지만 이런 말을 들으면 나도 똑같은 말로 받아치게 되니까, 아무리 화가 나도 서로 이런 말은 안 했으면 좋겠다. 최근에 아내가 본인과 결혼해 사는 걸 다행인 줄 알라고 했는데, 아직 같이 사는 걸 보면 맞는 말이다.
아내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나도 귀요미에게 그런 존재인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사랑이든 아니든 인간관계는 어떻게든 기울어져 있게 마련이다. 무게나 부피 같은 저울의 개념이 아니라 서로 같은 항목을 주고 받지 않는단 뜻이다. 나는 어떤 사람을 걱정하는 말을 하고 그 사람은 아무말 않고 나에게 밥을 사는, 뭐 그런 개념이다. 기울어져 있어도 서로 공평하다 생각한다면 그것이 좋은 인간 관계란 뜻이다. 좀 궤변인가?
아내가 가끔 한날 한시에 죽거나 본인이 먼저 죽고 싶다고 얘기한다. 이것 또한 사랑이지. 가급적 그래야겠다 생각하는 내 마음도 사랑이다.
오랜만에 사랑 얘기.
엊저녁에 운동 마치고 집에 가는 중에 Y군에게 톡이 왔다. 어깨 재활을 해야 하는데, 진척이 없어서 울화가 터진다는 내용이었다. Y는 왼쪽 어깨가 올라가지 않는다. 운동 선수의 마음으로 몇 년을 보고 재활 하라고 답장했다. 속이 좀 상했다. 친구가 아픈데 속이 상한 건 우정인가 인류애인가 내가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은 사랑인가? 그 걱정은 진짜 걱정인가? N군에게서는 풋살하다가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는 소식이 왔다. 상상만 해도 아프다. 잘 치료하고 무리한 운동만 안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N군보다 Y군이 더 걱정이다. N군은 사무직종인데, Y군은 직업이 육체노동 계열이라 어깨를 안 쓰고 살 수는 없다. 그리고 나는 허리가 아프다.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지만 허리가 왜 아픈지, 왼쪽 허벅지가 왜 저린지는 알아야 하니까 조만간 사진을 찍어보려고 한다. 오늘부터 만 나이 적용으로 마흔 네살인데, 이 나이에 어디 아픈데 없이 사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돈 보단 건강인데, 나는 돈 좀 있었으면 좋겠다. - 어제 엄마가 뭔 꿈을 꿨는지, 복권 사라고 연락왔길래 복권 샀다. -
아버지랑 통화하다가 아버지 지갑에 돈이 떨어졌다는 걸 알았다. '일우야 지갑에 현금이 없다.' 라고 한 마디 하면 되는데, 그게 안되니 계속 뭐라뭐라 한다. 그 말을 할 수 있다면 은행에서 돈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지갑 얘기를 꺼내자 마자 돈 떨어졌다는 얘긴 줄 알았지만 끝까지 다 들어준다. 카드를 쓰면 되는데, 아버지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주말에 올라가야 되나? 동생 아내는 결핵에 걸렸다고 하고 엄마는 가급적 아버지 일에서 제외하고 싶으니 아버지 돈 찾아주러 내가 가는게 낫겠다 생각한다. 주말에 현충일 연휴도 껴서 기차표 빨리 구해놔야 하는데, 생각한다.
어제랑 그저께 아침에는 아버지에게 모닝콜이 오지 않았다. 반복되는 일상이 깨졌다는 게 약간 걱정이 됐고, 9시 넘어서 데이케어센터에 잘 갔는지 확인만 했다. 루틴이 깨진 날은 목소리만 들어봐도 아버지 컨디션이 별로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센터에서 저녁 먹는 시간에 나에게 전화를 하곤 하는데, - '이제 밥 먹으려고.' - 그게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다. 어떤 때는 전화를 받아도 아무말이 없다. 나한테 전화한 걸 잊었는지도 모른다. '엄마한테 전화 한 번 해보세요' 했는데, 나랑 전화 끊자마자 나한테 다시 전화하기도 하고 그 전화를 받아도 아무말이 없기도 하다. 아버지는 당신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는 센터 간호부장 선생님이 며칠간 출근을 하지 않아서 심적으로 불안했던 것 같다. 엊그제 저녁 때 통화하면서 요즘 안 보이는 선생님에 대해서 한참 얘기했는데, 그 선생님에 대해서 설명을 못한다. '아버지 혈압 체크해주는 선생님이요?' 라고 몇 번을 물어도 내 말을 듣지 않고 본인 말만 하다가 내가 목소리를 높여서 자꾸 얘기하니까 그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젊어서도 남과의 대화에서 남의 말에 집중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게 그대로 치매로도 왔다.
오늘은 아침 6시 40분에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컨디션이 좋은 목소리라 안심했다. 언제부턴가 내가 아버지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잘 하고 있어요.' 에서 '그렇게 하시면 돼요.'로 바뀌었다. 같은 말인데, 후자 쪽이 좀 더 체념인가? 체념이라고 보다는 아버지 얘기 끝까지 들어주는 것 처럼 그저 아버지를 바라보기만 하는건가.
나보다 두 살 많은 아내 오빠도 아프고 아버님, 어머님은 연로하셔서 아프고 어머님은 다음주가 생일인데, 아이가 아프다고 하니 광양에 내려가 가시고 덩달아 아버님도 내려가 계시고, 우리 엄마는 엄마대로 군데군데 아프다. 회사 기간제 형 아버지는 많이 아프고 어머님도 아픈데, 회사 공무직 형 엄마도 연로하셔서 아프고, 회사 청원경찰 형 엄마도 연로하셔서 원인 모를 어지럼증이 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치매고 올해 위암 수술을 했지만 육체는 건강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저기 아픈 일 투성이다. 사람도 아프고 나라도 아프고 세계도 아프다. 안 아프고 살기가 정말 어렵다.
어지러운 날들이라 두서없이 적어봤다.
5월이 다 갔다. 25일은 월급날이다. 월급날이다. 내 월급은 같이 있기 싫은 사람과 말 섞으며 지내는 대가란 것이 아내의 평가다. 공감한다. 올해는 부쩍 회사 다니기가 싫다. 지난주에 대학 동창들 만났는데, 지금 이 직업 안 얻었으면 뭘 했을지 모르겠다 했더니 농사 지었을 거라고 했다. 아마 그랬을 거 같다. 그 얘기를 들어서 그랬는지 볼음도 있을 때,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적었던 일기(일지)를 오랜만에 몇 개 읽어보면서 메인 블로그로 옮겼다.
1년 9개월 간 섬에 살았다. 기쁜일도 슬픈일도 있었고 기쁜일이 많았다. 동네 분들이 나랑 아내에게 잘해줬다. 할머니들이 내가 본인들 얘기 들어주는 걸 좋아했고 나도 할머니들 옛날 얘기 듣는 게 좋았다. 비싸고 신선한 해산물을 많이 먹었고 그만큼 술도 많이 먹었다. 개, 고양이랑 같이 살았다. 개는 슬프게 됐고 고양이는 새끼를 낳았다. 당시에 농활을 왔던 대학생들은 지금 30대가 됐다. 친구들이 왔다 가곤 했다. 백합 조개를 많이 잡았다. 아내와는 좋았던 일도 화낸 일도 있었고 좋았던 일이 많았다. 아내를 고생만 시키는 게 아닌가 많이 생각했다. 돈은 없었지만 생활에 부족함은 없었다.
섬에 살았고 농사를 지었기에 내적으로 어른이 됐다고 생각한다. 주변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 덕에 스스로 많은 일을 해결 하면서 삶에 어느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자연을 동경하게 됐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많이 생각해보게 됐다. 글을 쓰기 시작했고 살아 있다는 일을 사랑하게 됐다. 물론 볼음도에 있을 때도 나이 먹는 일과 생에 대한 허무함은 지금과 큰 차이는 없었다.
10년 전에 나는 아내랑 함께 강화도 서도면 볼음도 안멀 끝에 살고 있었다.
10년이 훌쩍 지났고 나는 아내랑 함께 강릉시 옥천동 옥천연립에 살고 있다.
20141101 - 쌀값 유감
저녁에 소방대 11월 모임에 갔다. 다들 벼농사를 많이 짓다보니 쌀값이랑 벼농사 얘기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농협에서 친환경 벼는 수매량을 정해서 받아준다. - 즉, 나머지는 알아서 팔아야 한다. - 이래서 친환경 농사 짓겠나? 친환경 안 지으면 나중에 쌀 팔기 더 어려워질수도 있다. 정부에다 얘기해서 민통선 지역 쌀 전량 수매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그거 지정하자면 어려운 점이 많다. 올해 풍년인데, 농협에서 다 사주는 것이 아니니 풍년이라고 좋은 것도 아니다. 강화군친환경 농민회 쪽을 통해서 한살림에 나가는 쌀값도 쌀을 팔아보고 내년 3월에 준다더라. 이래서야 농협에다가 파는 것만 못하다. 유기쌀도 한살림에 나가는 가격과 다른 생협에 나가는 가격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유기농사 짓는 사람들끼리도 가격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 지금 무농약인 논들을 내년에는 다 유기농으로 바꾸면 어떨까? 내년부터는 인증받을 때, 잔류농약 검사 비용을 농민들이 내야한다. 이래서 친환경 하겠나. 기술센터에서 하는 잔류농약 검사로는 친환경 인증을 못 받는다더라.
나라에서 농업을 버리니 농민들은 삶도 마음도 점점 팍팍해져 간다.
나만해도 어떻게든 나라도 살아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올해 꼴랑 2400평 농사 지은 쌀값을 언제 받을지 모르게 됐다.
뭔가 많이 잘못됐다.
그래도 나는 농사를 지을거다.
오늘 공무원들은 자기들 밥그릇 걸린 일이라고 12만명이나 모였다는데, 나이 먹은 농민들은 이제 그렇게 모이지도 못한다. - 볼음도는 50대들이 많지만 강화의 다른 지역은 70대들이 벼농사 짓는 경우가 많다. - 나이를 먹었어도, 당장 오늘 할 일이 있어도 모여서 뭔가를 만들 필요가 있다.
11월의 첫날부터 여러가지로 유감이다.
20141110 - 정리, 정리
이번 금요일로 이사 날짜를 정했다.
볼음도 집에 있는 소소한 짐들을 초지에 있는 집으로 옮겼다가 서울에서 아버지랑 지내면서 강릉에 집을 알아보고 이사를 가야하는 험난한 일정이다. 대체 강릉에선 어떤 모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지금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느 모험 보다는 당장 금요일에 누구에게 차를 빌려서 섬을 나갈것인가.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차를 못 빌리면 이사 날짜는 밀린다. 뭐 어떻게 되겠지.
오늘은 회관에서 우리 환송식을 한다고 동네분들이 다 모여서 점심을 먹었다. 지후는 본인의 환송식에 10시 30분에 나가서 밥 준비하고 마지막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일했다. 글로 써 놓으니까 뭔가 부당한듯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겨울에 본격적으로 다 같이 모여서 밥 먹기 전에 미리 밥 한 번 먹는 자리였다.
나는 작목반 유박 남은 숫자 정리했다. 올해 회관 2층 손님 받은 돈도 정리했다. 창고에 있는 것들 중에 태울 수 있는 것은 태웠다. 고추말장이랑 양파망은 완이형에게 줬다.
js형이랑 잠깐 대화를 나눴다. 어차피 준비된 것도 없는데, 나갈 필요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나가는 것이 섭섭해서 그런 말씀을 하셨으리라. 볼음도를 떠나면서 js형한테 미안한 일이 많다.
이렇게 한 시절이 저물어 가는구나.
저녁에는 완이형이랑 k를 초대해서 같이 저녁 먹었다.
내일부터 본격 이삿짐을 싼다.
가장 중요한 일은 차를 빌리는 것이다. 그런데, 말을 꺼내기가 두렵다.
20140903 - 오늘도 놀았다
어제는 동네 길가에 풀 자르는 일을했다. 근 두 달 넘게 그냥 놀고 있다. 오늘도 별일 없이 놀았다. 참 좋다. 저녁에 비가 그친 하늘이 멋지길래 은행나무 뒷동산 정자에 갔었다. 공사하는 사람들이 쌍안경을 설치해 놓고 갔길래 북한땅을 봤다. 아주 선명하게 잘 보였다. 야산 중간에 '위대한 김일성 수령 혁명사상 만세'라고 적어 놓은것도 보였다. 뉴스에서만 보던걸 실제로 봤다. 퇴근 시간인지 사람들이 단체로 이동하는 것도 봤다. 연립주택 단지와 야산 사이에 소 키우면 좋을거 같은 초원이 있다. 통일되면 연백땅에서 농사지어야 하나. 생각했다. 짤방은 집에 와서 찍은 북쪽 하늘이다.
20140905 - 수업, 교통사고, 복권, 명절, 피곤
어울림 학교 수업을 위해 배를 타고 나가면 선생님 중에 한 분이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 어제 학교로 이동중에 경미한 교통 사고가 닜다. 아주 경미한 사고였다. 우리차를 건드린 차를 운전한 아저씨가 자기가 못 봤다고 순순히 인정해서 보험처리하고 금방 학교로 왔다.
수업은 재미있었다. 요즘 기억나지 않는 악몽들을 계속 꾼다. 교통사고까지 났으니 이건 복권을 사라는 계시다. 오늘 아침에 서울에서 복권을 싰다. 잘 됐으면 좋겠다.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 섬으로 들어오고 나는 엄마 만나러 섬에서 나간다.
어제 나갔다 오늘 들어오고 내일 조개 잡고 모레 또 나갔다가 두 밤 자고 들어온다.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오늘 섬에 도착하자마자 드는 생각이 집에 오니까 참 좋다.였다.
내일 조개 많이 잡아서 집에 갈 때 포도 사가야겠다. 짤방의 뒷밭의 술패랭이꽃.
20140912 - 조개잡이
어제랑 오늘은 조개를 잡았다. nll을 넘어가서 조개를 잡았다. 일년에 한 번 뿐인 이벤트다. 어제는 38킬로 오늘은 32킬로를 잡았다. 킬로그램애 사천원 씩만 계산해도 28만원이다. 그러니까 나는 돈을 벌었다. 많이(?) 벌었다.
동네 아저씨들도 많이 나왔다. 떼돈을 준다고 해도 오늘은 못 나오겠다던 아저씨가 오늘도 나왔다. - 북쪽 뻘은 푹푹 빠지는 구간을 지나야 조개잡이 구간이 나온다. - 내일은 쉬고 싶다고 했던 나도 오늘 또 나갔다. 생(업)이란 그런 것이다.
별것도 아닌 이 생이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제랑 오늘 이틀동안 발바닥이 더랍게 많이 찢어진 건 나를 힘들게 하진 않는다.
20140929 - 땅콩, 고구마 꽃
고구마 밭에 들렀다. 너무 오랜만에 들렀다. 무심한 밭 임자 보란 듯이 밭은 초토화 상태였다.
고구마 꽃이 피었다. 꽃이 피게 해서 미안하다.
땅콩을 수확했다. 다행히 우리 먹을만큼은 된다. 고구마를 캐봤다. 우리 먹고 조금 팔 만큼은 나올것 같다.
밭에게 고구마에게 땅콩에게 메주콩에게 미안하다. 나는 부끄럽다.
이렇게 농사 짓진 말아야지. 생각했다.
20141013 - 들깨
들깨 정리중이다. 그럭저럭은 된거 같다.
한 번 더 바람에 날리고 씻어서 말린다음 기름 짜면 들깨의 임무 완료
20141019 - 고구마 정리
새벽에 밭에 가서 먼저 정리하던 고구마 정리를 미무리했다. 팔 것과 안 팔 것으로 분류해서 안 팔 것은 그냥 버린다. 문제는 버리는 게 반이다. 굼벵이가 너무 많이 먹은 것, 아주 큰 것, 아주 못생긴 것은 버린다. 고구마 받은 사람이 기분 나빠지면 안되니까 그렇다.
으.... 이렇다. 심하다.
아침 먹고 40킬로짜리 쌀 자루들고 밭에 가서 고구마를 담았다. 19자루 가득 담았다. 점심 먹고 이장님 차를 빌려서 잽싸게 싣고 집으로 왔다. 잽싸게 내리고 차 갖다 드리고 아내랑 정리를 시작했다.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우체국 택배값도 5000원에서 6500원으로 올랐고 요즘 고구마 값이 싼 편이라 이런저런 걱정을 한다.
고구마 정리 하고는 깻대 태우고 고추랑 오이 정리하고 지줏대 뽑았다.
마음은 벼베는 현장에 몇 번이고 있었지만 몸이 한 개 뿐이라 그러질 못했다.
형들, 고구마 얼른 보내고 벼베기 다시 참가할게요.
20140702 - 일과
다섯시에 일어나서 아르헨티나 경기 결과 확인했다. 더 자다가 일곱시에 일어나서 멍 때리고 망고 구경하고 아침밥 하고 그냥 앉아 있었다. 기타 좀 치다가 조개 잡으러 갔다.
경운기 안 타고 혼자 걸어 나갔다. 음악을 들으며 세 시간 정도 잡았다. 두 시간 정도 더 잡을 수 있지만 더 잡으면 못 가지고 나올 것 같아서 그냥 집에 왔다. 판매용은 11kg정도고 나머지는 집에서 먹었다.
조개 잡이가 피곤했을까? 오후 여섯시까지 자다가 논에 들렀다. 올해는 김을 안매도 되겠다. 다만 비가 필요하다.
동네형이 술 먹자고 불러서 그형한테 조개 6kg 팔았다. 한 잔 먹고 와서 지금 저녁 먹을 준비 하는 중이다. 이렇게 평온하게 하루가 갔다.
20140719 - 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비만 기다린다. 오늘 새벽에 한 시간 정도 내렸다. 모내기때 내리고 한 달 반만에 내린 비다. 말라버린 저수지와 논바닥, 타 죽어 가는 고구마들을 생각하면 비가 최소 이백 미리 정도는 와야 한다.
요즘은 비를 기다리면서 조개를 잡았다. 많이 잡는날도 적게 잡는 날도 있다. 비가 많이 와야 뻘이 깎여 나가서 조개 잡기도 수월하다.
올해 농사는 어떻게 되는걸까? 얼마전에 동네에서 우리집 벼만 잘된 꿈을 꿨다. 날이 하도 가물어서 벼농사 걱정이 많다. 마음 곱게 쓰면서 계속 비를 기다려야겠다.
이 와중에 망고 아기들은 귀엽다.
20140826 - 저녁
어제 저녁엔 집 앞에서 멋진 하늘을 보면서 아내가 만들어 준 짬뽕을 먹었다.
20140806 - 일과
1리에 두 집 컴퓨터 봐드리고 - 두 집 모두 사소한 문제들이었음 - 해수욕장 몇 번 왔다갔다 하면서 바닷가 쓰레기 줍고, 화장실 쓰레기통 비우고, 동네 형들이랑 잠깐잠깐 얘기하다가 보니 하루가 갔다.
동네 할머니 집에 메주콩 전해 드리러 두 번 다녀왔고, 고양이들이랑 놀았고 우리 먹을 쌀 방아도 쪘다.
바빴을까?
20140610 - 요즘, 농활
모내기 마치고 잠깐 늘어져 있었다. 고구마 밭 김매야 하고, 논에 물 잘 봐야 하고, 갈지 않을 집 뒷밭의 풀을 다 잘라야 한다. 논두렁 풀도 깎아야 한다.
이 와중에 농활이 걱정이다.
어쩌다보니 농활 담당자가 됐다.
학생들 인원은 많고, 동네 사람들은 이제 3년째인 농활에 익숙하지 않다. 형단이 형은 주민들이 의견을 모아 잘 준비하는 농활을 원한다. 어떤 형들은 학생들이 일을 해줄거란 생각에 농활을 반기고, 어떤 형들은 귀찮다고만 생각한다.
학생들은 시끄러울 것이다. 농활이 자신의 삶과 관계없는 어떤 사람들은 학생들에게 화를 내기도 할 것이다. 학생들은 농촌을 알아 보겠다고 자비를 들여서 볼음도에 온다.
오늘 조개 잡으면서 다 때려치울까.랑 어떻게든 잘 이끌고 갈까.가 몇 백번 왔다갔다 했다.
학생들이 농촌사회를 들여다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게 그리고 사고 없이 일정을 마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20140615 - 요즘
조개 잡으러 두 번 나갔다 왔다. 많이 잡았다. 오늘도 나간다. 옆집 형이 경운기 태워주신다. - 감사합니다. -
한적골 윗논이 슬슬 말라간다. 장마가 얼른 오면 좋겠다. 일단 오늘 뜬모 내러 가는 길에 아랫논에서 물을 좀 퍼야겠다.
고구마 밭에 김맸다. 아직은 풀이 약한 상태라 손호미로 슬슬 긁어주면 된다. 앞으론 어떻게 될까?
서리태를 포트에 넣었다. 72구 짜리에는 두 개씩, 105구 짜리에는 하나씩 넣었다. 콩을 포트에 넣는 이유는 새 방지약을 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밭을 갈지 않고 심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식물들과 경합을 할 수 있을 만큼 조금 키우기 위해서 이기도 하다. 한랭사로 잘 덮어서 마당에 뒀다. 새 한 마리가 먹고 살겠다고 약간의 틈으로 기어 들어와서 콩을 파 먹고 갔다. 고라니도 그렇고 새도 그렇고 약간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틈이 많은 인간이다. 고라니가 고구마 뜯어 먹은 일에는 속이 많이 상했지만 새가 콩 파 먹은 일은 애교로 봐준다.
6월 중으로 양파, 마늘, 감자 수확과 들깨, 서리태 정식이 남았다. 팥은 우리 먹을만큼만 심기로 했다. 그러고 나면 여름 농한기다. 신난다.
나 제법 농부 같잖아. 히히
20140621 - 고구마 밭 김매기
고구마 밭에 김매다가 날이 뜨거워 들어왔다. 고랑은 풀쟁기로 두둑은 손호미로 작업하고, 작물들과 얽혀 있는 잡초는 호미로 매주는 수 밖에 없다.
고라니들께서 고구마랑 메주콩을 안 건드린 것 없이 쑥대밭을 만들어 놨다. 뒤늦게 울타리를 수선하는 법석을 떨고 나서야 발걸음이 뜸해졌다. 고라니 울타리를 위해서 병어 그물을 하나 구해놨더랬는데, 일이 내 생각처럼 되질 않아서 작년에 쳐놨던 그물을 수선하는 것에 그쳤다.
일이 내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은 여러가지 외부 요인도 있지만 결국 내 탓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김매는 일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대로 착착 진행되는데, 울타리의 경우처럼 별로 해보지 않은 일을 할 때는 이리저리 주변에 휘둘리다가 시기를 놓친 경우가 많다. 차차 익숙해지면 전부 내 것이 되겠지.
오후엔 음악을 들으면서 본격적으로 김을 맬 생각이다. gogo!
고구마밭 현재 상태. 하아.. 그래도 고구마는 최선을 다해서 자라고 있다.
20140627 - 농활, 서리태와 들깨 그리고 고라니
23일에 성대에서 농활이 왔다. 방학을 하자마자 자비로 찾아와주니 고마운 친구들이다. 올해는 인원이 많아서 65명을 1리 회관과 2리 회관으로 나눠서 운영하고 있다. 그 운영이란 것을 내가 하고 있어서 여러가지로 신경 쓸 일이 많다. 일정 조율하고 참을 챙겨주는 것이 그 운영의 전부인데, 워낙 전화할 일이 많다보니 스트레스가 많다. 8박 9일 일정 중에 실제로 일하는 것은 오늘까지라고 봐야 하는데, 오늘까지 큰 탈 없이 잘 마쳐서 무척 홀가분하다.
그리고 나는 내일 밀양으로 농활 간다.
작년에는 농활 관리 하느라 우리 일을 너무 못해서 올해는 마음 먹고 우리일도 조금 했다. 고구마밭 김매기, 서리태 심기, 들깨 심기였다. 고구마 밭에 김을 잘 맸다. 지후랑 내가 마무리 하러 갔는데, 겨우 다시 살아나고 있던 고구마랑 메주콩을 고라니가 새로 먹었길래, 주위를 잘 살폈더니 울타리에 구멍이 있었다. 구멍을 단단히 매웠다. 어제는 지후가 학생들과 서리태를 심었다. 오늘 아침에 봤더니 고라니가 새로 심은 서리태를 다 잘라 먹었다. - 이놈의 고라니 놈들 만나면 삽으로 머리를 잘라버려야겠다.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 암튼 오늘 학생들과 함께 콩도 심고, 들깨도 다 심었다. - 고마워요. -
이제 문제는 고라니다. 고라니 고라니 고라니
고라니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약간의 설명을 붙인다. - 한국과 중국 동북부 등지에 분포하며, 한국고라니(Hydropotes inermis argyropus)와 중국고라니(Hydropotes inermis inermis)의 두 아종이 있다. 중국에서는 멸종위기종이지만 한국에서는 흔해서 수렵동물로 지정되어 있다. -
이 설명의 핵심은 고라니가 한국과 중국 동북부에만 산다는 것이다. 즉, 전 세계적으로는 희귀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콩을 다 잘라 먹으면 안된다.
20140629 - 밀양, 농활
다정한 농부가 밀양에 농활을 다녀왔다. 어젯밤 11시 기차로 출발해서 밀양엔 새벽에 도착, 5시부터 일 시작해서 10시 반에는 대략 모든 일이 끝났다. 들깨 심고, 하우스 철거하고 농성장에 물도랑 파는 일을 했다.
내 일이 아니니 모처럼 땀이 나도록 일했다.
할매 두 분을 만났는데, 우리가 동네 사람 일을 도와준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고마워하셨다. 일도 별도 안 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할매들이 그러니 많이 미안했다. 잘못한 게 없어도 미안할 수 있거나, 우리 모두가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당연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 도와준 집에서 점심을 얻어 먹고 여럿이 함께 잎들깨를 포장했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것이 현재 밀양의 상황이다. 울기만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본에게만 필요하고 인간에게는 필요 없는 것,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일들은 다 그만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오늘 만난 사람들이 떠올라서라도 밀양에는 또 가야겠다.
20140507 - 5월7일 현재, 남은일들
그동안
- 고구마 밭에 유박 뿌리고 쓸렸다. 유박은 C이장님께 빌리고 (유박값 결정되면 바로 돈 보낼게요.) 밭 쓸리는 건 d에게 부탁했다. (고마워 오늘 핏자 먹자.)
- 논에 물을 대기 시작했다. 아랫논은 물꼬만 세 개다. 완벽하게 막지는 못했지만 90% 정도는 막았다.
- 각종 모종을 심었다. (올해는 직접 기른 수박을 먹어보자. 참외는 순을 잘 질러서 작년보다 많이 먹어보자.) 고추를 한 판 심었다.
5월 안에
- 고구마 6000주를 심어야 한다. 관리기를 빌려서 두둑을 잡고 비닐을 씌우지 않고 심는다. 경운기를 빌려서 물을 주면 심는다. - 관리기랑 경운기를 빌리는 것이 일이다.
- 고구마 밭 울타리. 차를 빌려서 k형한테 얻은 그물을 밭에 옮겨 놓고 현장에서 바로 손질해서 그물을 친다. - 차를 빌리는 것이 일이다.
- 땅콩 심어야 한다. 역시 차를 빌려서 땅콩모를 고구마밭으로 싣고 가서 모래가 많은 밭 아래쪽에 심는다. - 차를 빌리는 것이 일이다.
- 논 쓸려야 한다. 기계가 한다. - 작목반 형들 중에 누가 우리 논을 쓸려줄까? 이런저런 얘기 하면서 그걸 결정하는 것이 일이다.
- 모내기 시작. 모는 기계가 심지만 모판은 사람이 옮긴다.
- 시간 날 때마다 상합 캐기.
20140508 - 웅덩이 상합
웅덩이 상합을 잡았다. 웅덩이가 생기면 그레질을 하지 않고 웅덩이를 찾아 다니며 상합을 캐낸다. 엊그제 처음 배웠다. 그때 9킬로 정도 잡았다. 오늘은 25킬로 잡았다. 나는 웅덩이 초심자라 쪼그리고 앉아서 밭매는 자세로 일했다. 한 번 웅덩이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까 멈출 수가 없었다. 하늘 한 번 제대로 못 쳐다보고 일했다. 힘들었다. 그래도 많이 잡아서 기분 좋다.
웅덩이 상합이란? 바람이 강하게 불면 조개가 파고든 자리에 미세하게 구멍이 생긴다. 딱 봐서 알기는 어렵고 초집중해서 봐야한다.
나에게 웅덩이 상합을 알려준 완이형은 나보다 더 많이 잡았다. 어제는 많이 못잡았다고 들었는데, 나랑 같이 나간날 많이 잡아서 다행이다. 형, 항상 감사합니다. 토요일에 비닐 마저 씌워요.
짤방은 4월 사진. 상합 큰 거는 따로 담는다. 오늘은 5kg.
20140511 - 일과
6시 조금 넘어서 조개 캐러 가려고 오토바이에 올랐는데, 형단이 형한테 전화왔다. 못자리 부직포 벗긴다고 했다. - 최소한 하루 전에는 알려 주세요. - 못자리 부직포 다 벗기니 9시다. 주수형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 심각한 것이 아니라 다행이다. - 오후에는 학현 아저씨랑 주수형네 못자리 부직포 벗기기로 했다. 교회에 갈까말까 하다가 흰쌀밥에 고기반찬이 먹고 싶어서 11시 조금 넘어서 교회에 갔다. - 교회를 완전 나이롱으로 다닌다. - 집에 와서 한 숨 잔다는 것이 너무 많이 잤다. d할머니가 김밥 가져가서 먹으라고 하셨다. 김밥 가지러 갔다가 학현 아저씨라 못자리에 가신것을 알고 부리나케 비옷을 챙겨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못자리 쪽으로 이동하는데, 아저씨 차가 아저씨 집앞에 있길래 그냥 돌아왔다. - 집에 와서 한 숨 잘 것이 아니라 바로 학현 아저씨한테 갔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
사람도 건조하고 땅도 건조한 참인데, 비가 온다. 많이 와라.
짤방은 지난 가을 아무렇게나 뿌려 둔 보리, 이삭 팼다.
20140516 - 일과
오전에 나가서 조개 잡았다. 샛멀 은경네 아저씨가 태워주셨다. - 감사합니다. - 많이 잡았다. 술도 주셨다. 거절하지 않았다. - 감사합니다.
돌아와서 유통기한 1년 지난 라면 두 개 끓여 먹었다. - 완이형, 감사합니다. - 다시 고등학생이 된 기분이다. 히히
주수형 만나서 관리기 빌리기로 얘기하고 형단이형한테 이런저런 얘기 듣고 논에 갔다가 k형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 듣고, k누나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일곱시다. 이런저런 얘기를 한 건 k누나 뿐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대화를 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짤방은 오늘 잡은 범게 세 마리.
20140402 - 수업, 수입
불은면에 있는 어울림 학교에 가서 미디어 수업을 했다. 아이들과 논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나가는 것이지만 수업 준비는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겠다. 자주 보면 많이 친해지겠지? 아이들보다 20년 이상을 더 살았다. 세월이 야속하다.
저녁에 섬에 돌아와서는 어제까지 사흘 일한 돈을 받았다. 장뇌삼 심을 밭을 일구는 작업을 했더랬다. 또 수입이 생겼네. 좋다.
육묘용 미니하우스 덮을 비닐 얻어야 하고 고구마 밭에 둘러칠 그물 얻어야 한다. 벼농사 짓는 집에 쌀이 떨어졌다. 남겨둔 벼 도정해야 한다. 온통 부탁할 일 투성이구나. 그래도 좋다.
20140404 - 상합 캐기
오늘까지 세 번 상합 캐러 나갔다 왔다. 첫날 잡았던 건 동네 나눔했고, 어제 잡은 건 동네분들에게 팔았다. 오늘 잡은 것부터는 외포리 도매상에 넘기려고 한다.
작년에도 느꼈지만 그레 끄는 건 힘들다. 그래도 끄는 시간에 비례해서 수확량이 늘어나니 일단 갯벌에 나가면 열심히 끄는 수 밖에 없다.
오늘은 완이형이랑 나가서 둘다 10kg 이상 잡았다. 집에 국 끓여 먹을 작은 것들을 제하더 나니 내일 아침배에 보낼 양은 8kg 조금 넘는다. 일단 한 번 나가면 15kg을 잡는 걸 목표로 해야겠다. 내일은 조갯국 끓여 먹어야지.
조개신이 올해도 볼음도 갯벌에 조개를 많이 내려주셔야 올 한해를 무사히 먹고 살 수 있다.
생활에 치여서 그런지, 외롭지 않아서 그런지 작년에 블로그에 올린 글도, 요즘 네이버 블로그에 올리는 글도 건조하고 단편적이다. 너무 생활에 치여 살진 말아야지.
짤방은 조개.
20140414 - 일과
7시 30분에 완이형이랑 함께 조개 캐러 나갔다. 오늘로 사흘 연속이다. 힘들지만 이게 없으면 생활이 안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캔다. 완이형, 경운기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동네 분들도 본격적으로 조개잡이에 나섰다. 어제까지 잡은 것들은 동네에서 팔았고 오늘 잡은 것은 도매상에 보냈다. 볼음도에서 조개 잡는 분들 중 대부분이 외포리에 있는 '길배 수산'이란 곳으로 상합을 보낸다. 길배수산의 시스템이 좀 웃기는데, 그날 보낸 조갯값이 얼만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고 받는 쪽에서도 먼저 알려주지는 않는다. 나라도 조개를 보낼때마다 시세를 물어볼까. 싶긴한데, 이게 또 막상 그러자면 귀찮기도 하고 괜한짓 하는 것 같기도 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쪽에 전화하게 되질 않는다. 그래도 나라도 먼저 시작해야 동네 어른신들도 그날그날 조갯값이 얼마인지 아실테니 문자로라도 그날그날 조갯값을 알려달라고 해야겠다.
조개 잡고 와서는 농협에 들렀다. 농업인 상담소 김성진 소장님이 조개 많이 잡으라고 자유시간 20개 사주셨다. 감사합니다. 우리집에서는 지후가 직접 만든 두유와 사과를 대접했다. 마침 완이형도 놀러와서 우물 옆, 우리집 앞마당에서 앉아 놀았다.
원래 계획은 오후에 표고목 세우려고 했더랬다. 이런식으로 자꾸 일정이 밀리게 되는 것이 내 성격과 시골일의 특성상 일상이다. 그렇지만 토요일 볍씨 파종 전에는 꼭 표고목을 예쁘게 세우리라.
지후랑 같이 집 뒷밭에서 막바지 냉이를 캐고 집에 들어왔다. 지후가 두유를 만든 덕분에 비지가 생겼고, 비지 찌개를 먹었다. 완전 맛있었다. 비지를 위해서라도 메주콩은 열심히 심어 길러야겠다.
하루가 이렇게 갔다.
짤방은 어제의 망고.
20140303 - 말장했다
완이형네 말장했다. 점심 먹고 시작해서 저녁에 끝났다. p형이랑 완이형이 삼미터 길이로 나무를 잘라내고 나는 그 나무들을 옮겼다. 중간중간 술을 마셨다. 집에 도착했더니 지후가 화났다. 술을 많이 마신 탓이다. 나는 말짱하다고 생각했는데, 지후한테 들켰다. 미안하다. 그래서 저녁 먹으면서 지후가 화낼때 가만히 있었다. 미안하다.
마늘싹이 올라왔다. 말장 하던 산에서도 푸른빛을 많이 봤다. 동네형들이 바다에 시찰을 나가기 시작했다. 봄이 왔다.
요며칠 기분이 별로다. 불확실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올해도 이렇게 불확실 속에 지나가겠지만 내년 이맘때는 지금보단 기분 좋기를 바란다.
20140305 - 첫수입
오전에 공사일을 했다. 사흘이라고 해서 얼마 받는지도 모르고 동네 들어온 일을 하러 갔다. 무게를 지고 산을 몇 번 오르락 내리락 했다. 완이형이 힘들어 하신것도 있고 나도 힘들었고 일당협상도 잘 안돼서 점심 먹고 반일치 돈을 받았다. 무려 7만원이다.
오후에는 고구마밭에 가서 비닐 찌꺼기를 주웠다. 앞으론 절대로 밭에 비닐을 씌우지 않으리란 다짐을 했다. - 고구마밭에 갈 때마다 이 생각을 한다. -
저녁엔 완이형, k를 초대해서 스파게티 먹었다. 맛있었다.
괜찮은 하루였다.
작년 첫수입은 9월이었으니까 해가 바뀌고 첫수입까지 걸린 기간이 1년만에 6개월 단축됐다. 좋은 징조다.
오늘 간만에 노가다를 해보니 사람들이 왜 자영업을 선호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리고 이 한 건의 공사 때문에 볼음도에 온 현장인부 30명의 생활을 생각하니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그러니 농사 잘 짓고 조개 열심히 잡아야지.
20140308 - 시즌 시작
어제는 토양검정을 위해 작목반 논을 다 돌며 흙을 떴고 오늘은 논에 뿌릴 유박이 왔다. 시즌이 시작됐다. 어제는 기분이 별로라 내 일은 안했다. 오늘은 기분이 괜찮아서 틀밭용 이랑을 만들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된다. 지난해를 돌아보건데, 형들한테 매번 불려다니지 않으면서 우리일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h형 아버님 팔순이라 점심은 1리 회관에서 먹었다. 팔순 잔치는 오래 산 것을 축하하는 자리라 봉투는 준비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밥을 준비한 1리 부녀회 아주머니들은 힘든 기색 없이 즐거워보였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지? 종교의 힘인가? 그럴수도 있지.
내일은 또 고구마밭에 간다. 아침부터 주우면 하루면 다 줍겠다. 내일 다 못 주우면 모레까지 줍자.
20140312 - 칡
어제 O형이 밭 일구느라 포크레인 작업을 하면서 칡뿌리를 많이 캤다. 동네분들이 많이 가져가셨고 나한테도 조금 생겼다. 작년에는 제대로 자르질 못해서 엉성하게 잘라둔 조각들을 전부 퇴비장에 넣었다. 올해는 똑바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칡뿌리 손질에 대해서 검색을 했다.
칡뿌리는 흐르는 물에 깨끗히 씻어낸다. 그래도 여전히 흙이 많다. 껍질을 살살 벗긴다. 잘 안 벗겨진다. 껍질이 어느정도 벗겨지면 닭곰탕에 들어가는 닭가슴살 찢듯이 죽죽 찢어낸다. 쉽진 않지만 재미는 있다. 그리고 잘 말린다.
건조망에 다 넣어놓고 보니 양이 많다. 이게 잘 마르면 차도 끓여먹고 술도 담가 먹어야지.
건조망에서 지난 겨울에 말랭이 한다고 쪄놓은 고구마를 꺼내서 먹어봤다. 못 먹게 됐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꾸들꾸들하니 맛있다. 올해는 더 많이 만들어서 많이 먹기로 한다.
오전에는 틀밭도 한 자리 만들었다. 오늘 한 번 만들어봤으니 내일은 더 나아지겠지. 오후에는 완이형이 올해 들깨 심을 밭에 불 놓으러 다녀왔다.
이렇게 하루가 갔다. 괜찮았다.
20140314 - 후진 일들
k형이 화났다.
은행나무 옆 논이었던 자리를 새우 양식장으로 만들어 허가 받은지 10년이 됐다. 허가는 5년에 한 번 갱신해야 하는데, 허가를 내주는 군청에서 군사동의가 없어서 허가를 못내준다고 한단다. 이전 두 번은 군에서 허가를 내줬는데,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북한과의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군사동의를 못해주겠다고 하는데, 그런 원칙이라면 볼음도, 말도 사람들이 갯벌에 나가는 맨손어업 허가도 내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k형의 논리다. - 양식장은 뭍에 있는데도 허가를 안 내주는데, 바다로 나가는 맨손어업 허가를 내줘서야 되겠는가? -
k형 덕분에 인터넷 신문고에 접속했다. 국가권익위원회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잘 됐으면 좋겠다.
요즘 우리 동네에 큰 이슈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자금을 횡령한 농업직원이 우리동네에 발령 받았다가 바로 쫒겨난 것이고 - 농협을 계약직 직원 혼자서 지키고 있음 - 또 하나는 김양식 보상금을 받은 분들이 인천공항 공사시기와 관계 없는 기간에 대해서 보상금을 받은 것이다.
세상에는 후진일들이 정말 많다.
20140317 - 또 수입
또 수입이 생겼다. 선창 근처에 있는 민박집 아주머니가 일 좀 도와 달라고 해서 다녀왔다. 김치냉장고에 쌀 옮겨 넣기, 밭 정리, 할아버지 노령연금에 대해서 알아보기, 썩은 고구마 산에 갖다 버리기, 복숭아 나무 전정 등을 아주머니 지시에 따라 처리했다.
오만원만 주십시오. 해서 할아버지한테 돈을 받았는데, 집에 가려고 오토바이에 앉은 내 주머니에 아주머니가 이만원을 찔러 넣어주셨다.
이건 뭐, 기본이 칠만원이구만.
마을 회관에 들러서 씨감자 5kg 받아오면서 할머니들이랑 얘기를 나눴다. js형 어머니께서 '장구지 동자'라는 새로운 별칭으로 나를 부르셨다. 올해는 감자를 잘 키워 보고 싶다고 하니 밑거름을 믾이 하라고 하신다. 작년엔 너무 생땅에 심었다. 올해도 밑거름은 안 하지만 철저한 관리로 6월엔 감자부자가 되고 싶다.
수입에 대한 것은 한 번만 더 기록해 두려고 한다. 열 번을 채운다고 무료 수입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 쩝.
20140320 - 일과
눈 뜨자마자 커피 한 잔 먹고 씨감자 잘랐다. 5kg 7500원이다. 강릉 작은아버지가 감자는 종자가 비싸서 돈이 안된다.는 말씀을 종종 했더랬다. 올해 심는 f1 종자를 심고 심고 또 심어서 토종으로 육성해야겠다.
5kg중에 반은 나무 태운 재를 묻히고 나머지 반은 자른 모양대로 잘 붙여뒀다. 작년보다는 일주일 정도 일찍 심어보기로 한다.
나무껍질 주워와서 텃밭 고랑에 깔았다. 그물 매는 아저씨, 형님들이 말장할 때, 나무 껍질을 벗기기 때문에 주워올 나무 껍질은 아직도 많다.
저녁엔 볼음 2리 개발위원회를 했다. 올해부터 나도 개발위원이 됐다. em으로 저수지로 흐르는 생활하수를 정화하자는 의견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을 나눴다. 면에서 안해주면 우리가 해버리지!라는 패기가 좋았다. 그렇지만 다들 농협에서 영농자금 대출을 받거나 이자만 내고 상환을 연기했다. 대한민국 농촌의 현실이 이렇다. - 이것도 작은아버지한테 자주 들었던 말이구나. -
20140321 - 일과
늦게 일어났다. js형, p형네 못자리 유박 뿌리면서 작목반 형들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늦게 일어났기 때문에 금방 점심 먹었다.
m누나한테 얘기해서 광합성 em 원액을 20리터 정도 얻었다. 쌓여 있는 똥덩어리들이 푹 꺼지며 거름이 되기를 바라면서 화장실에 많이 들이부었다.
m아저씨네서 참을 먹으면서 farmer's talk를 했고 - 점심도 여기서 먹었다. -
참 먹고나서 딱 차를 쓸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잘됐군. 분리수거 해두었던 쓰레기를 버렸다. 영뜰 나가서 나무 껍데기 아홉자루 주워왔다. 집 뒷밭 가장자리에 뿌렸다. 풀이 자라서 고라니 방지 울타리에 엉키지 않았으면하는 뜻도 있고 2년 후엔 그 자리가 비옥해지길 바라는 뜻도 있다. 빈 드럼통 여덟개를 주워왔다. 이것들은 울타리를 보수하는 대신 그 구멍난 자리에 갖다 놓으려고 한다. 어제 하다가 재료가 모자라서 마저 못한 화단 울타리를 마무리했다. 기분이 좋았다. 집에 들어오니 여섯시 십분이다.
m아저씨네서 저녁 먹고 소방대 근무왔다. 하루가 참 쉽게 간다. 일찍 일어나도 쉽게 가긴 매 한 가지겠지만 내일부터 일찍 일어나야겠다.
20140323 - 정리정리
지후랑 집주변 정리했다. 집 뒤쪽, 음식물 쓰레기 버리던 곳에 어설프게나마 울타리를 했다. 퇴비장이 완성됐다. 작년에 내 실수로 불이났던 옛날집 - 지금집이랑 바로 붙어 있음 - 자리를 정리했다. 마침 트럭을 쓸 수 있어서 석면이랑 지붕 철판들을 쓰레기장에 버렸다. 타다만 장작들도 한 구석에 잘 쌓아뒀다. 뭐랄까, 깨끗해졌다. 기분 좋다.
정리가 정리를 부르는 법이라 정리하자면 끝이 없지만 농번기전에 해야하는 중요한 정리는 한적골 논두렁 불내기, 고구마밭 울타리 수선, 굴껍질 부수기, 육묘장 설치가 남았다.
중학생 친구들 기타 잠깐 봐주고서 저녁무렵에는 포비, 지후랑 저수지를 산책했다. 포비가 좋아한 것 같다.
아침에는 몇달만에 지후의 창가를 열었다. 그리 들어오는 볕이 좋아선지 망고가 한참을 앉아있었다.
오늘 망고도, 포비도, 우리도(?) 이래저래 기분 좋았다.
20140324 - 간만에 나들이
지후랑 강화에 나왔다. 차를 빌려서 나왔다. 당초의 목적은 기술센터에 들러서 작목반에서 쓸 석회를 싣고 초지집에 들러서 우리 식탁과 가스렌지 등을 챙겨 오는 것이었다. 빌린 트럭이 섬 밖에서 타다가 문제가 생길수도 있는 트럭이어서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식탁 대신 m 아저씨네 하우스에 사용할 대형 물통을 싣는 바람에 계속 신경 쓰이는 상황이 이어졌다. 동네분들의 부탁으로 함석 다섯 장, 수도용 T자 파이프, 양파모, 상추모종, 냉동순대, 양파 한 망 등을 샀다. 우연히 j기장 부부를 만나서 자장면 얻어 먹었다. - 잘 먹었습니다. -
초지 주인집 아저씨 부부를 봐서 반가웠다. 아침엔 동네 할머니들을 터미널까지 태워드릴 수 있어서 기분 좋았다. 점심은 나를 좋아하는 분께 - 나도 좋아한다. - 얻어먹었다. 어울림 학교 교장 선생님도 만났다. 좋은일들이 많았네.
고양이 망고가 우리 식탁위에 올라가서 노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그게 미뤄진 걸 빼면 괜찮은 하루였다.
차에 문제가 생기지 않고 무사히 배에 올라탔기 때문에 이런 기분인 듯하다.
배에서 y이장님을 만났다. 3월엔 계속 출도할 일이 많다고 하신다. 4월에는 벼농사 준비로 계속 바쁠거라고 하셔서 '전 안 바쁜데.' 했더니 웃으시면서 '넌 아직 농사 초짜라 그래.' 하신다. 그렇겠죠? ^^
배 위에서 쓴다.
20140325 - 일과
오전엔 어제 실어온 석회를 내렸다. js형이랑 이곳저곳을 돌면서 필요한 만큼 내려뒀다.
오후엔 큰 일을 두 가지 했다.
첫 번째는 집안에 있던 냉장고를 정리해서 창고 구석에 넣었다. 이 집에 냉장고가 두 대 있었는데, 한 대는 우리가 쓰고 작은 크기의 나머지 한 대는 할머니가 쓰시던 그릇들을 보관하는 용도로 썼더랬다. 그릇들 다 꺼내서 박스에 담아서 치웠다. 할머니가 살아온 세월만큼 그릇들도 많다. 그리고 냉장고를 치웠다. 집이 넓어졌다. 보너스로 어제 가져온 가스렌지도 설치했다.
그리고 감자 심었다. 나는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지후는 감자를 집에 넣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밭을 갈지 않았지만 작년에 콩 심느라 한 번 갈았었던 자리라 땅 파는게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마늘 아랫 이랑에 심었다. 5kg이라 금방 심었다. 이 밭을 자연농 밭으로 만드는 게 우리 목표다. 그러기엔 800평 밭이 너무 넓은가?
20140328 - 일과
일곱시에 일어났다. 추워서 계속 누워 있었다. 우리집은 바깥보다 차다. 그렇다고 문 열어놓으면 더 차가워진다. 여름엔 시원하니 그걸로 됐다. 먹으려고 둔 마늘에 싹이 길게 올라와서 가져다 밭에 심었다. 지난 가을에 심은 친구들은 잘 자라고 있다. 오늘 심은 애들마저 잘 자라면 마늘쫑이랑 마늘 부자가 되겠다. 기분 좋네. 굴껍데기 부쉈다. 지난 겨울에 먹고 남겨둔 굴껍질을 돌 절구에 넣고 돌망치로 가루가 될 때까지 때렸다. 힘들어서 다 못했지만 내일 잠깐만 하면 마무리다. 이제 식초를 사서 녹여 쓰면 된다. 오늘까지 만든 가루만으로도 몇 년은 쓰겠군. 만족스럽다. 지후랑 냉이 캤고 육묘장으로 쓸 자리에 활대 꽂았다. 완이형이랑 d가 놀러와서 앞마당에서 맥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 10년 후면 우리가 이 섬의 주인입니다. ㅋㅋ - 그 와중에 망고는 바깥나들이를 실컷했다. 포비랑 산책했다. 쯔쯔하고 혀를 차는 소리를 내면 포비가 간식을 먹으러 오는 훈련중이다. 오늘은 먼저보다 성과가 좋았다. 망고 목욕시켰다. 두루치기 만들어서 저녁 먹었다. 김치는 여러 양념이 들어가니까 요리할 때 이것저것 신경 안 써도 된다는 점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뭐 이런 하루였다.
짤방은 마늘이랑. 색깔이 느무 이쁘다.
20140330 - 일과
어제는 죽바위 해군 기지 아래쪽 갯벌에 상합 잡으러 갔었다. 세 시간 정도 열심히 일하고 10kg을 캤다. 처음 캔 것이라 우리 조금 먹고, jk형이랑 술 안주로 조금 먹고, m아저씨네 다 드렸다. 조개신이시여, 올해도 잘 부탁합니다.
오늘은 일당일을 했다. 장뇌삼 심을 언덕에서 나무 자르고 치워냈다. 이틀 더 하기로 했다.
저녁에는 k가 집 앞에 두고간 매실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매실은 얼른 먹고 싶으니 조금은 거름을 줘야겠다. 지후랑 포비랑 함께 바닷가에 가서 미세종자 파종에 쓸 모래를 가져왔다.
무난했던 하루였다.
20140201 - 2월, 새해 목표
2월이다. 휴식은 끝났다. - 실질적으론 두 달 더 남았다.
새해 목표
소식 - 적게 먹을테다.
금연 - 끊을테다.
부지런히 - 몸을 놀리는 일을 귀찮아하지 않기.
아내 - 지후 빡치게 하지 않고 지금보다 더 잘 지내기
포비 훈련 - 하는데 까지는 해보자.
공부 - 비폭력 대화, 농사
20140207 - 창고정리
집 앞에 창고 건물이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쓰시던 걸 우리가 잘 쓰고 있다. 총 세 칸인데, 가운데는 내 화장실이고 한 칸은 분리수거실, 나머지 한 칸이 창고다. 지후는 선반을 놓고 싶어했지만 내가 목공에 관심이 없는 관계로 -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점이 더 큰 관계로 - 안 쓰는 장롱 한 짝 갖다 놓고 정리했다. 집안 장롱에 봉도 연결했고 칸막이도 하나 달았다. - 지후가 꼭 필요하다고 전부터 말했기 때문에 톱질과 못질을 했다. -
말끔하다. 작년에 고추 심었던 자리에 콩대도 쭈루룩 깔아줬다. 이렇게 올 농사를 준비해 간다.
지후야 해피해피해?
20140208 - 닭잡았다
점심 먹고 대다래랑 샛멀에 잠깐 다녀왔다. 완이형이랑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앉았는데 지후한테 전화가 왔다. 포비가 훈련 중에 탈출했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텔레텔레 걸어오는데 mj누나네 닭장쪽에서 꽥꽥소리가 들렸고 y이장님 차가 대로변으로 지나갔다. 이윽고 포비가 닭 한마리를 물고 내 앞을 지나 우리 밭 구석으로 총총 걸어갔다. 포비를 붙잡아서 혼찌검을 내줬다. 닭이 아직 죽진 않았다. y이장님한테 전화해서 지나가는데 우리개 같은 놈이 닭을 한 마리 물고 올라가더라고 해서 해병대에서 잃어버린 개가 아닐까요. 했다. 죄송합니다. mj누나네 가서 자초지정을 말하니 잡아 먹자고 해서 동네친구 k한테 닭잡는 걸 배웠다. 닭은 돼지랑은 달리 크기가 작아서 잡는 것도 쉽고 털 뽑는 것도 쉬웠다. 억지로 찾아서 잡지는 않겠지만 다음에 닭 잡게 되면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포비가 물고 왔던 닭은 크기가 작아서 수탉도 한 마리 잡았다. 볶음탕을 해서 맛있게 먹었다.
올해부터 닭을 키울까 했는데, 생각 좀 해봐야겠다. 잘 길러서 가끔 한 마리씩 잡아서 작목반 형들이랑 먹으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달걀도 먹고.
20140211 - 날은 지났지만, 속상해서
제주도에서 8년간 일군 유기농 감귤밭을 밭 주인에게 돌려주게 생긴 분의 이야기를 읽었다. 하필이면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할 때 읽었다. 가슴안의 무언가가 덜컥 내려 앉았다. - 예수 믿는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믿음이 없어서 이런꼴을 당했다고 하겠지. -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는 달라서 이런 느낌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일면식이 있는 분이라 기분이 더 안좋은지도 모른다. i형도 농사 일 년 짓고 포도밭 3000평을 주인에게 돌려줘야 했다.
어째서 이런일이 생기나?
강릉에서 많이 들었던 얘기가 있다. 논을 얻어서 벼농사를 짓는다. 논둑에 풀이 믾으면 다음해에 뺏긴다. 제주도 감귤농장이 똑같은 상황이다. 땅주인이 봤을 때 맘에 안들면 내가 아무리 소신있게 농사를 지어도 아무 소용없다. 땅주인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땅의 80%를 4%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것이 더 큰 문제다. 20%의 땅을 가지고 지주와 소작인이 다투는 것이다.
내가 궁금한 건 80%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강호동이 평창에 땅을 갖고 있어서 문제가 된적이 있는데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 땅에서 밭을 일구어 먹고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자리에 대한 농업경영체가 누구 앞으로 등록돼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이것은 국가 정책의 문제다. 농민들에게도 문제는 있지만 - 임대차 계약서를 쓰고 농지를 빌려주면 자기땅 빼앗기는 줄 아는 분들도 있다. - 농민들은 어쩔 수 없는 부분에 많다. 농민들이 아무리 자기가 농사짓던 땅임을 주장해도 법적으로 그 땅은 땅 주인의 땅인 것이다. - 우리집 뒷밭도 마찬가지다. - 그래서 사람들은 땅을 원하고 땅 값은 오른다.
법적으로 농지는 농사 짓는 사람만 소유할 수 있게 돼 있는데 이 법을 피해갈 수 있는 법들이 너무나 많다.
올해도 작년처럼 미등록 농민으로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20140213 - 척사대회
척사대회를 했다. 한쪽에선 고기를 굽고 한쪽에선 윷을 던진다. 그러다 점심을 먹고 윷을 마저 던진다. 시간을 잘못 알아서 느즈막히 갔다가 점심 먹고 집에 왔다. 주최가 어디가 됐건 - 우리동네는 교회 주최임 - 동네분들이 많이들 모여서 모처럼 즐겁게 노는 것은 좋다.
다만 입에 들어가는 것과 밥숟가락을 빼면 전부 일회용품을 쓴다는 것이 싫다. 교회에서 밥 먹고 자기가 자기 먹은 것을 씻는 문화를 만들면 오늘같은 날도 일회용품은 안 쓰고 지나갈 수 있을텐데.
나만 해도 종이컵 두 개랑 나무젓가락 두 쌍을 버렸으니 궁시렁거릴 것 없는 걸까?
이제부터 일회용품은 무조건 쓰지 말아야겠다. 무조건이 들어가야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할 것 같다.
밥 먹고 돌아와서,
집 뒤에 개두릅나무가 있다. 엄나무 뒤쪽에 뭔가를 심으면 좋겠어서 그 자리를 정리하고 불을 놨다. 그리고는 js형네 고추하우스 정리하는 것 도왔다.
하루가 참 쉽게 간다.
(짤방은 작년 척사대회. 그 땐 누가 누군지 몰랐는데, 이제 보니 다 알겠네.)
20140216 - 뻐근
어제 일 좀 했다고 어깨가 뻐근하다.
동네 어느 아저씨에게 결국 내 몸만 상하니 남의 일 열심히 해주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제는 열심히 했다. 태생이 열심히라 어쩔 수 없다. 우리일은 우리일이라 조금 힘들면 쉬멍쉬멍하게 된다. 남의일은 남한테 피해가 될까봐 열심히 하게 된다.
농사 시즌을 앞두고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
조개는 열심히 줍고 농사일은 쉬엄쉬엄 하자.
20140218 - 우리는 개를 키우면 안된다
엊그제 '하나뿐인 지구'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된다.'를 봤다. 꽤 많은 페친들이 링크를 걸었던 화제작이다.
우리개 포비가 분리장애를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 포비는 나랑 지후가 아닌 사람을 보면 미친듯이 짖는다. 삼십미터 떨어져 있어도 짖는다. 또 포비는 내가 불러도 내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 산책을 하다가 '이리와'라고 해도 좀처럼 내게 눈길을 주지 않고 자기 페이스대로 행동한다.
다큐를 보면서 원인을 분석했다 . 우리가 훈련을 잘 못 시킨 것과 - 포비는 앉아. 만 할 줄 안다. - 포비가 너무 어릴때 엄마랑 헤어지는 바람에 사회성을 충분히 체득하지 못한 것이 현재 포비의 분리장애를 만들었다.
많이 미안하다.
닭 잡아 먹었다고 때린것도 미안하고 많이 예뻐하지 않고 괜찮겠거니 생각하면서 먀칠씩 집을 시간이 비운 것도 미안하다. 얼마남지 않은 농한기 기간에 산책을 많이 해야겠다.
포비는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반려견이다. 절대 안 잡아 먹을게.
왜 개 얘기를 썼느냐.
오늘 점심 먹고서 밧줄로 올가미를 만들어서 y이장네 갔다.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에 개 한 마리가 우리를 탈출했다. 동네 닭 잡아 먹을까봐 얼른 잡아서 우리에 넣어야 하는데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는 j할머니의 제보를 받고, 젊은놈인 내가 출동한 것이다. 닭가슴살로 살살 유인했다. 놈은 다가올듯 다가오지 않았다. 놈은 멀찌감치 던져준 닭가슴살만 먹고 나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가만히 주저 앉아서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녀석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러더니 j할머니네 밭으로 유유히 올라갔다. 나는 강압적인 방법을 써야겠디고 생각하고 놈을 따라갔다. 밭에는 고라니 방지용 울타리가 둘러져있었다. 놈을 구석으로 유인했다. 결국 녀석은 도주를 포기하고 밭 구석에 주저 앉았다. 나는 녀석의 목을 밧줄로 옭아맸다 그리고는 놈을 번쩍 들어서 - 줄을 당기니까 개가 버티길래 - 놈을 개장으로 넣었다.
내일도 점심 먹으러 회관에 간다. 동네분들은 나에게 잘했다고 하시겠지만 나는 그 개에게 못할짓을 한 기분이다.
우리는 개를 키우면 안된다. - 우리는 포비를 마지막으로 개를 키우지 않을거다. -
20140221 - 1주년
지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볼음도 이사 일년 기념으로 집에서 고구마 먹으려고 했는데, 부산에서 볼음도의 두 번째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그저께 집을 나왔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집을 배우게 됐는데, 포비랑 망고 생각만 자꾸난다. 미안하고 걱정된다. 포비는 혼자 하울링을 하면서 우리를 기다릴 것이고 망고는 이놈들이 어딜갔나 생각하면서 자다깨다 할 것이다.
죽음으로 돌아와서,
이번 겨울에 섬 안에서 여러 죽음의 소식을 들었다. 누구네 형, 누구네 어머니, 누구네 삼촌 등이다. 시골분들은 주로 겨울에 많이 돌아가시는 것 같다. 낭만적으로 생각하면 농사를 마치고 농한기에 운명을 달리하시는 것인데, 사실은 추위가 약해진 사람의 몸을 더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다시 볼음도로 돌아와서,
2년차다. 올해의 키워드는 조개다. 무조건 많이 잡아서 많이 번다.
20140101 - 영지버섯
그저께 동네 친구 k한테 영지버섯 채집을 배웠다. 집 바로 뒤에 있는 작은 언덕 같은 산 - 요옥산 - 을 다니면서 죽은 참나무에 의지해서 살고 있는 영지를 땄다.
어제는 해넘이 본다고 놀러온 친구 둘이랑 그저께 배운 걸 실습했다. 한 번이라도 해 본 놈이 낫다고 내가 엄청 큰 버섯을 발견했다.
동네에 영지버섯이 있는 이유는 동네분들이 예전에 영지버섯을 재배했었기 때문이다. 동네에 장뇌삼이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줌마 형님 형수님들이 행한 어떤 노력들이 세월과 함께 쌓이고 나는 그 위에 숟가락을 얹는 느낌이다. 나의 노력도 그렇게 쌓여가겠지. 대를 이어 살아간다는 게 이런것이겠지.
올해로 서른일곱이 되었다. 나이 먹는 일에 아무런 느낌도 없다. 그저 그뿐이다.
20140105 - 굴, 소라, 계획, 포비
k형, k누나랑 바다에 나갔다. 배를 타고 선창 앞에 있는 작은 무인도로 가서 소라 줍고, 굴배 땄다. 소라는 삶아 먹고 굴은 까 먹으면 된다. 자고 일어나서 먹어야지.
오후에는 아내랑 올해 계획을 세웠다. 결론은 우리의 소신은 지키면서도 생활비는 버는 것이다. 우리의 소신이 어려운 부분인데, 나도 아내도 인문학적 소양이 척박하다보니 소신이랄 것이 없다. 물론 농사는 쭉 비닐 쓰지 않고 화학비료 쓰지 않고 유기농으로 짓는다.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에 둥지를 탈출한 포비가 동네 닭들을 물어 죽였다. 포비야 널 어쩌면 좋을꼬. 일단 다시는 탈출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망고 중성화 수술도 시키기로 했다. 우리 동물 식구들아 사랑한다.
20140106 - 굴밥
느즈막히 일어나서 바지런을 떨었다. 굴배 따온 것 쪼다가 회관에서 밥 먹고 아내랑 포비랑 뒷산 한 바퀴 돌다가 영지버섯 두 개 줍고, 굴 마저 쫬다. 나는 생활과 관련된 일에 약한 편인데 굴을 잘 쪼는 것 같다. 상합이랑 굴이 내 적성에 맞는 걸까?
여튼 굴이 엄청 많다. 아내가 만든 간장 양념으로 굴 비빔밥 해 먹었다. 밥에 굴을 넣은게 아니라 굴에 밥을 넣은 형상이다. 밤참으로는 굴빠게티 끓여 먹고 내일은 정식으로 굴밥 해먹어야겠다.
어제 m아저씨네 소라 삶아 갖고 가서 엄청 먹었더랬다. 정초부터 너무 잘 먹는거 아니야? 기왕 바지런을 떨었으니 오늘은 작목반 블로그 만들자.
20140107 - 굴만찬
어제처럼 느즈막히 일어났다. k형네 가서 점심 얻어 먹었다. 노트북을 들고 가서 형수 폰엔 천수경을 형 폰엔 2013트로트 히트곡을 옮겨 넣었다. k형은 핸드폰에서 노래가 나오자 아이처럼 좋아했다.
o형네 못자리 가서 볏짚 묶었다. 우리 자리는 먼저 묶어서 뒷밭에 살짝 덮었다. 이제 m아저씨네 한 자리 남았다. 볼음도는 볏짚을 다 도로 논에 썰어 넣기 때문에 볏짚이 귀하다. 잘 모아 뒀다가 요긴하게 써야지.
저녁은 완이형이랑 먹었다. 지후가 굴만찬을 마련했다. 굴전, 굴무침, 굴국까지 해서 먼저 주워온 굴들이 제 몫을 다하고 냉장고에서 사라졌다.
이렇게 하루가 간다.
20140108 - 빅엿
오늘은 일찍 일어났다. 택배 아저씨가 아침배에 짐 싣는다고 전화했다. - 우리 동네는 우체국이 아닌 나머지 택배는 외포리에 있는 중간 택배 아저씨가 보내준다. 고로 비용이 더 비싼가? 택배 실었다는데 바로 못 찾으면 분실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 -
c 이장님네 컴퓨터 주문한 것이 왔다. 나는 차가 없는 관계로 이장님이 날 태우러 오셨다. 선창에 가는 길에 ks, kk할머니네 들러서 보일러를 살폈다. ks할머니네는 심야전기 보일런데, 물온도가 낮길래 전기를 강제로 돌렸다. - 중간에 에러가 나서 강화도 경동보일러 아저씨한테 전화해서 에러를 바로 잡았다. - 몇 시간 있다가 다시 들러서 잘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할머니, 전기세 아끼지 마시고 따숩게 지내셔요. kk할머니네는 기름 보일런데, 보일러가 도는데도 방이 따뜻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물온도가 중온으로 설정돼 있길래 고온으로 올렸다. 이 집도 나중에 확인해 봐야한다. 그러고는 c형네 세워 놓은 내 오토바이도 살폈다. c형이 고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안심했다.
c이장님은 큰 동네 이장에 교회 장로여서 참으로 일이 많다. 나는 도저히 그렇게는 못할것같다. 그래도 막상 닥치면 누구보다 잘 할지도 모른다.
여튼 그래서 컴퓨터를 갖고 집에 왔다. 윈도우를 설치하려는데 odd도 없고 64기가 ssd만 덜렁 달려 있었다. 아 내 실수다. 남의 물건이라고 내것 주문하듯 꼼꼼하지 못했다.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들었다. 전적으로 내 실수다. 아내는 os도 설치된 걸 사라고 했지만 - 내가 괴로워 하니까 아내가 그렇게 말함 -그렇게 하는 건 서로 돕고 사는 게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야지.
c형이 오토바이를 고쳐줬고 컴퓨터도 우체부가 가져가줬다. 도서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 우체국에서 안 받아주면 차에 컴퓨터 싣고 배 타고 나가서 강화에서 택배 보내야 함 - 우체국에서 컴퓨터를 받아줬다. c형, 우체부아저씨 모두 고맙습니다.
마음이 진정되고 나서는 아내가 회관에서 얻어온 엿을 먹었다. 양재기 바닥에 붙은 것을 숟가락으로 긁어 먹었는데, 숟가락에 엿을 돌돌 감아서 빅엿을 만들어서 먹었다. 망고도 행복하고 아내도 나도 행복하다.
잘해보려다 하는 것이 후회라지만 후회는 적당히 하는 게 좋으니까 잘 좀하자.
20140109 - 포비랑 산책
회관에서 점심 먹고 포비랑 산책했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돌까하다가 너무 추워서 은행나무 뒷동산에 올랐다. 여름에 놀랐을 때는 숲이 우거져서 잘 몰랐는데, 가지만 남은 나무들을 요리조리 헤치고 동산에 오르니 전망이 참 좋았다. 바다가 얼었다. 이승만 시절을 호시절로 기억하는 동네 할매들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겨울이면 바다가 얼어서 연백땅까지 걸어 갔다고 한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연백평야에서 농사 짓는 내 모습을 상상했었다. 이런 게 직업병이겠다.
여튼, 강풍에 먼지가 싹 날린 하늘은 깨끗했고 - 오늘밤엔 은하수를 볼 수 있겠다. - 나도 포비도 지후도 기분이 좋아서 포비랑 지후는 손을 잡고 춤을 췄다. 포비야 네가 동네 닭들 물어 죽인 죄는 다 잊었다. 격하게 아낀다. 오래오래 행복하자.
20140110 - 캣타워
점심 먹고 포비 산책 및 볏짚 마저 묶으려고 은행나무 들에 나갔다. 이런 낫을 안 가져왔네. 할 수 없지. 내일도 날이니까 그냥 돌아왔다.
가만 있기 뭣해서 캣타워를 만들었다. 지후는 예쁘고 깔끔한 걸 원했지만 그 의견을 묵살하고 집에 있는 상자들을 이어붙여서 낸 맘대로 만들었다. 캣닢을 조금 넣어줬더니 망고가 좋다고 난리났다.
난리도 잠시뿐으로 망고는 캣타워 보다는 텐트 안에서 자는 걸 더 좋아하는 듯하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이불이 있어서 그런가?
더 크면 새로 만들어줄게. 예쁘고 깔끔하고 막 올라가고 싶은 걸로. ㅋ
20140112 - 교회
일요일 오전, 손가락 가는대로 눌러본다. 교회에 와서 또 쓴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인가? 뭐라도 쓰고 싶어서 교회에 나오나? 나는 이성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맹목적으로 무조건 믿으면 된다는 나약한 이 종교와 믿음을 따르긴 어렵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 아픈 아내를 집에 두고 예배실에 앉아 있나?
동네 중학생들 기타 레슨이 있고 의용소방대 관련된 일로 소방대장 아저씨가 오늘 예배 끝나고 보자고 했고 어제 k장로네 컴퓨터 가져와서 손본 것에 대한 경과도 알려야 하고, 다음주에 나가는 일 때문에 소방대 근무날을 바꾸고 싶다는 얘기를 l형에게 해야한다. 나에게 교회는 동네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다.
국유림을 장기 임대해서 산장을 하나 짓고 그곳에서 단 둘이 살까? 아니면 코스모스 밭 한 가운데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내고 간판도 메뉴도 손님도 없는 작은 식당을 내도 좋겠다.
나는 지금 왜 볼음도에 있나? 어딘가 다른 곳에서 나랑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서 뭔가를 함께 만들어가면 즐거울까? 나는 야망이 없다. 살아야겠다는 의지는 있다. 이런 지경이니 어떻게든 살아나가기만 하면 괜찮은걸까? 야망이 없으니 뭔가가 없다. - 어제 동네형한테 볏짚 묶는 거 말고 뭐 획기적인 걸 찾을 생각을 하란 얘기를 들었다. - 지후는 나랑 다르겠지? 지후가 사람들한테 지쳐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고 하면 내가 그애를 버틸 수 있을까?
교회에만 오면 마음이 흔들리니 교회는 당분간 관둬야겠다.
20140114 - 의용소방대
자려고 누웠는데 의용 소방대에서 옷 찾아 가라고 전화가 왔다. 그렇다. 나는 올해부터 볼음도 의용 소방대다. 6일마다 한 번씩 소방대 사무실에 나가서 근무를 서야한다. 그리고 동네에 불이나면 불을 끄러 가야한다. 소방대가 아니어도 불이나면 불을 끄러 달려갈 터인데 나는 왜 소방대를 하는가?
동네에 사는 증명이다. 교회에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두 가지 다 일주일에 한 번이니 그리 힘든일은 아니다. 그런데 마음이 안 좋다. 관습적인 부분에서 동네 사람이 되는 것이 나에게 의미가 있을까? 제가 이사 와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저 좀 예쁘게 봐주세요?
국가의 보여주기식 행정을 욕하면서 스스로가 보여주기 식으로 살고 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한 건 소방대에서 신입 대원에게 너무 많은 옷과 신발을 줬기 때문이다. 두고두고 입으면 되겠지만 나는 옷도 신발도 넘쳐나도록 많다. 제주도 다녀와서 점점 물건들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새 물건이 쌓이니 기분이 안 좋다. 앞으론 장모님이 옷 사주시면 거절해야겠다. 언제 어디로 이사 가더라도 짐은 일톤 트럭 한 대 분량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을 살자. 지금 우리 짐은 두 대 분량은 될 듯하다.
페북에서 남의 고양이 발 사진을 봤다. 발톱 끝이 딱딱해 보인다. 망고 발톱 잘라줬는데, 나중에 나가서 살지도 모를 놈에게 불필요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다.
필요와 불필요를 정하는 것은 나다. 나부터 정리해야 한다. 어떻게? 별일 없이 사는 것은 좋지만 되는대로 살긴 싫다.
20140126 - 어영부영
어제는 동부한농팜 강화 대리점 사장이 볼음도에 왔더랬다. 볍씨 넣을 때 모판에 볍씨랑 같이 넣으면 수확때까지 추가로 거름을 주지 않아도 되는 농법과 비료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동네 아저씨들은 그 양반이 무슨 말만 하면 - 예를들면 석수를 적게 잡아서 드물게 심어라. 같은 - 우리 동네에선 안된다고 했지만 나는 비료장사한테 많이 배웠다. 안 그래도 올해는 고시히카리를 유기농 교본대로 농사 지어볼 생각이었다. 벼농사 짓는다는 놈이 벼의 생물학적 특성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이 뜨끔했다. 사람들도 나도 어떻게 하면 농사가 잘 될까만 생각하지 식물의 특성을 알고 그에 맞춰 농사 지으려고 하지는 않는듯하다. 마음 먹었을 때 공부해야겠다. 농사는 하늘이 98%지만 2%라도 열심히 해야 98%한테 원망도 할 수 있는 거겠지.
올해 벼농사에 대한 자세한 계획은 공부하고 나서 나중에 따로 올리기로 한다.
교회 갔다 와서 두 건의 기타 레슨을 마치고 - 제자들 실력은 안느는데 선생이 늘고 있음. - 선창에 지후 마중 갔다 오니 하루가 다 갔다. 뭔가 어영부영이다.
명절 지나면 2월이다. 어영부영 하다가는 3월되고 4월된다. 작년에는 막 이사와서 어리버리했지만 올해도 그럴 순 없다.
2월에 할 일 - 고라니 울타리 칠 나무 자르기, 집 뒷밭에 사용할 부엽토 뜨기, 창고에 선반 만들고 정리
3월에 할 일 - 고구마밭 고라니 울타리 손보기, 표고목 세우기
잘하자.
20131203 - 12월
12월이다.
붕어 잡아서 초지 주인집 아저씨 드리려고 했다. 저수지로 흐르는 개울에서 뜰채를 휘둘렀다. 이형들 저형들이 많이 잡아 갔다더니 붕어가 안 잡혔다. 저수지로 이어지는 다리밑에서 뜰채를 휘둘렀더니 새우가 많이 잡혔다. 실컷 잡았다. p형, 완이형이랑 라면 끓여 먹었다. 완전 새우탕이다. 맛있었다. daniel 놀러오면 라면 끓여 줘야겠다. 민물새우는 김치찌개에도 라면에도 무우국에도 어울린다고 한다. 내일도 새우 잡아야겠다. 우리섬애는 다양한 자원들이 넘친다고 생각했다. 잘 보존해야지.
12월에 할 일
- 이번주에는 붕어랑 새우 잡기
- 자르지 않은 볏짚 수거, 하루면 된다
- 난로 구입? 한다면 나무 하기.
- 시간 날 때마다 굴 채집
- 벼 도정, 농민회에 톤백 네 개가 있는데 몇 개를 도정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20131211 - 도지
아내랑 문자를 주고 받았다. 파란색이 아내. 아. 웃겨.(도지 입금하고 거지됐다는 문자 짤...)
문제는 1800평에 대한 도지가 아직 남았다는 것. 그날에도 웃을 수 있어야 할텐데.
20131215 - 슬럼프?
주중에 서울에 다녀 오고서 오늘 오후까지 쓸쓸했다. 아내도 없고 너무 많이 마신 탓에 몸도 안 좋고 자기 분야에서 어떤 결과들을 만들어낸 형들이랑 마신탓에 나는 뭐 하는거지. 생각한 탓도 있다. 그러다가 안녕들 하십니까.가 등장했다. 난 뭐 하는 거지?
결론이야 잘 알고 있다. 하루하루 즐겁게 , 남들이 보는 기준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들게.
근데 그게 어렵다. 나를 지탱하는 무엇이 너무 약해서 쉽게 끊어진다는 느낌이다.
마음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났을 때 하는 게 중요하다. 아내는 춤 쎄라피를 같이 하자고 했다 그것도 좋다.
작목반 쌀 포장지도 말 나왔을 때 만들어야 하는데 한 번 모이기가 어려우니 시작도 하기 전에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 그래도 한 번 해 보자. 의견들을 모으고 절차와 순서에 맞춰서 서로 감정들도 상해가면서 한 번 해 보자.
우리 동네가 교회 점심밥 당번이라 예배 끝나고 할머니들이랑 함께 뒷정리를 했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내일은 망고 캣타워 재료로 쓸 나무 잘라야겠다. 기분이 오늘보다 나아지겠지.
20131219 - 마을총회
마을 총회를 했다. 노인회, 부녀회가 올해의 수입과 지출을 알려주고 몇몇 사람이 이장에게 불만 사항을 얘기하니 총회가 끝났다. 매년 총회마다 오늘 같았겠구나 내년에도 같겠구나 생각하니 (나도 사람들도 동네도 싫어졌다.) 답답해졌다.
뭐, 됐고
그래서, 그래 나만 잘 살면 되는거야. 생각했다.
그랬는데 저녁에 y이장님이 집에 오셔서 나랑 관계없는 동네 상조회원들 연락처를 만들었고 단체 문자도 보냈다. - 무료문자 다 썼다.
그래,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하면서 같이 살아보자. 생각했다.
휴우
20131220 - 윷놀이
회관에서 윷놀이를 했다. 어제 총회를 했으니 단합대회도 한 번 하자는 취지다. 참가자 리스트를 작성해보니 볼음 2리 주민은 23명이다. 나는 참 작은 동네에 살고 있구나. 새삼스럽다. 토너먼트를 진행하는데 있어 딱 맞아 떨어지는 수가 아니었다. 중간중간 적당히 부전승을 끼워 넣으면 될 것인데, 그걸 정하는데 삼십분 걸렸다. 나는 참 작은 동네에 살고 있구나. 동네 어른들은 이렇게, 몇 십년을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쌓아오며 살아오셨구나. 아내 말대로 고개를 끄덕여본다.
ks할머니네 뽁뽁이 붙이러 갔더랬다. 심야전기 보일러가 고장났다고 하셨다. 이런때 단순 오작동인 경우를 많이 봤더랬다. 그래서 강화 본도에 있는 보일러 아저씨한테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몇 가지 조치를 취했는다. 오늘밤에 지켜봐야 확실히 고장인지 알 수 있다. 할머니는 얼마나 애가 타실까? 할머니가 혼자 살기에 힘든 동네다. 뭐 당장 나만해도 오토바이 뒷바퀴 때문에 뭍에 한 번 나갔다 와야한다. 어디 그것 뿐이겠는가?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은 이곳 하늘의 별만큼 - 우리동네에선 가끔 은하수도 보인다. - 많다.
동네 이벤트가 끝났으니 이제 일해야겠다. 올해 안에 볏짚 수거를 마치고 망고 캣타워 만들어야지.
엄마는 아침에 전화해서 춥게 지내지 말라고 한 걱정을 했다. 장모님은 이런저런 것들을 택배로 보내셨다. 역시 믿을 건 가족 뿐인가. 잠깐 생각했다. 어디 믿을 것이 가족 뿐이겠는가. 누가 됐건 뭐가 됐건 내가 믿으면 그만이다.
20131223 - 달력
달력이 세 개 생겼다. 농협, 수협, 교회 달력이다. 우리 동네는 물 때가 나와 있지 않은 달력은 달력으로 치지 않는다. 조수표도 가급적 외포리 기준으로 나와 있는 것이 좋다. 농업, 어업, 교회는 볼음도를 상징하는 주요 키워드이기도 하다.
올 2월에 이사 오는 바람에 물 때 달력이 없어서 조개 주우러 갈 때 여러가지로 섭섭했더랬다.
달력이 생긴것만으로도 우리 동네에 좀 더 다가간 느낌이다. - 마음속에 아직 확실히 이곳이 우리 동네란 느낌이 없기 때문일까? - 우리 동네는 우리 동넨데 좀 더 친숙해져야 하는 우리 동네다.
20131104 - 우리집, 의심, 배
어제 오훗배로 집에 들어왔다. 집에 오니 포비랑 망고가 나랑 아내를 반긴다. 돌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안심이다. 집 = 안심 이다.
강원도 모임에서 형들한테 혼나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역시 강릉에 있었어야 했나.하는 생각을 했다.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 나를 지지해 줄 사람들이 있는 곳, 마음이 편한 곳이 강릉이다. 뭐, 내가 지금 볼음도에 살고 있으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형들한테 혼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내가 내 일에 너무 무심한 것 같다. 좀 더 공부하고 연구하고 실천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어떤 생각으로 귀농한걸까? 귀농의 꿈을 한 번 이루었으니 다른일을 해야하는 걸까? 자신의 삶에 대한 의심은 인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의심은 끊이질 않는다.
그런 의심의 한 가운데서 오늘 꽃게 잡이 배를 탔다. ks형이랑은 처음 함께 일했다. 배도 처음 타봤다. 그물을 묶어서 바다에 넣고 꽃게를 따는 일은 재미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내 직업적 결론일까? 여전히 의심이 끊이질 않는다. 내일도 배를 탄다. 11월엔 의심속에 꽃게를 잡을 것이다.
나는 부코우스키가 될지도 몰라. 의심 속에 잠든다.
20131107 - 도반소농공동체 추수잔치
에 다녀왔다. 각자 음식들을 준비해서 푸짐하게 차려 먹고 술도 한 잔씩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올해 수확한 쌀을 가져가는 자리다.
즐거웠다.
내 마음속에는 우리집에서 작목반 형들, 가족들과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빡빡하다보니 그런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이런때야말로 한해를 돌아보며 무탈하게 농사지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에 형들이랑 술 마실때는 수확제를 대신해서 감사의 마음도 전하고 평소에 안 하던 얘기도 - 불만사항 - 해야겠다. 물론 나도 불만사항을 청취해야겠지.
도반소농공동체에는 나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몇 분 있다. 홍 선생님이 나를 보면 자신의 젊은 시절이 생각난다고 하셨다. 감사합니다. 우리 고구마를 많이 팔아주신 정 선생님도 오셨댔는데, 얼굴을 몰라서 미처 인사를 못 드렸다. 내색이라도 하셨으면 좋았을텐데, 아무튼 감사합니다.
다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20131110 - 쌀판매
교회에 오면 습관적으로 핸드폰에 뭔가를 쓰고 있다. 오늘도 그렇다.
이번주에는 배에서 꽃게를 잡았고 맛있는 걸 많이 먹었고 도반소농공동체 추수잔치에 다냐왔고 맛있는 걸 많이 먹었고 쌀을 가져왔고 어제는 비가 왔다. 그러더니 오늘은 춥다. 많이 춥다.
2013년 11월 현재 제일 중요한 일은 쌀 판매다.
750kg 톤백 두 자루를 옥림리 정미소에서 도정했다. 현미랑 백미 합해서 10kg 포장지 118개가 나왔다. 도정료(용공)로 7개를 내고 111개가 남았다. 수매한 것 말고 개인 판매용으로 남길 때는 톤백 더 개 정도는 팔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집에 쌓여있는 쌀 포대를 보니 막막하다. 농민회에서 도정한 것이 아니라서 포장지에 유기농 인증 마크가 안 붙어있는데, 그것도 신경 쓰인다. 택배비도 쌀값도 신경 쓰인다. 엊그제 우리 쌀로 밥을 해 먹었다. 맛있었다. 내가 농사 지은 쌀을 먹는 기쁨은 없고 그냥 맛있다는 생각만 했다. 건조한 계절을 따라 나도 건조해져 간다.
내년에는 양이 많이 나오게 농사를 잘 지어서 좋은 쌀이지만 싸게 팔아야겠다. 좋은 건 비싸기 때문에 없는 사람들은 사 먹을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아내가 항상 강조하는 내용이고 나도 동의한다. 없는 사람들도 부담없이 사 먹을수 있도록 작물들을 키워야겠다.
20131111 - 남은 일들
오늘부터 쌀 팔기 시작했다. 잘 팔려서 농민회 수매한 것도 조금이라도 팔 수 있으면 좋겠다.
집 안이랑 주변이랑 바깥에 할일들이 널려 있다. 들기름 짜기, 고추 마지막으로 따고 고추밭 정리, 고구마 밭 비닐 미저 제거, 팥 꼬투리 마저 까고 고르기, 메주콩 바람에 한 번 더 날리고 고르기, ㅇ형네 못자리에서 볏짚 묶어 가져오기, 서리태 타작과 갈무리, 동네 김장 일손 돕기 등이다. 적어 보니 그리 많이 널려 있진 않네.
천천히 해야겠다.
춥다. 아까부터 두꺼운 이불 안에 누웠다. 몸에 열이 난다. 몸살이 오려나. 오늘은 이대로 씻지도 않고 잠들겠네. 뭐 그것도 좋지.
20131112 - 아내
팥도 고르고, 콩도 고르고, 웹자보도 만들고, 택배 상자에 들어갈 문건도 만들고, 포장지도 주문하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부르면 다녀와야 하고 다른 집 김장도 돕고, 반찬도 만들고, 추수감사절 예배 때 피아노 반주도 해야한다.
처음이고 경험삼아 하는 이 모든 일들이 끝나고 누군가 불러서 나가는 일도, 집안일도 짜증나고 지겨운 것이 되면 아내는 어떻하지? 내가 여자라면 절대 살고 싶지 않을것 같은 낙도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묵묵히 해내는 아내가 참으로 대단하다.
그런 지후가 지금 내 옆에서 잔다. 내일은 같이 서리태 꼬투리 까야지.
20131113 - 야외점심
완이형, 지후랑 조갯골 해수욕장에서 점심 먹었다. 완이형은 고기랑 라면, 우리는 술이랑 밥이랑 반찬을 준비했다. 백사장에 널브러진 나무들을 주워와서 불을 피우고 그 불에 고기랑 감자,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컵라면도 먹었다. 맛있었다.
친구들이 왔을 때, 함께 놀 옵션이 하나 추가됐다.
완이형, 감사합니다.
형은 오늘처럼 따뜻한 날이 아니라 추운날 오돌오돌 떨면서 먹는 게 더 맛있다고 했다.
형, 그건 악취미에요.
낙도에 사니까 이런건 참 좋다. 사실 난 볼음도가 낙도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ks형이 자꾸 낙도라고 하니까 나도 따라서 낙도라고 하게 된다. 낙도라고 하면 안 좋은 느낌이지만 나는 그래서 더 좋다고 생각한다. - 어제 우체부가 앞으로는 월요일에만 택배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ㅠ.ㅠ - 낙도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리.
다만 오늘처럼 야외에서 고기 구워 먹으려면 고깃값은 벌어야 한다는 것이 어렵다. 뭐, 돈이 없으면 생선 잡아서 구워 먹으면 된다.
20131117 - 기타레슨
성준이랑 성빈이 기타 레슨 시작했다. 둘 다 중 2다. 나보다 20살 어리다. 왠지 세월이 야속하다.
여자한테 잘 보이고 싶다는 목표만 확실하면 기타 실력은 금방 좋아진다.고 알려줬다.
s형 기타 레슨도 해드려야 하는데, 엊그제 소방대 근무 나갔다가 만취한 상태로 잠드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형, 다음 근무때는 꼭 레슨해요.
남들한테 뭘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건 참 좋은일이다. 애들이 잘 따라와서 금방 나를 능가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나도 레슨 받아야 하는데.
20131121 - 서리태
이번주에는 서리태 털고 있다. 털어도 털어도 아직 남았다. 오늘은 키질 연습을 했다. 키질 마스터가 되는 것은 몇 년 후로 미루고 바람에 날려서 꼬투리랑 알맹이를 분리하는 게 빠르겠단 결론을 냈다.
동네 사투리로 알맹이는 알쾡이라고 한다. 할머니들이 처음 농사 짓는데, 콩도 들깨도 팥도 수확한 우리더러 대단(대견)하다고 했다. - 감사합니다. - 오늘은 시영네 아주머니가 키질 시범을 보여주셨다. wow crazy!는 이런 때 쓰라고 있는 말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내일도 모레도 콩을 털고 고른다. 아마 다음주에도 콩 고르고 있을 것 같다. 콩 고르면서 "내 콩들"하고 말하면 기분이 좋다. ㅋㅋㅋ
20131122 - 서리태 2
오늘도 서리태 털고 골랐다.
분주하게 콩 꼬투리 날리고 까고 날리고 까고를 반복했다. 해도해도 끝도 없다. 끝도 없다고 하는 걸 잘못 이해하면 콩이 몇 가마는 되는 줄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판매할 수 있는 서리태는 40kg 정도 될 것 같다. 뭐 이것도 골라봐야 안다.
일요일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하니 그때까지 콩 꼬투리는 다 까야 한다. 바람에 날려서 깨끗하게 골라내고 상품과 우리 먹을 것을 고르는 것은 그 다음이다.
메주콩에 섞인 돌들 골라내고 서리태를 다 골라야 겨울 맞이 준비가 끝난다.
아내는 오늘 휴가를 썼다. 나도 휴가 쓰고 싶다.
내일은 c이장님네 하우스 짓는 거 돕기로 했다. 잘 봐뒀다가 내년 3월에 집 뒤에 10평짜리 작은 하우스를 지어야지. 그래서 그 하우스에 여러가지 모종도 하고 후추도 키워야지.
20131126 - 메주콩
느즈막히 일어나서 지후랑 메주콩 골랐다. 정확히는 돌과 메주콩을 분리하는 일을 했다. 상 위에 접시를 올려 놓고 접시가 기울어지게 한 쪽 끝에 책을 받친 다음 조금씩 조금씩 골라냈다. 콩을 고르는 사이에 완이형, 김성진 소장, 우체부가 다녀갔다.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일을 마쳤다.
김성진 소장이 해준 함민복 시인 얘기는 참 재미있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전업 시인이란 거지다. 백미러 값 삼만원 물어내는 것이 억울하고 아까워서 친구에게 전화해서 울었다는 얘기는 김수영 시인이 술 취해서 종로 바닥에서 애인 이름을 부르며 - 부인도 있는 양반이 - 울부짖었다는 얘기에 필적한다.
올해 우리 동네 메주콩은 대체로 알이 작다고 한다. 우리것도 그렇다. 콩이 수정할 시기에 계속 비가 많이 온 탓인듯 하다. 내년엔 대원 말고 다른 종자를 심을까? 올해 얻은 보급종 종자 5kg이 그래도 남았으니 그건 무리겠지.
판매할 메주콩은 총 22.5킬로다. 동네 누나한테 넘기기로 했다. 약간 협의가 필요하겠지만 14만원은 받고 싶다.
이제 서리태만 남았다.
20131127 - 엉엉
서리태 골랐다. 동네 할머니들이 도와주셨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이제 안심이다. 할머니들은 우리 콩이 잘 됐다는 말로 나를 북돋아 주셨다. - 감사합니다. - 아내는 중간에 전화해서 왜 집에 있는 콩 다 갖다놨냐고 하면서 나를 혼냈다. - 나한테 그러지 말아요 -
점심 먹고 할머니들이랑 콩 고르다가 내년도 비료 신청하고 출장소에서 한 잔 했다. 기세를 이어서 m아저씨네서 열띤 대화를 나눴다.
울고 싶어졌다.
마침 완이형이 소방대 근무 나오라고 했다. 완이형만 있으면 붙잡고 엉엉 울랬는데 사람들이 많다.
소방대 사무실에 앉았는데, 민재형한테 쌀 구입 연락이 왔다. - 형! 도맙습니다. -
그래도 울고 싶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걸까?
지후야 !
20131130 - 들기름
내일이 아버지 생일이라 서울에 왔다. 서울 온 김에 대학로에 계신 장모님께 들러서 콩이랑 들기름을 전해드리려고 했다. 강화 터미널에 있는 기름집이 기름 잘 짜준다고 해서 터미널 기름집에 갔다. 오전 9시 40분에 이미 8명 정도가 깻자루를 앞에 두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일단 서울로 왔다. 장모님께 서리태만 전달하고 신월동 집에 와서 시장에 있는 기름집에 갔다. 들깨를 제대로 못 골랐다고 말하는 아저씨가 불친절하게 느껴졌고, 가공비도 강화도는 10,000원인데, 서울은 18,000원이다. 기분이 별로였지만 할 수 없이 처음 들어간 그 집에 들깨를 맡겼다.
6kg의 들깨가 기름병으로 6병 플러스 5분의 1병으로 변했다. 깻묵도 챙겼다. 아저씨가 기름을 담아주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친절한 아저씨였다. 병 값도 받지 않았고 기름병도 신문지로 단단하게 싸줬다. - 내가 알기론 보통 병 값을 따로 받는다. - 들기름 냄새에 기분이 좋아졌다.
장모님, 우리집, 영일이네, 식당 이모네 한 병씩 드리고 우리 두 병 먹으면 내 생각대로 딱 떨어진다. 자연농으로 들깨 키우는 동영상도 봤으니까 내년에는 깨농사를 정말 잘 지어서 여기저기 많이 드리고 팔 수도 있도록 해야겠다.
20131001 - 나들이
인천 난지도에 동네분들과 꽃구경 다녀왔다. 할머니들이 제일 좋아했던 건 즉석에서 사진 찍은 걸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주는 서비스였다. 내 생각엔 아무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누군가에갠 무척 즐거운 일이다.
나는 기수네 아저씨랑 사진 인화를 기다리는 할머니들을 기다렸다. 그늘진 잔디밭에 앉았는데, 꽤 오래 기다리느라 지루했다. 그런데 기수네 아저씨는 별로 지루해 보이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면 움직임이 느려지는 만큼 시간도 축약 되는 건가. 생각했다. 자전거 페달을 느릿느릿 밟는 할아버지들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힘이 없어서 그런거란 걸 안다.
청춘에 비할바 아니겠지만 나이를 먹는 건 또 그대로 매력이 있는듯하다.
아저씨는 요즘 혼자 밥을 끓여 드신다. 아저씨는 들깨 갈무리도 해야 하는데, 늘 아주머니가 했던 일이라 걱정이라고 하셨다. 기수네 아저씨의 반쪽인 반 아주머니가 얼른 건강하게 퇴원하시면 좋겠다.
20131003 - 정신줄
어제 깻대를 꺾었다. 내가 갈았지만 낫을 참 잘 갈았다. 깻대는 천막위에 가지런히 늘어뒀다. 그러고는 텃밭에 토마토를 정리했다. 낫을 든 상태로 지줏대를 뽑아서 정리했다. 밭이 깨끗해졌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방금전까지 손에 들고 있던 낫이 사라졌다. 그 낫을 오늘도 못찼았다. 내년봄에야 찾을지도 모른다.
어젯밤에 도반소농공동체 아저씨들과 술을 마셨다. 고구마 많이 팔아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 새벽에 집에 들어왔는데, 핸드폰이 없어졌다. 술자리에 두고 왔겠거니 생각하고 그냥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못 찾았다. 이 작은 섬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리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술이 문제다. 뭘 이렇게 자꾸 잃어버리냐. 이름을 마그리에서 원더 매직으로 바꿔야겠다. 집 앞에 떨어져있던 핸드폰을 아내가 찾아줬다. - 고마워요. -
정신줄 바짝 잡고 살아야지.
20131004 - 체육대회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만국기 휘날리고 너도나도 흥청망청 줄겁게 먹고 마시는 것이 내 마음속의 체육대회다. 오늘은 강화군 체육대회날이다. P형네 차를 갖고 나왔다. 화물 취급소에서 기계 싣고, 조개 배달하고, 여기저기 전화하고 - 농활대 친구들아 미안해. - 이런저런 심부름을 처리하다보니 정작 운동장에서는 개막식 참석하고 밥 먹은 것이전부다 . 뭐 그것도 나쁘진 않다. 체육대회의 꽃인 편육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생각하는데, 지역 사회의 많은 행사들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모두가 고민해 볼 필요는 있겠다. 부녀회는 고생해서 밥을 하고 아저씨들은 먹고 마시고 그게 끝이다. 나부터라도 차려주는 밥 먹고나 보자는 생각으로 살지 말아야지.
아내도 나도 많이 지쳤다. 일단 오늘은 푹 쉬자.
20131004 - 체육대회 후
돌아오는 배에서 남은 떡과 편육, 포도를 실컷 먹었다. 체육대회란 역시 맛있는 걸 먹기 위한 행사임이 분명하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p형네 건조장으로 갔다. 콩 탈곡기를 내리고 js형, 아내랑 넷이서 소주를 마셨다. 농활이 취소된 얘기, 올해 벼 수매에 대한 얘기를 했다. 함께 고민해야할 문제에 대해서 형들에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k누나네 식당에 가서 저녁 먹으면서 마저 마셨다. 농활이야 어쩔 수 없다해도 올해 수확한 벼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나를 포함해서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다. 형들, 잘 팔아봐요. 저도 열심히 할게요.
어떤 공동체적인 유대감은 갖고 있지만 실체적인 결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현재 작목반의 상황이다. 작목반이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내 역할도 중요하다.
저녁을 먹는 동안 춘천에 있는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형님 소리를 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동생 중에 한명이다. 먼저 전화해 준 것이 고마웠다. ds랑도 통화했다. 고구마 캐는 것 도와 준다고 한다. - merci~~
아내가 있고 동생들이 있고 친구들과 형들이 있다. 기분이 괜찮다. 내일부터 이것저것 본격적으로 수확한다. 기분 좋게 일하자.
20131007 - 이런저런
고구미에게 엽서가 왔다. 포카라에서 왔다. 이등병이 처음 집에 쓴 편지같은 서투다.
kk할머니네 들깨를 털었다. 혼자서 가누지 못할만큼 뭔가를 심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o형은 큰 목소리와 일 할 때의 세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을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았음이 분명하다. 단 kk할머니는 전화를 잘 받으신다. 들깨 터느라 아내가 지쳤다.
다정한 농부 스티커를 받아야 한다. 어제 오후에 받으러 갔더랬는데, 배에서 못 찾았다. 오늘은 배가 바껴서 못 받았다. 이게 다 아내가 어제 아침에 택배 아저씨의 전화를 받지 않고 확인 전화를 하지 않은 때문이다. - 와이파이만 쓸거면 전화 없애라.
주말에 성대 농활대가 오면 고구마를 캐기로 했다. 그 전에 순 지르고 비닐도 걷어야 한다. 내일은비가 온다고 한다. 괜히 마음이 급하다.
난생 처음 생산물 주문을 받았다. 선금을 받은만큼 부담도 크다.
고구마 사준 분들, 감사합니다
20131009 - 한글날
한글날이다. 아저씨들이랑 술 먹고 집에 들어왔다. 안주는 갓 잡은 숭어랑 농어새끼 회였다. 섬에 사니까 회를 무척 자주 먹는다. 좋다. js형이 울분을 토했다. 대화의 부재가 낳은 결과다. 나조차도 쿨하게 뱃속에 있는 얘기을 털어놓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 일을 어째야할까?
지후랑 고구마 순 질렀다. 관리기를 쓰려고 휘발유도 빌렸는데, 기계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생각대로 낫으로 순을 질렀어야했다. 결국, 기계보다는 몸을 써서 하는 것이 나도, 아내도 모두가 편한 방법이다.
내일까지 열심히 하면 순 다 지르고 비닐도 벗긴다. 그러고 나면 또 기계가 필요한데, 지금 생각에는 농활 학생들이랑 호미로 고구마를 캐는 것도 괜찮을 것같다.
고구미랑 통화했다. 만나자 마자 이별이라더니 돌아오자 마자 결혼이다. 축하한다. ^^
20131024 - 포비가 고라니를 잡다
10월 24일 현재 올해 농사는 서리태 수확만 남겨둔 상태다. 밤마다 고라니 울음 소리 들리고 동네 어른들 말씀이 이때쯤이면 고라니가 콩잎이 아니라 콩을 먹는다고 해서 어제 자기 전에 포비 목줄을 풀어줬다. 농담으로 '고라니 잡아야돼.'라고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정말 잡았다. 집을 지나서 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고라니 한 마리가 쓰러져 있고 포비는 목에 마른 피를 묻힌채 나를 보고 꼬리쳤다.
포비야 잘했어. 오늘도 밤에는 풀어줄게. 고라니는 괜찮지만 옆 집 닭들 물어 죽이면 안된다.
20131028 - 콩 고르기
지후가 며칠째 메주콩을 고르고 있다. 다른집들은 콩 꺾어와서 이틀 정도면 끝낼일을 우리는 둘이 들러 붙어서도 며칠씩 어리버리한다. 뭐 상관없다. 경험이 붙으면서 우리만의 방법도 생기고 속도도 빨라지겠지.
아직도 다 못 골라낸 깨도 메주콩과 마찬가지 신세다. 두 가지 다 바람부는 날만 기다리는 상태까지는 골랐다. 바람아 불어라. 사랑도 미움도 콩 꼬투리도 훨훨 날려보자.
kj 아주머니가 콩 고르라고 키를 주셨다. - 감사합니다. 키질은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해보는거다.
y 이장님이 지금 정도면 서리태 꺾어야 할 것 같다고 집까지 와서 알려주셨다. - 감사합니다.
항상 도움만 받으며 사는것 같다. 뭐 그것도 좋다.
내일은 밭에 볏짚 덮고 양파랑 마늘이랑 청보리랑 심어야지.
20131029 - 장어 먹었다
사진이 없어서 섭섭한데, 낮에 엄청나게 큰 장어를 먹었다. js형이 저수지 물 빼는 곳에서 잡아왔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맛있다. 많이 맛있다. 숯불에 구워 먹었다.
오전에는 양파랑 쪽파를 심고 오후에는 장어 먹은 힘으로 서리태 꺾었다. 잘 안 꺾여서 다 뽑았다. 일단 한 곳에 쌓아 뒀다. 양이 많다. 골라낼 걸 생각하면 아득하지만 수확량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비닐도 다 벗겼다. 내년에는 밭에 비닐 씌우지 말아야지. 아내는 수수랑 들깨 심었던 자리에 청보리를 뿌렸다. 내일 볏짚 덮어야지.
이렇게 하루가 갔다. 나쁘지 않구만
20131031 - 작목반 회의
마늘을 심었다. 위에 볏짚을 덮었다. 잘 자라다오.
서리태를 말리기 시작했다. 많이 나와다오.
P형네 개를 잡았다. 나도 형들도, 동네 어른들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작목반 회의를 했다. 회의 주제는 서울 금호동에 있는 어느 학교에서 하는 일일장터 행사 참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 행사에 이미 나가겠다고 대답했다는 O형은 그 학교가 초등학교인지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도 모르고 그 행사가 정확하게 어떤 행사인지도 모른다. 그 형이 모르니까 당연히 나를 포함한 작목반원들도 모른다. 그런데도 일단은 가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12월 5일인 줄 알았던 날짜도 11월 15일이었다. 답답하다. 아내가 나한테 느끼는 답답함도 이와 비슷한 것일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나도 답답한 사람이다.
대충 결론이 난 것 같으면 한 사람, 두 사람 사라지는 분위기지만 회의는 잘 마쳤다.
결국 문제는 이번 행사가 아니라 유기농 쌀의 판매 방법이다. 포장지도 있어야 하고 조금씩이라도 인터넷으로 꾸준히 팔아봐야 하고 쌀도 맛있어야 한다. 지금 내 계획은 2kg, 4kg 포장지를 만들어서 가정용 정미기로 도정해서 일주일에 다섯개 정도만 꾸준히 팔아보는 것이다. 형들이 많이 협조해줘야 가능한 일이다. 갈길이 멀다. 멀다. 멀다. 사라진다. 사라진다. 사라진다.
20130902 - 동물 식구들
우리집에는 태어난지 7개월 지난 강아지 포비랑 태어난지 7주 정도 지난 것으로 생각되는 고양이 망고가 산다. 나는 볼음도에 살기 전까지 동물이라고는 키워본 적이 없는데, 어린 동물들이랑 함께 살아보니 참으로 좋다.
포비는 목줄을 풀어주면 온 밭을 다 헤집고 다니면서 콩이며, 배추를 못 살게 만들어 놓는다. 아직 어려서 그렇다. 화를 낼 수도 없고 미치겠다. 묶어 놓으면 풀어 달라고 낑낑댄다. 가까이 다가가면 좋아서 미친듯이 달려든다. 나는 괜찮지만 아내가 감당할 수 있는 덩치는 넘어선지 오래다. 배추가 안정적으로 클 때까지 당분간 묶어두기로 했다. 포비야 미안해. 겨울엔 쭉 풀어줄게.
어미에게서 훔쳐온 것이나 다름없는 고양이 망고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싼다. 요즘은 성장 속도가 눈에 보인다. 하루하루 동작이 빨라지고 물렸을 때 아픈 정도도 점점 강해진다. 지금도 누워있는 내 발을 할퀴고 물고있다. 고양이는 아내가 꼭 키워보고 싶어했기 때문에 주워왔는데, 정말이지 위로가 되는 동물이다.
식성 좋은 포비랑 입맛 까다로운 망고를 먹여 살리려면 열심히 조개를 캐야겠다. 내일부터 본격 상합잡이 시작이다. 잘해보자. 고구마는 도반소농공동체 분들이 팔아주시겠다고 하신다. - 말씀만으로도 안심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20130903 - 불
우리집은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사시던 집이다. 구옥 옆에 신옥이 붙어 있고 구옥의 다른쪽 옆에는 할아버지가 잘라놓은 나무들이 쌓여있는 창고가 있다. 우리는 신옥에 살고 구옥은 폐허다. 나무 창고에 바투 붙어서 쓰레기를 태우는 드럼통이 있다. 오후에 집 뒤에 풀 나지 말라고 깔아뒀던 널판질들을 드럼통에 넣고 태웠다. 볼일이 있어서 1리에 나가 있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창고에 불났으니까 빨리와! 아내 목소리가 긴박하지 않아서 물호스 연결에서 끄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불이 크게 나서 나무 창고가 전소됐다. 불끄랴, 불구경하랴 동네분들이 엄청 많이 보이셨다. 목사님 부부도 오셨다. 불을 가장 먼저 발견한 Y이장님이 경운기 끌고 오셔서 우물물을 퍼서 고성능 호스로 불끄는 걸 도와주신게 큰 도움이 됐다. - 감사합니다. 의용소방대 형들도 다들 오셔서 열심히 도와주셨다. 그 와중에 나는 구경오신 분들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렇지만 불 다꺼질 무렵 한 장 찍은 것이 전부다. - 다들 정말 감사합니다. 가을에 추수하고 나면 동네랑 교회에 떡을 해서 돌릴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꼭 그렇게 해야겠다.
강릉에 살 때, 아궁이에 불씨를 제대로 안 끄고 밖에 내놔서 산불 낼 뻔 한 적 있다. 강화에 이사와서 초지집에서도 아궁이 불씨를 밖에 꺼내놨다가 집 다 태워먹을 뻔 했다. 올 봄에도 산불 한 번 낼 뻔 했다. 그랬다가 오늘은 기어이 불이났다. 나는 불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에 하나가 '금각사'이기 때문인가? - 술 취하면 금각사 얘기를 자주 한다. - 그랬는데, 아까 불난 것을 보고 가슴이 계속 콩닥콩닥거렸다. 고성에 사는 형님네 집이 최근에 전소됐고 인명 피해도 있었다. 정말이지 불조심 해야겠다.
오늘 아침에 YS형이랑 상합 잡으러 나갔더랬다. 12kg을 잡아서 바로 팔았다. 자세한 얘기는 여기. 먼저 소주 한 짝 팔았던 것은 가외 수입이라고 치고, 실질적인 첫 수입을 오늘 올렸다. 앞으로 돈이 많이 들어올라고 불이 났나보다. 하고 쿨하게 생각하자. 오늘 탄 자리는 원래도 올겨울에 허물려고 했던 자리다. 개똥쑥 씨 밭아서 개똥쑥 밭으로 만들어야겠다.
20130906 - 제비, 고라니, 상합, 그리고
처서 지나고 계속 하늘이 좋다가 어제랑 오늘 흐렸다. 그러던 중에 제비 수백마리기 섬을 찾았다. 남쪽으로 박씨 물러 떠나는 중에 잠깐 들렀던 모양이다. 어떤분은 해마다 이렇다고 하시고 다른분은 살다살다 이렇게 많은 제비는 처음 본다고 하신다. 해마다 봤다는 쪽이 맞겠거니 생각했다.
그런 그렇고 비가 한 번 와야 한적골 논에 물을 댈텐데,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물달개비에 휩싸였던 은행나무 논도 그럭저럭 도지를 낼 정도는 되는듯하고 한적골 벼는 무척 잘됐다. 오리떼가 휩쓸고 지나가지만 않으면 수확의 기쁨을 누리겠구나. 벼라는 작물은 정말 대단하다.
그제부터 팥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교번에 의하면 심고 80일부터면 수확이 가능하다고 하니 지금이 그 시기다. 팥 심은 자리는 물이 잘 안 빠져서 팥이 크게 자라지 못했다. 고추 사이사이에 심은 팥들은 아직도 한창 자라는 걸로 볼 때, 열악한 환경 때문에 팥들이 일찍 꽃을 피웠는지도 모른다. 자손을 퍼트리는 식물들의 본능은 무지막지하다. 찢어진 울타리로 고라니가 들어왔더랬다. 포비를 풀어줬만 잡지 못했다. 이랑 두개 정도의 콩잎이 고라니님께 제물로 바쳐졌다. '다정한 농부는 고라니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고라니가 무척 얄밉다. 고라니에게 당한 고구미 줄기랑 콩 줄기를 보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방비를 더 철저히 하는 수 밖에 없을까? 내가 철통 방어하면 다른이의 밭이 그들에게 당할터이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다.
9월 목표가 상합 잡아서 오십만원 벌기다. 오늘까지 나흘동안 잡으러 다녔다. 오늘이랑 내일은 일년에 한 번 북쪽 갯벌을 개방하는 날이다. 개방 횟수가 적으니 상합이 굵고 양도 많다. 오늘은 29kg을 잡았다. 잡을 때는 힘이 들어도 재미있는데, - 아내는 일차 산업의 즐거움에 대해서 예기하기도 했다. - 파는 것이 문제다. 장사치한테 팔면 너무 싸게 쳐주고 알음알음 팔자니 여기저기 연락해야 하고 신경도 많이 쓰인다. 다음달이면 쏟아져 나올 고구마랑, 쌀도 마찬가지겠지. 휴우. ~~ 한 동네 사는 hs형이 - ys형인 줄 았았는데, hs였음. - 자기 잡는 동안은 매일 같이 가도 좋다고 하셔서 형이랑 같이 다닌다. 형이 경운기, 그레, 양파망, 손질 등 이것저것 신경 많이 써주신다. - 정말 감사합니다. -
어제는 몸도 피곤한데, 컴퓨터 고장에 고라니 습격에 할 일도 많아서 짜증이 났었는데, 오늘은 몸은 여전히 피곤하지만 조개도 다 팔기로 했고, 다른일들이 없어서 기록을 남길 여유가 생겼다. 이래서 여유가 중요하다.
20130907 - NLL 대개방
지도 한 가운데가 내가 사는 볼음도다. 북한이랑 5.5km 떨어져있다. 꽤 가깝다. 우리집은 섬 북쪽끝에 있다. 하늘이 맑은날은 집에서 북한땅이 선명하게 보인다. 북한이랑 가까운 위치 때문에 군인들이 북쪽 갯벌로 주민들을 나가지 못하게 한다. 최근에는 북한에서 물살을 타고 교동으로 귀순한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은 그물도 남쪽 갯벌에 묶고 상합도 남쪽 뻘에서 캔다.
일년에 한 번 이틀이나 사흘동안 북쪽 갯벌을 개방하는 날이 있는데, 그날이 어제랑 오늘이었다. 갯벌은 완전 축제 분위기다. 일년동안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뻘에서 대형 상합이 쏟아져 나온다. 평소에 조개 잡으러 나오지 않는 동네분들까지 총출동이다. 육지와 조개가 잡히는 뻘 사이에 바늘 지옥을 현실에 옮겨 놓은듯한 갯고랑이 - 갯벌 중간중간에 있는 골짜기, 물이 들어올 때 갯고랑을 타고 빠르게 들어오기 때문에 사망 사고가 종종 생긴다. - 있어서 나이 많고 몸이 약한 분들은 나오지 않으신다. 이 갯고랑은 일단 발이 푹푹 빠지고 그 빠지는 바닥에 날카로운 돌과 석화가 잔뜩있다. 기본으로 20kg씩 잡은 조개를 어깨에 지고 이 갯고랑을 건너는 일이 쉽지 않다. 지금 내 발바닥은 상처투성이다.
발바닥은 다 찢어졌어도 이틀동안 상합 46kg잡아서 다 팔았다. 초지집 주인아저씨가 알음알음 팔아주셨다. - 길수 아저씨, 감사합니다. 다음에 소라 많이 잡으면 한 번 보낼께요. ^^; - 잡는 것도 어렵지만 파는 것이 문제인데, 많이 잡힐 때는 장사치에게 팔면 kg당 천원씩 덜쳐준다고 한다. 도매시장에서 kg당 12,000원 하는 A급 조개를 4천원, 5천원에 중간 도매상에 넘겨야만 하는 것이 주민들의 현실이다. JK아저씨 말마따나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잡은 상합이다. 그래서 동네사람들도 왠만하면 관광객들에게 4kg에 30,000원에 파는 쪽을 선호한다.
내일은 무조건 쉬고 월요일이나 화요일부터 추석 전까지 다시 조개잡이 시작이다. 에고 힘들다. 어제랑 오늘은 모처럼 힘들다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ㅋ
20130911 - 와우, 워어
볼음도에 살기 시작한지 200일이 지났다. 와우!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를 부르는 대표 호칭은 '어서방'으로 정해졌다. 할머니 중에 어떤분은 어일우를 부른다는 것이 급하게 불러서 '워리'라고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지후는 '워리 색시'가 된다.
상합 잡아서 50만원 버는 게 9월 목표였는데, 현재까지 495,000원 벌었다. 어제 잡아둔 것까지 팔면 목표는 달성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라기 보다는 추석전에 다른 큰일이 없기 때문에 계속 갯벌에 나가기로 했다. 와우!
팥 수확을 80%정도 마쳤다. 팥 꼬투리 깐다고 지후가 고생이 많았다. 고생했어요. 수확물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와우!
8월말에 1차로 수수를 수확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먼저 익은 친구들이 바람에 다 쓰러진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그저께 저녁에 쓰러진 수숫대를 뒤적여서 1차 수확을 했다. 워어~~
빵꾸난 자전거 앞바퀴를 땜빵했는데, 또 빵꾸났다. 워어~~
친구가 보내준 그래픽 카드를 끼웠는데도 데스크탑이 계속 먹통이다. 추석때 갖고 나가야 한다. 워어~~
올해만 물에 네 번 빠진 아이폰을 고쳐왔다. 고쳐왔는데도 신통치 않다. 워어~~
잠깐 비가 그친것을 완전히 그친줄 알고 밤 12시 넘어서 고구마밭에 가서 호랑이 소리 틀어놓고 왔다. 그랬더니 비가 막 쏟아진다. 워어~~
와우!도 많고 워어~도 많다. 중요한 건 나도 아내도 새로운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다는 것! 와우!
20130912 - 근성
어제 상합을 못캤다. 비가 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게임을 하느라 정신줄 놨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임은 겨울에 하자!
엊그제 잡아 둔 상합이 12kg 있기 때문에 30kg을 채워서 도매상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20kg을 잡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근성으로 다섯 시간 넘게 그레를 끌었다. 중량을 달아보니 22kg이다. 사소한 목표지만 목표를 달성했다. 완이형이 경운기 태워줬다. - 형, 감사합니다. 조만간 또 저희집에서 저녁 먹어요. ^^; -
집에 오니까 지후가 팥 꼬투리를 거의 다 까놨다. 근성으로 깐 것이 분명하다. 나는 게임 때문에 지후는 게임하는 나 때문에 기분이 다운됐었는데, 근성으로 일하고 나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아내는 팥 꼬투리 까는 일에 근성이 있어서 뭣에 쓰냐고 한다. 그지만 내 보기엔 부부가 둘 다 근성이 있어서 어딜가도 굶어 죽진 않을 것같다.
내일은 비가 와도 조개 캐러 나가야지.
근성의 팥 꼬투리 까기. - 동네분들은 예전 노인네들처럼 왜 그걸 까고 있냐고 한다. - 농민신문 읽으면서 커피도 마시면서 팟캐스트도 들으면서 까고 까고 또 깐다.
20130913 - 상합 꿈나무
오늘까지 포함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상합 캐러 나간 횟수가 열 번을 넘지 않는다. 짧은 기간 동안 꿈나무 답게 꽤 늘었다. 이제 대표 상비군 정도 된다. 상합을 많이 캐기 위해서는 시간 투자와 끈기가 자리보다 중요하다. 물론 자리도 아주아주 중요하다. 오늘만 해도 잘 안 나오는 자리에서 100평 넘게 그레질을 하느라 힘들었는데, 완이형이 자기쪽이 잘 나온다고 불러줘서 25kg정도 잡았다. - 형, 감사합니다. - 10kg을 목표로 갯벌에 나가는데, 점점 잡는 양이 늘어난다. 그래도 목표를 높이진 말자. 경운기 타고 갯벌을 나오는 길에 하늘이 참 예뻤는데, 흔들려서 못 찍었다. 그래서 발 사진을 올린다. 참 못났다. 통뼈인 건 좋지만 발목이 두꺼운 건 맘에 안든다. 발목이 두꺼운 사람들은 대체로 달리기에 약하다.
20130921 - 부상, 친구들
어제 친구들이 왔다. 레밍, DS, 람이 이렇게 남자 셋이다. 칙칙하다. 칙칙해. 마침 집 냉장고에 먼저 잡아둔 상합이 있어서 끓여 먹었다. 친구들이 무척 좋아했다. 오늘은 그 상합을 직접 잡으러 나갔다. 그레 두 개로 남자 넷이 두 시간 캔 것이 8kg이다. 먹을만큼은 잡아서 다행이다.
원래 내 계획은 대여섯시간 동안 많이 많이 잡는 것이었는데, 아침에 사고가 났다. o형한테 빌려줬던 그레 찾아 오던길에 앞에 오던 차를 피하려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왼쪽으로 넘어졌다. 왼쪽이 이곳저곳 까졌고 뻐근하다.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서 괜찮냐고 물었다. 그 중에 한 명은 우리 차에 치인것 아니잖아.라고 했다. - 콱!! - 다행이 많이 다치진 않았다. 이스터 섬에서 거의 비슷한 사고가 났었는데, - 그때는 모래 위에서 혼자 넘어졌더랬지 - 지후가 나를 보살펴줬었다. 오늘도 지후가 걱정해주고 보살펴줬다. 사랑해요.
상합잡기의 수입에 대해서 전해들은 영일이도 그렇고 오늘 상합을 잡아본 람이도 그렇고 볼음도에서는 상합 잡는 것이 답인것 같다고 한다. 자본금이 전혀 없는 나에게는 그게 정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운기 한 대와 좋은 그레만 있으면 남들 크게 신경 안 쓰고 할 수 있는 일이어서 그렇다. 한 번 생각 좀 해보자.
다치고 나니까 역시 일단은 몸이 건강한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강 다음으로는 빚이 없는 것이 중요하다. 명절에 엄마랑 이런 얘기를 했었다. 오토바이는 조심해서 타야겠다.
20130926 - 9월 26일
새벽에 일어나서 어제 잡은 상합을 아침배로 보냈다. 선창에 나온 동네 아저씨들과 이런저런 애기를 나눴다. 동네의 동정을 듣는 시간이기도 하고 농사나 조개캐기에 대해서 정보를 얻기도 한다. 나는 이 시간이 좋다. 그리고 이 시간이 무슨 큰일을 치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동네분들과의 대화야 말로 시골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선창에 나가는 길에 KS할머니랑 잠깐 얘기했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KS할머니를 만났다. 새벽부터 호박 따시더니 바로 교회청소하러 가신다고 했다. 할머니들은 대체로 부지런하고 바지런하시다.
아내 손님들이 촬영 장소 헌팅차 방문했다. 동네를 잠깐 구경하고 집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나는 다시 조개 잡으러 갔다. 어제는 걸어나갔다 걸어 들어오느라 무척 힘들었다. 오늘은 YS형이랑 함께 나갔다. - 형, 항상 감사합니다. - 힘만 빼고 많이 못잡았는데, 출장소에서 오늘 잡은 걸 다 사줬다. - 감사합니다. - 일당 벌이를 했다.
집에 와서 대충 씻고는 작목반 형, 아저씨들이 모여있는 P형네 건조장 앞으로 갔다. 내가 조개 캐는 동안 형들은 콤바인을 정비하고 곡물 건조기를 손보셨다. 수확이 머지 않았다. 아내 손님들이 선물한 마카롱을 하나씩 나눠 먹었다. 형들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나는 이 대화의 시간이 좋다. - 일은 싫고 대화는 좋다? -
오늘 내가 좋아하는 시간을 두 번이나 가졌다. 조개도 팔았다. 꽤 괜찮았던 하루다.
그리고 드디어 새 핸드폰이 왔다. 잠깐 만져보니 아이폰만 못하다. 6개월만 쓰자.
잘 시간이다.
20130927 - 9월 27일
아침에 민방위 갔다가 한적골 논에 들렀다. 내일은 논 세 자리 다 물꼬 트고 비를 기다려야겠다.
오후에는 상합 잡았다. 오늘은 20킬로 넘게 잡았다. 힘들다.
그리고 벼 예쁘다.
20130930 - 9월 30일
어제 하루는 푹 쉬었다. 그래도 피곤했는지 열시에 잠에서 깼다. C 이장님네 컴퓨터 손보고-네트워크 복원 오류- 고구마 박스 샘플 구해오고 일 시작했다. 오늘은 수수랑 팥 수확의 날이다. 나는 수수를 아내는 팥을 맡았다. '나의 하류를 지나'를 무한 반복으로 들으면서 수숫대를 가위로 잘라서 자루에 담았다. 수수를 수확하고 남은 수수밭에 들어가서 수숫대를 낫으로 쳐냈다. 그냥 두면 겨울까지 그대로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간 날 때 눈에 보이는 일은 다 해두는 것이 좋다.
팥은 다 수확하지 못했다. 10월엔 할 일이 많다. 1일은 동네에서 나들이, 4일은 체육대회, 다음주말엔 농활, 벼베기, 고구마 수확, 들깨 수확, 콩 수확 등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일단 내일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바지런히 움직이자.
오늘 지후는 팥 수확 마무리에는 실패했지만 체육대회 줄넘기 연습을 했고 고구마 상자랑 우리 스티커를 주문했다. 수고했어요.
20130803 - 歸Home
학교 선배 결혼식이 있어서 서울에 다녀오는 중이다. 집을 나선후로 쭉 기분에 별로였다. 잠을 많이 못 잔 탓도 있고 서울에 오니 너무 번화해서 울컥헸던 탓도 있고, 짜증의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내가 짜증이 나면 아내가 내 눈치를 보고 아내가 짜증이 나면 내가 아내 눈치를 본다. 부부란 그런것인가? 서로에게 짜증난 것이 아니니 눈치는 안 보고 살면 좋겠다.
어제는 설국열차를 봤다. 한줄로 평하자면 평범한 헐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였다. 그래도 지후가 좋아했고 어랜만에 영화관에 갔다는 사실은 나에게도 어떤 만족감을 줬다.
결혼식장에서 고기 위주로 실컷 먹고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면서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강화터미널에 도착하니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고 외포리에 와서는 그 안도감이 안정감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배 안인데 동네사는 d가 캔맥주를 사줘서 개운하게 마셨다. 그것도 만족스럽다. 집에 돌아간다는 것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안도감을 준다. 앞으로도 쭉 그래야 할텐데....
밭에 돼지나 고라니가 다녀가지 않았어야 하는데. 별일 없겠지. 휴우
짤방은 외포리 이발소 앞 강아지와 지후, 아내가 강아지 보고 기분 좋아졌다.
20130805 - 화장실에 박넝쿨
우리집에는 내 개인 화장실이 있다. 박넝쿨이 지붕으로 올라가면 너무 무거워서 지붕이 무너질까봐 지붕 밑으로 밀어 넣었더랬다. 걔네들이 화장실 안으로 파고 들어와서 이렇게나 자랐다. 화장실에서 조롱박 따게 생겼다. 이 넝쿨들이 내 엉덩이를 찌를 수도 있겠다. 사진 좌하단이 똥무덤 우하단의 통들은 모아둔 오줌.
20130807 - 망둥이 낚시
p형, 완이형이랑 망둥이 낚시 갔다. 작년에 잠깐 낚싯대를 잡아 보긴 했지만 실제로 해보기는 처음이다. 세 마리 잡았다. p형은 서른마리 넘게 잡았다. 많이 배웠다. 갯벌에 널려있는 민챙이를 낚싯줄이 보이지 않게 걸고서 찌가 바닥에 닿도록 툭툭 낚싯대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 보면 망둥이가 걸린다. 낚싯줄을 끄는 느낌이 들면 좌우나 위쪽으로 '획'하고 낚싯대를 채서 망둥이가 확실히 걸리도록 한다. 그 다음엔 잡아서 망에 담는다. 다음에는 많이 잡을 수 있겠지.
형들이 작은 것들을 다듬어 줘서 - 다듬는 것도 배웠다. - 집에와서 조려 먹었다. 양념장에 설탕이 조금 많이 들어가서 약간 달았다. 고추도 매운 녀석을 넣었으면 더 맛있었겠다. 망둥이 조림도 다음에는 나아지겠지.
20130808 - 고양이
고양이가 생겼다. 아내가 무척 좋아한다. 어제 m아저씨네 창고에서 어린것을 주워왔다. 부엌 뒤꼍에 뒀더니 아내 주먹만한 녀석이 쌩 하고 달아났다. 녀석도 울고 m아저씨네서는 어미도 울었다. 밤새 울음소리가 들려서 저러다 죽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뒤꼍을 뒤져서 녀석을 찾아냈다.
플라스틱 박스에 넣고 동네 아줌마들이 알려준대로 밥을 줬다. 고양이는 마른밥을 먹는다. 비린것이 없으면 참치캔을 구입하라. 냥이가 망둥이 살 으깨서 밥에 섞은 것을 먹는다. 잘됐다. 너무 어려서 상자에 둔 채로 집에 둘까 했는데, 그냥 뒤꼍에 두고 밥만 주기로 했다.
고양이는 귀엽다. 아니, 모든 어린것들은 귀엽다.
20130810 - 손님
마을회관에 손님이 왔다. 먼저 작목반 회의 했을 때, 손님들이 오면 숙박료는 부녀회에 주고 망둥이 낚시, 후릿그물, 상합 캐기를 통해서 얻은 수익은 작목반에서 사용하기로 했더랬다.
어떤 단체에서 오건간에 손님들은 놀러 오는 것이기 때문에 나처럼 가만히 쉬는 것을 좋아하는 경우는 없다. 뭔가 액티비티가 있어야 한다. 그것들이 다 바다에서 이루어 지는 일인데, 나는 바다에 대해서 잘 모른다. 2월에 이사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작목반에는 바다활동을 도와주실 분이 네 분있다. 손님이 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그 중에 세 분이 섬을 비우셨다. 덕분에 M아저씨랑 완이형이 망둥이 낚시, 후릿그물, 상합캐는 걸 도와주느라 고생하셨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일을 진행할 것 같으면 내년부터는 손님 받지 말자고 해야겠다. - 이게 내 지금 심정인데 - 이렇게 강하게 얘기하기 보다는 우회적으로 돌려서 이러실거면 손님을 왜 받나요?라고 하는게 낫겠지. 그것보다도 좀더 확실한 체계를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확실한 체계는 내가 생각해둬야 한다. 내일모레 마흔 세명 오는데, 걱정이다.
여튼 이번에 온 손님들도 백합 잡을 때 좋아했다. 백합 잡는 일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 쓰지는 않는다. 조개 캐는일은 남녀노소 할 것없이 다 좋아한다.
20130812 - 망고
고양이 이름 지었다. 누래서 누렁이가 아니라 망고라고 부른다. 밖에 뒀다가 하루만에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생선도 잘 먹고 물도 할짝거리고, 아무튼 귀엽다. 무엇보다 지후가 무척 좋아한다. 지난주의 베스트 컷을 올린다.
20130814 - 진드기, 모기
잘 준비 한다고 아내랑 모기 때려잡고 있었다. 엊그제 칠팔십 마리 잡았더랬다. 덕분인지 어제는 모기 없이 잤는데, 오늘도 그제만큼 잡았다. 여튼 모기 때려잡고 있다가 정수리를 긁었다. 아직 덜말라서 축축한 머리 안쪽에서 포비를 만질때의 느낌이 났다. - 아침마다 포비 몸에 붙은 진드기를 떼어주는 것이 눈뜨고 담배 물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 사밀리미터 정도 크기의 진드기 한 마리가 손톱에 딸려나왔다. 한 시간 전에 머리 감았는데, 수건에 붙어 있었을까? 충격받았다. 지후가 증언하길, 세탁기 다 돌았는데 그 빨래에서 진드기가 나왔다고 한다.
현재 모기는 거의 다 잡은듯한데 자꾸만 심정적으로 머리가 가렵다. 모기도 진드기도 사랑도 미움도 다 잊고 고양이 망고가 돼서 자야겠다.
20130817 - 일진
눈병이 났다. 속눈썹이 눈을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그때부터 오른쪽 눈이 붉그죽죽하다.
뒷머리에 빵꾸가 났다. 엊그제 아내가 머리를 잘라줬다.
데스크탑도 병이났다. 며칠전에 전기가 갑자기 나갔었는데, 그때 온보드 vga가 명을 다하셨다.
어제 오후에 농수로에 물 돌린다는 문자를 확인하고는 황급히 물꼬 막아놓고 배에 올라탔다. 안과는 문을 닫았다. 컴퓨터 가게에 갔더니 그래픽 카드 꼽아주는 값 칠만원을 부르더니 모델명도 알려주지 않는다. 불친절하다. 그냥 나왔다. 컴퓨터 괜히 들고 나왔다. 온수리에서 밥을 먹을랬는데, 문을 닫은 곳이 많았고 우리가 들어간 식당은 밥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보쌈 만원 적힌 좌판에서 만원어치 달라고 했더니 자꾸 이만원어치 사가라고 했다.
아침에 변기가 막혔다. 잠깐의 판단 착오로 물이 살짝 넘쳤다. 라면을 끓여 먹을랬는데, 물이 끓다가 가스가 다 됐다. 전기 플레이트를 찾느라 시간을 소비했다. 지금 이걸 쓰고 있는 버스 안에서는 어떤놈이 바닥에 뱉은 껌 밟았다.
눈병, 뒷통수, 컴퓨터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도 제대로 처리한 것이 없다. 왠지 꾸역꾸역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졌다.
얼른 집에 가서 포비, 망고랑 놀고 김장밭 만들어야지.
20130820 - 이번주에는
고구마 밭에 EM을 줬다. 콩이랑 팥에도 EM을 줬다. 꼭 줘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사둔 것과 얻어온 것이 있어서 그냥 줬다. 고구마 밭에서 멧돼지의 흔적을 발견했다. 우리밭에는 다시 안 오는 줄 알았는데, EM 덕분에 알았다. 직파한 흰콩에 최근에 고라니가 다녀간 것도 직파한 서리태 잎에는 벌레 먹은 구멍들이 많다는 것도 EM 덕분에 알았다. 비닐 씌우고 육묘해서 키운 녀석들은 큰 문제 없어보인다.
한적골 윗논에 물이 말랐다. 드렁허리가 구멍을 낸 것은 아닌듯한데, 이유를 모르겠다. 원래 잘 마르는 논이라 물을 많이 잡으라는 조언을 올초에 듣긴 했었다. 논 세 배미 중에 가장 잘 된 자리기 때문에 물관리를 잘 하고 싶다. 내일 낫들고 가서 논두렁 풀 깎으면서 어디 구멍난 곳은 없는지 자세히 봐야겠다.
논이든 밭이든 꾸준히 다니면서 지켜봐야 잘되고 있는 것도 잘못되고 있는 것도 보인다.
작물을 심어 키우는 데 있어서 내년에는 이렇게는 하고 이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오늘은 마을에서 개국을 먹었다. 맛있었다. 회관 뒤에서 기르던 외로운 강아지 두 마리가 나와 동네 어른들의 여름나기 희생양이 됐다. 개국 먹고는 망둥이 낚시 갔었다. 먼저 세 마리 잡았었는데, 오늘은 다섯 마리 잡았다. 다음에는 20마리 잡아야지.
어디에 어떻게 파느냐도 문제지만 일단은 별탈 없이 잘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매일매일 논밭으로 다니면서 고구마에 돼지가 들어오지 않기를, 들깨에 나방이 들러붙지 않기를, 콩과 팥과 수수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도지는 낼 수 있는 양의 쌀을 수확하기를 바라야겠다.
20130822 - 남자들이란
아침에 한적골 윗논 논둑 풀 베고 물 댔다. 논에 물을 대고 나니 안심이 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모든일이 다 안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 잡혔더랬다.
점심 먹고 쉬고 있었는데, m아저씨랑 js형이 우리집에 보관중이던 보행이앙기를 손 보러 오셨다. 상업적으로 상합을 잡기 위해서 기계를 개조했다. 우리집에서 약간 만지다가 은행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겨서 일을 마무리했다. 나까지 넷이 붙어서 기계를 뜯었다. 아저씨들이 무척 즐거워했다. 남자들이란...
나도 남자긴한데, 기계 뜯는일이 즐겁진 않다. 그래도 보조정도는 잘 하는것을 보면 나도 남자들이란에 포함되나보다.
해 저물 때, 다 마치고 m아저씨네서 저녁 먹었다. 아내는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이래야 오늘이 마무리된다.는 것이 우리 동네의 정서다.
상합 많이 캐서 생활비 좀 벌면 좋겠다. 작년 11월부터 수입 없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나도 아내도 약간 괴롭다.
20130827 - 수입
9개월만에 수입이 생겼다. 동네 할머니들께서 먼저 왔던 손님들이 선물로 두고 간 소주 한 짝을 손님 치르느라 고생한다고 나 먹으라고 줬는데, 그것을 그제 온 손님들한테 팔았다. 그리고 방금 전에 농협에 가서 장을 봤다. 모기향이랑 샴푸랑 고양이 줄 참치캔이랑 나한테 줄 콜라까지 이런저런 것들을 샀다. 2만 5천원 벌어서 2만 6천원 썼다. 이번달에는 적자 폭이 줄겠다.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한다.
광년이 널뛰는 거 같은 이 기분을 어이할꼬?
아침에 순무 심었다. 씨는 KS할머니가 주셨다. - 감사합니다. - 배추랑 무는 아주 조금 심었지만 순무는 조금 많이 심었다. 잘 키워서 친척들한테 돌려야지.
20130829 - 땅벌, 상합
엊그제 집뒤에 풀 자르다가 벌집을 건드렸다. 땅벌 20여마리가 낫질 하느라 몸을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 머리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칼 루이스보다 빠른 속도로 도망갔지만 네 군데 물렸다. 물린 자리는 가렵고, 붓고, 뜨겁다. 이래서, 어른들이 벌초할 때 땅벌 조심하라는 말을 항상 하시나보다.
어제랑 오늘은 상합 잡았다. 업으로 하시는 분들은 영뜰 해변에 경운기 타고 나가시는데, 우리는 부업으로 하는 것이기도 하고 많은 분들과 만나기 싫어서 우리 사는 앞멀(앞마을)에서 가까운 죽바위(뚜꺼비 바위)쪽으로 나갔다. 초심자치고는 꽤 잡았다. 상합 캐기는 특별한 요령보다는 끈기와 체력이 중요하다.
상합을 잡기 위해서는 그레질을 해야한다. 그레는 레오나드로 다빈치가 만들었을 법한 조개캐는 도구다. 그레로 갯벌위를 질질 끌면서 걸어가면 딸깍하고 조개가 걸린다. 그러면 호미로 뻘을 긁어본다. 조개를 확인하고 꺼낸다. 바닷일이 다 힘들지만 그레질도 염전일이나 뱃일만큼 극한직업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극한직업이 됐든 뭐가 됐든 올겨울에 밖에 나가서 일자리 구하거나 내년에 P형네 배를 타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으려면 상합을 열심히 캐야한다. 아내 말대로 9월, 10월에는 시간 날때마다 나가서 열심히 잡아보자.
20130831 - 이웃
새벽에 일어나서 js형한테 차를 빌렸다. 어제 회관에서 주무신 손님 네 분을 선창에 태워드렸다. 차 빌리면서 형한테 이따가 모터 좀 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저께부터 말 하고 싶었는데 말 한 번 꺼내기가 참 어렵다. 어제랑 그제 캔 상합을 우물에 담가뒀다고 했더니 시영네 할머니랑 기수네 할머니가 단물에 담그면 안된다고 알려주셨다. 우물에 담가 놓고도 긴가민가 했더랬는데 확실히 알았다. 할머니들은 회관 손님들 치르느라 고생이 많다면서 상합 열심히 잡아서 돈벌이 하라고 했다. - 감사합니다. - kk할머니한테 오랜만에 들렀다. 바꾼 핸드폰 번호 적어 드리고 참외 두 개 얻어먹고 선영 아범에 대한 푸념도 좀 들었다. 오늘 kk할머니 말씀의 주제는 인사치레두 내가 먼저 살고 해야 하는 거지, 내 곶간 비어 가는 것 모르고 살면 세금 내기도 빡빡하고 내 삶이 괴롭다는 것이었다. - 잘 알겠습니다. 이틀 잡은 상합을 삼등분해서 kk할머니, ks할머니, js형네 드렸다. 어젯밤에 지후랑 얘기했다. 판매는 9월부터 하기로 했으니 잡아 든 것은 동네에 나눔하자. 방금 인사치레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kk할머니를 포함해서 다들 좋아하셨다. 기분 좋다. js형이 모터를 봐줬다. 뭐가 잘 안되서 형네 집에 있던 모터로 교체했다. 형은 논에도 두 번이나 같이 가주셨다. 논관리에 대해서 이것저것 배우고 판매에 대한 얘기도 나눴다. - 형, 항상 감사합니다. 논에 다녀와서는 기수네 할머니네 고장난 전기 스위치 손 봐드리고 냉면 얻어 먹었다. 오후에는 뒷밭에서 일했다. 완이형, p형을 집에 초대해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고갔고, 이런저런 조언들을 들었다. 이웃이란 이런거겠지? 이웃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다. 내가 항상 옳다는 생각을 버리는것으로부터 이웃과의 좋은 관계가 시작된다.
요즘 하늘이 맑다. 북한땅이 잘 보인다. 별도 평소보다 많이 보인다. 여러가지로 안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