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그때그때 | 585 ARTICLE FOUND

  1. 2023.05.08 20230508 - 어버이날 생각
  2. 2023.04.24 20230424 - 엄마, 아버지 생각
  3. 2023.04.22 20230422 - 오랜만에 서울 올라와서 생각
  4. 2023.04.12 20230412 - 산불과 아버지와 나와 자연
  5. 2023.04.10 20230410 - 친구 만나고 전성기 생각
  6. 2023.03.22 20230322 - 브루스 윌리스와 아버지 저혈압 생각
  7. 2023.03.20 20230320 - 어지러운 봄 생각
  8. 2023.03.09 20230309 - 아버지 괜찮음. 생각.
  9. 2023.03.04 20230304 -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 기다리면서 생각
  10. 2023.02.22 20230222 - 아버지에서 시작한 집 생각
  11. 2023.02.14 20230214 - 그냥, 아버지 생각
  12. 2023.02.08 20230208 - 수술 날짜 잡은 아버지 생각
  13. 2023.02.04 20230204 - 정월 대보름, 아버지 만나고 엄마 생각.
  14. 2023.01.27 20230127 - 이슈가 없는 것에 대한 생각
  15. 2023.01.19 20230119 - 초음파 내시경과 아버지 생각
  16. 2023.01.11 20230111 - 치매인데 위암인 아버지 생각
  17. 2023.01.10 20230110 - 위암과 아버지 생각
  18. 2022.12.27 20221227 - 제사, 아버지, 엄마 생각
  19. 2022.12.19 20221219 - 넘어져 얼굴이 까진 아버지 생각
  20. 2022.12.12 20221212 - 카타르 월드컵 생각
  21. 2022.12.10 20221210 - 금요일에 아버지 만남 1
  22. 2022.12.06 20221206 - 금요일에 만날 아버지 생각
  23. 2022.11.28 20221128 -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와 아버지 생각
  24. 2022.11.16 20221116 - 동생한테 맡겨버린 아버지 생각
  25. 2022.11.14 20221114 - 코로나 격리 후 생각
  26. 2022.10.28 20221028 - 코로나 걸린 아버지 생각
  27. 2022.10.11 20221011 - 일주일만에 만난 아버지 생각
  28. 2022.10.04 20221004 - 증명사진과 아버지 생각
  29. 2022.09.23 20220923 - 생일날 생각
  30. 2022.09.18 20220918 - 근근이 사는 생각

 6시 30분에 아버지랑 통화, 7시에 아버지랑 통화, 9시 10분에 아버지랑 통화했다. 아내가 엄마한테 용돈 보내고 메세지도 보냈다고 하길래 11시에 엄마랑 통화했다. 점심 먹고 아내에게 어머니랑 통화했나 물었더니 통화했다고 하길래 13시에 어머님과 통화하고 바로 아버님과 통화했다. 아버지랑은 매일 통화하고, 엄마 목소리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듣는다. 아버님과도 가끔 통화하는데 이상하게 어머님께는 선뜻 먼저 전화하게 되지 않는다. 어머님은 어떤 쿨함을 갖고 있는데, 이를테면 오늘 오랜만에 목소리 듣는 사위에게 '사는게 쉽질 않네.' '너네들 잘 살고만 있으면 연락 자주 안해도 돼.' 같은 멘트를 던지셨다. 일년에 한 두 번 가족 외식을 하게 되는데, 그때 내가 잘 먹는 사람이란 걸 아시고 '어서방 많이 먹어.' 하실 때도 좋다. 어머님은 아내 오빠가 아파서 병간호차 광양에 내려가 계시는데, 나는 아내 오빠보다 어머님 무릎이 더 걱정이다. 아버님께 어머님과 통화했다 했더니 '안 그렇다고 말은 해도 자식들이 먼저 전화하고 그러는 걸 어른들이 좋아한다' 며 무척 좋아하셨다. 장모님이 내 목소리 듣고 '우리딸 잘 사는구만' 생각하셨길. 

 다음주에 엄마 생일이고 다음달 초에 어머님 생일이다. 어머님 생일은 70세 생일이다. 예전에는 60세만 되도 60갑자가 돌아왔다고 회갑이라 하며 축하했다. 우리 엄마도 어머님도 한 바퀴를 살았다. 엄마들의 삶은 다 살고 추가로 살고 있는 느낌은 아닌데,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치매 걸린 이후로는 추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주변에 갑자기 죽는 사람도 많고 부모님이 치매인 사람도 많다. 이런 시대를 신문물 받아들이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AI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보다 더 내가 만든 것 같은 노래를 만드는 AI를 나보다 더 나처럼 글을 쓰는 AI를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AI가 창작영역을 다 씹어먹게 되지 않을까 요즘 가끔 생각해본다. 그렇게 되기 전에 뭘 많이 쓰고 노래를 많이 만들어 놔야겠다. 이세돌이 알파고랑 바둑 두고나서 바둑계를 은퇴한 일도 자꾸 생각난다. 이세돌은 정점에 도달해보기라도 했다. 나는? 

 지난주에 똑같은 돼지꿈을 연달에 꾸었기에 복권을 두 장 샀는데 당첨 안됐다. 지난 주에 술 두 번 마셨는데, 두 번 다 내가 술값을 안냈다. 어제랑 오늘은 출근이 급한데 배터리 문제로 긴급출동 불러서 차 시동 걸었다. 오늘 출근길에는 쓰레기 수거하는 차 옆을 지나는데, 뭔가 튀어서 조수석 빽미러가 깨졌다. 마침 카센타 사장님은 서울에 가 있다고 했다. 짜증이 차올랐지만 별일 아니란 생각에 금방 사라졌다. 깨진 것은 길조인가? 복권을 사던가 술 한 잔 얻어 먹어야겠네.

 물욕이 거의 없는 편인데, 요즘은 자꾸 돈이 갖고 싶고. 돈 생기면 친구 빚 갚아주고 집이랑 차 사고 싶다. 그래서 복권을 산다. 나이 40이 넘어서야 보편적인 욕망을 생각하게 됐다. 뻔히 들여다보이게 본인 잇속만 챙기는 사람은 여전히 싫다. 오직 나를 중심으로 내 이익만을 생각하며 앞으로 어떻게 어떻게 할 거라고 술 취해서 떠들고 있는 내 모습을 가끔 본다.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세속에 쩌든 얘기를 알심히 떠드는 내 모습이 한심할 때가 있다.

 물욕이 없는 점은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는 지난주에 평소보다 더 많이 횡설수설했고 오늘아침에도 세 번 통화 중에 두 번은 횡설수설했다. 횡설수설하는 걸 닮으면 안되는데.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6개월 전에 봤을 때 아랫목 이부자리에 누워서 병치레 하시면서 무어라무어라 중얼거리시던 게 생각난다. 오늘은 어버이 날이고 부모 자식은 발가락과 콧구멍이 닮는 것 뿐 아니라 늙어 횡설수설하게 되는 일로도 대를 잇는다. 그나마 아버지 치매는 최선으로 둔화되고 있다. 

 부모님 네 분과 통화하고 뭔가 효도한 거 같은 날에 이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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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토요일 저녁에 아버지랑 순대국 먹었다. 보통은 아버지만 특을 시켜드렸는데, 나도 특 시켜 먹었다. '특' 이란 말에 자꾸 의미를 부여하는 게 웃기지만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라 그런걸로 치기로 했다. 배부르면 다 먹지 않아도 된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남겼다. 아버지가 순대국 남긴 거 처음 봤다. 아직까지 위암 수술의 여파가 남아 있다고 봐야겠지. 혼자서는 순대국을 못 사 먹게 된 아버지. 앞으로는 아버지 만나면 메뉴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순대국 먹는 걸로 정했다. 아버지가 페브리즈를 손에 분사해서 화장품 처럼 얼굴에 바르길래 그러면 안된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아버지가 본인 몇 살이지 나한테 물어봤다. 아버지가 나한테 고맙다고 했다. - 살짝 눈물이 났다. - 아버지랑 같이 있으면 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건지 많이 들으려고 한다. 아버지랑 프로축구 울산vs포항 후반전을 TV 중계로 봤다. 게임은 명승부였는데, 아버지는 TV화면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세탁기를 못 돌리는 사람이 됐다. 예전에 동생 와이셔츠 다려주던 아버지 모습이 생각난다. 일요일에 드시라고 전복죽을 사 놓고 갔는데,  아버지는 먹지 않았다. - 못했다. -  
 
 아버지랑 헤어지고 엄마집에 왔다. 다 커버린 아기새가 늙은 어미새와 아비새 둥지를 번갈아 방문하는 모양새다. 엄마는 본인은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진짜 잘 사는 거 맞나? 엄마에게는 오산에서 살면서 형성한 엄마만의 세계가 있긴 하다. 엄마가 딸기 갈아줬다. 엄마가 끓여놓은 김치찌개랑 밥을 먹었다. 엄마가 김치를 싸줬다. 김치 싸주면서 김이랑 깡통햄도 같이 줬다. 나는 아버지를 챙기는데, 엄마는 여전히 자식들을 챙기고 있네. 어미새는 늙어서도 아기새를 돌본다.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엄마를 잊으면 안된다. 우리집에서 엄마집까지 210km, 별 것 아닌 거리다. 엄마를 자주 봐야겠다. 엄마랑 둘이 여행가는 프로젝트는 마음속에 항상 살아 있다. 
 
 곧 장모님 70세 생일이다. 장모님의 아기새는 요즘 울적하다. 나도 울적한지 오래됐다. 다 잘 될거라고 하니까 나의 작은새가 웃었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그 웃음으로 내가 산다. 장인어른이 나한테 전화 안한지 좀 됐다. 굿. 각자 본인 부모님 챙기면서 사는게 결혼생활이겠거니 한다.
 
 3월에 좀 덥더니 어느덧 날씨가 제자리를 찾았다. 출퇴근길과 현장에서 봄을 맞아 요동치는 산과 나무를 본다. 예쁘다. 4월에게 자리를 내주는 중이지만 여전히 계절의 여왕은 5월이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괜찮다. 자꾸 괜찮다고 하는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안다. 다 잘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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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끈한 토요일 오후, 친구 가게에 앉아서 아버지 데이케어센터에서 돌아오는 거 기다리면서 쓴다.

 어제 서울 왔다. 어제 친구한테 차 보여주고 - 좋은 가격에 잘 샀다고 함 - 오늘 저녁에 아버지랑 순대국 먹고 - 이버지 얼굴 본지가 좀 됐고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가 아버지가 혼자 있는 시간이라 일요일에 혼자 먹을 죽과 빵을 사 놓으려고 한다. - 밤에는 엄마한테 가서 이런저런 얘기 좀 하다가 내일 아침에 강릉으로 출발하는 작전이다. 아직까진 순조롭다.

 어제는 동네 친구들이랑 저녁 먹었다. 집에서 아내와 별 대화가 없는게 40대 중후반 기혼 남자의 보통인가, 생각했다. 건스짱은 현장을 강릉으로 옮기려고 한다고 하면서 '그래야 너라도 보지' 라고 했다. 그 말이 마음속에 울린다. 만날 친구도 별로 없는게 40대 중후반 기혼 남자의 보통인가. 나도 너라도 보고 너도 나라도 보고 그런게 친구 사이겠지. 강릉에 대학 동창이 한 명 있어서 가끔 얼굴 보는게 나한테 위로가 된다. 그 친구도 그럴거다. 애들이라도 자주 보게 다시 서울 살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지만 부질없는 생각인 걸 안다.

 내가 간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들뜬 목소리로 추임새까지 넣어가면서 오랜만에 본다고 말한게 좋았다. 아버지는 아직 나를 잊지 않았고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다.

 오늘 강릉에선 6촌 형(얼굴본지 오래됨) 큰 아이 - 7촌 조카(애기때 얼굴보고 못 봄) - 결혼식이 있고 화성시에선 이종사촌 동생 결혼식이 있다. 5월 14일엔 친구가 결혼한다. 이런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모르겠지만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이런 세상에서 다들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는 게 신기하다. 내가 결혼해서 사는 것도 마찬가지고. 어떤 세상에 살더라도 사랑이 있는 한은 희망이 있고 전성기라 부를 수 있는 것 같다.

 아침에 일찍 깨서 서서울 호수공원을 한바퀴 돌았다. 공원안에 식물들이 다 이뻤고 미루나무가 특히 이뻤다. 나에게는 아내를 포함한 직계 가족과 식물에 대한 사랑이 있구나 생각했다. 그러니까 다 텅 비어버린 것 같고 다 잘못되거는 것 같아도 핏속 어딘가에는 뭔지 모를 희망이 있다.

 아버지 전기요금 계좌이체하고 핸드폰 충전기 잘 되는 거 확인했다. 이제 순대국 잘 먹는것만 확인하면 되겠네. 이렇게 쓰고 나니까 한결 가벼워졌다.

서서울 호수공원 미루나무. 포지션의 동명 노래를 흥얼거림. 노래가 나왔던 드라마에서 엄정화가 연기를 참 잘했던 게 기억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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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강릉에 불 났다. 산에서 시작했으니 산불이라고 하나보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국유림관리소 산불 담당자였다. 정선은 산불이 자주 나지 않지만 소소하게 산불이 발생하고 동해안 쪽 대형산불 지원을 포함해서 현장에 많이 갔다. - 담당자니까 당연하겠지. - 처음 산불 현장에 갔을 때, 말로만 듣던 산불을 직접 보는 것에 대한 신기함이 있었는데 그때 한 번 뿐이었다. 직업인 입장에서는 산불현장에 가면 울화가 치민다. 힘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무들 타는 걸 보면 속이 상하다. 잿더미인 산을 보면 윗줄과 다른 종류의 울화가 치민다. 세상이 끝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뭐 여튼 그렇다. 어제 산불은 건물을 많이 태웠다. 터전이 타버린 사람들은 이루고자 했거나 이루었던 모든 것이 한 번에 무너진 느낌이겠지. 전쟁의 결과가 그러할 것이다. 아직 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으니 다행인걸까? 언젠가 내게도 모든 게 무너지는 날이 올까? 다들 그러지 않으려고 사는 것이다. 

 아버지는 본인이 무너진 걸 모르는 채 무너져버렸다. 그건 불행 중 다행인건가? 어제 아버지 친구가 대전에서 아버지를 찾아왔다. 핸드폰 충전하는 법을 잊어서 수시로 전화기가 꺼져있는 아버지 핸드폰 통화목록이나 카톡 대화창에 그 친구분 이름을 많이 봤다. 엄마한테 물어보니 예전에는 한 동네 살아서 자주 만났던 친한 사이라고 했다. 아버지 친구는 아버지가 요양병원 같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면회라는 단어를 썼고 내가 그런게 아니라고 알려줬다. 아버지의 얘기에 따르면 데이케어센터에서 아버지를 데리고 나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한 걸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친구랑 저녁도 잘 먹고 호수공원에서 산책했다는 얘기를 어제 네 번 오늘 아침에 두 번 했다. 그만큼 좋았단 얘기겠지. 아버지를 찾아 주셔서 고맙다고 했더니 니가 더 고맙다고 했다. 고맙단 말 오랜만에 들었다. 그 말이 말이 위로가 됐다. 고맙단 말을 위로의 말로 등록해둔다. 출근길에 데이케어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아버지 전화기가 꺼진걸 알았다. 다행히 센터 직원이 출근하다가 시장통에 있는 아버지를 발견해서 같이 센터에 왔다고 한다. 그러지 않았더라도 아버지 혼자 센터에 찾아갔을 것이다. - 집에서 센터까지 100미터 안됨. -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만해도 정말 다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조금은 맘 편하게 강릉에서 아버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전세 계약기간 종료되는 10월에는 강릉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 엄마가 반대하더라도. -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강릉 전체가 쑥대밭이 됐을수도 있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을 항상 생각하면서 살려고는 하는데,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들 때문에 그 사실을 자주 잊는다. 오늘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저녁식사 자리에 희생양으로 가게 되서 기분이 안 좋은 찰나에 가지 끝에서 새로 시작하는 층층나무 잎을 봐서 고맙다는 말 만큼이나 위로가 됐다.

20220412 시작하는 층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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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얘기 빼고 써보려고 한다. - 동생한테 토요일에 아버지 만나서 순대국 먹으라 했고 미션 수행이 잘 됐다. - 
 
 지난 금요일에 태백에 다녀왔다. 친구를 만났다. 인생에 공유한 것은 별로 없지만 대화의 합이 잘 맞는 친구다. 내 일기를 좋아해 주는 친구다. 내가 더 많은 말을 하게 되고 그 친구는 대꾸를 잘 해주는 것 뿐인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태백에 친구가 있다는 게 좋다.
 
 수도권 제외하고 많은 곳이 그렇지만 태백은 쇠락을 대표하는 도시다. 폐광 후에 급감해버린 인구수가 원인이다. 10년 전만해도 쇠락했거나 쇠락해가는 도시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충남 서천 장항읍, 태백 황지동이 우선으로 떠오른다. 한 때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지금은 황량한 거리 위 빈 건물들 사이로 무심한 바람이 지나는 그런 동네들. 사멸하는 것은 아름답다는 인식 때문에 그런 마음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마모되어 사멸 또는 소멸하는 것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지금 마음은 그 동네에 살고 싶지는 않다.  
 
 마이클잭슨(또는 마이클 조던)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어느 분야든 전성기는 짧다고 생각한다. 가수들은 음반 3장 연속으로 히트하기가 어렵고, 시인이나 소설가도 마찬가지다. 지속적으로 작품이 히트를 하더라도 그 작품이 그 사람의 정점에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다. 정점 이후에는 익숙함과 완숙함이 있다. 아이유의 노랫말도 - 아이유 가사를 너무 잘 씀 - 최전성기에서 내려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영리한 사람들은 적절한 시점에 은퇴를 택하기도 한다. 이건 유명세를 한 번이라도 떨친 사람들 얘기고, 세상에는 원히트원더 가수가 꿈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전성기는 언제 오나? 어느 분야에서? 이미 지났나? 애초에 올 일이 없나? 헛된 바람인가? 나는 왜 이름을 떨치려고 하나? 나는 왜 사람들을 만나면 정점에서 내려오는 얘기를 하나? 
 
 벚꽃지고 나면 튤립 핀다는 걸 알기에 어제 아내랑 수목원에 갔다. 절정을 보기 위해서. 햇빛을 받은 튤립은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반짝거리고 벚나무에는 곧 열매가 달리겠지만 바람불면 열매든 꽃이든 다 떨어지는 게 인생이다. 나무나 꽃이나 사람이나 한 번 왔다 간다는 건 똑같다.
 
 영화판에 미련을 두고 있지만 확실한 크레딧이 없는 친구들을 본다. 그 친구들에게는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해서 40대 중반이 되어도 이름을 떨칠 희망이 있다는 얘기를 해준다. 그 얘기가 나한테 하는 얘기란 걸 이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AI가 글을 쓰는 세상에 내가 쓰는 글이 기록 말고 다른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내 일기를 좋아하는 확실한 한 명이 있다. 사실은 그거면 족하다.
 
 올해도 강릉은 봄바람이 거세다. 내년에도 삶과 마음이 꺽이지 않아서 봄바람이 거세다고 쓸 수 있었으면 한다.
솔향 수목원 튤립 202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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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에 브루스 윌리스가 알츠하이머란 뉴스를 접했고 디즈니플러스에서 다이하드 1편을 봤다. 다이하드는 1편이 제일 재미있다. 브루스윌리스의 첫 장편영화 주연작이고 감독은 존 맥티어넌이다. 시트콤 프렌즈에서 조이가 좋아했던 영화다. 이런 정보들이 아직은 내 머릿속에 있다. 언젠간 사라지겠지만. 

 오늘 아침에는 부르스 윌리스 생일 파티 뉴스를 봤다. 69세라고 한다. 미국나이는 만 나이고 우리 아버지는 만으로 70세다. 아버지 치매 시작이 2년 전이라 치면 둘 다 이른 나이에 치매가 왔다. 치매는 사람을 가려서 오지 않는다. 브루스 윌리스 기사에는 '초점 잃은 눈' 이라고 하면서 몇 장의 사진이 붙었다. 우리 아버지 눈빛도 그러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아버지 삶인가, 생각한다. 요즘들어 더 자주. 부쩍 자주.

 아버지 목소리 듣고 나면 항상 울적해짐. 하루에 세 번 통화하니까 하루에 세 번 기본으로 울적해짐. 본인이 다 괜찮다고 먼저 말하기도 하고 내가 잘되고 있냐 물으면 그렇다고 해도 나는 안 괜찮다. 왜 내가 안 괜찮은지 모르겠다. 아내는 힘들면 얘기하라고 하는데, 뭐가 힘든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괜찮다고 한다. 아버지가 나에게 다 괜찮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이런 경향도 유전자 때문이라 생각한다. 엄마 빼고 아내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물어보면 힘들다고 해야겠다.

 아버지 혈압이 너무 낮다고 데이케어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어제 아침 통화할 때 아버지가 코피가 났다고 했다. 아버지는 코피가 자주 난다. '노인 저혈압과 코피' 같은 걸 검색해보지만 소용없다. 금요일에 서울가서 아버지 혈압약 처방해주는 의사 선생님 만나볼까 싶다. 

 고혈압이라 혈압약을 먹는데, 최고 혈압이 너무 낮고 위암 수술을 받은 이후로 체중이 빠지고 있는 치매 3년차 노인. 이게 현재 우리 아버지다.

 뭔가 쓸쓸하네. 답답해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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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0일이네. 올해가 점점, 다 갔다.

 지난 금요일에 회사 하루 쉬었다. 너무 피곤해서. 주말에 산불근무 한 걸로 평일에 쉴 수 있는, 당연하지만 누구나 다 누리지는 못하는 좋은 시스템이고 괜찮은 회사다. 오랜만에 노래를 하나 만들었고 운동을 했고 은행에 다녀왔다. 단골 커피숍 사장님이 코로나 때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를 했고 나는 어려울 때일수록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 이게 진심이란 게 현재 내 문제다. - 그런 때일수록 버티라는 위로의 말을 들었다. 고맙습니다. 이때까지 순조로웠다. 오후 늦게 친구 만나러 태백에 올라가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아버지 압박에서 벗어나서 일상으로 돌아온 첫 주 금요일에. 일상이 다시 깨졌고 울화가 치밀었다. 사고란 게 항상 그렇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허리에 약간의 충격이 있지만 나는 괜찮다. 상대 운전자도 멀쩡하게 돌아다녔기 때문에 크게 다친게 아니면 좋겠다. 내가 뒤에서 받았기 때문에 상대 운전자에게 괜찮냐고, 진심으로 물어봤고 이후에는 보험회사에서 알아서 처리했다. 편리한 시스템이다. 다만 차는 엉망이 됐다. 내 마음처럼.

 사고 나고 앞차가 길 옆에 차 세우고 운전자 멀쩡하게 내리는 거 보자마자 폐차와 차를 새로 구하는 일과 그 비용을 생각했다. 이게 현실이다. 감당할 수는 있지만 귀찮은 현실, 보편적인 욕망을 사는 사람의 마음. 다친 사람 없으니 괜찮다는 평범한 위로의 말을 듣고 마음이 풀리는 일.

 최근에 아내에게 보편적인 욕망이란 얘기를 했다. 어느 취한날 밤의 메모에는 신랑 마음도 모르고…라고 적었길래 바로 지웠다. 말을 해도 모르는데, 말도 안하는 남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나. 내 집을 갖고 싶고 기왕이면 그 집이 좋은 집이면 좋겠고 새차 사고 싶고 비싸고 맛있는 것 먹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복권에 당첨됐으면 좋겠는 마음. 그게 내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욕망이다. - 20대 초반에 동생이 아파트에 살아보는 게 꿈이라고 한 적도 있다. - 돈을 많이 벌거나 부자가 되기 위한 노력은 나에게도 없지만 아내는 애초에 그런 욕망이 부족하다. 이렇게 살아선 강릉에선 집을 사기도 편안한 마음으로 살기도 어려울 것 같아서 아내에게 동료들이나 친구들에게 전남(순천, 목포, 여수)에 가서 살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다닌다. 이건 보편에서 시작한 나의 개별적인 욕망이고 이쪽이 복권 당첨보다는 실현성이 높다. 사고 나고 레카차랑 보험회사 직원 오는 거 기다리는 동안 강원도에서의 운을 다 썼나,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삶이 들떠 어지럽기 때문이다. 차분하지 못한 이유에 아버지 비중이 크지만 그게 다 아버지 때문은 아니다

 그랬더라면, 하는 마음은 일이 잘못됐을 때만 든다. 주유소에 들르지 않았더라면 태백에 가기로 하지 않았더라면 미용실 예약에 빈 자리가 있었더라면 엄마한테 보낼 택배 보내러 다녀왔더라면, 휴가를 쓰지 않았더라면 하면서 후회가 시간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게 좋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까지는 가지 않는다. 보통은 다 그렇지 않을까?

 친구한테 몸 구석구석 짜증이 박혀있다고 했더니 이 나이 땐 짜증이 베이스로 깔려있다고 답장이 왔다. 다들 그렇구나, 이런 말과 생각으로 위로 받는다.

 뭔가 들뜬 마음을 가라 앉히라고 사고 났다 생각해야지. 다친 사람 없으니 됐다. 뭐 어떻게 되는건 없고 내가 알아서 해야한다. 그게 어른이다. 진단서 미첨부 병가를 쓸 수 있는 회사를 당분간은 그만두지 말아야겠다.

 보통의 마음 같은 걸 생각해보면서 어지럽게 봄이온다.

 금요일에 만든 노래 가사. 제목은 ‘봄’

마당엔 꽃잎이 듬성듬성
마음엔 그리움이 드문드문
문득문득 당신생각 피어오른 그리움을
오늘일까 내일일까 사라질까 겁이나서
두손 모아 빌었지만 그대 마음 알 수 없네

마당엔 꽃잎이 듬성듬성
마음엔 그리움이 드문드문
담장 너머 뛰어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살랑살랑 봄바람에 그대 마음 어딜가나
아지랑이 어지러워 내 마음도 알 수 없네

봄_초안.mp3
1.08MB

 

AND

아버지, 엄마, 나 셋이 오랜만에 같이 다녔다. 같이 다닌건 이혼할 때 후로 처음인가? 처음에 의미를 두는 인간이란 존재가 참 무의미하다.

아버지는 건강하고, 의무 기록도 다 발급받아서 우체국 보험 신청도 했다. 아버지는 데이케어센터에 돌아가서야 마음이 편해보였다. 현재 아버지의 모든것은 아버지가 학교라 부르는 그곳에 있다. 좋다. 아버지 평생에 여기처럼 본인을 챙겨준 곳도 없을 것이다.

엄만 많이 야위었고 아버지도 체중이 줄었다. 멀쩡한 건 나 뿐인가? 나도 피로가 가시질 않는다. 힘들다. 친한 사람들 만나면 힘들단 말부터 한다. 그만큼 힘들다.

서울 강릉 왕복 기차표가 52000원인데 먼저 일요일에 아버지랑 은행 두 군데 돌면서 잔고 확인하고 아버지 현금 찾아주니까 아버지가 차비하라고 만 원 줬다. 돈이란 건 치매에 걸려도 아끼고 싶은 것이다.

그런 세상을 아버지도 나도 산다. 여전히. 많이 함드네. 강릉 가는 기차 기다리면서 잠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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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침대 위에 반대로 누워서 쓴다. 아버지 암 수술은 잘 끝났고 2월 28일에 퇴원했다. 의사는 젊은이들보다 회복이 빠르다고 했다고 하고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는 건강하다. 당분간 죽을 먹어야 하는데 데이케어센터에서는 토요일 점심밥까지만 아버지를 돌봐줄 수 있어서 내가 올라왔다. 내일 올라올까 싶었지만 한 끼니라도 내가 직접 아버지 보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그냥 오늘 왔다. 전화기 들고 뭐 해라 뭐 하지마라 백 번 말하는 것 보다 가까이서 보는 게 안심이다. 아버지 집에는 엄마가 사 둔 죽, 요플레, 두유와 내가 방금 사온 카스테라와 아버지가 사둔 달걀이 있다. 달걀은 내일 삶아 드리고 오늘은 나머지를 두 번에 나눠서 하나씩 먹고 아버지랑 같이 자는 작전이다.

아버지는 건강하다. 본인도 아픈곳 없다고 하고 그냥 봐도 아픈데 없어 보인다. 잘 됐다. 수면 마취 때문인지 입원 중에는 많이 횡설수설했다는데, 내가 보기에 지금은 수술 전과 비슷하다. 치매의 증상은 나빠지지만 않으면 또는 급격히 나빠지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아버지에게는 두 개의 암보험이 있다. 죽고 나서 보험은 소용 없는데, 수술 후 건강한 상태에서의 보험은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엄마처럼 보험 맹신주의자는 아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보험료를 타기 위해 일일이 증빙을 하는 수고로움이 싫다.

계속 적고 있지만 아버지는 건강하다. 아버랑 수술 입원 내내 같이 있던 엄마는 녹초가 되서 오산으로 돌아갔다. 인생 모르는 거지만 아버지가 엄마보다 오래 살 것 같다. 나라면 그런 순간이 와도 그뿐이라고 하고 말겠지.

목요일 오후에 아버지 데이케어센터에 데려다 주면서 아버지 약도 다 맡겼다. 앞으로는 내 전화로 약을 먹는 것보다 샌터에서 챙겨 주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다. 열흘만에 아버지를 본 센터 선생님들이 명교 어르신 오셨다고 엄청 좋아했다. 같이 지내는 정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거다. 좀 있다가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나를 보고 반가워 하겠지. 나도 아버지가 나를 반기는 모습을 보면 좋을 거 같다. 부모 자식의 정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거다.

초중고등학교 개학하고 나서 거리에서 몰려 다니는 학생들 무리를 자주 본다. 초딩들은 초딩대로 종종거리는 게 귀엽고 중고딩들도 걔네들대로 어설픈 모습이 보기 좋다. 오래 46살이다. 학생들 몰려 다니는 것만 봐도 기분 좋아지는 나이가 됐다.

아버지, 제가 할 수 있는데까진 챙겨드릴테니까 어쩔 수 없는 건 그냥 두고 일단 건강하자구요.

오즘은 아버지 핑계로 무너지지 말아야지 생각을 많이한다. 세상의 일들이 한 순간에 벌어지니까 갑자기 무너지지 않도록 어두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된다.

-> 아버지 퇴원한 날 영상통화. 괜찮으니 의사가 퇴원하라 했겠지만 이때도 아버지 몸 상태가 괜찮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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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운동 끝내고 샤워하다가 <집>을 생각했다. 이유도 없이 머리에 뜨거운 물 맞다가 갑자기. 집에 대한 욕망은 단순한 것이다. 주인에게 쫓겨날 걱정없는 내 집을 갖고 싶다. 빚 없이 내 집을 갖고 싶다. 한 번도 내 집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 내 집을 갖고 싶다. 변기 수압이 세고, 부엌도 넓고, 거실엔 커다란 텔레비젼이 있고, 퇴근하고 돌아올 때 주차할 곳 없을까봐 걱정할 일 없는 내 집을 갖고 싶다. 이 정도의 보편적인 욕망이 나에게는 있다.

 아버지는 어제 입원했고 오늘 수술이다. 다음주 초 퇴원할 때까지 엄마가 아버지를 돌보기로 했다. 아버지 일로 내가 서울 오갈 때, 왜 엄마가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엄마 생각을 하니까 나도 눈물이 난다. 엄마는 나를 대신하고 나는 엄마를 대신한다. 그 대신하는 마음에서 나온 눈물이다. 그 안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한 움큼 섞여있다. 엄마는 나를 걱정하고 나는 엄마를 걱정한다. 사랑이다. 걱정이 많은 사랑. 아버지랑 엄마는 병실에서 무슨 얘기를 할까? 살아가는 얘기를 나눌 수 없는 사이란 건 슬프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도 사랑일까? 난 아닌데, 엄마 마음은 모르겠다.

 수술은 별 걱정 안한다. 수술 후에는 문제가 있다. 한 달 정도 밥을 아주 천천히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치매 걸린 이후에 먹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데이케어센터를 이용하지 않는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 아버지 밥 먹는 걸 어떻게 컨트롤 하는냐가 문제다. 한 두달 정도라면 나랑 동생이랑 번갈아 가면서 아버지를 만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동생은 동생대로 아버지가 암 수술을 하는데, 본인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로 마음이 어둡다. 아버지 사업 실패 - 사업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 때문에 산산조각 났던 가족이 아버지 치매랑 위암 때문에 대동단결하게 됐네. 씁쓸하다.

 아버지는 스스로를 잘 컨트롤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나에게 인생은 어떤것이다, 라고 한 적이 없다. 아버지에게는 인생이 어떤 것이라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스스로는 삶에 자신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뚜렷한 목표라던가 계획이 없었다. 그저 80년대 중후반을 관통한 경제 호황이라는 시대 분위기에 따라서 막연히 다 잘될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아버지와 비슷한 종류의 자신감을 피로 이어 받았다. 그게 너무 싫을때가 있다. 모든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그렇지 않을때가 많네. 그래서 아직도 내 집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도 인생을 관통하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 엄마는 그저 열심히 살라고 했다. - 아, 옛날사람 - 아쉬움을 갖고 이런 얘기를 적지만 밥을 굶거나 맞고 자라지 않은 것만해도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냥 산다. 너로 산다. 사랑으로 산다. 술로 산다. 그냥 사는 걸 포함해서 뭘로든 살기만 하면 되는건가? 그냥 사는 거랑 되는대로 사는 건 많이 다른 느낌이네. 그냥 사는 것에는 의지가 들어있다. 되도록이면 그냥 살자. 아버지 걱정은 퇴원 후로 미루자.

 아버지 입원한 날 <집>에 대해서 생각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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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 1시 52분에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마침 자다가 깨서 잠깐 멍하게 있던 중이라 바로 전화를 받았다. 머릿속에서 시간 혼란이 온 아버지는 아무도 없는 그 시간에 1시간 정도 걸리는 산책코스를 돌고 왔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내가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네, 안녕하세요.' 하고 전화를 받았다. 데이케어센터에서 차 타러 나오라고 전화한 줄 알았던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새벽에 나한테 전화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고 뭔가가 이상했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엊저녁에 통화할 때도 했다. 이 정도만 말똥말똥해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다만 새벽에 시간개념 없이 밖을 돌아다닌 걸 처음이라 살짝 걱정이다. 아버지한테는 사람 없을 때는 어디 돌아다니시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가 체크카드를 사용하면 나한테 알림이 온다. 데이케어센터에 있는 날이 많으니까 알림은 한 달에 많아야 10개 정도 온다. 마트에서 뭘 사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김밥을 사먹거나 이런거다. 8000원 이하가 많다. '8000원 이하만 소비하는 삶' 짠하다. 어제는 빵집에서 빵을 샀다는 알림이 왔고 - 센터에서 저녁을 먹었지만 빵이 드시고 싶었나보다 생각함 - 커피가 먹고 싶은데, 커피가 떨어져서 커피 사러 나왔다고 하길래, 아버지는 위암이라 커피 드시면 안된다고 했다. 위암이라 반복해서 얘기해줘도 자꾸 잊는 걸 보면 아버지 머릿속에는 애초부터 본인이 '암'에 걸릴수도 있다는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세상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아버지의 지금 상태는 어떤면에선 좋고 어떤면에선 좋지 않다. 햄버거와 찬물의 공통점은 위 아래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많은 것들도 그러하니까.

아버지가 위암 판정 받고 서울 몇 번 왔다갔다 한 이후에 부쩍 우울해졌다. 산불조심 기간이라 주말에 사무실에서 근무를 섰다. 일요일 오후 늦게 친구 N이 어렸을 때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고등학생이던 나, 20대 초반이던 나를 봤다. 친구들이랑 부석사 갔던 것도 생각나고 고교동창들 이름이랑 별명도 떠올랐다. 뭔가 위로가 됐다.

나는 지금 어떤 추억을 쌓고 있나? 아버지와의 추억을 쌓고 있네. 아버지한테도 추억이 쌓일까?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 중요한가? 과거가 아름답게 기억된다면 그것은 그게 다 지나간 일이기 때문이다. 먼저 아버지 만났을 때는 아버지 회사 다닐 때 얘기를 들었다. 사장이 아들한테 회사를 물려줬고 그 사장이 술 먹고 노는 것만 좋아해서 많은 직원들이 몰래몰래 돈을 빼 가고 그러다가 회사가 망했다는 얘기였다. 아버지의 기억은 내가 바로 위에 쓴 문장보다 약간 길 뿐이다. 짧게 요약할 수 있는 기억. 짧게 기억되는 과거. 아버지는 아직 나를 알아보고 내 이름도 안다.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를 짧게 기억할 뿐이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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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강경. 구멍 2-3개. 가벼운 수술이다. 위 3분의 2를 잘라내고 남은 위에 소장을 끌어올려서 붙인다. 수술은 총 4시간 이상 소요.
남은검사 - 엑스레이 심전도 혈액형 검사 순환기 내과 진료의뢰 - 입원 전에 진행해야 함
2.22. 점심 때 수술하기로 함
20일에 코로나 검사(이대병원에서 진행)
21일 오후 입원
보호자 상주하려면 코로나 검사, 아니면 간병인 구할 것
수술 5-6일 후 퇴원
수술 후 밥을 매우 천천히 먹어야 함
1기로 예상 되지만 수술 후에 1기가 아니라면 항암치료 해야됨.

어제, 아버지 수술해 줄 의사 만나서 들은 얘기다. 나보다 어려보이는 의사가 말을 시원시원하게 해서 듣기 좋았다. 엄마한텐 말로 설명하고 동생이랑 아내한테는 텍스트로 보냈다. 그래도 또 말로 설명해야 된다.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는 아버지보다는 20일부터 누가 어떻게 아버지 일을 진행할지가 더 걱정이다.

어제는 지치고 힘들었다. 데이케어센터, 병원 세 곳, 약국 두 곳, 식당 두 곳 한 번 다녀왔다. 병원 안에서도 여기저기 막 돌았는데, 신경과 선생님이 새해 복 많이 받고 수술 잘 받으시라 한 것과 - 전신마취 후 섬망증상이 나타나도 너무 걱정 말란 얘기도 함 - 가정의학과 선생님이 혈압약 약한 걸로 바꿔주면서 수술 잘 받으시라 한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형식적이고 사소할 수도 있는 말이 힘이 될 때가 있다. 예정에 없게 하루 더 서울에 있게되서 울적했다. 모텔 욕조에 목욕물 틀어놓고 담배 피우면서 힘들다. 힘들다. 했다. 스스로에게 하는 힘들단 말 말고 나를 위로해 줄 말이 없다, 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7시반에 병원 도착해서 두 시간만에 네 군데를 돌았다. 검사 다 마치고 만난 의사가 심전도도 좋고 청진기로 들어본 소리도 좋으니 수술 잘 받으시라고 했다. 여기까지로 일단 안심이다. 데이케어센터 가서 아버지 수술 일정 설명하고 지금 청량리역 가는 중이다. 오늘은 이동이 많지 않아서 어제보다 덜 힘들지만 힘들다. 심적으로. 아버지랑 함께 있는 건 덩치 큰 어린이랑 함께 있는 것 같다. 엄마는 내가 너무 고생해서 눈물이 난다고 하는데,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을 엄마가 하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엄마한테 같이 살자고 하는 아저씨들이 있었을텐데 엄마는 왜 재혼하지 않았나? 자식들(나랑 동생) 때문이라 생각한다. 부모 자식이란 게 서로 눈물 흘리는 사인가 보가.

서울은 어제 오늘 미세먼지가 심하고 강릉은 몇 달 째 가물다. 아버진 머릿속은 먼지낀 듯 뿌옇고, 엄마도 나도 동생도 마음속이 점점 메말라간다.

소변검사 하는데 오줌 잘 못 받아서 내가 종이컵 받쳐줘야 되는 아버지가 이제 봄이 오나보다, 말했다. 아버지한테도 아직까지는 봄이 온다.

어쩌겠나 살아야지. 여전히 위로받고 웃는 순간이 있으니까.

수요일 오전인데 일주일이 다 간 것 같다. 청량리역 가는 중인데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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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버지 만났다. 병원가서 검사 결과 들었다. 의사가 수술을 권한다고 했다. 의사말을 따라야지. 6일에 수술해 줄 내과 의사 만나고 7일에는 수술 전 준비 과정으로 심장초음파 검사 하고 신경과 선생님도 만나야 한다. 6일은 동생이 7일은 내가 맡는다. 동생이 있어서 다행이다. 치매 때는 여러가지 자료를 많이 읽어봤지만 위암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암은 그냥 암이니까 도려내면 되니까.

아버지는 요새 좀 말똥말똥한 느낌이다. 통화할 때 나한테 고맙단 얘기도 자주하고 약도 먼저 챙겨 먹은 일이 많다. 실제로 만난 아버지도 말똥말똥한 느낌이었다. 물론 이미 잃은 능력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병원에서 진료지연으로 대기 시간이 좀 있었는데, 아버지가 엄마는 건강하지? 물었다. 젊어서부터 지하실에서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 건강할리가 있냐고 살짝 부아가 나서 말했다. 작년에 뇌수술도 하지 않았냐고 하자. 웃으면서, 그랬나? 해버리는 아버지를. 나는 사랑하진 않는다.

정월대보름이 가까워서 신월동 시장에 잡곡이랑 나물이 눈에 많이 띄었다. 취나물 다래순 고구마줄기 도라지 봄동 아주까리 같은 것들이 수입 체리와 뒤엉킨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았다. 체리 빛깔이 매혹적이라 그런것 같다. 아직까지는 대보름 풍속이 살아있다. 입춘대길도 그렇고 뭔가 복이 되고 돈이 되고 좋다고 하는 풍습이 오래 살아 남는다. 정월대보름은 언제까지 가려나? 아버지는 내가 케어하면 되는데 내 더위는 누가 사가나?

아버지 데이케어센터에 모셔드리고 국철타고 오산 엄마한테 왔다. 예전에는 수원역 전후로 초록 들판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와이 슈운지의 릴릴슈슈의 모든것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겨울이기도 하고 새 건물도 많이 올라가서 수원역에서 오산역 사이에 그런 들판은 없다.

엄마는 장사할 때 알던 아줌마 아저씨들과의 관계 속에 살고 있다. 그 관계에서 크게 스트레스 받는일은 없는 거 같다. 그러면 됐다. 엄마가 해 준 찰밥 먹었다. 엄마랑 얘기 많이 했다. 내 태몽이 복숭아가 아니라 통장과 도장이란 걸 알았다. 여지껏 왜 복숭아로 알고 있었을까. 이웅평 대위가 남한 상공을 날 때, 마침 짜장면을 시켜놔서 울면서 많이 먹으라고 했단 얘기도 다시 들었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장사할 때 원도한도없이 고생했단 얘기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런 얘기를 하게 된 엄마를. 장사할 때는 힘들단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엄마를. 정말로 열심히 했다(살았다)는 엄마를. 나는 사랑한다. 해 준 것도 없는데 얘기를 또 하길래 앞으로는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했다. 나도 동생도 아버지도 이미 충분히 받았다.

윤석열이가 같이 술 먹고 놀자고 쫓아오는 꿈을 꿨는데, 도망가다가 붙잡히질 않아서 복권을 사진 않았다는 엄마 얘기를 기억해 둔다. 엄마 삶이 여러가지로 뒤엉킨 꿈이라 샹각한다. 엄마, 복권은 제가 살게요.

아버지가 위암 판정을 받고 꽤 지났고 나름대로 빠르게 진행했는데, 아직 수술 날짜도 잡히지 않았다. 이게 세상의 속도고 당장 아버지 숨이 넘어 가는것도 아니니 순서대로 차분하게 진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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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에 ys형 만났다. 그래봤자 며칠전이다. 내 구글 주소록에 영어로 저장된 넷 중에 한 명이다. 떠돌이 같던 인생에 지금 직장 알려준 고마운 사람이다. 한참 마시던 중에 형은 요새 이슈가 뭐에요? 물었는데, 없다고 했다. 사람들 만나면 요즘 이슈가 뭔지 가끔 묻곤 하는데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 처음 봤다. ys형은 집 살 때 진 빚도 다 갚았고 아내랑 같이 벌고 아이도 없으니 이슈가 없다고 했다. 와, 이슈가 없는 사람도 있구나.

내게는 크게 두 가지 이슈가 있다. 아버지랑 집이다. 곧 만 4년을 채우는 전셋집은 집주인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고 나도 나갈 마음이 없기 때문에 자동으로 계약이 2년 연장됐다. 2년 후에 이사 가게 되면 전세 보증금 돌려 받을 수 있나? 하는 문제가 남았지만 일단 집 문제는 해결됐다. 치매인데 위암에 걸린 아버지는 아마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나의 이슈로 남을 거다. 2월 3일에 의사 만나서 검사 결과를 듣고 수술 등 날짜 잡아야 하는데, 벌써부터 걱정된다.

며칠 전에 아내한테 이슈가 뭔지 물었는데 없다고 했다. 없으니까 좋은건가? 혹은 체념인가? 아내는 말 길게 하기 귀찮아서 없다고 했을거다. 나는 나도 걱정, 아버지도 걱정, 엄마도 걱정, 나라도 걱정, 국제 정세도 걱정이다. 체념하는 삶을 사는 것 처럼 말하고 다니지만 걱정이 많으니 진짜 체념은 아닌가? 유명해지고 싶다는 열망을 여전히 갖고 있으니 체념은 아닌 것 같다. 그저 거짓말쟁이인가?

40대 중반 나이에 여전히 마음속에 열망이 꺼지지 않았다는 건 좋은 일인가? 당장 땟거리 걱정이 없으니 드는 배부른 생각인가?
잘 모르겠다.

p.s. 이슈의 반댓말은 체념인 거 같고 체념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반댓말인 것 같다.

AND

8시에 병원 도착해서 수납, 피검사, ct촬영 동의서 작성, 나만 커피 한 잔 마시고 - 아버지 미안해요. - 초음파 내시경 마쳤다. 병원 안에서만 다섯 군데를 돌아다녔네. 아버지 힘들었겠다. 그래서 그런지 검사 마치고 택시에서도 집에 와서도 잔다. 잠든 아버지 몸에 내 몸을 얹어도 아버지는 그저 곤히 잔다. 시장에 죽 파는 곳이 있길래 전복죽 사서 아버지 침대 근처에 두고 나왔다.

ct 찍으러 온 사람들 중에 바퀴달린 병원 침대에 누워서 '아' 소리를 계속 내던 할아버지가 기억에 남았다. 아픈것도 있지만 외로움의 절규 같은 '아'였다. 기력이 없어서 큰 소리로 내지도 못하는 '아'. 우리 아버지도 외로운데. 아버지가 저 사람은 아파서 소리내는 거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다.

초음파 내시경은 먼저 만났던 담당의사가 직접 진행했다. 사진 찍는 사람은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담당 의사가 진행해서 다행이었고 안심이 됐다. 내일 ct결과도 봐야겠지만 내시경 상으로는 깊게 파고들지 않은 조기암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 얘길 전했더니 엄마랑 동생이 좋아했다. 나도 그들만큼 좋은 건 아니지만 마음이 나쁘지 않다.

내시경 찍을 때까지 한 시간 정도 기다리는 중에 아버지 손을 잡았다. - 둘이 멍하게 있을 땐 손 잡고 있는 편이다 - 따뜻하다, 너도 열이 많아, 묻더니 금방 잠든 아버지가 기억에 남았다.

오늘 아버지는 (당연히) 왜 병원에 왔는지 몰랐고 난 잘못한 거 없어라고 자꾸 말했다. 얼마전에 속이 상한 엄마한테 한 소리 들어서 그런 것 같다. 누구나 다 걸리는 암에 아버지도 걸렸고 나도 아버지가 크게 잘못한 거 없다고 생각한다. 느긋하게 생각하면 아버지 치매도 술 보다는 유전적인 게 강한지도 모른다. - 할아버지 돌아가실 무렵에 횡설수설 하던게 희미하게 떠오른다. - 그렇다면 나도?

아버지, 아버지는 잘못한 거 없어요. 어제 금식 잘 하셨고 오늘 검사 받느라 고생 하셨어요. 좀 있다가 전화 할테니까 그때 죽 먹기로 해요. 내일은 작은 아들이랑 손주들 만나서 좋겠네.

아버지, 잘 하고 있어요.

신길역에서 출발한 1호선이 청량리역 도착하기 전에 글이 끝났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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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에서 강릉가는 19시 22분 기차 기다리면서 쓴다. 귀에 이어폰 안 꽂고 쓰는 거 오랜만이네.

청량리역에 18시 50분에 도착했다. 까치산에서 5호선을 타고 신길과 종로 3가 중 어느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탈지를 고민했다. 퇴근 시간의 혼잡도를 고려해서 5호선에서 자리에 앉은김에 종로 3가까지 앉아서 오는 쪽을 선택했다. 지금의 아버지의 삶에는 스스로 하는 이런  종류의 선택이 없다. 위암이라고 반복해서 얘기해도 그게 뭔지 몰라서 그저 웃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 편한 부분도 있다. 괜히 심각해 질 필요는 없지.

내시경 사진 상으로는 암덩어리가 두 개 있고 덩어리의 모양만 봐서는 초기 단계는 아닐거란 얘기를 들었다. 두 개의 덩어리 다 위치는 좋다고 했다. 수술하기 좋단 얘기겠지. 암에 걸렸는데 위치는 좋은 모순을 생각해본다. 19, 20일에 초음파 검사랑 CT 찍기로 했다.

엄마는 어제 다 울었는지 오늘은 울지 않았다. 자꾸 나한테 미안해 하길래 그럴 필요도 없고 며칠 뒤 검사도 동생이랑 의논해서 진행할테니 아버지 일에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어제 목욕도 하고 푹 잤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몸살 기운이 느껴져서 텅빈 아버지 집 아버지 침대에 전기 장판 틀고 누워서 땀을 흘리면서 잤다. - 병원 예약이 오후라 아버지는 아침에 데이케어센터에 감 - 개운해졌다. 전기장판 작동 못 시키는 아버지, 치매인데 위암에 걸린 아버지, 엎친데 덮친 아버지인가?

병원 다녀와서 순댓국 먹었다. 위암이란 걸 얼었으니 짜게 먹을 순 없는 노릇인데, 아버지는 내가 안 본 사이에 다대기도 넣고, 젓가락으로 새우젓을 잔뜩 집었다가 나한테 제지 당하기도 하고 내 눈치를 보면서 짜게 먹었다.

아버지 너무 짜게 드시지 마세요. 검사 잘 받아 보자구요.

-> 땀 흘리고 잔 후에 신월 3동 스타벅스에 갔다. 노트북이랑 공부할 거 없으면 혼자서 스타벅스 오면 안되는 세상에 살고 있나? 잠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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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9시 40분 강릉역에서 쓴다.

 아버지한테 가려고 10시 30분 기차 기다리기 시작했다. 의사 만나서 건강검진 결과 확인하고 데이케어센터 가정통신문 회신해 주는 간단한 일정이다.

 어제 저녁에 아버지랑 통화 마치고 아내가 한 마디 했다. 때때로 내가 아버지를 구박하거나 핀잔을 주는 말씨를 쓴다고 한다. 기분은 안 좋았지만 바로 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 말이 맞겠지. 막바로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아버지한테 부드럽게만 말해야지' 생각했다. 세상 모두가 아버지한테 화내고 막 대해도 나만은 그러면 안된다. 현재 아버지에겐 내가 최고의 의지니까.

 어제 억양이 올라간 이유가 바로 윗 문장인 게 아이러니다. 평소처럼 학교(센터)에 가 계시면 오후에 모시러 간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내 말을 듣지 않고 그럼 학교는 안 가도 되겠네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니까 어젯밤 아버지 머릿속에는 내일 큰아들 - 요즘 아버지는 내 이름을 잘 말 안(못) 함 - 만난다.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그저 그 뿐인데, 나는 그게 싫고 부담되고 남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버지가, 나만 기다리는 아버지가, 엄마에게 계속 부담인 아버지가 얄밉다.

 치매는 세계라는 시스템에서 동떨어지는 일이고 내가 보기에 아버지 인생이 시스템에서 멀어진 건 30년도 넘었으니, 자연인이 되지 않은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치매가 치맥같이 가볍고 얼렁뚱땅한 일이면 내 마음도 지금보단 편할텐데.



 아버지랑 헤어지고 신월동 모텔방 욕조에서 쓴다.

 아버지랑 오리로스 먹었다. 감자탕과 오리로스 중에 아버지가 골랐다. 나는 감자탕이 먹고 싶었다. 아버지랑 같이 돼지등뼈를 뜯는 이미지를 떠올려서 그렇다. 아버지는 위암이다. 대학병원 가라고 의사가 써준 소견서에 stomatch cancer라고 적혀있다. 의사가 별의별 병에 다 걸리시네요,라고 쿨하게 말했다. 내가 이 의사 선생님을 좋아한 이유다. 진료실 뒤쪽에는 꽤나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는 운동기구가 놓여있었다. 여태까지 이걸 몰랐다니. 무심했다. 병원 입구에서 별일 았으면 큰일이라고 했는대, 진짜 별일이 있었네. 위암이란 걸 알고 나서 오리 로스를 먹었다. 아직은 일상이 유지되도 괜찮으니까. 아버지는 분명 12시에 센터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4시에도 많이 잘 드셨다. 지갑에 돈 갖고 있고 싶다고 해서 은행에 들러서 돈 10만원 찾아드렸다. 아버지 지금 상태론 ATM 이용 못한다. 카드 비번을 몇 십 번 알려줬다. 나는 말하고 아버지는 흘린다. 목동이대병원 금요일로 예약했다가 무리인 것 같아서 내일로 바꿨다. 당일치기 강릉 서울 왕복은 자동차로도 힘들고 기차로도 힘들다. 아버지가 또 나만 기다리는 게 싫어서 내일 또 만날거라고 얘기 안했다. 회사를 포함해서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다.

 엄마는 머릿속이 까맣다고 했다. 아내에게 엄마가 까맣다는 얘기를 전했더니, 가슴이? 라고 했다. 머릿속이든 가슴이든 까만 건 까만거지. 엄마는 집안에 우않(우환)이 겹친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정정해 줄까 하다가 별일 아니니 걱정 말라고 답장했다. 그리고 엄마는 머릿속이 까매서 자꾸 울었다.

 땀난다. 내일 잘 마치고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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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가 할아버지 제사였다. 12시 반 정도에 오산 엄마집에 도착했다. 여태까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제사 준비하면서 사람(아버지)이 아파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제사가 다 무슨 소용인가 생각했다, 고 엄마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더구나 법적으로 엄마랑 아버지는 남이다. 그런 미안함이 아버지 동생들에게 있기를 바란다. 아마 있겠지. 없으면 안되지. 아버지는 JJ 작은 아버지가 모시고 왔다.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양반이니 당연히 본인이 아버지를 모시고 와야겠지. 동생네는 안 왔다. 막내 작은 아버지 내외까지 총 7명이 제사를 치렀다. 제사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이왕이면 이 정도 소규모가 좋다. 23일 아침에 아버지랑 통화하고 그날 저녁에 통화를 못했는데, 24일에 만난 아버지는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이름으로 알뜰폰 하나 새로 해 드려야지 생각했다. 제사 마치고 저녁 먹고 강릉으로 돌아왔다. 강릉오산 당일치기 왕복 운전은 언제나 힘들다. 25일에는 종일 누워 있었다. 아직은 누워 있는 일로 피로가 풀리는 나이다.

어제 아침에 건강검진 받고 바로 서울로 왔다. 친구 잠깐 만났다. 인생에는 여러가지 경우가 있다. 한 친구는 절반쯤 갚고 남은 빚이 오천이고 한 친구는 숫자 열자리의 ‘나의 자산’을 보여줬는데, 그 둘은 태어난 날이 같다. 내가 엮어준 사이고, 둘이 친해서 다행이다. 그들도 서로를 바라보면서 또 나를 바라보면서 인생에는 여러가지 경우가 있다고 생각할 거다.

오늘 아침에 혹시나 싶어서 아버지한테 전화했는데,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와, 아버지 전화기 찾았네. 데이케어 센터에서 오는 차를 타고 내리는 골목이 있는데, 그 골목에 휴대전화를 두고 지난 금요일 아침에 센터에 갔던 것으로 최종 확인했다. 아닐수도 있다. 중요한 건 아버지가 전화기를 찾았다. 해가 세 번 지는 동안 길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아무도 들고가지 않았다. 세상에 물건이 흔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딱 봐도 초구형의 스마트 폰을 주워도 어디 팔아먹을 곳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는 오늘 아버지 건강검진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3일동안 아스피린을 드시면 안되다고 해서 토요일로 예약을 미뤘고 올해의 마지막 날 아버지를 만나는 일은 동생에게 미뤘다. 자식이 둘인데, 둘 다 아버지를 포기하지 않았으니 시간나는 놈이 아버지 관련 일을 진행하면 된다. 은행에 가서 자동이체 전 마지막 가스요금을 냈고, 마그네틱이 손상된 통장을 새로 발급 받았고, 몇 번의 에러 끝에 아버지가 통장 비밀번호를 기억해 내는 일이 있었다. 먼저 서울왔을 때, 고생해서 만든 체크카드가 아버지 지갑에 없는 걸 알았고 은행에 간 김에 새로 만들까 하다가 왠지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핸드폰을 들여다 보다가 핸드폰 지갑에서 체크카드를 발견했다. 굿. 오늘도 아버지랑은 순댓국을 먹었다. 맛있는 집이 있다는 아버지 손에 한참을 끌려갔고, 아버지는 순댓국을 다대기 국으로 만들어서 먹었는데, 맛있다고 했다. 아버지 먹는 모습을 보면서 예전부터 가졌던 느낌이 확실해졌는데, 아버지는 뭔가를 먹는 일도 어설퍼졌다. 그걸 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실제로는 빨리 먹지 않는데도 보기에는 급하게 먹는 것 같고 입 주변에 음식을 많이 묻히고 바닥에 많이 흘린다. 밥 먹고 데이케어 센터에 아버지 모셔다 드렸다. 일이 빠르게 잘 진행된 날이다.

강릉에 도착해서 엄마 전화를 받았다. 올해 뇌수술 한 것 때문에 지난주에 mri를 찍었고 오늘은 그 결과 들으러 가는 날이었다. 엄마는 아버지 때문에 신경쓰게 해서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럴 것 없다고 했다.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끊기전에 사랑한다고 말할까 하다가 - 엄마가 살짝 바라는 것 같았지만 엄마도 먼저 사랑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이런것도 유전이지. - 몇 번의 타이밍을 놓치고 그냥 끊었다. 내일 전화해서 꼭 사랑한다 해야겠다. 전화를 끊고 오랜만에 만난 엄마 앞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엄마가 차려준 밥을 우걱우걱 먹고 싶은 기분이 됐다. 엄마가 뭘 차려주면 맛이 없더도 배가 터지도록 먹게 된다. 차려주는 쪽도 먹는 쪽도 어떤 결핍이 있다. 해준것도 없는데란 말과 수고했단 말을 엄마에게 듣고 싶지 않다. 엄마, 아버지에 대해서는 너무 신경쓰지 마시고 본인 몸 관리 잘 하세요. 저도 엄마 말대로 건강 신경 쓸게요.

오늘 아버지가 나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정신 차려야겠다.’ 고 내가 아버지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정신은 안 차려도 되는데, 핸드폰이랑 지갑은 어디 두고 잃어버리지 말고 항상 챙기세요’ 다. 아버지는 여전히 날 만나면 좋고 내가 본인 일 때문에 서울에 자주 올라오는 것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지금이 아버지의 가장 좋을 때라는 생각이다. 그 생각 때문에 슬퍼지는 건 아니다. 아버지, 설 연휴에 또 만나요. 다음달에 만났을 때도 ‘정신 차려야겠다’고 말해 주세요.

청량리 역 비둘기들은 한결 같이 등빨이 좋았다. 기억해 둔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학교)에서 만들었는데, 나보고 가져 가라고 해서 가져왔다. 우리 아버지 잘 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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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아버지랑 한참 통화했다. 나한테 뭔가 말할 게 있다는데 그게 뭔지 생각이 안 난다고 해서 그게 뭘까, 생각하면서 계속 말을 걸었다. 아버지는 자고 일어났더니 코피가 났다고 했다. 아스피린 복용 때문에 코피가 쉽게 안 멈출수도 있어서 그렇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추운데 괜찮냐고 물었더니 다 괜찮다고 했다. 아버지, 보일러 만지시면 안돼요. 출근하고 얼마 안 있다가 데이케어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어제 넘어졌고 나한테 얘기했다는데 알고 있냐는 내용이었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보니 데이케어센터에서 문자가 와 있다. 얼굴이 까진 아버지 사진이 내 전화기로 전송됐다. 어딘지 멍한 아버지 얼굴이 까져서 더 멍해 보이는 아버지. 마음이 터질 것 같았다.

 엄마한텐 아버지 다친 걸 전달 안하려고 했는데, 이번 주말 할아버지 제사 문제로 전화가 먼저 오는 바람에 아버지 넘어진 얘기를 해버렸다. 어디서 왜 넘어졌는지 아는 게 중요하지 않은데, 엄마는 그게 알고 싶다. 어제는 아침에만 약 드셨는지 간단하게 통화했는데, 어제 저녁에도 전화를 해서 아버지가 본인 넘어진 걸 얘기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없다. 마음은 계속 터질 것 같지만 소용없는 일에는 집착하지 말자. 아버지가 일요일 조기축구 운동 끝나고 밥 먹는 중간에 화장실 다녀오다가 넘어진 걸 알았다. 아마 눈길에 미끄려졌겠지. 다들 술에 취해서 치매 걸린 노인네가 넘어졌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고 병원에도 안 데려갔다며 엄마가 화를 냈다. 나는 조기축구 아저씨들 마음도 이해가 간다. 아버지가 일요일마다 운동을 오는 일이 그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 마음속으로는 이 노인네 그만 나왔으면 할 것이다. 엄마 말마따나 그게 남이다. 수십년간 함께 운동하고 술을 마신 사이지만 그게 남이다. 난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 머릿속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하지만 올해 회비를 냈으니 끝까지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분명히) 그리고 일요일에 혼자 집에 있으면 외롭다.(더욱 분명히) 아버지는 여전히 외롭다.

 아버지, 주말에 할아버지 제사 때 봐요. 그 사이에 또 넘어지진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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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4강이 결정됐다. 우리나라 경기 말고도 몇 경기를 봤다. 축구는 공 하나 두고 차고 달리는 스포츠다. 예전에 어딘가 적은 적 있는데, 구기종목은 대체로 사람보다 공이 바쁘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 16강 진출하면 좋고 아니면 말곤데, 조별리그 마지막 게임에서 역대급 게임을 했다. 4년전 독일전이 끝나고 대단한 게임이었다, 가 머릿속에 훅 들어 왔는데, 그걸 갱신했다. 대단한 게임이었다. 일본이 철저하게 숏패스 게임 중심인데, 우리나라는 롱볼이 가능한 게 인상적이었고 수준이 많이 올라서 예전같이 '어이없는 실수'는 하지 않게 됐다. 그건 월드컵에 출전한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다.

 일본, 사우디, 호주 - 호주는 엄밀히 아시아 국가는 아니지만 사우디도 엄밀히 말하면 중동 국가니까 - 한국 사람들은 아시아라고 하면 동(남) 아시아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나도 좀 그렇다. - 아시아로 통칭하기로 한다. 이란까지 포함해서 카타르를 제외하고는 멋진 게임을 했다. 일본은 지금 스타일에 좀 더 거친 플레이와  롱볼(독일전 두 번째 골 멋있었음)을 가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시아의 젊은이들 화이팅.

 크로아티아 - 유고슬라비아 사람들은 왜 이렇게 운동을 잘하나? 농구를 포함해서 흑인들 중심인 엘리트 스포츠 계에서 미국같은 나라한테 유일하게 비벼볼 수 있는 백인 나라가 아닌가 생각한다. 다득점 팀은 아니지만 많이 먹어야 한 골 먹는 게임을 하는 팀. 이런 팀들이 토너먼트에서 오래 살아 남는다.

 스페인 - 일본보다도 더한 숏패스 축구, 코스타리카한테 7골 넣은 경기를 봤는데, 숏패스 버튼 밖에 없는 축구 게임 보는 줄 알았다. 토너먼트에서 더 올라가기 위해서는 특급 선수(음바페, 네이마르, 메시)  또는 몸빵형 스트라이커(여기에도 음바페는 들어간다.)가 필요했다.

 브라질, 잉글랜드 - 멤버 구성 좋고 공도 깔끔하게 잘 찼지만 두 팀 모두 자기들보다 좀 더 거친 팀들에게 졌다. 영국과 프랑스 게임은 내가 본 이번대회 베스트 게임이었다. 양 팀 선수들의 기술적인 부분은 같다고 보고, 영국은 음바페를 잘 막았지만 좀 더 거친 축구를 구사하는 프랑스가 이겼다. 브라질은 2002 월드컵때 뛰었던 호나우두 이후로 그런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항상 전력은 최상위권이지만 결승에도 못 가는 건 토너먼트에서 골을 못 넣기 때문이다. 프랑스처럼 거친 축구를 하는 크로아티아에게 패배. 

 프랑스 - 첫 두 게임을 보고, 이 팀은 질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선 마지막 게임에서 튀니지에게 졌지만 16강, 8강에서는 다시 이 팀은 질 것 같지가 않다는 포스를 풍김. 음바페는 혼자는 막을 수가 없음. 본인도 상대가 본인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뜀. 현재 세계에서 공 제일 잘 차는 선수가 음바페가 아닐까 생각이 듬.

 아르헨티나 - 질 것 같지 않은 이미지는 아니지만 지저분하게(네덜란드와 8강전 개싸움) 올라온 팀들이 끝까지 가는 경우가 많고 나는 여전히 메시가 좋다.

 스포츠는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경기가 재미있다. 그런데 만화 슬램덩크(대 산왕공고 전)에도 나왔지만 막상 강팀이 약팀에게 진짜로 지는 순간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원래 강했던 팀이 승리하길 바란다. 브라질이 8강에서 탈락한 것에 대해 느끼는 실망감이 - 나만 그런가? 살짝 그런게 있다. - 그런 것이다. 사우디가 아르헨티나를 이겼을 때, 와우! 하면서 환호했지만 아르헨티나가 16강에 못 올라가기를 바라진 않는 마음 같은 거랄까? 독일은 결국 16강에 못 갔지만 그럴만 했다.

 나에게 월드컵 축구는 못 사는 나라가 잘 사는 나라 혼내주는 대회다. 식민지배를 받던 나라가 서구 열강을 축구로라도 때려 잡는 대회다. 축구라는 스포츠는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맨발로 공 차던 아이가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축구 배운 사람들보다 돈 많이 벌어야되는 종목이다. - 아프리카 이민자 후손들이 프랑스, 독일 축구 국가대표가 되는 일 - 그래서 남미팀이나 동유럽팀이 서유럽팀(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잉글랜드)을 이기는 게임을 보는 일이 즐겁고, 아프리카 팀이 잉글랜드와 (특히)프랑스를 이기는 게임을 보는 일은 더 즐겁다. 질 것 같지 않은 프랑스는 예선에서 튀니지에게 졌고 4강에서 모로코를 만나는데, 모로코에게 지기를 바란다. 

 모로코 경기를 한 경기도 못 봤는데, 준결승은 봐야겠다. 위에 적은 글들을 종합해서 내 희망을 적어보면 모로코랑 아르헨티나가 결승에서 만나서 메시가 한 골 넣고 아르헨티나가 이겼으면 좋겠다. 

 21세기가 4분의 1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국가대항전이 유효하고 흥미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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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한마리 집에서 점심 먹고 혈압약 타러 병원, 아버지 안경 두고와서 점심 먹은집 다시 들렀다가 의사 만나고 약국, 신한은행 통장 찍어보고 농협에 신용카드 없애러 갔다가 직원이랑 언성 좀 높이고 처음 카드 발급 받은 농협으로 가서 체크카드 발급 - 여기 직원은 친절했다. - 이동중에 건강보험, 가스요금 자동이체 신청 - 수화기 너머로 본인 확인을 이유로 아들 두 명 이름 말하라고 했는데 뭔 말인지 못 알아들은 아버지가 동생 이름만 말하고 내 이름 말 못함 - , 미납 주민세 계좌이체, 치매안심센터에서 약값지원비 신청, 동사무소 들러서 가족관계증명서 등 발급받고 치매안심센터에 팩스 보냄, 집에 들러서 약통에 약 채우고 데이케어센터 방문.

아버지 많이 힘들었겠다. 나도 많이 힘들었다. 아버지가 내 이름 말 못할 때 언성을 조금 높였지만 아버지한테 화를 낸건 아니다. 의사가 건강검진 받으라고 했는데, 걱정이다. 대장 내시경은 나중에 따로 하더라도 일반 건강검진이라도 받는게 낫겠지. 가능한지 모르겠다.

힘들었으니 놀아도 된다. 청라에서 건쓰짱 만났다. 영일군도 일 마치고 건너와서 잼있게 놀았다. 내일 모레가 건쓰짱 생일인데 생일 기념으로 아내, 어머니랑 양양에 놀러 간다고 한다. 엄마 꼭 안고 잘거라고 해서 45살 아이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직업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져서 사는 고달픔도.

나는 먹고 노는 일로 개운해졌는데, 뭔 일인줄도 모른채 온종일 나 따라다닌 아버지는 뭘로 기분을 풀지? 보고 싶다던 나를 만나서 오랫동안 같이 있었으니 그저 좋았을까?

아버지, 건강검진 작전을 잘 세워 볼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물론 다 잊어서 아무 걱정 없다는 거 잘 알아요. 그리고 통장에 돈 많으니까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먹 사드시고요. 물론 돈 많이 안 쓸거라는 것도 통장에 돈이 얼마 있는지 모른다는 것도 잘 알아요.

아버지랑 관련된 걱정을 하나씩 줄이는 게 내 일이다. 아버지가 걱정이 없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짤은 아버지 지갑에 들어있던 아버지 글씨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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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에 아버지 만난다. 혈압약 타고, 치매지원센터에 치매약값 지원금도 - 그 동안 미뤄왔음 - 신청할까 한다. 아버지 핸드폰도 좀 들여다보고 카드 쓴 것 포함해서 재정상태도 살짝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니까 금요일에 서울 가는 거는 일상적인 점검방문 이다. - 아버지 잘 있나 보러 가는거 - 엊그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한테서 보고싶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가 뭔가 얘기하다가 갑자기 '좀 보고싶고' 라고 했다. 아버지 나 보고 싶구나, 생각이 들면서 짠했다. 오늘 아침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7시에 걸려온 아버지 전화를 못 받았는데, 7시 20분에 전화걸어서 아버지가 전화 받자마자 '아버지,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요' 라고 했다. 아버지도 나도 무심결에 한 말이다.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나온 말. 보고 싶다와 미안하다. 보고 싶다는 말은 거짓말로 하기 어려운 말이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하니까 엄마 보고 싶네. 미안하다는 말은 기계적으로도 쓸 수 있는 말이다. 가족들끼리는 가짜로 미안하다고 하기 어렵다. 가족주의는 아니고 결국은 거짓없는 사람들이 남는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주말마다 부고 문자가 많이 오는 계절이고 지난주에 K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K  오빠가 내 또래라고 했던 것 같으니까 돌아가신 분은 우리 아버지랑 또래일거라 생각한다. 70대 초반, 요즘 시대에는 아직 정정한 나이, 그렇지만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 육체적으로 대단히 튼튼하던 우리 아버지도 계단을 내려올 때 내가 손을 잡아주면 더 편하게 내려오는 지경이 됐다.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만 주변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 현재까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죽음이 큰이모 돌아가신 일이다. - K에게는 잘 추스르라는 말 정도 하고 말았다. 누구나 그 앞에 무력한 것이 죽음이고 그렇게 죽음은 공평한 사실이 된다. 죽음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반댓말이다. 친구가 로또복권 3등에 당첨된 것도 아버지를 만나러 서울에 가는 일도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지금도 다 죽음의 반댓말이다. 결혼식과 장례식, 부의금과 축의금 같은 말과 항상 주변에 죽음이 따라다니는 사람을 떠올려봤다.  

 동생이 아버지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럴거라고 했다. 아버지가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보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며느리 이름은 잊어서 '니 와이프도 보고 싶은데 같이 한 번 안 오냐' 고 하지만 내 이름은 잊지 않아서 지금처럼 '어, 일우야' 하면서 전화 받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노래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노래를 만들었다. 가사에 반백년을 살았단 얘기가 들어갔다. 거의 반백년을 살았지만 아직은 고꾸라지고 싶지 않다.

 아침에 죽은 새를 봤다.

죽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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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시 옥천연립 104호에 영화 ‘그랜 토리노’에 나왔던 클린트이스트우드랑 비슷한 이미지의 아저씨가 산다. 우리집 바로 아래아래 집이다. 2019년 3월에 이사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란 별명을 지었고 아내도 어느정도 공감했다. 마르고 다부진 몸, 앙다문 입술, 거친풍파를 헤쳐온 듯한 강인한 얼굴, 청바지와 티셔츠, 딱딱하게 받아주는 인사, 항상 연립 입구 가장 구석에 비스듬히 세워두는 쌍용에서 나온 오래된 4륜 구동 자동차의 이미지들을 종합해서 지은 별명이다. 이 집에 거의 4년을 살며서 말은 섞은 적은 없고 내가 인사를 하면 아저씨가 인사를 받아주는 정도다. 내 나이가 마흔다섯이니까 아저씨라고 하는거지, 평범하게는 - 딱딱하고 강해 보이지만 남을 헤칠것 같지는 않은 이미지의 - 할아버지다.
  아저씨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는 아들이 둘 정도 있어서 명절 같은 때 타지에서 온 아들 차를 타고 외출을 한다는 것과 차 트렁크에 노가다 장비가 - 기술이 있는 일을 했던 것 같음 - 실려있다는 것 정도다. 올 봄에 우리 연립으로 들어오는 좁은 골목에서 - 차로 갈 수 있는 도로 끝에 옥천 연립이 있고 그 도로 끝에 사람이 둘 정도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이 있음 - 술에 많이 취한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가 옛동료로 생각되는 어떤 아저씨랑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비틀 걸어와서 한 귀퉁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내 모습은 보지도 못한 채 환한 웃음으로 아저씨 친구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집으로 들어가던 뒷모습이 내 머릿속에 남았다. 지난 여름 어느날 아저씨의 자동차가 사라졌다. 얼마후 나는 아저씨의 자동차랑 비슷한 모양의 검정색 4륜 구동 자동차를 샀고 아저씨가 주차하던 자리는 240만원 짜리 내 자동차가 차지했다.
  갑자기 이 아저씨 얘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엊그제 집에 올라오다가 아저씨 집 앞에 뜨거운 물 부어먹는 칼국수 한 상자와 20kg짜리 쌀이 놓여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 서울에 혼자사는 우리 아버지도 동사무소를 통해서 종종 받는 그것이다. 그걸 보자마자 아저씨 어디 아프신가,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아저씨 차 자리가 내 자리가 된 직후에는 종종 얼굴을 봤지만 최근에는 동네 다른주민들과 양지달임을 하러 나온 - 한 연립에 오래 살았고 연배가 비슷해서 그런지 우리집 빼고는 주민들끼리 친하다. -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를 못 봤다. 약간 걱정이다.

  아저씨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들들이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고 옥천연립 104호가 이 아저씨가 돈 벌어서 산 아저씨 집이었으면 좋겠다.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우리 아버지 주변에도 내가 이 아저씨를 보듯이 아버지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런 건 세상에 없는 일이니까, 역시나 아버지를 강릉으로 모셔와야겠다.

  지난 토요일에 동생이 아버지를 만나서 같이 갈비를 먹었다. 나는 아버지랑 맛있는 거 먹으라고 동생에게 10만원 보냈다. 아버지가 그거라고 하지 않고 갈비 먹었다고 해서 기뻤다. 나는 다음주에 아버지 혈압약 타러 간다. 아내가 너도 갈비 먹어, 라고 했지만 그럴건 없다. 아버지 기억에는 안 남아도 내 기억에 남는 걸 먹어야겠다. 방금 데이케어 센터에서 ‘어르신 집에 모셔다드렸습니다.’ 문자가 왔다. 아버지한테 바로 전화했는데, 전화를 안 받으신다. - 좀 있다가 하면 받을 거다. - 축구를 참 좋아했던 아버지는 지금 월드컵이 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국가대항전 축구를 본다. 나라를 위해선지 나를 위해선지 젊은이들이 정말 사력을 다해서 공을 찬다. 나는 인생에 전력을 다한적이 있나? 월드컵에 나온 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것이 공을 차는게 본인들 직업이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뭘까? 전력을 다하면 뭔가가 바뀔 수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 나이인데도 그러지 않게 된다. 예를들면 가끔 노래는 만들지만 기타 연습을 열정적으로 하진 않는다거나 굶으면 체중 감량이 될 것을 알지만 굶지 않는다. 이게 나이 먹음인가? 그렇다고 인생에서 큰 요행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얼마전에 노무사 2차 시험에서 떨어진 10살 어린 친구에게 ㅇㅇ씨는 희망이 있다는 얘기를 진심으로 해줬다. 나이 먹는 일은 슬프다.

  글 쓰는 중에 세르비아랑 카메룬이 3대 3으로 비기는 중이다. 나는 세르비아가 유고에서 분리됐다는 걸 안다.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는 냉전의 시대를 냉전 이후의 시대보다 오래 살았다. 나는 냉전 이후의 시대를 오래 살았지만 냉전이 뭔지는 안다.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는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고 나도 요즘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인지 모른다. 그건 애들을 키워도 모른다. - 친구 아이들이 대체로 중학생이다. - 계절 바뀌듯 휙휙 세대가 바뀐다.

  아버지, 오늘 별일 없었죠? 곧 봐요. 마지막 문장 적고 바로 전화할게요. 생일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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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아버지랑 통화했다. 물론 어제 아침에도 그제 아침에도 통화했다. 내가 코로나 걸린 기간동안에는 약간 멍한 느낌으로 통화했는데, - 코로나란 말을 모르는 아버지가 괜찮냐고 걱정해 줌. - 격리 끝나고 어제부터 출근해서 그런지 어제랑 오늘의 통화느낌은 평상시랑 같았다. 내일은 아버지 병원 가는 날이다. 한 달 전에 추가된 약의 갯수를 늘릴지 의사가 판단할 거다. 아침 9시 40분 예약이라 원래라면 오늘 밤에 내가 서울에 가려고 했다. 산불조심 기간에 산불 담당자가 코로나로 너무 오래 쉰 부담감에 내일이 산불근무라 어제 동생에게 아버지랑 같이 병원에 갈 수 있겠는지 묻고 오늘까지 답을 달라고 했다. 오늘 오전에 본인이 아버지랑 병원 가겠다고 톡을 보내왔다. 다행이다. 내 걱정을 알고 있던 아내도 다행이라고 했다. 같은 자식이라도 더 예쁜 자식이 있으니 부모중에 더 소중한 쪽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핏줄이란게 예쁨과 소중함의 차이가 크지 않다. 나도 동생도 각자 몫이 있다. 동생이 아버지를 오랜만에 만난다. 동생보면 아버지가 많이 좋아할 거라 생각한다. - 둘이 원래 친함 - 동생에게 '아버지 잘 살펴라 울지 말고' 라고 톡 보냈다. 동생한테 '왜 울어? 그 정도셔' 답장이 와서 아차했다. 우리 아버지 그 정도는 아니다. '울지 말고'는 아버지 만나면 울 것 같은 내 마음일 뿐이다. 막상 만나면 안 울겠지만. 마음은 그렇다.

 브라더, 의사랑 얘기 잘 하고, 애들 사진 많이 보여드리고 아버지 잘 살피고, 점심 맛있게 같이 먹고 데이케어센터까지 잘 바래다 드려라. 울지 말고.

 동생은 다음달에 혈압약 타는 진행때도 본인이 아버지에게 가겠다고 했지만 다음달에는 가급적 내가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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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월요일, 지난주 화요일 아침에 코로나 확진 판정 받았다. 그 전 주말에 독감 걸린것 같은 몸살 기운이 있었다. 자가진단 키트에서는 한 줄이 나왔지만 그때부터 코로나였는지도 모른다. 날짜로는 11월 5일부터 11월 14일까지 열흘간 집에 가만히 있었다. 몸 아픈 건 금방 좋아졌는데, 아직도 기분이 안좋다. 내일 출근해야 되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니면 목요일에 아버지 만나러 서울가야 돼서 그런가? 후자가 맞는것 같다 원래는 8일에 서울에 갔다 왔어야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미뤘다. 병원이랑 데이케어센터에 전화하는 일로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계획을 변경하는 일이 큰 스트레스인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게 심한 타입이다.

자가격리 기간동안 가만히 누워서 짧게는 올 한 해를 길게는 살아온 인생을 돌아봤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게임, 만화, 유튜브의 무한 반복으로 보냈다. 유튜브는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건 백그라운드에 틀어놓고 게임하고 만화 봤다. 그것도 자기주도적이진 않다. 그저 누워서 똥이나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똥꼬가 찢어질뻔한 똥을 한 번 쌌다. 기억해 둔다.

천만다행으로 아내는 코로나 걸리지 않았다. 같이 걸렸어도 의미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 어떤 종류의 사랑 - 내가 아내에게 코로나를 옮기지 않은 것도 어떤 종류의 사랑이니까 좋다. 결론이 사랑인게 좋다. 열흘 동안 술을 안 마셨다. 굿. 술은 위로처럼 생각되지만 위로가 아니라 망각이다. 아내가 내 유일한 위로다. 담배는 계속 피웠다. 배드. 담배는 조만간 끊으려고 한다. 컵라면 그만 먹고 담배 끊은 돈으로 점심에 식당에서 밥 사 먹을 생각이다. 꽤 건전하다. 성공하면 누구에게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일이다.

남부유럽이랑 중국의 11월이 덥다. 우리나라도 덥다. 어제 비가 내렸는데, 겨울이 오는 비가 아니라 봄이 오는 비가 내리는 기분이었다. 비가 오면 추워지다고 했는데, 오늘도 낮기온은 20도 넘었을 거 같다. 끓는 물에 들어 앉은 개구리가 되어서 솥 바깥은 보지 못하고 죽을날만 기다리며 아웅다웅하고 있다. 전쟁, 정쟁, 코인시장 같은 걸 보면서 - 저녁 뉴스를 빼 먹지 않고 시청하면서 - 하는 생각이다.

세상에 이름이나 의미를 남기긴 틀렸지만 멋진 노래를 만들고 싶다. 작은 희망이 있다. 사랑과 그 작은 희망으로 산다.

자가격리 마지막 날이라 오후에 동네 체육공원 텅빈 농구코트에서 혼자 농구를 했다. 삼점슛을 몇 개 성공시켰다. 태어나서 처음이다. 막 기쁘진 않았다. 열정에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런가보다. 가끔 슛 쏘러 와야겠다.

오전에 아내한테 이번주까지만 출근하고 회사 그만두고 싶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했다. 아내가 그만두고 뭐할건데. 물었는데, 그만두고 하고 싶은게 없어서 그만두는 건 관두기로 했다.

아, 출근하기 싫다.

글도 잘 안되고, 다 맘에 안들지만 2022년 11월에 코로나 걸려서 세상에 동참했던 기록으로 이 일기를 남겨둔다.

 

친구가 명함이 있어야겠다는 얘기를 해서 그것도 기록으로 남겨둔다.

 

명함

명함이 있어야겠다
이름이 아니라 소속이 중요한
자동차 접촉사고 같이
사소하지만 신경쓰이는 일이 있을때
화도 내지 않고 긴말도 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무심히 내밀 수 있는
사실 나는 이런 사람은 아니지만
어쩌면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하고 대신 말해주는
법원, 병원, 대기업 소속이 아니더라도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해주는
못나고 나약한 나를 숨겨주는
그런 명함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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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어제 날짜로 장기요양 5등급을 받았다. 아버지의 지금 상태로 봐선 당연한 결과지만 당연함은 내 마음이고 공단에서 등급을 결정하는 입장은 내가 모르니까 결정까지 약간은 마음을 졸였다. 이제 주중에는 매일 데이케어센터를 이용 - 센터 직원들이 이 말을 씀. 계약 관계라서 그런거 같음. - 해도 자부담이 크지 않다. 잘됐다. 같은날 아버지가 코로나 증상을 보였다. 다행히 센터에 가는 날이라 복지사 선생님이 빠르게 알려줬다. 그리고 오늘 확진자가 됐다. 11월 3일까지 자가격리다. 아버지가 육체적으론 건강하지만 나이가 70을 넘기다보니 많이 아플까봐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통화할 때 어디 아픈데 없는지 자주 물어보는데, 아버지는 늘 괜찮다고 한다. 엄마도 늘 괜찮다고 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어딘가 아프면 아프다고 한다. 아프면 아프다 할 수 있는 게 이렇게나 소중한 덕목이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 혼자 동네 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확진 판정을 받고 약도 받아왔다. 그 우여곡절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안 좋았다. 아버지는 조만간 전화 거는 법과 받는 법을 잊을 것 같다. 내가 전화하면 받자마자 끊고 본인이 내게 걸었다가도 내가 받으면 바로 끊기를 1시간 동안 30번 쯤 반복했다.

엄마랑 결판짓고 얼른 아버지 거처를 강릉으로 옮겨야겠다. 그게 맞는 거 같다.

엄마도 동생도 둘째이모도 각자 생활이 있다. 나도 내 생활이 있지만 치매 아버지랑 한 동네 살면서도 생활이 있는 조건으로는 가족들 중에 내가 제일 낫다. 세상과 생에 대한 어떤 체념 - 간절함과 절박함이 앖음 - 이 이런 때는 좋게 작용하기도 한다. 5등급 받은날 코로나 걸린 아버지도 그렇고 인생이란 작용과 반작용이 뒤섞인 이분법의 연속이다.

여러가지로 지쳐서 기록만 해두는 날이다. 아버지 치매인 것 알고부터 일관적으로 아버지 강릉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얘기해주는 아내에게 고맙다.

방금 아버지랑 저녁 통화 했다. 목소리가 어제보다 낫다. 아버지 파이팅이요.

- 바닥이 한없이 깊은 수영장에 잠수해 들어가서 바닥에서 뭔가를 찾는 꿈을 꿨다. 그 뭔가가 아버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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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랑 짜장면 먹었다. 면에 소스가 잘 안 붙는 유니 짜장. 난 별로였는데 아버지는 맛있게 먹었다. 이대목동병원과 건강보험공단양천지사 사이에 위치한 어느 가게에서. 가을이 듬성듬성 떨어진 길을 걷다가.

지난 일주일 간 아버지는,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잃어버린 줄 몰랐고 변기 물을 수시로 안 내렸고, 본인은 어디에 써야하는지 모르는 어르신 교통 카드를 동사무소를 통해서 받았다. 귤과 호두를 사 드셨고 달걀은 열 개 정도 먹었다.

일주일 만에 만난 아버지는, 오후 두시 넘어서 일정 다 마치고 밥 먹어야 하니 아침에 뭐라도 드시란 얘기를 열 번 정도 듣고 김밥을 두 줄 사 드셨다. - 뭐 드셨나고 하니 그거 먹었다고 하면서 김밥 싸는 시늉을 했다. 나는 아버지가 김밥 사드신 걸 핸드폰 카드 사용 내역을 보고 알았다. - 또 아버지는, 면도날을 샀는데 면도기에 못 끼워서 면도날만 들고 면도하시다가 듬성듬성 다쳤다. - 병원 카페에서 커피 마시느라 마스크 벗은 아버지와 마주 앉았을 때, 얼굴에 난 상처에 대해서 내가 물어보니 그거그거 하면서 뜨문뜨문 알려줬고 난 울뻔했다. - 아버지는 꽤 오래전부터 데이케어센터를 학교라고 하는데, 그곳 직원들이 자기들끼리 선생님이란 호칭을 사용해서 그렇다는 걸 오늘에야 유추해냈다. - 내 무심함이다. - 아버지 전화기는 주로 나랑 통화하는 용도구나 좀 더 자주 전화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아침약과 별개로 저녁에도 약을 하나씩 먹게됐다. - 아버지 더 자주 전화할게요. -

오늘도 아버지는, 날 만나서 너무 반가웠고 자꾸 서울에 와서 어떡하나는 말을 했다.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을 잡고 걸었고 아버지 여기 잠깐만 계세요, 하면 내가 일 마치는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와서 떠나는 나를 배웅했다. 그리고 고맙다는 얘기를 했다.

오늘은 의사 선생님 잘 만났고 진행하려 했던 일들을 다 잘 처리했다. 근데 찝찝하다. 지난주에 차키를 잃어버렸는데 못 찾았고 - 세컨키는 있지만 - 이틀 후에는 차사고가 났다. - 혼자 낸 사고라 다행이다. -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가지 않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의 주인공이 나는 아니다. 그래서 아픈 아버지를 핑계로 막 살고 있나? 어제랑 그저께는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쉬는날은 주로 누워서 지낸다. 이러면 안되는데 생각하다가 이내 무력해져서 모든 생각을 접고 누워있게 된다.

위로 받고 싶다,고 어느 취한날 메모에 적었다.

아버지, 다음달에는 좀 더 힘내서 올게요.

오늘은 청량리역 가는 지하철에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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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랑 삼겹살 먹었다. 병원에서 피 뽑고 인지검사 받고 나오면서 아버지가 고기 먹고 싶다고 했고. 구워 먹어도 좋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 아버지 고기 구워 먹고 싶구나 - 작은 동네 식당. 남들은 김치찌개며, 제육, 백반을 먹는데 그 틈에서 삽겹살 4인분을 구워 먹었다. 술까지 마셨으면 배덕감의 정점에 닿았겠지만 냄새 풍기면서 고기 구운 일도 충분히 이질적이다. 고기를 익은 순서대로 아버지 앞에 놓아드렸다. 중간중간 '너도 먹어라' 하던 이버지가 더 못 먹겠다고 해서 불판 위의 고기랑 아버지 앞접시에 있던 고기까지 싹 먹어치웠다. 아내가 뭘 맛있게 먹는 모습이 참 예쁘고 날 기분 좋게 하는데 - 얼마전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배부르게 먹는 여성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는 만화를 봤다. - 아버지랑 나는 서로가 배불리 먹는걸 보고 싶었나보다.

오늘 일정이 아침부터라 어젯밤에 서울 왔다. 모텔 욕조에 물 받아놓고 따끈하게 누워서 '근무지외 출장' 가듯 아버지 만나러 온다는 생각을 했다. 출장비가 안나오는 근무지외 출장. 참 냉정한 놈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아버지를 만나면 그런 생각은 잊게 된다.

아버지가 농협 카드를 분실해서 재발급을 받는 건으로 며칠전에 농협직원과 통화했었다. 농협 직원 목소리 톤으로 뭔가 다툼이 있다는 걸 알고는 바로 저희 아버지가 치매라서 그런데...., 했더니 바로 그러셨나고...., 했다. 오늘 그 카드를 찾으러 가기전에 아버지가 주민등록증을 분실해서 재발급 받기 위해서 사진관에서 사진 찍었다. 동사무소에 제출한 한 장 빼고 나머지는 내가 챙겼다. 담에 동생 만나면 한 장 줘야겠다. 내가 아버지 근처에 살았으면 그냥 현금카드 만들고 말았을텐데, 기초연금 받는 치매 노인이 체크카드도 아니고 신용카드다. 은행 직원이야 카드가 실적이니까 잠깐 얘기하면서 이 노인네가 정상이 아닌걸 알았어도 그냥 진행했을거라 생각한다. 그런게 인생이지. 남의 인생이니까 이건 체념이 아니다. 다만 오늘 농협에서 카드 취소하고 현금카드로 진행하지 않은 내 모습은 체념이다.

아버지는 점점 더 멍하고 점점 더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한다. 그 뿐이다. 그 뿐인데 힘들다. 지난주에 천주교 수사 친구랑 술 먹다가 아버지 얘기가 나왔는데, 남들 물리적으로 함들게 하지 않고 곱게 치매가 온 것만으로도 아미 이 생에서 본인의 역할은 다 했기 때문이란 얘기를 들었는데, 꽤 공감했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열심히 한거다.

나는 뭘 열심히 하지? 40대 중년 남자 인생에 남은 지분은 술과 운동뿐인줄 알았는데 아픈 아버지가 있었네. 아버지가 있었네, 라고 하면 엄마도 있지만 따지고 들지 않고 현재 내 삶에서 차지하는 몫(포션)이 그렇단 얘기다.

아버지가 2층 계단을 내려와서 배웅해줬다. 아버지는 육체적으로도 점점 약해진다.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 어색하다. 버스에서 내릴 때 먼저 내린 내가 손을 내밀자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내렸다. 내가 그림같이 생생하게 저장한 몇 시간 전의 일을 아버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기억하니까 상관 없다. 아버지 증명사진도 같은 맥락이다.

다음주 화요일날 병원에 가야해서 또 온다는 얘기를 스무 번 이상했다. 아버지는 힘들어서 어떡하냐며 내게 미안해하면서도 좋아하기를 스무 번 이상 했다. 그걸로 됐다.

방금전 청량리 역에서 카페모카를 먹고 싶었는데 말이 헛나와서 카페라떼 먹었다. 얼마전에는 상갓집 가는길에 ATM에서 돈을 찾았는데, 카드만 챙기고 돈은 그대로 두고 왔다.

대내외적으로 어지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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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다. 세계 인구를 365로 나누면 오늘이 생일인 사람이 200만 명이다. 200만분의 1인 생일이다. 누구에게도 축하받지 못하는 생일도 있지만 나는 어제 회사 동료들에게 축하 받았고 오늘도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축하 메세지를 받는 중이다. 그러니 운이 좋은편이다. 아침에 엄마한테 문자가 왔다. '아들이 벌써 사십대 중반이네' 문자로 답장하고 통화할 생각은 없었는데 바지 주머니에서 전화기가 작동해서 엄마랑 통화했다. '엄마는 감회가 새롭겠네' 하니 내 나이때 열심히 물장사했다는 감상을 털어놨다. 짠하다. 엄마 인생은 열심히 물장사 해서 돈 번 게 전부다. 엄마, 모든 순간에 항상 고맙습니다. 늘 그렇듯 아침 7시에 아버지랑 통화했다. 조만간 가스불도 못 켜게 될 거 같은 아버지는 - 보일러, 청소기 조작 못함 - 당연히 내 생일을 기억 못한다. 저녁에 통화할 때 오늘이 생일이라고 알려줘야겠다. 얼마전에 생각한 건데 다시 태어난다면 아버지의 아버지나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

강릉에 마당이 엄청 넓은 숲속 커피숍이 있는데, 벌초하던 날 엄마랑 갔었고 그 다음엔 아내랑 갔었다. 그 다음에 아내랑 또 갈뻔 했는데. 나 이런데 - 사이즈가 크고 사장이 부자인 가게 - 별로 안 좋아하는데 왜 자꾸 가고 싶지? 했더니 아내가 바로 답을 줬다. '엄마랑 갔었어서 그래.' 정확하게는 엄마랑 갔었는데 엄마가 좋아했어서 그렇다. 나에게 엄마는 그러하다. 엄마, 아프지 말고........ 사랑해요.

이번주에 차를 바꿨다. 내가 나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다. 차값 240만원, 등록 및 보험 40만원 들었다. 2015년에 강릉 왔을 때 3천만원 있었다. 2700으로 전세보증금 내고 남은 돈으로 차를 샀다. 7년 반 동안 잘 탔다. 쌧복 - 돈복 - 없는 나랑 아내에게 돈 벌어준 차다. 12만 킬로에 사서 12만 킬로를 더 탔다. 남의 차만 끌고 다니다가 처음으로 산 내 첫차 쎄라토야 안녕, 고마웠다. 바꾼차도 최대한 오래타고 싶다. 돈 때문은 아니고 물건을 끝까지 쓰고 싶은 마음이다.

추분이다. 과학적으로는 하지 이후로 하루에 1분 정도씩 낮 시간이 줄어들지만 느낌적으로는 추분 지나면 해가 급격하게 짧아진다. 기후파괴로 인류 문명히 망가지지 않더라도 난 아마 지금까지 산 시간보다 적게 살거다. 찾으려 애쓰면 크고 작은 후회들이 넘쳐나는 삶이지만 당장 마음속에 큰 아쉬움 없이 살았으니 남은 시간들이 급격히 짧아져도 좋다. 아버지 정신 있을때 아버지 인생의 큰 후회를 물어봐야겠다. 무골호인에 얼레벌레 흐물텅인 아버지는 그런거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아버지랑 나는 그런점이 닮았다.

오늘부터 마흔 네살이 됐다. 무탈하게 오래 살았다. 그러니 됐다.


어제 하늘이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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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늘 그렇듯 회사에선 별일 없었다. 집에 와서 아내랑 같이 운동을 했다. 10시 반에 일을 마치는 친구차 얻어타고 친구네 동네 가서 한 잔 했다. 그 친구랑 마시다가 취하면 항상 전화하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 취할 때마다 전화하는 일도 웃겨서….. - 집에 돌아와서도 문자를 주고받는 와중에 친구가 나 20살 때 사진을 보내줬다. 50살 가까워지는 지금도 내 모습을 바깥에서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헬쓰장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내가 보는 것이 내 모습이 아니란 생각이다. 어린날의 나를 바깥의 시선으로 들여다 봤던 친구가 사진까지 보내주는 일이 좋다. 몇달전에 건쓰짱이 육군 훈련소 때 사진을 보내줘서 21살의 나를 볼 기회가 있었다. 친구야 thanks.

어제랑 오늘은 집에 가만히 있었다. 누워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패드에서는 음악, 뉴스, 드라마 하이라이트, 역사가 흘러 나오고 폰으로는 만화를 봤다. 확실히 sns 끊고 나서 만화를 열심히 본다. 아내가 가수 ‘이승윤’ 덕질하듯이 나도 집중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요즘은 그게 만화다. 만화는 책장을 넘기든 크스롤을 내리든 해야 하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소비하는 쪽이 적극적이어야하는 매체다. 만화 시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 문학도 마찬가지고 - 아무리 세상이 하이테크로 향해도 스스로 뭔가를 하고 싶어하는 인간 본능의 일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때 ‘이세계’물의 범람이 달갑지 않았는데, 이세계 물도 재미있게 본다. 그렇게 아저씨가 됐다.

친구랑 마시다가 취해서 아버지 얘기를 격하게 했다. 그 격함이 남아 있어서 집에 와서 바로 시를 썼다. 다음날 읽어보니 별로였다. 아버지가 내 한 구석에 있는 동안은 -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 계속 반복될 일이다. 나는 왜 점점 안 좋아지는 아버지를 기록하나? 나는 왜 아침마다 아버지랑 통화를 하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수시로 전화 하나? 나는 왜 엄마랑 통화할 때도 아버지 얘기를 주로하나? 엄마한테 미안하다.

아버지 일과 기후 우울증으로 - 내 전반적인 우울은 기후 우울인 거 같다. - 가만히 누워 있었다. 몇 시간 후면 출근해야 하는데, 이제 일어나서 일기를 쓴다. 뭣한다고 일기를 쓰나. 주로 누워있었지만 밥을 먹거나 담배를 피울때는 누워있지는 않았다. 우울 때문에 밥을 많이 먹었다. 빨래, 방청소, 음식물쓰레기 정리, 취사 같은 생활도 짧은 시간 있었다. 결국은 주로 누워 있었다. 요즘은 기타도 누워서 친다. 누워 있지 않은 시간 중에 아내가 “우리는 근근이 살아야 된다.”고 했다. 공감한다. “집만 있으면 괜찮게 근근이 살수 있다.”고 했다. 공감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가수 박정운이 죽었다. 영국 여왕이 죽은 것보다 현실감있게 느껴진다. - 잠들기 전에 5집에 실린 '목동에서'(죽은 옛 연인이 살던 동네에 오랜만에 방문해서 연인의 어머니를 만난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 엘리자베쓰 여왕이 유난히 오래 살긴 했지만 모든 인생에는 등락고저가 있다. - 박정운이 코인 사기로 실형을 받은 걸 그가 죽고 나서 알았다. - 두 사람도 근근이 산다는 생각을 했을까?

다시 누워야겠다. 하루하루 그냥 산다. 많은 사람들이 근근이 살고, 근근이 사는 건 아버지나 나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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