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같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연작꿈으로 꾸곤 하는데, 이버지 치매 이후로는 하늘에 떠서 지구를 뱅뱅도는 죽은자들의 열차에서 유일하게 죽은자가 아닌 기관사와 내가 주인공인 꿈을 꾼다. 나와 기관사는 소설 <마의 산>에서 카스트로프와 세템브리니 같은 관계다. 내꿈이니까 내가 주인공인게 당연하겠지. 열차는 어떤 이상적인 공동체 같은 곳인데 내가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어젯밤 꿈에는 유난히 아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오랫동안 연락 안했던 B 선생님이 내 손만보고 일우구나, 해줘서 반가웠다. 친구 한 명은 열차 안에서 죽어라 운동만 했다. 아버지도 중간중간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엔 어떤 상황이 벌어져서 내가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700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 기차가 내 생각보다 낮은 고도에 있었다 -죽지는 않았고 푹신한 곳에 등부터 떨어진 이후에 욕을 하면서 잠이 깼다. 잠이 깰 무렵에는 꿈인걸 인지했기에 욕을 했던거 같다. 얼마전에 다른꿈을 꿨을때도 욕하면서 잠이 깬적 있는데. 좋지않다. 아내말대로 약을 잘 챙겨 먹어야겠다.
토요일 아침. 아내를 목적지에 태워주고 두 시간 기다리는 동안 처음 생겼을때부터 좋아했던 테라로사 경포호수점에 갔다. 아침부터 사람이 많고 혼자 온 사람은 나 뿐이고 집이 강릉인 사람도 그런거 같았다. 코로나 프로토콜 때문에 관광객들이 대부분인 식당이나 카페도 일단 들어가면 쾌적하게 즐길 수 있다. 테라로사 커피는 항상 맛있다. 좋다. 엄마랑 둘이 여행온 팀이 내가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았는데 젊은 사람 쪽의 여린 옷차림과 가는 팔다리가 보기 좋아서 잠깐 쳐다봤다가 눈 한 번 마주쳤다. 이런.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랑 둘이 어디 놀러 가고 싶다거 생각한지 몇 년 됐는데, 아직 한 번을 못갔다. 엄마가 건강할 때, 좋은데 가서 좋은거 먹고 잘 쉬고 싶다. 여기서 좋은건 비싼걸 말하는데 나도 그런 걸 못해봤고 엄마도 그렇다.
어제는 귀찮아도 설거지를 해야지 생각했었는데, 아내가 아이스크림통 뚜겅을 열면 붙어 있는 둥근 비닐을 개수대에 넣어둔 것을 보고 기분이 상해서 관뒀다. 왜 그걸 20리터 쓰레기 봉투에 넣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런일로 기분이 상했을까? 빨래비누같은 설거지 비누 말고 남들 쓰는 거품 잘 나는 세제 쓰고 싶다. 세탁 세제도 마찬가지다. 최근엔 날씨를 핑계로 빨래방에서 빨래 하는데, 남들 쓰는 빨래용 세제가 집에 있었으면 그냥 세탁기 돌렸을거다. 집에 비누가 떨어졌는데, 아내가 비누를 안 만들어 오길래 비누 사온다는 말을 어렵게 꺼내서 오이비누를 쓰고 있다. 아내랑 나는 뭔가 갈라진건가? 기분 좋은 날에는 대화라도 몇 마디 하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가 - 친구들은 아내랑 몇 주씩 말을 안 하기도 한다고 한다. - 나를 운전기사로만 생각하는 거 같은 오늘같은 날은 왜 같이 살고 있지, 생각도 한다.
친구 h랑 맘 편한 직장 다니면서 자기 하고 싶은거 한 두가지 하면 제일 좋은 삶인 거 같다는 얘기를 나눴는데, 나는 직장 조건이 좋으니 그렇게 할 수 있다. 아내는 나랑은 달리 본인 하고 싶은건 다 하려는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끈기도 부족하고 몸도 마음도 따르질 않는다.
흐린 하늘 바라보며 자동차 운전석 제껴 놓고 쓰고 있다. 아내는 열한시 반에는 끝날거라고 했다. 벌써 지났다. 먼저도 그랬다. 미안한지 곧 끝난다고 전화가 왔다. 집에 태워주면 피곤해서 자야한다고 잘 것이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뭘 먹고 들어가자고 할텐데 먹고 싶은거 말해보라하면 답이 없을 것이고 내가 돈까스나 짬뽕 먹자고하면 그건 싫다고 할 것이다.
담배나 피워야겠다.
아내랑은 밥 안 먹고 무사히 집에 왔고 정답게 얘기도 나눴다. 역시 사랑인가? 사랑인지 아닌지가 중요한가?
되게 오랜만에 좋아했던 글을 찾아 읽었다. 서른둘에 이걸 처음 읽었고 나는 지금 마흔 넷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죽는거라면
<그 책 마지막 장을 무심코 읽어가다가 다음과 같은 한 구절에 눈이 멈췄다. “나라는 인간이 올해 벌써 42살이 됐습니다…”
나는 들었던 책을 내려놓고 말없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58살이다. 말하자면 그 책은 쓴 지 15~6년이나 된 책이었다. 새삼스럽게도, 마치 진귀한 발견이라도 한 양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럴 때 보통 사람들은 어떤 감회를 느끼게 될까? “앞으로 20년은 더 살아야지”라거나 “여든살까지는 살아야지” 하는 식으로 생각할까? 그렇다면 나는 보통 사람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때 인생이 끝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것이 그때 내 마음을 채운 감회였다. 42살이었을 때가 행복의 절정기였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전혀 쓸모없었다는 얘기도 아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죽는 거라면, 설사 그때 인생이 끝났다고 해도 그뿐, 별로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오후
2주전에 아이와 왔던 친구가 또 삽당령에 방문했다. 이번엔 아이 둘이랑 같이 왔다. 친구가 내 직장을 좋아해서 좋다. 고기를 굽고 술을 먹고 아이들도 좋아하는 거 같고 어른들은 신이 났다. 친구는 먼저 왔다간 다음에 아내랑 한 마디도 안 했다고 한다. 얘길 안나눠도 사랑이고 얘기를 나눠도 사랑이다. 서로 욕을 해도 사랑은 사랑이다. 사랑인가 떠올리는 순간 사랑이고 사랑인가 묻는 순간 사랑이다. 사랑없이 뭐가 제대로 돌아가겠나. 너도 나도 특히 나는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에 집착하나보다.
오전은 길고 오후는 짧은 일기가 됐다. 혼자인 시간은 느리고 길게 가기 때문이다.
-> 출근하면 매일 찍는 자리. mi8로 찍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