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헌혈했다. 27번째 헌혈입니다, 헌혈센터 간호사가 친절하게 말해줬다. 고등학생 때 첫 헌혈을 했으니까 틈날 때마다 한 건 아니지만 25년 동안 27번 이라면 어떤 의미로는 틈날 때마다 헌혈을 했다. 헌혈하고 문화상품권이나 영화표 받는 것도 좋지만 내가 헌혈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피를 뽑는다는 행위 자체에서 느끼는 쾌감 때문이다. 이웃사랑, 인류애, 봉사 같은 건 1%정도 될까. 매혈에 대해서 관심(즐거움)을 가진건 '허삼관 매혈기'가 원동력이 됐고 비교적 최근에 읽은 옌렌커의 '딩씨 마을의 꿈'에도 중국사람들의 매혈 얘기가 나온다. 어른들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나라도 가난하던 시절에는 피를 많이 팔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공식적인 헌혈도 현금 오천원을 줬다. 땟거리 떨어졌을 때마다 피를 뽑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스토리는 어딘가 짠한데가 있다. 자기 피를 판 돈으로 다른 생명의 피를 먹고 자기 피를 다시 채우는 (악)순환을 생각한다.

강릉 헌혈센터에는 내가 갈 때마다 사람이 많다. 토요일에만 가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강릉센터의 혈액 공급이 - 표현이 맞나? - 전국에서 상위권인 걸로 봐서 기본적으로 강릉에 헌혈인이 많은 것 같다. 보통은 간호사 5명 정도가 일하는데, 엊그제는 셋이 일하고 있었다. 뭔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평소보다 북적댔다. 예약한 사람도 많아서 1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헌혈을 하는데, 내 팔에 바늘을 꽂던 간호사가 너무 지쳐보여 한 마디 했다. '너무 힘드시겠는데요, 퇴근하면 독주를 마셔야 될 것 같아요.' 돌아온 대답은 '기절해요'였다.

퇴근후에 기절할 정도로 일에 치이고 열심히인 사람이 있는데, 나는 뭐하고 있지? 생각했다. 정말로 나는 뭐하고 있지?

생각이 채종원에서 같이 일하는 기간제 선생님들에게로 이어졌다.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내 일의 핵심은 이 선생님들 작업 스케줄 짜고 월급주는 것이다. 12명은 예전에 산불 아저씨들하고 일할 때보다 한참 적은 숫자지만 채종원 특성상 밀접한 관계로 일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 산에서 노가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치는 분들도 있다. 어떤분은 산재를 진행하고 어떤분은 산재 신청하기 싫다고 병가를 진행한다. 어떤분은 자동차를 도로 한복판에 세워두고 자다가 음주단속에 걸리고 어떤분은 도벽이 있고 어떤분은 생활에 여유가 있고 어떤분은 이 일이 절박하며 어떤분은 내가 좋아하는 내 친구고 어떤분은 불만이 많고 어떤분은 돈 받는 만큼만 일하고 싶고 어떤분은 작업반장이다.

이 작업반장님을 중심으로 76,000원 일당에 풀베기 너무 많이 시킨다는 불만이 터져서 내가 그래도 어느정도는 진도를 나갔으면 좋겠다했고 그 다음날 하루 진도를 나가보더니 그 다음날부터 일 못하겠다고 이틀동안 단체로 안 나오셨다. 지난주의 일이다. 하루 더 안나오시면 해고 및 징계 절차 진행하겠다고 했더니 다음날 다 나오셨다. 하루에 400분 기계 돌리는 숙련된 분들이 일당 20만원 받는다. 150분 돌리는 - 실제는 그보다 덜 돌리지만 - 우리 아저씨들은 지금만큼만 일하면 일당 대비 충분하단 생각일 것이다. 뭐 나도 그 정도면 좋다는 생각이지만 회사에 나만 있는 건 아니고 내가 회사 원탑도 아닌데다가 어쨋든 내가 아저씨들 담당자니까 이번엔 어떤 정치적인 이유로 조금 강하게 했다. 원칙에 어긋난건 아닌데 마음에 걸린다. 일 적게 하고 싶은 사람과 일 시키는 사람의 관계. 어떤 선생님이 나에게 당근과 채찍을 말했는데, 나는 당근도 채찍도 없는 사람이라고 답해줬다. 그리고 당근과 채찍을 말하는 순간 갑을관계를 용인하는 것이라서 그 말이 싫었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계속 당근이기 때문에 이번에 한 번 강하게 나간 일로 채찍만 있는 담당자가 됐다.

어쩌겠나. 그게 삶인 걸. 내가 아저씨들 한 푼이라도 더 받게 하려고 애쓰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렇게 하는 게 내 직업적 사명감이니까 그렇다.

결국 기간제 선생님들은 본인들 뜻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예전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일하게 됐다. 그 단체 행동에 참여하기 싫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지금 당장 일을 그만두더라도 가진 돈으로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수 있는 선생님도 있다. 내가 좋아한다는 내 친구는 오늘 퇴근하고 전화해서 본인들 이틀 빠진 거 월차로 처리되는지 결근으로 처리되는지 물었다. 이 질문은 월차로 처리해달란 말이지만 내가 회사 원톱이 아니고 단체 행동에 참여하지 않고 출근한 선생님도 있기 때문에 결근 처리할 수 밖에 없다. 내 친구는 집도 있고 땅도 있지만 형편이 좋은편은 아니다. - 그럼 나는 집도 땅도 없지만 형편이 좋은편인가? - 친구 전화받고 짠했다. 사는 일은 짠내가 난다.

단체 결근 사건의 원인에는 일이 힘든것도 있지만 그보다 깊은 곳에는 누구는 누구랑 친하고 누구랑 누구랑 친해서가 있었다. 사는일이 짠하고 바보같고 지리하다. 꽤 오랫동안 지리하단 말을 생각했다.

다들 출근한 날 오전에 모여서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날의 메모에는 바보같다는 말과 다 내 잘못이라는 말이 반씩 뒤엉켜있다.

-> 산에 여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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