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욕심을 버리고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야지 적었다가 웃는다. 유명해지고 싶은 게 허망한 욕심인지, 하루하루 충실히 사는 건 어떤건지, 유명해지려고 하루하루 충실히 살면 안되는지, 그런 삶에는 나다운 게 없는건지. 글이며 음악이며 지금보다 더 꾸준해야 나답고 충실한건지. 이렇게 쭉 이어지는 물음에 웃고 만다.
부자가 되고 싶은건 아니다. 어쩌면 천재가 되고 싶은가? 나이 마흔 넷에 그건 아닐거 같고, 로또 당첨되서 돈이 많이 생기듯이 갑자기 유명해지고 싶다. 노력도 없이?
산책 중에 매한테 쫓기는 작은새를 봤다. 작은새는 허둥대는데 매는 여유가 있다. 작은새는 숲으로 달아났고 매는 하늘로 치솟았다. 한쪽에는 불행한 결과다. 그게 매 쪽일수도 있지만 의외로 불행한 쪽은 작은새였을지도 모른다. 모른다는 것, 그것이 삶이다.
삶이란 말이 무겁다. 밭침이 두 개인 말들은 다 그렇다. 앎만 예로 든다. 바닥이 튼튼한데 왜 무겁지? 삶을 안다는 건 얼마나 무거운가. 생각을 멈추자. 사랑을 멈추자. 그렇다고 삶을 멈추진 말자.
뉴스에는 오늘도 수 많은 죽음이 나오고, 뉴스에 나오지 못한 죽음은 죽음도 아닌 세상. 어느 시인의 죽음이 떠오르고, 그 사람은 죽어서 더 유명해졌을까? 그 시인은 단지 살고 싶었을 수도 있다.
채워지지 않은 뭔가가 있다. 그것을 갈망한다. 누군들 아니겠는가. 갈망하지 않는 순간 삶은 멈춘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는 무엇을 갈망하나. 아내는 친구들은 동료들은 무엇을 갈망하나. 사랑받고 싶다. 더 많이.
-> 참좁쌀풀의 계절이 돌아왔다. 계절은 어김이 없다. 아직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