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집 전세계약서에 임차인은 아버지고 공동명의인이 엄마다. 둘은 이혼했기 때문에 남이다. 엄마가 아버지 방 빼고 전세보증금 돌려 받으려고 하는데, 집주인이 계약서가 이러하므로 아버지가 직접 오던지 내가 위임장 써서 오던지 해야 진행하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엄마한테 들었다. 돈도 아버지랑 엄마한테 반씩 나눠서 준다고 한다. 아버지 전세보증금은 애초에 엄마돈이다. 자기돈 돌려받기가 힘드네. 암튼 그래서 서울간다.
 아버지 집 관련해서 추가로 가스요금 자동이체 해지도 해야하고 요양원으로 전입신고도 해야 한다. 서울에서 강릉 요양원으로 전입신고해도 기초연금은 계속 나오는지도 알아봐야 한다. 계속 신경써야 된다. 답답하네.
 
 회사에선 수의계약이나 공개입찰이냐 문제로 시끄럽다. 우리쪽은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는지 눈치 봐가면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설계하고 추진계획 다 세워놓은 사업을 3주째 스톱해두고 있다. 답답하네.
 
 산림기사 시험 결과는  6월 18일에 알 수 있다. 날짜가 정확하니 아버지 문제나 회사 문제보다는 답답함이 덜하지만 아직 20일이나 더 기다려야 된다. 답답하네.
 
 어제 지금 회사 내 첫 번째 사수랑 통화했다. 이 친구 이후론 사수가 없다. 좀 울적하다 했더니 상담도 받고 약 처방도 받아보라며 걱정하는 문자를 보냈다. 진짜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걱정해줘서 고마웠다. 안그래도 월요일에 병원에 다녀왔고 레피졸 처방 받았다.
 
 인생은 결정되지 않은 것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내가 결정하지 못하거나 - 이런 경우는 별로 없네. - 어떤 이유로 결정되지 않고 있는 것들을 이렇게 견디지 못해서야 살 수가 있겠나. 식욕이 있고 잠도 잘 잔다. 근데 이렇게 우울할 수가 있나?  몇 달째 욕과 술로 산다. 모든 것을 다 그만두고 싶다. 약을 잘 먹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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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댓국을 먹다 2 - 아버지랑 먹다 -

아버지랑 순댓국을 먹는다
국에 들어간 순대는 너무 뜨거운지 아버지가 잘 못 먹는 걸 알기에
고기만 순댓국에 내장 한 접시를 시켰다
아버지 국에 다대기 소금 새우젓 들깨가루 후추를 넣고 밥도 반 공기 말아준다
아버지는 고기 한 점 먹고 국물 한 입 먹고를 반복하고
나는 접시 위에 돼지 내장을 하나씩 하나씩 아버지 뚝배기에 넣는다
아버지 뚝배기 안의 고기가 줄지 않고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꾸만 먹는다
아버지가 고기를 먹을 때 숟가락 위 고기에 새우젓의 새우를 한 두 마리씩 얹어준다
나도 이 새우같이 작은 시절이 있었겠지
아버지는 군말없이 먹는다
아니, 맛있다고 하며 먹는다
이런 걸 먹은지가 언젠지 모르겠다고 하며 먹는다
이건 질리지도 않는다고 하며 먹는다
나만이 아버지에게 내가 누군지 묻지 않는다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른 어떤 날에 나는 주루륵 울었지만
오늘 아버지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아버지의 시계는 멈춘지 오래고
아직 나의 시간은 흐른다
바닷바람을 맞은 아버지가 좋다고 하니
정말 좋은 것이고
아버지가 좋다니 나도 좋지만
구워 줘도 잘 먹지도 못하는 소갈비가 아닌
배 터지게 먹는 순댓국으로 사랑을 다시 정의하는 이 시간이
까맣게 까맣게 타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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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거실에서 커다란 바퀴벌레를 잡았지
집 안에서 신는 슬리퍼로 때려 잡았다
벌레는 나갈 길을 찾고 있었던 것 같았고
신발 밑을 따로 세척하진 않았다
시장 깊숙한 국밥집에서 나는 내장국밥을 아내는 닭국밥을 먹고 돌아온 직후였다
나이 탓을하며 저녁 아홉시에 잠이 들었지
새벽 네시에 꿈에서 깨며 잠도 깼다
뇌수술을 하는 꿈이었지
의사는 나를 안심시키며 
머릿속에 튀어나온 것들을 꾹꾹 눌러담는 수술이고 설명했다
두 개의 수술을 동시에 했는데, 마취에 어려움을 겪었고 나머지 하나의 수술은 꿈 속에서 사라졌다
정신이 들었을 때 의사는 수술이 잘 됐다고 했지
내 앞에는 의사와 간호사 엄마와 동생이 있었다
내 아내는 어디에 있나
나랑 국밥을 함께 먹은 내 아내는 어디에 있나
그러다 잠에서 깼다
새벽 담배를 피우며 꿈과 현실을 생각했지
치매에 걸린 아버지, 투자에 실패한 엄마, 아이 둘을 키우는 동생, 나랑 국밥을 먹고 잠들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해준 아내, 화가 많고 우울증에 걸린 나
다시 깼을 땐 아침이었다
출근을 했고 장모님께 생일 축하 전화를 했다
고맙네, 소리를 듣고 잠깐 기분이 좋았지만
꿈 속에서 사라진 아내를 계속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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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

올해가 다 간 것 같은데 이번주도 아직 수요일이네
골목길, 담벼락을 넘어온 장미가 반짝거리고
더 푸를수도 없을 것 같은 하늘을 본다
계절은 네 개, 5월은 열 두 달 중에 하나일 뿐인데
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하나?
어제는 네가 막국수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봐서 좋았고
나는 비틀거리도록 마셨다
오늘은 병원에 가려고 휴가를 썼지만 병원은 문을 닫았고
더 흔들리기 싫어서 처음 본 가게에서 혼자 맥주를 마신다
그리하여 더는 소망하는 것이 없이 충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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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봄

취미/자작곡 2024. 5. 1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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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회사 그만두면 안되는데 생각하면서 회사 그만두는 꿈을 반복적으로 꿨다. 그러니까 꿈 속에서도 회사 그만두는 생각을 했다. 꿈 속에서 뭔가 생각한 게 오랜만이다. 지금 회사에 큰 불만이 있는건 아닌데, 출근하기가 너무 싫고 하루하루가 지겹다.

 어제는 아내랑 같이 아버지 얼굴 보고 왔다. 아버지는 요양원에 간 이후로 가장 멍한 상태였다. 말 상대가 없는 것이 아버지가 뭔가를 잊는 증상을 더  빠르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 이름을 말하진 않았지만 '아들'이라고 했다. 아버지 얼굴 보니 좋았다.

 스트레스 원인 1위가 아버지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가면 좀 괜찮을까 싶었는데 그렇지 않다. 일주일에 한 번 아버지 만나고 돌아나오면 가슴속이 어두워진다. 그게 아버지 탓은 아니다. 스트레스 원인 2위는 기후 파괴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는 거고 3위는 하루하루 지겨운 직장 생활이다. 아내랑은 잘 지낸다. 지난 주말도 아내가 없었으면 망했을 것 같다. 묻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발 얹어도 되는지 물어보고 아내가 내 배 위에 본인 발을 얹고 같이 누워있었던 일이 특별히 좋았다. 병원에 빨리 가야하는데 회사일이 좀 바쁘네.

 토요일에는 s누나를 오랜만에 만나서 같이 돌아다니고 점심도 먹었다. 누나랑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러고나면 조금 후련해지거나 괜찮아지는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누나에게 말했다. 누나가 내 집필계획에 대해서 응원해줬다. 고맙습니다. 누나가 처음 먹어보는 꾹저구탕을 맛있게 먹어서 보기에 좋았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정답 보내놓고 누나 만나서 차 타고 이동하는 중에 상품 당첨됐길래 누나한테 가지라고 했다. 전국 방송 라디오에서 상품 당첨되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한다. 병원에 빨리 가야된다. 

 로또 복권은 또 꽝이었지만 언젠가 될거라 생각한다. 이런 기본적인 낙관이 있는 인간이고 삶인데 왜 이렇게 우울할까? 월요일 아침부터 울적해서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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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생일이 음력 3월 25일이란 건 알고 있는데, 깜빡 잊고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못하고 지나갔다. 엄마랑 이틀에 한 번 꼴로 통화하긴 하는데, 생일 축하를 못한 건 내 불찰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 전화했는데,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았다. 운동중인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엄마한테 걸려온 전화를 받고서야 '맞다. 엄마 오늘 건강검진 받는다 했는데.' 떠올렸다. 불효자가 된 기분이다.
 
 지난 4일에 엄마랑 JJ 삼촌이 아버지 보러 강릉 왔다갔다. 어린이날 연휴의 첫날, 경기도 오산에서 강릉까지 자동차로 7시간 걸렸다. 엄마가 일찍 도착할 줄 알고 외출 시작 시간을 11시로 잡았기에 아버지랑 나랑 둘이 밥 먹었다. 아버지 서울 떠나던 날 청량리역에서 냉면 같이 먹고 나서 거의 100일만이었다. 생갈비를 먹다가 냉면을 시켰다. 어쩌다보니 또 냉면을 먹었네. - 아버지는 냉면을 포함해서 면을 좋아한다. - 아버지는 젖가락질 조금 하다가 잘 안되니까 숟가락으로 냉면을 먹었다. 숟가락으로 먹는데도 면이랑 국물이 자꾸 테이블 위로 흐른다. 살짝 안타까웠지만 아버지는 맛있게 잘 먹었다. 오늘 기준으로 아버지 요양원 입소한 지 100일이 넘었다. 100일이란 시간이 아버지가 흘린 냉면 국물처럼 흘렀다. 100일이란 시간동안 아버지는 더 많은 일들을 잊었고 좀 더 잘 잊는 사람이 됐다.
 식사 전후로 아버지랑 요양원 바로 근처에 있는 커피숍 주차장에 있는 커다란 벚나무 그늘에 앉아서 볕도 쬐고 이런저런 얘기 했던 걸 기억해 둔다. 아내가 밭에 갔다가 주차장으로 차를 끌고 왔고 텅빈 주차장에서 주차를 어떻게 할까 머뭇거렸고 나는 차도 별로 없으니 주차 신경쓰지 말고 그냥 내리라고 했고 아내가 '아버님' 이라고 했을 때, 아버지가 반가워했던 그 순간이 그림처럼 좋았다.
 엄마랑 JJ 삼촌은 요양원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가 정말 반가워 했다. 엄마도 반가워했고 엄마를 반가워한만큼 삼촌도 반가워했다. JJ 삼촌은 방위 제대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와서 우리집에 살기 시작했고 - 첫 직장을 아버지가 잡아 줌 -  내 동생이 결혼한 후에도 아버지랑 둘이 한 집에 살았기에 정말 오래 같은 집에 산 형제다. 그래서인지 거의 모든 이름을 잊은 아버지가 형제들 중에 JJ 삼촌 이름은 먼저 언급하기도 한다. 싫든 좋든 정이다. 
 아버지랑 헤어지고 엄마 삼촌 아내 나 이렇게 넷이서 감자 옹심이 먹고 헤어졌다. 삼촌한테 '네가 고생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날 밤에는 가정의 달에 내가 해야할 일을 다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사실은 엄마 생일도 깜빡 잊는 불효자다.
 
 우울감이 계속 깊다. 병원에 약 타러 가려고 하는데, 요즘 회사 일이 바빠서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생활에 치인다,는 말을 생각한다. 어린이날이 생일인 형에게 생일 다음날  '형 생활에 치여서 생일 축하 연락도 못했네. 축하하고 나이 먹을수록 친구는 적은 게 좋다고 정약용 선생이 말했대.' 라고 했더니 엄지척! 했다는 답장이 왔다. 그 답장이 고마웠다. 이런 사소한 기쁨과 항상 옆에 있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내 덕분에 하루하루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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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느티나무 무료 급식소 앞
나란히 선 느티나무 두 그루가 나날이 울창하다
무료급식을 준비하는 풍경 속
먼저 먹겠다고 치고 받는 술 취한 아저씨들
국통에서 치밀듯 올라오는 뜨거운 김과 장국 냄새
지나가는 자동차들 아랑곳 않고
나무 그늘 아래서 앙상한 얼굴로 밥을 먹는 사람들
정식 명칭은 느티나무 쉼터
쉬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한 세상
지금 한 끼 만큼은 공짜이기에
괴로운 일 다 잊고 줄지어 밥을 먹는 평등이
5월의 느티나무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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