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에 병원 때문에 아버지한테 다녀왔고 29일에 병원 때문에 다시 만난다. 최근 10년간 아버지 만난 횟수보다 지난 6개월간 만난 횟수가 더 많다. 연을 끊지 않은 부모가 아프다는 건 그런건가?

아침에 약드시라고 전화를 한다. 오늘 뭐하실 건지, 날씨가 어떤지, 몇 시에 주무셨고 몇 시에 일어나셨는지 같은 걸 묻는다. 통화는 길어봐야 2분이다. 요즘은 저녁약을 안 드시니까 여러번 통화 안 해도 되는데 정오쯤 또 전화를 하게 된다. 밥은 뭘 드셨는지 운동은 다녀오셨는지 지금 뭐하시는지 같은 걸 묻는다. 통화는 길어봐야 2분이다. 저녁에도 생각나면 전화를 하게 된다. 오늘 잘 보내셨는지, 저녁은 뭐해서 드셨는지, 지금 TV에서 뭐가 나오는지 같은 걸 묻는다. 통화는 길어봐야 2분이다. 내 질문에 답하는 것 말고 아버지가 많이 하는 얘기는 '운동을 많이 하는까 몸 상태가 좋다.' '난 괜찮은 거 같다.' '잘 지내' 같은 말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 중간에 커피 마시다가 전화했는데, 아버지가 '지금 그.... 출근... 그래 출근하는 중이야?'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출근이란 단어가 생각나서 기분 좋은 거 같았다. 낮에 전화한다고 하고 전화 끊었다.

아버지한테는 그저 잘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요즘은 10시에 자서 7시에 일어난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시간 개념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지난 7년간 24시간 경비일 하느라 많이 못 잔 것을 지금 푹 주무시는 걸로 아버지 기억력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면 좋겠다. 당신 눈 앞에 지금 먹고 있는 반찬이 있는데 아들이 전화로 뭐 드시고 있냐고 물어보면 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그거 먹고 있다고 대답하는 아버지 본인이 제일 답답할 수도 있다.​

​ 아버지랑 자주 통화하니까 내 목소리에 힘이 없으면 아버지가 바로 알고 뭔 일 있냐고 한다. 별일 없다고 하지만 뜨끔하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내 목소리를 듣고 내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핏줄끼리 할 수 있는 찐 걱정인가? 피는 뜨겁고 진한 이미지인데, 줄이라는 말로 두 사람의 피를 잇는다고 생각하면 울컥 솓아오르거나 왈칵 무너지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혈연이란 말도 그렇고 그다지 아름다운 이미지는 아니다. 핏줄에 대해서 쓰니가 꼰대가 된 거 같다. ​

​ 뭔 일 있냐는 질문에 (회사에서 짜증나는 일로 상태가 안 좋지만) '별일 없고 다 잘되고 있다. 아버지도 잘하고 있다'고 하고 만다.

​ 요즘 다시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말의 앞이나 끝에 욕이 붙는다. 아내 얘기로는 <C8 망할 놈의 새끼들>이 한 세트로 쓰인다고 한다. 그렇다는 건 말을 꺼내기 전 머릿속의 생각에도 욕이 붙는다는 얘기다.

​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한다. 'C8, 아버지 29일에 만나요' 아버지를 욕하는 건 아니다.

​ 내 욕 들어주는 아내한테 미안하다. 망할 놈의 새끼들을 욕하는 거지 아내를 욕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미안하고 고맙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