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걷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잘 아는 길인데, 엄마랑 통화하면서 아버지 얘기하는 중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전화 끊고 나서도 아버지 생각하면서 무심히 걷다가 한참 후에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반대편으로 온 것을 알았다. 내 갈 길을 아는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길 위에 서 있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명절 연휴에 아버지랑 같이 지낸 엄마에게 들은 아버지 부정적 요인
- 한계가 없이 먹는다
- 지갑이나 핸드폰을 찾는다며 자꾸 가방을 뒤진다
- 하루에 돈 50만 원을 찾았는데, 어디에 썼는지 모름

긍정요인
- 동생이 아버지 은행 공동 인증서 만듦(Thanks, Bro)
- 카톡으로 영상통화를 시도해봤는데, 전화를 잘 받으심

약을 못 챙겨 먹는다. 잘 안 씻는 것 같다 외에도 새로운 증상들이 추가된다. 가방을 뒤진다는 얘기를 듣고 자꾸 짐가방을 싸던 할머니 생각도 나면서 '우리 아버지 이제 되돌아올 수는 없겠구나' 했다.

아버지는 길을 모르는 사람이 됐다. 나아갈 수도 되돌아 갈수도 없다. 그래도 어딘가에 서 있으니 인생인가? 잘 모르겠다.

치매안심센터에서 받은 검사는 코로나로 결과도 알지 못한 채 멈춰있고 - 전화를 한 번 더 해봐야겠다. - 치매든 경도인지장애든 정확한 의사 소견이 있어야 지금 먹는 비타민 같은 약이 아니라 치매약을 먹을 텐데. 엄마는 다른 병원 알아보지 말고 자꾸 좀 더 미루자고 한다.(치매 보험금 때문인가) 요양원 하는 선배랑도 통화해보고 여기저기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다. 아버지 본인은 답답하지 않아서 다행인데, 엄마랑 나는 답답함을 느낀다.

엄마랑 아버지는 같이 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 같이 산다면 엄마가 먼저 병에 걸릴 거 같다고 함 - 결국은 아버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일들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 어떡할까.

하루에 두 번에서 세 번 아버지 목소리를 듣는다. 아버지 목소리는 매번 밝다. 그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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