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검사 흉부엑스레이 심전도 뇌mri 뇌파검사 인지검사
아버지가 여섯 가지 검사를 했다. 아홉 시 반에 시작해서 세 시 반에 마쳤다. 아버지는 병원 일 있을 때마다 내가 서울로 오는 것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럴 필요 없다. 엄마도 나한테 그런 마음이 있는데, 엄마도 그럴 필요 없다.
4월 14일이 의사 얘기 듣는 날이다. 아버지가 치매인 건 명확한 사실이지만 그때는 좀 더 명확해진다. 무언가를 전문가의 입을 통해서 정확하게 듣는 일은 안도감을 준다. 바뀌는 건 아버지가 제대로 된 치매약을 먹을 거라는 것뿐이다.
오전 검사 마치고 점심으로 무교동 낚지를 먹었다. 아버지랑 같이 먹은 가짓수가 점점 늘어난다. 기억할만한 식사는 아니었다.
mri검사까지 시간이 비어서 스타벅스에서 돌체라떼를 마셨다. 아버지 덕분에 오랜만에 스타벅스에 갔다. 아버지는 내일이면 오늘 나랑 커피 마신 일을 기억 못하겠지만 처음이자 마지막 스타벅스일 것이다. 아버지랑 기억할만한 곳에 가고 싶었다. 내 욕심이다.
돌체라떼 같이 마시면서 아버지 인생이 달콤했던 시절도 있었겠지 생각했다. 아버지는 날 만나면 어렸을 적 얘기를 많이 한다. 오늘은 시골에서 면서기 할 뻔했던 일이랑 내가 영등포구 도림동에서 태어난 얘기, 직장인 문래동에서 집인 도림동이 가까워서 가끔 집에 와서 점심을 먹기도 했다는 얘기를 했다. 아버지가 28살까지의 일이다. 아버지랑 매일 통화하고 자주 만나니까 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하다가 그거그거 하면서 머뭇거릴 때, 무슨 말을 하려는지 거의 안다. 어차피 하시려는 얘기가 거기서 거기라 누구라도 알 수 있지만 아버지를 조금은 아는 것 같아서 좋다.
돌체 라떼 먹은 걸 기억해 둔다.
아버지, 다음엔 기억할만한 걸로 먹어요.
p.s.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프론트에 간호사 중 한 명이 모두에게 친절했던 것을 기억해 둔다. 나라면 매일 퇴근후에 독주를 마셔야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은 일을 하는데, 치매환자들이 많고 노인들 뿐인 병동에서 너무 밝고 친절해서 임팩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