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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분

9월
가을
생일
추분
다음 절기는 한로
9월이니 가을이고
내 생일에 아내가 가고 싶었다는 식당엘 가고
지구 인구 80억이니 생일은 특별하지 않고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니 음양이 조화로운데
나는 왜 조화로운 사람이 못됐는지
낮과 밤 중 어느쪽이 음이고 어느쪽이 양인지
지나간 계절엔 맥주 300리터를 먹었고
뱃 속에 찬 이슬이 맺히는 계절이니 이제부턴 따뜻한 술을 마셔야지
삶에 뭔가 여유가 있는듯 하고
여분은 없어도 부족함은 없나
조화로운 날에 태어나 결핍이 없나 
잡생각 끝이 지금부터 저물어 갈 뿐인 인생에 다다르고
흥이 깨져 버리고 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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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토요일에 가족 행사에 다녀왔다. 아버지 대신 집안 대표로 갔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있고 내가 강릉에 살고 엄마가 갔다오라 했기에 아버지 사촌 누나 손주의 결혼식에 - 고모님 아들 얼굴도 처음보는 지경이니 손주 얼굴도 당연히 처음 봄. 각각 5촌, 7촌 지간임 - 내가 갈 일이 생기네. 한국적 가족주의다. 영화 <대부>의 첫 시퀀스 - 이탈리아식 가족주의 결혼식 - 를 참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그 영화 생각을 했다. 영화 <삼포 가는 길>에 주인공들이 상갓집에서 밥 얻어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씬이 그 시절 한국식 3일장 문화를 아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대부2>에서는 다큐인지 헷갈릴 정도로 너무 리얼한 국회청문회 장면을 좋아한다. 세 작품 모두 다큐와 극이 뒤섞여 있네. 나 그런 걸 좋아하네.

 강릉 사는 작은 고모 옆에서 밥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았고 택시 기사한테 만원치만 가자 했는데, 택시 기사가 결혼식장을 잘 못찾아서 오는데 애를 먹은 - 많이 걸었다고 함. 나였다면 택시기사에게 지랄지랄을 했을텐데. - 고모를 일터(중앙시장에서 옷 수선집 함)에 태워 드렸다. 내가 어릴 때부터 날 이뻐했다는 걸 알기에 고모를 좋아한다. 고모는 큰 오빠의 큰 아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한 게 좋았던 거 같고, 나도 아버지의 여동생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한 게 좋았다. 저녁에 오늘 고마웠다는 전화를 받았다. 고모가 나한테 먼저 전화해준 게 참 기쁘고 고마웠다. 친족이랄지 혈연이랄지 그런 걸 생각했다.

 

 최대한 담백하게 써보려했던 첫 주제가 샛길로도 빠지고 몰입도가 떨어지는 느낌이네. 세상에 내 맘 같은 일이 없다.

 

 아내에게 짜증 섞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아내는 그걸 패악질이라고 한다. 세상에 내 맘 같은 일이 없으니 아내도 내 맘 같은 사람이 아니란 걸 알지만 종종 그렇게 된다.

 일요일에 이불 빨래하러 빨래방에 갔다가 아내에게 패악질을 했다. 빨래방 카드가 내 차 안에 있는 것, 내가 아내에게 차 가지고 집 앞으로 오라하지 않았다면 이불 네 채가 든 가방을 들고 주차장까지 250미터 걸어갔어야 했다는 것, 아내가 카드 충전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것, 내가 흥분한 바람에 신용카드로도 진행이 가능하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 것, 새치기 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아주머니가 한 명 있었는데, 아내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내가 우리가 먼저라는 액션을 보인 것에 화가 났다. 빨래를 마치고 세차장에 간 것 - 난 아내가 자동 세차를 했으면 좋겠다. -  세차를 마치고 주유소에 간 것 - 난 아내가 기름 넣어주는 주유소에 갔으면 좋겠다. -  까지 쭉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내가 좀 더 세속적인 사람이었으면, 생각할 때가 있다. 좀 더 편리를 추구하고 새치기 당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현실은 아내가 세속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내가 잡도리를 해도 어지간하면 참고 들어준다. 나는 정이 많은 사람인데, 그 정에 격정과 역정의 비율이 높다. 아내도 정이 많은 사람인데, 가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인간애보다는 전세계적인 인류애가 강하다. 또 글이 샛길로 세고 있네.

 저녁에 아내가 그러지 말라고 차분하게 얘기하기에 알았다고 했다. 그러지 말아야지 종종 생각하기에 앞으로는 정말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주택 구입 진행을 내가 해야한다는 사실 때문에 미리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허허'하는 스타일이라 작은 고모도 본인 직업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허허'하는 스타일이란 얘기를 들었다. 그 때문에 고모부가 고모를 잡도리 한 일들이 있었다 했다. 고모에게 답하길, 유전이란 게 무섭고 나는 겉보기엔 할아버지 스타일이지만 실제 성격은 엄마를 닮아서 급하고 화가 많다고 했다. 그런 내 성격은 내 성격일 뿐 아내에게 화를 낼 이유가 되진 않는다. 벌어지지도 않은 일로 미리 스트레스 받지 말아야지. 다른 사람에게는 화를 내도 아내한테 화내지 말아야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두 팔을 배 위에 얹고 가만히 누워서 베토벤 3번 교향곡을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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