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내가 장인어른이랑 통화하다가 통화 말미에 우리 아버지의 치매 증상에 대해서 알렸다. 언젠가는 말씀드려야지, 통화가 한 시간 넘게 이어지는 바람에 예기치 않게 얘기가 진행됐다. - 아버님이 먼저 시댁 어른들 괜찮은지 물어봤을 것이다. - 아버님이 나 바꾸라고 해서 잠깐 통화했다. 며칠전에 나랑 통화했을 때, 내가 아무말도 안 한 것에 조금 섭섭함을 느낀 말투였다. - 아내가 본인 부모는 본인이 알아서 하는거지, 라고 말한 것에도 약간 충격 받으셨을지도 모른다. - 상황이 심각하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시지 말라고 태연하게 얘기했다.
통상적으로는 시집간 본인 딸이 힘들어질 수 있으니 걱정하는 것이 정상이고, 아버님은 통상적인 사람이다. 어머님이 암투병도 하셨고, 평소에도 건강에 관심이 많으시니 걱정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진작에 알려드리지 않은 것이 죄송했다. 헌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사돈이 아프든 말든 아무소식 없으니 그저 잘 지내겠구나 생각하면서 사는 게 아버님, 어머님한테는 더 좋을 것이다. 암튼 그렇게 아버지 소식이 사돈댁에 알려졌다. 어서방 자네 어깨가 무겁게구만 열심히 살어, 란 말을 들으니 진짜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열심히 살어'는 아버님이 자주하는 말인데, 당신 성에 차지 않을 뿐인지 나도 아내도 열심히 살고있다.
요즘 내 관심분야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지난달 30일로 일을 그만뒀다. 지금 상태라면 먼저했던 경비일이 마지막 직장이다. 앞으로 아버지는 마지막인 것만 많아지는 삶 속에 있을 것이다. 월급은 잘 들어왔고, 퇴직금은 아직인데, 조금 알아보니까 퇴직금은 따로 통장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서 먼저 통화했던 사무실 직원과 다시 한 번 통화해야 할 거 같다. 15일에는 나랑 같이 고용센터에 갈 계획이다.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건 좋은데, 현재 아버지 상태로 구직활동이 가능할까? - 구직활동을 증빙해야 실업급여가 나옴 -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양천구치매안심센터 간호사랑 한참을 통화했다. 의사 선생님이 진단검사 결과를 알려줘야 하는데, 코로나로 치매안신센터의 많은 활동이 멈춰있는 상황이라 언제 연락할지 모르겠고, 본인들도 환자 가족들의 답답한 상황을 알고 있으나 어쩔수가 없다는 내용이다. - 지금이라도 대학병원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나? 엄마랑 상의 좀 해봐야겠군 - 통화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새겨진다. 아버님이 말한 '어깨가 무겁다'는 이런 걸 내가 챙기는 상황을 말하는 건가? 그런거라면 아직 어깨가 무겁지는 않다.
우리 아버지 현재 긍정 요인
- 밥을 혼자서 잘 끓여 드심
- 규칙적으로 매일밤에 잠을 자게 됨
- 엊그제 혼자 은행에 가서 ATM으로 마지막 월급 들어왔는지 확인함
-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고 함
- 아침에는 약 네 알, 저녁에는 약 한 알이란 걸 알 때가 있음
- 계절을 헷갈리진 않음(내 생각엔 이게 제일 중요)
우리 아버지 현재 부정 요인
- 외롭다, 여전히, 아마 앞으로도
아버지 힘내세요. 어깨가 무거워져도 열심히 도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