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그때그때 | 634 ARTICLE FOUND

  1. 2024.09.09 20240909 - 벌초, 성묘, 주말생각
  2. 2024.09.02 20240902 - 9월 시작 생각
  3. 2024.08.26 20240826 - 잡생각
  4. 2024.08.21 20240821 - 자동차가 있는 세계로 발을 들인 아내 생각
  5. 2024.08.20 20240820 - 우울
  6. 2024.08.12 20240812 - 주말 생각
  7. 2024.08.05 20240805 - 외로워서 어쩌나 아버지 생각
  8. 2024.07.26 20240726 - 우울증 괜찮아 진건가? 생각
  9. 2024.07.10 20240710 - 연달아 터진 자동차 이슈에 대한 생각
  10. 2024.07.07 20240707 - 주말 일기, 엄마 생각
  11. 2024.06.29 20240629 - 어쩔 수 없고 잘하고 있는 것에 대한 생각
  12. 2024.06.24 20240624 - 괜찮은건가 생각 1
  13. 2024.06.18 20240618 - 일기
  14. 2024.06.15 20240615 - 개꿈들
  15. 2024.06.09 20240609 - 허기, 아버지와 동생과 조카, 강릉 단오제
  16. 2024.06.04 20240604 - 아버지 전입신고와 엄마 생각
  17. 2024.05.30 20240530 - 결정되지 않은 것들이 주는 우울감에 대한 생각
  18. 2024.05.13 20240513 - 어지러운 날들 생각
  19. 2024.05.08 20240508 - 어버이날, 불효자 생각
  20. 2024.04.30 20240430 - 4월의 끝에 아버지 보고 온 생각
  21. 2024.04.16 20240416 - 그냥 써 보는 일기
  22. 2024.03.25 20240325 - 여전한 위기의 중년, 아버지 생각
  23. 2024.03.12 20240312 - 아버지, 엄마, 흐르는 시간, 어깨 통증
  24. 2024.02.24 20240224 - 어깨 통증과 뉴스의 주인공이 된 엄마 생각
  25. 2024.02.13 20240213 - 연초부터 아픈 생각 2
  26. 2024.02.05 20240205 - 어깨 통증, 위기의 중년, 아버지 생각
  27. 2024.01.28 20240128 - 잘 지내고 있는 아버지 생각
  28. 2024.01.19 20240119 - 잘 지내야 될텐데, 아버지 생각
  29. 2024.01.15 20240115 - 요양원과 아버지 생각
  30. 2024.01.08 20240108 - 신년, 나이 먹음, 아버지 생각

 지난 토요일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벌초랑 성묘 행사가 있었다. 산소는 강릉에 있고 작은아버지 한 분만 강릉에 있으니까 벌초는 대행업체에 맡기려고 했는데, JJ삼촌이 본인들 부모니 본인들이 알아서 한다고 하길래 신경 끄기로 했다. 나랑 아내는 벌초 다 끝난 다음에 가서 절만 하고 왔다. 편했다. 막내 삼촌이 25살 사촌동생을 강제로 데리고 와서 오랜만에 얼굴 봤다. 동생이 직장 다니기 너무 싫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아내가 나에게 돈 쥐어줘서 동생한테 밥 사 먹으라고 용돈 줬다. 잘한 일이다. 엄마를 오랜만에 봐서 좋았는데,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별 대화는 못나눴다. 10명이 점심 먹으러 옹심이 집에 갔는데, 엄마랑 마주 보고 먹은 게 좋았고 엄마 옆엔 아내가 앉았다. 나를 지탱해주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게 좋았다. 기억해 둔다.

 

 아버지 있는 요양원에 코로나 이슈가 있어서 엄마를 비롯한 친척들이 면회를 못했다. 면회 가능한지 묻느라 사회복지사 선생님이랑 통화할 때 아버지 잘 지내는지 물었더니, 행복하시죠, 라고 대답해서 약간은 안심이 됐다. 대화 나눌 상대가 없는 아버지는 혼자서 생각의 나무를 키우다가 밥 먹으라 하면 밥 먹고 간식 먹으라 하면 간식 먹고 머리 자르자고 하면 머리를 자를 것이다. 그때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에게 고맙습니다, 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생각의 나무를 처음부터 다시 키울 것이다. 얼른 아버지 면회가서 컨디션 좋은 아버지가 한 시간 내내 떠드는 거 듣고 싶네. 사랑인가?

 

 어제는 아내랑 횡계에 있는 자생식물원이랑 월정사에 다녀왔다. 월정사를 처음 가봤네. 유명하다는 전나무 숲길도 걸었다. 어느 나무에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길을 걷는 일의 시작이다, - 원문은 '명상의 시작이다.' - 라고 적혀 있었다. 요즘 우울증 핑계로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보내는 나를 잠깐 돌아봤다.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가을이 어쩌구 저쩌구 하길래, 올 가을엔 나에게 편지를 쓰겠다는 사연을 보냈는데, 내 사연 읽혔다. 블로그에 종종 쓰는 일기가 나에게 쓰는 편지니까 어차피 쓸 편지를 쓰겠다는 사연이었는데,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는 내가 보낸 사연이 본편적인 얘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것. 인생이란 그런것이다. 점심으로 아내랑 보리굴비 정식을 먹었다. 아내가 맛있다고 하면서 잘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알펜시아 리조트 근처에 있는 카페도 갔다. 교동 보헤미안에 아내랑 커피 마시러 가는 게 자주 간다. 아내랑 같이 커피 마시러 가는 게 참 좋다. 내가 전날 커피 마시러 가자고 말하면 다음날 억지로 일찍 일어나 주는 아내가 참 좋다. 사랑이다.

 

 직장 일을 포함해서 모든 일은 추석뒤로 미루기로 했다. - 이런 여유가 있다는 게 고맙다. -  이번주 잘 보내고 연휴가 기니까 추석엔 차로  세 시간도 안 걸리는 엄마한테 다녀올까 싶다. - 엄마가 연휴 때 나를 보고 싶어하는 것 같은 맥락의 말을 함 - 회사에서의  세 시간은 너무나 길지만 엄마에게 가는 세 시간은 너무나 짧지. 사랑인가? 

 

 사랑? 사랑. 사랑? 이 다 사랑이다. 여전히 사랑으로 산다. 사랑으로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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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가 9월 1일이었다. 어제는 9월이구나, 싶지 않았는데 오늘 출근하니까 9월이 왔다는 실감이 난다. 사무실 근처에서 각시취 꽃이랑 용담꽃을 보니 가을이구나 싶다. 이렇게 세상 속에 동화되어 간다.
 
 주말엔 거의 누워 있었다. 어떤 의욕없음이 여전히 나를 지배한다. 토요일 아침엔 아내랑 데이트를 했다. 보헤미안 본점에서 커피 마셨고 양양 휴휴암에 다녀왔다. 아내랑 뭘 같이 하는 게 활력을 준다. 집에서 밥을 같이 먹고 옆에 누워서 각자 휴대전화를 보는 일들도 그러하다. 오늘 아침 출근 전에 아내가 곱게 자는 모습을 봤는데, 그것도 위안이 됐다. 안심이 더ㅣㄴ다고 해야하나?. 어제 아침에 아버지 친구들을 잠깐 만났다. 전날 코로나로 면회가 금지된 요양원에 가서 유리 칸막이 너머로 아버지를 봤다고 한다. 아버지가 반가워했다고 전해들었다. 위로금 100만원을 받았고 엄마한테 줬다. 치매 걸린 친구를 위해서 위로금을 모으는 친구들을 생각해본다. 아버지 친구들이니까 52년 전후에 태어난 분들인데, 건강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람이 일단 안 아프고 볼 일이고 아프더라도 치매는 피해야 한다. 치매는 치명적이라 치매다.
 
 지난주에는 일주일 전에 만난 DJ 선배 생각을 많이 했다. 누구 한 명 만나면 그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프로 뮤지션인 선배랑 프로 얘기를 하다가 선배가 '프로는 선택받는 거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나도 선택받고 싶은가? 강렬한 열망은 아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선택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선택받지 못해서 우울한 건 아니다. 이번달부터는 본격적으로 노래 녹음을 해볼까 싶기도 하네.
 
 프로야구 프로축구에서는 내가 응원하는 팀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야구는 2패 했고 축구는 막판에 동점골을 허용해서 비겼다. 나야 그 결과에 잠깐 화를 내거나 속상한 마음을 가지면서 지켜볼 뿐이지만 선수들과 감독들은 간절하게 뛰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정말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다. 이게 프로의 세계다. 냉정.
 
 나는 선택받고 싶은가? 일단 글이 좀 잘됐으면 좋겠네. 글쓰기도 노래만들기도 어느 지점에서 멈춘 느낌이다. 2024년 9월 나의 시간은 이렇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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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 잡생각

그때그때 2024. 8. 26. 14:48

 무력감이 가시질 않는다. 죽고 싶은 건 아니니 그냥 이대로 살자. 무너지지만 말고 살자.
 
 지난 토요일에 대학 선배, 동기, 후배 만났다. 후배 섭외로 선배가 횡계에 와서 공연을 한 덕분이다. 술 마시고 노래방엘 갔다. 학교 다닐때 개별적으로는 많이 놀았어도 넷이 모여서 술 한 잔 마셔본 적 없다. 첫 만남이 25년 이상 지나면 모든 만남이 이렇게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풍화되는게 아닌가, 생각해봤다.
 선배는 앨범을 낸 가수고 주업으로 요양원을 했는데 최근에 건강원으로 업종을 바꿨다고 한다. 동기는 강릉에 사니까 자주 보는 편이고 중고등학생들 수학 가르친다. 후배는 올해 고향인 평창으로 귀농했다. 나는 이일저일 하다가 산림청에 취직했다. 다들 짧은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간다. 단편적으로는 그러하지만 그 속은 다들 복잡하다.
 가수로 약간은 성공의 맛을 본 선배, 본인 시나리오로 감독 데뷔 직전까지 갔던 동기, 가족들 춘천에 두고 부모님과 살고 있는 후배, 나는..... 음..... 다들 먹고 사는 걱정 없었으면.
 
 토요일, 일요일에 아버지 만났다. 이번주는 아버지 컨디션이 안 좋았다. 먼저처럼 혼자서 막 떠드는 거 듣는게 좋지 아버지가 별말 없이 먼데만 보고 있으면 기운이 빠진다. 그래도 엄마랑 애들 한 번 보고 싶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애들도 애들인데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 것 같다. 9월 첫 주말에 추석성묘 예정이라 그때는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동생은 일이 있어서 못 온다고 하고, 요양원에 코로나 환자가 발생해서 당분간 면회가 중단된다는 문자를 오늘 받았다. 어제 아버지 보고 오길 잘했다. 아버지가 9월초에 엄마 못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렇다.
 
 오늘 아침도 여지없이 출근하기 싫었는데, 출근했다. 기간제 선생님 중에 한 분이 벌에 쏘였다. 요즘 벌쏘임 사고가 많다. 더워서 벌이 많다는데,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잽싸게 태워서 강릉의료원 다녀왔다. 장수말벌에 쏘인 것 같고 쏘인 곳이 가렵고 많이 부어서 응급실에서 수액 맞았다. 벌에 쏘인 선생님은 나보다 한 살 형이다. 병원에서 이 형 기다리면서 46세 남성이 5년 전에 정선군 임계면으로 이사 와서 혼자 살면서 최저임금 받는 산림청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것을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나도 마찬가진가? 오늘 날을 제대로 잡았는지 기간제 선생님 중에 한 분이 내가 병원 갔다 오는 사이에 뭔가에 쏘여서 병원에 내려갔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아이가 고3인데, 정선군 임계면에 살면서 매일 술을 마시고 매년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는 일자리에 지원하는 삶을 생각했다. 내가 계산한 병원비는 어떻게 돌려받나? - 액수가 적지 않다. - 다들 먹고 사는 걱정 없었으면.
 
 보통일이 아니네, 란 말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살아가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우울하다고 술 마시고 무너지지 말아야지. 나에게는 술 마시고 무너질 수 있는 여유는 있는건가, 깊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올해 발초는 업체에 맡긴다고 작은집에 전화해야 하는데 전화를 못하겠네. 자동차 보험도 전화해야 하는데 전화를 못하겠네. 보통일이 아니네.
 
 선배가 노래방에서 light my fire 부른 걸 기억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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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2000년에 운전면허를 땄다. 아내는 나보다 일찍 땄다. 아내는 쭉 운전을 안했다. 작년에 어떤 결심이 섰는지 운전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8월에 새차를 샀다. 꼬마차라면 탈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경차를 샀다. 새차를 3달 이상 그냥 세워뒀다. - 좀 열받았었지. - 겨울이 깊어질 무렵 운전연수를 받았다. 도로주행 선생을 자주 봐서 불편했는지 마지막 타임은 건너뛰었다. - 그게 다 돈인데. - 

 아내는 운전을 곧잘 한다. 비보호 좌회전도 회전교차로 진입도 잘 한다. 아내는 주차에 애를 먹는다. 차 폭과 길이에 대한 감각이 떨어져서 그렇다. 한동안 집 앞에 차를 세우지 못하고 널찍한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아내는 차를 타고 밭이랑 사회복지사 실습받은 요양원에 오고갔다. 가끔은 주문진에도 간다. 운전을 곧잘 하니까 괜찮다. 다만 비오는 날 운전과 밤운전은 피했으면 한다.

 집 앞에 차를 세우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첫 번째 사고가 났다. 차 빼다가 서 있는 남의 차를 들이 받았다. 상대방이 쿨하기에 보험처리하지 않고 35만원에 수리하시라하고 끝났다. 아내 차는 뒤쪽이 많이 다쳤는데, 언제 또 사고 날지 모르니 차량용 스티커 사서 붙이고 말았다. 얼마전에 두 번째 사고가 났다. 집에 돌아와서 차를 세우다가 실수로 엑셀을 밟아서 앞 바퀴를 지탱해주는 높은 턱을 넘고 연립 입구 계단에 자동차 앞쪽을 긁었다. 밖에 나와있던 이웃 주민들이 그 사고를 목격했고 그 후로 아내는 운전에 침울하다. 하지만 침울할 필요 없다. 두 개의 사고 모두 혼자 들이받은 사고라 그렇다. 다친 사람이 없는 사고라 그렇다. 귀요미야 힘내.

 서울에선 운전 안해도 살아가는데 큰 불편이 없지만 지방 소도시에서의 삶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강릉 이사온지 8년만에 아내가 운전을 결심한 것이다. 본인 자동차가 생긴다는 일에 설레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동차가 있다는 건 신경쓸 것이 많아짐을 뜻한다. 보험가입과 갱신, 세차 - 차 사고 6개월 만에 첫 세차를 했는데, 떼가 안 지워졌다. - 정기점검 - 이건 아내가 다녀왔고 정기점검 가던날 첫 사고가 났다. -  타이어 펑크나면 긴급출동도 불러야 하고 경고등 뜨면 뭔지 확인해야 한다. 그때그때 기름도 채워야 한다. 얼핏 사소할 수도 있는 이런 일들이 나에게는 다 스트레스다. 운전을 오래한 나에게도 그러하니, 아내에게는 더 스트레스다. 그래도 내 아내가 본인 자동차 기름은 혼자 넣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차차 나아지겠지 생각한다. 아내가 두 번째 사고의 후유증을 훌훌털고 꼬마차 타고 훌훌 날아다니길. 다 쓰고 나니까 배가 고프네. 귀요미야 기운내.

 요즘하는 생각인데, 왕복 54km 출퇴근 너무 힘들다. 자동차 없어도 살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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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 - 우울

그때그때 2024. 8. 20. 14:40

 단어의 정의를 오랜만에 찾아본다. 우리말의 정의는 누가 내리는 걸까?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 만드는 사람들이? 인간은 정의하는 동물이고 우울이란 단어의 뜻을 알기에 나는 더 우울하다.  

 우울 - 근심스럽거나 답답하여 활기가 없음, 사전상의 정의다. 위키백과에서는 활동력 저하를 특징으로 하는 정신적 상태라고 하고, '우울 정의'로 구글에서 검색하면 슬프고 희망이 없고 무기력한 기분을 느끼는 상태,라고 나온다.

 다 맞는말이다. 근심스러운 일이 있으니 답답하고 답답함은 활기 없음과 같다. 활기가 없으니 활동력이 떨어지고 무기력을 동반하게 된다. 내 근심의 원인은 결국은 나다. 그걸 아니 더 우울하다. 우울의 뜻을 뒤적거리다 보니 번민이란 단어가 나온다. 

 번민 - 마음이 번거롭고 답답하여 괴로워함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누구와도 얽히고 싶지 않다. 그런데 출근을 해야한다. 출근하기 싫다. 직장 동료들과 인사도 하고 싶지 않다. 괴롭다. 흔히 말하는 쉬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가만히 있고 싶다. 혼자서 어둠의 끝까지 다녀오고 싶다. 중간에 자체적으로 약을 끊은 게 실수였나? 약을 다시 먹어야겠다. 

 이번주가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 다음주엔 아무 일도 없길, 아무 일도 만들지 않는 내가 되길. 출퇴근만 하는 식물이 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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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덥다. 강릉은 최장 열대야 기록을 세웠다. 기온 상으로는 오늘아침까지도 열대야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최저기온이 30도가 넘는 날들에 비해서는 한결 나아졌다. 시간의 흐름을 이런식으로도 느낀다.
 
 좀 웃긴 표현이지만 베프 중에 베프 Y가 중3 아들이랑 같이 강릉에 다녀갔다. 친구는 산에 온 게 세 번째고 아이는 처음이다. 친구가 삽당령을 좋아해서 좋다. 친구 아이는 개미, 메뚜기, 거미를 신기해했다. 중학교 3학년이 이게 맞나? Y는 자수성가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어느샌가 사람의 가치를 본인이 그냥 내어줄 수 있는 돈의 액수로 평가하는 사람이 됐다. 어제 저녁에 술 한참 마시다가 본인 친구 중에 내가 1등이라 필요하다면 돈 4천만원은 그냥 줄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내 베프가 그런 사람이 됐다는 게 씁쓸하다. 본인은 아나? 나중에 얘기 한 번 해줘야겠다. 혹시 나도 모든 걸 돈의 액수로만 평가하고 있지는 않나? 그 와중에 내가 일등이라 난 기분 좋은건가? 아싸 1등. 지금 본인 모습이 본인이 살아온 결과이고 열심히 산 친구를 탓할 생각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친구 아이가 굉장히 부주의하다고 느꼈다.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는 느낌. 원래 그 나이때 많이들 그런지. 친구는 본인 아이라 크게 이상한 점을 못 느끼는 건지 생각했다. 내 아이도 아니고 부모가 알아서 하겠지. 친구를 2주 전에 서울가서 봤지만 강르에서 또 만난 게 좋았다. 고기가 익는 화로 앞에 마주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 주로 옛날 얘기 - 나눈 순간이 특별히 좋았다. 친구도 그랬으리라 기억해두자.
 
 아버지를 만났다. 지난주에는 한 시간이 넘게 조금도 쉬지 않고 말을 뱉었던 아버지가 이번에는 별 말이 없었다. 동생이랑 영상통화를 했다. 동생 큰 아이가 9살인데, 동생은 아버지랑 영상통화할 때마다 그 아이를 아버지와 인사시킨다. 아이가 뭔가 희생당하는 느낌이랄까. 그런게 있다. 그래도 자꾸 얘기하면 아버지가 아이 이름도 얘기하고 알아보니까. 괜찮은건가? 아버지는 언젠가 어씨 일족이 다 만나기를 희망하고 있고 - 추석 성묘 때 아버지 외출 하는 쪽으로 내 마음이 기울었다. - 어씨들이 착해서 잘 산다는 '어씨부심'이 있다. '어씨부심'은 아내의 표현인데, 좀 재미있다. 아버지랑 나랑 이런저런 얘기하는 중에 아내 얼굴을 보면 아내가 '꺄르르꺄르르' 웃을 때가 있는데, 그 모습을 보는 일이 좋다. 사랑이다. 아내 말로는 아버지가 귀여워서 웃는다고 한다.
 
 또 한 번의 주말이 이렇게 지나갔다. 이번주도 별탈없이 보내자. 이번주는 광복절에도 아버지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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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아내랑 같이 아버지 만나고 왔다. 토요일에는 서울에 있었기에 주 2회 아버지 만나고자 하는 계획을 실천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지난주에 특별히 외뤄웠는지 한 시간 넘게 쉴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제대로 알아 들은 얘기는 없고 마무리는 본인은 잘 지낸다, 였던 것 같다. 아버지가 했던 얘기를 일일이 기억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다음주에는 아버지가 말하는 걸 좀 더 신경써서 들어봐야겠다.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일어나서 밥 먹고 간식 먹고 점심 먹고 프로그램 있는날은 프로그램 진행하고 낮잠도 자고 저녁 먹고 잠들었다가 다음날 다시 일어나서 밥 먹고....의 반복을 산다. 이 반복 속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가족이라던가 본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외롭다는 것과 현재 본인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랑 관계 없이 현실을 받아 들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다. 내가 매일매일 바짝 붙어 지내면서 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하든 다 들어준다면 아버지는 지금보다 덜 외롭겠지. 불가능한 일이다. 브루스 윌리스 선생님은 어떻게 지낼까? 생각해본다. 
 어제는 내가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면회 가는 바람에 아버지가 동생과 영상통화를 못했다. 내 불찰이다.
 이번주에는 별일 없으니 토요일 일요일 아버지 면회를 가기로 한다.
 우리 아버지 외로워서 어쩌나?
 
 현재 우리 아버지는
 - 우리 집이 요양원에서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고 너무 외로워서 집에 오고 싶어한다.
 - 본인이 현재 있는 요양원을 학교라고 할 때도 있고 회사라고 할 때도 있다.
 - 아들 둘이 회사에 잘 다니는지 궁금해하고 회사를 학교라고 할 때가 있다.
 - 한글을 읽는 법을 완전히 잊지는 않았다.
 - 애들이라고 하는 건 손주들을 지칭한다.
 - 엄마라고 하는 건 내 엄마(본인 전처)를 지칭한다.
 - 내 쪽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먼저 말하지 않으면 이름을 말하지 못한다.
 - 어씨들이 다 착하다는 말을 매번 반복한다.(이 말은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다.) 
 - 불결 행위는 어쩔 수 없게 됐다.
 
 아버지의 상태를 단편적으로 적어 내려가는 게 현재 아버지에 대한 나의 마음인가? 이런 아버지가 추석 때 성묘 행사에 참석하는 게 아버지에게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아버지 형제자매들과 가족들은 다들 밖에서 만난 아버지를 좋아할 것 같으니 아버지에게도 의미가 있는 걸까?
 내일 모레 입추네.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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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우울감은 많이 줄었다. 약발이 받는다. 다만 자다가 자주 깨는 일은 여전하고 레피졸에 발기부전이나 정력감퇴 부작용이 있나? 생각해 본다. 그런일로 우울하진 않다. 

 며칠 전에 사무실 뒷동산을 걷던 중에 어디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벌한테 쏘였다. 하루 지나니까 쏘인 왼손이 주먹왕 랄프가 되기 직전이길래 병원에 다녀왔다. 선생님이 약 먹는 거 있는지 묻는 바람에 외과 선생님과 잠깐 신경정신과 상담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정하지 않고 시간 나는 날에는 아버지를 보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은 편해지나? 아무튼 그렇게 하기로 했다. 엄마한테는 굳이 아버지 보러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영상통화로 대체가 가능하다. 지난 토요일 영상통화 때, 아버지가 엄마 보고 유난히 좋아했던 게 기억난다. 그보다 더 기억나는 건 아버지가 혼자 있는 시간에 울었다는 사실이다. -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또 울면 안돼요, 라고 해서 알게 됐다. - 아버지, 울지 말아요.

 전자렌지를 샀다. 2012년에 혼수로 샀던 오븐겸 레인지가 고장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 것 테스트 하려고 냉동 피자를 돌렸다. 우리 연립의 전력 총량의 문제인지 새 전자렌지도 잠깐 돌아가다가 꺼지길 반복했다. 내년에 이사 가야 하나? 이런 사소한 일들로 스트레스 받는게 싫다. - 큰 스트레스는 아니다.

 중복날 아내랑 소고기 구워 먹었다. 고기를 잘 안 먹는 아내가 흔쾌히 오케이 해줬다. 고기가 맛있진 않았지만 아내가 맛있게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무빙'이란 시리즈가 생각났다. 무빙에 울적한 류승룡이 아내랑 고기 먹는 장면이 나온다. 무빙은 '부부가 한 달에 한 번 저녁 식탁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일의 위대함' 을 알려주는 시리즈란 생각을 했고 아내에게 말해줬는데, 아내는 '무빙'을 보지 않았다. 아내랑 뭘 같이 먹을 때, 그 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먹는 다는 행위 자체를 좋아해서 그럴수도 있다.

 회사는 인사철이 끝났다. 인사 조치로 전에 있었던 직장 상사가 다시 오게 됐다.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고 실제로도 좋은 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 나도 좋은 놈은 아니지 -  여긴 직장이니까 오거나 말거나 내 할일이나 하고 이 사람이 나한테 뭐 시키면 부당하지 않은 선에서 하면 될 일이다. 그래도 기분이 좋지는 않다.
 회사에서 바쁜 일이 몇 건 끝나서 당분간은 큰 건수 없이 자잘한 업무만 처리하면서 지낼 계획이다.

 계속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예정이다. 여름을 거치면서 우울감이 계속 줄어들면 좋겠다.
 
 정치 뉴스를 보면 나라가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 밖에 안든다.
 날씨를 느끼고 생각하면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 뿐이다.

 괜찮은 건가?  내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것이다. 아내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괜찮은 것이다.

 여전히 사랑으로 산다. 사랑으로만 산다.

 엄마 젖 만지는 꿈 꾸고 벌에 쏘였기에 복권을 샀는데 꽝이었다. 어렸을 때 엄마 젖 만지는 버릇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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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주 토요일에 손윗 처남이 본인 자동차를 나에게 줬다.
 
 - 지난주 일요일에 먼저 타던 자동차 키를 잃어버렸다.
 
 - 어제(7월 9일) 아내가 첫 번째 교통 사고를 냈다.
 
 
 처남이 준 자동차는 맘에 든다. 쉐보레에서 나온 아베오란 차다. 명의이전을 하는 문제가 있는데, 내 이름으로 보험을 들면 할증이 많이 붙는 문제가 있어서 일단은 처남 이름으로 타는 게 현실적이다. 더구나 아내가 교통사고를 냈는데, 아내차도 명의랑 보험이 내 이름이다. 처남과 대화를 나눠봐야 하는데, 선뜻 전화기에 손이 가질 않는 현실이다.
 
 140만원 주고 사서 올 초에 보험료만 130만원 내고 잘 타던 내 자동차는 잃어버린 키를 찾지 못해서 뒷유리 부수고 - 이웃들이 도와줌 - 짐 빼고 오늘 아침에 보험 불러 견인 후 카센타로 보냈다. 나에게 본인 차를 팔았던 카센타 사장님이 알아서 폐차해주기로 했다. 이 건 처리하느라 오늘 두 시간 지각처리했다. 전륜차에 전자식 사이드브레이크가 잡혀 있어서 바퀴 안굴러 갈까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앞바퀴가 굴렀다. 무사히 잘 끝났다.
 
 아내는 차를 빼려고 후진하다가 D인줄 알았는데 R에서 엑셀레이터 밟아서 사고를 냈다. 아내 말로는 큰 소리가 났다고 하는데, 내가 사무실에 있어서 현장에 갈 수 없으니 일단 상대차 번호 받아서 연락을 시도했다. 근데 전화를 안 받네. 오후엔 전화를 두 번 받았는데, 받자마자 '여보세요' 한 마디 없이 전화를 끊었다. 뭐 어쩌자는 거지? 아내차는 좀 크게 다쳤지만(견적 80이상 나올 것 같음) 아내가 찍은 사진으로 확인한 상대방 차는 그냥 타자면 탈 수도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 자동차가 어제 5시까지는 집 앞에 있었다는데, 6시 40분에 내가 퇴근했을 때는 사라졌다. 그래놓고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버린다. 어지럽다. 어지러워. 일단 우리 연립이나 동네 차는 아닌 것 같다. 기다려봐야지 어쩌겠나. 찝찝함이 계속 남아 있다. 
 

 세 가지 자동차 이슈로 여기저기 연락하고 머리 굴리느라 마음이 반파됐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세 건이 다 연결돼있네. 아내는 첫번째 사고로 충격을 받아서 마음이 반파됐다. 반파된 사람들끼리 맛있는 거 사 먹어야겠다. 처남한테는 언젠가 전화를 하면 되는데. - 처남이 은근히 쿨함 - 아내의 사고 건은 언제가지 기다려야 하나. 첫 번째 교통 사고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법인데 - 나는 2000년대 초반에 60킬로 미터 정도로 지나가다가 거리감을 잘 몰라서 서 있는 대형트럭을 지나치면서 백미러 하나 해 먹었던 게 첫 사고였다. -  아내가 침착하게 잘 대처했다.
 
 
 아내에게 내가 반파상태라 하니 본인은 완파상태라고 한다. 반파된 마음으로 어지럽게 살아간다. 저녁에 소주 마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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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에 회사 휴가 냈다. 6시에 운동 갔다오고 김밥 한 줄 사 먹고 지난번에 혈압 문제로 못했던 헌혈하고 - 혈장 부족하대서 혈장 헌혈함, 헌혈하면 연가를 공가로 바꿀 수 있음. very good - 머리 자르고 집에 잠깐 앉았다가 13시 30분 차로 엄마 보러 오산에 갔다. 차에서 한 시간 잤는데 낮잠이 정말 오랜만이라 무척 개운했다. 오산으로 오던 중에 손윗 처남이 자동차 한 대 나한테 주는 걸로 결정 됐다.

 토요일 아침에 자동차 받으러 봉천동엘 갔다. 쉐보레 자동차가 생겼다. 처남은 직장내 스트레스 문제로 세 달 휴직 중이다. 중년의 직장생활 위기와 3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에 사는 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 봤다. 봉천동에서 신월동으로 차 끌고 갔다. 서울 운전 오랜만이네. 영일군한테 차 보여주니 관리 잘한 차라고 했다. 처남한테 고맙다고 문자 보내고 아내에게 오빠가 차에 관심이 많고 관리를 잘 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자기 오빠가 그럴리가 없다고 한다  흩어져 살면 자기 오빠 관심사가 뭔지 성격이 어릴 때랑 어떻게 달라졌지도 모르는 실정이다. 나도 내 동생이 애 둘 키우는 거 말고는 뭐하고 사는지 잘 모르겠다. 저녁엔 친구들이랑 한 잔 했다. 신월동 화곡동 전통적인 멤버 넷이 - 아내한테 사총사라 하니 웃겨 죽음 - 모일라고 했는데, 한 친구가 정신이 아픈 동생을 혼자 둘 수 없어서 못나오는 바람에 셋이 만났다. 술을 많이 안 마셨고 리쌍 노래를 부를 땐 즐거웠지만 그 순간 뿐이었다.

 일요일 아침 여섯시에 일어났고 일곱시에 모텔을 나와서 엄마한테 갔다. 신월동에서 강릉 가는 길에 약간만 돌아가면 오산 지나서 갈 수도 있고 그저 엄마가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엄마한테 물건이나 돈으로는 효도 하기가 힘드니 자주 오겠다고 하니 엄마가 알았다고 했다. 엄마가 싸준 조미김 차에 싣고 강릉으로 쌩하니 왔다. 좀 쉬다가 아버지 만나고 왔다. - 아버지 인지능력이 점점 안 좋아진다. 치맨데 좋아지는 게 있겠나. - 중간중간 여자들 공 치는 걸 봤고 - 18언더 3인 연장전 잼있었다. - 지금은 축구보러 와서 경기 시작 기다리면서 쓰는 중이다.

 엄마 집에서 세 끼를 먹었다. 금요일 저녁엔 삼계탕과 수박 - 삼계탕에 통마늘이 너무 많았지만 그냥 맛있게 먹었다. - 토요일 아침엔 김치찌개, 오늘 아침엔 제육볶음과 김치찌개를 먹었다. 엄마밥을 세 끼나 먹은 게 인상적이다. 엄마도 너무 좋아했다. 엄마가 호박을 볶아놔서 옛 추억을 생각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내가 기억도 못하는 시절에 제일 좋아하던 엄마 반찬이다. 엄마한테 새 자동차 보여주고 미용실에 마늘 가지러 가는 엄마차에 손 흔들고 차창 너머의 이별을 했다. 회사 형 증에 하누명애 어머니 돌아가시고 정신을 멋차리고 있다. 함께 산 세월이 길어서 어머니랑 각별하다. 나는 엄마랑 같에 산 시간보다 떨어져 산 시간이 더 길긴한데, 각별하긴 한 가지다. 모든 부모 자식이 그러하다. 엄마에 대해서 나열하자면 끝이 없고 엄마한테 잘해야지. 엄마한테 더 잘해야지. 다짐해본다.

 주말에 많은 일들이 다 잘됐는데, 원래 타던 차키를 잃어버린 걸 방금 알았네. 이런… 어디다 흘렸지? 아버지한테 갔다가 흘렸나? 갑자기 또 머리 아플라고 하네.

엄마집 앞 수변 공원 버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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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만나고 나서 올해 안에 영업종료 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드는 단골 커피숍에 와서 쓴다.

쓸쓸한 일 두 가지가 붙었네. 쓸쓸한 노래를 만들어야겠다. 언젠가 기분이 좋았던 일요일에는 일요일 아침같은 노래를 만들거라고 메모장에 적어뒀다. 그 노래는 아직인데, 쓸쓸한 곡은 금방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제목 - 0.1

오늘은 일요일
지금은 아침
계절은 5월
계절은 봄이 맞고
반짝반짝 하늘

0.1도 기분좋지 않다
0.1도 네 생각이 안난다
0.1도 0.1도
하나도 하나도


이렇게 가사 초안을 적어 본다


우울증은 좀 괜찮나? 회사 가기 싫은 건 여전하지만 이전만큼은 아니고 자다 깨는 횟수도 두 번 정도로 많이 즐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일이었을 수도 있지만 계속 우울한 거 보다 약의 힘으로 빨리 나아지는 게 마냥 기다리는 것 보다 낫다.

오늘은 아버지 컨디션이 괜찮았고 어쩔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 요양원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본인이 일등이고 잘하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본인이 요양원 어르신들 중에 제일 건강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아버지는 어쩔 수 없고 잘 하고 있다.

아버지한테 내일 또 온다고 했다. 면회가 너무 잦으면 요양원에서 별로 안 좋아할 거 같단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닌 걸 알기에 그렇다. 요양원 남자 직원 한 분이 아버지를 데리고 4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아버지가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시는데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라고 했다. 그 직원분이 얼마전에 감자전도 같이 먹으러 다녀왔단 사실을 알려줬다.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커피숍 사장 형이랑 담배 피우면서 잠깐 얘기 나눴다. - 소중한 시간이다 - 영업종료 없을거란 얘길 듣고 안심했다. - 그게 뭐라고 - 하지만 사람일은 어찌될 지 모든다. 내가 회사를 못 그만두는 걸 포함해서 - 잘 하고 있는 거다 -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늘 있는 것이다. '봉봉방앗간'이 어쩔 수 없이 계속 영업 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이 뭔가를 하는데 그게 잘 하고 있는 케이스들을 생각해 본다. 아버지 걱정을 안하는데 걱정이 되는 것괴 비슷한 건가?

두 잔 째의 커피를 마시는 중에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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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 저녁에 고구미 만나서 산 속에서 오붓하게 돼지고기 두 팩 구워 먹었다. 술은 꽤 먹었지만 과하지 않았고 베프랑 오랜만에 만나서 좋았다. 고구미는 대학에 이어서 농업학교도 내 후배가 됐다. 좋다. 마트에서 장보는 중에 항정살을 집어드는 나를 보면서 기름기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생각했다. 내가 연어랑 참치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튀김도 뺄 수 없구나. 고구미가 내가 올해 만든 '첫봄'이란 노래를 들어주고 좋다고 했고 한 번 더 불러 달라고 했다. 기분 좋아서 시도 두 개 읽었다. 이런 순간이 내게 힘을 준다.

 고구미는 토요일 아침 다섯 시에 피망 농사 지으러 평창으로 돌아가고 같은 시간에 인천에서 출발한 건쓰짱을 여덟 시에 만났다. 커피 마시고 몇 나디 나누고 점심 먹고 누워 있다가 저녁 일곱시에 프로 축구 봤다. 11,000명이 넘는 관중이 들었다. 빗속에. 건쓰짱은 축구장은 첨이라고 했고 응원에 들뜨는 모습을 보였다. 강원 서포터즈 응원에 들뜨는 정도면 수원 삼성 응원을 보면 기절할 판이다. 강원이 졌지만 경기는 잼있었다. 강원은 올해 폼이 좋은데 상무랑은 두 번 붙어서 두 번 다 졌네. 연패했다고 상대팀이 천적인건 아니다. 스포츠 경기란 그런 것이고 인생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친구들 사는 거 보면 나는 괜찮은 건가 싶기도 하다. 신경정신과에 우울증 약 타러 세 번째 들러서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그런 생각에 드네. 아버지 만나고 나면 우울한거랑 - 어제도 아버지 만났다. - 집이 없는 것 - 10억은 부자도 아니지만 10억 부자가 아닌 것 - 회사가기 싫은 것 제외하면 큰 스트레스는 없다. 아이가 없고 빚이 없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뭔가가 없기에 생기기도 하지만 뭔가가 없기에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내 스트레스 요인 중에 허리 통증과 어깨 통증 재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인데. 아프지 않다면, 통증이 없었다면..... 생각해 본다. 친구들은 자녀들의 학폭 연루, 아파트 대출금, 피곤한 직장생활, 아내와의 갈등 등의 문제가 있다. 몸 아픈건 우리 나이엔 공통이다.

 우울증의 해결책으로 연애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현이를 보면 맞는 것 같다. 이 친구는 카톡으로만 대화해봐도 원래보다 더 선량해졌고 예쁜말을 쓰는 사람이 됐다. - 원래도 나쁜 말을 쓰는 놈은 아니다. - 나는 기본적으로 아내랑 잘 지내니까 - 얼굴 본다고 설레는 건 아니지만 내 아내는 귀엽다 - 만일 내가 아내가 아닌 사람과 연애를 하면 우울증의 해결대신 배덕감에 정신병 수준의 희열을 느끼거나 죄책감에 미쳐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일 거라 생각한다.

 약발이 잘 드는지 최근 2주 동안 딱 한 번 울었다. 근데 자다 수시로 깨는 건 여전하다.

 머릿속이 맑게 살고 싶어서 조만간 담배를 끊으려고 한다. 담뱃갑에 그려진 10종류의 담배 경고 문구를 모으는 중인데, 간접흡연 피해 하나 남았다. 근데 그 한 갑이 잘 안 걸리네. 그 담배 한 갑을 마지막으로 금연 하고자 한다.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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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8 - 일기

그때그때 2024. 6. 18. 17:11

 산림기사 합격했다. 생각보다 기쁘지 않다. 너무 울적해서 뭐라도 해야지, 생각하다가 산림경영 기술 중급 기술자가 많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고, 나랑 같은 직렬 중에 중급 기술자인 형 한 명이 산림청 그만두고 엔지니어링 업체에 들어갔기에 나도 산림기사 갖고 싶었다. 열심히 했는데, 보람이 느껴지진 않는다. 우울증 때문이다. 어쨋든 기사를 땄기에 내 경력으로 중급 경영기술자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예전에 a형이 대형면허 따고 나서 인생살이가 대형면서 취득하는 것처럼 순조로우면 얼마나 좋아, 라고 했다. 인생살이가 산림기사 따는 정도로만 열심히 해도 순탄하면 얼마나 좋겠나, 나도 생각한다. 복잡무변이란 말이 갑자기 떠오르네.
 
 이런 저런 핑계로 술을 자주 마신다. 적당히 마셔야지 생각한다. 담뱃갑에 그려진 경고 문구가 10종류인데, 9종류의 빈 담뱃갑을 모았다. 10개 다 모으면 끊어야지 결심했다. 지난 금요일에 헌혈하러 갔는데, 최저 혈압이 자꾸만 자꾸만 높게 나와서 결국 헌혈 못했다. 살면서 헌혈 38번 했는데, 50번은 채우고 싶네.
 
 아내랑은 잘 지낸다. 내 우울증과 화를 잘 지켜봐 준다. 항상 고맙다.
 
 아버지는 잘 지내는데, 변비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누가 본인을 만나고 가도 10분 후면 잊어버리는 아버지, 똥오줌을 지리는 아버지를 통해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삶을 자꾸 생각하게 되고 결국 우울해진다. 아버지 생각하다가 혼자 울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빈도가 많이 줄었다. 약을 먹기 때문인가?
 
 오늘은 술 안 먹는 날이고 아내랑 외식이다. 막국수에 수육 먹을까 하다가 한국 사람은 국밥이기에 국밥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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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 개꿈들

그때그때 2024. 6. 15. 08:56

우울증 때문인지 불만 때문인지, 올해 개꿈을 많이 꾼다. 얼마전 바지에 똥묻은 꿈을 꿨을 때 복권이 낙첨이었다. 꿈들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만 기록해둔다.

- 회사 사람들 + 학교 사람들하고 야유횐지 장례식장인지에서 술 먹다가 혼자 빠져나와서 학교에 갔다. (로또 꽝)

- 변산에 간 꿈 아이를 마저 안지 못하고 깸. (로또 꽝)

- s 선배가 나오고 아내도 있는 술자리에서 가방을 못찾다가 결국은 찾음.... (로또 꽝)

- 30억 훔쳤다가 나중에 잡히는 꿈. 잡힐 때 아내랑 같이 도주중이었음. (로또 꽝)

- a형이 b형 책상 닦으라고 나한테 시킴. b이 깨끗하게 닦으라고 새 칫솔을 내 줌. (로또 꽝)

- 엄마 동생 나 셋이 있는 집이 전쟁 같은 나면서 무너짐. 쪽창문을 열었다가 괴뢰군과 는 마주침. (로또 꽝)


이 꿈들이 다 이루지 못한 소망과 현실에 대한 불만족 때문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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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시에 잠들었다가 23시 30분에 한 번 깨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잠들었다가 3시 30분에 다시 일어났다. 어제도 최종적으론 4시 30분에 일어났다. 배가 고픈 건 아닌데, 정체를 알 수 없는 허기가 밀려와서 라면 반 개 - 마침 반 개가 있었음 - 끓여서 밥 말아먹었다. 먹고 나서도 여전히 허전한 감이 있어서 집에 마지막 남은 라면 하나 마저 끓여 먹고 설사가 날 것 같은 가벼운 복통을 느끼면서 키보다 두들기다가 똥 누고 와서 마저 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고 - 조상님들 고맙습니다. - 빨간날인 현충일이 있다.  - 조상님들 한 번 더 고맙습니다. 집에서 달리 할 것도 없기에 아내랑 아버지 만나러 갔다. 아버지 머리가 약간 길었는데, 긴 머리가 좀 더 안정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알아 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동생이 카톡으로 보내준 동생 아이들 동영상을 같이 보는데, 아버지가 좋아했다. 갑자기 영상통화가 생각나서 - 여태까지 이걸 생각 못한 내가 참 멍청하고 불효자다. - 동생에게 전화했더니 바로 받았다. 상대편에게 아버지 얼굴이 잘 보이도록 내가 전화기를 붙잡고 통화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동생 이름을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본인 아들인 건 바로 알았다. 그걸 알아챈 그 순간이 좋았다. 동생이 본인 큰 아이를 불러서 할아버지한테 인사 시켰다. 아버지가 그 아이가 본인 손주인 걸 알았다. 9살 조카가 약간 뻘쭘해 하길래 내가 아버지에게 '호연아' 불러 보세요, 라고 했다.

 - 호연아  - 네
 - 학교다녀?  - 네
 - 공부 잘해라  - 네
 - 나중에 놀러와 맛있는 거 사줄게 - 네

 별 내용도 없는 대화에 눈물이 터졌지만 곧 참았다. 내 반대편에 있던 아내도 울컥했다. 동생한테 아이가 둘인데, 큰 아이는 할머니 집에서 할아버지랑 놀았던 기억 때문에 할아버지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 동생은 아이에게 할아버지가 아프다고만 하고 치매라고 말을 안 했다. 9살한테는 치매가 조금 이른가? 아버지는 치매에 걸렸지만 늘 '애들' - 손주들 - 을 언급한다. fucking bloodline. 면회 중간 중간에 너무 좋다고 하면서 머리를 감싸는 아버지 모습을 기억해 둔다. 아버지 저희 오늘 또 만날거에요. 오늘도 손주랑 영상통화 해봐요.
 
 6일부터 강릉 단오제가 시작됐다. 바다 보러 강릉 오는 관광객들은 강릉에 이런 축제가 있네, 규모가 꽤 크네 생각하고 흘려 지나가는 이벤트지만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축제다. 단오제 기간 중에는 약간 흥청망청해도 괜찮은 분위기 같은 게 있다. 아버지 만난 기분을 상쇄하려고 낮부터 마셨다. 회사 형하고 한 잔 하고 들어와서 쉬다가 밤에는 친구 만나러 갔다가 친구 아내의 일족들도 함께 만났다. 엿장수가 엿을 사준 사람한테 마이크를 주고 노래를 시키는 이벤트가 있었다. 우리가 감자전 먹던 가게 입구에서 어린 친구가 노래를 불렀는데, 너무 잘 불러서 흥이 올랐다. 그 흥을 주체 못한 친구 아내가 노래하고 싶어해서 엿 사줬다. 친구 아내는 노래를 잘 못 불렀지만 친구가 쪼르르 달려나가서 옆에서 같이 부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런 걸 '부창부수'라고 한다. 어제 아내랑 코인 노래방에 갔는데, 아내가 좋아했다. '부창부수'까지는 아니지만 잘 놀았다. 아내가 노래방 가자고하면 -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함 - 따라나서야 겠다고 생각했다. 
 작년까지는 단오라고 하면 약간 들뜨는게 있었는데, 올해는 그런 게 없네. 씨름에도 퍼레이드에도 흥미가 생기질 않는다. 올해가 다 간 것 같은 기분을 1월 둘 째주랑, 2월 초에 이미 느꼈는데, 지금은 시간이 더디게 가는 느낌이다. 삶이 너무 다이나믹 하거나 너무 다이나믹 하지 않아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아니면 모든 걸 다 아버지 때문이라고 할까?
 
 다섯시가 되가네. 바다로 대표되는 도시에 살아도 찾아가지 않으면 바다를 못 보고 산다. 오늘은 바다 한 번 보고 와야겠다. 지금 출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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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에 서울가서 이혼하겠다는 친구랑 술 한 잔 했다. 모텔에 빈방이 없길래 밤 열 두시에 짐을 다 빼서 텅빈 아버지 집에 누웠다. 이불 없이 맨바닥에 잠들어서 그랬는지 약간의 한기를 느끼면서 새벽 4시에 깼다. 집을 나와서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첫 차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에 햄버거 세트를 먹는 남자가 인상적이었다. 첫 버스랑 첫 전철을 타고 엄마 집에 갔다. 술이 아직 덜 깼다. 엄마는 운동가려다가 거의 다 왔다는 나를 기다렸고 내 몰골을 보더니 씻고 좀 자라고 했다. 엄마 말을 잘 들어야지, 항상 생각하는 나는 바로 눕고 싶었지만 씻고 누웠다. 10시 30분에 잠에서 깼고 술에서도 깼다. 운동에서 돌아온 엄마가 같이 밥 먹자고 했다. 내가 올 것을 알았기에 김치찌개를 끓여뒀고 돼지고기도 양념에 재워뒀다. 고기를 약불에 볶고 싶었는데, 엄마가 강불에 볶으라 하기에 엄마 말대로 했다. 엄마랑 같이 먹으면 잘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맛있게 먹으려고 노력한다. 엄마가 오랜만에 둘이 밥 같이 먹으니 좋다고 해서 나도 좋았다. 오후 다섯시에는 오산 전통시장 구경 갔다가 줄 서서 먹는 집에서 운 좋게 줄 안서고 칼국수 먹었다. 마침 브레이크 타임이 끝난 시간에 아다리가 잘 맞았다. 이런 작은 행운을 엄마는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수맛은 평범했지만 엄마가 내 그릇에 면을 덜어준 순간이 좋았고 국물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엄마는 나에게 살을 좀 빼라고 하더니 밤에는 만 원짜리 옛날 통닭을 한 마리 시켜줬다. 그것도 잘 먹어야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서 열심히 먹었다. 이 이율배반이 사랑이다. 엄마랑 뭔가를 같이 먹는다는 행위가 이렇게나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엄마랑 아버지 얘기를 하다가 엄마가 내가 처음 듣는 얘기를 해줬다. 아버지가 공부는 잘했는데, 할아버지가 뭘 시키면 제대로 하는 게 없어서 할아버지한테 많이 혼났다고 한다.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보부상도 하고 농사도 지었으니 이문에 밝았을 것이고 어느정도 손재주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에 반해 아버지는 전형적인 문과생 타입이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 막걸리를 한 말씩(10리터겠지? 20리터 아니겠지?) 먹었다는 아버지 친구의 얘기도 전해들었다.

 어제는 평소에 안 먹는 아침을 엄마 앞이라 먹었다. 엄마 차 내가 운전해서 서울에 왔고, 엄마가 운전 차분하게 잘한다고 칭찬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엄마랑 올림픽대로를 탄 걸 기억해 둔다. 아버지 집주인과 며느리를 만나서 내가 준비해간 서류 주고 전세보증금 돌려받았다. 돈 3천 돌려받는 일이 이리도 번잡하고 힘들다. 내가 강릉에서 아버지 제적등본, 인감증명, 가족관계증명서, 부동산 거래 위임장을 챙겨갔다. 아버지랑 같이 주민센터가서 서류 떼는 일이 힘들었다. 주민센터 창구 앞 민원인 의자에 앉은 아버지가 똥을 지렸다, 자세하게 쓰고 싶진 않네.
 강릉 도착하자마자 엊그제 갔던 그 주민센터에 가서 아버지 요양원 전입신고 했다. 한숨 덜었다. 그러고 나서는 아버지 통장으로 들어온 전세 보증금 엄마한테 보냈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준비부터 결과까지 너무 짜증나고 힘들었다. 그래도 끝을 봤다. 현충일에는 또 아버지 만나러 가야지. 아버지가 내 이름을 얘기하지 않은 게 한 달 넘어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내가 누구냐' 고 묻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내 이름을 묻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서인가? 생각이 너무 나갔다.

 패닉 노래 중에 '정류장' 이라고 있는데 가사 속의 그대가 '엄마'다. 그댈 안고서 그냥 눈물만 흐르고 자꾸 눈물이 흐르고 이대로 영원히 있을수만 있다면, 하는 그 노래를 요즘 많이 듣고 자주 울컥한다.
 
1박 2일 동안 엄마랑 보낸 시간과 45세에 엄마말 잘 듣는 아이가 된 일이 좋았단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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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집 전세계약서에 임차인은 아버지고 공동명의인이 엄마다. 둘은 이혼했기 때문에 남이다. 엄마가 아버지 방 빼고 전세보증금 돌려 받으려고 하는데, 집주인이 계약서가 이러하므로 아버지가 직접 오던지 내가 위임장 써서 오던지 해야 진행하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엄마한테 들었다. 돈도 아버지랑 엄마한테 반씩 나눠서 준다고 한다. 아버지 전세보증금은 애초에 엄마돈이다. 자기돈 돌려받기가 힘드네. 암튼 그래서 서울간다.
 아버지 집 관련해서 추가로 가스요금 자동이체 해지도 해야하고 요양원으로 전입신고도 해야 한다. 서울에서 강릉 요양원으로 전입신고해도 기초연금은 계속 나오는지도 알아봐야 한다. 계속 신경써야 된다. 답답하네.
 
 회사에선 수의계약이나 공개입찰이냐 문제로 시끄럽다. 우리쪽은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는지 눈치 봐가면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설계하고 추진계획 다 세워놓은 사업을 3주째 스톱해두고 있다. 답답하네.
 
 산림기사 시험 결과는  6월 18일에 알 수 있다. 날짜가 정확하니 아버지 문제나 회사 문제보다는 답답함이 덜하지만 아직 20일이나 더 기다려야 된다. 답답하네.
 
 어제 지금 회사 내 첫 번째 사수랑 통화했다. 이 친구 이후론 사수가 없다. 좀 울적하다 했더니 상담도 받고 약 처방도 받아보라며 걱정하는 문자를 보냈다. 진짜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걱정해줘서 고마웠다. 안그래도 월요일에 병원에 다녀왔고 레피졸 처방 받았다.
 
 인생은 결정되지 않은 것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내가 결정하지 못하거나 - 이런 경우는 별로 없네. - 어떤 이유로 결정되지 않고 있는 것들을 이렇게 견디지 못해서야 살 수가 있겠나. 식욕이 있고 잠도 잘 잔다. 근데 이렇게 우울할 수가 있나?  몇 달째 욕과 술로 산다. 모든 것을 다 그만두고 싶다. 약을 잘 먹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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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회사 그만두면 안되는데 생각하면서 회사 그만두는 꿈을 반복적으로 꿨다. 그러니까 꿈 속에서도 회사 그만두는 생각을 했다. 꿈 속에서 뭔가 생각한 게 오랜만이다. 지금 회사에 큰 불만이 있는건 아닌데, 출근하기가 너무 싫고 하루하루가 지겹다.

 어제는 아내랑 같이 아버지 얼굴 보고 왔다. 아버지는 요양원에 간 이후로 가장 멍한 상태였다. 말 상대가 없는 것이 아버지가 뭔가를 잊는 증상을 더  빠르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 이름을 말하진 않았지만 '아들'이라고 했다. 아버지 얼굴 보니 좋았다.

 스트레스 원인 1위가 아버지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가면 좀 괜찮을까 싶었는데 그렇지 않다. 일주일에 한 번 아버지 만나고 돌아나오면 가슴속이 어두워진다. 그게 아버지 탓은 아니다. 스트레스 원인 2위는 기후 파괴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는 거고 3위는 하루하루 지겨운 직장 생활이다. 아내랑은 잘 지낸다. 지난 주말도 아내가 없었으면 망했을 것 같다. 묻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발 얹어도 되는지 물어보고 아내가 내 배 위에 본인 발을 얹고 같이 누워있었던 일이 특별히 좋았다. 병원에 빨리 가야하는데 회사일이 좀 바쁘네.

 토요일에는 s누나를 오랜만에 만나서 같이 돌아다니고 점심도 먹었다. 누나랑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러고나면 조금 후련해지거나 괜찮아지는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누나에게 말했다. 누나가 내 집필계획에 대해서 응원해줬다. 고맙습니다. 누나가 처음 먹어보는 꾹저구탕을 맛있게 먹어서 보기에 좋았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정답 보내놓고 누나 만나서 차 타고 이동하는 중에 상품 당첨됐길래 누나한테 가지라고 했다. 전국 방송 라디오에서 상품 당첨되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한다. 병원에 빨리 가야된다. 

 로또 복권은 또 꽝이었지만 언젠가 될거라 생각한다. 이런 기본적인 낙관이 있는 인간이고 삶인데 왜 이렇게 우울할까? 월요일 아침부터 울적해서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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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생일이 음력 3월 25일이란 건 알고 있는데, 깜빡 잊고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못하고 지나갔다. 엄마랑 이틀에 한 번 꼴로 통화하긴 하는데, 생일 축하를 못한 건 내 불찰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 전화했는데,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았다. 운동중인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엄마한테 걸려온 전화를 받고서야 '맞다. 엄마 오늘 건강검진 받는다 했는데.' 떠올렸다. 불효자가 된 기분이다.
 
 지난 4일에 엄마랑 JJ 삼촌이 아버지 보러 강릉 왔다갔다. 어린이날 연휴의 첫날, 경기도 오산에서 강릉까지 자동차로 7시간 걸렸다. 엄마가 일찍 도착할 줄 알고 외출 시작 시간을 11시로 잡았기에 아버지랑 나랑 둘이 밥 먹었다. 아버지 서울 떠나던 날 청량리역에서 냉면 같이 먹고 나서 거의 100일만이었다. 생갈비를 먹다가 냉면을 시켰다. 어쩌다보니 또 냉면을 먹었네. - 아버지는 냉면을 포함해서 면을 좋아한다. - 아버지는 젖가락질 조금 하다가 잘 안되니까 숟가락으로 냉면을 먹었다. 숟가락으로 먹는데도 면이랑 국물이 자꾸 테이블 위로 흐른다. 살짝 안타까웠지만 아버지는 맛있게 잘 먹었다. 오늘 기준으로 아버지 요양원 입소한 지 100일이 넘었다. 100일이란 시간이 아버지가 흘린 냉면 국물처럼 흘렀다. 100일이란 시간동안 아버지는 더 많은 일들을 잊었고 좀 더 잘 잊는 사람이 됐다.
 식사 전후로 아버지랑 요양원 바로 근처에 있는 커피숍 주차장에 있는 커다란 벚나무 그늘에 앉아서 볕도 쬐고 이런저런 얘기 했던 걸 기억해 둔다. 아내가 밭에 갔다가 주차장으로 차를 끌고 왔고 텅빈 주차장에서 주차를 어떻게 할까 머뭇거렸고 나는 차도 별로 없으니 주차 신경쓰지 말고 그냥 내리라고 했고 아내가 '아버님' 이라고 했을 때, 아버지가 반가워했던 그 순간이 그림처럼 좋았다.
 엄마랑 JJ 삼촌은 요양원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가 정말 반가워 했다. 엄마도 반가워했고 엄마를 반가워한만큼 삼촌도 반가워했다. JJ 삼촌은 방위 제대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와서 우리집에 살기 시작했고 - 첫 직장을 아버지가 잡아 줌 -  내 동생이 결혼한 후에도 아버지랑 둘이 한 집에 살았기에 정말 오래 같은 집에 산 형제다. 그래서인지 거의 모든 이름을 잊은 아버지가 형제들 중에 JJ 삼촌 이름은 먼저 언급하기도 한다. 싫든 좋든 정이다. 
 아버지랑 헤어지고 엄마 삼촌 아내 나 이렇게 넷이서 감자 옹심이 먹고 헤어졌다. 삼촌한테 '네가 고생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날 밤에는 가정의 달에 내가 해야할 일을 다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사실은 엄마 생일도 깜빡 잊는 불효자다.
 
 우울감이 계속 깊다. 병원에 약 타러 가려고 하는데, 요즘 회사 일이 바빠서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생활에 치인다,는 말을 생각한다. 어린이날이 생일인 형에게 생일 다음날  '형 생활에 치여서 생일 축하 연락도 못했네. 축하하고 나이 먹을수록 친구는 적은 게 좋다고 정약용 선생이 말했대.' 라고 했더니 엄지척! 했다는 답장이 왔다. 그 답장이 고마웠다. 이런 사소한 기쁨과 항상 옆에 있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내 덕분에 하루하루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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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아버지 보러 다녀왔다.


 서울 가는 아내 강릉역에 내려주고 단골 커피집에서 모닝세트 먹으면서 요양원에 전화했다. '이따 두 시 쯤 갈게요.'
 집에 와서 멍하게 있다가 시간이 두 시 반이 된 걸 알았다. 이렇게 아버지를 잊게 되는구나 점점 불효자가 되는구나, 생각하면서 헐레벌떡 아버지한테 갔다. 아버지에게 가는데 장인어른한테 전화와서 요양원 도착할때까지 통화했다. 하나의 나 두 개의 아버지.

 아버지가 생활하는 4층에서 아버지 만난 게 두 번째다. 아버지 방에 가보니 아버지는 세상 편안한 얼굴로 자고 있었다. '아버지' 하고 작게 불러서 아버지를 깨웠다.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드리고 방 밖으로 나와서 방문 나오자마자 있는 응접실(?)에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횡설수설했고 나는 아버지를 마주보고 앉았다가 옆에 앉았다가 하면서 같이 셀카도 찍고 방금 찍은 사진도 같이 봤다. 아버지는 계속 횡설수설하고 나는 계속 아버지 잘하고 있다고 얘기하는 반복이었다. 그 반복이 지금 나와 아버지의 관계다.
 

  헤어질 시간을 귀신같이 아는 아버지가 이제 가라고 하길래 소파에 앉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안았다. 내가 '아이고 아버지' 하면서 아버지 등을 살짝 두드렸는데 아버지도 내 등을 두드리면서 '어, 어일우' 하고 그날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아버지, 내 이름 안 잊어버렸네' 했더니 아버지가 '너는 안 잊어버리지' 했다.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를 깨웠을 때 '아이고, 네가 왔구나' 라고 했다. 아마 그때부터 무의식적으로 내 이름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헤어질때는 덤덤했는데 집에 와서 치킨 시켜서 혼자 맥주 마시다가 많이 울었다.

 서울에서 아버지 만나고 헤어질 때 아버지가 나에게 '수고했다'단 말을 자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다. C8. 어제 이 생각을 하면서 또 울었다.

 아내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나랑 아내랑 같이 아버지 보러가면 아버지가 나만 알아보고 자기는 누군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가 내 이름은 잊어도 좋지만 내가 본인 아이란 걸 오랫동안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버지, 돌아오는 일요일에 또 보러 갈게요. 제 이름 또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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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요양원에 간지 세 달 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아버지 보러 갔다. 요양원은 1층에 사무실이 있고 3층, 4층을 생활관 및 프로그램실로 쓴다. 아버지는 4층에서 생활한다. 지난 일요일엔 1층에 있는 면회공간이 춥다고 4층에서 아버지 만나라길래 아버지의 공간에 처음 가봤다. 아버지가 위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라면서 좋아했다. 아버지는 본인 침대가 여기라며 방 들어가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있는 침대를 가리켰다. 4인 1실인 아버지 방 티비에는 ebs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학교 선배가 요양원 처음 차렸을 때 죽음을 너무 자주 접해서 스트레스가 많다고 했었는데, 아버지 있는 요양원도 40여명 어르신들 중에 우리 아버지처럼 몸을 잘 가누는 입소자는 거의 없는 분위기였다. 아버지 만날때마다 '이 양반 심심하구나' 생각이 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공간 전체에 삶이 꺼져있는 냄새가 흐르고 있었다.

아버지 요양원에 입소해서 큰 스트레스는 덜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 만나고 나면 늘 마음이 가라 앉는 이유가 이 죽음의 냄새에 있었나? 생각한다.

세계 인구는 폭증하고 있고 노인 인구도 폭증하고 있고 과인구는 지구에 해가 될 뿐이니 특정 조건에서 본인이 원하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세상이 올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본다. 아내가 가끔 어떻게 죽지?를 묻기에 이런 생각을 하나보다.

산림 기사 따려고 공부하고 있다. 2015년부터 산에서 일했고 16년에 산림청에 입사했다. 울적한 마음에 자격증 하나 갖고 싶어서 공부 시작했는데, 어렵다. 1차 cbt는 가볍게 붙었는데 2차 필답 준비가 어렵다. 마음가짐의 문제다. 내 삶에 산림기사가 절박하지 않기에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절박하게 외워지지 않는다. 한 번에 합격하고 싶고 산림기사를 따면 산림경영기술자 초급을 바로 받을 수 있으니까 그 마음으로 열심히는 한다. 27일 2차 필답 시험인데 조금 더 전력을 다해보려 한다.

아내랑은 잘 지낸다. 최근에 나랑 살아줘서 고맙단 생각을 많이하게 됐다. 나이 먹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렇다고 그 마음이 거짓은 아니다.

아는 선생님이 포남동에 7080라이브를 인수했다기에 갔었다. 사장님이 나를 반가워 해주셔서 기분 좋았다. 나중에 주문진에 사는 선장님 한 명이 손님으로 왔는데, 작년에 무슨 축제 노래자랑에서 1등 하셨던 분이라고 했다. 사장님이 나한테 노래 하라고 해서 한 곡 했더니 잘한다고 또 하라고 해서 다섯 곡을 연달아 불렀다. 이 선장님이 내 노래를 듣고 삘 받아서 노래 하시는 중에 가게를 나왔다. 7080 라이브에서 노래 배틀 할 뻔한 인생이라니. 웃음이 나왔다.

조카들보러 구리에 한 번 다녀올까 싶다. 이런 생각 하는게 처음이고 최근이다. 나이 먹어서 그렇다. 동생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엄마가 하지 말라는 거 다 하게 해주는 나쁜 삼촌 노릇 좀 하고 싶다. 애들한테 그렇게 기억되고 싶다.


전반적으로 울적하지만 그래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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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춘분 지났고 내 생일은 추분무렵이니까 세상에 태어나 45년 6개월을 살았다. 마흔 다섯 살이면 중년인가? 생각해본다. 내 생각엔 40대부터 50대까지 중년이다. 60대가 중년인지는 그 나이가 되면 생각하자.

 어깨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정말 다행이다. 완전히 끝난것은 아니고 내 몸 안에 잠재되어 있다. 그 점이 짜증과 두려움을 유발한다. 요즘은 다시 허리가 아프려고 한다. 2년 전에 처음 찾아왔던 허리 통증도 두 달 정도 지나니까 사라졌지만 내 몸 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구나. 다리까지는 저리지 않으니 다행이다. 어깨 아픈 이후로 운동을 안했다. 운동을 안 하는 게 좋을지, 적당히 하는게 좋을지, 그 적당히는 얼만큼 인지, 모르겠다.

 심각하게 우울하진 않은데, 계속 침체된 상태다. 출근하기 싫지만 출근을 해야하고 퇴근 후에는 누워서 유튜브로 베토벤 들으면서 만화 본다. 가끔 기타를 손에 잡지만 금방 내려놓게 된다. 이게 위기의 중년이다. - 진짜 위기의 중년들이 웃겠다. - 나아지겠지. 빨리 벗어나고 싶다.   

 아내가 내 옆에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 독신 중년이야 말로 진짜 위기의 중년이 아닐까?

 두 번 앞의 일요일에 친구를 만났고 지난주 금요일에 다른 친구를 만났다. 친구 만나도 술 마시는 일 뿐이지만 그것도 약간의 위로가 됐다.

 커피랑 담배 중에 하나를 끊고자 하는 생각이 계속 있다.

 

 2주전에는 동생이 아버지 보러 왔다. 아버지 주려고 가족들 사진첩을 가져왔는데, 아버지는 어느 사진에도 집중을 못했다. 아버지는 한 번도 동생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동생이 약간 충격 받았다. 그렇지만 그 애가 본인 아들인 건 알아봤고 애들이라고 하면서 손주들 얘기를 했다. 엊그제는 아내랑 아버지 보고 왔다. 아버지는 쉴새 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핵심은 아내가 보고 싶다, 추석 성묘 행사 때 사람들 보고 싶다, 본인은 잘 지낸다, 이 세 가지다. 아버지 손을 잡고 아버지 얘기를 듣는다.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추론하면서 듣는다. 본인 얘기가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 아버지는 이제 그만 가라는 얘기를 한다. 요양원에서 면회 시간은 30~40분 정도가 좋다, 고 했는데 아버지는 그 시간을 귀신같이 안다.

 아버지 제가 갈 수 있는 한 계속 보러 갈테니까 계속 지금처럼 잘 지내세요. 추석 때는 같이 바깥 구경도 하자구요.

 아버지와 나, 아직까지는 서로의 삶에 어떤 원동력이 되는 상태다. 생각해보니까 그건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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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요양원에 간지 두 달 가까이 됐다. 일요일마다 아버지 만나러 갔는데, 한 번 빼고는 늘 아내가 함께 갔다. 고맙고도 고맙다. 아버지 머릿속에는 마누라 - 평소에 아버지가 잘 안 쓰던 표현인데 치매 이후에 많이 씀 - 한 번 봤으면 좋겠다는 것과 작년과 재작년 추석 성묘 때 일가친척들 많이 모였던 기억, 할아버지 제사 때 손주들 - 아버지는 그냥 애들이라 함 - 봤던 기억이 깊게 남아있다. 아버지는 날 만날때마다 마누라, 애들(손주들), 강릉에 다 모인것(성묘) 얘기를 한다. 삶에 대한 희망이나 열망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어떤 기억이 있다는 것이 아무 기억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엄마한테 아버지가 엄마 보고 싶어한다 했더니 버스 타고 당일치기로 강릉 한 번 오겠다고 했다. 요즘 엄마는 홍콩 h지수 연계 ELS 때문에 마음에 큰 데미지를 입었다. 까먹은 돈은 그냥 돈이지만 문제는 심리적 타격을 잘 극복하는 일인데, 그 극복이 주위에서 말해주기는 쉬워도 당사자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심적 타격이 크겠구나, 생각해주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 것만해도 다행이다. 엄마 주위에는 이모들이 있고 내가 있다. 엄마는 요즘 집안일 알바를 가는 날이 아니면 그냥 누워있다. 엄마 힘내요.

 회사 동료 어머님이 곧 돌아가실 지경이 됐다. 지난주에 만난 의사가 네 달을 얘기했다고 한다. 이 형(회사 동료)은 시골 동네에서 유명한 효자다. 이 형이 어제 사무실에 며칠만에 출근해서 처음으로 한 얘기가 본인이 의지할 곳이 엄마랑 아내랑 두 갠데 이제 하나 밖에 없어서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매우 공감했다. 내가 의지하는 것도 아내랑 엄마 두 사람이다.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그들이 심적으로 무너지는 일은 막아야 겠구나 생각했다. 

 아버지가 의지할 곳은 나인가 요양보호사 선생님인가 둘 다인가?

 출근길에 라디오 뉴스에서 20회째를 맞는 횡성한우 축제 소식을 들었다. 작년에 횡성한우 축제 한다는 소식 들은 게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또 같은 축제를 한다고 한다. 이것이 나이 들면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일이다. 지난해에 내 삶에 아무일도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흘러간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흘러간 것도 아니다. 나이 먹을수록 지나간 시간들을 압축하거나 압축해서 잊는 폭이 커지는 느낌이다. 새해가 시작하고 일주일만 지나도 '올해가 다 갔구나' 생각하는데, 올해의 남은 시간들이 큰 폭으로 압축될 것을 알기 때문인 것 같다.

 모든 생명이 시간을 다르게 인식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어깨 통증은 많이 나았다. 4주 연속으로 주말에 서울 가서 주사 맞았다. 선생님이 2주 후에 예약 잡아 주면서 안 아프면 그만 오라고 했다. 2월 초에 아프기 시작해서 너무 아파서 아무 것도 못한 게 열흘 정도고 현재는 일상 생활은 가능하다. 다만 팔에 약간의 통증이 남아 있다. 2주 후에는 그 약간의 통증도 사라지길 바란다. 나이 먹으면 다 아프기 시작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건성으로만 넘겨 듣던 그 말을 실제로 아픈 몸에 새기는 게 나이 먹는 일인가 보다. 

 회사 다니는 일이 정말 지겨워서 정말정말 그만두고 싶은데, 내 나이에 이 지역에 이 정도 돈을 받는 이만한 직장이 없기 때문에 못 그만두고 있다. 회사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웃으면서 이런 얘기를 나누면서 나도 세상에 흔한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 내가 남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뻔한 얘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게 심적 안정감을 줄 때가 있다. 이런 감정이 나이 먹을 수록 더 강하게 다가온다. 어렸을 때는 튀고 싶었는데 말이지.

 건강 문제로 -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 담배랑 커피 중에 하나를 끊어볼까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도 나이 들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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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대림동에 있는 ‘이상철 통증의학과’에 오늘까지 두 번 다녀왔다. 지난주까지는 팔을 잘라내고 싶을 정도로 아팠는데 - 의술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전에는 대상포진 걸리면 너무 아파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함. - 지금은 아픔이 많이 가셨기에 이렇게 일기도 쓴다. 아버지가 강릉으로 왔기 때문에 당분간 서울 갈 일 없을줄 알았는데, 다음주까지 3주말 연속으로 서울 가게 됐네. 병원이 지하철역에서 멀리 있어서 다니기가 피곤하다. 그래도 아픈것 보다는 낫다. 어깨 통증이라고 생각했던건 실제로는 팔 통증이었고 명절 전에 우연히 만난 아저씨에게 이 병원 얘기 못 들었으면 강릉에서 병원만 계속 옮겨다닐 뻔 했다. 서울로 가기 전에 강릉에서 한의원 두 곳 포함해서 병원 네 군데를 들렀는데, 어느곳에서도 나의 팔 통증을 경감시키지 못했다. 강릉에 있는 의사 선생님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고 유명한 병원이 괜히 유명한 건 아니구나, 지방에 사는 어르신들이 많이 아프면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부터 찾는 게 괜히 그런건 아니구나, 를 이번에 몸으로 깨달았다. 8시 예약이고 7시 30분에 병원 도착했는데, 내가 네 번째였다. 내 앞에 오신 아주머니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한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지난주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부산에 실업자가 너무 많고 경기가 안 좋다는 소식을 치료실 칸막이 너머로 들려주신 그 아주머니 쾌차하시길.

 너무 아플때는 아무 생각도 못하다가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하니까 몇 가지 생각을 했다.

 - 건강은 술값보다 중요하다.

 - 감옥 독방이나 보호자 하나 없는 병실에서 본인이 죽을 것을 알고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일을 생각해봤다. 가장 최근에는 러시아에서 푸틴의 정적이라는 나발니란 사람이 그렇게 죽었다. 일정 때 감옥에서 쓸쓸히 죽었을 독립 투사들도 생각해본다. 독립 투사들이야 말로 못 먹고 얻어 맞고 고문당하다가 기력 떨어져서 죽는 괴로움의 결정체다. 진심으로 존경한다.

 - 내 인생에 행복했던 일이 막 떠오르진 않지만 소소한 순간들에 즐거움이 있었고 불행이 생을 휩쓸고 가진 않았다. 어깨 통증도 지나갈 일일 뿐이다.

 - 샤워실에 꼭 있었으면 하고 소망하는 해바라기 샤워기 같이 단순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사소하고 간절한 열망이 오늘을 살아가게 한다. 나의 해바라기 샤워기는 무엇일까?

 - 봄이 온다고 말해주는 아내가 있으니 나는 외롭지 않구나. 너는 나의 신선한 이마다.

 강릉에는 눈이 많이 왔다. 눈 때문에 이틀동안 출근을 못했다. 정확하게는 수요일에는 출근 못하고 목요일에는 일 때문에 억지로 출근했다가 - 차가 눈에 미끄러져서 1시간 30분 걸림 - 급한일만 처리하고 미끄러지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해발 700미터에 있는 우리 사무실은 눈이 1미터 20센티미터 쌓여있다. 팔은 쉬지 않고 아픈데, 눈도 쉬지 않고 내리고 덕분에 강제로 휴가를 쓰게 되니까 많이 우울했다. 그 와중에 수요일 아침에는 눈길을 운전해서 산림기사 1차 시험을 보러갔다. - 합격했다. - 그렇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는 내 인생에서 아직 포기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자동차 보험, 아버지 일, 어깨 치료, 출근같이 귀찮은 일들 다 내팽개치고 매일 술이나 마시면서 망가진 중년으로 살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무너지지 말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내 안에서 팔 통증과 함께 싸우고 있다.

 오늘 진료 마치고 오산에 엄마한테 들렀다. 엄마는 지난해 연말부터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홍콩 h지수 연계 ELS에 노후자금이라 생각한 전재산을 투자했다가 쫄딱 망했다. 뉴스에 나오는 불행이 바로 내 것이거나 내 옆에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엄마가 차려준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엄마 앞에서는 맛 없어도 맛있게 먹는게 내 철칙이다. 김치찌개는 맛이 있었다. 미스 트롯 재방송 보면서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대출 받아서 투자한 사람들이나 전세사기 당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무너지지 말고 너무 우울하지도 말라고 했다. 그게 실제로는 나한테 하는 얘기다. 엄마가 오산터미널까지 태워줬다. 차에서 내려서 손을 흔들면서 ‘안녕 내 사랑’ 두 번 말했다. 들으라고 말했으니까 엄마가 들었을거다. 엄마도 나도 서로를 봐서 힘이 됐다.

 내가 얼마나 아픈지는 나만 알고 나 아픈거 걱정해주는 사람은 아내랑 엄마 뿐이다. 빨리 낫고 싶네.

 요새 글이 잘 안된다. 독서 부족인가?

사무실 근처. 3년째 한 자리를 찍고 있다. 4년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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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깨가 아프다. 지난주 월요일에 정형외과에 들렀다. 엑스레이상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어깨나 너무 아프다. 화요일엔 작년에 허리 아플 때 들렀던 한의원에 갔다. 목 디스크가 급하게 온 것 같다면서 당장 치료가 불가능하니 통증의학과로 가라고 했다. 한의사 선생님의 친구가 하는 통증의학과에 갔다.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그런데 어깨가 점점 더 아프다. 수요일 목요일에 물리치료 받았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병원에 가는데, 어깨를 부여잡고 10번 이상 쉬어야 했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주머니도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 기사 선생님도 괜찮은지 안타깝게 물어봤다. 팔을 감싸쥐고 숙인 고개를 들 수가 없어서 병원 간호사 선생님들 얼굴을 오늘에서야 제대로 봤다. 어깨부터 팔뚝까지 끊어질 듯 아프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아프다. 명절 내내 아프다가 어제 약간 괜찮아졌지만 진짜 약간 괜찮아졌을 뿐이다. 어깨를 주무르면 괜찮을까 싶어서 세라잼 안마기 체험장에 가서 안마기에 누웠는데 안마기가 주물럭 거릴때마다 너무 아팠다. 오늘 2차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사무실까지 30분 운전해서 오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 사무실 동료가 강력한 진통제를 줘서 한 알 먹었다. 지금은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을 정도는 되는데, 이 호전됨이 진통제 때문인지, 주사 때문인지, 단순히 시간이 흘렀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토요일 아침 여덟시에 서울에 있는 통증의학과 예약했다. 강릉에서 1년간 병원을 다녀도 계속 아프던 어깨가 그 병원에 한 번 다녀오고 다 나았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렇게 아픈데, 왜 아픈지 원인은 알고 싶기 때문이다. 

 명절 지났으니까 이제 정월이다. 양력으로 2월 13일이니까 아직 연초라고 할 수 있다. 연초부터 아픈게 정초까지 아프네. 정초라고 하면 음력이 되고 연초라고 하면 양력이 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어제 살짝 덜 아픈김에 요양원 들러서 아버지 보고 왔다. 아버지의 횡설수설은 점점 심해지고 내가 먼저 이름 얘기 안하면 내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것 같지만 내가 본인 아들인 건 안다. 그리고 1주일 전에 봤을 때보다 요양원 생활에 더 적응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연휴 끝에 근무 중이던 영양사 선생님이 식사 잘 하시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안심이 됐다. 생의 마감만이 존재하는 공간인 노인 요양원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아버지, 별일 없으면 주말마다 만나러 갈게요.
 
 연휴 내내 나 때문에 신경 써 주고 아버지 만날 때도 같이 가준 아내에게 고맙다. 연휴 동안 둘이 밥 잘 챙겨 먹었다.

 나 아프다니까 엄마가 매일 전화해서 괜찮은지 물어본다. 고맙고 사랑한다. - 며칠 전에 전화 끝에 '안녕, 내 사랑' 이라고 했는데, 엄마가 그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네.

 장모님 장인어른도 딸의 신랑이 아프다고 하니 신경쓰는 전화를 주셨다. 고맙습니다. 사위를 직접적으로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걱정해주시는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걱정과 관심으로 산다. 나도 우리 아버지도 세상에 많은 사람들도. 그렇지만 내가 얼마나 아픈지는 나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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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서 없이 적어 본다.

 토요일에 아내 운전 연습을 겸해서 봉화에 있는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에 갔다. 정말 잘 생긴 암컷 호랑이를 봤다. 기분이 좋아졌다. 겨울 나무도 종류별로 많이 봤다. 춘양면에 방 잡고 읍내에 있는 분식집에서 라면 둘, 김밥 한 줄, 김치전 한 장(5,000원)까지 도합 16,000원 어치를 저녁을 먹었다. 너무나 맛있었다. 호랑이를 본 일까지 좋은 일이 연속으로 있었다. 로또는 이번주에도 꽝이었다. 오는길 가는길에 조수석에 앉아서 오른쪽 사이드미러 들여다보느라 많이 피곤했지만 아내의 운전이 많이 늘었다.

 어제 아버지 만나고 왔다. 1시간 가까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직원분이 면회는 30분 정도만 하면 좋겠다고 했다. 야속하단 마음과 다행이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계속 지내야 한다는 사실에 적응중이다. 명절에 아버지를 데리고 엄마한테 같이 갈지 말지 계속 고민중이었는데, 아버지는 가고 싶은 눈치라 내가 힘들어도 같이 가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진다.

 그리고 나는 한 달 째 어깨가 아프다. 어제는 한 잔 하고 술 취해서 잠들었는데도 어깨가 아파서 자다 깼다. 아내가 나를 안타깝게 지켜봐줬다. 사랑이다. 내가 아버지 얼굴 보러 간 걸 포함해서 아픈 사람 지켜봐 주는 게 사랑이다.

 오늘 아침에 폭설 때문에 출근하다가 차를 돌려서 집으로 왔다. 돌아온 김에 병원에 들렀다. 의사 선생님이 엑스레이 상으로는 어깨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다행이다. 진통제와 근육이완제(+위장약)를 처방 받았다. 서서히 재활 하면 좋아지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사무실에 처리할 일이 있어서 2시에 출근하긴 했는데, 어떻게 돌아갈지 막막하다. 35번 국도 타고 삽당령 정상을 오르는데, 내려오는 제설차 4대를 마주쳤고 미처 눈을 다 치우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눈을 뚫고 출근을 했나, 후회막심이다. 

 몸이 아프니까 자연스럽게 <위기의 중년> 이 떠올랐다. 자포자기 하듯 어깨 치료도 게을리하고 매일 적당히 지내면서 저녁엔 술 마시고 운동도 안 하다보면 <위기의 중년>이 아니라 만성적으로 우울을 끼고 있는 <체념한 중년> <망가진 중년>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되는 일이 너무도 쉽겠구나 생각했다. 나를 생각해서도 지금 상태로 무너지면 안되겠지만 아내를 생각하면 더욱더 <건강한 중년>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최소한 노력하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어제 오랜만에 친구 만나서 한 잔 했다. 친구는 아버지 가업을 이어서 농업으로 새출발을 하려고 한다. 세상은 홀로 살아가는 곳이지만 기댈 곳이 있고 그 기댈 곳이 가족이라면 기대는 것이 좋다, 는 게 내 평소 생각이다. 친구한테 그 얘기를 해줬다. 친구는 중년은 다 위기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친구가 아버지한테 농사 잘 배워서 돈도 적당히 많이 벌고 나한테 맛있는 것 많이 사주면 좋겠다.

 이 기록을 남기는 동안 계속 어깨가 아프다. 저녁에 약 한 봉지 더 먹어야겠다. 근데 이 폭설속에 오늘 집에 내려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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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엄마가 아버지 보고 갔다. 혼자 살때보다 말끔해진 아버지가 ‘여기가 서울 학교보다 좋다.’ 고 했다고 한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그 얘기를 듣고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서울 데이케어센터보다 지금 요양원이 더 좋다는 얘기다. 또 아버지 행색이 - 혈색과 차림새 - 좋아서 당연히 펑펑 울 줄 알았던 엄마가 울지도 않았다니 좋은 일이다.

 수요일에 요양원 간호 선생님한테 전화를 받았다. 요양원에서 6일간 관찰한 아버지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면서 <불결행위> 란 말을 꺼내서 그 단어 때문에 충격 받았다. 아내 얘기로는 불결행위가 공식 용어라고 한다. 암튼 그 내용은 오줌을 아무데나 눈다는 것이었다. 이미 혼자 살때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한동안은 그러지 않았기에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 때문에 그런가, 생각했다. 자는 곳도 바뀌고 전화기도 없어지고 주위 사람들도 익숙하지 않을테니 당연한가, 생각했다. 그리고 걱정하고 걱정하고 걱정했다.

 어제는 엄마랑 작은 아버지 두 명이 아버지 얼굴을 봤다. 나는 그들을 요양원까지 안내만 해주고 아버지에게 얼굴을 보이진 않았다. 오늘은 나랑 아내가 아버지 만나러 갔다. 엄마에게 들은대로 아버지는 괜찮아 보였다. 혈색이 좋았고 옷도 말끔하게 입고 있었고 면도도 깔끔했다. 앞으로는 팬티에 똥을 묻히고 있을 일도 없으리라. 원체 까다롭지 않은 양반이라 요양원 생활에 금방 적응을 한 것 같다. 아버지는 강원도가 좋고 강원도 사람들이 착하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횡설수설은 숙명이지만 본인이 고향에 와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치매가 끝까지 가진 않은 것이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아버지는 끝난 사람이 됐지만 요양원에는 요양원에서의 삶이 있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고 그 삶은 아버지가 ’그래도 살아야지‘란 말을 자주 한 것과 이어진다.

 오늘 아버지랑 30분 정도 같이 있었다. 앞으로도 시간 날 때마다 아버지 보러 가야겠다. 앞으로도 같이 가주겠다는 아내의 마음이 참 고맙다. 아버지를 만나는 횟수가 만나는 시간보다 중요하단 생각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계속되는 삶에 내가 있어야겠다. 집에서 요양원까지 걸어서 5분거리다. 직장도 요양원도 가까운 게 좋다.

 걱정했는데 아버지 잘 지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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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냈다. 아버지는 2020년 여름에 이미 머릿속이 까마귀 고기를 먹은 상태였고 2021년 초에 정식으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오늘이 오기까지 엄마랑 나에게 긴 여정이었다.

수요일에 퇴근하고 강릉발 청량리행 기차를 탔다. 목요일에 청량리발 강릉행 기차를 아버지랑 같이 탔다. 힘들단 말이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힘들다. 아버지는 기차에서 조금도 눈을 감제 않았고 양평 조금 지나서 도시 이미지가 사라지자마자 강릉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 냄새 타령을 했다. - 만종역 근처에서도 평창역 근처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아버지 나이 73세, 23년을 고향인 강릉에서 보내고 나머지 50년을 서울에서 살았어도 고향이 좋은건가? 생각했다. 오늘 오전에 아버지 태어난 동네까지 드라이브를 했다. 아버지는 본인이 거기서 태어나서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것도 모른다. 그래도 <강릉> 이라는 단어 한 마디가 주는 포근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어린시절을 보낸 곳은 몰랐지만 본인이 다녔던 초등학교는 알아봤다. 아직 치매가 끝까지 가진 않았다.

먼저 서울 왔을 때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일들을 했다. 통장 하나랑 신용카드를 없앴다. 아버지 명의의 휴대전화를 해지했다. 요양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반대하기에 내 이름으로 번호 하나 새로 만들어서 아버지에게 주는 계획은 보류했다. 요양원에 44명의 노인이 있는데, 그들이 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니 요양보호사 선생님들 입장에선 끔(깜)찍하긴 하다. 어제 저녁에 작은 고모를 만났고 오늘 점심은 작은 아버지 내외랑 함께 먹었다. 고모도 삼촌도 숙모도 치매였던 할머니의 경험치가 있기에 -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거의 10년을 살았다. - 아버지의 치매 상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다. 좋은 일이다. 아내도 나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멘트 - 일우가 고생이 많다. - 를 옮겨주면서, 정신줄을 완전히 놓치는 않은 것만해도 어디냐고 했다. 아내는 며칠 전에 그 말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아버지는 나 결혼하고 우리집에 처음 와봤다. - 엄마도 2012년에 한 번 와 본게 전부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한 번도 딸 집에 못 와봤다. - 아버지는 출가한 큰 아들 집에 처음 온 날 그 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들 집 앞에 있는 요양원에 갔다. 뭔가 운명적으로 느껴진다.  

양말을 신으라고 했더니 장갑을 발에 끼우고 있던 아버지, 며느리를 사모님이라 부르는 아버지, 찬물에 믹스커피를 휘젓고 있던 아버지, 끓이지도 못할 라면을 사 놓던 아버지, 맨 얼굴에 면도 하느라고 일회용 면도기를 잔뜩 사 놓던 아버지, 치매 걸리고도 가끔은 막걸리를 사 마신 아버지, 바지 후크랑 모든 옷의 지퍼를 다 망가뜨린 아버지, 빤쓰를 안 입고 있을때가 많던 아버지, 나에게 ‘니가 고생이 많다’는 말을 많이 한 아버지, 나랑 있으면서 ‘엄마는?’ 이라면서 전처를 많이 찾았던 아버지, 나랑 같이 순댓국도 먹고 해장국도 먹고 치킨도 먹고 커피도 먹고 서울에서의 마지막 밥으로 백화점 식당가에서 냉면을 먹은 아버지, 먹는 모양새가 많이 어설프지만 젓가락질은 여전히 잘 하는 아버지

우리 아버지 잘 지내야 될텐데… 이 말이 절로 나온다. 사랑이겠지. 사랑이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사랑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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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지난주에 또 길을 잃었다. 아버지 집에서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신정동 파출소에서 전화 왔다. - 까치산역까지 걸어갔다가 방향을 잃고 신정동까지 갔을거라 추측해본다. - 아버지를 발견하고 아침 7시 30분에 전화해 주고 집에까지 데려다 준 친절한 경찰이 아니었다면 우리 아버지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요양등급 내용변경한 건 3일에 처리가 됐고, 이버지가 길을 자꾸 잃으니 요양원 진행을 서둘렀다. 아주 다행히 집 바로 근처에 있는 요양원에 빈 자리가 하나 있어서 입소(이용?)를 결정했다. 서류 준비 때문에 목요일 오후부터 바빴다.

 아버지 신분증을 엄마가 갖고 있어서 금요일 7시 차를 타고 경기도 오산에 갔다. 시속 110킬로 미터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고 잠들면서 '기사와 나 뿐인 고속버스에서 운전자가 졸면 둘이 같이 죽겠구나' 단순 명료한 죽음을 생각했다.

 엄마는 제사 준비 중이었다. 제주(祭主)가 치매에 걸렸어도 본인 형님과 이혼한 전 형수님 집에서 지내는 제사가 중요한 삼촌들 꼴 보기 싫다. 점쟁이가 제사는 계속 지내는 게 좋겠다고 하니까 그 말 듣고 본인 몸이 엉망인데도 혼자서 제사 준비하는 엄마도 문제다.

 데이케어센터에서 아버지 데리고 나와서 은행 세 곳 들르고 요양원 입소용 건강검진 받고 고지혈증 약 문제로 의사랑 상담했다. 우체국에서 어떤 할머니가 우리 아버지 어디 아프냐고 해서 치매라고 했더니 본인은 치매 안 걸릴라고 뭣두하고 뭣두하고 하면서 계속 말을 걸길래, '할머니도 치매 걸리고 싶어요?' 말할까 하다가 속으로 이 할머니도 치매 걸리길.... 하고 저주를 퍼붓고 말았다. 은행에서는 이름을 본인이 써야 한다고 하고 보험료 자동이체 때문에 전화한 콜센터에서는 치매라도 본인이 직접 전화해야 한다고 하고, 정신없이 다니다가 농협 체크카드 잃어버려서 농협 다시 들르고 자꾸 짜증이 치미는데, 아버지는 계속 멍하고, 중간중간 내가 목소리를 높일때마다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은 아버지를 보니까 더 화가 나고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아버지랑 밥 먹다가 순댓국에 소면 사리를 두 번 넣어 줬는데, 너무 맛있게 먹길래 잘 드시니까 좋네, 진짜 좋네, 라고 했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진짜 좋다'는 내 말이 진심이라 눈물이 났다.

 고모(아버지 누나)가 전화해서 요양원에 가면 학대도 많이 하고 죽으러 가는거라던데 어떻하니, 하길래 엄청 짜증이 났지만 좋게 좋게 얘기했다. 전국에 장기요양인정자(아버지처럼 요양 등급 받은 사람)가 100만명 정도 된다. 고모 생각대로라면 나는 백 만명이 요양보호사한테 학대받는 나라에 살고 있네. 무지(無知)가 무섭고 본인 위주로만 생각하는 무지는 더 무섭다. 그리고 요양원에 가면 요양원에서 죽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죽으러 가는 거 맞다. 

 아버지는 자꾸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경기도 오산에 있고 엄마도 많이 아프고 앞으로 자주 못 볼거라고 말해줬다. 강릉으로 간단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강릉>이란 단어에 몰두했다. 치매에 걸렸어도 고향은 고향인가?

 회사에 일이 있어서 더 빨리 진행은 못하고 19일에 입소할 계획이다. 여기저기 전화하고 여기저기 왔다갔다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 아버지 요양원 입소 과정을 빨리 끝내고 싶다. 서울 가는 것도 이번주면 끝이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가고 나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아버지 요양원 가고나면, 엄마가 괜찮은 사람 만나서 홀가분한 상태로 재혼해서 편하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 했다.  


많은 아버지 컷 중에 베스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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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0일이다. 지난주 금요일에 '1월 5일이구나, 벌써 새해가 5일이나 지났네, 5일씩 몇 번만 더 지나면 올해가 끝이네, 올해도 다 갔구나' 생각했다. 올해가 다 갔다고 생각하는 날짜가 나이 먹을수록 점점 빨라진다.

 토요일에 서울 갔다가 일요일에 돌아왔다. 아내랑 함께 했다. 아내 부모님, 아내 오빠 가족과 점심을 먹었다. 1월 13일 생일이 지나야 17살이 되는 조카 아이가 고등학교 조기 졸업하고 카이스트에 합격했다. 지나간 아버님 생일과 조카 아이 축하 식자다. 만 17세면 앞으로 10년 동안 놀고나서 앞으로 어떻게 살까 생각해도 좋겠단 생각이다. 종로 한 복판에 있는 중국집에서 이것저것 먹었는데, 크림 새우가 맛있었고, 아버님과 조카 아이가 짜장면을 많이 남겼다. 풍족함이 흘러 넘치는 시대지만 여전히 음식을 남기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아버님, 앞으론 그러지 말자구요. 생애 처음 가본 블루보틀에서 커피까지 마시고 어머님이 싸주신 월병이랑 찹쌀떡 챙겨서 - 어머님 사랑 - 아내랑 신월동으로 왔다. 
 
아내는 오랜만에 시아버지를 만났다. 1박 2일 동안 아버지를 지켜본 아내는 아버지가 그럭저럭 심각하진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혼자서 못 지내는 사람이 됐을 뿐이다. 아버지랑 순댓국집 두 곳에서 순댓국을 먹었다. 두 곳 모두 주인이 나랑 아버지를 알아보는 집이다. 우리 아버지가 온전치 못하다는 것도 알고 있는 집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이야 별 생각 없겠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그들의 시선이 부담 되기도 한다. 아내까지 셋이라서 이번 주말은 그 부담감이 강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랑 뭔가를 먹어야 하고 아버지가 순댓국을 가장 무난하게 잘 드시기에 순댓국 집엘 간다. 다음 주말에도 어쩌면 그 다음 주말에도, 내가 아버지를 만나는 모든 날에. 순댓국은 실제로 우리 집안의 소울 푸드이기도 하고 - 엄마가 나 임신중에 순댓국과 코카콜라를 많이 먹음, 네 다섯 살 때부터 가족 외식으로 시장에 순댓국 먹으러 갔던 기억이 있음. - 뚝배기에 담긴 국밥 이미지 자체가 소울 푸드란 말과 어울린다. 일요일 점심 먹고 나서는 아버지랑 둘이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먼저 아버지랑 호수 공원 돌았던 게 언젠지 모르겠는데, 아버지는 확실히 그때보다 훨씬 멍한 사람이 됐다. 호수공원을 돌고 공원 옆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씩 마셨다. 예전에 스타벅스 돌체 라떼 같이 마셨던 게 기억났다. 아버지는 나에게 순댓국과 스타벅스로 기억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에게 잊혀질 것이다.

 뇌동맥류 수술을 했고 올해 또 칼을 댈 일이 있을 거라고 점쟁이가 말했다는 엄마, 위암 수술을 했고 치매에 걸린 아버지, 유방암 수술을 한 어머님, 심장이 뛰게 하는 보조기구 시술을 받고 담낭 제거를 기다리는 둘째 이모, 담당을 제거한 친구 어머니, 다리에 심각한 수술을 한 친구 아버지, 왼쪽 어깨를 올리지 못하는 친구,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친구, 다리에 큰 수술을 한 친구, 수시로 오줌을 누러가야 하는 또래 친구들, 갑작스럽게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렸던 나, 새해 들어 왼쪽 어깨가 아프더니 팔까지 저리기 시작하는 나, 40세 무렵에 노안이 시작된 아내, 암 수술을 받은 내 또래 사람들, 갑자기 죽은 40대 사람들, 점점 늘어난다는 2, 30대 치매 환자들. 늙고 병드는 일을 생각한다. 어디까지가 삶이고 어디까지가 삶이 아닌가, 언제부터 죽음이고 언제까지가 죽음이 아닌가. 

 45세,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혼란한 국제 정세와 내가 살고 있는 곳이라 그런지 더 혼란하게 느껴지는 국내 정세를 생각하면서 짜장면을 많이 남긴 가족들과 끝까지 배가 고팠을 안네 프랑크 누나, 서대문 형무소에 갇혔던 독립투사들을 생각하면서 언제든 이상하지 않을 나의 죽음 같은 걸 생각한다.

 가족 모임도 좋았고 아버지를 만난 것도 좋았다. 아내랑 함께 해서 더 좋았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시아버지랑 함께 있어준 아내에게 고맙다, 고 생각하면서도 급작스런 나의 죽음 같은 걸 생각하는 1월이다.

스타벅스 블론드 바닐라 더블샷 라떼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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