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엄마, 장인어른 순서로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었다. 아버지랑은 엊그제 짧게 통화했기에 전화하지 않았다. 동생은 휴가 중이라고 했고 아버지 무슨일 있는지 물으니 아버지 문제에 대해서 아는대로 얘기해줬다. 엄마는 부러진 팔이 빨리 붙지 않는 것만 빼면 계속 잘 지내는 중인데, 동생네 회사가 이달 말에 폐업을 할거란 사실과 아버지 문제를 아는대로 얘기해줬다. 아버님(장인어른)은 여전히 두꺼운 책을 많이 읽으시고 - 최근에 국부론을 읽으셨다고 함 - 형님(아내 오빠)네도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아버지랑 통화할 때 회사에는 별일 없는지 무심히 물었다. 아버지 대답은 뭔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다는 것이었다. 뭔 일이 있었단 한 마디가 마음에 걸려서 오늘의 전화 릴레이가 시작됐다. 결론은 술 문제다. 거기에 더해서 자꾸 깜빡깜빡 한다고 한다. 그게 술과 관련됐을 수도 있다. 아버지가 혼자 살기 때문에 깜빡하는 정도가 어느 정돈지 알려 줄 사람이 없다. 엊그제 통화할 때, 며느리 잘 지내는지 묻고 싶은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빠르게 알려주고 말았다. 약간 마음에 걸린다.

 안부(安否)란게 편안한지 아닌지를 묻는 것이라 편안하지 않다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문제가 있으면 신경이 쓰이고 걱정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동생은 내가 신경쓸까봐 회사 얘기를 안 했고 엄마도 본인 팔이 부러진 것을 팔이 부러진 날 바로 알려주지 않았다. - 근데 아버지 얘기는 왜 자세히 알려주는 거지? 이건 신뢰와 관련있는 것 같다. - 걱정하기 위해서 안부를 묻는 것은 아닌데, 말이 길어지다 보면 가족 중에 왕후장상이 있어도 걱정할 일은 있게 마련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걱정거리가 있는 것이 걱정 없음보다 우선 순위다. 그래서 '네 걱정이나 해'란 말도 있다. 아버지가 걱정이다.

 엄마, 아버지가 서류상 이혼한 지 10년 됐다. 같이 살지 않은 건 20년이 넘었다. 따져보면 결혼하고 둘이 같이 산 기간보다 그렇지 않은 기간이 더 길다. 이번 추석때도 엄마 집에 아버지 형제들이 모이겠지. 엄마 팔은 그때도 금이 간 상태겠지. 엄마 입장에서는 이게 사랑인가? 아버지 걱정과 별도로 맘에 안든다.

 며칠 내로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술 적당히 드시라고 정중하게 한 소리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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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게임

8월, 깨끗한 밤
약간의 바람이 불고
비에 씻긴 가로등과 그 가로등이 비추는 벚나무 이파리가 유난히 반짝이는 밤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구름이 새하얗고 빠르게 흘러가는 밤
반경 일 킬로 미터 안에 나 혼자 뿐인 것 같은 밤
물길을 따라 바다쪽으로 걷는 밤
허나 물보다 빠르지 못한 밤
물속에 구름도 새하얗고 빠른 밤
조명탑 아래 강변의 경기장엔 배구를 하는 사내들의 함성과 탄식
이 밤만큼 깨끗한 사람들
거짓없이 바람 부는대로 흔들리는 밤의 나무들
다시 비가 내리고
구름에도 바다에도 닿지 못하고 끝나 버리는 나이트 게임
나만 깨끗해지면 되는 깨끗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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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회를 먹다

참치회를 먹는다
얼었다가 녹은 걸 먹는다
얼렸다가 녹인 걸 먹는다
모든 인간은 어쨋든 다른 생명을 먹는다
넷이 앉아서 자리에 없는 사람을 욕하면서 먹는다
참치는 욕을 먹고 살진 않았다
세상에 사람보다 참치가 흔한건지
무한리필 해주는 참치를 먹는다
참치를 먹는지 다른 걸 먹는지도 모르고
주방장이 주는대로 먹는다
세상에 참치보다 술이 흔한건지
참치를 먹는지 술을 먹는지 모르고 먹는다
참치회를 먹는다
셋이 남아서 먼저 간 사람을 욕하면서 먹는다
참치를 간스메로만 먹어봤다던 사람을 욕하면서 먹는다
참치는 욕을 먹고 살진 않았다
참치는 죽고 나서야 욕을 듣는다
모든 인간은 욕을 먹는다

AND

곰국을 먹다

곰국을 먹는다
꽝꽝 얼린 것을 녹이고
밥을 말아서 먹는다
시절은 잿빛이라도
쌀밥과 곰국은 뽀얗게 같은 빛이다
혼자서 곰국을 먹는다
뼈를 부딪치던 사랑은 어디 갔을까
뼛국물보다 든든하던 사람은 어디 갔을까
뼛속까지 사랑해도 이별을 하고
혼자먹는 곰국은 이별과 같은 말이고
곰국의 반댓말은 사랑인가 이별인가
얼었던 곰국을
혼자서 먹어도
뱃속은 따뜻하다
눈물은 빛깔이 없고
나는 소금도 안 친 곰국을 먹는다

AND

비 그치고

비 냄새도 좋지만
비 그친 냄새가 참 좋군
불어난 강물은 빠르고
그 위를 바삐 건너가는 사람들이 보기 좋군
물기를 먹은 나무 이파리는 뻔한 말로 싱그럽고
비를 피해 숨어 있던 새들은 먹이를 찾는지 사랑을 찾는지 분주하군
잠깐 개었다가 다시 내릴 비를 품은 하늘아래
이 모든 풍경이 스며있다
나는 가만히 본다
비도 맞지 않았으면서
비를 맞은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일이 좋군
다시 비가 내리고
새들이 모여드는 다리 아래서
비를 피하는 일이 좋군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비가 와도 바쁘군
비 그친 냄새도 좋지만
비 냄새도 좋군
비 그치고 갈 곳이 없어도
비를 맞지 않고
가만히 보기만 하는 일이 참 좋군

AND

누운 모기

모기들이 나란히 누워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수가 점점 늘어간다
겉보기엔 멀쩡한 녀석도 있고
몸이 터진 놈도 날개가 부스러진 놈도 있다
다 내 손에 죽었다
가장 재빠른 놈도 내 피를 먹으면 몸이 무거워진다
벽에 붙어서 편안한 상태로 내손에 죽는다
피를 먹고 피를 토하며 죽는다
살고자 하는 일에 욕심이 있는지
무언가를 죽이는 일에 자격이 있는지
과한 것은 욕심이고 모자라는 것은 자격인지
흰 벽지에 묻은 내 피는 삶인지 죽음인지
누운 모기 옆에 머리를 대고 누워서
누운 모기를 본다

AND

돌무덤

돌틈 사이를 비집고 벌레들이 쏟아져 나온다
가장 깊은 곳에서 죽음을 파먹고 검게 변한 것들
정오의 볕이 내리쬐자 죽어 바스러진다
죽음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순간이 지나고
벌레들이 다시 쏟아져 나온다
밤이 되자 더 검게 변한 것들
의식처럼 무덤 주위를 두 바퀴 돌고
줄지어 다른 돌무덤으로 향한다
달빛도 없는 밤에
철모르는 아이는
달맞이꽃만 활짝핀 무덤가에서
벌레들을 밟아 죽이며 놀았다

AND

운동화

운동화 끈을 고쳐 맸다
삶은 약간 더 엉망이다
운동화는 색이 바랬고 군데군데 흠집이 있다
언제든 새걸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바닥에는 나무에서 떨어져 뭉개진 버찌가 붙어있다
익으면 떨어져서 무심코 밟혀 부서지는 것들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일이다
공원을 걷는다
한 바퀴 한 바퀴 속도가 붙고
운동화는 걷는만큼 생을 다하고
버찌는 자꾸만 밟히고
앞사람 뒷사람 먼저 온 사람 늦게 온 사람
수 많은 운동화들이 궤도를 돌아 내일로 간다
밤의 공원에서,
삶은 그보단 약간 더 엉망이다

AND

오징어 회를 먹다

친구를 만났다
오후 세 시,
바닷가에서,
10년만에,
풍년이라는 오징어 회를 먹는다
10년 전도 지금도
산 것을 잡아 먹는 일에 풍년이란 말을 쓰는 시절이다
친구 앞에선지 오징어 회 앞에선지
그것도 아니면 술 앞에선지
아내도 뒷전, 생활도 뒷전이다
앞서는 것이 있어야 뒷전인 것도 있다
날로 먹는 오징어는 끈적하다
두고온 미련 때문인지 원래 그런지
취기가 오르자 오징어가 붉게 달아오른다
초장 때문인지 발가벗겨진 것이 부끄러워 그런지
답을 알면서도 자꾸 되묻는 일은
세상이 모르는 다른 답을 듣고 싶어선지
바다에는 오징어보다 플라스틱이 많고
그런 바다에서 잡은 오징어를 먹어도 되는지
플라스틱이 오징어고 오징어가 플라스틱이 아닌지
생활은 왜 계속 뒷전으로만 밀리는지
생만 있고 활이 없는 삶
그래서 자꾸 날것을 먹게 되는지
멀리 오징어 잡이 배가 불을 밝히고도
생활은 여전히 무언가의 뒤에 있고
흐트러진 채 흐트러진 오징어 회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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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무렵

이맘 때, 늦은 오후에 바람이 불면 참 좋지
저녁에게 오지 말라고 재촉하는 것 같아 좋지
건너편 옥상에 걸린 빨래가 흔들리는 걸 보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일과 그 담배 연기가
길어진 낮의 끝으로 사라지는 걸 보는 일이 좋지
그때 누구라도 함께 있어서
낮술을 먹는다면 더욱 좋지
서로의 붉어진 얼굴을 감추지 못하는 일과
불콰한 기분으로 바닷가에 가는 일,
세상엔 돌아갈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과
곧 어둠이 올 것을 알지만
모래 위에서 즐거운 젊은이들을 보며
오래전 이야기를 하는 일이 좋지
그 순간이 일 년 중 가장 긴 저녁만큼 유예되는 일이 좋지
파도의 일렁임을 따라 입을 맞추는 일로
아직은 가슴속이 뜨겁다는 걸 아는 일이 좋지
어느샌가 시작한 노래는
바다 너머로 추억이 모습을 감추고 나서도 끝나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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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가 - 배삼식

2020. 6. 1. 09:26

 작년에 '배삼식 희곡집'을 읽었고 이번에 '화전가'를 읽었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배삼식 작가는 좋은 사람 - 좀 웃긴 말이다. - 같다.

 

 어느 저녁에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곁에 앉아 있었지만 그 말들을 저는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지요. 두 사람은 이제 곁에 없고 그 저녁의 풍경과 목소리만 희미하게 남았습니다. 무엇을 쓸까 궁리하며 이리저리 헤맸습니다만, 모르는 사이에 결국 저는 그 저녁으로 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목소리를 다시 한번 들으려고요.

 초고를 마치고 오래 묵은 나무들을 보러 가서 겨울 가지 아래 오래 서 있었습니다. 잠깐 동안, 아무런 의미 없이 세계는 충만했습니다. 알아듣지 못하고 흘려보낸 목소리들이 허공에 떠돕니다. 그것을 더듬는 것은 늘 때늦은 일입니다만.

 백 살 먹은 나무는 아흔아홉 해의 죽음 위에 한 해의 삶을 살포시 얹어놓고 있습니다. 얇은 피막 같은 그 삶도 지금은 동면 중입니다만, 나무는 또 잎을 내밀고 꽃을 피우겠지요. 지나간 죽음들을 가득 끌어안고 서서, 올해의 잎과 꽃들이 작년 그것은 아니겠지만, 마음은 다시 온다고, '봄이 돌아온다'고 속삭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늘 안타깝고, 오직 이 안타까움만이 영영 돌고 돌아오는 것이니까요.

 

 '경신일' 이란 걸 알게 됐다. 회충약이 없던 시절, 사람몸에 벌레가 붙어 살고, 사람 똥에서 손가락만큼 긴 벌레가 기어나오던 시절이니 있을 수 있는 풍속이다.

 

 난도 자세는 몰래, 나 어릴 때, 옛날 어른들은 다 그래셌니라. 친구들캉 얼리가 온 집안이 밤새두룩 이약허고 술 자시고 놀고 그랬어. 잠 안 잘라꼬. 그기 삼신가 머인가 무신 벌거지 따문에 그런다 카데, 형님은 아시니껴? 내는 딛기는 딜었는데 다 잊아뿟다.

 삼시(三尸)라꼬, 사램 몸에가 벌거지가 시 마리 산단다. 머리에 한나, 배에 한나, 아랫도리에 한나. 이기 가마이 들앉아가 오래 보고 있다가, 지 쥔이 지은 쥐를 치부책에다가 따박따박 씨논단다. 그래가주고 두 달에 한 번, 경신일에 하늘로 올라가가 옥황상제님한테 마캐 일러바채. 그라만 상제님이 그 진 쥐만큼 맹부책에서 그 사램 맹을 제하는 게래.

 그란데 와 잠은 안 자노?

 이 삼시라 카는 거이는 쥔이 잠을 자야 하늘에 올러갈 수가 있그덩. 그라이 아예 몬 올러가게, 고자질 모하게 하구러 그라제.  

 

 봄꽃에 대한 아름다운 구절도 있다.

 

 시커멓다......그라만 고 울긋불긋하던 거이는 다 어데로 가노?

 거 있지 가기는 어데를 가니껴?

 그란데 와 시커멓노? 어데를 갔으이 시커멓지.

 어데로 가는데?

 어데는. 하늘로 간다. 저녁마동 하늘로 올러갔다 아칙에 도로 니리온다. 고 알록다록허고 울긋불긋헌 거이를 마캐 데불로 오러가니라꼬. 저녁에 놀이 그래 요란하단다. 날마동 그래 올러갔다 니리왔다 하이 그 얼매나 힘드노? 그라이 꽃이 그래 쉬 지는 게래.

AND

 지난주 어느날 출근길에 여느때처럼 커피 마시러 편의점에 들렀다가 지나가던 차에 탄 사람이 알려줘서 자동차 왼쪽 뒷타이어에 바람이 빠진 것을 알았다. - 고맙습니다. - 자연스럽게 자동차보험 긴급출동에 전화를 했고 안내에 따라 번호를 몇 개 눌렀다. 전화 끊고 10분만에 도착한 긴급출동 아저씨는 도착한지10분 만에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갔다. 타이어가 펑크났는데, 지각도 안했다.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긴급출동을 부르는 일도 처음에는 뭔가 어렵고 어색한데, 한 두 번 경험하고 나면 금방 익숙해진다.

 하던대로 하는 건 익숙하다. 익숙한 건 쉽다. 쉬운 건 편하다. 편하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다. 나도 편하고 싶어서 노력 끝에 근무지를 옮겼고 실제로 마음이 편해졌다. 인간은 점점 편해지려는 노력으로 산다. - 안 그런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 중에 훌륭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서 처음 생각한 거니까 오래된 생각인데, <시스템은 안락하다.> 물자의 이동이 대표적이다. 먼 나라에서 생산한 원유가 내 자동차의 연료가 되기까지의 과정, 아르헨티나 바닷가에서 잡힌 홍어가 지구 반대편 나라의 슈퍼마켓에서 팔리기까지의 과정에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물건의 원산지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안락한 시스템이 택배를 포함한 각종 배달이다. 배달 대행 서비스가 '배달(의 민족)'이란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고 나니까 '배달' 시스템이 더 도드라진다. 땅만 있으면 집도 배달해 주는 지경이다.

 라디오 광고를 듣다가 운전대행 서비스가 있다는 걸 알았는데, 대리운전 비슷한 것이고 대리운전이란 건 사람 배달이다. 물론 크게 보면 많은 서비스업이 사람 배달이다.

 편리란 이름으로 인간이 물건이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서비스를 강요하는 세상이다.

 우리집은 비닐이랑 1회용품 쓰기 싫어서 음식 배달을 시키지 않는다. 다만 몇 가지 물건은 택배로 받는다. 아내는 슈퍼에서 장 볼 때도 포장된 야채는 구매하지 않으려고 한다. 작지만 대단한 노력이다. 모든 물건이 포장되어 있는 세상에서 아내의 노력을 소용없는 것처럼 얘기할 때가 있다. 체념이다. 체념에는 술이 약이다.

 가끔은 음식 배달 시켜서 아내랑 오붓하게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고나면 죄책감에 시달릴테니 그러지 말아야지.

 죄책감에도 술이 약이다. 술 먹고 싶어서 '배달 생각'을 적은 건 아니다.

 인간은 어디까지 편하고 싶을까? 헤아려본다. 헤아림은 끝이 없고 그것이 인간이다.

AND

자화상 - 볶음밥을 먹다 -

토요일 오후
주섬주섬 일어나
냉장고를 뒤진다
마늘 양파 파프리카 그리고 토마토 케첩
뱃속에 들어가는 것들은 이름만 불러도 기분이 좋다
편으로 썬 마늘을 소금 후추 넣고 기름에 지지다가
마늘이 갈색으로 변하면
나머지 재료와 밥을 넣고 볶는다
지지고 볶고 산다는 표현만큼
먹고 가는 일도 진부해진지 오래다
냄비째 상에 올린다
냄비가 둥글어 밥도 둥글다
숟가락으로 눈과 입을 파낸 볶음밥은
어딘지 나를 닮았다
나를 먹는다는 생각으로
턱에서 시작해서 이마까지 깨끗하게 먹는다
나를 파 먹고 또 하루를 살았다

AND

나무

당신 이마에선 나무 냄새가 난다
천년사찰 대웅전 기둥의 냄새
한 이름에 안기지 않는 나무를 안았을 때의 냄새
당신 뺨에선 나무 냄새가 난다
가을비에 잠긴 낙엽의 냄새
앙상한 겨울 가지의 냄새
봄이 사라진 나무 냄새가 난다
당신이 나무라면
그리고 나도 나무라면 ​
당신이 세상의 반대쪽 끝에 있어도 당신을 느낄텐데​
내가 나무라면
아니, 당신이 정말 나무라면
당신에게 달려가 힘껏 안아줄텐데
나도 당신도 나무가 될 수 없고
집안 곳곳에 당신의 마른 냄새만 남았다

 

AND

된장국을 먹다

새벽 두 시,
된장국을 먹는다
허기를 참지 못하고 
멸치 육수도 내지 않고 된장과 토란만 넣고 끓인
맑고 담백한 토란 된장국을 먹는다
배추, 아욱, 시금치부터
새우, 게, 돼지고기까지
아무거나 넣고 끓여도
한 가지 재료만 넣어도 여러 재료를 섞어 넣어도
맑게 끓여도 탁하게 끓여도
다 맛있는 된장국을 먹는다
어차피 된장국인 된장국을 먹는다
된장은 힘이 세고
나도 된장처럼 살겠다 다짐하며 된장국을 먹는다

AND

소식

21세기에도 소식이 바다를 건너오나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가 이곳에 오기까지 1초도 걸리지 않는 세상을 살면서도
나는 어떤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매일 다른 바람이 불고 새로운 파도가 일렁이는 바닷가에서
그것은 세상을 떠난 사람의 안부이거나
이 세상에서 사라진 이야기다
어느날 불어온 바람이
내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여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바다를 건너 올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AND

20200402 - 비관

그때그때 2020. 4. 2. 10:29

출근길에 늘 같은 편의점에 들러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 먹는다. 플라스틱 뚜껑은 안 씌우지만 자동차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종이컵이 쌓인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해 버렸다. 커피 한 잔 사 먹는 일로도 양심과 비양심의 경계를 넘나든다.

​점심밥은 회사에서 먹는다. 한 달 식대 5만원, 싸게 잘 먹고 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요즘은 더 전투적으로 먹는다. 전쟁나서 피난 중에 따뜻한 밥 한 끼 먹게 됐다는 심정으로, 지금 먹는 밥이 풍족하게 먹는 마지막 끼니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먹는다.

​저녁밥은 집에서 먹는다. 점심과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먹는다. 아내 왈 '이렇게 잘 먹는데, 내가 손이 작아서 미안하다.'고 해서 같이 웃었다. 가끔 야식으로 집에서 비비고 만두를 먹거나 집 앞에 나가서 순대를 사 먹는다.

​잘 먹고 산다.

​아침에 북극 오존층이 뚫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세상이 끝났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막 살고 막 먹고 해야 하는데, 실제로 어떤 상황이 닥치기 전에는 그러기 쉽지 않은 게 삶의 속성이다.

​호주에 산불이 났고 코로나 19가 인류를 덮쳤다. 틀린 작명은 아니지만 코로나 블루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우울이 있다. 세상이 끝났다는 나의 비관도 큰 그림에서는 코로나 블루다. 푸른 별 지구에서 푸른빛으로 죽는다? 나쁘지 않다.

​오늘은 날이 쨍하길래 출근길에 차를 잠깐 세우고 꽃구경을 했다. 예뻤다. 지금보는 벚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잠깐의 시간을 즐겼다. 차 앞유리에 꽃이 떨어져서 공중에 멈춘 것처럼 보였다. 나도 언젠가 이렇게 멈출 것이다. 남은 삶은 이렇게 우연으로만 살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루고 싶은 일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 없다. 나이 먹을 수록 먹고 자는 일처럼  단순한 열망만 남는다. 그래서인지 가끔 클래시컬하게 맨 탕수육에 양조 간장 찍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오랜만에 쓰는 일기가 제목부터 비관이다. 지금 나에게는 비관과 낙관이 공존하고 있지 않다.

AND

와병(臥病)

한동안 누워서 지냈다
너는 내 옆에 눕기도 하고
볕이 드는 창 앞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장 보러 바깥에 다녀오거나 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누워만 있었다
가만히 누워서
내 옆에 누운 네 뺨을 만지거나
책을 읽는 네 눈동자를 쫒거나
밖에 나간 너를 기다렸다
잠깐 일어나면 어지러웠고
누우면 죽은것 같았다
너와 함께 저녁밥을 먹으며
사랑과 절망, 열정과 무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밥을 먹자마자 다시 누웠다
울기라도 하면 나아질텐데 슬픈 일은 없었다
날이 가는 걸 알면서도
누워서 눈을 감고 있거나 너를 보는 일이 전부였다
너는 계속 내 곁에 있었다
내 옆에 누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책을 읽다가 눈을 마주쳐 주거나
외출 후에는 다녀왔어, 라고 했다
나는 여전히 오래 누워 있지만
조금은 살아갈 힘이 생겼다

AND

낮을 갈다

칼갈이 가게 앞을 지났다
각종 칼, 가위, 호미, 낮 갑니다
무뎌지면 갈아 쓰는 게 보통인데
삶은 닳고 닳아 점점 무심해지기만 한다
잘못 갈아 못 쓰게 된 것인지
갈고 갈아서 더 갈 것도 없게 된 것인지
날이 선 것보다는 덤덤한 지금이 나은지
내게도 반짝반짝 기세 등등하던 때가 있었는지
낫을 갈면 사람도 헤치고
낮을 갈면 밤이 온다
봄이 오는 길을 따라 해는 점점 길어지는데
나는 낯빛이 어둡다
나는 지금 날카로운 밤이다

AND

보쌈을 먹다

삶은 고기를 먹는다
삶는 것과 찌는 것의 차이는 뭔지
어차피 삶은 찜통이 아닌지
뼈와 기름이 적당히 붙어 있는 삶은 고기를 먹는다
적당하다는 말보다 적당하지 않은 말이 없고
오늘도 적당히 보낸 하루가 끝나는 중이다
상추에 고기를 얹고 마늘, 고추, 김치 같은 것을 그 위에 얹어서 먹는다
싸 먹으니까 보쌈인가
가능하다면 삶도 한 입에 쌈 싸먹듯 살고 싶다
내 뱃속의 고기가 된 돼지의 삶
고기는 삶아 먹어야 맛이고 삶은 고기다
삶은 고기 삶은 고기 삶은 고기​
삶은 고기를 먹는다

AND

보름 사이에 차키를 차 안에 두고 차 문을 잠근 게 두 번이다. 어제는 '카에타노 벨로조'랑 '묻어버린 아픔' 이 기억나지 않았다. - 가사는 기억났다. - 이 두 가지가 어제 일이라서 그렇지. 실은 언제 뭘 기억하지 못했는지 기억도 못하는 지경이다. 월요일 오후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난 토요일에 뭘 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하지 못한 것들의 리스트를 날짜별로 만들어야 볼까. 명사부터 서서히 잊으면서 노화가 시작된다고 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스스로 인식하게 될 정도로 횟수가 잦다.

몸도 마음도 늙는 것을 체감하고 있고 뚜렷한 삶의 목표랄까 뭐 이런것도 없다보니 - 아내 말로는 나는 원래 그런게 없었다고 함. - 세상을 다 살고 나서 그냥 덤으로 더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세상에 종말이 와도 나만은 악착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세상에 종말이 오기 전에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지난 주말에 머리를 잘랐는데, 면도를 끝냈을 때 느끼던 새로 태어난 기분이 사라졌다.

집에 그냥 누워서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있을 때가 많고 계속 그러고만 있고 싶은 충동이 인다. 사람들이 뭔가를 하는 것이 다 바보같고 그게 다 뭐고 무슨 소용인가 싶다.

삶이 슬로우 모션으로 내리는 눈발같다.

하루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것이 인생의 최고 행복이다.

그런날이 많기 때문에 더 추구할 게 없는걸까?

무력이란 말은 딱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새로 옮긴 일터는 마음이 편하다. 아직 얼마 안되서 그런 것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여기는 느리다. 사람도 늙고(느리고) 컴퓨터도 느리다. 나도 따라 느려지는 중이다. 당분간 이 페이스에 맞춰 살아야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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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란과 미국이 전쟁을 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바로 이어서
코스피니 다우존스니 하면서 주가가 내렸다는 뉴스가 나오는 사이에
따뜻한 겨울 때문에 겨울 눈 축제를 못해서 지역경제에 타격이 있다고 걱정하는 사이에
지구를 덮친 바이러스를 두고도 누군가는 
아니,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는 1도 상관없는 세계 경제를 걱정하는 사이에
1이란 숫자가 이렇게 가벼운 것인가 생각하는 사이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갈 글을 키보드로 두드리는 사이에​
​겨울이 봄같고 겨울이 가을같고 겨울이 여름같고
얼음은 녹고 나무는 타고 비는 끝없이 내리거나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사이에
겨울은 녹거나 여름은 타거나
겨울과 여름이 동시에 사라지는 사이에
우리 모두가 계절처럼 사라질지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끝을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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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1 - 비관

그때그때 2020. 1. 21. 11:01

 뭔가를 반대하려면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라고 어느날의 메모에 적었다. 아내 생일이라 아내 칭찬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지후는 자신의 신념에 맞게 행동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지후를 따라가면 되니까 고마운 일이다.

 기후 변화로 구상나무가 고사하는 것을 두고 한 연구자가 50년 후에도 이 숲이 이대로 있다는 보장이 없다며 통탄했다. 모든건 다 변하니까 50년 후에도 그 숲이 그대로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구상나무가 사라지는 게 땅을 치며 울분을 토할 일은 아니다. 다만 기후 위기가 닥친 건 현실이다. 그러니 어쩌면 좋을까? 이런 게 나의 냉소다.

 지난 토요일에 안인에 화력발전소 짓는 쪽에서 - 타워크레인도 보이고 이미 건물 많이 올라갔음 - 화력발전소 건립 반대 청어엮기 퍼포먼스를 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통진당 해산과 이석기 내란 음모 의혹을 다룬 영화 '지록위마'를 봤다.

 나는 화력발전소를 반대하나? 잘 모르겠다.

 땅을 팔 것도 없이 그냥 퍼내기만 하면 된다는 호주의 광산업과 산불, 유난히 따뜻한 이번 겨울,  점점 심해지는 미세먼지, 미세먼지의 주범 중 하나라는 화력발전소, 예뻤던 시골 동네를 볼품 없게 만들어 버린 태양력 발전, 풍력으로 한 몫 잡아보려는 발전소 업자들과 에이전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 그리고 이미 몸에 익숙해진 생활의 편의를 손톱만큼도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다 연결돼 있다. - 물건들, 물건들, 물건들. 인간은 물건으로 태어났고 물건으로 망한다. -

 퍼포먼스 자체는 즐거웠지만 음악과 컵라면을 위해서 기름을 먹는 발전기가 돌아갔다. 일단 거기서 기분을 망쳤다. 나랑 아내는 간식을 담당했다. 만두랑 김밥을 뜨겁게 유지할 것이 필요했는데, 새것과 다름없는 스티로폼 상자가 길가에 너무나 쉽게 버려져 있었다. 발전기는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자기 먹을 건 자기가 들고오는 방식으로 현장에서는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방식으로 했으면 좋았을거다. 이게 다 어떤 편의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통진당 해산 때, 볼음도에 살았다. 내란 관련 뉴스는 접했지만 이게 말이 되나? 웃어 넘기고는 생업에 열중했다가 정당이 해산됐을 때, 이게 뭐지? 잠깐 화났다가 그냥 잊고 말았다. 마음속에 화는 있었지만 참 어이없다고 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자세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랑 직접 관련 없는 일이니까 침묵했다. 침묵했다기 보다는 어떤 일이 있는지 알고만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많은 일들에 대해서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저 알고만 있는 일이 많다.

 나는 이석기 씨가 석방되기를 강렬하게 바라지 않는다. 한상균이 사면되기를 강렬하게 바라지 않았다.

 소소한 하루하루가, 내 삶이, 생활이, 내 주변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영화 '지록위마'는 어쩌면 좋을지 해답을 찾아보자는 맥락으로 마친다. 청어엮기 퍼포먼스는 해답을 찾는 과정이었을까? 다들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걸까? 나는?

 부자가 되기를 내 집을 갖기를 내 농토를 갖기를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 뭘 좀 바라면서 살아야 되나? 

 해가 바뀌고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도 비관은 사라지지 않는다. 2020이란 숫자가 무력하다.

AND

지나쳤다

할아버지 약사가 약국 문을 열 때, 나는 그곳을 지나쳤다
읍내 사거리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친구를
길바닥에에서 봉지에 담긴 귤을 파는 할머니를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빠와 딸을
시장 한 복판에서 하체가 없는 걸인을
나는 그냥 지나쳤다
한 밤 중에 발톱을 자르는 아버지를
술 취해 비틀거리는 어머니를
나 때문에 울고 있는 당신을
몸살로 출근도 못하고 끙끙대는 나조차도
나는 그냥 지나쳤다
사고로 멈춰선 앞차를
타버린 나무와 긴 겨울비를
어딘가에서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뉴스를 지나쳤다
모든 길을
모든 사람을
모든 순간을
나는 지나쳤다
케냐 커피에선 케냐 맛이
두 잔 째의 커피에선 두 잔 째의 맛이 나고
나는 지나치듯 커피를 마셨다

AND

세상에 친환경 에너지가 있나. 풍력? 조력? 태양력? 인류의 모든 물건이 다 죄다. 그냥 다 죄로 산다.

청국장을 끓이려고 장을 봤다.

지역에서 생산했지만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두부, 누군가 이 겨울에 하우스에 난로 틀어가며 열심히 농사 지어서 하나하나 비닐로 싼 애호박, 언젠가부터 당연하게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서 랩으로 포장되어 팔리는 느타리 버섯, 한 줌씩 비닐 소포장된 청양고추를 샀다.

플라스틱(비닐) 때문에 마음 한 끝이 아리지만 포장이야 어쩔 수 없다치고 하나로마트는 수입산을 일절 안파는 곤조라도 가졌으면 한다.

냉동실에는 의지를 갖고 친환경 농사를 짓는 친구네서 일 회 분씩 비닐에 싸서 그걸 또 스티로폼 상자에 넣어서 보내준 청국장이 있다.

맛있게 끓이려고 했는데, 짜게 됐다. 결혼식 축하해줬다고 답례품으로 받은 소금, 종이 상자와 스티로폼 완충제로 과대포장 됐던 소금을 많이 넣어서 그렇다.

청국장은 물 붓고 간이라도 맞출 수 있지만 인류의 질주는 점점 짜지기만 한다.

내 탓이다. 아니다. 세상탓이다. 아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탓이다. 

'물질의 위계 질서는 폐기되었다. 단 하나의 물질이 모든 물질을 대체한다.' - 롤랑 바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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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밥

잡채밥을 먹는다
칼국수도 7000원
백반도 7000원인 시대
8000원으론 남는게 없고
10000원은 과하고
그렇다고 9000원을 받기는 애매한
8500원 짜리 잡채밥을 먹는다
밥 위에 적당량의 당면, 고기, 야채
달지도 짜지도 않은 계란국
적당함은 어정쩡함
어정쩡함은 망설임
망설임의 값 500원
오늘도 칭찬할 일도 비난할 일도 없는 하루
지갑엔 내게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만 원짜리 한 장
​12000원 짜리 잡탕밥은 너무 과하고
혼자 5000원짜리 짜장면을 먹는 일은 마음 속 어딘가를 긁어 놓기에
뭘 먹을까 망설이다가 어정쩡하게 주문을 하고 적당한 가격의 잡채밥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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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엔 목욕탕에 갔댔는데, 어제는 이발소에 다녀왔다. 다녀오면 새롭게 태어난다는 점에서 두 장소는 같은 카테고리다. 중고등학생 때 이발소에 다녀 버릇해서 그런지 나는 미용실보다 이발소가 더 푸근하다.

 미장원이나 미용실이란 명칭도 꽤 예전에 쓰던 말이다. 말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미용실> 보다는 <헤어>가 들어가는 간판이 많다. <헤어>도 옛날 말인가? 40대인 내 세대만 해도 이발소에 가는 사람이 많지 않고 이발소란 곳은 이발사도 손님들도 최소 60살은 넘어 보이는 분들이 대부분이니 지구 멸망보다 이발소란 말이 사라지는 일이 먼저 일지도 모른다.

 머리를 자른다는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보니 자르는 사람과 잘리는 사람의 합이 중요하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곳에 쭉 가게 된다.  - 정선에서는 주로 예쁜이 미용실엘 갔다. 여기 아주머니는 머리 감을 때, 머리를 시원하게 눌러주셨다. - 어제 갔던 세영이발소는 친구와 이름이 같아서 몇 해 전에 처음 갔었는데, 70은 훌쩍 넘었음이 분명한 아저씨가 혼자 운영한다. 오직 가위로만 머리를 잘라주는데, 그 속도가 빠르다. 말도 많이 안 하시고 이발소의 하이라이트인 면도도 아주 깔끔하다. 눈썹을 제외한 얼굴의 모든 털이 사라지면 얼굴이 미끈해서 아기같고 새로 태어나는 일이 완성된다. 커트만 하면 만 천원인데 먼저 천원짜리가 없어서 이 만원을 드렸더니 만 원짜리 한 장만 받기도 했다. 그래서 왠만하면여기서 머리 자르려고 한다.

 한 번은 여기가 휴가인 줄 모르고 찾아 갔다가 머리가 너무 자르고 싶었기에 바로 옆에 로얄 이발소에 갔다. 아저씨가 말은 많고 단순 커트에 머리도 감기는 둥 마는 둥 하고서 2만원을 달라길래 따지지 않고 그냥 줬는데 엄청 기분 나빴다. 다시는 안 간다. - 세영이발소는 면도 포함 13000원 - 바로 옆에 붙은 가게고 주인장의 연령대도 비슷한데 그렇게 차이가 난다. 고약한 노인들이 있다. 아니, 고약한 사람들이 있다.

 친구 S가 영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을 참 좋아했는데, 그 영화는 여자 이발사와 이발사의 남편 얘기다. 남장을 한 여자 이발사가 나오는 한국 단편 영화도 생각난다. 두 영화 다 사랑에 대한 영화다. 내 머리칼을 잘라주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 "당신 머리칼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그 머리칼로 날 죽여주세요." -

 미용실에선 누워서 머리를 감겨주지만 이발소는 엎드려서 머리를 감겨준다. 내가 이 얘기를 했을 때, 어느 시인이 겸손하게 살라고 그러는 것이라고 해서 감탄했었다. 겸손하게 살아야지. 남의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건 무척 솔직한 직업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몸으로 무언가를 대하는 솔직한 직업은 부모들이 바라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발소 얘기가 주저리 길어졌다. 오랜만에 단골 이발소에서 머리 자르고 면도까지 해서 기분 좋다는 얘기.

 면도에 관한 짧은 글을 남긴다.

 수염과 면도칼이 교차되고 그 사이로 나와 이발사가 교감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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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다. 2020 이라고 쓰니까 뭔가 묘하다. 반복되는 숫자가 주는 기분일까? 인류가 멸망하고 지구가 사라져도 202020년은 오겠지. 21세기가 끝난 거 같다. 나는 2020원더키디 세대긴 한데, 그 만화는 안 봤다.

올해는 뭘 어떡하나? 잠깐 생각했는데, 이렇다 할게 없다. 직장 안 그만두고 잘 다니는거랑 술 많이 안 먹는거랑 담배 끊는거 정도다. 직장은 계속 다니는 거고 담배는 끊는 거지만 부정과 근절이란 측면에서는 둘이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까 술 까지 세 가지는 올해는 뭘 어떡하나가 아니라. 뭘 안한다 카테고리다.

그럼 뭘 어떡하지?

​요새는 새 기타가 갖고 싶다. 그렇지만 참아야지. 기타를 더 잘 치고 싶다. 연습을 더 하기로 한다. 밴드에서는 노래를 하게 됐는데, 윤도현이 부른 '잊을게' 너무 높다. 내가 만든 '플라스틱'도 재훈씨가 밴드 편곡 해줬는데, 확실히 편곡이 들어가니까 좋다. 노래도 너무 심플하지 않은 걸로 몇 개 더 만들어야지.

아내 농업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줘야지. 그동안 흙에서 너무 멀어졌다. 아내는 농사 때문에 자주 절망한다. 작년엔 크게 실망했다. 같이 해야한다. 그런데 나도 농사에 자신이 없다. 그러니까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 

​지난 토요일에는 몇 년 만에 목욕탕에 다녀왔다.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는 아니고 좀 씻고 싶었다. 목욕탕, 나에게는 옛날말이 되서 그런지 푸근한 단어다. 어려서는 아버지, 동생이랑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갔다. - 더 어렸을 때는 엄마랑 갔다. - 비슷한 시간에 가니까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 목욕탕 주인도 나를 알고 나도 목욕탕 주인을 알고 목욕탕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뭔가 다들 한 동네 산다는 느낌이 있었다. <응답하라 1988> 시절 얘기다.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니다. 그래서 옛날이 그리운가하면 그렇지는 않다.

​목욕을 하고는 친구랑 둘이 낮술을 마셨다. 늦게까지 마셨다. 아내한테 많이 미안하다. 마시기로 한 술이라서 끝까지 마시게 됐는데, 술을 안 마시는 아내에게 몹쓸짓을 한 느낌이다. 이제 돌아가야지 생각할 때 즈음 아내에게 화가 잔뜩 묻은 카톡이 왔다. 토요일이라 나랑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놀고 싶었던가 보다. 두 사람의 마음이 뭔가 안 맞았다. 그렇지만 술 자체는 기분 좋게 마셨다. 기분 좋은 상태로 마시는 술은 좋다. 그렇지만 술이 꼭 먹고 싶은 건 아니고 아내가 싫어하니까 이런 자리는 당분간 없는 것으로 하기로 한다.

​정초부터 겨울비가 촥촥 내린다. 공기가 청량하다. 숨쉴 맛 난다. 공기, 물 같이 기본적인 것이 중요하다. 한국 생수시장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 지하수 마름, 생수공장 주변 농업 용수 없음 - 우울하다. 물은 그냥 수돗물을 먹고 끓여 먹는 시절이 지금보다 나았다. 지금보다 덜 풍요로운 시절이 전체적으로 지금보다 나았다. 19세기 말부터 풍요를 향해 치고 올라가 인류가 20세기 말부터 정체된 느낌이다. 어쩌면 꼭지점에서 내려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비가 호주에 내리면 좋을텐데.

​이것저것 적다보니까 그냥 막 살아야되나, 하는 생각에 닿으려고 한다. 그래서는 안되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말장난이지만 하지 말야야 할 것도 해야 할 것에 포함된다. 하지 말아야 할 것 한 가지와 해야할 것 한 가지가 늘었다.

올해도 시작하자마 끝난 느낌이 든다.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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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를 먹다

양파 껍질은 잘 벗겼는데
감자 껍질 대신 손가락 껍질을 벗겼다
피 묻은 감자를 씻어서 잘게 잘랐다
감자 대신 손가락을 자르진 않았다
다행이다
언제든 다칠 수 있는 인간의 약한 몸을 생각하면서 카레를 만든다
그 몸을 지탱하기 위해 잘게 다져진 재료들
결코 단단하지 않은 것들끼리 어울려 산다
아무 재료나 넣어도 맛있는 마법의 가루
인도에서 시작해서 영국과 일본을 거쳐 전세계로 퍼지면서
내 밥상에 올라온 세월을 생각하면서 카레를 먹는다
입 안의 카레향은 누군가의 희생
결코 옳지 않은 일들로 하루를 산다
강황과 울금 사이
커리와 카레 사이
감자껍질과 손가락 껍질 사이
마주 않은 나와 너 사이에서
카레를 먹는다

AND

뼈해장국을 먹다

어제도 술을 마셨다
장터 국밥집에서 뼈해장국을 먹는다
우거지, 올갱이, 콩나물 해장국도 있고 짬뽕을 먹어도 되지만
뼈해장국을 먹어야 할 것 같은 날이 있다
숙취로 정강이나 무릎뼈가 쑤신날이 있다​
40년을 먹어봐도 해장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이 해장이니 뼈해장국을 먹는다
남의 뼈로 내 뼈가 단단해지는 기분으로 뼈해장국을 먹는다
스페인, 독일에서 온 돼지등뼈에서 살을 발라내면서
죽어서 바다를 건넌 돼지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세상을
훗날, 유럽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해장국집을 차릴 생각을 한다
뼛국물을 바닥까지 비우고 나온 국밥집 앞
인파 사이로 뼈를 삶는 솥뚜껑이 들썩거리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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