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10

2007. 8. 24. 22:32

 입추가 지나자마자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아직 말복은 안지났을텐데...ㅋㅋ


   우리들의 양식                 -이성부-


모두 서둘고, 침략처럼 활발한 저녁
내 손은 외국산 베니어를 만지면서
귀가하는 길목의 허름한 자유와
뿌리 깊은 거리와 식사와
거기 모인 구릿빛 건강의 힘을 쌓아둔다.
톱날에 잘리는 베니어의 섬세,
쾌락의 깊이보다 더 깊게
파고들어 가는 노을녘의 기교들.
잘 한다 잘 한다고 누가 말했어.
빛나는 구두의 위대를 남기면서
늠름히 돌아보는 젊은 아저씨.
역사적인 집이야, 조심히 일하도록.
흥, 나는 도무지 엉터리 손발이고
밤이면 건방진 책을 읽고 라디오를 들었다.
해머 소리, 자갈을 나르는 아낙네가 십여 명,
몇 사람의 남자는 철근을 정돈한다.
순박하고 땀에 물든 사람들
힘을 사랑하고, 배운 일을 경멸하는 사람들,
저녁상과 젊은 아내가 당신들을 기다린다.
일찍 돌아간다고 당신들은 뱉어내며
그러나 어딘가 거쳐서 헤어지는
그 허술한 공복
어쩌면 번쩍이는 누우런 연애.
거기엔 입, 입들이 살아 있고 천재가 살아 있다.
아직은 숙달되지 못한 노오란 나의 음주,
친구에게는 단호하게 지껄이며
나도 또한 제왕처럼 돌아갈 것이다.
늦도록 잠을 잃고 기다리던 내 아내
문밖에 나와 서 있는 사람
비틀거리며 내 방에 이르면
구석 어딘가에 저녁이 죽어 있다.
아아, 내 톱날에 잘리는 외국산 나무들.
외롭게 잘려서, 얼굴을 내놓는 김치, 깍두기,
차고 미끄러운, 된장국 시간.
베니어는 잘려 나가고
무거운 내 머리, 어제 읽은 페이지가 잘려 나간다.
허리 부러진 흙의 이야기
활자들도 하나씩 기어서 달아나는
뒹구는 낱말, 그 밥알들을 나는 먹겠지.
상을 물리고 건방진 책을 읽기 위하여
나는 잠시 아내를 멀리하면
바람이 차네요. 그만 주무셔요.
퍽 언짢은 자색 이불 속에 누워
아내는 몇 차례 몸을 뒤채지만
젊은 아내여 내가 들고 오는 도시락의 무게를
구멍 난 내 바짓가랑이의 시대를
그러나 나는 읽고 있다.
모두 서둘고, 침략처럼 활발한 저녁
철근공, 십여 명 아낙네, 스스로의 해방으로 사라진 뒤,
빈 공사장에서 녹슨 서풍이 불어올 때
나도 일어서서 가야 한다면
계절은 몰래 와서 잠자고, 미움의 짙은 때가 쌓이고
돌아볼 아무런 역사마저 사라진다.
목에 흰 수건을 두른 저 거리의 일꾼들
담배를 피워물고 뿔뿔이 헤어지는
저 떨리는 민주의 일부, 시민의 일부.
우리들은 모두 저렇게 어디론가 떨어져 간다.
AND

리스본쟁탈전

2007. 8. 24. 22:29
그럼 그냥 듣기만 해요, 내가 선생님한테 전화한 건 외로웠기 때문이에요, 선생님이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선생님이 내 건강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리고. 마리아 사라. 내 이름을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아요. 마리아 사라, 난 당신이 좋아요.  긴 침묵이 흘렀다.그런가요. 정말이에요. 그 말을 하려고 뜸을 참 많이도 들였네요. 어쩌면 절대 말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왜요. 우린 서로 달라요,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어요. 선생님과 내 세계의 차이점에 대해 선생님이 뭘 알아요. 짐작하고 관찰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릴 수는 있죠. 그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옳은 결론을 내릴 수도 있고, 틀린 결론을 내릴 수 도 있어요. 맞아요, 지금 나의 가장 큰 실수는 당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거예요. 왜요. 난 당신 사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혹시 당신이. 결혼했냐고요. 예,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약속한 사람이 있냐고요, 이건 구식 표현이지만.  예. 뭐, 내가 이미 결혼했거나 약혼했다면, 선생님이 날 좋아하지 않게 될까요. 아뇨. 만약 내가 정말로 누군가와 결혼했거나 약혼했다면, 선생님을 좋아하지 말아야 하나요, 내 마음이 그런데도. 잘 모르겠어요.그럼 내가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걸 선생님도 알고 있군요. 긴 침묵이 흘렀다.그런가요. 예, 그래요. 저기요, 마리아 사라. 얘기하세요, 라이문두, 하지만 먼저 말하는데, 난 삼년 전에 이혼했고, 석 달 전에 남자와 헤어진 후로 아직 아무도 사귀지 않았어요, 아이는 없지만 무척 아이를 갖고 싶어요, 지금 결혼한 오빠와 같이 살고 있는데, 아까 전화를 받은 사람은 내 올케예요, 어제 당신 집에서 내 전화를 받은 사람이 누군지는 말하지 않아도 돼요, 그 여자는 당신 파출부죠, 자, 교정자 씨, 이제 말해도 돼요, 내가 이렇게 성질을 부린 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너무 기뻐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그런 거니까. 왜 나를 좋아하는 거죠.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그냥 선생님이 좋아요. 그럼 일단 나를 알고 나면 날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런일이 가끔 일어나기도 하죠, 사실, 아주 자주 일어나요. 그래서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니에요, 서로를 아는 데는 시간이 걸려요. 난 당신이 좋아요. 난 그 말을 믿어요.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문장을 쓰는 법도 내용도 다 너무 좋다. 돌뗏목 때 처럼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좋았다고 할 순 없지만 정말 대단한 작가다. 부러워만 하는 내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사라마구씨. 아직도 '히카르도 헤이스가 죽은 해'가 번역되길 기다리면서.....2007년 3월

AND

야채사 - 김경미

2007. 8. 24. 22:26

 야채사(野菜史) / 김경미

 

 고구마, 가지 같은 야채들도 애초에는
 꽃이었다 한다
 잎이나 줄기가 유독 인간의 입에 단 바람에
 꽃에서 야채가 되었다 한다
 맛없었으면 오늘날 호박이며 양파꽃들도
 장미꽃처럼 꽃가게를 채우고 세레나데가 되고
 검은 영정 앞 국화꽃 대신 감자꽃 수북하겠다

 사막도 애초에는 오아시스였다고 한다
 아니 오아시스가 원래 사막이었다던가
 그게 아니라 낙타가 원래는 사람이어다고 한다
 사람이 원래 낙타였는데 팔다리가 워낙 맛있다보니
 사람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여하튼 당신도 애초에는 나였다
 내가 원래 당신에게서 갈라져나왔든가


오랜만에 김경미 시인 어딘가에 댓글을 달았던 마지막 연... 좋다!

무덤들마다 감자꽃 수북한 그림이 떠오른다.

way가 꼭 읽고 뭔가 느꼈으면 해서 올렸던 시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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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펭 아질에서 / 박정대 

당신 이번 여름에 텅 빈 파리로 와요 몽마르트에 있는 라펭 아질로 와요 지나간 샹송들을 들을 수 있는 라펭 아질로 와요 원래는 카바레 드 자사생으로 불리던 곳 암살자의 주점에서 나 당신을 기다려요 당신 이번 여름에 카바레 드 자사생으로 와요 와서 삶의 두통들을 모두 암살해 버려요 당신의 멋진 덧니로 그것들을 다 암살해 버려요 그리고 밤새 우리 죽도록 사랑을 나눠요 사랑한다는 건 함께 고요히 죽어간다는 거 아마 밤새도록 나는 당신을 죽일 거예요 내 거친 수염으로 당신을 암살할 거예요 웃지 말아요, 당신 추억이 고통스럽다면 추억을 암살하러 와요 당신은 나를 죽이고 나는 당신을 암살하겠지요 아무도 모르게 우리 암살자의 주점에서 만나요 당신은 사랑의 맹독으로 나를 암살해 줘요 나는 밤새도록 당신을 만지고 그러면 당신도 밤새도록 나를 만지겠지요 그리고 우리 그냥 서로에게 암살당해요 우리가 그렇게 죽는다면 그건 암살자의 주점 탓이지요 라펭 아질이든, 카바레 드 자사생이든 당신을 만나서 당신을 암살하고 싶어요 그리고 죽은 당신의 귀에 대고 오래도록 달콤하게 사랑한다고 속삭일래요 암살자의 주점으로 어서와요, 당신 암살자의 주점에서 나 당신을 기다려요 당신 내 취향이에요, 어서와요, 당신 이미 죽은 당신, 내가 죽인 당신 다시 죽이고 싶은 그리운 당신


어쩌다보니 박정대의 시집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하나씩 풀어줘야지~~

AND

어젯밤 'NHK에 어서오세요' 만화책을 읽었다. '남의 눈에 나쁘게 보이는 것이 싫어서 밖엘 나가지않는다'라... 비약일 수도 있지만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게다가 오늘 연이어 읽기 시작한 소설의 초반에

'나는 남들에게 나를 보이려고 애쓴다. 밖에 나갔다가 목이 마르지도 않은데 주스를 살 때가 있다......몇 달 전에 신문에서 광고를 하나 봤다. "데생 수업에 누드모델 구함. 시간당 15달러." 너무 좋은 내용이었다. 이게 진짠가 싶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쳐다본다니.

다 읽지는 않았지만 다시 생각할 수 있게된 죽음에 관한 구절

'그후 나는 나나 부모님 중 누가 죽을까 봐 두려웠다. 어머니가 가장 걱정되었다. 어머니는 우리 세계의 축이었다. 구름 속에서 인생을 보내는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이성이라는 냉정한 힘으로 이 우주를 돌렸다. 어머니는 모든 논쟁의 재판관이었다. 어머니가 한마디라도 인정하지 않는 짓을 저지를라치면 우리는 구석에서 울면서 닥쳐올 순례의 길을 꿈꾸었다. 그런데도. 입맞춤 한 번이면 우리는 다시 왕자가 되었다. 어머니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주인공은 죽는 것이 무엇인지 9살에 처음 이해했다는데,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우주와 어머니와 죽음을 아우르는 구절이었다. 좋았다.

 니콜 크라우스 '사랑의 역사' 폴 오스터의 '리바이어던'이 생각났다. way는 어떻게 신랑의 작품을 영화로 만든 것만 보고 폴 오스터를 떠올렸을까? 멋진데...

AND

겹 - 이별률-

2007. 8. 24. 22:17
겹   -이병률-

 나에겐 쉰이 넘은 형이 하나 있다
 그가 사촌인지 육촌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모른다

 태백 어디쯤에서, 봉화 어디쯤에서 돌아갈 차비가 없다며
 돈을 부치라고 하면 나에게 돌아오지도 않을 형에게
 삼만원도 부치고 오만원도 부친다

 돌아와서도 나에게 전화 한통 하지 않는 형에게
 또 아주 먼 곳에서 돈이 떨어졌다며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나는

 나는 그가 관계인지 높이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잘 모른다

 단지 그가 더 멀리 먼 곳으로 갔으면 하고 바랄 뿐
 그래서 오만원을 부치라 하면 부치고
 십만원을 부치라 하면 부치며
 거의 갈라진 말소리에 대답하고 싶은 것이다

 그가 어느 먼 바닷가에서 행려병자 되어 있다고
 누군가 연락해왔을 땐 그의 낡은 지갑 속에
 내 전화번호 적힌 오래된 종이가 있더라는 것
 종이 뒤에는 내게서 받은 돈과 날짜 들이
 깨알같이 적혀 있더라는 것

 어수룩하게 그를 데리러 가는 나는 도착하지도 않아
 그에게 종아리이거나 두툼한 옷이거나
 그도 아니면 겹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할 뿐
 어디 더 더 먼 곳에서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했으면 하고
 자꾸 바라보고 또 바랄 뿐


고구미와 내 관계가 이렇게 되면 어떨까? 누가 누구의 겹이 될까? 최근에는 절연이란 시를
읽었는데 정말 좋았다!

AND

20070308 눈과 기형도

2007. 8. 24. 22:12
국립의료원에 가는데 눈이 왔다. 어제 못 잤지만 그렇게 많이 피곤하진 않았다.
way의 여행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다. 예방 접종이 꽤 오래걸려서 밖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데 눈이 많이 왔다. 갑자기 기형도가 생각났다. 아니 이 시가 생각났다.

   

             진눈깨비      /    기형도

 때마침 진눈깨비 흩날린다.
 코트 주머니 속에는 딱딱한 손이 들어있다.

 저 눈발은 내가 모르던 거리를 저벅거리며
 여태껏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내들과 건물들 사이를 헤맬 것이다.

 눈 길 위로 사각의 서류봉투가 떨어진다.
 허리를 나는 굽히다 말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참 많은 각오를 했었다.

 내린다 진눈개비, 놀라 넋도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
 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낸 추억들이 밟히고,
 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지해 있다.

 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진눈개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



소리내서 읽으면 더 좋은 시인 것 같다. 조동진의 '진눈깨비'라도 들을까....

추가로 이 글에 내가 달았던 댓글 - 국립의료원에서 나오는데 way가 지치고 피곤하냐고 했는데, 나는 모처럼 눈물이 날 것 같았던 게 아니라 눈물이 나는 것을 참았다. 울컥

AND

만화방창 -김용택-

2007. 8. 24. 22:07
김용택 / 만화방창
 
 
 
내 안
 
어느 곳에
 
그토록 뜨겁고 찬란한 불덩이가 숨어 있었던가요
 
한 생을 피우지 못하고 캄캄하던 내 꽃봉오리,
 
꽃잎 한 장까지 화알짝 피워졌답니다
 
 
 
그대
앞에서
 
 

 

 
습자지 같은 사랑이...더라도...
 
萬化方暢을 영어로 하면 burst open 쯤 된다.
 
피어 오르는 건 뭐든 아름답다.
AND

 way 바래주러 나갔다. 집 앞에서 공항버스 타려다가 차가 많이 밀리길래 공항지하철도(?)를 이용했다. 공항버스 보다 50 퍼센트 이상 저렴하다. 인천국제공항이 처음 생긱고 얼마 안 되었을 때, 그곳의 상가들도 아직 다 입주하지 않았을 때, 그곳에 가서 참 이질적이라고 느꼈다. 지나치게 도시적인 모습... 왠지 공기가 잘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지하에 넓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코엑스 몰'도 조금 비슷한 느낌이고, 현대 백화점과 CBS, 하이페리온이 쭉 늘어서 있는 목동 도서관 뒷길도...... 아주 예전의 도떼기 시장 같이 않고 잠잠했던 백화점도....... 늘 어색했다.

 공항 건물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조용한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했다.

언덕위에 바다가 보이고 언덕 아래까지는 구불구불한 좁은 흙길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오늘 오랜만에 다시 그 생각을... 그리고 이 시...


           산머루 / 고형렬

 

 강원도 부론면 어디쯤 멀리 가서

 서울의 미운 사람들이 그리워졌으면.

 옛날 서울을 처음 올 때처럼

 보고 싶었던 사람들, 그 이름들

 어느새 이렇게 미워지고 늙었다.

 다시 전부 어디쯤 멀리 떨어져 살아

 미워진 사람들 다시 보고 싶게

 시기와 욕심조차 아름다워졌으면.

 가뭄 끝에 펑펑 쏟아지는 눈처럼

 서울 어느 밤의 특설령처럼

 못 견디게 그리운 사랑이 되었으면.

 그러나 우린 모두 사라질 것이다. 

AND

반성 39 - 김영승-

2007. 8. 24. 22:01
     반성 39 / 김영승

 오랜만에 아내를 만나 함께 자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왔다.

 
아내는 갈비탕을 먹자고 했고

 그래서 우리는 갈비탕을 한 그릇씩 먹었다.

 버스 안에서 아내는 아아 배불러

 그렇게 중얼거렸다.

 너는 두 그릇 먹어서 그렇지

 그러자 아내는 나를 막 때리면서 웃었다.

 하얗게 눈을 흘기며 킥킥 웃었다.

 한 친구가 어느 드라마의 불륜 커플이 다시는 만나지 않기로 안타까운 이별을 하면서 여관을 나와서 순대국을 먹고 말 없이 헤어지는 장면이 인상적이 었다고 했다. 그 친구와 그의 여자친구는 약간은 그럴것도 같은 분위기였다. 김영승 시인은 아내와 여관을 나와 갈비탕을 먹었다. 섹스 후에는 걸죽한 게 좋긴 하지.... way는 뼈해장국을 좋아한다. 나는 아무거나 다 좋아하고... 내 습자지 같은 사랑이 그리 걸죽하지도 않았고 당신의 받아들임도 끈끈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걸죽했다.
 모든 것이 변한다면 더 힘든 것은 당신일 것을 안다. 모든 것이 변해있을 거라고 말한게 그대로인 변함을 말한건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시 웃겨줄테니 건강히 돌아와라... 그런 건 처음인 내 웃음도 다시 볼 수 있겠지..
 
 그 친구 커플은 결혼한다. 곧!  
 
 나는 김영승이란 사람이 좋다.

AND

첫눈 - 정양

2007. 8. 24. 21:57

한번 빚진 도깨비는
갚아도 갚아도 갚은 것을
금방 잊어버리고
한평생 그걸 갚는다고 한다
먹어도 먹어도 허천나던
흉년의 허기도 그 비슷했던가
보고 싶어도 보고 싶어도
소용없는 사람아
내려도 내려도 다 녹아버리는
저 첫눈 보아라
몇 평생 갚아도 모자랄
폭폭한 빚더미처럼
먼 산마루에만
희끗거리며 눈이 쌓인다






나는 허천난다는 말이 좋다. 외로울 때 쓰기 좋은 말이다.

AND

사카구치 안고

2007. 8. 24. 21:49

 사카구치 안고를 읽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려다 실패해서
그대로 옮겨본다.

 견디기 힘든 것을 참고, 참기 힘든 것을 참으며 짐의 명령에 따라 달라고 천황이 말한다. 그러자 국민은 엎드려 울며 다름 아닌 폐하의 명령이니까, 참기 힘들지만 억지로 참으며 미군에게 지겠노라고 한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우리들 국민은 전쟁을 그만두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지 않았는가. 죽창을 들고 흔들며 미군의 전차에 대항하다 찰흙 인형처럼 풀쑥풀쑥 죽어갈 것이 너무도 싫어 어쩔 줄 몰라 하지 않았는가. 전쟁이 끝날 것을 가장 절실히 바랐었다. 그런 주제에 그걸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의명분이라고 하고, 천황의 명령이라고 한다. 참기 힘든 것을 참는다고 한다.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비참하고도 한심하다 할 엄청난 역사적 기만이 아닌가. 더욱 통탄할 일은 그럼에도 우리는 그 기만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천황의 정전 명령이 없었다면, 우리는 실제로 미군 전차에 몸을 던져, 정말은 싫으면서도 내색도 하지 않고 장렬하게 찰흙 인형이 되어 풀쑥풀쑥 죽어갔을 것이다.     -속 타락론 중에서-

'백치'라는 작품도 꽤 좋았고 정치의 무용성과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문제를 다른 이야기도 즐거웠다. 그리고 역시 벚꽃은 불길한 징조임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황색눈물'이란 영화에서 작가 지망생이 좋아하는 찻집 아가씨에게 타락론 읽었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AND

부부 - 박성우

2007. 8. 24. 21:45

주방장 모자 눌러 쓴 부부가

할로겐램프를 켠다

가스 켜지고 발전기 윙윙 돌아

옛날호떡 국화빵 애플파이

라고 써진 글씨가 환해진다

말랑말랑한 밀가루 반죽,

옛날호떡 국화빵 애플파이 된다

리어카 두 대 이어붙인 가게로

축제를 보고 가는 사람들이 흘러든다

눈짓 손짓 얼굴표정만으로도

벙어리 부부는 손발이 척척 맞는다

얼마씩 파냐고 물어오는 사람에게

아내는 가격표를 손등으로 툭툭,

두들겨 주고는 국화빵기계 돌린다

낮 단속에 걸렸을 때

눈말 멀뚱멀뚱 가스통을 뺏기던 부부,

빠져나오지 않는 말들을 말랑말랑 뭉쳐

옛날호떡 국화빵 애플파이 만든다

AND

20060526 한유주란 사람

2007. 8. 24. 21:25
<우울한 발견>이란 단편을 읽다. 글장난에 반하다.

나는 여전히 잃을 것이 너무나 많았다. 살아야 하는 날들은 언제나 안전하고 견고한 담보를 요구했다. 오늘 나는 야생성을 되찾겠지만, 내일 나는 다시 온순하게 길들여진다. 순간들은 급박하게 지나갔지만 나는, 그리고 사람들은, 세계는 언제나 권태로웠다. 그런 때마다 나는 베를린에 온 것을 짧게 후회했다. 무덤도 없는 죽음, 대상도 없는 슬픔. 이미 죽어버리는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과 오늘이 내일이 되고 내일은 다시 어제가 된다는 단순한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우리는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언제나 까닭도 없이 우울했고, 우울은 언젠가 내 손가락 마디마디부터 가장 가느다란 신경 하나까지 침식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잊고 싶은 기억들이 있었으나 그 기억들을 잊고 싶어 한다는 사실만큼은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들은 흘러갔다. (중략) 사람들은 모두 조금씩은 내가 네가 되는 순간, 을 꿈꾼다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비밀을 필요로 했고, 서로 어울리기 위해서는 비밀을 슬쩍 풀어놓아야 했다. 우리는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을 애도하고, 찢겨나간 페이지들처럼 이미 없는 시간들을 그리워한다.
AND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2007. 8. 24. 21:23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희덕-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AND

관계 -김선우-

(고백할 게 있어 어떤 벌레에 관한 얘긴데 말야
달팽이 몸속에서 알을 까고 자라난대)
두려워하진 마 암세포처럼 무식하게
숙주를 절명시키진 않아 기어다니거나
교접하는 데에도 아무 문제 없어 넌 열심히
먹이를 찾아다니고 나는 무럭무럭 커가는 거야
(놀랍지 않아? 몸속에 뭔가 기르고 있다는 거)
근데 말이지 난 이제 다 커버렸고
장년기를 보내기에 넌 너무 작고 초라해
좀더 쾌적한 새의 창자 안에서
말년을 보내는 게 내 운명이야
네 여린 눈자루로 침입해 들어갈 거야 고통도 없이
영문도 모르고 네 머리는 광채를 뿜어내겠지
넌 이제 한가롭게 마지막 산보를 즐기면 돼
멀리서 늠름한 새의 발톱이
빛나는 네 등짝을 찍으러 날아올 테니까
한평생 배밀이로 기어다니다
무덤도 없이 가랑잎 위에 뒹구는 걸 생각해봐
쓸쓸한 죽음은 질색이야 구름위를 날게 해줄게
따듯하게 버무려지는 네 육즙을 맛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송곡을 들려주겠어
새로운 내 집이 맘에 들 거야 짓이겨지면서,
그때야 넌 모든 걸 깨달을지 모르지만
모든 끝장은 단호한 거야 난 네게 빚 없어
(놀랍지 않아? 날 키운 건 너야)


봄밤 - 김수영

고향 오라버니 같은 남자와 마주앉아 술을 마신다.
뚝배기 속에서 끓는 번데기.
다섯 잠을 자던 누에는 무슨 꿈을 꾸었던 것일까.
다섯 겹 혹은 일곱 겹 주름을 뒤적이며
무심하게 안부를 묻는다.

이십대와 삼십대를 건너뛰는 동안
그리워할 일도 미워할 일도 없었던 것일까.
사각사각 푸른 뽕잎 위에 누워 낮잠을 잔 것처럼
눈이 부셔 흐린 안경을 잠깐 닦았던 것뿐인데....
우리는 그림자끼리 마주 앉아 있다.

그는 취하지도 않고 비틀거리지도 않고,
나는 젖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돌아서 가는 등 뒤로 마른 산처럼 어깨가 솟아있다.
나보다 10년을 또 먼저 가는 사람.
하염없이 흔들흔들 산길을 걷고 싶은 밤,
살찐 봄바람만 낯익은 골목으로 불어온다.
날개는 다들 어디다 벗어두었을까.

AND

무너지는 새 -마종기

2007. 8. 23. 11:56
 무너지는 새

가을이 되면 새들은 모두
함께 무리져서 날으기 시작한다.
끼리끼리 같은 방향으로 날기 시작하고
노래도 같은 곡조를 부르기 시작한다.
(자기 무게를 모르는 새들만
높이 날 수 가 있다고 했지.)

한 떼의 새가 몰려온 적이 있었다.
건강한 날개의 노래를 부르면서
어울려 소주를 마시면서 살자고 했다.
나는 과학같이 정확하고 싶었다.
(가을이 되기 전에 내가 떠났다.)

그 후에 가을이 되면 나는 하늘을 본다.
하늘을 보면 언제나 다 보인다.
한 떼의 새가 날아간 자리에
혼자 있구나, 하고 써 있는 게 보인다.
(혼자 있으면 생각이 많아지지.
많으면 날을 수가 없지.)

혼자 있구나. 나도 모르는 탈바가지 쓰고
어지럼증에 시달리는 톱니바퀴의 한평생.
날개에 묻은 많은 기름을 씻을 수가 없다.

이승의 무게를 버리려고 무너지는 새.


way가 '바람의 말'을 좋아해서 내가 찾아낸 시랄까? 암튼 좋은 시다!
어쩌면 way가 좋다고 했던 내가 쓴 글에 어두운 하늘에서 밝은 하늘 쪽으로 날아가는 새들과
닮아서 바로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 길들과 그 하늘들, 그 공기들이 좋다.
나라는 전체가 흡수.
흡수는 함께일 때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물론, 혼자일때 더 큰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2006년 겨울 환기미술관에 다녀와서-

AND

어디에선가 우리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별자리로 향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소, 그런데 그 별자리는 또 우주의 어느 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거요, 나도 더 알고 싶지만 자세한 내용은 모르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요, 여기를 보시오, 우리는 반도에 있소, 반도는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소, 바다는 자신이 속한 지구와 함께 돌고 있소, 지구는 자전을 하지만 태양 주위를 돌기도 하오, 태양 역시 자전을 하고 있소, 그러니까 이 모두가 앞서 말한 별자리를 향해 하고 있는 거요, 따라서 나는 혹시나 우리가 이 운동 내의 운동으로 연결되는 사슬에서 마지막 고리가 아닌지 자문해 보고 있는 거요, 사실 내가 궁금한 건 우리 안에서는 무엇이 움직이느냐, 그것은 어디로 가느냐 하는 거요, 아니, 아니, 나는 벌레나 세균이나 박테리아, 그러니까 우리 안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오,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소, 별자리, 은하계, 태양계, 태양, 지구, 바다, 반도와 되셰보가 움직이면서 자기들과 더불어 우리를 움직이듯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동시에 우리를 움직이는 어떤 것 말이오, 그러니까 나머지 전체를 움직이는 것의 이름은 무엇이냐 하는 거요, 사슬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어쩌면 사슬은 없고 우주는 하나의 고리인지도 모르겠소, 아주 가늘어서 우리와 우리 안에 있는 것만 들어갈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아주 굵어서 최대 크기의 우주, 즉 고리 자체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말이오,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는 것의 이름은 뭘까. 보이지 않는 존재는 인간과 함께 시작됩니다.

 

 아주 긴 질문, 간단하고 놀라운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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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찍은 사진들

사진 2007. 8. 23. 08:41
원래 사진 찍는 걸 별로 안 좋아했는데, way가 떠나고 심심해서일까~~
좋은 얼굴을 하고 있는 하늘을 보면 자꾸 찍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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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오후 출근때~ 하늘 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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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선 공사현장 - 이 카메라 산산조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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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사진 - 회사 옥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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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미군과 울진

사진 2007. 8. 22. 15:19
에 다녀왔다. 남미행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역시나 고구미군은 좋은 친구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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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 카메라의 파노라마 기능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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