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2 - 비관

그때그때 2020. 4. 2. 10:29

출근길에 늘 같은 편의점에 들러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 먹는다. 플라스틱 뚜껑은 안 씌우지만 자동차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종이컵이 쌓인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해 버렸다. 커피 한 잔 사 먹는 일로도 양심과 비양심의 경계를 넘나든다.

​점심밥은 회사에서 먹는다. 한 달 식대 5만원, 싸게 잘 먹고 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요즘은 더 전투적으로 먹는다. 전쟁나서 피난 중에 따뜻한 밥 한 끼 먹게 됐다는 심정으로, 지금 먹는 밥이 풍족하게 먹는 마지막 끼니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먹는다.

​저녁밥은 집에서 먹는다. 점심과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먹는다. 아내 왈 '이렇게 잘 먹는데, 내가 손이 작아서 미안하다.'고 해서 같이 웃었다. 가끔 야식으로 집에서 비비고 만두를 먹거나 집 앞에 나가서 순대를 사 먹는다.

​잘 먹고 산다.

​아침에 북극 오존층이 뚫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세상이 끝났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막 살고 막 먹고 해야 하는데, 실제로 어떤 상황이 닥치기 전에는 그러기 쉽지 않은 게 삶의 속성이다.

​호주에 산불이 났고 코로나 19가 인류를 덮쳤다. 틀린 작명은 아니지만 코로나 블루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우울이 있다. 세상이 끝났다는 나의 비관도 큰 그림에서는 코로나 블루다. 푸른 별 지구에서 푸른빛으로 죽는다? 나쁘지 않다.

​오늘은 날이 쨍하길래 출근길에 차를 잠깐 세우고 꽃구경을 했다. 예뻤다. 지금보는 벚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잠깐의 시간을 즐겼다. 차 앞유리에 꽃이 떨어져서 공중에 멈춘 것처럼 보였다. 나도 언젠가 이렇게 멈출 것이다. 남은 삶은 이렇게 우연으로만 살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루고 싶은 일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 없다. 나이 먹을 수록 먹고 자는 일처럼  단순한 열망만 남는다. 그래서인지 가끔 클래시컬하게 맨 탕수육에 양조 간장 찍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오랜만에 쓰는 일기가 제목부터 비관이다. 지금 나에게는 비관과 낙관이 공존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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