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엔 목욕탕에 갔댔는데, 어제는 이발소에 다녀왔다. 다녀오면 새롭게 태어난다는 점에서 두 장소는 같은 카테고리다. 중고등학생 때 이발소에 다녀 버릇해서 그런지 나는 미용실보다 이발소가 더 푸근하다.
미장원이나 미용실이란 명칭도 꽤 예전에 쓰던 말이다. 말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미용실> 보다는 <헤어>가 들어가는 간판이 많다. <헤어>도 옛날 말인가? 40대인 내 세대만 해도 이발소에 가는 사람이 많지 않고 이발소란 곳은 이발사도 손님들도 최소 60살은 넘어 보이는 분들이 대부분이니 지구 멸망보다 이발소란 말이 사라지는 일이 먼저 일지도 모른다.
머리를 자른다는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보니 자르는 사람과 잘리는 사람의 합이 중요하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곳에 쭉 가게 된다. - 정선에서는 주로 예쁜이 미용실엘 갔다. 여기 아주머니는 머리 감을 때, 머리를 시원하게 눌러주셨다. - 어제 갔던 세영이발소는 친구와 이름이 같아서 몇 해 전에 처음 갔었는데, 70은 훌쩍 넘었음이 분명한 아저씨가 혼자 운영한다. 오직 가위로만 머리를 잘라주는데, 그 속도가 빠르다. 말도 많이 안 하시고 이발소의 하이라이트인 면도도 아주 깔끔하다. 눈썹을 제외한 얼굴의 모든 털이 사라지면 얼굴이 미끈해서 아기같고 새로 태어나는 일이 완성된다. 커트만 하면 만 천원인데 먼저 천원짜리가 없어서 이 만원을 드렸더니 만 원짜리 한 장만 받기도 했다. 그래서 왠만하면여기서 머리 자르려고 한다.
한 번은 여기가 휴가인 줄 모르고 찾아 갔다가 머리가 너무 자르고 싶었기에 바로 옆에 로얄 이발소에 갔다. 아저씨가 말은 많고 단순 커트에 머리도 감기는 둥 마는 둥 하고서 2만원을 달라길래 따지지 않고 그냥 줬는데 엄청 기분 나빴다. 다시는 안 간다. - 세영이발소는 면도 포함 13000원 - 바로 옆에 붙은 가게고 주인장의 연령대도 비슷한데 그렇게 차이가 난다. 고약한 노인들이 있다. 아니, 고약한 사람들이 있다.
친구 S가 영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을 참 좋아했는데, 그 영화는 여자 이발사와 이발사의 남편 얘기다. 남장을 한 여자 이발사가 나오는 한국 단편 영화도 생각난다. 두 영화 다 사랑에 대한 영화다. 내 머리칼을 잘라주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 "당신 머리칼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그 머리칼로 날 죽여주세요." -
미용실에선 누워서 머리를 감겨주지만 이발소는 엎드려서 머리를 감겨준다. 내가 이 얘기를 했을 때, 어느 시인이 겸손하게 살라고 그러는 것이라고 해서 감탄했었다. 겸손하게 살아야지. 남의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건 무척 솔직한 직업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몸으로 무언가를 대하는 솔직한 직업은 부모들이 바라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발소 얘기가 주저리 길어졌다. 오랜만에 단골 이발소에서 머리 자르고 면도까지 해서 기분 좋다는 얘기.
면도에 관한 짧은 글을 남긴다.
수염과 면도칼이 교차되고 그 사이로 나와 이발사가 교감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