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화분에 물을 준다
아직 잎도 나오지 않은 어린 것
흙속에서 생각에 잠긴 해바라기 씨앗
간질간질한 껍질
축축해지는 머리 끝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
나는 어디가 아픈것도 아닌데
생기 없이 집안에 틀어박혀서
오직 생활만을 생각한다
나, 당신, 우리, 생활..... 무능
멍하니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베란다에 오후가 내려 앉았다
화분에 흙이 말랐다
해바라기
화분에 물을 준다
아직 잎도 나오지 않은 어린 것
흙속에서 생각에 잠긴 해바라기 씨앗
간질간질한 껍질
축축해지는 머리 끝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
나는 어디가 아픈것도 아닌데
생기 없이 집안에 틀어박혀서
오직 생활만을 생각한다
나, 당신, 우리, 생활..... 무능
멍하니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베란다에 오후가 내려 앉았다
화분에 흙이 말랐다
인연
당신이 말했다
네가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사람은 전생에 너를 죽인 사람이니 무조건 피해라
그 말을 남기고 이 생에 처음 만난 사람이 나를 떠났다
당신은 이 생에 나를 죽인 사람
나는 전생에 당신을 죽인 사람
우리는 죽어서야 이루어질 인연
밤
네가 나를 지켜준다는 기분이 들었던 밤
많은 꿈과 많은 깸
눈을 떴을 때 내 옆엔 너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안아주는 너
이를 가는 너
내 몸에 발을 올리는 너
내 눈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너
뒤척이는 너
그렇게 나를 지켜주는 너
밤이 지나고
수화기 넘어 목소리로도 나를 지켜주는 너
멀리서 내 이름을 불러주는 너
나도 너에게 그러했으면
너도 사랑이라 느꼈으면
많은 밤들이 네게도 속삭였으면
p.196
그렇다. 내 행복과 불행은 문제가 아니다. 세쓰코의 행복이나 불행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세대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
머잖아 우리가 정말로 늙었을 때, 젊은 사람들이 물을지도모른다. 당신의 젊은 시절은 어땠냐고. 그때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우리 때에도 똑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어려움이기는 하겠지만,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움에 익숙해지며 이렇게 늙어왔다. 하지만 우리 중에도 시대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로 용감하게 진출하고자 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답을 들은 젊은이 중 누구든 옛날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데, 지금 우리도 그런 용기를 갖자고 생각한다면 거기까지 늙어간 우리의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짐을 부쳐 텅 빈 방안에 노을이 물들었다. 이 방에서 지내는 것도 앞으로 하루이틀이다. 그러나 그걸로 됐다. 우리는 날마다 모든 것과 이별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시야는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조금 눅눅해진 것 같다. 창을 닫아야지. 도호쿠 쪽은 아마 아직 추울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세쓰코의 상처 자리가 아프진 않을지. 아프다면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데.....
-> 신형철의 추천으로 읽었다. 마지막 문단에 전율을 느꼈다. 상실의 시대 마지막도 생각났다.
p.264~ 하지만 이미 둘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조금 전처럼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스토너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잘 마셨다고 인사한 뒤 작별인사를 했다. 드라스콜은 문까지 그를 배웅해주었지만,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할 때는 거의 무뚝뚝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밖은 어두웠다. 봄의 싸늘함이 저녁 공기 속에 베어 있었다. 스토너가 심호흡을 하자 그 서늘한 기운에 몸이 찌릿찌릿하는 것이 느껴졌다. 들쭉날쭉한 집들의 윤곽 너머로 시내의 불빛들이 엷은 안개 속에서 반짝였다. 길모퉁이의 가로등이 사방에서 다가오는 어둠을 힘없이 밀어내고 있었다. 그 너머의 어둠 속에서 갑자기 웃음소리가 터져나와 잠시 머무르다가 사라졌다. 뒷마당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냄새는 안개에 붙들려 있었다. 스토너는 저녁 풍경 속을 천천히 걸으면서 그 향기를 들이마시고 혀에 닿는 싸늘한 밤공기를 맛보았다. 그가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으로 충분해서 더 이상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연애를 했다.
p.392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윌리엄 스토너란 사람이 어떤 삶을 살다 죽었다는 이야기다. 책의 첫장을 읽다가 작년에 읽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냥 다시 읽었다. 설명은 못하겠는데, 좋다.
도리스 레싱의 "풀잎은 노래한다"도 오늘 마저 읽었는데, 그 책의 주인공 메리가 스토너의 아내 이디스와 비슷한 신경증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