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회를 먹다

친구를 만났다
오후 세 시,
바닷가에서,
10년만에,
풍년이라는 오징어 회를 먹는다
10년 전도 지금도
산 것을 잡아 먹는 일에 풍년이란 말을 쓰는 시절이다
친구 앞에선지 오징어 회 앞에선지
그것도 아니면 술 앞에선지
아내도 뒷전, 생활도 뒷전이다
앞서는 것이 있어야 뒷전인 것도 있다
날로 먹는 오징어는 끈적하다
두고온 미련 때문인지 원래 그런지
취기가 오르자 오징어가 붉게 달아오른다
초장 때문인지 발가벗겨진 것이 부끄러워 그런지
답을 알면서도 자꾸 되묻는 일은
세상이 모르는 다른 답을 듣고 싶어선지
바다에는 오징어보다 플라스틱이 많고
그런 바다에서 잡은 오징어를 먹어도 되는지
플라스틱이 오징어고 오징어가 플라스틱이 아닌지
생활은 왜 계속 뒷전으로만 밀리는지
생만 있고 활이 없는 삶
그래서 자꾸 날것을 먹게 되는지
멀리 오징어 잡이 배가 불을 밝히고도
생활은 여전히 무언가의 뒤에 있고
흐트러진 채 흐트러진 오징어 회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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