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사이에 차키를 차 안에 두고 차 문을 잠근 게 두 번이다. 어제는 '카에타노 벨로조'랑 '묻어버린 아픔' 이 기억나지 않았다. - 가사는 기억났다. - 이 두 가지가 어제 일이라서 그렇지. 실은 언제 뭘 기억하지 못했는지 기억도 못하는 지경이다. 월요일 오후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난 토요일에 뭘 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하지 못한 것들의 리스트를 날짜별로 만들어야 볼까. 명사부터 서서히 잊으면서 노화가 시작된다고 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스스로 인식하게 될 정도로 횟수가 잦다.

몸도 마음도 늙는 것을 체감하고 있고 뚜렷한 삶의 목표랄까 뭐 이런것도 없다보니 - 아내 말로는 나는 원래 그런게 없었다고 함. - 세상을 다 살고 나서 그냥 덤으로 더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세상에 종말이 와도 나만은 악착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세상에 종말이 오기 전에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지난 주말에 머리를 잘랐는데, 면도를 끝냈을 때 느끼던 새로 태어난 기분이 사라졌다.

집에 그냥 누워서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있을 때가 많고 계속 그러고만 있고 싶은 충동이 인다. 사람들이 뭔가를 하는 것이 다 바보같고 그게 다 뭐고 무슨 소용인가 싶다.

삶이 슬로우 모션으로 내리는 눈발같다.

하루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것이 인생의 최고 행복이다.

그런날이 많기 때문에 더 추구할 게 없는걸까?

무력이란 말은 딱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새로 옮긴 일터는 마음이 편하다. 아직 얼마 안되서 그런 것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여기는 느리다. 사람도 늙고(느리고) 컴퓨터도 느리다. 나도 따라 느려지는 중이다. 당분간 이 페이스에 맞춰 살아야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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