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무렵

이맘 때, 늦은 오후에 바람이 불면 참 좋지
저녁에게 오지 말라고 재촉하는 것 같아 좋지
건너편 옥상에 걸린 빨래가 흔들리는 걸 보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일과 그 담배 연기가
길어진 낮의 끝으로 사라지는 걸 보는 일이 좋지
그때 누구라도 함께 있어서
낮술을 먹는다면 더욱 좋지
서로의 붉어진 얼굴을 감추지 못하는 일과
불콰한 기분으로 바닷가에 가는 일,
세상엔 돌아갈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과
곧 어둠이 올 것을 알지만
모래 위에서 즐거운 젊은이들을 보며
오래전 이야기를 하는 일이 좋지
그 순간이 일 년 중 가장 긴 저녁만큼 유예되는 일이 좋지
파도의 일렁임을 따라 입을 맞추는 일로
아직은 가슴속이 뜨겁다는 걸 아는 일이 좋지
어느샌가 시작한 노래는
바다 너머로 추억이 모습을 감추고 나서도 끝나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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