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반대하려면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라고 어느날의 메모에 적었다. 아내 생일이라 아내 칭찬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지후는 자신의 신념에 맞게 행동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지후를 따라가면 되니까 고마운 일이다.
기후 변화로 구상나무가 고사하는 것을 두고 한 연구자가 50년 후에도 이 숲이 이대로 있다는 보장이 없다며 통탄했다. 모든건 다 변하니까 50년 후에도 그 숲이 그대로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구상나무가 사라지는 게 땅을 치며 울분을 토할 일은 아니다. 다만 기후 위기가 닥친 건 현실이다. 그러니 어쩌면 좋을까? 이런 게 나의 냉소다.
지난 토요일에 안인에 화력발전소 짓는 쪽에서 - 타워크레인도 보이고 이미 건물 많이 올라갔음 - 화력발전소 건립 반대 청어엮기 퍼포먼스를 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통진당 해산과 이석기 내란 음모 의혹을 다룬 영화 '지록위마'를 봤다.
나는 화력발전소를 반대하나? 잘 모르겠다.
땅을 팔 것도 없이 그냥 퍼내기만 하면 된다는 호주의 광산업과 산불, 유난히 따뜻한 이번 겨울, 점점 심해지는 미세먼지, 미세먼지의 주범 중 하나라는 화력발전소, 예뻤던 시골 동네를 볼품 없게 만들어 버린 태양력 발전, 풍력으로 한 몫 잡아보려는 발전소 업자들과 에이전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 그리고 이미 몸에 익숙해진 생활의 편의를 손톱만큼도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다 연결돼 있다. - 물건들, 물건들, 물건들. 인간은 물건으로 태어났고 물건으로 망한다. -
퍼포먼스 자체는 즐거웠지만 음악과 컵라면을 위해서 기름을 먹는 발전기가 돌아갔다. 일단 거기서 기분을 망쳤다. 나랑 아내는 간식을 담당했다. 만두랑 김밥을 뜨겁게 유지할 것이 필요했는데, 새것과 다름없는 스티로폼 상자가 길가에 너무나 쉽게 버려져 있었다. 발전기는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자기 먹을 건 자기가 들고오는 방식으로 현장에서는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방식으로 했으면 좋았을거다. 이게 다 어떤 편의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통진당 해산 때, 볼음도에 살았다. 내란 관련 뉴스는 접했지만 이게 말이 되나? 웃어 넘기고는 생업에 열중했다가 정당이 해산됐을 때, 이게 뭐지? 잠깐 화났다가 그냥 잊고 말았다. 마음속에 화는 있었지만 참 어이없다고 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자세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랑 직접 관련 없는 일이니까 침묵했다. 침묵했다기 보다는 어떤 일이 있는지 알고만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많은 일들에 대해서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저 알고만 있는 일이 많다.
나는 이석기 씨가 석방되기를 강렬하게 바라지 않는다. 한상균이 사면되기를 강렬하게 바라지 않았다.
소소한 하루하루가, 내 삶이, 생활이, 내 주변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영화 '지록위마'는 어쩌면 좋을지 해답을 찾아보자는 맥락으로 마친다. 청어엮기 퍼포먼스는 해답을 찾는 과정이었을까? 다들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걸까? 나는?
부자가 되기를 내 집을 갖기를 내 농토를 갖기를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 뭘 좀 바라면서 살아야 되나?
해가 바뀌고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도 비관은 사라지지 않는다. 2020이란 숫자가 무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