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다. 2020 이라고 쓰니까 뭔가 묘하다. 반복되는 숫자가 주는 기분일까? 인류가 멸망하고 지구가 사라져도 202020년은 오겠지. 21세기가 끝난 거 같다. 나는 2020원더키디 세대긴 한데, 그 만화는 안 봤다.

올해는 뭘 어떡하나? 잠깐 생각했는데, 이렇다 할게 없다. 직장 안 그만두고 잘 다니는거랑 술 많이 안 먹는거랑 담배 끊는거 정도다. 직장은 계속 다니는 거고 담배는 끊는 거지만 부정과 근절이란 측면에서는 둘이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까 술 까지 세 가지는 올해는 뭘 어떡하나가 아니라. 뭘 안한다 카테고리다.

그럼 뭘 어떡하지?

​요새는 새 기타가 갖고 싶다. 그렇지만 참아야지. 기타를 더 잘 치고 싶다. 연습을 더 하기로 한다. 밴드에서는 노래를 하게 됐는데, 윤도현이 부른 '잊을게' 너무 높다. 내가 만든 '플라스틱'도 재훈씨가 밴드 편곡 해줬는데, 확실히 편곡이 들어가니까 좋다. 노래도 너무 심플하지 않은 걸로 몇 개 더 만들어야지.

아내 농업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줘야지. 그동안 흙에서 너무 멀어졌다. 아내는 농사 때문에 자주 절망한다. 작년엔 크게 실망했다. 같이 해야한다. 그런데 나도 농사에 자신이 없다. 그러니까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 

​지난 토요일에는 몇 년 만에 목욕탕에 다녀왔다.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는 아니고 좀 씻고 싶었다. 목욕탕, 나에게는 옛날말이 되서 그런지 푸근한 단어다. 어려서는 아버지, 동생이랑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갔다. - 더 어렸을 때는 엄마랑 갔다. - 비슷한 시간에 가니까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 목욕탕 주인도 나를 알고 나도 목욕탕 주인을 알고 목욕탕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뭔가 다들 한 동네 산다는 느낌이 있었다. <응답하라 1988> 시절 얘기다.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니다. 그래서 옛날이 그리운가하면 그렇지는 않다.

​목욕을 하고는 친구랑 둘이 낮술을 마셨다. 늦게까지 마셨다. 아내한테 많이 미안하다. 마시기로 한 술이라서 끝까지 마시게 됐는데, 술을 안 마시는 아내에게 몹쓸짓을 한 느낌이다. 이제 돌아가야지 생각할 때 즈음 아내에게 화가 잔뜩 묻은 카톡이 왔다. 토요일이라 나랑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놀고 싶었던가 보다. 두 사람의 마음이 뭔가 안 맞았다. 그렇지만 술 자체는 기분 좋게 마셨다. 기분 좋은 상태로 마시는 술은 좋다. 그렇지만 술이 꼭 먹고 싶은 건 아니고 아내가 싫어하니까 이런 자리는 당분간 없는 것으로 하기로 한다.

​정초부터 겨울비가 촥촥 내린다. 공기가 청량하다. 숨쉴 맛 난다. 공기, 물 같이 기본적인 것이 중요하다. 한국 생수시장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 지하수 마름, 생수공장 주변 농업 용수 없음 - 우울하다. 물은 그냥 수돗물을 먹고 끓여 먹는 시절이 지금보다 나았다. 지금보다 덜 풍요로운 시절이 전체적으로 지금보다 나았다. 19세기 말부터 풍요를 향해 치고 올라가 인류가 20세기 말부터 정체된 느낌이다. 어쩌면 꼭지점에서 내려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비가 호주에 내리면 좋을텐데.

​이것저것 적다보니까 그냥 막 살아야되나, 하는 생각에 닿으려고 한다. 그래서는 안되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말장난이지만 하지 말야야 할 것도 해야 할 것에 포함된다. 하지 말아야 할 것 한 가지와 해야할 것 한 가지가 늘었다.

올해도 시작하자마 끝난 느낌이 든다. 어떡하지?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