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부동산에 가서 월세 계약하고 왔다. 평생 처음으로 월세 살아본다. 아내가 일을 한다면 한 달 50만원이 큰 부담은 아니지만 아내가 일을 못 구하는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암튼 26일에 지금 사는 집보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간다. 신나지도 서운하지도 않다. 이사에 대한 귀찮음만이 있네. 내 집이 없이 셋방을 전전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부동산, 이사업체, 지금 사는 집주인과 수 차례 통화가 오고가는 일이 번거롭고 짜증났지만 무던한 말투로 잘 해냈다.
지금 사는 집 계약이 내년 3월 초에 끝난다. 올해 집주인이 바뀌었고, 두 달 전쯤인가 올해 연말에 전세 보증금 내어 줄 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 전세 보증금 못 돌려받을까 두려운 마음도 있고 주인이 새 집을 빨리 꾸미고 싶구나, 싶은 생각에 알겠다고 했다. 꼬장꼬장한 사람이었으면 이사비라도 좀 보태줘야 연말에 나가줄 수 있다고 했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올해 11월 부터 내년 2월까지 강릉에 신규 아파트 입주가 꽉 실려 있기 때문에 아파트 시장이 대충 정리가 된 2월말이나 3월초에 이사가는 게 나에게는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이다.
이사갈 집은 6세대가 사는 건물인데, 주인은 인천 송도에서 공인중개사를 하는 사람이다. 우리 이사갈 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방을 빼고 싶다고 한 것 같고 월세 보증금 내 줄 돈이 없어서 - 무슨 건물주가 이래 - 빨리 이사올 사람 찾던 중에 나랑 아다리가 맞았다. 집이 비어있어야 입주청소를 할 수 있기에 지금 주인에게 26일 전에 보증금 일부만 먼저 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 내가 돈을 줘야 이사갈 집에 사는 사람이 나갈 수 있는 상황임 - 본인 부모님에게 물어보고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답이 왔다. 집 주인의 부모님은 우리 동네에서 금은방을 하는데, 옛날 사람들이니까 그럴 수 있다. 고 생각하고 임대차계약이란 게 그렇게 돈이 오고가는 게 맞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야박하다는 마음이 드니 일찍 나가는 대신 이사비라도 달라고 할 걸 그랬나 싶다. 하지만 지나간 일이다. 내가 손해보는 것 같아도 미지의 상대방과 서로 마음 상하는 일 없이 내 마음이 편한 게 중요하다.
나는 이문에 밝은 편이지만 이문을 추구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를 몇몇 사람들에게 했는데, 얘기 들은 사람들이 다 웃었다. 이사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나는 정말 이문에 밝은가? 갑자기 생각해 본다.
아버지가 평생 착하다는 소리만 들으면서 살았던 게 이문에 어둡고 본인이 손해를 보고도 '허허' 웃고 넘기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어제 요양원에서 요양보호 급여 기록지가 왔다. 우편물을 읽다보면 아버지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단편적으로 알 수 있다. 이달에 특이한 점은 나랑 아내가 아버지 면회 가서 너무 오래 있으니 아버지를 부러워하는 어르신이 있어서 면회는 가급적 요양원 내부가 아니라 면회실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는 똥 누고 뒷처리를 못하는 사람이 됐다. 완벽하게. 본인 똥 뒷처리를 스스로 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고 응당 그래야 한다고 믿지만 피치못할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아버지처럼 치매가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보살핌을 통해 그걸 해결해야 한다. 아버지의 상태를 덤덤하게 받아들이지만 슬픈 건 사실이다.
아버지는 평생 손해만 보면서 살다가 나이 72에는 본인이 싼 똥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윤석열이는 똥보다 더 한 걸 싸 놓고 본인이 스스로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어제 본인 잘못한 것 없다는 담화문을 읽었다. 윤석열이 추종자를 포함해서 전국민이 이 새끼가 저지른 일의 뒷처리를 하게 됐다. 우리 아버지는 미안하다 고맙단 말을 할 줄 아는 치매 노인이 됐지만 윤석열이는 그냥 먹고 쌀 줄만 아는 악인이다. 전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이다.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사람 욕을 써내려도 화가 풀리진 않네. 집회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화가나면 소리라도 질러야 한다. 더 크게 질러야 한다. 그러다가 더 화가나면 불을 지르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 시국이 불 지르는 일 없이 잘 넘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