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워크맨

아버지와 추억이 별로 없다.

첫 번째 기억이 대중 목욕탕에서 동생편 들어준다고 대들었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회초리 맞았던 것이다. 그 다음은 동생이 초딩 2학년때, 시험 잘 봤다고 피아노 사주신 거. 그 피아노는 내가 잘 쳤고, 20세기 후반에 집에 정말 돈이 없을 때 팔았다. 나랑 직접 연결된건 91년, 내가 중1때 워크맨을 사주신 일이다. 나는 물건에 대해서 조르는 법이 없는 편인데, 게임기도 컴퓨터도 없는 집에서 워크맨만은 갖고 싶다고 졸랐다. 나는 당연히 소니나 아이와 제품을 기대했는데, 아버지는 어느날 술에 잔뜩 취해서 빨간색 산요 워크맨을 내게 건냈다. 외부스피커도 있고 티비 주파수도 잡히고(아날로그 방식) 녹음 기능도 있는 만능 워크맨이었는데 나는 처음 보는 브랜드가 싫었고 아버지가 술 취해서 문래동 어느 노점상에서 바가지 써서 사온 것 같은 그 물건이 싫었다. 그 워크맨으로 배캠 초창기 방송을 들었고 서태지를 들었다. 그렇게 애송이 시절을 보냈다. 나중에는 그런 워크만을 가져 본 게 나 뿐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80번대 후반 주파수에 당시 서울방송 tv 소리가 라디오로 잡히던 시절 얘기다. 엄마가 물장사 하기 전까지.우리집에 유일하게 돈이 돌던 시절 얘기다.

요즘 아버지 때문에 걱정이 많은데, 퇴근길 운전 중에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시절의 흐름대로 생을 산 우리 아버지는 이제 어느 시절로 가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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