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신발 벗고 들어오는 현관이 넓다. 네모난 현관자리가 네모난 마루의 한 가운데로 침입한 모양새다.

 마루에 누워 있으면 내 신발과 내 눈높이가 같은데, 나는 그 사실이 참 좋다. 누운 신발과 누운 나. 오즈의 다다미샷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나는 운동화 한 켤레만 신다가 떨어지거나 바닥에 구멍이 나서 비오는 날 못 신게 되면 새로 산다. 장례식장에서만 신는 오래된 구두는 자동차 트렁크 안에 들었고, 회사에서 신는 등산화는 회사 신발장에 있다. 아내도 물건 욕심이 적어서 신발 숫자가 적다.

 지난 주말에 넓은 현관에 달랑 네 켤레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사막 한 가운데 띄엄띄엄 나무가 서있는 느낌이랄까.

 신발은 신으면 닳는다. 안 신어도 닳는다. 신으면 더 빨리 닳는다. 시간의 이치다.

 지난해 겨울부터 신기 시작한 지금 운동화는 발뒤꿈치랑 닿는 안쪽이 좌우 모두 터졌다. 터진 것까지는 좋은데, 터진 자리에 뭔가 딱딱한게 튀어나와서 내 뒤꿈치를 자꾸 찌른다. 맨발로 신을 신고 걸으면 금방 상처가 생기는 지경이다. - 양말 신고 신으면 괜찮음. -

 지난 주말에 마루에 주저 앉아서 아내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 운동화 사야돼, 란 말을 시작하는 바람에 아내가 내 운동화의 실체를 알아버렸다. 아내는 막 웃으면서 어떻게 그 자리가 터지냐, 왜 운동화에 딱딱한 게 들었냐, 는 말을 했다. 운동화 안쪽 바닥에 Reebok 글씨가 좌우 대칭으로 조금씩 흐릿해진 것을 - 왼발은 Ree자가 남고 오른발은 bok자만 남음 - 발견하고는 또 막 웃었다.

 아내가 웃으면 기분이 좋다. 그까짓 터진 운동화가 뭐 그렇게 즐겁게 웃을일인가.

 사랑이다.

 터진 운동화에 대해서 말하고, 그 신발을 보면서 웃고, 그 웃음에 마음이 무방비 상태로 해제되는일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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