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기 싫으면 돈 많이 벌어야 되는 세상이다. 나랑 아내는 그런 세상을 시대착오적으로 살고 있다. 의료보험 말고는 다른 보험이 없어서 중병에 걸리면 그냥 죽어야 한다. 돈 많이 벌고 싶다는 의지가 없다. - 나는 가끔 의지가 생기기도 한다. - 농사 지어서 조금 벌면서 조금 버는 것에 맞춰서 세상의 편리를 누리면 좋다고 생각한다.

어제 동네 피자집에서 피자를 - 전단지에 올리브가 박혀 있길래 올리브 빼달라고 했더니 원래 올리브 안 들어간다는 대답을 들은 피자 - 편의점에서 산토리 몰츠 두 캔을 - 8월 말까지로 수입맥주 할인 행사 끝난 줄 알았는데 9월부터 다시 시작 - 사서 오즈 영화에 자주 나오는 성인 남자 코스프레를 했다. - 역시 맥주는 몰츠야. 뭐 이딴 거 - 아내가 내 표정을 보더니 뭔가 되게 만족스러워 보인다고 했다. 내 마음을 딱 들켜버렸는데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았으니 사랑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강릉에 와서는 이 정도 호사는 누릴 수 있을 정도는 벌고 있다. 그렇지만 이왕 시대 착오적으로 살았으니까 호사는 적당히 부리는 게 좋겠다. 빚더미 위에 쌓아올린 자본주의라는 신화는 돈을 산처럼 쌓아놓고도 배고프고 잘 곳 없는 사람들을 돕지 않으니 말이다. 어려운 사람들끼리 서로 도우며 사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한 일이다.

이름과 숨소리만 진짜인 삶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인간의 종특인지도 모른다.

종특을 적으니까 떠오르는 게 있어서 조금 더 적는다. 집 나와서 혼자 일하는 개미를 보고 이 개미는 왜 혼자일까, 생각한다. 유일하게 다른 종족을 이해하려고 하는 종족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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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박 5일간 출장 다녀왔다. 일용직이 출장이라니, 좀 웃긴다. 봉화, 영주, 예천 문경, 상주, 구미, 대구, 의성, 성주, 경주, 포항을 다녔다. 운전 하느라 피곤했는데, 무사고로 돌아와서 기쁘다. 경주에서 삽당령으로 돌아올 때,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왔다. 올라오는 내내 국도변 곳곳에 있는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경북 지역을 돌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읍내에 들어서면서 하나 둘씩 간판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 사람들은 다 뭐 해서 먹고 살까, 생각했다. 봉화 춘양의 골짜기에 예쁘게 가꿔진 밭들을 보면서 이 밭 주인들은 다 뭐 해서 먹고 살까, 생각했다. 얼마전에 <위로 공단>을 봤는데 그때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나는 뭐 해서 먹고 살고 있나, 생각했다. 이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처량하고 슬퍼졌다. 요즘 아내가 느끼는 무력감도 이와 비슷한 것이리라.

 점점 몸이 편해지는 (마음은 불편해지더라도) 물질적인 풍요를 조금만 벗어날 수 있으면 나도 위로 공단의 그녀들도 약간의 농사로 먹고는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볼음도에서 거의 근처까지 갔었는데, 아쉽게 됐다. 농사를 조금만 짓더라도 확실한 내 땅이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결국 땅이라는 물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아직 젊으니까 내 땅을 조금 갖고 싶은 지금의 마음도 괜찮다고 자체 위로한다.

그건 그거고,

어째서 당신은 골프를 치는가?
그러는 당신은 왜 치지 않는가?

당신은 어째서 (만든이의 정성을 무시하고) 식당에서 밥을 남기는가?
그러는 당신은 왜 반찬그릇까지 깨끗히 비우는가?

당신은 왜 설악산 케이블카에 찬성하나?
그러는 당신은 왜 반대하나?

세상은 서로 정반대를 지지하는 이유들 간의 충돌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다. 반대에게 설득 당하거나 설득 당하지 않을 뿐이다.

헌데,

어째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가?
그러는 당신은 그러지 않는가?
어째서 당신은 다른(어려운) 사람들을 돕는가?

는 이유의 충돌과는 다른 문제다. 자신의 이유로 남의 삶을 힘들게 하지 마라.

좀 더 생각을 확장하면 이것도 매 한 가진가?

출장 가서 이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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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넘게 예초기 돌리고 있다. 어떤날은 시작하기도 전에 힘들고 어떤날은 점심 먹을 때 되면 힘들고 어떤날은 오후에 힘들고 어떤날은 집에 도착하면 녹초가 된다. 결론적으로 힘들다. 힘드니까 집에 오면 술이 땡기고 담배도 많이 피운다. 그러니까 다음날 또 피곤하고 피곤하니까 짜증도 난다. 악순환이다. 나무랑 산, 꽃을 보는 건 좋지만 사람들 보는 건 지겹고 짜증날 때가 많다. 사실 어디서 뭘해도 이 악순환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가시가 밖힌 원형 바퀴 위를 계속 걷게 해주는 것이 아내다.

어느날 아침에 전날 저녁 먹은 그릇을 씻어 놓고 출근했다가 오후 6시에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가 일어나서 뭔가 차려 먹고 나간 그릇이 싱크대에 있는 걸 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야 사랑도 한다.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이렇게 너를 핑계로 살아간다. 그 사실을 아는 것도 사랑이다.

삶과 사랑은 닭과 달걀처럼 누가 먼저인지 모르지만 한 배에서 나왔다. 그래서 둘은 한통속이다. 너랑 나는 한 배에서 나오지 않았는데도 한통속이다. 위험한 한통속이다.

너는 나를 본다.
웃는 나, 찡그린 나,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나.
나는 너를 본다.
웃는 너, 화난 너, 무방비 상태로 잠든 너.
우리는 서로를 본다.
서로를 보는 지금이 사랑이다.

이건 삶은 힘든데
너를 사랑하는 이야기

얼른 겨울이 오면 좋겠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고 계획한 일이 뜻대로 안됐을 때도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할 것이다. 그러니 얼른 겨울이 오면 좋겠다.

열대야에도 귀뚜라미는 운다. 곧 가을이다.

p.s
- 엊그제 지후가 '포비' 얘기를 했다. 포비가 말 안 들어서 훈련 시킨다고 힘들게 했던 얘기를 했다. 얘기 듣고 잠깐 슬펐는데. 오늘까지 계속 생각난다. 자꾸 슬프다. 뭐든 기르지 말아야겠다. 모든 만남은 헤어져야 하니까. 그건 너로 족하니까. 너는 나에게 독점적이니까.


-> 짤은 나리꽃 피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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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 어느 자락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소나무 묘목을 심었고, 70년대에 심은 소나무와 잣나무에 벌레약을 쳤다. 요즘은 올해 나무 심은 자리와 이미 나무가 심겨진 자리에 풀을 베고 있다. 하루에 일곱 타임까지는 괜찮은데, 여덟 타임 돌리고 나면 집에 와서 많이 힘들다. 이게 일당 7만원 짜리가 아닌데, 라고 생각하니 더 그렇다. 작은 조직이지만 지소장과 사무실 직원들, 나같은 일용직들 사이에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많이 얽혀있다. 이 거미줄은 일용직 10명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이런게 눈에 보이면 피곤한 법이다.


 농산물 품질 관리사 1차 시험에 합격했다. 시험이 1년에 한 번 뿐인데 2차 시험 접수 일자 마지막날 접수하러 들어갔다가 접수 마감 시간이 지나서 접수하지 못했다. 3년전부터 갖고 싶었던 자격증인데, 일이 더럽게 꼬였다. 내 탓인데,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이고 세상 탓인 것 같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동갑인 동료 하나가 메르스 자가 격리 대상자임을 속이고 며칠 동안 출근했다가 들켰다. 회사랑 동료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산에서 일하던 중에 보건소 직원에게 밭에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 내가 다 듣고 있었는데 - 나한테는 아이가 열이 많이 나서 집에 빨리 가야겠다고 집에 좀 태워 달라고 했다. 인간이 아무리 무지하더라도 이럴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의 일당 6만 2천원 때문에 동료들이 다 사지로 갈 수도 있었던 사건이다. 이 친구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에도 -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가 이 친구를 키웠다고 한다. 그날 아침에 병원에 가셨다. - 퇴근 후 그 친구 집 앞에서 헤어지면서 내게 담배 몇 개피를 얻어갔다. 당시에 인간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생각했었다. 자신의 관리 소홀을 쉬쉬 넘어가려고 하는 보건소 직원의 태도, 별일 없을 것 같으니 그냥 넘어 가자고 했던 사무실 직원, 결국 계속 이 친구랑 함께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이 나라 돌아가는 꼴이랑 크개 다르지 않다. 역시, 인간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생각한다.

 거짓말을 많이 하는 이 친구를 멀리하고 있다.  

 '스쳐가는 인연은 무심코 지나쳐라.' 법정 스님의 말이다. '스쳐가지 않는 인연도 있는가' 내 대답이다. 무심코 살아가기가 쉽지 않으니 이런 말이 나왔으리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본다. 수입 식재료를 구입하고, 외식을 한다. 자동차를 타고, 기름 보일러를 돌린다. 추운날에는 따뜻한 물로 씻고, 어떤날은 생수를 사 먹는다. 페이스 북에 좋아요가 많으면 기분이 좋고, 어느 일요일 아침에는 흰 쌀밥에 스팸을 구워 먹고 행복했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지 않는 세상(정치)을 내가 욕할 자격이 있을까? 

 나이 40이 가까운 지금

 그렇고 그런 세상에 공범이 되었다.

 무심한 듯 외면하자. 무심코 지나치듯 살자

 

 볼음도에서는 망고가 위로가 됐고 요즘은 나무를 보는 게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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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곡 선생 페북에서 먼저 마음에 그려지고 그대로 한다,는 문장을 읽었다. 글의 맥락은 아주 소소한 일을 하는데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그대로 하니 기분이 좋았다는 것이다. 메모장에 옮겨 적고 그 아랫줄에 결국 인간은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한다,고 적었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게 아니라 먼저 그림을 그린다는 게 중요한 거라고 했다. 즉흥적으로 순간순간을 버텨내기도 하겠지만 짧게는 오늘 하루에서부터 길게는 남은 생 전체를 미리 머릿속에 그리는 것이 필부의 삶이다. 그렇다면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가 중요하다.

새벽의 페북에서 신영복 선생의 책 '공감'의 일부분을 캡쳐해 뒀다. 그 사람의 생각은 그이가 살아온 인생의 결론이고 남이 바꿀 수도 없고 바꾸려고 해서도 안된다. ~ 그래서 강의의 상한이 공감이고 당신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공감이 위로와 격려와 약속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내 식으로 이해하자면 결국 뭐든 저 하고 싶은대로 하겠지만 공감하면서 저 하고 싶은대로 해야한다는 얘기다. 공감을 하자면 공감할 사람이 필요하고 완고한 마음의 문도 바람이 통할 만큼은 열어야 한다.

인생이란 게 누군가와 함께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누군가가 사람일 필요는 없다. 그것이 물건(돈)이면 별로고 나무나 산, 애완동물이면 괜찮지 않을까? 어느날의 메모에 '사람보다 산이 좋다.'고 적었더랬다. 메모는 메모일 뿐이고 나는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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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당령으로 일 나간지 거의 두 달 째다. 4월 급여를 받고 나니 만취한 다음날의 허무처럼 사는 게 허무해졌다. 그러지 말아야지.

일은 재미있다. 10명이 한 팀이 되서 국유림에 나무 심고 약치고 풀 베고 열매를 딴다. 요즘은 접목한 소나무를 심고 있다.
모여서 일하다 보니 누구 보기 싫어서 일을 그만 두기도 하고 서로 견원지간이거나 모두가 마음에 안들어하는 동료도 있는듯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그 영향력 안에 없다. 다행인건가.
아직은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라면서 체념할 단계는 아니라는 얘기다.

나랑 동갑인 친구가 둘이다. 하나는 결혼해서 아이가 있고 하나는 미혼인데, 둘 다 또래 친구라고는 없는 시골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외롭다. 친구들이 더덕도 캐 주고 두릅도 따준다. 나도 그들에게 뭔가 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 집에 있던 잼을 줬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외롭다.는 보편적인 표현이고 이 친구들에게는 좀 더 자극적인 표현을 쓰고 싶다. 친구들은 정에 굶주렸다. 산골에서 오래 살고 산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일까. 친구들의 마음은 눈빛이나 말투 몸의 표정에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알기 쉬워서 좋다. 나도 아내에게는 알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알기 쉬운 사람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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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3 - 피로

그때그때 2015. 4. 23. 23:51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에 왕산 목계에 사는 형이 있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지만 나는 처음 봤을 때부터 이 형이 좋았다.

이 형이 강릉 산골짜기 왕산에서 몇 년 살면서 느낀 것은 시골에서는 내 땅, 내 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하여 무리해서 빚을 내서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있다. 나도 시골에 오래 살진 않았지만 촌에서는 내땅과 내집이 중요하다는데 깊이 공감한다.

- 일우야 낚시 좋아하냐
- 아니오
- 여기가 내 낚시터야. 지금 집 짓는 곳 앞에도 고기 잘 잡힐만한 곳이 있어. 일 안하는 주말에 왕산 올라와서 고기 구워 먹고 저녁 때 고기 잡아서 다음날에 매운탕 끓여 먹자. 사는 게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 네. 좋아요.

오늘 아침 출근길에 나눈 대화다. 형은 내 아내가 그런 즐거움을 좋아한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볼음도에서도 느꼈다. 나이를 먹을수록 맛있는 걸 먹고 하루하루 즐겁게 지내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된다. 사실 이건 나이랑 상관없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다.

어차피 세상은 내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것에 괴로워하면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면 괴로움이 커진다. 하지만 본인들 눈에 뒤틀린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세상이 바뀐다.

닭과 달걀의 패러독스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하나마나 한 것이란 것은 집에 테레비가 있는 강원도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직접적인 내 일이 아니니 대형 공사를 따내서 자기 주머니를 챙기는 놈이 있거나 말거나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왕산 사는 형도 좋아하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신경써야할까?

낮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쉬다가 담배를 피우는데, 내가 반 바람이 반을 피웠다.

여지껏 쓴 것이 다 바람앞에 부질 없는 생각이다. 머릿속이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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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데, 친구가 땅을 사니 마음이 아프다.

지난 토요일에 양양에 다녀왔다. 친구가 땅을 계약했다. 군사 뭐시기 지역인 밭 -실제로는 논이었다. - 1500평에 대한 계약서를 썼다. 변산 공동체에 있다가 나와서 충북에서 포도 농사를 짓고 포도밭 주인에게 쫓겨나 제주도로 거처를 옮기고 농사를 짓지 못하고 일당일을 하다가 이대로는 영원히 농사 짓고 못 살게 될까봐 그게 두렵고 싫어서 전국 이곳 저곳에 땅을 보러 다니며 비싼 땅값에 절망하다가 결국 주말 아침 비행기를 타고 멀리 양양까지 와서 싸다고 생각한 땅을 계약한 친구의 마음을 절반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나라면 사지 않았을 땅이다.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가져 보자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눈빛에 그런 여유는 없었다. 이미 제주에서 지금의 나와 비슷한 삶을 산 친구에게 이쪽으로 옮겨서 몇 년만 이일 저일 기웃거리다가 함께 공동체든 농업이든 해보자는 얘기도 할 수 없었다. 친구와 함께 잠든 토요일 밤에 그 땅을 두 배 값으로 파는 꿈을 꿨다.

내 꿈이 그 친구에게 닥칠 최악의 상황이길, 친구가 잘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경험이 마음을 만든다.

볼음도 생활 2년에 현실로 남은 것은 아직 못 받은 작년 쌀값 뿐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는 더욱 희미해지고 내 사람이 아닌 사람의 말은 그냥 듣기만 한다. 나도 친구처럼 내년에는 무리해서라도 땅을 살까, 생각했다가 기왕 늦은 거 동계 올림픽 끝날 때까지만 기다리자고 마음 먹은게 지난 금요일이다.

양수리에 벼농사 모임이 있다. 300평 논을 일곱명이 짓는다. 실험을 해보자는 것이다. 어제 다녀왔다. 나는 실험보다는 대중적인 것을 좋아해서 100프로 내키지는 않는데, 기분 좋아진 지후의 얼굴을 보니 나도 좋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 또한 좋다. 금요일에는 아내 친구가 강릉에 다녀갔는데 지후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좋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 또한 좋다. 아내 친구들은 아내 친구들대로 좋고 내 친구들은 내 친구들대로 좋다.

나는 이렇게나 사람을 좋아하는데 가끔은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도 그냥 듣기만 한다. 큰일이면서 큰일도 아닌 게 이런 것이 인간이고 나란 사람이다.

삽당령에 일당일을 다니고 있다. 집에서 좀 멀지만 오랜만에 하는 몸 쓰는 일이 좋고 공기랑 물, 나무와 산, 동료들까지 여러가지가 나랑 잘 맞는다. 잘 됐다.

다만 오늘은 국무총리 기념식수용으로 멀쩡히 잘 자라는 나무를 파냈다. 공직 사회도 나도 참 병신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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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에서 진도까지 혼자서 왕복 15시간을 운전한 버스 기사를 생각한다. 돈도 좋지만 - 사실 그 돈도 얼마 안되겠지만 - 업무 환경이 너무 안좋다. 물론 차에 탄 사람들 중에 기사님을 걱정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걱정이고 생각일 뿐, 승객들은 피곤하면 자면 그만이고 기사는 운전이 직업이기 때문에 충실히 운전을 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3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하는 거리에는 두 명의 운전수를 의무화 하는 것이다. 도제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아니라 co-worker개념이다. 처음에는 승객들이 생소하게 생각하겠지만 주 40시간 근무나 해마다 조금씩 오르는 최저임금에 이내 익숙해지듯이 이내 응당 시외버스는 두 사람이 운전하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이 예전에는 개념도 없던 최저 임금에 대해서 최저임금이란 건 해마다 조금씩 오르는 것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 학생들 무상급식 문제도 급식은 그냥 나라에서 돈을 내는 것으로 정하고 무상급식에서 무상을 빼고 학교급식이나 급식으로 부르면 이내 사람들이 학생들 밥은 나라에서 먹여주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아직 담배를 못 끊고 있다. 인간은 하던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타던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싫어하거나 새해 결심이 새해부터 아작나는 일들이 대표적이다. 하던대로 하려는 경향은 순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위에 적은 예들처럼, 인간은 모든일에 서서히 그리고 순순히 적응한다. 시스템은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만 시스템을 견고하게 하는 변화를 주고 사람들은 약간 저항하다가 적응하는 경향 말이다. 담뱃값이 대표적이다. 최근 외국의 상황을 보면 시스템도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87년도 시스템이 실패한 사례다.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 재벌들은 당연히 세금을 많이 낸다.

- 김영란 법을 엄격하게 적용한다.

- 최저임금은 한 시간 일하면 국밥 두 그릇은 사 먹을 수 있는 액수로 정한다. 

 

 그런데 제도를 바꾸려면 사람들이 마음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 전국민이 세월호를 인양하고 확실한 진상조사를 할 때까지 모든 선거를 보이콧 한다면 시스템이 알아서 배도 인양하고 진상조사도 제대로 할 하겠지. 시스템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이 된 지 오래다. 있는 놈이나 없는 놈이나 다 착취당하고 고통받는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반복되니 그것이 상식이 된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헌데, 나란 놈만해도 꽤나 순응적인 스타일이다. 시스템의 결정적인 실수를 기다릴까?

 

 변기에 앉으면 창 밖으로 매화와 벌들이 보이는 계절이다.

 살아있다는 게 더럽고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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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보통은 누나, 가끔은 제수씨)가 집들이 선물로 커튼을 만들어줬다. 우린 아직 집들이도 안했다. 말이 집들이 선물이고 그냥 강릉에 온 기념 선물같은 것이다. - 누나 고마워요. 집들이 한 번 해요. - 아내가 출입문의 아래쪽은 가리지 않도록 커튼 사이즈를 부탁했다. 난 예쁘기만 한데, 아내 생각엔 역시 문을 다 가리는 것이 좋았겠던가 보다. 아내는 일단 커튼을 그대로 뒀다가 계속 마음에 걸리면 손바느질로 두 개의 천을 이어서 원하는 길이로 맞추겠다고 했다.

어제 서울에 왔다. 명절과 제사 때마다 아내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내 생각엔 아내가 유리 멘탈인 이유가 가장 크다. 이유가 어디에 있던 아내가 짜증을 내면 난 그게 다 내 탓인 것 같고 결국 아내가 내 탓을 하는 것 같아서 나도 짜증을 낸다.

이 부분에서 나도 약간 멘탈 과잉이 있다. 아내가 강릉 날씨 변덕스러워, 라고 하면 나는 강릉 날씨가 변덕스러운 것이 아내 마음에 안 들고 그것이 강릉에서 살자고 한 나를 탓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퉁명하게 겨울 날씨는 다 변덕스럽다. 원래 날씨란 변덕스러운 것이다, 따위의 대꾸를 하는 것이다.

아내도 미찬가지다. 내가 혼자 짜증을 내거나 욕을 할 때도 그걸 듣는 사람이 본인 뿐이니 자연스럽게 짜증이 발생한다. 우리는 이런 사소한 일들로 종종 다툰다.

부부란, 길이가 마음에 안드는 커튼을 수선하듯, 손바느질로 서로의 이질감을 한땀 한땀 꿰메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오늘 둘째 이모가 놀러오셨다. 이모는 열매가 없는 꽃은 시들면 그만이고 열매가 없으면 줄다리기를 하다가 한 번 더 생각하지 않고 줄이 끊어지도록 놔둔다고 했다. 애를 가지라는 얘기다. 마음속으로 강하게 '저희 아기 안 가질 거예요.' 라고 하면서 아내 눈치를 한 번 보고 나와 아내를 이어주는 한 바늘을 꿰멨다.

나는 시들면 그만인 것은 좋지만 줄이 끊어지도록 두기는 싫다. 그러니 아내가 결혼 같은 건 왜 했나 몰라, 같은 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제 목욕탕에 갔다가 불알을 꼼꼼하게 닦는 노인들을 봤다. 시간을 븥잡고 싶은 마음으로 늘어진 생식기를 붙잡고 있는걸까.

우리 시들면 그만인 채로 살자.
AND

조 부장도 새벽 네 시에 잠이 깨서 옆에 누운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이불속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스마트폰을 들여다
볼 때가 있을까?

힌과 상하차 알바를 하고 있다. 강릉 사천면에 한과 마을이 있다. 강릉 한과가 유명하기 때문에 한과 가게(공장)들 마다 명절을 앞두고 택배가 쏟아져 나온다. 나는 강릉우체국 소포영업팀에서 알바를 한다. 1톤 탑차를 타고 한과 공장들을 돌면서 물건을 싣고 내리고 5톤 탑차에 싣기를 반복한다. 12일 중에 8일 지났다.

조부장은 나를 데리고 다니는 우체국 직원이다. 조부장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그의 짝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조부장, 하고 부르는 걸 보니 소포영업팀 내에서는 꽤 높은 사람인듯 하다. 45세, 동안이고 아이 안 가지려고 했는데 그 놈의 술 때문에 아이가 둘이고, 술 안주로는 돼지고기(찌개)가 좋다고 하는 사람이다. 운전은 거칠지만 한과 사장들이 짜증나게 해도 화를 잘 안낸다. 우체국에서는 10년 넘게 일했고 그 전에는 여기저기서 살았다고 했다.(했던가?)

조부장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일할 때 나랑 합이 잘 맞는다.

그냥 이 새벽에 조부장 생각이 났다.

가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생각한다. 무엇도 결정하지 않은 삶을 사나, 생각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하면 손 쉬운 대답이 되지만 그것은 사실일 뿐 현실은 아니다

길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로도 이어지지만 나에게로 가는 길을 찾기가 어렵고도 어렵다.

어제부터 치과 치료를 시작했다. 표면적인 부분부터라도 새사람이 되자.

조부장의 어금니 하나를 치료한 의사가 그 이는 가망이 없으니 쓰는데까지 쓰고 폐기하자고 했다고 한다. 폐기라는 단어를 쓴 의사를 욕하자는게 아니라 가망이 없는 이를 달고 택배 배달을 쭉 하다가 어느날 너무 아파서 그 이를 없애게 될 조부장의 삶을 생각한다. 그런것이 삶이 아닐까?

암튼 알바는 4일 남았다. 40여 만원 벌어서 이 치료비로 다 쓰게 생겼다. 그런것이 삶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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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이 복지 과잉이면 국민들이 나태해진다고 했다. 이 새끼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알바몬 사태도 기가 막힌 일이다.

교육이 중요하다.

택배 기사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 택배비가 오른다? 청소원들에게 월급을 많이 주면 건물 관리비가 오른다? 그랴서 결국 너희들이 손해다. 학교에서 이런식으로 가르치지 마라. 네 아버지가 건물 청소원이고 경비고 네 장래 직업이 택배 기사다. 나만 아니면 된다고 가르치지 마라.

담뱃값을 올린 것처럼 마음만 먹으면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동통신 요금 2만원 무제한 통화나 법인세 인상 같은것들이 대표적이다. 다수의 국민들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는 일들이다. 왜 두 눈을 질끈 감고 이런일들을 정책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가.

정책 입안자들과 국회의원들이 어딘가 구린데가 있기 때문이다.

삼성이 망해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고, 나라가 망해도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고 가정과 학교에서 똑바로 가르쳤으면 한다.

건강하게는 어렵더라도 건전하게는 살자. 그건 누구나 할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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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전까지 우체국 택배 알바를 한다. 한과를 차에 싣고 내리는 단순 업무다. 이틀 나갔다. 알바를 하면서 갓 스무살이 된 친구들을 본다. 열심히 하려고는 하는데, 어딘가 어설프다. 처음엔 다 그런거다. 며칠만 지나면 능숙해지겠지. 나는 처음부터 능숙하다. 경험의 차이다. 다만 나는 어제 왼쪽 무릎에 통증을 느꼈다. 그 애들은 안 그럴텐데.

인간이란 종의 능력치에 대해서 말하려고 알바 얘기를 꺼냈다. 머리엔 눈, 코, 입이 붙어 있고 몸뚱아리엔 두 팔과 다리가 붙어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육체적 능력치에 큰 차이가 없다. 리오넬 메시도 공을 차고 나도 공을 찬다. 드리블을 하고 슛을 한다. 내가 좀 많이 어설프고 쉽게 지칠 뿐이다. fc바르셀로나가 팔레스타인 국가대표 축구팀에게 50대 0으로 이길 수는 없다.(20점은 가능할 것 같음.)

그러니 살아서 뭔가를 하고 있다면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너무 애쓸 것 없다.

삼촌 내외와 고모랑 고모부가 집에 다녀가셨다. 집들이다. 아내가 밀푀유나베를 만들었다. 맛있었다. 어른들은 좁은 집을 구석구석 둘러보셨고 싸고 깨끗하다고 만족하셨다.

당장 알바도 하고 있고 삼월엔 어디 나간다고 하니 삼촌이 덜 걱정하시는 듯 하다. 다행이다. 고모랑 고모부는 걱정보다는 조카 내외가 강릉에 이사 왔다는 자체를 좋아하셨다. (애기 때, 옥수수 먹던 사진 보러 갈게요.) 그것도 다행이다.

어제는 친구랑 술을 먹으면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세상에는 사람도 많고 말도 많다. 대리비를 아끼려고 외박을 했다. 지후한테 혼났다. 미안, 앞으론 정말 안 그럴게요. 해장으로 아내랑 잿빛의 떡국을 먹었는데, 서로에게 무심한듯 무심하지 않은 중년 부부의 느낌이 났다. 저녁 먹고는 동네 산책을 했다. 우리 동네는 골목길도 예쁘고 오래된 예쁜 집이 많다.

여러가지로 다행이고 기분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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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그 일이 돈이 되는지 아닌지가 마지막 결론이고 남에게는 돈이 되는 일에 대해서 잘도 말하는데, 자신은 돈이 안되는 일만 하거나 스스로 만족할만큼 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면 괴롭다. 괴로우니 자꾸 말만 늘어난다. 괴로우니 괴롭다. 이래선 안된다.

올해는 어딘가에 다니겠지만 내년에는 다시 농사를 지을거다. 강화에서는 돈이 안되는 농사를 지었으니 강릉에서는 죽기살기로 돈 되는 농사를 지을거다. 그게 내 직업이니까. 그렇지만 여전히 연간 소득목표는 천만원이다. 내 땅이 없어도 내 집이 없어도 농사 지어서 천만원을 벌면 지금처럼 그리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다. 물론 더 벌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일이다.

그릇의 크기를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일년에 천 만원이 소득 목표인 사람에게 사 천만원을 버는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되고 돈도 못 번다고 해서야 그 말이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뭐라고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남의 말에 민감한 때도 있는 내 아내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말라. 내가 무척 화를 낼지도 모른다.

들기름이 꽤 많았는데 여기저기 한 병씩 돌리고 나니 딱 우리 둘이 일년 동안 먹을만큼만 남았다. 기분이 좋다. 누군가와 무엇을 나누는 건 이렇게 좋은 일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 애쓸 것이다.

강릉 오고 보름이 지났다.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났다. 결론은 여전하다. 놀 때는 같이 놀고 사이좋게 지내더라도 일은 같이 하지 말자. 나는 혼자 일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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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 26일을 적었으니 십 분 안에 끝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길어져서 제목을 27일로 바꿨다.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었다. 계속해보겠다는 이야기다.

<오늘 저녁에야말로 나나에게, 그렇게 결심했는데 뜻밖에도 출근길,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묻고 말았다. 아침저녁으로 안개만 고일 뿐 여전히 비 소식은 없는 나날이었다. 하지만 임박했다. 임박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습도가 하루하루 굉장해서, 낮이고 밤이고, 가만히 서 있을 때도 몸이 끈적끈적해졌다. 안개에 관해 말하자면, 온갖 냄새가 그 속에 있었다. 씻기지 못해 자질구레한 냄새를 더해가는 대기의 냄새가 안개에 배어 있었고 밤새 안개에 잠긴 거리에서도 그 냄새가 났다. 이날 아침 출근 길에도 그런 냄새가 남아 있었다. 아침인데 벌써 무더웠다.>

 

 여기를 읽다가 이날 아침, 오늘 아침, 아침 중에 이날 아침을 고른 작가의 마음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했다. 이날이 없이 그냥 '아침'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그래도 이날 아침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을 마무리했다. 작가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별 이유도 없이 멍하니 한참을 생각했다.

 

 

 이사 - 벌판을 나와 벌판을 지나 벌판에 도착했다. 대관령을 넘기 전에 힐끔힐끔 내리던 눈이 고개를 넘자마자 비가 되어 뚜벅뚜벅 차창을 때렸다.

 이렇게 시작해서 좀 더 읽기 좋은 걸 써 보고 싶다.

 

 집 정리가 대충 끝났다. 3월부터는 일을 하게 됐는데, 2월에도 뭔가를 하고 싶다.

 지난 주말에는 예전에 농업교육 함께 받은 형들이랑 놀았다. 교육 받던 시절을 얘기하며 즐거웠다. 국제 시장과 토토가의 흥행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시절을 함께 추억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 추억에 먹었던 것이 빠지지 않는다. 나이 먹고는 다들 어려서 먹었던 것을 찾는다. 역시나 추억팔이 장사를 해야할까? 

 

 우리집은 주인집 뒤에 따로 조립식으로 지은 세 채의 집 중에 가운데 집이다. 오늘 아침에 우리 왼쪽집에 홀로 사는 아저씨가 우리 오른쪽 집에 아내와 함께 사는 아저씨와 나를 초대해서 이웃들과 인사를 했다. 가난한 이웃이 가난한 나를 초대해서 아침부터 소주를 한 잔 마셨다. 가난이라는 말은 한자어인데, 집이 어렵다는 뜻이 아니고 어렵고도 어렵다는 간난(艱難)을 가난으로 읽는다. 가난 가난 가난 하고 읽기만 해도 울컥함이 밀려드는 예쁜 말이다. 이웃의 아저씨들은 아직 젊으니 뭐든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나는 '예'라고 했겠지. 

 오후에는 고모가 하는 수선집에 들렀다. 조카 내외가 강릉에 산다고 하니 괜히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고모가 좋다고 하시니 저도 좋아요. 고모는 많이 늙었다. 고모에게 많이 늙었다고 했더니 고모가 그럼 많이 늙었지라고 했다. 당연한 얘기를 당연하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늙지도 않고 그대로시네요.같이 입에 발린 말보다는 솔직하게 말하고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고모가 좋다는 얘기다. 

 

 핸드폰으로만 글 올리다가 오랜만에 키보드 두드릴라니까 어색하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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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8 - 이사

그때그때 2015. 1. 18. 17:27
지난 목요일에 이사했다. 오후 네 시가 넘어서 강릉에 도착했다. 짐이 별로 없고 1층에서 1층으로 가는 것이라 이사 아저씨들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이사였다. 두고 올까 하다가 가져온 장농이 작은 방에 쏙 들어가줘서 기분이 좋았다. 이것저것 구입하고 정리하고 정리하고 정리해서 대충 짐정리가 끝났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인간은 짐(burden)과 함께 살아간다.

도배랑 장판을 새로한 집이다. 싱크대랑 세면대도 새거다. 전기 공사도 추가로 했다. 우리가 살기에 딱 적합하다. 다만, 문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출입문이 안 잠긴다. - 해결할 수 있을까? - 화장실 문이 안 닫힌다. - 이건 해결 가능하다. - 새로 설치한 전기 콘센트가 먹통이다. - 안 쓰면 그만이다. - 세면대에 물을 받아 쓸 수 없다. - 안 쓰면 그만인데, 날림 공사다. 물 마개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걸 안 달아놨다. - 샤워기가 새건데 물줄기가 시원찮다. - 이것도 날림 공사다. 내가 새걸로 달았는데도 상태가 그대로일 수도 있으니 당분간은 그냥 두기로 한다.

우리집은 강릉시 홍제동이고 강릉 초등학교 옆이다. 주택가라 조용하다. 아내의 친구 편의점이 집 근처에 있다. 시내 중심가까지 걸어서 15분 거리다. 고속버스 터미널은 걸어서 10분 거리다. 도서관도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한살림 매장이랑 큰 슈퍼가 가까이에 있고 홈플러스 때문에 쇄락한 서부시장도 가까이에 있다.

적어 놓고 보니 출입문이 안 잠기는 것만 빼면 좋은 곳이네.

집 1km 안쪽에 중국집이 20개다. 그 중에 두 곳에서 짜장이랑 탕수육을 먹었는데, 다 별로였다. 이순신에게 12척의 배가 있었다면 우리에겐 아직 18곳의 중국집이 남아있다.

진정한 광랜을 쓰게 됐다. 근데 생각보다 기쁘질 않네. 내 또래로 보이는 kt 설치기사가 자기가 30년 넘게 이 동네에 살았는데 살기 안 좋다고 했다. 이 양반의 인생엔 좋은 일보다 안 좋은일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어제는 중앙시장에 뜰깨 들고 가서 기름을 짰다. 작년에 깨 농사가 잘 됐다. - 재작년에 너무 안 됐거나. - 기름 적게 나와도 좋으니 반만 볶고 짜 달라고 했는데, 기름이 많이 나와서 방앗간 주인 아저씨가 당황했다. 8킬로 중에 1킬로가 남았다. 깻모를 부으면 좋겠지만 올해는 포기한다. 텅빈 냉장고를 5퍼센트 정도 채웠다. 김치가 없어서 들기름과 달걀로 간장 볶음밥을 해 먹었다. 따봉으로 맛있었다.

볼음도 집이 참 좋았다. 2년 후엔 다시 시골집에 살거다. 그 집에선 지금 이 집이 참 좋았다고 하겠지. 사람들은 항상 지나간 것만 좋아한다. 추억팔이 장사를 할까보다.

강화에서 그랬듯이 강릉에 도착했으니 직업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퇴근후엔 그대와 원두커피든 뭐든 마시자. - 씨 없는 수박 '유정천리' 가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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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다. 해가 바뀌자마자 끝나지 않는 모험의 세계(드퀘 8)에 살고 있다. 현실로 돌아와서는 친구들과 술을 먹는다. 새해 계획은 좋았네요.라고 할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들 속에 사는 것이다.

지난 월요일에 588 종점 멤버들과 술을 먹었다. 장소는 y네 집, 안주는 흐릿하게조차 그려지지 않는 서로의 인생과 아내에 대한 불만이었다. - 지금은 기억이 안 나는데 그날 오전에 아내 때문에 기분이 상했었다. - 며칠만에 기억도 못할 대수롭지 않은 일에 혼자 삐쳐서 대취했다. 다음날 9시에 일어났다가 입만 축이고 다시 잠들었고 16시에 정식으로 깼다. 전날의 동지인 y는 휴가를 썼고, 건쓰짱은 지각을 했다. 불만만큼 취하는 정직한 우리들이다. 아내는 화가 났고 강릉행은 하루 미뤄졌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누구에게도 좋았네요.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지 말자.

지난 수요일에는 강릉에 집을 구했다. 전세 계약서를 쓰면서 생각했다. '이런 중대한 일에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걱정하지 않는 담대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사는 1월 15일이다. 계약서를 쓰고 이사날짜를 잡고서야 끝나지 않는 현실 모험의 세계로 돌아올 준비가 됐다.는 기분이다.

아내 친구 아이랑 하루 놀았다. 어제는 낮에 그 아이를 다시 한 번 만나고 저녁에는 아내 지인이면서 내 페친인 친구들과 신년회를 했다.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면서 이것저것 먹고 마셨다. 어제는 마음속으로도 마음 바깥으로도 좋은날이었다.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고 취하기는 누구랑 마셔도 마찬가지인데 어제 분위기는 지난 월요일과는 많이 달랐다. 이러나저러나 다 친구들이다.

장인어른, 장모님을 만났다. 딸과 사위에 대한 장모님의 불안과 걱정 그리고 불만이 표면적으로는 많이 사그라든 느낌이다. 운동화를 하나 사주신 것은 고맙게 받았는데, 이사비용을 건내주셔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받았다. 이것도 다 아내를 잘 만난 내 복이려니 생각한다. 글 속의 나는 이렇게 긍정적인데 현실의 나도 긍정적이다.

주거니 받거니 사는 것이 인생이지만 아직까지 내 인생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이렇게 빚더미 속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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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9 - 올해

그때그때 2014. 12. 29. 22:21

 한 줄로 정리하면, 볼음도에서 나왔다.

 두 번의 벼농사와 두 번의 고구마 농사를 지으면서 한 생각을 한 줄로 정리하면, 수입이 없으면 농사일이 아무리 즐겁고 마음이 편해도 결국은 즐겁지 않다.

 

 어울림 학교에서 중학생들과 함께 미디어 수업을 했다. 정말 즐거웠다. 내가 이 친구들을 기억하듯이 이 친구들도 나를 기억해주면 좋겠지만 그건 내 욕심이겠지. 한해에 7만명의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는 썪어빠진 교육환경을 생각하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하고 싶을 때도 많지만 그런 중에도 어린 친구들이 건강하게만 자라준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어도 너희들의 미래는 있다.고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내년에는,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 산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살아야겠다. 볼음도에서는 자주 그 사실을 잊고 살 수 있어서 좋았다. 먼저 녹평모임에서 어쩌면 우리같은 사람들이 이미 이러한 세상을 잘못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늘 하는 일을 철저히 하라.는 얘기를 오늘 만난 선배에게 들었다. '삼시세끼'의 이서진이 꼼꼼하게 그릇을 닦아내듯이 나도 철저하게 일상을 살아야겠다. 

 

 

 지난 주말에 친구 y네 집에서 친구 건쓰짱이랑 술을 마셨다. 술이 많아서 비싼 순서대로 이술저술 먹다보니 건쓰짱이 많이 취했다. 취해서는 전기인간을 찾더니 전기인간 프랑켄슈타인에게 2차를 쏘고 싶다는 본인의 희망을 얘기했다. 친구야, 넌 대체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거니? 건쓰짱은 중학생 때부터 책방 주인이 꿈이었다. 지금은 건설현장에서 무협지를 읽는다. 우리들은 각자의 아내에 대해서 성토하면서 조금씩 무너져갔다.

 얘들아 내년에도 예전처럼 잘 지내자.

 

 지난주의 어느날에는 DS에게 이런말을 들었다. "지금 대통령이 딱 지금 우리 국민의 수준이다." 이 말을 팟캐스트에서도 많이 듣고 여기저기서 댓글로도 많이 읽었다. 친구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수긍했지만 지금이 우리 수준이라고 얘기하는 순간 그것이 우리 수준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집에 돌아와서 생각했다. 나는 체념과 방관이 싫다. 내일 DS를 또 만나게 될텐데, 우리의 정치수준에 대해서 다시 얘기해보자.

 

 올해 마지막 일기가 횡설수설이네. 내년에도 횡설수설 살겠구만.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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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음도에서 나온지 한 달도 넘었다. 시간의 속성중에 속절없음이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다시 생각한다.

 면허증 갱신 했고 일반 건강검진을 받았다. 지난번 건강검진 때보다 체중이 많이 늘었다. 그런데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없다. 그냥 느낌대로만 살아도 괜찮을까? 주변 사람들 중에 결혼하고 체중이 늘어나는 사람들이 많다. 더 이상 이성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체형 관리를 하지 않는 것도 체중 증가의 원인이 될 수 있겠다.

 김포, 강화, 일산에 초대를 받고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이 살고 계신 어떤 어른들은 나랑 지후가 자신들이 가지 못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응원해 주시고 부러워한다는 것을 안다. 양현석이 힐링 캠프에서 자신의 전재산과 빈털털이인 젊음을 바꾸고 싶다고 했는데, 무척 공감한다. 청춘으로 일년을 사는 것과 나머지 여생을 다 바꿔도 좋은 때가 내게도 찾아올 것이다. - 초대와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젊은날을 즐기면서 살도록 하겠습니다.

 집 알아보러 강릉에 두 번 다녀왔다. 촌에 사느냐 시내에 사느냐를 결정해야 하고 전세냐 월세냐, 차를 사느냐 마느냐, 삼촌과 함께 농사냐 그냥 취직이냐 등을 결정해야 하는 마음 심란한 강릉행이었다. 시내에서 자동차 없이 전셋집을 구해서 직장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시골 삼촌이 농사 안 지을거면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다가 내려오라는 얘기와 강릉와서 설렁설렁 살면 본인 뿐 아니라 아버지도 욕 먹는다는 얘기를 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 많이 심란했지만 언제나처럼 마음을 다잡았다. - 삼촌, 저 잘 할게요. 돈은 못 벌겠지만 설렁설렁 살진 않을거에요.

 며칠전에 아버지가 보쌈 사주셔서 아내까지 셋이 맛있게 먹었다. 아버지랑 소주도 한 병씩 마셨다. 둘 다 술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둘이서 마셔본 건 처음이다. 아버지도 그 사실을 아실까? 아버지는 우리가 농사 지으면서 살기로 한 것에 대해서 잘 생각했다며 응원한다고 하셨다. 부모가 자식의 삶을 응원하는 것은 자식 입장에서 무척 기분 좋은 일이다. 그건 그거고 아버지랑 술잔을 앞에 두고 마주앉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리라.

 친구들을 만났다.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면 아내와의 불화가 주요 주제다. 다들 어떤 의미에서 인생은 어차피 혼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결혼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내가 술자리의 주제라는 것만으로도 아내에게 감사해야할 일이 아닐까? 결혼은 원만하게 성립되는 성질의 것인데 그렇다면 이혼은 무얼까.하고 생각해본다. 가정법원의 판사라면 답을 알 것이다.

 엊그제 인제 사는 bk형의 전화를 받았다. 형은 많이 취해 있었다. 형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사람이 왜 人자를 쓰는 줄 아느냐, 인삼이 왜 人자를 쓰는 줄 아느냐 , 인삼 뿌리가 왜 일자로 뻗어 있지 않고 갈래갈래 퍼지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인삼이 쓰러지지 밀라고 그런 것이라고 했다. - 형 인삼은 땅에 묻혀 있어서 쓰러질 일이 없습니다. - 그리고는 물건은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면 되지만 사람은 쓰러지면 못 일어난다고 했다. 뒤이어서 쓰러져 본 사람만이 다시 넘어지지 않는 거라고 했다. - 형, 사람은 쓰러지면 못 일어난다고 방금 말씀하셨습니다만. - 그리고는 형이 많이 힘들다며 연락하고 지내자며 전화를 끊었다.

 bk형이 하고 싶었던 말은 人 자가 작대기 하나가 나머지 하나를 받치는 모양인 것이 서로 기대어 살아야 쓰러지지 않는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맥락이 아니었나 싶다. 올해 토마토 값이 안 좋아서 괴롭고 겨울에 쉬지 않고 돈 벌러 객지에 나와 있는 것이 외로워서 전화하신듯 하다. 외로워서 나한테 전화를 하는 형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외로울 때 생각나서 전화를 거는 사람이 또 그 전화를 받는 사람이 친구다.

 나는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좋고 놀 때 함께 노는 게 좋다. 물론 삶이란 게 나 좋은대로만 되진 않는다.

 공중 화장실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하는 너무도 풍요로운 이 시대를 사는 것이 대상도 없이 미안하고 불안할 때가 많다. 평생을 내가 갖고 살아갈 마음이다.

 출도 후 한 달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면서 이것저것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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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9 - 새벽

그때그때 2014. 11. 29. 03:55
일찍 마신 술 때문에 일찍 일어났다. 친구 집임을 알고 안도했다. 모두 잠든 고요속에 내 머릿속만 총명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내 바지 주머니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나도 모르고 바지도 모른다. 이대로 침묵의 세상으로 달아날까?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일이 쉽지 않다.

세월호를 생각한다. 참으로 일어난 참혹한 일을 참사라고 한다. 자기 아이가 죽은 일을 참사라고 하면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생각한다. 생각만으로도 몸이 찢기는 듯하다.

'내 자식 소중하면 남의 자식 소중한 것도 알아야지.'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졌을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세월호는 남의 자식, 남의 것 소중한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 나라를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겹다는 말이,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말이 뉴스에서 나오고 박씨는 경제 문제로 골든타임을 언급했다. 그 주둥이를 잘라서 술안주로 구워 먹으리라.

무력하다. 내 몸과 마음도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대체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희망이 희망이란 말 속에만 있을 때, 절망은 한 걸음만 내딛어도 온 몸에 와 닿을 때, 세상이 다 죽은듯한 시간에 혼자서 말똥말똥 할 때, 나는 아무것도 노래하고 싶지 않다.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계기만 기다리는 내가 참으로 병신같다. 빙구, 멍충이, 음식물 쓰레기같은 나를 본다.

허기가 밀려들지만 물만 들이키는 새벽이다.
AND

쉬워 보이는 길과 어려운 길이 있다. 쉬워 보이는 길을 선택하면 예상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면 예상했던 어려움과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계획된 인생을 원한다면 후자 쪽를 선택하겠지만 삶이란 계획이 소용 없는 것임을 안다면 양쪽 모두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나는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하려고 하나?

뭐든 내 힘으로 해보고 싶다. 집을 구하고 땅을 얻고 돈벌이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까지, 모든것을 온전히 내 힘으로 해 보고 싶다.

어제 아침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데 기분이 안 좋았다. 껍데기부터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데 내 힘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얻을 수 있을까. 내 안의 무언가를 바꾸기 위한 노력도 귀찮을 때가 있는 법이다.

아직은 좀 더 애를 써보고 싶다.


집 구하러 강릉에 왔다. 고향 같은 곳이라 마음이 편하다. 아내도 나랑 같은 기분이면 좋겠는데, 그렇질 않다.

친구 내외랑 술을 마셨다. 내외가 다 친구다. 친구가 시나리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제부터 시작이지만 일단은 발을 들였다. 기분이 좋다. 나도 12월 중에는 셋집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될 거다. 그러고나면 강릉에 발을 들이는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이다.

미래는 어차피 불확실한 것이니 막연한 기대를 갖고 불확실함을 즐기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야구처럼 살아있는 동안의 시간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법이다.

끝 없이 추락하는 앨리베이터도 언젠가는 멈출 것이고 망망대해를 떠돌던 조각배도 계속 노를 젓다보면 어딘가에는 닿을 것이다. 그곳이 침몰한 후에 닿는 바닷속의 끝이라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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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9개월만에 다시 이삿배에 몸을 실었다.

볼음도에서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질 않네. 그저 덤덤하다.

이 배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기왕이면 미래로 데려다다오.

엊그제 회관에서 할머니들이링 밥 먹었다. 오늘은 이사 나가는 날이라고 할머니들이 국수 끓여주셨다. 니미럴 정들여 놓고 나가는 놈이 나쁜 사람이여.란 얘기를 들었다. 할머니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젊은 사람들 농사 짓는다고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kk할매는 정들면 이별이고 인생 살이가 그런거라며 눈물을 보이셨다. 지후도 눈물을 보였다.

망고는 결국 못 데려갔다. 고양이 가방에 가뒀던 놈을 잠깐 풀어줬더니 나무에 올라갔다. 그걸 본 아내가 마음이 약해졌다. 망고야 네 덕분에 지난 여름부터 쭉 즐거웠단다. 자유와 밥 중에 자유를 택했으니 자유롭게 살아라.

엊그제 저녁에는 동네 형들이랑 통닭을 먹었다. 폐만 끼치고 가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제가 없어도 그렇게 표가 나진 않을거예요. 벼농사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볼음도 시절이 이렇게 간다.

어떤 기간들에 대해서 시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이가 들었다.

혼자 강릉에 내려가서 살 때 정주하는 삶을 갈구했었는데, 거처를 자주 옮기다보니 그 마음이 흐릿해졌다. 떠돌이 한평생도 좋지만 네이밍만 나중에 어딘가에 써 먹고 강릉에선 정착을 하자.

지후야, 나만 믿어라. 나도 너만 믿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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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이 좋아서 농사 첫 해부터 유기농으로 벼농사를 지었다. 운이 좋아 농사 첫 해에 논을 4200평이나 얻었다. 작년에 논 세 자리 중에 1800평짜리 한 자리 농사를 망쳤다. 물달개비가 논을 뒤덮었다. 콤바인을 운전한 이장님께서 그래도 나머지 두 자리에서는 평년만큼 나왔다고 했다. 

 정확하게 조사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부에서 발행하는 농산물 소득 자료에 의하면 벼농사는 평당 2500원이 남는다. 근데 그게 자기 땅에 자기 기계로 농사 짓는 경우다. 남의 땅에 남의 기계로 농사 지으면 평당 1000원이 남는다.

 작년에는 벼를 전량 수매하지 않고 3분의 1 정도는 직접 팔았다. 택배비 포함해서 4만원에 가까운 비싼 가격이었지만 여기저기서 많이 도와주셨다. 덕분에 평당 1000원 정도는 남았다. 작년도 유기농 쌀 수매가격은 80킬로 한 가마에 235000원이다. 10킬로에 30000만원 정도다. 이게 한살림에 가면 38000원에 팔린다.(40000원으로 올랐을까?)

 인천의 학교 급식에 타지 쌀을 쓰도록 하면서 농협에서는 팔기 어려운 유기농 벼를 아주 소량만 수매한다. 그나마 그것도 가지고 있다가 몇 억씩 손해를 보고 판다. 그 손해를 이자놀이 한 돈으로 메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볼음 2리 친환경 작목반에서 나오는 쌀은 농협이 아니라 강화의 다른 곳에 수매한다. 그런데 이 곳은 수매 대금이 없다. 수매 대금이 없다보니 쌀값 지급이 늦어지고 수매 대금이 없다보니 창고에 쌓여있는 벼를 담보로 농협에 대출을 받는다. 농민들은 해가 지나서 쌀값을 받고 그러다 보니 농협에서 빚을 내서 생활을 하기도 한다.

 정말 거지같은 악순환이다.

 

 올해는 작년에 잘 안됐던 논 한 자리를 줄이고 2400평만 농사 지었다. 물이 적었지만 다행이 수확은 작년만큼은 된다. 그리고 올해는 이사 문제 때문에 수매 대금이 없는 줄 알면서도 내 벼를 작년의 그곳에 수매했다. 

 얼마전에 동네 소방대 회의 때문에 동네 벼농사 짓는 분들이 다 한자리에 모였다.(소방대=벼농사농부=교인=청년회, 볼음도는 대략 이런 느낌이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왔다.

 

 - 농협에서 친환경 벼는 수매량을 정해서 받아준다. - 즉, 나머지는 알아서 팔아야 한다. - 이래서 친환경 농사 짓겠나? 친환경 안 지으면 쌀시장 개방 때문에 나중에는 쌀 팔기 더 어려워질수도 있다. 정부에다 얘기해서 민통선 지역 쌀 전량 수매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그거 지정하자면 어려운 점이 많다. 올해 풍년인데, 농협에서 다 사주는 것이 아니니 풍년이라고 좋은 것도 아니다. 강화군친환경 농민회 쪽을 통해서 한살림에 나가는 쌀값도 쌀을 팔아보고 내년 3월에 준다더라. 이래서야 농협에다가 파는 것만 못하다. 유기쌀도 한살림에 나가는 가격과 다른 생협에 나가는 가격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유기농사 짓는 사람들끼리도 가격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 지금 무농약인 논들을 내년에는 다 유기농으로 바꾸면 어떨까? 내년부터는 인증받을 때, 잔류농약 검사 비용을 농민들이 내야한다. 이래서 친환경 하겠나. 기술센터에서 하는 잔류농약 검사로는 친환경 인증을 못 받는다더라. -

 

 나라에서 농업을 버리니 농민들은 삶도 마음도 점점 팍팍해져 간다.

 나만해도 어떻게든 나라도 살아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농민들이 벼농사를 포기하고 여기저기 논이 싼 도지에 나올 때, 그 논을 임대해서 GMO 아닌 벼로 유기 벼농사를 짓고(GMO문제도 언제가 한 번 써야겠다.) 직거래로 판다.

 결국 올해 꼴랑 2400평 농사 지은 쌀값을 언제 받을지 모르게 됐다.

 뭔가 많이 잘못됐다.

 

 낙관(樂觀)과 적당히 대충을 헷갈리면 안된다.

 비관(悲觀)과 철저한 준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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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0 - 포비

그때그때 2014. 10. 30. 19:59

j형한테 전화가 왔다. "야, 개 끌고와라."

포비를 데리러 집 뒷언덕으로 올라갔다. 같이 놀자고 팔짝팔짝 뛰는 놈을 일단 집 앞으로 데려왔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지후가 포비를 안고 울었다. 포비는 놀러 가는 줄 알고 신이나서 아내 눈물을 핥았다.

20여분 정도를 걸었다. 포비는 언제나처럼 앞장 서서 나를 끌고갔다. 포비는 산책할 때 늘 그랬던 것처럼 길가 여기저기에 똥오줌을 쌌다. 오랜만의 나들이라 기분이 좋았을까? 포비는 혀를 내밀고 "학학" 웃으면서 뛰었다. 걷는동안 마주친 동네분들이 어디 가냐고 물었다. 개를 데리고 이사갈 수는 없다는 얘기도 하셨다.

j형은 매듭을 만들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개가 너무 커서 무서웠을까. j형이 나보고 매듭을 목에 걸라고 했다. 매듭을 목에 걸어줬다. 농협 건물 뒤쪽 언덕으로 가서 나무에 포비를 맸다. 나무에 매달리기 직전까지도 포비는 자신의 운명을 몰랐다. 편안하게 갔다.

시골개로 태어나서 시골개로 갔다. 어려서는 자유로웠지만 동네 닭들을 죽인 후에는 늘 묶여지냈다. 주인을 닮아서 야채를 제외하곤 뭐든 많이 먹었고 사는 동안 고라니도 한 마리 잡았다. '앉아.' 밖에 못 알아들었지만 우리가 주인인 것을 알아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짖어도 우리에게는 짖지 앉았다. 어려서는 정말 귀여워서, 외딴섬에 이사온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작년에 볍씨 넣을 때 우리에게 달려오던 놈의 모습이 머릿속에 계속 리플레이 된다. 개를 처음 키워보는 주인을 만나서 여러가지로 불편했을지도 모르지만 대체로는 잘 지냈다고 생각한다.

오늘, 나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개 포비랑 안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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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8 - 신해철

그때그때 2014. 10. 28. 00:46
가을걷이가 끝났고 주말엔 동생이 결혼을 했다. 일이 있어 시흥시에 다녀왔고 피로에 지쳐서 늦게까지 잤다. 자고 일어나니 겨울이 왔다. 마당 앞에 찬 바람이 날아다니고 벼벤 뜰이 황량하다. 고양이들은 춥다고 내 옷자락에 붙어서 울었다. 이웃집에서 점심으로 만두랑 오뎅을 실컷 얻어 먹고 와서는 또 잤다. 야구를 보다가 가슴이 답답해서 손을 땄다. 아내 손도 땄다. 내 손끝에는 검은 피가 주렁주렁 맺혔다. 속이 편해졌다. 잠시후에 신해철이 죽었다. 아내가 엉엉 울었다. 노래방에만 가면 인형의 기사를 부르던 친구가 생각났다. 나는 고딩때 노래방에만 가면 넥스트의 머니를 불렀었다. 신해철을 무척 좋아하는 친구 하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내는 계속 울었다. '마지막 인사를 할 수가 없어. 그대는 비를 맞은 슬픈 천사처럼 떠나갔네.'를 들었다. 친구에게선 답장이 오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는데 하늘에 별이 많았다. 이제부턴 겨울이야.라는 듯 바람이 차가웠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을 먼저 보낸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달지도 시지도 않은 귤을 먹는 것 같은 밍밍한 슬픔일까.

세상에 나왔다가 가는 일이, 삶이란 것이 이렇게 일상속에 있다. 일상이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이렇게 허무하고 허망한 것이다.

낮에 너무 많이 자서 오늘밤은 잠들기 어려울 거 같다.

잘 살다가 가셨습니다.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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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마 정리 중이다. 올해는 흉작이다. 흉작인데 택배비는 칠천원이다. 다행인 것은 당초 예상인 서른 상자를 넘어서 마흔 상자는 나올 거 같다는 점이다. 유기농도 좋지만 한 상자에 32,000원 하는 고구마를 누가 사 먹겠나? 우리를 어지간히 좋아하거나 우리를 돕기 위한 마음이 없으면 못 사 먹는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도 많이 팔아 주시고 올해도 계속해서 우리를 먹여 살려 주시는 j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아마 이건 못 읽으실테니까 따로 전화를 드려야겠다. - 감사합니다.

 지난주에 친구 내외가 다녀갔다. 아이도 데려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조개 잡으러 같이 갔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아쉽다. 섬에 왔으니 섬안주랑 술을 먹았으면 좋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조개를 못 먹으니 망둥이라도 쪄주려고 했는데 일이 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뭐 그래도 어린이가 좋아했던 것 같으니 그걸로 좋다. 이 친구랑은 어렸을 때 뜨거운 뭔가를 나누지 못하고 술만 나누어서 그런지 나이 먹어서도 계속 술만 나눈다. - 어려서 뜨거운 뭔가가 있는 사이들이랑도 요즘 만나면 술만 나눈다. - 죽을 때까지 쭉 술을 나누는 사이는 참 괜찮은 사이인 거 같다.

 새벽에 일어나서 '하루에 하나씩'을 정리했다. 최근에 올린 건 거의 메모 수준이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여튼 슈퍼위크를 거쳐 열 두개를 골랐다. 여기서 두 개를 더 정리하고 10개를 만들어서 다섯개씩 두 곳에 보낼 계획이다. 보내는 것까지는 계획대로 할 수 있다. -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당선되서 아내랑 맛있는 거 한 번 먹고 한 번 더 먹고 한 번 더 먹고 싶다. - 아내의 평가에 의하면 내가 쓴 글에는 삶의 정수가 없다. 맛는 말이다. 일단 삶에 정수가 없어서 그렇다. 또 죄, 엄마, 이별로 범벅이 된 글들이 많다. 그것도 맞다.

 고친다는 표현이 좀 어색하지만 정신 차리고 고치자.

 다가올 이사를 생각하면 뭔가 훵하고 휑하다.

 불확실한 미래보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 법이니까, 그게 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니까 지금처럼 긍정적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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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업은 어디로 가야하나?

쌀은 정부에서 손을 놨다. - 미친놈들 - 한중 fta로 그 동안 농업쪽에서 돈이 되는 분야로 알려진 시설 채소(오이, 토마토, 파프리카) 쪽도 이제 끝물이라고 봐야한다. - 지금 농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돈 벌어 보겠다고 (시설)하우스에 투자하는 건 한 번 망해보겠다는 얘기다. - 정부에서 지금 건드리기 어려운 쪽이 한우다. 대농인 노인네들이 많은 벼농사와 달리 한우쪽은 현재 지역의 실세인 젊은 농부들이 많기 때문이다. - 젊고 돈이 있는 사람들(아버지가 지역의 대농인 양반들)이 소를 키우는 이유는 일손이 적게 들고 돈이 되기 때문이다. - 젖소 키우는 양반들에갠 미안한 얘기지만 젖소는 이미 끝났다고 봐야한다. - 우유가 남아 돈다는데도 우윳값이 일본보다 비싸다. 과잉 생산도 문제지만 결국 유통과 정부 관리의 문제다. 삼성전자 휴대폰 부문이 곧 망하게 될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

농업을 사업으로만 생각한다면 이런 현실에 맞춰서 가장 돈이 되는 쪽을 좇으면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하지?

오늘 페친 중애 한 분이 생협 물건도 믿을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가 여기저기서 많이 까이셨다. 자본만을 추구하는 몇몇 생협에 이미 생산자는 없다. 생협이란 것 자체가 이미 거대한 시스템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어떤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시스템 안에 있는 생산자는 인증만 잘 받으면 된다. 내 농산물의 가격만 잘 받으면 된다는 생각에 빠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스템 밖에 살면서 시스템 안의 삶을 누리자니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가 결국은 돈이다. 기계를 쓰지 않고 비닐도 안 씌우고 약도 안 치고 농사 지을 수 있는 면적은 한정적이고 그 생산물로 얻을 수 있는 수입이란 것은 이건희 같은 사람이 아주 비싸게 구입해 주지 않는한 맥시멈 월 50만원일 것이다. 월 50만원 벌어서 아이와 함께 셋이서 살 수 있을까? 시스템 밖에선 가능하다. 그 시스템 바깥을 갖추기 위해서는 내 땅과 내 집(겨울에 나무로 난방을 하는)이 필요하다. 요즘 젊은이들이 부모님이나 어느 독지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땅과 집을 갖출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농사는 뒷전으로 미루고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게 된다. - 인터넷, 핸드폰 요금과 겨울의 난방비를 벌기 위함이다. - 일단 뒷전이 된 농사는 계속 뒷전으로 밀린다.

젊은이가 자본금 없이 농사 지으러 내려왔다가 다른 일로 돈을 버는 이 같은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런 생활은 아파트 사려고 몇 억씩 대출 받는 도시 봉급 생활자의 악순환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지?

농업쪽으로도 아이템이 없는 것은 아니다. - 밝히진 않겠다. - 다른 일을 하면 그 일에 매몰된다. 얼른 돈을 벌어서 땅을 조금 구해야할까?

나랑 내 아내를 믿는 사람들이 생협 물건을 믿는 것보다 우리를 믿고 - 아는 사람 믿는 것이 쉬운법이다. 배신은 없다. - 내 농산물을 내가 적어낸 가격으로 사주면 좋겠다. 신토불이와 지산지소를 넘어서 '아는 사람 것을 사 먹는다.' 는 운동이 나 같은 애들을 살린다. 이 운동이 택배 시스템 안에 있다는 것은 또 다른 함정이다.

그래도 같이 좀 삽시다.

며칠 후에 캘 고구마 사달란 얘길 길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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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를 벴다. 2400평 베는데 세 시간 정도 걸렸다. 작년에도 그랬는데 벼 베는데 감흥이 없다. 이를테면 한 해 동안 열심히 하고 열심히 자라준 보답을 받는다는 기분 같은 것이 없단 얘기다. 농업을 직업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인가? 고구마 꽃이 피어도 그런가보다, 벼베기를 해도 그런가보다 한다. 오늘 죽든 10년 후에 죽든 큰 차이가 없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우리집에서 저녁을 했다. 작목반 형들이랑 아저씨들 말고도 동네 형들이 몇 분 더 오셨다. 아내가 고생했다. - 고생했어요. 올해의 모든 미션은 토털리 컴플리트. - 즐거운 자리였다. 노래를 하래서 노래를 했다. 내 기타에 맞춰서도 하고 아내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도 했다. 밥 먹다가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사람들이 시골에는 없다.고 하는 문화 생활이다. 사실 나는 영화도 잘 안 보고 티비 없이도 잘 지낸다. 게임과 책과 기타면 충분히 문화 생활이 된다. 나는 그렇지만 동네분들은 그렇지가 않다. 내 노래를 듣고 무척 좋아하신 몇몇 형들을 보면서, 쌀값은 쭉쭉 떨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니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술 마시는 거 말고 다른 즐거운 일이 있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벼는 수매하기로 했으니 이제 들깨 털고 거구마 캐서 팔면 올해 농사가 끝난다. 남들은 12월에 끝나는 한 해가 10월 말이면 끝나는 걸 보면 농부란 건 참 좋은 직업이다. 개인적으론 남들보다 덜 벌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벼베기를 마친 기념으로 쌀 개방에 대한 나의 악마적인 생각을 적어본다.

쌀개방은 이미 다가온 현실이다. 땅만 가지고 있는 상태로 농사일의 거의 90%를 영농대행으로 벼농사 짓는 노인들은 쌀개방과 함께 지금까지의 농사 방법이 의미를 잃게 된다. 이것 저것 대금 주고 가을에 내 쌀이다.라고 하며 벼농사 짓는것 보다 도지쌀 받아 먹는 것이 더 이익인 싱황이 되는 것이다. 그네들이 내놓은 땅을 하나하나 확보해서 도지 주고 농사 짓는 평수를 몇 만평 씩 늘린 대농들은 결국 기곗대 때문에 현상 유지가 고작일 것이다. 이 대농들도 점점 나이를 먹고 벼농사에서 손을 떼겠지. 그런 중에 나는 벼농사를 시작할거다. 내 손으로 완벽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5천평 정도가 좋겠다. - 물론 벼농사는 하늘이 짓는다. - 토종벼를 심어서 적절한 값에 직거래를 하고 기계는 기술센터에서 빌려 쓰기로 한다. 그렇게 몇해가 지나고 수입 쌀값이 무척 많이 오른다. - 지금도 미국쌀이 그렇게 싸진 않고 초대형 자연재해의 빈도는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 돈은 그때 벌어야겠다. 물로 계속 내 쌀을 사 먹던 사람들에게는 계속 비슷한 값으로 쌀을 팔 것이다.

봉화의 어느 정미소에서 80킬로 한 가마에 155000원 줬다는 글을 읽었다. 정미소에선 거기에 삼만원 정도 더 얹어서 팔겠지. 어느 정미소에소는 수입쌀도 섞어서 팔겠지. 80킬로면 도시의 맞벌이 부부가 일년 먹고도 남는다. 쌀 값이 상식을 벗어났다. 농업을 버린 이 나라도 너무도 싼 쌀 가격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국민들도 언젠가 후회할 거다. 그리고 그 후회의 순간까지 나는 묵묵히 벼농사를 지을 거다.

나의 다짐이 되버렸네.

우리나라 젊은 소농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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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내 생일이다. 심은하, 이미연 누나도 오늘이 생일이다. 몇 개의 생일축하 연락을 받았다. 생일이란 그런 것이다. 아내가 미역국을 끓여줬는데, 못 먹었다. 벼베기를 시작 했기 때문이다. 오늘치 일을 마치고 k누나네 가서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내 생일날 벼를 벴다. 벼로서는 오늘이 죽는 날이기도 하지만 새로 태어나는 날이기도 하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벼의 일생을 가지고도 한참을 적을 수 있겠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어쩌다보니 저녁 먹는 자리에 주수형, 정훈이형, 완이형, 나, y이장님, 그리고 동네 형들 두 명까지 꽤나 여럿이 모였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어지간히들 취했다. 형들은 올해 작황, 쌀 판매 대책, 배 타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 마른벼의 운송비 문제, 젊었을 때 이야기들을 했다. 나도 중간중간 끼었다.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다. 내가 사랑하는 시간이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시간이다.

 

 얼마전에 강릉에 갔다가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의 자전거에 자물쇠가 채워진 것을 봤다. 우리동네는 밤에 문 잠그고 자는 집도 거의 없다. 심지어 우리집은 문이 잠기지도 않는다. 다시 통제의 영역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자고 동쪽 끝에서 서쪽의 땅 끝까지 와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바람에 떠나가는 마음이 이다지도 무거운 것일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이 문제다. 개 병신 같은 사람들을 만나도 문제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떠나려는 마음에 계속 돌덩이가 툭툭 떨어진다. 무겁고도 무겁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고마운 일들에 대해서 어떻게 제대로된 감사를 전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싶다. 산 속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은 요즘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특히 더 강하게 나를 때리는 2014년 9월의 어느날 내 36번 째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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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올해가 다 갔다.

오늘은 추석맞이 동네 풀베기를 했다. 하루 빡세게 일하고 나흘 설렁설렁 일한셈 친다. - 옘병, 어디에다 감사할 진 몰라도 감사합니다. - 일 마치고 술을 마셨다. 오후 한 시에 새벽 한 시 만큼 취했다. 그리고 동네엔 빗방울이 떨어진다. 말라 비틀어진 논에 도움이 될거다. 모든 것이 완벽한 이 순간에 나는 불안하다.

두 명의 친구랑 통화를 했다. 한 놈은 춘천에 한 놈은 강릉에 산다.

무릇, 사람이란 자기 마음이 편한 곳에 사는 게 제일이다. 두 친구 모두 그렇질 않다. 또 사람이란 자기 편한대로 사는 게 제일이다. 두 녀석 모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그러자고 강릉으로 이사 가려는데, 그렇지 않은 친구들을 보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죽을때까지 계속된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도 변하지 않는 명제다. 이 두 가지가 상호작용하며 개인의 삶을 정한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는가?
엘시노어여, 나는 어디에 있는가?

질문은 끝나지 않고 대답은 반복된다. 이 반복을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세계의 질서는 깨지고, 나도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기 위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는) 사라진다. 사라진다

고구미가 여기까지 생각했을까? 두렵다.

존재하지 않는 영원까지 언제까지라도 마시고 싶은 오후다.

예초기로 풀을 잘라낸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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