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기차 타고 서울 갔다가 새차 뽑은 거 찾아서 토요일 밤에 내려왔다. 친구들도 만나고 아버지도 만나고 엄마도 잠깐 만나는 일정이었다.

데이케어 센터 선생님들 만나서 아버지 관련 얘기를 주고 받았다. 아버지는 일단 건강하다. 내가 보기에도 센터 선생님들이 보기에도 현재 아버지의 치매는 정체기다. 이 정체기가 쭉 오래 갔으면 좋겠다고 간호부장 선생님이 말했다. 내 마음은 잘 모르겠다. 센터의 간호부장 선생님이 아버지가 처음 센터에 갔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많은 신경을 써 준다. 어떤 결이 맞는거겠지. 항상 고맙습니다.

아버지랑 순대국 먹는데, 아버지가 연신 깍두기를 집어 먹으면서 이런거 먹은지가 언젠지 모르겠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데이케어센터 식단표를 보니 배추김치가 80프로 열무김치가 20프로다. 깍두기를 오랜만에 먹은 게 맞다. 아버지가 영 정신줄을 놓은 건 아니라 안심인가? 잘 모르겠다.

사물의 이름을 잊은 것을 시작으로 시작된 아버지의 치매 증상은 최근에 사람 이름도 잊는 것으로 번졌다. 밥 먹으면서 아버지한테 몇 가지 이름을 확인했다. 내 이름, 동생 이름, 엄마 이름은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이름은 다 잊었다. 혹시나 싶어서 동생 큰 아이 이름을 물어봤는데, 어호연이란 이름을 잊지 않았다. 아버지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외웠을 이름이다. 아버지 인생에서 손주가 태어난 것이 굉장히 큰 사건이었구나, 싶었다. Fucking blood. 혈육…..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엄마한테 잠깐 들렀다. 막내 이모 생일이라 함께 밥 먹고 돌아온 둘째 이모랑 이종사촌 동생, 셋째 이모랑 이모부를 만났다. 잠깐 만났으니까 잠깐 대화했고 그 대화가 무탈하게 흘러갔고 약간의 농담과 걱정과 인간에 대한 존중이 섞여 있었다. 운전해서 강릉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떤 만족감이 있었다. 인간은 서로에 대한 존중 같은 것에서 만족감을 얻는다. 그 존중의 방법이 커뮤니케이션이다.

금요일 밤에 남현이 만났을 때, 예전에 남현이에 대해서 쓴 일기를 보여줬다. - 나도 그런 걸 쓴 줄 몰랐다가 최근에 알게 됐다. - 투박하게 쓴 글인데, 남현이가 좋아했다. 내가 친구에 대한 글을 쓴 게 나에게는 우정의 증명 같은 거고 친구가 그 글을 잃고 좋아한 게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만족감 같은 거다. 남현이가 지금 만나는 애인 잘 만난거 같다고 얘기했다. 남현이는 내가 빈말 잘 안 하는 걸 아니까, 본인의 연애가 종중 받는걸 느꼈을거라고 생각한다. 선비처럼 살 수는 없지만 욕보다는 좋은 말을 많이 해야지 생각했다.

영일군이 새차 사는 거 전적으로 도와줬다. 영일군은 직업상 자동차랑 관련된 일로 친구들 도와주는 거 좋아하긴 하지만 일정 때문에 술 한잔 못 사주고 내려와서 미안하네. 강릉으로 출발하기 전에 고맙다고 문자 보냈는데, 별 말씀을 답장이 왔고 담에 내가 한 잔 사기로 했다. 영일이가 운동 얘기 자동차 얘기 어린이 얘기하면 나는 맞장구 쳐주면서 들어주는데, 이런 것도 존중의 방법이다. 일단은 워낙 친구니까 뭔 얘기든 다 들어주겠지만.    

31일이 아버지 위암 수술 6개월 경과 건강 검진이다. 월말에 회사에 좀 바쁜일이 있긴한데, 방법을 찾아서 30일 밤에는 올라가 봐야겠지. Fucking blood. 아버지, 금방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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