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서울 가서 아버지 집에 들렀다가 에어컨 틀어놓고(7시간 후 꺼짐) 나와서 친구 만났다. 친구 만나던 중에 데이케어센터에서 돌아온 아버지에게 전화와서 '에어컨 건드리지 마시고 내일 아침에 만날거다' 라고 했다. 아버지가 아이처럼 좋아했다. 아버지가 날 만나는 일에 아이처럼 좋아하는 반응을 보일 때, 내 마음에는 커다란 부담과 그와 같은 크기의 안심이 함께 자리한다. 둘 다 무겁다. 일요일 아침에 아버지를 만났다. 에어컨 리모콘에 건전지가 사라졌다. AAA건전지가 들어가는 리모콘인데, AA건전지가 방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버지 옷장을 찾아보니 아버지가 리모콘에서 빼 놓은 AAA건전지가 있었다. 토요일 오후에 아버지는 혼자 에어컨 리모콘을 만지작 거리다가 뭔가 잘 안되서 건전지를 빼고 새 건전지를 사서 끼워보려는 시도까지는 했다, 는 걸 알 수 있다.
 
 아버지가 배고프다 해서 오전 10시에 순대국 먹었다. 아버지가 맛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한 그릇 다 먹지는 못했다. 위암 수술의 영향인데, 많이 먹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뚝배기에서 고기 꺼내서 간장 소스에 찍어드렸더니 맛있다고 하면서 잘 드셨다. 아버지는 소스에서 약간 단맛이 나는 것도 얘기했다. 아버지랑 밥 먹는 건 이 정도면 만족한다. 은행에 가서 돈 찾아서 지갑에 채워드렸다. 지갑에 돈이 없으면 불안한 어떤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카드 쓰는 것보다 현금 쓰는게 익숙하고 카드 쓰다가 카드 잃어버리는 것 보다 현금 쓰는게 나은 것 같다. 슈퍼에 가서 카스타드 케잌이랑 과자 두 가지 골랐다. 과자 중에 '사브레'는 '단거...'라고 하면서 아버지가 골랐다. 
 
 에어컨 9시간 후에 꺼지도록 설정하고 아버지 집을 나왔다. 3시 기차를 탔다. 기차 타기전에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에어컨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는 알았다고 했다. 리모콘을 옷장에 넣어뒀지만 아버지는 금방 찾아낼거다. 아버지가 집에 도착했냐고 하길래, 거의 다 왔다고 했다. 앞으로 두 시간을 더 가야하지만 청량리역까지 왔으니 거의 다 온거다. 어제 저녁이랑 오늘 아침에 아버지랑 통화했다. 아버지는 어제 서울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 걸 알고 있었다. 에어컨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했는데, 진짜 안 건드렸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에어컨에 관해서 물어보니까 자꾸 핸드폰이 주머니에 있다는 얘기를 했다. - 손에 들고 나랑 통화하고 있는데. -
 
 아버지는 에어컨을 정말 좋아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전기 콘센트에 플러그 꼽는 법도 잊고 리모콘을 다룰 줄도 몰라서 혼자서는 에어컨을 틀지 못한다. 누군가는 딱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 아버지 딱한가? 우리 아버지 딱하네. 사상 최고의 더위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더워서 죽는 일을 생각한다. 그게 우리 아버지다. 데이케어센터 선생님들이랑 한 때는 같이 살았던 가족들이 있어서 지독하게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 혼자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8월 말에는 병원도 한 번 가야하니 8월에는 아버지를 두 번은 만나야겠다.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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