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0 - 잡생각

그때그때 2023. 7. 20. 11:15

 집 주인이 집을 1억 3천 5백만원에 내놨다. 5백은 에누리고 정말로 1억 3천에 팔아 볼 생각인가 보다. 이사비용 줄테니 집 팔리면 나가줄 수 있겠냐고 해서 숨도 안 쉬고(홧김에) 알았다고 했다. 1억 3천이란 숫자를 들은 순간 이미 지금 집에 정이 떨어졌다. 이사비용을 준다면 이사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집이 안 팔리면 좋겠다. 가장 중요한 건 나중에 전세 보증금 못 돌려받는 일 없어야 한다.

 지난 주말에 아버님과 20분 정도 통화했는데 19분 동안 고등학교 2학년 다니는 손주(아내 오빠 아이) 자랑을 하셨다. 그냥 장단 맞춰 들어드렸다. 아버님 인생의 유일한 낙이 손주가 공부 잘하는 거다. 조기졸업 조건을 갖췄다니 본인 계획대로 대학도 조기입학하길 바란다. 다만 아버님이 너무 손주 자랑을 하니까 어떤 때는 내 안의 악마심이 발동해서 이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가면 아버님은 어떤 반응일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엄마가 막내 이모 도움을 받아서 내년 2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ELS 낙인(원금 손실 됐단 얘기임) 발생 문자를 카톡으로 전달해줬다. 문자를 전달하는 법도 모르는 엄마가 은행직원 말 듣고 ELS 가입하는 게 자본주의다. 어차피 원금 손실은 피할 수 없고 중국 경기가 살아날 가망도 보이진 않지만 홍콩 항생지수가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것 같진 않으니 그냥 만기까지 갖고 있으라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엄마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자본주의다. 잠 안자고 술 팔아서 번 돈에 손실이 생겨서 잠을 잘 못잔다는 우리 엄마도 자본주의인가? 자본주의다.

 신용카드를 아직  안 없앴는데, 8월부터는 서울 갈 때랑 기름 넣을 때만 써야겠다. 신용카드를 써보니까 체크카드만 쓸 때보다 돈을 더 쓰게된다. 이달에 쓴 휴대전화 요금을 다음달 말에 내는 것 처럼 애초에 빚을 깔고 시작하는 개념이라 그렇다. 이게 자본주의다. 자꾸 돈 생각을 하는 게 자본주의다.
 
 우리나라에 폭우가 내리는 사이에 미국 남부랑 남유럽은 또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남유럽 여름 고온 뉴스를 처음 접한 게 5년 이상 된 것 같다. 여름마다 사상 최고 기온을 갱신하는 상황이다. 남유럽이면 대략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포루투갈, 프랑스 남부 정도인데, 그곳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포루투갈 리스본은 외국사람들이 집을 많이 사서 월세 폭등으로 한 달 월급 받아서 월세도 못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리스본 외곽에 얼기설기 지어진 판자촌을 TV에서 봤다.  '생방송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을 매주 본다. 전쟁과 기후 파괴. 매주 세계가 끝장나는 현장을 방에 누워서 라이브로 보고 있다. 이게 맞나?

 더워서 죽는 사람들은 가난해서 죽는 거다. 미술하는 젊은 친구 한 명이 가난해서 죽는 상상을 자주 한다고 했었는데, 나는 내가 가난해서 죽을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암에 걸렸는데, 수술비가 없어서 죽는 건 가난해서 죽는 건 아니란 게 내 생각이다. 가난해서 죽는 것보다 비참한 죽음이 있을까? 은석이 삼촌은 고시원에서 고독사 했는데, 원인이 알콜이었겠지만 결국은 가난해서 죽은 거다. IMF 때 사업 망해본 사람들은 지금도 '다 IMF 때문이다.' 라고 한다. 가난해서 죽는 게 자본주의는 아닌데, 자본주의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다.

 얼굴과 이름만 서로 아는 사이인 어떤 형이 췌장암에 걸렸고 의사가 손을 쓸 수 없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은 게 1주일 전인데, 오늘 그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형은 1971년 생이다. 일론 머스크랑 동갑이다. 한국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태어난 해에 태어났고 또래들 평균보다 훨씬 일찍 죽었다. 전세계 인구가 70억이 넘는다. 사람이 많은 만큼 죽음도 흔하다. 나도 언제 갑자기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나 보다는 나이가 위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내 또래들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자주 들어서 그런가보다. 

 견실하고 차분하게 절제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과 막 살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시절이다. 내 마음속에는 항상 막 살고 싶은 충동이 있다. 어떤 경우라도 <물의를 일으키진 말자>고 거의 매일 생각한다.

 물의를 일으키지 말자.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