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엔 타이밍이 잘 안 맞아서 아버지를 못 만났다. 이번주 토요일에 올라갔다가 일요일에 내려오는 기차표를 끊어놨다. 아버지 치매 컨디션이 안정적인 것 같아서 하루 세 번 이상 하던 전화통화를 두 번으로 줄였다. 내가 먼저 전화할 때랑 아버지가 먼저 전화할 때가 있는데, 아버지가 먼저 전화할 때가 아버지 컨디션이 더 좋다고 봐야겠지. 최근에는 내가 먼저 전화할 때가 많은데,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엄마는 2주 전에 아버지한테 다녀왔다. 당신도 아버지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는 얘기를 나에게 했다. 걱정 좀 덜 했으면 좋겠다고 내가 답했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신경 쓰는 건 같이 살았던 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이모가 자꾸 엄마에게 아버지 돌보란 얘기를 하다고 한다.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한 엄마가 아버지를 돌볼 일은 없을 거니 엄마가 그런 얘기 좀 안 들었으면 좋겠다. 또 언젠가는, 동생이 엄마가.... 어쩌구 저쩌구 하길래 아버지 일에 엄마를 자꾸 연루시키려고 하지 말라고 - 문자로 보냈으니 동생이 내 짜증을 알았을 것 같진 않다. - 했더니 알았다고 했다. 동생은 나에게 섭섭했을까?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어젯밤에 아버지한테 전화가 안 오길래 내가 먼저 전화했더니 통화중이었다. 엄마랑 통화중인가 싶어 5분 후에 다시 전화했다. 둘째 이모가 전화를 받았다. 둘째 이모가 종종 아버지 집을 둘러본다. 아버지 먹을 것을 챙겨준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모가 보일러 전원을 꺼놔서 뜨거운 물이 안나온 관계로 그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몸을 씻지 않았다는 것과 데이케어센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막걸리를 한 병 사왔다고 알려줬다. 엄마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너무 속상해 했다고 했다. 나는 '이미 끝났는데, 어쩌겠어요.' 라고 했고 이모도 놔둬야지 어쩌겠냐고 했다. 이모랑 전화 끊고 엄마한테 전화할까 하다가 같이 울 것 같아서 전화하지 않았다. 엄마가 엄청 잔소리를 했을테니 아버지가 막거리를 먹진 않았을거다.
 
오늘 아침에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막걸리 얘기랑 샤워 얘기를 했다. 아버지는 약간 역정을 내면서 잘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 말이 끝나자 마자 '저는 아버지 걱정 안해요. 엄마가 걱정하지.' 했다. 아버지가 이모랑 엄마를 싸잡아서 '여자들이.....' 어쩌구 저쩌구 계속 횡설수설하길래 정확하게 알아들을 때까지 '저는 아버지 걱정 안해요'라고 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잔소리를 한다. 나는 아버지에게 잔소리는 안하고 잘하고 있다고만 한다. 엄마는 아버지를 걱정하고 나는 아버지를 걱정하진 않는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

무심결에 나온말에 본심이 있다. 나에게 아버지는 이미 끝난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나? 인류애도 정도 아니다. 연민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선가? 나의 무엇을 위해서? 생각 좀 해봐야겠다.
 
우기 끝나고 이제 여름 시작이지만 아버지의 여름도 나의 여름도 이미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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