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집 벽에 5월까지는 커다란 달력이 걸려 있었다. 날짜, 요일 개념은 없지만 아버지가 그 달력에 동그라미도 치고 '병원' 같은 단어를 적어 두기도 했고 내가 손가락으로 날짜를 가리키면서 오늘은 무슨 요일이라고 하면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6월에 아버지한테 갔을 때, 달력이 없어졌다. 날짜 가는 줄 모르고 한 장씩 찢다가 끝까지 넘어가 버린 것이리라. 새 달력 구해 드려야지 생각은 몇 번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없어도 그만인 물건이니 간절하게 생각하지 않는건가? 내 일 아니니까, 란 생각인가?

 일요일 오후에 아버지랑 1시간 통화했다. 이렇게 길게 통화한 경우는 처음이다. 날짜랑 요일, 학교 가는 날, 지금은 밤인지 낮잊지 계속 헷갈려 하길래 계속 알려주면서 얘기 들어줬다. 마지막엔 내 목소리가 살짝 높아지기도 했지만 통화는 온화하게 잘 끝났다. 아버지 얘기를 잘 들어보니까 점심 때 즈음 조기축구 멤버들이 밥 먹는 식당에 혼자 찾아가서 그들과 함께 밥을 먹었고 밥을 먹으면서 그들이 따라주는 술을 마셨고 집에 돌아와서 술기운에 낮잠을 잤는데, 긴 낮잠을 자는 바람에 머릿속에 깊은 혼란이 온 것 같다. 외로워서 그런거다.

 지금 다니는 데이케어센터가 참 좋긴한데,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곳으로 옮겨야 하나, 생각했다.

 내일이 아버지 병원 가는 날이다. 위암 수술 경과를 보게 된다. 벌써 수술하고 6개월이 흘렀다. 올해 초에 정말 힘들었지. 아버지 건강 상태로 봐서 결과는 좋을 것 같다. 오늘 내일 바빠서 동생에게 부탁했는데, 동생이 알겠다고 한 것을 엄마가 본인이 맡겠다고  했고, 동생도 엄마한테는 회사일이 바쁘다고 한 모양이다. 뭔가 기분이 안 좋다. 지난주 토요일에 아버지가 정확한 말로 '준석이 본지 오래됐어.' 했다. 동생은 애도 둘이고 삶이란 건 누구나 다 바쁘지. 그래도 기분이 안 좋다. 서울로 직장 옮기는 걸 계속 추진해야겠다.

 월요일에 출근하자 마자 회사 그만둘까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수요일이다. 다들 그러고 사는거겠지. 근데, 진짜 그만두고 싶다. 다 때려치우고 싶다. 산에 들어가고 싶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가만히 있고 싶다. 그게 직장인들의 주말인건가? 곧 마흔 다섯살이 되는데, 이제야 나도 보통 직장인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건가? 모르겠다.

 어제를 포함해서 최근에 아내한테 두 번 화냈다. 아내가 부탁이란 말로 자꾸 본인 일 심부름을 나한테 시킨다. 어제는 울화가 치밀어서 밤 10시에 와퍼 두 개 시켜 먹었다. 체할뻔했다. 울화가 치미는 사랑이란 말을 가끔 하지만. 나를 폭식으로 몰고가지 마라. 그러지 마라. 그러지 마라. 날 그냥 내버려둬라. 복권 사라는 얘기 말고 내가 너에게 하는 유일한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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