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01 - 영지버섯


그저께 동네 친구 k한테 영지버섯 채집을 배웠다. 집 바로 뒤에 있는 작은 언덕 같은 산 - 요옥산 - 을 다니면서 죽은 참나무에 의지해서 살고 있는 영지를 땄다.

어제는 해넘이 본다고 놀러온 친구 둘이랑 그저께 배운 걸 실습했다. 한 번이라도 해 본 놈이 낫다고 내가 엄청 큰 버섯을 발견했다.

동네에 영지버섯이 있는 이유는 동네분들이 예전에 영지버섯을 재배했었기 때문이다. 동네에 장뇌삼이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줌마 형님 형수님들이 행한 어떤 노력들이 세월과 함께 쌓이고 나는 그 위에 숟가락을 얹는 느낌이다. 나의 노력도 그렇게 쌓여가겠지. 대를 이어 살아간다는 게 이런것이겠지.

올해로 서른일곱이 되었다. 나이 먹는 일에 아무런 느낌도 없다. 그저 그뿐이다.



20140105 - 굴, 소라, 계획, 포비


k형, k누나랑 바다에 나갔다. 배를 타고 선창 앞에 있는 작은 무인도로 가서 소라 줍고, 굴배 땄다. 소라는 삶아 먹고 굴은 까 먹으면 된다. 자고 일어나서 먹어야지.

오후에는 아내랑 올해 계획을 세웠다. 결론은 우리의 소신은 지키면서도 생활비는 버는 것이다. 우리의 소신이 어려운 부분인데, 나도 아내도 인문학적 소양이 척박하다보니 소신이랄 것이 없다. 물론 농사는 쭉 비닐 쓰지 않고 화학비료 쓰지 않고 유기농으로 짓는다.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에 둥지를 탈출한 포비가 동네 닭들을 물어 죽였다. 포비야 널 어쩌면 좋을꼬. 일단 다시는 탈출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망고 중성화 수술도 시키기로 했다. 우리 동물 식구들아 사랑한다.



20140106 - 굴밥


느즈막히 일어나서 바지런을 떨었다. 굴배 따온 것 쪼다가 회관에서 밥 먹고 아내랑 포비랑 뒷산 한 바퀴 돌다가 영지버섯 두 개 줍고, 굴 마저 쫬다. 나는 생활과 관련된 일에 약한 편인데 굴을 잘 쪼는 것 같다. 상합이랑 굴이 내 적성에 맞는 걸까?

여튼 굴이 엄청 많다. 아내가 만든 간장 양념으로 굴 비빔밥 해 먹었다. 밥에 굴을 넣은게 아니라 굴에 밥을 넣은 형상이다. 밤참으로는 굴빠게티 끓여 먹고 내일은 정식으로 굴밥 해먹어야겠다.

어제 m아저씨네 소라 삶아 갖고 가서 엄청 먹었더랬다. 정초부터 너무 잘 먹는거 아니야? 기왕 바지런을 떨었으니 오늘은 작목반 블로그 만들자.



20140107 - 굴만찬


어제처럼 느즈막히 일어났다. k형네 가서 점심 얻어 먹었다. 노트북을 들고 가서 형수 폰엔 천수경을 형 폰엔 2013트로트 히트곡을 옮겨 넣었다. k형은 핸드폰에서 노래가 나오자 아이처럼 좋아했다.

o형네 못자리 가서 볏짚 묶었다. 우리 자리는 먼저 묶어서 뒷밭에 살짝 덮었다. 이제 m아저씨네 한 자리 남았다. 볼음도는 볏짚을 다 도로 논에 썰어 넣기 때문에 볏짚이 귀하다. 잘 모아 뒀다가 요긴하게 써야지.

저녁은 완이형이랑 먹었다. 지후가 굴만찬을 마련했다. 굴전, 굴무침, 굴국까지 해서 먼저 주워온 굴들이 제 몫을 다하고 냉장고에서 사라졌다.

이렇게 하루가 간다.



20140108 - 빅엿


오늘은 일찍 일어났다. 택배 아저씨가 아침배에 짐 싣는다고 전화했다. - 우리 동네는 우체국이 아닌 나머지 택배는 외포리에 있는 중간 택배 아저씨가 보내준다. 고로 비용이 더 비싼가? 택배 실었다는데 바로 못 찾으면 분실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 -

c 이장님네 컴퓨터 주문한 것이 왔다. 나는 차가 없는 관계로 이장님이 날 태우러 오셨다. 선창에 가는 길에 ks, kk할머니네 들러서 보일러를 살폈다. ks할머니네는 심야전기 보일런데, 물온도가 낮길래 전기를 강제로 돌렸다. - 중간에 에러가 나서 강화도 경동보일러 아저씨한테 전화해서 에러를 바로 잡았다. - 몇 시간 있다가 다시 들러서 잘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할머니, 전기세 아끼지 마시고 따숩게 지내셔요. kk할머니네는 기름 보일런데, 보일러가 도는데도 방이 따뜻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물온도가 중온으로 설정돼 있길래 고온으로 올렸다. 이 집도 나중에 확인해 봐야한다. 그러고는 c형네 세워 놓은 내 오토바이도 살폈다. c형이 고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안심했다.
 
c이장님은 큰 동네 이장에 교회 장로여서 참으로 일이 많다. 나는 도저히 그렇게는 못할것같다. 그래도 막상 닥치면 누구보다 잘 할지도 모른다.

여튼 그래서 컴퓨터를 갖고 집에 왔다. 윈도우를 설치하려는데 odd도 없고 64기가 ssd만 덜렁 달려 있었다. 아 내 실수다. 남의 물건이라고 내것 주문하듯 꼼꼼하지 못했다.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들었다. 전적으로 내 실수다. 아내는 os도 설치된 걸 사라고 했지만 - 내가 괴로워 하니까 아내가 그렇게 말함 -그렇게 하는 건 서로 돕고 사는 게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야지.

c형이 오토바이를 고쳐줬고 컴퓨터도 우체부가 가져가줬다. 도서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 우체국에서 안 받아주면 차에 컴퓨터 싣고 배 타고 나가서 강화에서 택배 보내야 함 - 우체국에서 컴퓨터를 받아줬다. c형, 우체부아저씨 모두 고맙습니다.

마음이 진정되고 나서는 아내가 회관에서 얻어온 엿을 먹었다. 양재기 바닥에 붙은 것을 숟가락으로 긁어 먹었는데, 숟가락에 엿을 돌돌 감아서 빅엿을 만들어서 먹었다. 망고도 행복하고 아내도 나도 행복하다.

잘해보려다 하는 것이 후회라지만 후회는 적당히 하는 게 좋으니까 잘 좀하자.



20140109 - 포비랑 산책


회관에서 점심 먹고 포비랑 산책했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돌까하다가 너무 추워서 은행나무 뒷동산에 올랐다. 여름에 놀랐을 때는 숲이 우거져서 잘 몰랐는데, 가지만 남은 나무들을 요리조리 헤치고 동산에 오르니 전망이 참 좋았다. 바다가 얼었다. 이승만 시절을 호시절로 기억하는 동네 할매들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겨울이면 바다가 얼어서 연백땅까지 걸어 갔다고 한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연백평야에서 농사 짓는 내 모습을 상상했었다. 이런 게 직업병이겠다.

여튼, 강풍에 먼지가 싹 날린 하늘은 깨끗했고 - 오늘밤엔 은하수를 볼 수 있겠다. - 나도 포비도 지후도 기분이 좋아서 포비랑 지후는 손을 잡고 춤을 췄다. 포비야 네가 동네 닭들 물어 죽인 죄는 다 잊었다. 격하게 아낀다. 오래오래 행복하자.



20140110 - 캣타워


점심 먹고 포비 산책 및 볏짚 마저 묶으려고 은행나무 들에 나갔다. 이런 낫을 안 가져왔네. 할 수 없지. 내일도 날이니까 그냥 돌아왔다.

가만 있기 뭣해서 캣타워를 만들었다. 지후는 예쁘고 깔끔한 걸 원했지만 그 의견을 묵살하고 집에 있는 상자들을 이어붙여서 낸 맘대로 만들었다. 캣닢을 조금 넣어줬더니 망고가 좋다고 난리났다.

난리도 잠시뿐으로 망고는 캣타워 보다는 텐트 안에서 자는 걸 더 좋아하는 듯하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이불이 있어서 그런가?

더 크면 새로 만들어줄게. 예쁘고 깔끔하고 막 올라가고 싶은 걸로. ㅋ



20140112 - 교회


일요일 오전, 손가락 가는대로 눌러본다. 교회에 와서 또 쓴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인가? 뭐라도 쓰고 싶어서 교회에 나오나? 나는 이성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맹목적으로 무조건 믿으면 된다는 나약한 이 종교와 믿음을 따르긴 어렵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 아픈 아내를 집에 두고 예배실에 앉아 있나?

동네 중학생들 기타 레슨이 있고 의용소방대 관련된 일로 소방대장 아저씨가 오늘 예배 끝나고 보자고 했고 어제 k장로네 컴퓨터 가져와서 손본 것에 대한 경과도 알려야 하고, 다음주에 나가는 일 때문에 소방대 근무날을 바꾸고 싶다는 얘기를 l형에게 해야한다. 나에게 교회는 동네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다.

국유림을 장기 임대해서 산장을 하나 짓고 그곳에서 단 둘이 살까? 아니면 코스모스 밭 한 가운데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내고 간판도 메뉴도 손님도 없는 작은 식당을 내도 좋겠다.

나는 지금 왜 볼음도에 있나? 어딘가 다른 곳에서 나랑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서 뭔가를 함께 만들어가면 즐거울까? 나는 야망이 없다. 살아야겠다는 의지는 있다. 이런 지경이니 어떻게든 살아나가기만 하면 괜찮은걸까? 야망이 없으니 뭔가가 없다. - 어제 동네형한테 볏짚 묶는 거 말고 뭐 획기적인 걸 찾을 생각을 하란 얘기를 들었다. - 지후는 나랑 다르겠지? 지후가 사람들한테 지쳐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고 하면 내가 그애를 버틸 수 있을까?

교회에만 오면 마음이 흔들리니 교회는 당분간 관둬야겠다.



20140114 - 의용소방대


자려고 누웠는데 의용 소방대에서 옷 찾아 가라고 전화가 왔다. 그렇다. 나는 올해부터 볼음도 의용 소방대다. 6일마다 한 번씩 소방대 사무실에 나가서 근무를 서야한다. 그리고 동네에 불이나면 불을 끄러 가야한다. 소방대가 아니어도 불이나면 불을 끄러 달려갈 터인데 나는 왜 소방대를 하는가?

동네에 사는 증명이다. 교회에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두 가지 다 일주일에 한 번이니 그리 힘든일은 아니다. 그런데 마음이 안 좋다. 관습적인 부분에서 동네 사람이 되는 것이 나에게 의미가 있을까? 제가 이사 와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저 좀 예쁘게 봐주세요?
국가의 보여주기식 행정을 욕하면서 스스로가 보여주기 식으로 살고 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한 건 소방대에서 신입 대원에게 너무 많은 옷과 신발을 줬기 때문이다. 두고두고 입으면 되겠지만 나는 옷도 신발도 넘쳐나도록 많다. 제주도 다녀와서 점점 물건들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새 물건이 쌓이니 기분이 안 좋다. 앞으론 장모님이 옷 사주시면 거절해야겠다. 언제 어디로 이사 가더라도 짐은 일톤 트럭 한 대 분량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을 살자. 지금 우리 짐은 두 대 분량은 될 듯하다.

페북에서 남의 고양이 발 사진을 봤다. 발톱 끝이 딱딱해 보인다. 망고 발톱 잘라줬는데, 나중에 나가서 살지도 모를 놈에게 불필요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다.

필요와 불필요를 정하는 것은 나다. 나부터 정리해야 한다. 어떻게? 별일 없이 사는 것은 좋지만 되는대로 살긴 싫다.


20140126 - 어영부영


어제는 동부한농팜 강화 대리점 사장이 볼음도에 왔더랬다. 볍씨 넣을 때 모판에 볍씨랑 같이 넣으면 수확때까지 추가로 거름을 주지 않아도 되는 농법과 비료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동네 아저씨들은 그 양반이 무슨 말만 하면 - 예를들면 석수를 적게 잡아서 드물게 심어라. 같은 - 우리 동네에선 안된다고 했지만 나는 비료장사한테 많이 배웠다. 안 그래도 올해는 고시히카리를 유기농 교본대로 농사 지어볼 생각이었다. 벼농사 짓는다는 놈이 벼의 생물학적 특성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이 뜨끔했다. 사람들도 나도 어떻게 하면 농사가 잘 될까만 생각하지 식물의 특성을 알고 그에 맞춰 농사 지으려고 하지는 않는듯하다. 마음 먹었을 때 공부해야겠다. 농사는 하늘이 98%지만 2%라도 열심히 해야 98%한테 원망도 할 수 있는 거겠지.

올해 벼농사에 대한 자세한 계획은 공부하고 나서 나중에 따로 올리기로 한다.

교회 갔다 와서 두 건의 기타 레슨을 마치고 - 제자들 실력은 안느는데 선생이 늘고 있음. - 선창에 지후 마중 갔다 오니 하루가 다 갔다. 뭔가 어영부영이다.

명절 지나면 2월이다. 어영부영 하다가는 3월되고 4월된다. 작년에는 막 이사와서 어리버리했지만 올해도 그럴 순 없다.

2월에 할 일 - 고라니 울타리 칠 나무 자르기, 집 뒷밭에 사용할 부엽토 뜨기, 창고에 선반 만들고 정리

3월에 할 일 - 고구마밭 고라니 울타리 손보기, 표고목 세우기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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