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1 - 집 생각

그때그때 2023. 7. 11. 13:45

 3월 초에 전세 기간 자동으로 2년 연장됐다. 당시에 집주인으로부터 계속 살 건지 전화를 받았고, 그러겠다고 했다. 엊그제 아내랑 같이 차에 있을 때 집주인한테 전화가 왔다. 집을 팔려고 하는데, 내가 이 집에 오래 살았으니 나랑 먼저 협상해 보고 싶다는 얘기였다. 내가 가격 제시하라고 했더니 나보고 먼저 제시하라고 해서 다음날 다시 통화하기로 했다. 내가 사는 연립은 우리 집 주인이 2017년에 구입한 이후로 거래가 없기 때문에 시세란 것이 없다. 

 경기도 모처에 사는 다주택 임대 사업자인 주인이 5천 만원에 사서 샤시 등 약간의 인테리어를 하고 5천 5백에 첫 번째 전세를 줬다가 2년 후에 전세 7천에 우리가 들어왔다. 강릉 집값이 쭉 오르던 시절엔 그렇지 않았지만 슬슬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우리집도 깡통 전세가 됐다고 생각한다. 말이 깡통 전세지 TV에서 나오는 전세 사기 등 부동산 관련 뉴스는 최소 2~3억 이상인 신축 빌라나 아파트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사는 집은 해당되지 않는다.

 옥천연립, 1983년 준공, 12세대, 나랑 또래로 보이는 부부가 사는 한 집 빼고 입주자들 나이가 많음. 101호 아저씨의 어떤 얘기에서 추론해 보면 우리집 빼고는 다 자가인 듯. 우리집만 방이 두 개지만 아랫집들이 방으로 쓰는 자리 위쪽에 넓은 외부 공간이 있음. 구 시가지  중심지라 교통 등 편리한 점이 있으나 젊은이들 감각으로는 신도시 느낌 나는 택지 아파트에 사는 게 더 편하다고 느낄 듯. 

 집값이 6천이나 6천 5백 정도면 구입을 해서 인테리어를 완전히 새롭게 해서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강릉에서 평균연령이 가장 높은 동네긴 하지만 남대천, 중앙시장, 홈플러스가 다 가깝고 5년 째 살면서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 공인중개사 자격증 있는 친구, 아는 형에게 소개받은 공인중개사와 상담을 했다. 

 '제가 가격 제시하는 건 좀 그러니 사장님이 먼저 원하는 가격을 알려달라' 했더니 1억 3천을 불렀다. '전 못 사겠습니다. 집 내 놓으시죠.' 라고 했다. 집주인이 알았다고 했다.

 집 구입 문제가 그렇게 끝났다. 주인이 집을 싸게 내 놓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던 내 마음속의 해프닝이다.

 집을 살 일은 한 동안 없을 것이다. 어제 집주인과의 대화 내용처럼 내가 생각하는 집 가격과 세상이 생각하는 집 가격의 갭이 너무 크다.  사는 사람은 싸게 파는 쪽은 비싸게다. 본인 생각보다 비싸다고 생각한 집이더라도 일단 집을 구입하면 그 집을 팔 때는 비싸게 팔려는 쪽이 된다. 이게 보편적인 욕망인가?

 세상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그냥 즐겁게 살면 된다. 빚을 내가면서 펑펑 돈 쓰면서 살자는 건 아니고 저축은 많이 못하더라도 약간의 돈지랄 - 명품 가방을 사자는 건 아니고 대출 이자가 없이 먹고 싶은 거 사 먹는 삶 - 을 하면서 재밌게 사는 게 집 사는 거 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외제차를 많이 사는 거겠지. - 차 할부 못값는 사람들이 많다는 뉴스를 얼마 전에 보긴 했다. - 집은 부모님이 안해주면 영원히 못 사니까 자동차라도 좋은 걸 타고 싶은 마음. 나는 그 마음을 잘 알겠다.

 한국의 고령화 추세로 봐서는 주택 공급이 수요를 압도적으로 앞지르는 때가 언젠가 오긴 할 것 같다. 집은 그때가 오면 사는 걸로 하자. 물론 그 전에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인류가 반쯤 멸망할 수도 있다. 주택 청약 통장 없애야겠다. 혹시 대출로 집을 사게 될까봐 신용등급 올리려고 작년에 살면서 처음만든 신용카드도 없애야겠다. 

 보편적인 욕망을 너무 많이 생각하다가 세상에 놀아난 기분이다. 아니. 한 번 쯤, 세상에 놀아나고 싶었다.

 편하게 살자. 편하게.

 그 가격엔 안 팔릴 것 같지만 혹시 집이 팔리더라도 25년 3월까지인 계약기간 꽉 채우고 나가고 싶다. 이사 다니기 번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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