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직장 다니기 전까지 정규직 일한 게 딱 한 번이고 최저임금 정규직을 6개월 정도 했다. 비정규직 지겹네, 생각할 무렵에 아다리가 잘 맞아서 지금 직장에 취직했다. 아다리, 시험 한 번 면접 한 번에서의.

 지금 직장에 기간제근로자가 있다. 15명 뽑았으나 현재는 10명이다. 짜증나서 그만두고 몸 안파서 그만두고 이러저런 이유로 중간에 그만두시는 분들이 있다. 기간제근로자란 말은 일용직도 통칭하는 말이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기간제 선생님들이 그러하다.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일한 날짜만큼, 일의 종류에 따라 정해진 액수만큼 정산된 돈을 매달 급여로 받는다. 일 년에 10개월 일하고 두 달 정도 실업급여 받고 다음해 3월에 다시 돌아오시는 분들이 많다. 정규직 채용을 안하니 실업급여까지 포함한 게 우리 기간제 선생님들 직업이다. 2015년이랑 16년 5월까지는 나도 이분들과 같은 처지였다. 일의 종류에 따라 일당에 차등이 있지만 거의 최저임금 받는다고 보면 된다. 

 실업급여를 날로 먹는 사람들이 정치권에서 이슈화 됐다. 진짜 날로 먹는 사람들도 있다. 최대 수급 기간 8개월에 해당되는 만큼만 나라에서 돈 주는 일자리 이것저것 하다가 계약 만료 후엔 실업급여를 받는 경우다. 나는 이것도 날로 먹는다기 보다는 삶의 한 방식으로 보인다. 실업급여가 최저임금보다 이익인 것도 맞는 말이다. 기름값, 밥값, 국민연금 이런거 다 제하면 최저임금 직장 다니는 것 보다 집에서 실업급여 받는 게 훨씬 금전 이익이다. 우리 기간제 선생님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매년 사람 뽑을 때마다 오시겠지. 채종원 노동이 최저임금 받으며 나라에서 월급 받는 기간제 일자리 중에 좀 빡센 편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성실하신 분들이다. 

 산이서 하는 노가다란 게 보통 오후 4시 조금 넘으면 끝나게 마련이고 일의 종류 따라 다르지만 30분 일하면 30분 쉬고, 여름에 더우면 낮에는 많이 쉬고, 비가 오면 비 맞고 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채종원은 나무 심고, 약 치고, 풀 베고, 열매 잘 따서 종자 잘 생산하는 게 핵심이다. 시기사업들이 늦어지지 않고 잘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회사에 나랑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지소장이다. 비가 오면 비옷을 입고 일하고 - 비옷을 사줬으니 - 17시 30분까지 현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식이다. 지소장은 노가다를 안 해봐서 기간제 선생님들이 컨베이어 벨트위의 노동자들처럼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에 관리 직원이 있는데도 기간제 선생님들이 5시 30분까지 현장에 있는지 감시하러 다니니 기간제 선생님들이 지쳤다. 이 양반이 비 오는 날은 외부 작업은 안하고 싶다고 한 선생님들에게 비 올 것 같으면 미리 알려줄테니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 - 비 핑계로 한 달에 이틀만 나오시지 말라고 해도 월 수입이 15만원 적어진다. - 그 첫 적용이 오늘이다. 근데 비가 안오네. 지소장은 자기가 날씨의 신이라도 되는 줄 아나보다.  

 기간제 선생님들 중에 한 분이 비가 와서 쉬면 수입이 적어지니 토요일이라도 나오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기간이 정해진 계약인데, 비가 온다고 출근을 안 하는게 말이되냐고 주 40시간이라 근무시간이 명시되어 있는 근로계약서을 들고 와서 따지는 것도 아니고. 조건을 수용할테니 토요일에 나와서 휴일근무 수당을 받고 싶다? 화가났다. 이 선생님은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면사무소 산업 계장까지 했던 분인데, 투쟁이 아니라 물러서서 눈치 봄을 선택했다. 바보 같다. 기간제 선생님들을 자기 아래로 보는 지소장도 짜증나고 그 눈치만 보는 기간제 선생님들도 짜증난다.

 아내 말마따나 화를 내면 나만 손해고 내가 화낸다고 사람이 바뀌는 것도 아니니, 아내 말대로 가만히 있어야지. 나도 이렇게 한 발 물러난 건가. 이런식으로 물러나다가 공식명칭이 '오염수'인 후쿠시마 오염수가 전 세계 바다를 떠돌게 되는 건가. 이런 생각의 과정이 보편적인 체념인가?

 지소장이 여름 정기 인사 때 민원이 많은 곳으로 전출 가기를 희망한다. 그곳에서 공무원이 왕이 아니란 것과 공짜밥은 없다는 걸 깨닫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인간 존중을 배우길 바란다. 그리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힘들다. 세상 어디에도 공짜밥은 없다.

 

-> 인사 발령이 나진 않았지만 비가 와도 출근하는 걸로 최종 결정됐다. 괜히 기간제 선생님들 이 달에 두 공수 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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