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토요일, 즐거운 토요일, 출근 안하는 날은 항상 좋은 날이다.

 춘천 가서 친구랑 점심 먹고 왔다. 단지 점심을 먹으려고 스마트폰 음악을 블루투스로 들을 수 있는 자동차를 타고 강릉에서 춘천까지 당일치기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바로 지금이 나의 호시절이다.  

 친구는 나보다 두 달 늦게 입사 했고 정선에서 같이 직장 생활의 초년 시절을 보냈다. 정선에서는 질 떨어지는 팀장 새끼들을 만나서 개고생을 했지만 태백에서는 좋은 팀장들을 만났고 가족이 있는 춘천으로 옮긴지 4년째인데, 춘천 근무도 행복하다고 한다. 행복해서 다행이다. 세상 많은 일이 어떤놈과 함께 하느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빛과 어둠으로 갈린다. 팀장 복 없기는 나도 매 한 가지긴 했지만 그 친구 정도는 아니다. 나도 현 직장으로 옮기고서는 행복한 편이다.

 친구는 교육환경이 좋은 동네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친구는 내년에 학교에 가는 7살 - 70개월 밖에 안 살긴 했지만, 윤석열 나이로는 5살이네 - 딸이 있다. 아내와 맞벌이를 하고 직장에선 칼퇴근을 한다. 아내 직장이 12시 출근 21시 퇴근이라 5시 퇴근하고 나서 21시까지 아이와 함께 한다. 아이와 함께 있는 게 즐겁기도 한데, 지겹기도 하고 아이가 학교에 가면 지금보다는 본인만의 자유가 생길 것 같다고 했다. 아이는 아빠 엄마를 적절히 닮았고 귀여운 편이었다. 나한테도 말을 잘 걸어줬다. ‘최애의 아이’ - 애니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 오프닝 곡을 틀어줬더니 한글도 이제 알기 시작했다는 아이가 일본어 노래를 중간중간 따라 불렀다.

 친구랑 먹은 숯불 닭갈비는 아주 맛있었고 - 친구는 항상 춘천 놀러오면 숯불 닭갈비 사준다고 했더랬다. - 커피를 마시러 간 카페는 야외 공간을 포함해서 엄청난 규모였다. 춘천은 수도권이 가까워서 그런가? 생각했다. 드립 커피를 두 잔 마셨는데 플라스틱컵은 에러였지만 커피는 맛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토요일 오후 도심 외곽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정도로는 호시절을 보내고 있다.

 친구랑은 옛날에 같이 일하던 시절 얘기랑 현재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했다. 같은 업종에 있다는 건 그런 거다. 일로만 따지면 내 직장은 아주 행복한 편이다. 일 얘기 중간중간에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앞으로의 계획들을 얘기했다. 친구란 그런 것이다. 친구네 집 앞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헤어졌다. 친구는 나를 무척 반겨줬다. 아이 돌보느라 또래 친구들을 따로 만나는 일이 오랜만이라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나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참 반가웠다. 위로가 됐다. 춘천까지 갔다는 것과 술을 안마셨다는 걸 빼면, 평범하게 친구를 만난 하루였다. 강릉에서 친구랑 술 마셨으면 진짜 평범한 하루였나? 보편적인 거, 평균적인 거, 평범한 걸 생각해 본다. 이런 생각한지 오래됐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보헤미안 경포점에서 모닝세트에 커피 추가해서 마셨다. 올 여름 이후로만 모닝세트 먹으러 다섯 번은 간 것 같네. - 아내는 자고 있다. - 강문해변에 생겼다는 머슬비치에 가봤다. 주차할 곳이 호텔 주차장 밖에 없어서 내가 일부러 찾아가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고 지역주민들이 산책하다가 운동하기는 좋을 것 같았다. 턱걸이 몇 개 하고 집 근처까지 와서 오랜만에 농구를 했다. 오랜만에 해서 그런가? 자유투도 삼점슛도 잘들어 가서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 삼점슛을 클린으로 넣고 집에 와서 씻고 세탁기 돌리고 아내가 집을 나가자마자 라면 끓여 먹고 지금까지 대충 10시간 누워 있었다. 배캠 듣다가 잠들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와서 나에게 어떤 부탁을 했다. - 나한테 또 부탁을 했네. - 잠이 안 깼으면 저녁 안 먹고 그냥 잘까도 싶었는데, 잠이 깨는 바람에 피자 시켜 먹었다. 나는 피자를 좋아한다. 치즈의 짠 맛이 좋다. 보통은 동네에서 가장 싼 피자집에서 시켜 먹는데, 얼마전에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피자헛 피자를 시켰다. 맛이 없다. 다음엔 할인도 거의 없고 세트메뉴 같은 거 없는 파파존스에서 시키자. 배달 시키면서 싸거나 할인 많이 해주는 곳을 찾는 게 보편적이긴 하다. - 이러면서 보편적인 걸 또 생각해 본다. - 최근 네 달 사이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페리카나 양념치킨도 할인 적용으로 포장 2만원 이하일 때만 두 번 사 먹었다. 이렇게 하루가 갔네. 내일 출근하면 또 바로 퇴사하고 싶을까? 궁금하네.

 친구의 삶은 그 나름대로 보편적인 삶이고 내 삶도 내 나름대로 보편적인 삶이다. 그 뿐이다. 그러니 세상에 화내지 말자 사람에게 화내지 말자.

 아버지랑 두 번 통화했는데, 아버지는 오늘 무탈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굿.

 아침에 커피 마실 때, 교회가기 전에 모닝세트 먹으러 온 네 명의 아주머니가 돌아가면서 며느리 욕을 하길래, 엄마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해봤다. 엄마한테 아주머니들 얘기를 했더니 엄마가 웃었다. 일단 엄마는 며느리 욕할 친구가 없고 - 이모들이 있나? - 며느리 욕을 할 만큼 며느리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암튼 엄마가 웃어서 좋았다. 엄마가 웃었던 그 순간을 기억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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