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블로그랑 페이스북을 링크를 공유하는 것 없이 연동하는 방법을 찾는데, rss graffiti란 걸 찾았다. 근데 사흘전부터 계속 안된다. 나도 이제 늙었나보다. 이런것도 한 번에 처리 못하다니. 계속 시도해 보다가 티스토리랑은 어떤가 싶어서 테스트로 글을 올린다.

 

 오늘 새벽까지 드퀘8을 했다. 거룡과의 전투가 여섯 번 남았지만 총 플레이타임 110시간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어쨋든 엔딩은 봤다. 드퀘는 전형적인 일본식 RPG다. mmorpg랑은 여러가지 차이가 있겠지만 게임 내적으로 가장 중요한 차이는 한정된 세계이고 외적인 차이는 혼자 한다는 점이다. 요즘은 GTA같은 완전 오픈월드 게임들이 인기가 있지만 일본식 알피지는 그 나름대로 한정된 세계안에서 숨겨진 요소들을 찾는 재미가 있다. 엔딩 후에도 "모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 것이다. 다만 더 강한 적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숨겨진 요소들은 수집욕 강한 인간들에게나 먹혀든다. - 몬스터 도감을 완성하고 모든 스킬을 익히고 캐릭터 레벨을 99까지 만든다던가 하는 것 -

 패미콤 시절에 시작된 일본식 rpg는 슈패 시절에 정점을 찍는데, 게임 좀 했다는 우리 세대들은 다 알거다. 개인적으로는 슈패시절의 rpg붐과 일본 사람들의 어떤 특성이 결합해서 오타쿠와 히키코모리가 탄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당시 일본어도 모르고 변변한 공략집도 없던 우리들은 일단 초반부터 레벨업에 몰두하고 마을에 들어가면 무조건 모든 npc에게 말을 걸고 npc의 질문에 '하이'하고 대답하고는 다음 던전으로 향했다. - 가끔은 '이이에'하고 대답해야 할 때도 있었다. - 그러다가 게임이 막힐 때는 게임잡지에 나온 공략을 찾기도 했다. 

 

 동료들을 모으고 주인공은 성장해 간다.는 인간의 rpg본능을 생각해 보건데 - 나만의 욕망인지도 모른다. rpg본능을 반영한 만화로는 원피스, 블리치, 나루토와 최근작은 7개의 대죄 - 바깥 세상에서 인정받는 일은 어려운 것이지만 게임 안에서 내 캐릭터가 마음껏 레벨을 올리는 것은 약간의 근성과 시간투자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도 rpg장르가 사랑받는 것 같다.

 

 와우, 휴대폰으로 ps2로 나왔던 게임을 하는 세상이 왔다. IT기술만 보면 미래에 사는 것이 맞는데, 삶이 허전한 것은 왜인가? 미래란게 원래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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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5 - 음

그때그때 2014. 1. 5. 11:30
14년이다. 여전히 삶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 한다.

아침에 포비 줄 엉킨 것 풀어주다가 포비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얼굴이 아니다. 이 녀석은 어려서부터 나랑 함께했는데 어째서 내 머릿속에 있는 모습이 아닌걸까? 동네 닭을 잡아 먹어서? 아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을 믿을 수 없다.

엄마를 떠올려봤다. 엄마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얼굴이 가물가물해도 나는 엄마를 알아본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또는 눈이 외피만 보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는 것에 오감과 내가 품고 있는 감정까지 더해져서 엄마를 본다.

지금 내 옆에 앉아 있는 아내를 본다. 물끄러미 본다. 귓밥이 보인다. 나는 내 아내의 실물을 보고 있는걸까?

세상에 정확한 것이란 없는듯하다. 정확한 것이 없으니 정답도 없다. 헌데 다들 정답이 없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자기가 정답이라고만 한다.

올해가 모든것을 내 맘대로만 바라보지 않는 원년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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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9 - 2013년

그때그때 2013. 12. 29. 11:44

섬으로 이사왔다. - 1년을 살았다. 환경에도 사람들한테도 적응하는 기간이었다. 주변에 고마운분들 천지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어느정도 적응했다. 그렇다고 적응한대로만 살면 안된다.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치하는 삶을 살자.

농사를 지었다. - 농사일은 즐겁다. 소득과 판매 문제가 현실로 다가왔다. 내년에는 논도 밭도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자.

포비랑 망고 - 개랑 고양이의 성장을 지켜봤다. 성장을 보는 일은 즐겁다. 우리도 동물식구들을 좋아하고 동물식구들도 우리를 좋아한다. 이놈들 때문에 밖에 오래 나가 있을 수가 없다. 그래도 너희들이 좋다. 내년에는 포비가 새끼를 낳겠구나. 벌써부터 귀엽다.

바다 - 고기도 잡고 조개도 캐고 먹기도 많이 먹었다. 숭어, 광어, 도다리, 밴댕이, 낙지, 병어, 꽃게, 갯가재, 망둥이, 농어. 히히. 내년에는 생선회 써는 기술을 익혀서 아는 사람들 놀러오면 내가 회 썰어줘야지.

작목반 - 비전이 필요하다.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내가 이 팀을 매니지먼트할 수 있을까? 형들이랑 내가 이름뿐이 아닌 자치하는 작목반을 만들 수 있을까? 우선 쌀 포장지 만들어야 하는데. 모이기가 쉽지 않네. 법륜 스님의 얘기 - ㅇㅇ해야 되는데. 라고 하는것은 하기 싫다는 뜻이다.

항상 그렇듯이 새해 계획은 좀 더 바지런하게다. 이십년 정도 지나면 바지런하게가 느긋하게로 바뀔까? 새해에는 느긋하면서 바지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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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5 - 풍요

그때그때 2013. 12. 25. 15:31
어제 서울 왔다. 엊그제가 장인어른 생일이었다. 미국식 레스토랑에서 장인어른에게 밥을 얻어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밥 잘 얻어 먹고 풍요에 대해서 생각한다.

섬 밖으로 나오면 내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풍요가 넘친다. 먹는 얘기로 시작했으니 먹는 걸로만 써본다. 결혼식에서 먹는 뷔페, 영일이가 사준 중국요리, 엄마가 사주는 소고기, 동생이 사주는 피자까지 그 양만 풍성한 것이 아니라 종류도 다양하다. 마을 회관에서도 매일 점심상에 돼지고기가 올라온다. 아무튼 필요 이상으로 잘 먹고 산다.

문득 나는 가난한 상차림과 그런 삶을 좋아하는데 추구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가난하지만 밖에 한 번씩 나와서 잠깐 풍요를 누리는 선택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풍요를 선택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란 놈이 참 별로다.

친구 s는 몇년전부터 채식을 한다. 이유야 잘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그것으로 먹는 것의 풍요로부터 탈출했다. 나도 조금씩 고기 섭취를 줄여야겠다. 너무 나 편하고 마음가는대로만 살았다는 반성을 해본다. 때는 세밑이다.

오늘은 아내 지인의 결혼식에 왔다. 지하층에 차려진 뷔페 먹으러 가기전에 쓴다. 오늘도 잘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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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이 놀러 오면서 마이쮸를 사왔고 망고가 마이쮸 한 알을 미친듯이 갖고 놀았고 나는 그 마이쮸를 뺐어 먹다가 오래전에 씌운 금니가 빠졌다.

그래서 치과에 다녀왔다. 화곡동에는 내가 어른 무릎만할 때부터 다닌 단골 치과가 있다. 나이 먹으면서 치과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선생님은 내 어린시절부터 피아노 모서리에 부딪쳐서 앞니 세 개가 날아갔던 십년전 내 모습까지를 다 보셨다. 어릴적에 내 동생은 입안을 들여다보던 거울을 깨물어서 깨뜨리기도 했더랬다. 화곡 1동 김정식 치과다.

김정식 선생님이 좋은 이유는 비용이 많이 둘어가는 임플란트나 금니를 권하지 않고 가능하면 치료를 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90년대 초반까지는 치과 문 열기 한 시간 전부터 기다려야 오후 첫 번째 손님으로 예약할 수 있을 정도로 호황이었다. 지금은 예전보다 동네에 치과도 많이 생겼고 임플란트 할 비용 정도는 많이들 갖고 있기 때문인지 기다리는 일 없이 바로 치료가 가능하다.

나는 세월이 무상하다고 느끼는데, 선생님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덤덤하시다. 조선일보랑 월간 조선 보는 것도 여전하시고. ㅋ

선생님은 입을 벌리고 누운 나에게 엄마의 안부와 - 내 이빨이 외가 유전이라 엄마도 충치가 많다. - 내 직업, 결혼 여부 등을 물으시더니 기왕 농사 짓는 거니까 특수한 걸 하는 게 좋겠다. 섬에 들어가서 사는 아내가 참 대단하다는 얘기를 하셨다.

선생님, 말씀 감사합니다. 어려서부터 제 이 치료해 주신것도 감사합니다. 저는 행복할테니 선생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요. 다음번에 이 아플때도 선생님한테 치료 받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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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들었던 말이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명한 걸 보니 좋은 말이다.

js형 - 약속은 지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m아저씨 - 아니 이 사람아 지키지 않으려는 게 어떻게 약속인가! 약속은 지키려고 했는데 못지켰다고 하는 게 약속이네.

약속은 지키려고 했는데 못 지켰다고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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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토지 사용료 때문에 내가 속상해지는 꿈을 꿨다 꿈에서 속상하면 기분이 더럽다. 꿈은 현실과 반대이기도 하지만 마음속 불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좀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오늘 꿈을 핑계로 내년 벼농사는 2400평으로 줄이는 것도 괜찮겠다. -올해 4200평 - 이게 올해 벼수확을 마치고 맨 먼저 했던 생각이다. 결국 내 맘대로 하고 싶은게로구나.

어제는 전주 청년 시장에서 아내 친구를 만났다. 그이는 보드게임방을 운영하는데, 자기 몸에맞는 옷을 입은것 같았다. 직업이니까 가게안에 있는 모든 게임을 다 할 줄 안다고 했다. 나랑 아내에게 도블이란 게임의 규칙을 설명해 줬는데, 설명이 야바위꾼의 그것처럼 물흐르듯 이어졌다. 아내가 부러워했다.

어제는 나는 난로다.라고 하는 행사를 구경했다.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에너지 분야에 관심을 갖고서 이런저런 것들을 만들어 낸다. 아내가 부러워했다. 부러운 일이긴 하지만 나는 난로의 소비자는 되고 싶어도 생산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내 재주는 뭘까? 내 직업은 농업일까?

내 직업은 농업이니까 농업에 대해서 좀 더 전문적으로 연구를 해야할까. 생각했다가 너무 세상의 프레임에 갇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냥 내 삶이 있을 뿐이다. 농업은 직업이라기 보다는 삶의 주요한 부분이다. 생활로서의 농사보다 삶으로서의 농사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아직 꿈이 덜깼나?

창문을 열면 현대옥 간판이 보이는 전주의 한 모텔에서 아침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아내는 빵과 커피로 아침을 떼우자고 했지만 그래도 모처럼 전라돈데, 내 맘대로 아침 먹고 가야겠다.

어디선가 들려올 불행한 소식을 기다리는 바보 같은 일은 관두고 오늘은 간만에 복권을 사야겠다.

결국 다 내 맘대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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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30 - 장모님

그때그때 2013. 11. 30. 20:46

 대학로 장모님 댁에 들렀다. 장인 어른은 결혼식 때문에 광양에 내려가셨다. 아내랑 셋이 점심을 먹었다. 장모님은 내가 아끼는 겨울 주력 잠바인 소방대 잠바의 빛바램이 맘에 들지 않으셨던지 밥 먹자 마자 옷가게로 가서 겨울 잠바를 사주셨다.

 장모님은 결혼식 전에도 한 번, 결혼하고 나서도 한 번 옷을 거나하게 사주셨더랬다. 장모님의 쇼핑 스타일은 거침이 없다. 점원에게 궁금한 내용을 바로바로 물어보고 본인 생각에 사위랑 딸에게 어울릴 것 같은 옷을 입어보게 하고 우리가 이건 별론데요.라는 표현을 하지 않으면 구입 확정이다.

 장인 어른이 돈을 버는 동안은 옷 많이 사줄테니 부담 갖지 말고 입으라고 하셨다. 당신이 사 준 겨울 모자를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 한다고 했더니 무척 좋아하셨다. 낙도에 시집간 딸과 그 딸을 데려간 농사 짓는 사위가 맘에 들지 않으시겠지만 오랜만에 본 우리를 무척 반가워 하셨다. 광양에는 아는 아줌마들도 많고 손주도 있는데, 장인어른 직장 때문에 서울에서 두 분이 사시니, 주로 혼자 계시는 어머님은 많이 외롭겠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찡해졌다.

 

 장모님이 오늘 하신 얘기들 중에 기억나는 것들만 정리해본다.

 - 고구마 한 상자씩 여기저기 돌려봐야 받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받는 사람 마음은 주는 사람 마음 같지 않다. 그러니 팔 수 있으면 다 팔아라.

 - 술을 본인이 알아서 줄여야지. 부담스러운 자리라고 해서 주는대로 받아 먹으면 안된다.

 - 헬쓰클럽 트레이너들은 그게 직업이니까 그렇게 역삼각형 몸을 만드는 것이겠지만 현실 세계에 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지 않고 비정상으로 느껴진다.

 - 광장 시장에 있는 유명하다는 육횟집에 갔더니 백반에 밥을 반공기 밖에 안 줘서 기분이 상했지만 육회를 따로 시켰기 때문에 그냥 먹었다.

 - (장모님은 손재주가 좋으셔서 뜨개질도 잘 하시고 매듭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도 좋아하신다.) 누가 뭐 만들어 달라고 하면 지들한테 만들라고 하지 안 만들어 줘.

 

 어머님 아버님 생신 때, 두 분이 미역국 끓여 먹으면 끝이니 무리해서 오지 말라고 하셨지만 꼭 갈게요. 그리고 술도 줄이고 담배는 꼭 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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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이대리 형님이 당근 좀 갖다 달라고 해서 오후에 갖다드렸다. 우리집 당근 중에 제일 큰 걸로 겆다 드렸다. 이대리 형님은 좋아하시면서 이거 무공해에요? 하고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안친 거에요. 라고 했다.

대화가 오고 가는 중에는 몰랐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무공해란 말이 우습다.

오늘 우리집 콩을 골라준 동네 할머니들도 우리 콩을 보고 무공해란 말을 하신다.

기본적으로 현대 농업이 공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약을 치라고 하시는 이대리 아저씨랑 동네 할머니들은 공해 농업의 추종자일까?

그렇진 않다.

그저 시스템의 희생양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랑 지후는? 그저 시그템의 희생양일 뿐이다.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조건에 맞춰 살게된다. 시스템의 희생양이면서 희생양이 아닌 것.
가마는 가마인데 가마가 아닌 것.

내일은 백의 그림자를 다시 읽으면서 펑펑 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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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6 - 20131126

그때그때 2013. 11. 26. 21:43

 어제 늦게까지 만화 보다가 잤다. 늦게 일어났다. 집도 날려버릴 것 같던 바람이 잔잔해졌다. 10시에 밥을 먹고 11시부터 메주콩을 고르기 시작했다. 메주콩 고르기 전에 강릉 작은 어머니에게 메세지가 온 것을 발견했다. 노트북 사고 싶다고 하셔서 하나 골라드렸다. 카톡으로 대화했는데, 요양원에 계시던 할머니를 집에 모셨다고 했다.

 할머니를 삼촌집에 모셨다는 뜻은 건강이 악화돼서 요양원에서 더 이상 할머니를 보살필 수 없다는 뜻이다. 현재 할머니는 호스를 꽂고 그 호스를 통해서 식사를 하신다고 한다. 치매가 오고나서 지금까지 할머니의 삶을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 나이 먹고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보살펴 주는 이 하나 없는 상황인데, 현대 의학은 그 시간을 더 연장하기만 한다. 예전에는 공동체가 노인을 책임졌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도 100% 맞는 건 아니다. 예전에는 일찍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공동체가 책임질 노인의 수가 적었다. 그렇다면 죽어가는 사람도 본인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주사 한 방으로 살리는 현대 의학이 문제로구나.

 

 메주콩을 다 고르고 나니 안심이다. 이제 올해 농사 갈무리는 서리태만 남았다.

 

 오후 네 시에 아내가 회관으로 불려갔다. 12월 1일부터 회관에서 점심 해 먹기로 했는데, 급작스럽게 일정이 당겨져서 오늘 저녁부터 회관에서 먹었다. 내일부터 이 긴 겨울이 끝날때까지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 모두가 마을 회관에서 점심을 먹는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다 합쳐도 24명 정도다. 아직까지 옛 공동체적 생활 방식이 남아 있는 거라고 봐야할까? 뭐가 됐든 밥 하는 사람들은 힘들다. 밥 먹고 잠깐 앉아 있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내일 우리 서리태 골라주신다고 아침 일찍 가져오라고 하셨다. - 오, 감사합니다. - 아직까지 옛 공동체적 생활 방식이 남아 있는 거라고 봐야겠지?

 

 저녁 먹고 나서는 킹킹 엄니네 가서 노닥거렸다.

 

 뭔가 바람직한 하루를 보낸 거 같다. 이게 다 메주콩을 마무리 했기 때문이다. 어제랑 그제는 많이 답답했더랬다. 역시 나는 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인간은 생각만으론 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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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0 - 업

그때그때 2013. 11. 20. 09:39

 먼저 모든것의 대가성에 대해서 썼다.

 

 엊그제 동네 아저씨들이랑 술 먹다가가 대가에 대한 얘기를 던졌다.

 m아저씨가 답한다.

 그런건 대가로 생각하기 보다는 업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대가의 짊을 짊어졌다고 생각하고 어딘가에는 베풀고 지나간다는 마음으로 살면된다. 그것이 은혜와 업의 차이점이다. - 마지막은 여전히 이해가 잘 안됨 - 

 얘기를 듣다가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좋은 얘기를 들을때는 아~ 하고 깨닫지만 생활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도 아저씨처럼 60이 넘어가면 모든것을 업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업은 한자로 業인데, 이 글자에 뫼산자를 얹은 글자도 업이다. 嶪

 결국 나는 무거운 산을 업으로 짊어지고 살아간다.

 

 멍하게 있다보니 11월이 다 지났다. 그때그때 쌓이는 대가나 은혜, 업 등은 나중에 실컷 생각하고 할일들부터 얼른얼른 마무리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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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7 - 대가

그때그때 2013. 11. 17. 20:17
모든일에는 대가가 있다. 아내가 교회에서 성가대 피아노 반주를 하면 이것저것 먹을 것이 생긴다. 덕분에 가난한 우리가 과일을 먹을 수 있다. 내가 후임자를 나가면 형들이 한 사람 몫의 생선을 챙겨주신다. 덕분에 우리가 생선을 먹을 수 있다. 어제는 광어랑 저푸리(숭어 새끼)를 숯불에 구워 먹는 호사를 누렸다. 지난주에는 동네를 다니며 이집, 저집의 김장 일손을 도왔다. 집집마다 우리한테 김치를 챙겨주셔서 김치가 많이 생겼다. 올초에 이사올 때, c 이장님이 차를 빌려줬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작목반 모내기를 돕고 형들은 우리 모를 심어줬다. 가족끼리도 무조건적인 호의는 부담스러운 법인데, 객지에서 낯선 사람들을 상대하는 경우에는 그 부담이 더 크다. - 물론 동생이 피자를 시켜주는 일이나 영일이한테 술 한 잔 얻어 먹는 일은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

이런 얘기를 쓰는 이유는 요즘 모든것의 대가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차에 오늘 목사님이 추수감사절 설교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라고 했기 때문이다. 올해 bri 블로그에 가장 많이 쓴 말이 감사합니다.이다. 그만큼 고마운 일들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다만 그 고마운 일들에 대해서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나의 강박이 나를 힘들게 한다. 도시 사람에 시골에 와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더 많이 베풀 수 없기 때문에 끝없는 부채감에 시달린다. 과연 내가 우리 동네에 도움이 되는 어떤일을 하고 있는가? 누구네 집에서 어떤 도움을 받았는데, 나도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나는 작목반 형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이게 모두 내가 가난하기 때문인가? 결국은 수입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며칠 있으면 아내는 회관에 점심하러 가야한다. 또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성가대에서 노래를 할 지도 모른다.


겨울이다. 춥다. 피곤하다.

아까 y이장님이 제주도에서 온 귤 주고 가셨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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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걸린 꽃게를 배 위에 쏟아냈다. 집게발을 가위로 잘라냈다. 뭐라도 잡아 보려는 놈들에게 손가락을 물렸다. 아프다. 뭐라도 잡아 보려는 마음은 나나 게들이나 한 가지다. 누군가는 나 때문에 아프다.

배 뒷편에 구멍이 있다. 물결따라 흔들리며 똥을 눴다. 퐁퐁퐁, 바다 위로 똥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 카오스 상태다. 나와 내 삶에 대한 의심이 끊이질 않는다. 이런때야말로 눈 앞에 일에 충실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아서 배를 탔다. 흔들리는 배 위에 흔들리는 나를 얹으니 마음이 잔잔해진다. 결 따라 살아야지. 헌데, 그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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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폰 수리 - 침수된지 오래되서 언제 고장날지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카메라는 수리 불가, 5개월만 버텨다오.

 아이폰 판매 - 올해만 물에 네 번 빠진 아이폰 4, 홈버튼도 이상하고 끝에 약간 깨졌고, 액정 드럽고, 충전하려면 약간의 기술이 필요한데도 12만원 받았다. 아이폰 인정

 고구미 결혼 - 고구미가 진부에 방을 잡아줬다. 덕분에 잘 잤다. 친구들을 만났고 맛있는 걸 먹었다. 강릉 오는 차에서 친구 아들이랑 신나게 놀았다.

 강원도 모임 - 형들 오랜만에 만나서 좋았다. 농사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내가 내 일에 너무 나태했다는 생각을 했다. 술 많이 마셨다.

 화장실 2만원 - 해장똥 누러 화장실 갔다가 2만원 주웠다. 돈을 주워도 기쁘질 않다. 액수가 적어서였을까?

 

 집에 오니 포비랑 망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집이 제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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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네.


그래비티

태어나서 처음으로 3d 장편 영화를 봤다. 아내가 듣는 팟캐스트에서 한편의 대서사시 같다는 얘기를 들었더래서 기대를 많이 했다. 어제 잠을 많이 못잔탓도 있고 기분이 별로였던 탓도 있겠지만 영화는 별로였다. 내가 기대했던 건 산드라 블록이 우주에서 계속 홀로 떠돌다가 마지막에 외계인을 만나거나 - 콘택트 - 꺼져가는 호흡속에 우주의 한 점으로 사라져가는 결말이었는데,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우주공간이랑 조지 클루니 목소리는 멋있었다. 90분만에 타이트하게 끝났지만 - 산소가 90분 어치만 남아있고 산드라 블록의 감정이 리얼타임으로 변했으면 어땠을까? - 자꾸만 해결해야 하는 상황들이 발생하니 막판엔 지루했다.


진부, 이발소

내일이 고구미 결혼식이다. 아내랑 진부에 왔다. 야구를 보기 위해서 텔레비가 있는 이발소를 찾아 들어갔다. 장원삼이 아슬아슬하게 2회의 위기를 넘가는 동안 60을 훨씬 넘긴듯 보이는 이발사 아저씨는 느릿느릿 내 머리를 잘랐다. 그리곤 면도를 시작했다. 잠깐만요 아저씨 면도는 물어보고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고 마음속으로 말했지만 이미 내 얼굴에는 거품이 칠해졌다. 태어나서 처음해 보는 이발소 면도였다. 아저씨는 콧털까지 다듬어줬다. 만이천원이 아깝지 않은 서비스였다. 이제 첫 면도를 했으니 나도 어른이 된걸까? 헌데, 이발과 면도로 인해 얼굴은 젊어졌다.


한국시리즈

우리팀이 이겼다. (아마도) 이승엽의 은퇴 경기, 오승환의 국내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팀이 이겼다. 기분 좋다. 김성근 감독이 한 팀을 지휘하고 있는 프로야구와 그렇지 않은 프로야구는 질적인 측면 보다는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뭐든 획일적인 것 보다는 다양한 게 재미있게 마련이다.


작물도 다양하게 심는 게 재미있는데, 아직은 뭔가 벅차다. 이제 첫 해일 뿐이다. 나아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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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7 - 뭘했지?

그때그때 2013. 10. 27. 11:36
이번주에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국시리즈에서 우리팀이 두 번 졌다. 어제 js형네 논을 끝으로 볼음도 벼수확이 다 끝났다. 포비가 고라니를 잡았다. 고구미가 결혼식을 했다. 까지가 금방 떠오르는 사건들이다. 내가 한 일 중에는 바로 생각나는 것이 없다. 이래도 괜찮은가?

괜찮다.

이러나 저러나 밥 한끼 먹는 것은 똑같다. 오직 내일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 오늘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조차 없이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산다. 이래도 괜찮은가?

괜찮다.

내일이 오늘이 되고, 오늘도 내일도 밥 한끼 먹는 것은 똑같다.


이번주에는 고구마를 마저 다 팔았다. 대략 백만원 정도의 순이익이 났다. 마늘 심을 자리에 퇴비 뿌렸다. 고추밭 정리했다. 콩을 털었다. 들깨를 씻었다. 은행을 주웠다. 작목반 형들이랑 같이 일도 하고 술도 마셨다.

다음주에는 밭에 청보리 뿌리고, 고구마 밭에 비닐 줍고, 고구미의 두 번째 결혼식에 간다. 오늘과 내일을 위해서.

벼베기가 끝나고나니 왠지 외롭다. 작목반 형들도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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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0 - 영씨

그때그때 2013. 10. 20. 23:18

 영재가 다녀갔다. 변산에서 만났던 친구다. 그 친구를 보면 마음이 편하다. 좋았던 시절을 함께 했었기 때문이리라. 지금도 호시절이지만 변산의 외딴집에서 라면 끓여 먹으면서 쉬었던 날도, 논김매다가 지쳐서는 막걸리 먹고 길가에 누워서 늘어지게 잠들었던 날도 호시절이었다. 돌아갈 수 없는 날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다행이기도 하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연애는 현재형이 아니라 과거형이다.


 


좋은날들 보내고 또 놀러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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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불고 춥다. 포비 밥그릇이랑 물그릇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곧 겨울이다. 오늘 고구마 63박스를 배송했다. 춥기전에 보내게 돼서 다행이다. 최소한 100박스는 나와야 하는데, 수확한 것의 40% 정도가 굼벵이를 먹었거나 깨졌다. 앞으로 10박스나 더 만들 수 있을까? 일단 첫번째 농산물 판매를 무사히 마친 것에 안도하자. 그렇지만 문제는 역시 수입이다. 내년에는 농사를 줄이고 조개를 열심히 잡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카톡으로 보라씨한테 게임초대가 왔다. 보라씨는 아무 주제나 던져주면 이런저런 인용구들을 쏟아냈던 학생이다.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생각하는데 - 지금, 강헌의 벙커원 강의를 틀어놓고 글 쓰고 있다. - 전에 이대 다닐때, 보라랑 인터넷 라디오를 했어야 했다. 내 인생에 몇 가지 되지 않는 후회다. - 졸업 영화를 만들지 않은 것보다 더 후회됨. - 그래도 아직 카톡에서 내 이름을 보고 게임초대를 보내주니 반갑다.  

 

 고구마를 발송했고, 류현진이 잘 던져서 기분 좋은 날인데, 아내가 기분 상했다. 내가 요 며칠 계속 밖에서 저녁을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늘 고구마 발송기념으로 고기반찬 해 먹기로 했는데,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때문이다. 미안해요. 요즘 아내는 많이 피곤하다. 처음 들깨를 털었던 날은 팔이 아파서 새벽까지 잠을 못자기도 했고, 매일 고구마 밭에서 고구마 줍느라 몸도 힘든데, 고구마 판매 때문에 이런저런 신경 쓸 것도 많다. 동네 할머니들 말마따나 지후는 신랑 하나만 믿고 아는 사람도 없는 섬에 들어와서 가장 구석집에서 살고 있다. 내가 더 잘할게요. 화풀어요.

 가끔 아내가 먼저 잠든날, 아내 옆에 내 팔을 뻗어서 아내에게 닿을만큼 거리를 두고 누워서, 이를 갈며 잠든 아내 머리위에 손을 얹는다. 기분이 좋아져서 금방 잠든다. 이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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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에 일하고 점심 먹기 전에 우물에 물 퍼내다가 핸드폰을 빠뜨렸다. 올해만 다섯번째다. 아이폰을 네 번 빠뜨렸는데, 그 중에 두 번은 기계에 바닷물이 들어갔다. 다행히 작동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기분이 영 찜찜해서 폰을 바꿨다. 물론 공짜폰으로 바꿨다. 6개월을 써야하는데, 며칠전에는 잃어버렸다가 찾고 어제도 고구마밭에 떨어뜨렸다가 찾고 오늘은 물에 빠뜨렸다. 안 좋은징조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기분이 안 좋다. 오늘 물에 들어갔던 새 핸드폰도 방금 켜보니 큰 문제는 없는것 같다. 제발 6개월만 버티자.

 

 핸드폰이야 약정기간만큼 버티고 새걸로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생활은 그렇지 않다. 없는 살림에 1년을 까먹고 나면 다시 1년간 까먹을 자금이 생기지는 않는다. 핸드폰을 바꿀래도 돈이 필요하니 결국은 돈이 문제다. 농사 지어서 1년에 천만원을 버는 일이 쉽지 않다. 물론 대규모로 투자를 해서 대규모로 농사를 지으면 어렵지 않겠지만 자본도 기계도 없이 몸뚱이 만으로 농사 지어 생활을 이어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수확의 계절, 고구마를 캐고, 벼를 베서 수매할 시기가 다가오니 수입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게 된다. 고구마가 정말 많이 나와서 200박스를 그나마 완판하면 택배비랑 종잣대, 도지 등을 떼고 350만원 정도가 남는다. 그렇다고 무농약으로 잘 키운 고구마니까 무작정 비싸게 사주세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무튼 연소득 목표가 1,000만원이니 650만원을 더 만들어야 한다. 400평 정도 되는 콩밭에서는 큰 기대를 하기 어렵고 결국은 벼수매가 중요하다. 3,800평 농사에 도지 떼고나면 평당 수익은 1,000원 정도일 것이다. 대략만 계산해도 갑갑해 진다.

 강화도친환경농민회에서 김정택 회장님이랑 안대표가 와서 저녁 때, 작목반 형들이랑 올해 유기농 벼수매에 대해서 얘기들을 나눴다. 농민회의 제안은 올해 책정되는 무농약 쌀 수매가로 볼음도 유기농 쌀을 구입하고 (유기농 값 - 무농약 값)에 대한 대금은 쌀을 다 팔고나서 추가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내용은 수매대금을 전체 액수의 35%만 초기에 지급하고 나머지는 내년에 두 번에 걸쳐서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P형은 그렇게는 벼 못 넘기겠다고 했고 다른분들은 달리 방법이 없으니 농민회에 그냥 넘기겠다고 했다. 이것이 정미소도 브랜드도 판매처도 없는 볼음도 친환경작목반의 현실이다. 현재로서는 나도 농민회에 넘기는 것이 최선이다.

 오늘 나온 얘기들을 정리해보면, 현 시점에서 벼농사를 지으려면 무농약으로 다생산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우리동네 벼는 거의가 유기농이다. P형은 유기농 쌀이 비싸니까 도지는 다른 쌀을 사서 주기도 했다고 한다. js형은 작년 수매대금을 추석 전에야 다 받아서 그 사이에는 여기저기서 돈을 융통해서 생활비를 마련했다. 삶은 이렇게 절박하다. 절박하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절박하니 방법이 나오겠지.라고 생각하다가는 현재보다 못한 현재가 계속 이어질 뿐이다. 어쩌면 좋을지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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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9 - 9월 끝

그때그때 2013. 9. 29. 11:55

모레면 시월이다. 9월 한 달 동안 열심히 상합을 잡았다. 그동안 수입이 없었기에 더 이상 돈을 까 먹지 않기 위해서기도 하고 한 달간 조개 캐서 팔면 얼마나 벌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번달에 최저임금보다 더 벌었다. 동네분들이 많이 도와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항상 감사한데, 그뿐인 것이 전부라 몇몇 분들께는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다.

갯벌에서 그레를 끄는 일은 힘들다. 한 번 나갔다가 돌아오면 몸에 힘이 쭉 빠진다. 이렇게 힘든 육체노동의 댓가를 헐값에 넘기는 것이 동네분들과 나의 현실이다. 물론 몸이 고된만큼 마음은 편하다. 돈을 번다는 일차적인 목적 외에 몸을 쓰는 일들이 주는 쾌감도 사람들을 갯벌로 끌어들이는 게 아닐까? 농업을 6차 산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농수산업이 6차 산업이 되면 몸도 힘들고, 마음도 많이 써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면 괴롭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쪽이 마음은 더 불편하려나.

고구미가 생일 축하 메세지를 보냈다. 지금 바라나시에 있다고 한다. 내 동경의 대상인 갠지스 강에서 흰빨래 하는 노인들을 생각했다.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듯한 노인들의 표정을 떠올렸다. 내가 그들과 함께 지내며 같은 일은 한다면 나도 그 표정을 가지게 될까? 내가 그네들을 동경한 순간부터 그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다. 무언가를 동경한다는 것은 그런것이다. 닿아도 닿지 않는 것을 붙잡아보려는 것이다.

그 노인들도 자녀들의 교육을 내일로다가온 월세를 노모의 병원비를 걱정할까? 현대사회는 물건도 생각도 너무 많은것이 문제다. 언덕위로 돌을 굴리는 형벌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면 흰빨래를 하거나 몸의 떨림을 느끼며 조개를 캐는 것과 같다.

나는 운명론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엄친아가 되기 위한 여러가지 조건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집안(의 재력)이다.

생활 자체가 <나>인 삶을 원한다. 아무런 동경도 없는 상태를 원한다. 생활로서의 농업을 원한다.

나는 운명론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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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2 - 슬럼프

그때그때 2013. 9. 12. 23:27

 지난 주말에 강화 본도에 다녀왔다. 번화한 곳에 다녀온 영향일까? 그제랑 어제랑 오늘까지 사흘동안 약간 무력하게 보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농업에도 슬럼프가 찾아온다. 그래도 나름대로 자영업인지라 할 일은 해야한다. - 자영업이니까 안해도 된다. - 배추벌레는 대처 방법도 찾지 않고 손을 놓고 있지만 남은 배추모 마저 심었고, 조선오이 심었던 A자형 지주대 철거했고 불탄 자리도 약간 치웠다. 고추, 호박, 토마토를 땄고 그제랑 오늘은 상합도 잡았다. 확실히 몸을 쓰면 무력함이 가신다.

 

 슬럼프의 원인을 생각해 봤다.

 1. 게임을 했다. - 인피니티 블레이드 2 시작했다. 무력하고서 게임을 한 것인지 게임을 하고서 무력해진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2. 현금을 만졌다. - 상합을 팔아서 현금을 만졌다. 모두의 일터인 갯벌이 매일 열려있고 거기에 나가면 바로 돈이 되는 일이 있는데, 농사가 다 무언가.하는 생각을 했을까?

 3. 농사가 마음대로 안된다. - 트럭(또는 경운기), 예취기를 구입해야 한다. - 당장 필요한 일들이 있는데, 당장 구입할 수는 없다. - 멧돼지와 고라니에 대한 방비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 잘 자라고 있던 들깨가 약간 비리비리하다. 수수가 쓰러지고서 며칠이나 방치했다. 잘 자라고 있는 콩이랑 고구마도 막판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된다. 고구마 수확과 판매를 어떻게 할까? 2015년부터 쌀시장을 전면 개방한다는데.....

 4. 야구 - 우리팀이 2위로 밀려났고 경기력도 맘에 들지 않는다. 류현진이 오늘 패전투수가 됐다.

 

 모르겠다. 누구라도 그렇듯이 살다보니 그냥 녀석이 찾아왔다.

 

 아직까지 안 자고 있는 걸 보니 확실히 오늘까지는 슬럼프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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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서가 지나면서 볼음도에는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이번주에는 배추랑 무, 파, 순무를 심었다. 오줌으로 밑거름을 했으니 감자처럼 참혹한 결과를 맺지는 않겠지? 우리밭에 콩이랑 들깨가 자라는 것만 봐서는 밭에 살충제를 쓸 필요는 없는듯하다. 살충제도 해마다 사용해왔기 때문에 한 번 끊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랬는데, 내년에는 벌레 엄청 생길지도 모른다. 집 뒷밭에 심은 친구들이 잘 자라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 - 올해는 일단 수확을 하고 판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겠다.

 날이 차가워 지면서 토마토가 붉어지는 속도가 완연히 줄었다. 엉성하게 키우긴 했지만 많이 따 먹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훨씬 더 잘 키워서 적게 심고 많이 먹을 자신이 있다. 토마토만 그런것이 아니라 다른 작물들도 내년에는 올해보다는 잘 키울것이다. 키우는 기술이 늘면 가짓수도 많이 늘려야지. 참외는 순을 잘못 지르는 바람에 한 개도 못 따먹을 줄 알았는데, 여러개 먹게 됐다. KK할머니는 손주 줄기를 남기는 방식으로 순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막 지른다는데도 참외 많이 따셨다. 우리한테도 몇 개 주셨다. - 감사합니다. -

 올해 전남이랑 여주 고구마 작황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고구마는 많이 수확할 것 같다. - 멧돼지라는 대형 변수가 있긴 하다. - 우리가 마이너스 아닌 올해를 보내기 위해서는 고구마를 잘 팔아야 한다. 잘 키운 쪽은 제 값을 받겠지만, 남쪽의 고구마 농부들은 큰 이문을 남기지 못할 것이다. 충북 이남 지역으로 고추 농사가 잘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고추를 제대로 못 키운 죄로 고춧가루를 사서 김장을 해야하는 우리로서는 싸게 살 수 있으니 잘 된 일이지만 허리가 끊어지도록 고추를 따서 헐값에 넘기는 농부의 마음은... 음... 모든 사람이 나처럼 느슨한 마음으로 조금씩 심고 조금만 벌어서 생활만 유지해야지.하면서 농사 짓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

 어제는 바람이 정말 강하게 불었다. 콩이랑 팥이랑 옥수수가 막 기울어지고 자빠졌다. 아침에 콩이랑 팥대를 세우다보니 내년에는 북 주기 쉽게 비닐을 씌우지 말고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닐 안 씌우고 내 생각대로 관리한 곳은 애들이 전혀 쓰러지지 않고 쌩쌩했다.

 뭐든 내 생각대로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면 크게 후회할 결과가 나오더라도 내 잘못일 뿐이다. 남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생활에 관한 것들은 대체로 내 생각대로 할 수가 있는데, 농사는 아직 그러기가 쉽지 않다. - 생활은 30년을 넘게 했고, 농사는 이제 시작이라 그렇다. - 얼마전부터 부엌에 수돗물이 약하게 나와서 마음에 걸렸더랬는데, 동네 형들한테 좀 봐주세요.라고 부탁드릴까 하다가 그냥 수관 이상이겠거니 하고 수관을 갈았더니 물이 다시 잘 나온다. 한적골 윗논에 물을 대야 하는데, 모터펌프가 고장났다. 동네 형들이 다들 섬을 비우셔서 모터 고쳐달라고 부탁할 곳이 없다. 난감한 일이다. 예취기로 논둑에 풀들을 좀 정리하고 콩을 심고 싶었지만 내게 기계가 없고 괜히 남의 기계 썼다가 고장날까봐 풀 위에 종자만 뿌렸다. 종잣대만 날렸다. 차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겠지.

 농사는 시기를 놓치지 않는것이 무척 중요하다. 올해는 약간씩 미루고 미뤄서 진행한 일들이 많았지만 내년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9월 목표 - 상합 캐서 50만원 벌기 - 100kg 가까이 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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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없는 수박 김대중은 나의 대학 선배고 동네 형이고 기타 선생님이다. 이번에 셀프 타이틀을 달고 나온 첫 앨범은 대체로 평이 좋다. 동네 형이 앨범과 인기(?)라는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니 나는 기분이 좋다. 선배가 나한테 12bar blues의 기본 진행을 알려주면서 모든것은 블루스다라고 했더랬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mp3 파일을 건내주면서 이것도 다 블루스다라고 했던 맥락이 '요양원 블루스'로 이어진다.


내 듣기에 앨범에서 이 형의 본질을 드러내는 곡은 '씨없는 수박'과 '틀니 블루스'인데, 내 이빨은 못난 외가족의 유전이라서. 라고 하는 가사가 씨 없는 수박과 연결되면서 뿌리는 찾아서 뭐해 결국 중요한 건 엄마인 걸.하고 말하는 듯하다. - 대학때 모임인 '미래의 역습'에는 불완전 가족을 가진 멤버들이 많았다. -

음악을 위해 목숨도 판다는 블루스 아티스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형이 추천했던 86년 작품 '크로스로드'는 필견. 대중선배는 십자로에서 제대로 된 길을 찾은걸까? 나는? 우리는 항상 십자로에 서 있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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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앨범 자켓에 이 사진을 쓰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형, 올겨울에 레슨 해주기로 한 거 잊지 말아요.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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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알던 분으로부터 카톡을 통해서 게임 초대가 왔다. 나도 알던 사람들에게 게임 초대를 보내봤지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안부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초대장을 날리게 만드는 것을 보면, 게임은 참 위대한 것이다. 카톡을 통한 게임 초대는 이 양반이 어디선가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고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뜻도 되는 것이라서, 나는 얼굴 자주 보기 힘들고 딱히 친하지 않은 친구들을 가끔 보게 되면 - 주로 결혼식과 장례식 - 종종 게임 초대 보내라고 말하기도 한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몇년동안 얼굴을 못 봤고 앞으로도 딱히 얼굴 마주칠 일 없는 사람들에게 친구 신청을 하는 것도 카톡 게임초대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리는 살아 있다는 증명을 쉽게 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동네에는 박근혜 만큼 후진 일들이 종종 생긴다. 후진일이니까 자세히 쓰는 것도 부끄럽다. 나랑 직접 관계 있는 일들도 있고, 약간 관계 있는 일들도 있고, 관계 없어 보이는 일들도 있다. 일본과 이스라엘의 원전사고처럼 결국은 다 나랑 관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페북에서 상대가 쉽게 업신여긴 인간관계라면 미련을 갖지 마라.는 글을 읽었는데, 후진일들도 마찬가지로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야겠다. 결국은 다 나랑 관계 있는 일인데, 후진일이니까 생각하지 말아야지.하고 살 수 있을까?

 

 요즘 아내랑 미드 쉐임리스를 본다. 가난에 대해서 생각한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가끔 나쁜짓을 해서 돈이나 먹을 것을 마련하기도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고 드라마는 드라마다. 작년에 어느 다큐에서 파스타면을 케첩에 비벼 먹는 어린이를 봤더랬다. 역시 현실은 현실이고 드라마는 드라마다. 지구 어느편의 가난도 결국은 다 나랑 관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흡족할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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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이장님네 컴퓨터 손봤다. 메모리 관련, 하드디스크 관련 블루스크린이 떴고, 인터넷 연결도 안됐다. 메모리 네 개를 하나씩 껴보고 별 짓을 다하다가 결국 자료 백업해 두고 윈도우 새로 깔았다. 

 

 볼음도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산다고 해도 그 젊은 사람들이 50대를 뜻하는 것이고 농사를 업으로 삼는 50대가 컴퓨터를 자주 접할 일이 없었으니, 아저씨들이 사용하는 컴퓨터에는 종종 사소한 문제들이 생긴다. 내가 그분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좋은일이다. 먼저는 교회 기타줄도 갈아드렸다. - 하지만 교회에서 기타 반주를 하지는 않을게요. ^^; - 

 

 나야 초등학교 때, 아이큐 2000부터 시작해서 쭉 컴퓨터의 발전(게임 그래픽의 발전)과 함께 커온 세대니까 - 내 첫 컴퓨터는 대학교 1학년 때, 윈 95가 깔린 586컴이었다. - 당연히 컴퓨터가 무척 익숙하다. 우리 동네 50대분들이 나보다 농사에 익숙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분들은 손모내기 하던 시절부터 쭉 농사를 지어온 것이다. 

 

 C 이장님이 무척 고마워 하셨다. 오늘 뭐할거냐고 하셔서 당근 심는다고 했더니 밭 쓸려준다고 하셨다. 조금만 심을거라서 삽으로 일르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프로그램들 까는 동안 동네 돌아가는 일들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이런식으로 서로 도우면서 계속 살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나도 농사가 익숙해 지겠지. 

 

p.s  예전에는 윈도우즈 새로 깔고 드라이버 깔고 각종 프로그램들 깔고 하는 몇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아이패드를 가지고 나서는 왜 윈도우즈는 부팅도 오래 걸리고 블루스크린도 발생하고 까는데도 오래걸릴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시대가 거의 저물어 가는듯하다. 

 

짤방은 화석이 되어버린 개구리- 어쩌다 이랬을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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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을 끝냈다. 겨울에 일 없을 때, 다시 끊어야지. 담배를 다시 물었을 때, 특별한 느낌은 없고 하던 일을 계속 하는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담배를 끊었던 이유가 공식적으로는 대선이 끝나고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였고 실질적으로는 장기간 수입이 제로인 상태로 살아야 하기에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요즘 일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올겨울에 뭘해서 연소득 일천만원을 채울까.인데, 이런 와중에 담배를 샀다.

나는 범사에 감사하는 타입으로 - 카톡 프로필이 범사에 감사하라.인데, 바람 피우는 아주머니를 한 명 알고 있다. - 한없이 긍정적인 편인데, 긍정이 지나치면 최악의 상황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 점을 무척 경계한다. 가을에 쌀, 고구마, 콩을 잘 팔아봐야지. 어떤 방법이 좋을까를 궁리하는 것이 긍정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일텐데, 현실에서는 다 잘못됐을 때를 먼저 생각하고 있다. - 이래서 도지나 나오겠어.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 그런가? -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일단 생각을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인간이다.

오전에 택배 찾으러 선창에 나갔다. 볼음도에서는 택배를 배에서 찾아와야 한다. 토요일이라 배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뱃전에 미리 나와 있던 동네분들이 손님들을 택배 찾아가듯이 차에 실고 갔다. 섬에 손님들이 많이 오는 게 내게는 그런 느낌이다. 내 삶이 어떤 종류의 안정을 - 첫 번째가 경제적인 것 - 찾을 때 까지는 계속 그렇겠지. 나는 조용하고 인구수 적고 가끔은 픙경이 원시적이기 까지한 우리 동네가 너무 좋다.

저녁에 고구마 밭에 호랑이 소리 틀어놓고서 백사장 쓰레기 중에 쓸만한 거 찾으러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오는데, 비가 왔다. 얼굴이 금방 젖었다. 볼을 흘러내린 빗물이 짰다. 바닷가에 내리는 비라 그런가보다.생각했다가 땀이 섞여서 그렇겠구나.로 바꿔 생각했다. 낭만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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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갯골 해수욕장 개장했다. 짤방은 안개낀 영뜰해변의 쓰레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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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농사 짓고 사는 일에 대한 통칭을 정했다. 나는 올봄부터 쭉 Gracias(그라시아스) 농장이 좋겠다고 얘기했다. 모든것에 감사한다는 뜻이다. 종교적인 색채는 없다. 아내(지후)가 며칠전부터 고민하기 시작하더니 '다정한 농부'가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은 "(그리시아스 농장의) (아마도) 다정한 농부"를 우리의 정식명칭으로 정했다.

다정한 농부 공식 페이지는 일단은 bri2013.tistory.com 이다.

아내가 남들이 농장 앞에 써붙이는 것들마냥 원칙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초제,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같은건 너무 당연한 것이고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다정한 농부는 고라니를 미워하지 않는다'였다. 지후가 웃긴다고 좋아했다. 지후가 좋으면 나도 좋다.

이름을 지었으니 이제 로고를 만들어야겠다. 상표등록도 해야겠지?




짤방은 남의 밭에서 찍은 나의 도라지 꽃 - 내년에는 꽃을 보기 위해서라도 도라지를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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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에서 슬레이트 지붕 철거 의향 조사를 나왔다. 50대, 60대들은 이미 다 집을 새로 지었거나 지붕을 개량했기 때문에 슬레이트 지붕 아래 사시는 분들은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다. 이번 사업에서는 지붕을 교체해 주는 것이 아니라 철거까지만 해준다고 한다. 몹쓸일이다.

동네 아저씨들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슬레이트 지붕 얘기가 나왔다. 80년대에 슬레이트에 삼겹살 구워 먹는 것이 유행이었단 때가 있었다고 한다. 벼 매상하러 선창에 나와서도 슬레이트 위에 고기를 굽고, 대학생들은 캠퍼스에서 휴가철에는 바닷가에서 슬레이트 위에 심겹살을 구워 먹었던 모양이다. 아저씨들 얘기로는 불에도 잘 안 타고 기름이 고랑으로 잘 흘러 내려서 무척 좋았다고 한다. 지금 들으면야 즐거웠던 추억이지만 석면 먹고 폐가 딱딱해질 노릇이다. 그런데도 어느 아저씨는 그때 그렇게 먹어서 지금 건강한거야.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박정희 때건, 전두환 때건, 김대중 때건, 지금이건 시절이야 어떻든 결국 내가 젊었을 때가 호시절이다. 젊었을 때, 그러니까 지난날, 그 중에서도 먹고 놀았던 추억들이 그때가 호시절이었지.라고 회상하게 만든다. 인간의 기억에 남는것은 먹고 놀았던 일 뿐인가 하고 생각해봤다.

내 호시절은 몸이 망가지도록 흥청망청 마셨던 유로 2000때부터 아내랑 이스터 섬에서 커피 마셨던 때까지인가? 텃밭에 먹을 것들이 쌓여가는 지금도 충분히 좋은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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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경안에 앉아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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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4 - 여유

그때그때 2013. 7. 4. 22:21

 오토바이가 고장났다. 가다가 자꾸 시동이 꺼진다. 점화플러그가 느슨해진 것이 원인인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오토바이가 고장난 다음부터 자전거를 많이 탔다. 논에 갈때도 밭에 갈때도 1리에 있는 농협에 갈때도 자전거를 탔다. 얼른 고쳐와야 마음이 편할것이다. 앞으로는 자전거를 많이 타야겠어. 내가 말한다. 왜?하고 아내가 묻는다. 기름이 떨어져가. 내가 말하고 아내가 깔깔 웃는다. - 기름 두 깡을 동네 아저씨들한테 얻어서 그 기름으로 오토바이를 운행했는데, 네 달이 넘어가니까 기름이 다 떨어져 간다. - 왠만하면 자전거를 타는 생활을 하는 것이 좋겠다.

 

 쌀독이 비었다. 볼음도가 벼농사 지역이다 보니 쌀은 이형, 저형네서 얻기도 하고 구입하기도 했더랬다. 둘이서 외식 없이 워낙 밥만 먹다보니 쌀 소비량이 늘었다. 좋은일이다. 쌀은 동네 형들한테 얘기해서 구입하면 된다. 내 성격탓에 쌀 떨어졌어요. 쌀 좀 파세요.란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내일은 뭐 먹지?

 라면이랑 국수

 소년가장! 쌀 사와

 알았어 내일은 꼭 쌀 가져올게

 그래, 쌀독에 쌀은 채워놓고 국수 끓여 먹고 싶어

 어제 아내랑 이런 대화를 나눴다. 오늘 계획대로 쌀을 가져왔고 국수를 끓여 먹었다.

 

 

 아직은 이런 여유가 있다.

 K누나가 이래 가지고 밥이나 먹고 살겠어?라고 농담을 해도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

 

 

짤방은 점방에서 과자 사던 아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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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1 - 낙관

그때그때 2013. 7. 1. 13:50

 괴로워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마시고 싶으니까 괴로워 지는거지.란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우정과 낙관, 해학으로 서로를 북돋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잃지 않을 것이다.란 글을 읽었다.

 

 소식을 묻는 전화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습관적으로 매일 같은 시간에 잠에서 깬다.

 수많은 이름들에 대해서 생각했다가 이내 마음속으로 고개를 젓는다.

 소식을 알고 싶은 친구의 소식을 애써 찾지 않는다.

 수많은 이름들과 무리를 이루어 사는 꿈을 꾸다가 깨어난다.

 낙관에 대해서 생각한다. 망각과 기만을 포괄하는 말인가?보다.

 살아온 시간에 비례해서 굳어지는 것들 

 나만 즐거우면 되는 것과 내가 즐거우면 되는 것

 나만 아니면 되는 것과

 내가 아니면 안되는 것   

 

 낙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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