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게까지 만화 보다가 잤다. 늦게 일어났다. 집도 날려버릴 것 같던 바람이 잔잔해졌다. 10시에 밥을 먹고 11시부터 메주콩을 고르기 시작했다. 메주콩 고르기 전에 강릉 작은 어머니에게 메세지가 온 것을 발견했다. 노트북 사고 싶다고 하셔서 하나 골라드렸다. 카톡으로 대화했는데, 요양원에 계시던 할머니를 집에 모셨다고 했다.
할머니를 삼촌집에 모셨다는 뜻은 건강이 악화돼서 요양원에서 더 이상 할머니를 보살필 수 없다는 뜻이다. 현재 할머니는 호스를 꽂고 그 호스를 통해서 식사를 하신다고 한다. 치매가 오고나서 지금까지 할머니의 삶을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 나이 먹고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보살펴 주는 이 하나 없는 상황인데, 현대 의학은 그 시간을 더 연장하기만 한다. 예전에는 공동체가 노인을 책임졌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도 100% 맞는 건 아니다. 예전에는 일찍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공동체가 책임질 노인의 수가 적었다. 그렇다면 죽어가는 사람도 본인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주사 한 방으로 살리는 현대 의학이 문제로구나.
메주콩을 다 고르고 나니 안심이다. 이제 올해 농사 갈무리는 서리태만 남았다.
오후 네 시에 아내가 회관으로 불려갔다. 12월 1일부터 회관에서 점심 해 먹기로 했는데, 급작스럽게 일정이 당겨져서 오늘 저녁부터 회관에서 먹었다. 내일부터 이 긴 겨울이 끝날때까지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 모두가 마을 회관에서 점심을 먹는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다 합쳐도 24명 정도다. 아직까지 옛 공동체적 생활 방식이 남아 있는 거라고 봐야할까? 뭐가 됐든 밥 하는 사람들은 힘들다. 밥 먹고 잠깐 앉아 있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내일 우리 서리태 골라주신다고 아침 일찍 가져오라고 하셨다. - 오, 감사합니다. - 아직까지 옛 공동체적 생활 방식이 남아 있는 거라고 봐야겠지?
저녁 먹고 나서는 킹킹 엄니네 가서 노닥거렸다.
뭔가 바람직한 하루를 보낸 거 같다. 이게 다 메주콩을 마무리 했기 때문이다. 어제랑 그제는 많이 답답했더랬다. 역시 나는 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인간은 생각만으론 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