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1

그때그때 2011. 12. 21. 20:02
몸도 마음도 지쳤다. 물러설 곳이 없으니 물러설 수도 없다. 하여, 기운 내야지. 생각하고 씻었다. 몸에 물이 닿는다고 마음이 닦이는 것도 아닌데, '영차'가 필요할 때면 습관적으로 몸을 구석구석까지 씻는다. 목욕탕 거울에 비친 내 몸뚱이를 봤다. 몸에 생기가 없다. 맘에 안든다. 어느새 중년이다.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나만 모르는 사이에 떠돌이가 되어있다. 나는 붙박이장같은 삶을 원한다.

당신도 울고, 엄마도 울지만 나는 울지 않는다. 주위의 걱정들은 뒤로하고 웃으면서 헤쳐나가자. 모든 순간들이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뭐라도 쓸랬던게 내년 계획이 되버렸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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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줏대없이 끌려다니고 있다. 지난 금요일에는 춘천에서 있었던 사이버 농업인 행사에 어제랑 오늘은 횡성에서 열린 강원 사이버 농업인 어쩌구저쩌구에 다녀왔다. 내일이랑 모레는 AT센터를 거쳐 양평과 수안보까지 가야하는 행사가 있다. 사람들이 대체로 하는 얘기는 이런 행사에 자꾸 다니는 것이 견문을 넓히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강릉의 젊은 농업 CEO들이 늘 하는 얘기는 이제는 농업도 예전같지 않다. 우리가 힘을 합쳐서 각자의 영역을 맡으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형님들은 전부 빚을 안고 계신데, 생활의 패턴이나 규모는 대기업의 봉급 생활자들과 비슷해 보인다. (멋진집, 외제차, 씀씀이 등)

 지친다.

 밖에서도 지치지만 집에서도 지친다. 삼촌은 나중에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일단 후계농을 신청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오늘 센터에 다녀왔다. 나는 신청자격은 갖추었다. 하지만 젖소 구입에는 자금이 나오지 않는다. 삼촌 축사를 이용하겠다고 할 수도 없다. 현재 우리 축사는 작년에 '증축 및 보수'로 사업비를 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토지구입 및 축사 신축으로 후계농을 신청하거나 특정 작목을 새로 정해서 신청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 집에서는 융자 받을 수 있는 돈은 다 받는 것이 좋고 그 돈으로 땅을 사라고 하신다. 삼촌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지 짐작은 하고 계시지만 나 같은 마음으로는 생활비를 마련할 수 없다고 생각하신다.

 나는 큰일(농사의 사이즈나 소득)도 싫고 땅을 사겠다고 사업비로 빚을 지는 것도 싫다. 나는 종종 남들한테 농부가 되겠다는 것이 직업 선택적인 측면이 있다고 한다. 내가 직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세상의 기준에서 봐서 그렇다는 것이지, 직업이니까 도시에서 직장 다니는 것처럼 살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내가 밭이나 논에서 일하고 있을 때가 좋을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농부는 삶의 방식과 관계가 있는 것이지, 고소득과는 관계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작은 삶이다. 작은 땅, 작은 집, 작은 당신, 소박한 밥상이 큰 충만함이 되는 그런 삶이다.

 중요한 시기니까 진짜 고민과 실천을 깊으면서도 조심스럽게 그리고 결단력 있게 해야겠다.

p.s 용환이 아저씨(72세)가 기술센터까지 태워주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어르신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농사를 지어서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아끼면서 살고 남는만큼 모으는 것이다."
"바쁘면 돈 쓸 시간도 없다." 

공감한다. 그리고 바쁘고 안 바쁘고를 떠나서 돈이란 건 없으면 안 쓰면 된다. 돈 떨어지면 담배를 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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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8 - 산다.

그때그때 2011. 12. 8. 20:11
 나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매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애초에 목표란 것이 구체적이질 않다. 어른들이 인정하는 안정된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목표에 대해서 많이 하는 얘기는 이렇다.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맞춰서 장기적인 목표까지 세워야 한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앞으로도 배우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게도 목표는 있는데, 예를들면 이렇다.

 - 지후랑 같이 산다
 -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산다
 - 최소 생활비로 산다

 적어 보니 다 산다.로 끝을 맺는다. 산다.로 끝나지 않는 것들도 있다.

 - 육식은 하지 않는다
 - 빚을 지지 않는다
 - 뭐든 쓴다  
 - 많이 읽는다
 - 기타를 열심히 친다

 같은 것들이다. 조금 구체적이긴 한데, 목표라기 보다는 지금도 70% 이상은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리하여 나는 변화를 원하지 않고 되는대로 두리뭉실하게 사는 것이 목표인 사람이 되는 것인데, 반쯤은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니 몸에 한기가 돈다.
 
 그렇지만 뭐 어때!

 당신과 함께 재미있게 살면 된다. 물론 최소한 먹고는 살아야겠지.

 문장 끝에 '산다'를 붙이면 다 산다가 되는 것, 그것이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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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3 - 죽음

그때그때 2011. 12. 3. 22:12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침에 전화한 친구는 덤덤한 말투로 '이 세상 떠나셨네'라고 했다. 병원에 가보니 친구 눈이 퉁퉁 부었다. 그 와중에도 돈을 내야 시신을 내 주기 때문에 현금서비스를 받았고 장례식장의 계약서에도 싸인을 했다고 한다. 친구 아버지는 지병이 있으셨다. 예상했던 죽음 앞에서도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다.

 지후네 공부방 어린이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세 아이와 아내를 남겨놓고 갑작스럽게 이승을 등졌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쉽지 않은 현실이 남은 네 가족의 몫으로 남겨졌다.

 '나는 죽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없다.' 이런 표현은 말이나 생각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나는 어느날 찾아올 내 어머니의 죽음이, 당신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두렵다.

 어느새 12월이다. 2011년 12월 3일의 전라북도 익산은 따뜻했다.

 대선이 아버지에게도 동민이 아버지에게도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오늘이 따뜻한 날이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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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6 - 나무

그때그때 2011. 11. 26. 21:18
 올해가 다 지나간듯 느껴진 게 벌써 몇달전인데, 아직도 한 달도 넘게 남았다. 시간은 그렇다.
 오늘은 열심히 다녔다. 힘을 다 써버려야 새 힘을 얻기 때문이다. (하이킥에서 내상씨가 미친듯이 달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어제는 목욕도 하고 발톱도 깎았다.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해서 열심히 걸었다. 성에 덜찬다. 내일은 숲을 헤메든, 계속 걷든 해야겠다.

 

 어제 강릉시내에서 찍은 사진인데, 사람들이 빛을 향해 걸어가기도 하고 빛을 등지도 오기도 한다.
둘 다 맘에 든다. 그리고 둘 다 어딘가 모자란다.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이 나무는 천 개의 눈을 가지지 못해서 오직 앞만 바라볼 수 있었다. 뒤에서 온 사람들은 뒷모습만을 보이며,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나무는 자기만 혼자 서 있다는 사실 때문에 공포를 느꼈다. 앞쪽에서 와서 나무를 지나쳐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무는 뒤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 뒤에 무엇이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또 나무는 앞쪽에 보이는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나무는 외로웠고 궁금했고 동시에 두려웠다. 그러다가 나무는 언덕 너머에는 바다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딱 한 번만이라도 언덕 너머의 바다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소년이 나무에게 다가왔다........

오늘 걸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미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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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그때그때 2011. 11. 25. 14:06



어제 먹은 것들을 다 싸내고 바다에 왔더니 머리가 하늘처럼 텅 비었다.

바닷가에는 갈매기가 무리지어 날고 아빠랑 함께 놀러온 아이는 뒤뚱거리며 뛰어다니고 낚시꾼들은  낚싯대를 던지고 젊은 연인은 방파제 위를 사라질 듯 걷는다.

바다는 혼자와도 좋고 겨울에 와도 좋고 흐린날 와도 좋다.

바다에 오면 바다쪽만 쳐다보게 되는 것처럼 자꾸 당신만 보게 된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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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는 안개비가 뿌리더니 해질녘에는 석양을 받은 구름들이 멀리 산 너머에서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당신의 존재는 내가 그려놓은 삶의 그림에서 절대적이다.
 당신은 아무런 그림도 없이 나만 믿고 이곳에 내려와야 한다.
 일의 진행들이 내 그림대로 되지 않는 것 때문에 많이 민감해졌다.
 어떤날은 날카로운 날을 세우고 다니기도 한다.
 민감해지고 날을 세우는 일들이 없는 삶을 위해서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한데,
 시작도 하기 전에 이런식으로 흔들리면 안된다.
 당신은 아무런 그림도 없이 나만 믿고 이곳에 내려오기로 했다.
 내가 휘청거리면 안된다. 
 ...
 ...
 ...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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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지난 월요일부터 산불조심을 다닌다. 최저임금을 받는 농촌의 겨울철 아르바이트다. 작년 가을에 다녔던 코스와 비슷한 코스를 다닌다. 어르신들한테 인사를 할 때마다 작년에 하던 그 사람이냐고 물어보신다. 나는 그분들을 기억해도 그분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뭔가 서글픈 일이다.

어제까지 별로 돌아다니지도 않고 차에서 자빠져 있었다. 오늘부터는 열심히 돌아다니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주워듣기도 하고 오랜만에 산도 탔고, 나무도 한 차 했다. 길에서 돈 만원을 주웠다. 만원짜리 한 장이 열심히 하기로 한 것에 대한 보너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돈을 흘린 노인네의 슬픔쪽에 더 가깝다. 깻대를 태우고 있는 아주머니한테 홍시를 하나 얻어 먹었다.

오늘 들은 얘기들 - 여러사람에게 들은 것들은 생각나는대로 나열함

- 성산면사무소 있는 쪽에는 월세도 20만원씩 달라고 하는 것이 시내에 얻는 것보다 더 비싸. 왜 그런지 모르겠어.
- 깻대를 말렸다 갈아서 넣으면 비료로 좋다고 하지만 요즘 누가 귀찮게 그렇게 하나, 옛날에나 그렇게했지.
- 아들이 셋 있는데, 둘째만 대학을 못 나와서 잘 못 살고 있다.
- 사람이 써먹든 안 써먹든 공부를 해야한다.
- 시골에서 이래 농사짓고 살면 흥망이 없다.(흥망이 없는 것에 체념하신 말투였음)
- 둘째 아들이 잔나비띠인데, 아직 장가를 안 가서 걱정이 많다.
- 우리 딸이 서른인데, 시집을 갈 생각을 안 한다. 하긴 나도 서른 여섯에 장가를 갔으니....

작년에 주먹만하던 개들이 일년 만에 말 그대로 개같이 커서 나를 반겨줬다. 나도 무척 반가웠다. 내년에 잡아 먹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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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월요일, 오늘까지 삼일 동안 부연동에 다녀왔다. 부연동은 골짜기 중의 골짜기다. 서른 가구 정도가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국유림을 임대해서 사업을 하시는 형님이 계신데, 40헥타가 넘는 산을 아픈 몸을 이끌고 일구시자니 너무 힘들다. 당장은 소득이 없더라도 곰취, 표고, 개두릅을 딸 수 있고, 몇 년만 버티면 산마늘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돈으로는 무척 비전이 있는 곳이고 내가 골짜기를 좋아하기도 하다보니 그곳에서 사는 일에 마음이 조금 끌렸다.

 아침에 중고 트럭을 한 대 보러 갔다가 사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중에 '아차'했다. 차는 한 대 필요하긴 하지만 600만원짜리 트럭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논에서 벼랑 보리를 키우고 싶고, 밭에서는 콩, 감자, 고구마, 옥수수, 호박, 당근, 배추, 시금치, 상추, 오이, 가지, 수수, 기장, 눈개승마를 키우고 싶은 것이지 소득작물(눈개승마는 소득작물임)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돈 앞에 초심이 살짝 흔들렸다. 

 내년에는 집에 농사를 잘 짓자. 일단 일 년을 착실하게 살아봐야 그 다음 계산이 나온다. 조급해하지 말자. 초심을 유지하자. 조바심 내지 않고 초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곁에 있어줄 당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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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와서 일주일이 지났다. 일을 하니까 몸이 되살아난다. 물론 피곤하다. 작은아버지가 힘들지? 하고 물어보신다.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고 괜찮다고 대답한다. 약간 피곤하단 뜻이다. 물론 정말 피곤할 때는 피곤하다고 대답한다. 

 이번주에는 고추밭을 정리하고 있는데, 비닐에 대해서 좀 생각해 봤다. 올해 우리 고추밭의 일부는 비닐이 덮인 땅을 로타리치고 그 위에 다시 비닐을 덮고 고추를 심었다. 작년과 올해 비닐 제거 작업을 하면서 느낀점은 비닐은 쓰면 안된다는 것이다.(그렇지만 나도 쓸지 모른다. ㅡ.ㅡ;) 땅이 부슬부슬하고 잘 마른상태에서도 비닐을 100% 제거하는 것은 어렵다. 대충 99%정도 제거한다고 치자. 1%의 비닐은 땅에 남고 10년간 비닐 써서 농사지으면 땅속에 첫 해에 농사지었던 비닐의 10%가 남게 되는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밤 9시가 되면 그날 날짜의 하이킥을 다운 받아서 보고 잔다. 하이킥에 야구장이 자주 나오는 걸 보니 야구가 대세는 대세다. 하이킥 초반부에 백진희가 넘어지는 바람에 회사에서 짤린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 에피가 나간 다음날인가 한화의 김준호 선수가 동점을 앞두고 홈 플레이트 앞에서 넘어지는 사건이 있었다. 하이킥은 판타지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현실을 많이 반영한다.

 롯데가 올라오면 최동원과 장효조의 대결이고, 스크가 올라오면 이만수와 삼성의 대결인데, 양쪽다 드라마적인 요소가 있지만 최동원과 장효조의 대결은 올해가 마지막이니까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올라왔으면 좋겠다. 롯데는 2위팀이고 4차전 승리로 흐름도 탔고, 부산에서 일방적인 응원을 받으며 경기를 할 것이다. 누가 올라오든 우승은 삼성(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산불조심 시작할 때까지 계속 세차게 일하자.


 짤방은 교육원 동기인 샬롬이, 모델이 좋아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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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3 - 교육 끝

그때그때 2011. 10. 14. 01:25
 내일이면 교육이 끝난다. 오늘 오후 시간에 산채 전문가 강사님이 오셔서 교육원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삶과 농사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요지는
1. 혼자, 또는 둘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짓는다.
2. 내가 또는 내 가족이 먹는거라는 마음으로 작물을 기른다.
3. 엄한데 팔 생각하지 말고 가까운 지인들이나 식당 등에 판매한다.
4. 이웃들과 잘 지낸다.(이번 가을에도 산불조심을 하기로 했다.)
5. 끝없이 연구한다.(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다.)
6. 땅관리를 엄격하게 한다.

 몇 가지 더 있겠지만 당장 떠오르진 않는다.

 6개월간 정말 즐거웠고 많은 것을 배웠다. 전화상으로 얘기했지만 당신 덕분에 별탈없이 이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앞으로의 화두는 생활!

 
 오늘 무척 화나는 일이 있었다. 교육 기간 동안 현장 견학을 갈 때마다 교육생들 통장으로 돈이 입금됐고, 우리를 관리하는 공무원이 그 돈을 일괄적으로 모아서 관리해왔다. 이 양반이 일본연수 가기전에 하는 말이 '너네들 거기 물가도 비싸고 돈도 없는데, 술도 한 잔 못 먹고 올까봐 그 동안 현장견학 갈 때마다 조금씩 돈을 모아 두었다. 고맙게 생각해라'였다.
 교육을 마치며 건의사항을 쓰라고 하길래 회계관리를 투명하게 하라는 내용을 적었다. 좀 있다가 그 담당자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 한다는 말이 '본가서 쓰고 남은돈에 자기 돈을 보태서 면세점에서 '세라믹 칼'(4 000엔)을 사서 직원들에게 돌렸다'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지만 선물을 돌린 사람들 명단에 우리랑 크게 관계하지 않았던 교육원 직원들은 있고 6개월간 밥을 해 주신 식당 아줌마들은 없었다.(울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식당 아줌마들은 용역직원이지만 우리 식구나 마찬가지라고 했던 사람이 우리 돈으로 그런짓을 했다.

 오늘 있었던 마지막 술자리에서 그 자리에 있었던 문제의 담당 공무원이 나를 따로 불러 그 얘기를 했다. 켕기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쯤되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내가 이런 얘기를 했을 때, 공무원들 편을드는 동기생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충격이다.

 당신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는 나밖에 모르지만 네게도 내가 그런 사람일 수 있다는 게 나를 행복으로 물들게한다. 하지만 세상은 영화 속 하비의 마지막 대사같지는 않다.

 But

  I Promise You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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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8

그때그때 2011. 9. 28. 19:41
 지난 일요일에 굴삭기 실기에서 떨어졌다. 확률은 반반이라고 생각했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월요일에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를 읽었다. 멋진 사람이었다. 세워놓은 원칙에 충실하면서 재미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화요일엔 기분이 별로였다. 오전이랑 오후 강의가 모두 주체적이고 전략적인 삶에 관한 것이었는데, 결론은 그렇게 해서 돈을 많이 벌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저녁에 술을 먹는데, 형들한테 수업태도가 안 좋다고 혼났다. 요점은 자기가 선택해서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라는 것이었다. 기분 나빴지만 반성은 했다. 오늘은 지게차 실기 시험을 봤다.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졌다. 그렇지만 당신이랑 통화를 했기 때문에 기분이 많이 나쁘진 않았다. 어제부터 읽고 있는 '나니아 연대기'의 역할도 크다. 

 시험에 떨어지고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나랑 같은 방을 쓰는 동생 J가 와서 내 왼쪽과 오른쪽에 번갈아 앉으며 점이 되려고 준비하는 여드름(피부 트러블)을 짜줬다. 그 친구랑 나는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위로가 됐고 고마웠지만 고맙다는 얘기는 못했다. Thank You! 

 해가 떨어지려고 준비할 때 즈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약간의 한숨과 함께 부질없다는 얘기들을 농담처럼 날리고 나니 한결 가벼워졌다. 조만간 좋은 얼굴로 만나요. 

 다친 손가락도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고, 장기간의 교육과 내일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들 때문에 자신감을 약간 상실했던 것 같다. 삶이란 것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지만 이럴 때가 많으면 그저그렇다. 

 친구에게 던지는 푸념과 여드름을 짜주는 동료가 없는 삶은 정말 그저 그렇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지후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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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0 - 이어짐

그때그때 2011. 9. 10. 17:03
 어제 강릉에서 친구랑 밥을 먹었다. 친구 뒤쪽 테이블에 엄마가 아이 셋을 데리고 밥을 먹으러 왔다. 막내는 이제 아장아장 걷는 정도의 나이다. 엄마가 밥을 뜨러 간 사이에 막내가 엄마를 부르며 울기 시작하자 언니가 아이를 번쩍 안아서 엄마한테 데려갔다. 언니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였다. 아기는 이내 울음을 그쳤고, 네 사람은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둘째 이모가 가끔 우리 엄마를 업어 키운 얘기를 하시는데 - 두 분은 열 살 차이다.-  어제 본 모습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밥을 먹고 혼자서 집에 오면서, 대를 잇는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얼마전에 지후랑 우리 엄마를 만나러 갔었다. 엄마는 지후의 팔을 붙잡고 손을 놓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채로 이런저런 얘기들을 일방적으로 쏟아냈고,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셋이서 밥을 먹으러 나가서는 나랑 동생을 곱게 키웠다는 얘기를 했다. 이미 엄마에게는 과거가 되버린 이야기들이다. 아들이 결혼을 해서 손주를 보는 것도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이 될 수 있겠지만 자기 아이를 키우는 기쁨은 이미 과거인 것이다. 어느덧 부모의 과거는 자식들의 현재가 되고 꾸역꾸역 대를 이어나간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자식들이 다시 물려 받는다는 것, 대를 잇는다는 것, 끊어도 끊어지지 않는 순환의 고리같은 것.....

 뭐랄까, 형용할 수 없는 위대함이 느껴진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dignity + destiny의 느낌이다.

 명절이라 이런 생각이 들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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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감세 -> 예산부족 -> 전면 무상급식 불가

부잣집 아이들 - 우리집에서 낸 세금으로 가난한집 애들 점심 먹여주고 우리는 우리돈 내고 점심 먹는다.

부자증세 -> 예산있음 -> 전면 무상급식 가능

부잣집 아이들 - ?


이번 무상급식 투표사건을 아주 단순무식하게 풀어보면 이렇다.

복지는 우월감을 갖고 베푸는 기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노숙자들한테 혀를 차면서 동전을 던져주는 것이 복지가 아니란 얘기다.

짤방은 목요일에 양구에서 찍은 두 장. 완전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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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에는 매미가 울고 밤에는 귀뚜라미가 우는 계절이다. 고로 여름은 거의 끝났다. 비만 오다 끝났다. 전국적으로 올 벼농사는 작년만 못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우리논도 이삭이 늦게 팼다. 내가 짓는 농사가 아닌데도 이렇게 어려운데, 내가 지으면 얼마나 더 어려울까? 하지만 걱정보다는 기대가 크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클 수도 있지만 걱정이 크면 시작도 못한다.

 당신 부모님을 만났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웃는 얼굴로 끝까지 앉아 있으려고 했는데, 아버님이 했던 얘기를 자꾸 반복하시는 바람에 막판에 눈이 조금 풀리면서 흐트러졌다. 긴장해서 전날 많이 못잔 것도 내 흐트러짐에 일조했다. 아버님도 전날 푹 못 주무셨다고 하셨다. 뭐랄까, 통하는 게 있다고 본다. 걱정이 많으실텐데 시작을 허락해 주셔서 무척이나 기뻤다.

 걱정을 떨쳐내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농사를 잘 짓는 수 밖에 없다.

 지후가 처음으로 내 친구들을 만나러 와줬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빈속에 보쌈김치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는 바람에 일찍 취했다. 전날 많이 못잔 것도 내가 일찍 취하는데 일조했다. 앉아 있을때는 몰랐다가 일어나니까 확 취하는 느낌이 오랜만이었는데, 당신이 나를 지켜줘서 정말 많이 고마웠다. 이성준이나 고구미가 술에 취한 나를 지켜주는 것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정말로 지켜준달까? 나도 지켜줄께요. 앞으로 쭉~~

 어제도 많이 못잤다. 멍한 상태에서 일하고 담배 피우고 밥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여름이 끝났으니 좀 더 차분해지자.

 멍해도 짤방은 올린다.

백일홍 - 아이폰 특유의 반짝반짝

벌개미취 - 예쁘고, 먹을 수도 있고 천연 제초제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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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터미널에서 오산으로 가는 차표를 샀다. 매표원에게 "오산 한 장이요. 몇시에요?"라고 말했다. 이건 나름의 의미가 있는 문장 배치다. '오산 가는 거 몇 시에 있어요?'라고 먼저 묻고 버스의 출발 시간이 내 마음에 거북하지 않게 느껴졌을 때 '한 장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말의 순서일텐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고 몇 시간을 기다리더라도 오산에 가는 버스라면 무조건 표를 구입할 마음으로 그런 문장배치를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매표원은 우선 가장 빨리 출발하는 차 시간을 내게 알려주고 내가 고개를 끄덕여 좋다는 신호를 보내고서야 발매버튼을 눌렀다. 어쨌거나 그녀는 나같은 아마추어 승객의 문장 순서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프로인 것이다.

 <카드를 만들어라 보험에 들어라 적금에 가입해라 네 전화번호와 생년월일 정도라면 언제든지 알 수 있으니 그 경로는 알 필요없다>는 전화를 자주 받는다. 내 대처는 크게 두 가지인데, 먼저 내가 어느 싸이트에서 동의를 했다고 알리는 경우에는 해킹을 당한 것 같다고, 그 싸이트 주소가 뭐였냐고 확인하 듯 묻고는 상대가 답을 하면 알았다고 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 버린다. 다음으로는 무작정 상품소개를 시작하려고 하는 경우인데, 이 때에는 '저는 금융과 관련된 모든 것을 신뢰하지 않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말한다. -매우 사실이기 때문에 정중한 내 말투에 조금의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저는 불안한 미래를 돈을 모으는 것으로 메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라고 하는 것도 좋겠지만 표현이 길어지면 허점이 생기는 법이다. 상대가 '고객님, 과연 미래가 메우는 것일까요?' 라고 물어온다면 난처해 지는것은 오히려 내 쪽이 되고 만다.

 오산행 버스에 올라타고 얼마 안 있어서 정중하게 대답하는 상황이 생겼었다.

 하루키의 1Q84를 읽고 있는데, 하루키의 수필들이(번역이) 이런톤이었던 것 같아서 흉내 근처도 못 갈 흉내를 내봤다.

 오산에는 두 시간만에 도착했다. 엄마가 만든 닭볶음탕을 먹었다. 엄마의 요리를 먹은게 참 오랜만이다. 확실히 엄마라는 건 어려서부터 길들여진 입맛(음식)과 관계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아버지보다 더 애틋한 듯하다. 그리고 이런 애틋한 경향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강해지는 것 같다.

 각설하고 이번주에 가장 울컥했던 사건은 심수창이 18연패를 끊고 했던 인터뷰였다. 인터뷰 동영상을 보다가 아침부터 눈가가 축축했다. 특히 팀을 옮기고 박병호랑 한 방을 쓰게 됐는데 밖에 나가지 않고 방 안에서 둘이 '잘하자'는 얘기를 나눴다고 할 때는........ 음......... 역시 야구란........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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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후가 다녀갔다. 같이 옥수수를 심었다. 꼬마차를 타고 서울 사람들이 많이 온다는 유명 커피집에도 다녀왔다. 감자 경단, 감자 옹심이, 감자 부침개, 찐감자 구이를 먹었다. 지후가 내가 눈여겨 봐둔 어흘리 도로끝 마을을 좋아했다. 당신이 다녀갔고 좋아하는 감자를 실컷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일도 실컷했다. 물론 피곤하다. 그렇지만 즐겁다.

 작은어머니가 출타하셔서 작은아버지랑 둘이서만 점심을 먹었다. 하우스 짓고 오이 농사 지어서 돈 버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꾸러미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다. 그래서 둘이 먹고 살겠냐고 하셔서, 얼마나 벌어야 먹고 사느냐는 기준점이 사람마다 다른 것이 아니겠느냐는 대답을 하던 중에 작은어머니가 돌아오셔서 대화가 중단됐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집에 오니 작은어머니가 감자 껍질을 벗기고 계셨다. 옆에 앉아서 잠깐 얘기를 했다. 내년에 후계자 신청할거냐고 해서 빚을 지는 것이기 때문에 싫다고 했더니 잘 생각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본인의 희망을 말씀하셨다. 지금처럼 농사를 지어서는 안되고 농사를 조금 줄이고 유기농으로 밭작물을 잘 지어서 장에 나가서 팔고 싶다고 하셨다. 얘기의 핵심은 농사 잘 짓는 다른집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집이 농사를 잘 못 짓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년에 같이 기술센터에서 하는 유기농 교육을 받자고 하셨다. 그러겠다고 했다.

 내년에 진짜 잘해야된다. 함께 헤쳐나갈 삶이지만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막중하긴 한데, 기분이 좋다.

 어제 혼자 옥수수 심고 옥수수짚 나르면서 생각한건데, 당신이 내가 힘을 내서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당신을 생각하면 뭐든 열심히 하게 된다. 그게 당신에게 부담일까? 내 이기심일까? 이것이 사랑일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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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일요일, 굴삭기랑 지게차 운전기능사 필기시험을 봤다. 발표는 아직이지만 합격했다. 시험 준비 때문에 모처럼 이것저것 머릿속에 때려 박아 넣고 외우는 일들을 했는데, 기분이 괜춘했다. 궁할 때, 용돈이라도 벌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 실기도 둘 다 합격해야겠다.

 10월 중순에 교육이 끝난다. 6개월 짜리 교육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지난달 강릉 날씨를 확인해 보니 최고기온이 25도 이상이었던 날은 열흘도 안되고, 비가 내리지 않은 날은 일주일 정도였다. 이런 때에 집에서 일을 못하고 교육을 받고 있으니 더 지친다. 작년에도 날씨가 올해랑 비슷했기 때문에 내년 날씨도 올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년에는 작물 심는 시기를 조정해야만 한다. 모내기는 올해 저온에 잘 견딘 애들을 종자로 해서 올해보다 약간 이르게 해야할 것 같다.

 애초에 교육 받으러 온 것이 농사일이 초짜니까 이론적인 토대도 쌓고 농기계도 이것저것 몰아보고, 무엇보다도 강릉에선 연애가 어려우니까 연애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는데, 무엇보다도를 이루었고 이론적인 토대도 그럭저럭 쌓았으니 다음달에 콤바인 조작만 확실하게 익히면 계획달성이다.

 목표달성이라고 썼다가 뭔가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계획 달성으로 바꿨다.

 헬렌&스콧 니어링의 책을 두 권 읽었다.

 <당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나는 당신과 같이 있으며,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주되 내가 필요하지 않으면 기꺼이 비켜 서있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내 가장 큰 관심사는 당신이 언젠가 가장 훌륭한 당신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까? 

 바지런하고 즐겁게 살자. 가장 중요한 건 사람같이 사는거다. 어제 '신과함께'를 보다가 울컥했다.


 조군은 이 그림만 봐도 어떤 맥락인지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사람같이 사는 일은 정말 어려운데,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런 것을 근자감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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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내미를 돌무덤으로 보내는 도라지 꽃

지난주에 이어서 또 서울에 왔다. 신월동 본가에 짐을 풀었다. 시장통을 걷다가 고로케를 두 개 사 먹었다. 크기도 내가 만날 사 먹던 때 그대로고 가격도 그대로 한개에 오백원이지만 속은 텅 비었다. 조금 실망했지만 여전히 빠리 바게뜨 고로께 보다는 맛있다.

집은 여전했다. 냉장고는 텅 비었고 아버지는 동생 와이셔츠를 다리고 있었다. 동생은 회사 땡땡이 치고 자고 있었고 양천방송에서는 내 휴대폰으로 통장에 잔고가 없다는 문자를 보냈다. - 요금은 동생 통장에서 빠져 나간다. ^^ - 잠들었다 저녁에 깼는데 동생은 마시러 나갔고 아버지는 막걸리 한 병과 저녁 식사 중이었다.

그러니까 다들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요즘 보는 일드 제목이 '그래도 살어간다'인데, 뭔가 맞아 떨어진다.

군대에서,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청년들이 죽어나간다. 시립대 다녔던 학생 사건 때 마음에 많이 안 좋았는데, 오늘 비슷한 소식을 또 들었다. 첫 번째는 슬프고 안타깝다가 말지만 같은 것이 반복되면 화가난다. 명박씨가 말한대로 패기있게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고 남들 안 하는 일을 선택해서 열심히 현실에 맞서던 젊은이 둘이 불과 며칠 사이에 사고를 당했다.

나는 경제적으로는 아주 안 좋은 조건이지만 강릉에 작은아버지가 계시고 농사가 정답이라는 교육과 체험, 당신을 통해 시골로 내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스펙에 시달리고, 농사일의 즐거움을 모르는, 남들이 생각하는 경제적 기준이 꼭 보편 타당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쓰러져 가는 젊은 청년들에게 '다 때려치고 시골에서 살아라' 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ds는 반값 등록금 투쟁 대학생들에게 학교를 안 다니면 될 것을 괜히 징징 댄다고 했더랬는데, 맞는 말이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가운데, 스스로 대학을 포기 하는 것과 ds처럼 돈이 없어서 대학을 못 다닌 것은 분명 다르다.

공교육은 최소한 젊은이들 스스로가 !빚은 지지 말고 살아야지! 라고 깨달을 수 있게는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같이 교육 받는 사람들 중에는 교육을 마치고 저리로 돈을 땡겨서 큰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교육 중에도 그렇게 하라고 허는 게 많다. ㅡ.ㅡ) 내 생각엔 그러면 안된다. 빚은 가난보다 더한 스트레스기 때문이다.

걱정과 푸념과 불만을 품 속에 지닌채, 둥둥 떠 다니는 '국가'라는 시스템 위를 걷고 있다. 느리고 조심스럽게.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이다.

별로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연대'(함께하기)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밤이다.

그래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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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중에 독보적으로 제일 좋다. 내가 찍은 건 아니다. 동백꽃은 노래 가사처럼 눈물처럼 진다.

결혼과 육아에 대해서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신에게 직접 들었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우리 어머니를 나이브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싫은데, 나도 아버지를 닮아서 삶이라는 큰 덩어리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는데까지 생각이 미치니까 살짝 부회(부아)가 났다.

사실 나는 근자감을 바탕으로 인생을 무척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단순 담백하고 심플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먹고 사는일에는 돈이 필요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가족 내에서 세심하게 신경 써야할 부분들-각종 경조사 및 인사치레 등-이 많아지는 것도 돈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방법을 남들 기준에 적극적으로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혼이라는 보편적인 일을 한 가지 했으니 그 다음부터는 내식대로 당신식대로 우리식대로 헤쳐 나가면 된다.

그리고 나는 내 삶에 대해서는 나이브하게 생각하지만 당신에 대해서는 나이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런 채, 또는 그런 채로 살아도 좋다. 는 삶을 추구하려고 한다. 물론 우리 마음에 들게~

'비워야 산다'를 읽었다. 좋은 책이고 이남곡 선생님이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기분 좋았다.

144p. 저희 집사람은 '선물의 사회'를 원했습니다. 서로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받으려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선물을 갚아야 한다는 의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아내가 살았더라면 이 선물에 대한 마인드를 더 널리 정착시켰을 것입니다.


가끔 서혜란 선생님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가슴이 물컹하다.

에 그리고 사실 나도 나의 나이브함이 약간은 걱정된다. 하지만 당신이 있으니 나는 잘 할 수 밖에 없다. te qui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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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주에는 정말 열심히 논을 맸다. 논일은 즐겁지만 허리는 아프다. 참 시간에 같이 실습온 동료들과 막걸리를 마신일이 즐거웠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여럿이 함께 논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찾아올란가 모르겠다.

 어제는 일을 마치고 피로를 씻기 위해서 숙소 바로 앞에 있는 홍천강에 들어가 놀았다. 물은 차가웠고, 수영하다 안경을 잃어버렸다. 

 맨발에 맨손으로 피살이를 했더니 씻어도 씻어도 손은 검고 손 여기저기 풀에 베인 상처자국이 가득하고, 피로로 입술 위쪽이 터졌고, 오른쪽 엄지발가락은 곪았다. 나는 원래 작은 상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편인데, 곪은 발가락이 많이 아파서 절뚝거리며 걷는 지경에 이르다보니 농사를 짓더라도 깔끔하게 몸을 관리하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남들이 보기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순달이 사망과 소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교육, 한우농가에서의 3주간 실습, 권정생 선생님의 '태기네 암소눈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나는 소 못 키울 것 같다.  

 듣자하니 봉정암 주지 스님이 소고기를 그렇게 잘 먹는다는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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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2 - 흠

그때그때 2011. 7. 2. 22:15


20110701 강릉항

어제는 일하기 싫어서 바다에서 혼자 놀았다.

오늘은 새벽부터 일하고 싶었는데, 논일의 여파로 몸이 말을 듣질 않아서 아침 먹고 일 시작했다.
오전에는 고추밭에서 고추 유도(유인) - 고추 끈 작업 - 를 했고 점심 먹고는 콩 심었다. 땡볕에 콩 심다가 탈진할 것 같아서 잠깐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타이밍에 집에서 쉬었다 하라는 연락이 왔다. 얼음 수박을 먹었다. 완전 맛있었다. 올해는 많은 농민들이 수박밭에 배추를 심는 바람에 수박이 비싸다.

수박 먹고 잠깐 자빠져서 자다가 계속 콩을 심었다. 땅은 질어서 장화는 푹푹 빠지고 날은 여전히 더운데 벌레들이 내 귓가에 계속 윙윙거려서 짜증이 좀 났지만 열심히 심었다.

저녁을 먹는데, 작은아버지가 작물별로 얼만큼 농사 지으면 얼마나 벌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신다. '네!' 하고 대답하고는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앞으론 혼자가 아니니까 계산기를 두드려 볼 필요는 있겠다 싶었다. 담배 사 피우고 콜라 사 먹자면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낮에 수박 먹고 나서 '삶이 이거면 됐다.'는 생각을 했는데, 꼭 먹고 싶은 게 있는데, 돈이 없어서 못 사먹으면 불만도 쌓이고 불쌍하니까 '이거면 된' 삶을 위해서도 세부적인 돈벌이 계획은 필요하다. 계획은 천천히 하나씩 세우기로 하고,

내일은 새벽부터 일해야지. ㅋㅋ

p.s 작은어머니가 치킨집 배달 알바를 시작하셨다. 밥벌이란 게 이런건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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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실습 2주차다. 애초에는 춘천에 있는 한우 농가로 갔었는데, 게으름 피웠다고 쫒겨났다. 그래서 홍천에 있는 한우 농가로 왔다. 나는 순달이가 사망한 이후로 소 키울 생각이 사라졌지만 작은아버지가 소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생각이다. 확실히, 소 키워서 돈 많이 버는 집은 관리부터 다르다. 내가 농사를 열심히 지어야 작은아버지가 안심하고 소에 집중할 수 있다. 열심히 해야지.

이번주에 장마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소 밥 주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논에서 피살이를 했다. 농장 주인아저씨는 유기농으로 벼농사를 지으신다. 유기농 논에 들어가서 일하니까 기분이 좋았다. 오전에는 비를 맞으며 일했고 오후에는 비 안 맞으면서 일했다. 역시나 논일은 즐겁다.

갑작스럽게 내년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하는 상황이 왔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있는데, 우선은 집부터 구해야한다. 각자의 영역과 삶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함께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후랑 함께'라는 문구를 슬라이드 하면 아이폰의 봉인이 해제된다. 나는 당신앞에서 해제된다. 뭔가 기분이 좋다.

여름이라 살짝 들떴는데, 칠월은 조금 차분하게 흘려보내야겠다.

짤방 설명 - 숙소 앞으로는 물안개가 자욱한 홍천강이 흐르고 숙소 뒤로는 멋진 하늘이 보인다.

스마트폰의 현위치 서비스가 제법 쓸만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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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교육을 받는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고

 이래저래 재미있다.


 because of you!

 다음주부터 3주간 실습을 간다. 마시고 자빠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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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는 아니지만 원래보다 더 좋은 원래로 돌아온 기분이다.

당신 때문에 뭐든 다 괜찮다.

둘 다 성장했고 이제 두려움은 없다.

이것은 <믿음>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기 때문에 잘 해나갈 것이다. 아주 천천히, 드러나지 않는 움직임으로 온전한 우리가 될 것이다.

역시 태어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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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6주차

그때그때 2011. 6. 10. 13:10
어지럽고 휘청거렸다.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그 바람에 엉망이 됐다.
맘에 안 든다. 많이.

많이 마셨고 많이 울었고 많이 못 잤고 많이 맘에 안 든다.

스스로가 맘에 안 드는 게 참 오랜만이라서 적응이 안된다.

다 거쳐가야할 것들이다. 지나간 것들은 지나간대로 다가올 것들은 다가오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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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할머니는 치매에 걸렸다. 10년 정도 됐다. 우리 할머니는 요양원에 계신다. 5년 정도 됐다.
 우리 할머니는 귀가 잘 안들린다. 10년 정도 됐다. 우리 할머니는 눈이 멀었다. 올해부터 그렇다.

 작은 고모 말마따나 우리 할머니는 슬프게 됐다.

 지난 주말은 할머니 생신이라고 친척들이 강릉집에 다녀갔다.

 할머니는 뇌경색의 합병으로 눈이 멀었기 때문에 지금은 거동조차 불편하다. 친척들이 오면 작은 어머니는 요양원에 가서 할머니를 모셔온다. 누군가 할머니를 업거나 들어야하기 때문에 작은아버지나 내가 함께 요양원에 가야한다.  

 눈이 보이던 시절의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지는 못해도 내 손을 잡고 "누구요? 손이 참 곱소~."같은 말들을 들려주곤 했는데, 이제 그것도 추억이 되버렸다.

 점심 때 닭백숙을 먹었다. 할머니를 달랑 들어서 차에 태우고 조금 긴 시간을 이동했다. 작은어머니가 할머니에게 밥을 떠 먹여줬다. 안 드시겠다고 해도 한 숟가락만 더 드시라고 하면서 계속 먹여준다. 내 생각에 할머니는 뭔가를 많이 드실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시동생들이 보는데서 할머니에게 밥을 줘야하는 작은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실 수 없다. 막내 삼촌네 식구들은 점심값을 계산하고는 다른 모임이 있다고 가버렸다.

 이럴거면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요양원에서 모셔올 필요가 없다. 그냥 가서 얼굴 잠깐 보는 것과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저녁에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드리려고 다시 번쩍 안고 차에 태웠다. 할머니가 힘들어했다. 나는 미안했다. 할머니 미안해요.라고 했다. 작은 삼촌이 뭐가 미안하냐고 물었다. 나는 막내 삼촌도 작은 삼촌도 야속했다.

 작은아버지랑 작은어머니는 친척들이 온다고 하면 당연히 할머니를 모셔와야 한다고 생각하시지만(특히 작은어머니는 더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다. 

 할머니는 슬프게 됐고, 삼촌들은 야속하고, 나는 할머니한테 미안하다.

 할머니 치매가 초기였을 때, 강릉에 머물면서 할머니랑 술래잡기 하던 시절이 그립다. 

-> 어지러운 6월 둘째 주, 기분 환기용 포스팅, 기분 환기용으로 이런글을 쓰고 있다. 역시나 나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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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에 왔다. 엄마는 여전했다. 일단 내가 장가를 가야 시골에 내려오겠다고 한다. 아마 남들처럼 돈이 많이 드는 결혼식을 생각하고 그 뒷바라지를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얘기인듯 싶다. 그리고 살아보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빼먹지 않았다. 어마마마, 네에 알겠습니다. ㅎ

엄마 자전거로 오산천변을 돌았다. 강가를 달리니 기분이 좋았다. 계획적으로 심어 놓은 꽃밭도 나쁘진 않았다.

저녁으로는 순댓국을 먹었다. 엄마랑 함께 먹는 순댓국은 언제나 특별하다.

열한시 넘어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살짝 취한 목소리로 잠깐 가게에 들르라고 했다. 엄마는 이 손님 저 손님에게 우리 큰 아들이라며 나를 소개했다. 오산에서 잘 때마다 있는 일이라 이런 상황에 이미 익숙하다. 손님들이랑 같이 마시고 매상 좀 올려줄까.생각했다가 술 안 먹는 주간이라는 결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관뒀다. 잘 한 것 같다.

엄마를 기다리다가 쓰기 시작했는데 방금 엄마가 도착했다. 제법 취했다. 지난 십년동안 오늘보다 많이 취했던 날들도 무수했을 것이다. 이래서야 몸이 성할수가 없다.

엄마가 내 말 좀 들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식구들 다 버리고 혼자 살길 찾으라는 내 제안을 고맙게만 생각하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 엄마

짤방은 천변에서 찍은 관상용 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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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4 - 20110603

그때그때 2011. 6. 4. 11:14
 영씨를 만났다. 결혼하려고 한다고 했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외로움이 자기계발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맞다고 생각했다. 그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잠깐 노래 부르고 놀았다. 이런 시간들이 나를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부천역에 도착해서 영씨를 기다리는 동안 남부 시장에 놀러갔다. 시장 하나가 강릉에 있는 시장들 다 합쳐 놓은 것 보다 컸다. 사람들이 많이 살기 때문이다. 부천역과 이어진 이마트 때문에 시장 상권이 많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마트에서는 천 오백원짜리 잔치국수를 먹을 수 없지만 남부시장에서는 먹을 수 있다. 그것도 최근에 오백원을 올린 가격이 그렇다. 이마트에서는 짙붉게 양념된 돼지 껍데기랑 닭발을 먹을 수 없지만 남부시장에서는 가능하다. 

 시장에서 '사상 최고의 금값, 지금이 파실 때 입니다.'라고 써 붙여 놓고 장사하시는 분을 봤다. 그 분은 왜 금이 가장 비쌀 때 사고 싶어하는 걸까?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장사는 재미있다. 그 분을 욕하자는 게 아니라 그저 시장의 풍경 중에 그런 게 있었다는 얘기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여섯시였다. 남부광장 앞이 일당일을 마치신 아저씨들로 흥성거렸다. "한 잔 하고 가야지!" "내가 한 잔 살께!" 와 같은 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일당 노동자들의 삶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러했을 것이다.

 밤에는 조군이랑 놀았다. 조군은 여전히 스트레스가 심하다. 걱정이 된다. 내가 걱정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래도 걱정이 된다. 조군이 매주 구입한다는 복권이 언젠가 꼭 당첨되면 좋겠다. 나는 그가 정말로 다 털어버리는지, 아니면 복권 당첨 후에도 계속 스트레스 속에서 사는지를 지켜보고 싶다. 후자쪽이라면 어떻게든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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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모내기를 했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라고 못밥이 정말 맛있었다. 강릉에서는 전통적으로 못밥으로 팥밥에 미역국을 먹는다고 한다. 강릉은 상가집에 고깃국이 아니라 미역국이 나오는 곳이니 그럴법하다. 그런데 왜 팥밥일까? 여튼 나는 팥밥을 정말 좋아한다. 몸도 힘들겠다 아침부터 팥밥을 끝없이 먹었다. 다섯시에 일을 시작해서 집에 들어오니 여덟시 반이었다. 허기가 몰려들어서 팥밥을 꾸역꾸역 입 안에 때려 넣었다. - 아침에 설사했다. - 내년부터는 기계를 빌려서 잘 못 심더라도 내가 심어야겠다.

집에 와서 들은 첫 소식이 순달이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피똥을 쌌고 주사약을 이틀간 맞았지만 결국 죽었다고 한다. 그렇게 순달이는 번호표만 남겨놓고 가버렸다. 우리 우사는 엉망이다. 농번기라 관리가 잘 안되는 측면이 있겠지만 이럴거면 소를 키우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순달이는 죽었는데 나는 못밥으로 소고기 미역국을 먹었다. 앞으로 고기 섭취를 더 줄여야겠다.

사람들은 기계가 모를 심으니 모내기가 크게 힘들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강철같은 작은아버지가 저녁식사를 마치시자마자 씻지도 않고 바로 주무셨다. 나는 말랑말랑한 인간이라 느즈막히 잠들었다. 나도 현재 무척 피곤하고, 피로가 폭풍처럼 밀려들어 오는 중이다. 그렇지만 일년내내 이렇게 일하는 것이 아니니 가끔은 몸이 버티기 힘들 정도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서 빨리 내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집에서 일꾼마냥 일하는 게 아니라 모든것이 내 영향력 아래 있는 상황을 꿈꾼다. 그게 농사다.

우리논이든 남의 논이든 모가 심어진 논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감정들이 얽히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논일은 늘 재미있다.

좋아한다고 평소 먹던 양의 배로 먹으면 탈이난다. 오늘 아침에도 팥밥 먹었다. 약간 쉰내가 났지만 맛있었다. 탈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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