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면 시월이다. 9월 한 달 동안 열심히 상합을 잡았다. 그동안 수입이 없었기에 더 이상 돈을 까 먹지 않기 위해서기도 하고 한 달간 조개 캐서 팔면 얼마나 벌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번달에 최저임금보다 더 벌었다. 동네분들이 많이 도와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항상 감사한데, 그뿐인 것이 전부라 몇몇 분들께는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다.
갯벌에서 그레를 끄는 일은 힘들다. 한 번 나갔다가 돌아오면 몸에 힘이 쭉 빠진다. 이렇게 힘든 육체노동의 댓가를 헐값에 넘기는 것이 동네분들과 나의 현실이다. 물론 몸이 고된만큼 마음은 편하다. 돈을 번다는 일차적인 목적 외에 몸을 쓰는 일들이 주는 쾌감도 사람들을 갯벌로 끌어들이는 게 아닐까? 농업을 6차 산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농수산업이 6차 산업이 되면 몸도 힘들고, 마음도 많이 써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면 괴롭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쪽이 마음은 더 불편하려나.
고구미가 생일 축하 메세지를 보냈다. 지금 바라나시에 있다고 한다. 내 동경의 대상인 갠지스 강에서 흰빨래 하는 노인들을 생각했다.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듯한 노인들의 표정을 떠올렸다. 내가 그들과 함께 지내며 같은 일은 한다면 나도 그 표정을 가지게 될까? 내가 그네들을 동경한 순간부터 그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다. 무언가를 동경한다는 것은 그런것이다. 닿아도 닿지 않는 것을 붙잡아보려는 것이다.
그 노인들도 자녀들의 교육을 내일로다가온 월세를 노모의 병원비를 걱정할까? 현대사회는 물건도 생각도 너무 많은것이 문제다. 언덕위로 돌을 굴리는 형벌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면 흰빨래를 하거나 몸의 떨림을 느끼며 조개를 캐는 것과 같다.
나는 운명론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엄친아가 되기 위한 여러가지 조건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집안(의 재력)이다.
생활 자체가 <나>인 삶을 원한다. 아무런 동경도 없는 상태를 원한다. 생활로서의 농업을 원한다.
나는 운명론자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