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추석맞이 동네 풀베기를 했다. 하루 빡세게 일하고 나흘 설렁설렁 일한셈 친다. - 옘병, 어디에다 감사할 진 몰라도 감사합니다. - 일 마치고 술을 마셨다. 오후 한 시에 새벽 한 시 만큼 취했다. 그리고 동네엔 빗방울이 떨어진다. 말라 비틀어진 논에 도움이 될거다. 모든 것이 완벽한 이 순간에 나는 불안하다.
두 명의 친구랑 통화를 했다. 한 놈은 춘천에 한 놈은 강릉에 산다.
무릇, 사람이란 자기 마음이 편한 곳에 사는 게 제일이다. 두 친구 모두 그렇질 않다. 또 사람이란 자기 편한대로 사는 게 제일이다. 두 녀석 모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그러자고 강릉으로 이사 가려는데, 그렇지 않은 친구들을 보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죽을때까지 계속된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도 변하지 않는 명제다. 이 두 가지가 상호작용하며 개인의 삶을 정한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는가?
엘시노어여, 나는 어디에 있는가?
질문은 끝나지 않고 대답은 반복된다. 이 반복을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세계의 질서는 깨지고, 나도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기 위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는) 사라진다. 사라진다
- 한 가지 아쉬운 건 이에 대응하는과정에서 사람들이 파편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각자 개별적인 존재로서만 이걸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하나 생각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 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하나의 집단으로서 자기가 소속된 정당이면 정당, 노조면 노조, 시민사회단체 등을 통해서 집단적으로 사안에 대처했지요. 그런데 이번엔 왜 파편적으로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개별적인 움직임들을 모아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확산시켜야 할 것입니다.
- 역사적으로 보면 죽음과 애도는 정치적인 행위입니다. 유명한 정치인들의 연설도 대부분 전쟁터에서 죽은 젊은이들을 애도하고, 그걸 통해서 집단적인 정체성을 만들었죠. 그리고 공동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논의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애도가 정치로 연결되지 못하고 개별화된 슬픔으로만 가두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반복되는데도 이런 사건들을 정치로 연결하는 게 마치 금기처럼 여겨져서 많이 답답합니다.
- 지하철도 지금 승무원 한 사람이기 때문에 여간 불안하지 않아요. 사실 기계도 낡았지만 기본적으로 1인승무제라는 게 말이 안되잖아요. 서울에서 부산, 목포까지 가는 KTX에도 기관사가 한 사람뿐입니다. 그 사람이 졸지에 변을 당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돈 아끼자고 이렇게 위험천만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민영화니 규제완화니 하면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기업들 배불리는 데 골몰하는 정부정책이 근본 문제인데도, 조중동 등 어용언론들은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건 간단히 말하면 정부 책임을 묻지 말하는 거잖아요.
-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 운동도 정치적인 문제보다 살림살이가 붕괴되면서 등장했어요. 저는 공무원을 포함해서 한국사회가 이렇게 된 이면에는 살림살이의 붕괴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판단하거나 움직이면 내 자리가 날아갈 거라고 생각하니까 움직이기 싫은거죠. 동료의 삶이 파괴되고 타자가 죽어가는 걸 보면서도 어쨋든 나는 살아남고 싶다는 계산을 하는 건데, 지금 사회의 변화 속도를 볼 때 그게 가능한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고 봅니다. 아마 어느 순간 갑자기 붕괴할 것 같습니다. 스페인의 혁신 도시공동체 '마리날레다'가 주목을 받는 이유도 그게 아닐까요? 기존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니까 다른 방식을 찾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변혁을 하지 않으면 조만간 사회는 붕괴하고 말겠죠.
- 한 학생이 부모님께 <한겨례21>을 정기구독을 해드렸는데 보지 않은 채 쌓여만 있더라는 거예요. 왜 안 보시냐 했더니 활자가 너무 작아서 보기 힘들다고 하셨다는 거예요. 사소한 듯 보이는 것을 잘 살피고 그걸 토대로 구체적/물질적 상태를 바꾸는 이런 일이 필요합니다.
- 그동안 우리는 모두가 나만 아니면 된다. 나머지는 죽든 살든 상관없다. 이렇게 방관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는 남의 새끼되 내 새끼라는 논리가 작동했잖아요. 남의 새끼도 내 새끼라는 이 말은 저는 단순히 수사학이 아니라 중요한 시민적 윤리학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내 새끼 남의 새끼를 구분하는 게 아니라 생명은 다 중요하다는 느낌. 이 정동적 느낌을 확장시켜서 탄탄한 시민의식으로 안착시키는 운동을 해야죠.
무도의 유행어 '나만 아니면 돼!'가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농사도 잘 안되고 일들도 잘 안 풀려서 각자도생이니 자력갱생이니 - 둘 다 살긴 산다는 뜻이다. - 아내한테 떠들어댔는데, 많이 반성한다.
녹색당에 가입해야겠다.
농부라는 직업 덕분에 밥그릇 잃을 걱정이 없으니 각종 사회문제에 좀 더 과격하게 접근해야겠다. - 집회에서 약간 과격해질 필요가 있다. - 그러기 위해서 어디에 살더라도 지금처럼 가난하게 산다는 기조는 유지하기로 한다. 살림을 더 줄이고 전기도 물도 더 아껴써야겠다. 소비 행위를 최대한 하지 않는 것이 시스템에 저항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나만 아니면 돼.'는 이웃들에게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 아니냐고, 자꾸자꾸 말해야겠다.
녹평 빌리러 갔는데, JS형이 영농 대출 받으면 안된다고 했다. - 형, 진심어린 조언 감사합니다. 대출 안 받을게요. 제가 잠깐 미쳤었나봐요. -
노인들을 위한 활자 크기가 큰 라이프 매거진 사업은 여전히 블루오션이다. - 그래도 내가 하지는 않을거다. -
커피 사탕을 입에 물었다. 관우가 술 식기 전에 적장을 벴듯이, 단맛이 입에서 사라지기 전에 다 써야지.
아침에 치과에 나가는 아내를 선창까지 바래다줬다. 알 수 없는 무력감과 피로가 몰려와서 한 시까지 잤다. 뒤죽박죽인 악몽을 꿨다. 꿈의 마지막에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말만 기억에 남는다. "더 강하게 부연하고 있다." 정체를 예측하기 어려운 꿈이다.
담배를 물고 화장실에 앉아서 생각했다. 똥은 몸에서 나오지만 연기는 몸 안으로 들이 마신다. - 비흡연자들은 흡연자가 내뱉는 연기가 싫은 것이겠지만 흡연자 입장에서 담배는 내뱉는 보다는 들이마시는 쾌감이 강하다. - 그래서 다들 똥을 싸면서 담배를 피우는 거겠지. 그래도 터미널 화장실 같은데서는 그러지 말아줬으면 한다.
페이스 북에서 '쪽팔리지 않게 살자.'는 글을 읽었다. 물론 내 삶은 쪽팔리진 않는다. 본인에게 쪽팔린 삶이란 거의 없는 법이다. 물론 내 삶은 남에게도 쪽팔리진 않는다. 어쨋든 쪽팔리지 않게 살아야겠다.
한적골에 갔더니 아랫논은 거진 이삭이 다 팼다. 헌데 윗논은 이삭 팬 비율이 5퍼센트 정도다. 물이 문제다. 내일은 무조건 동네 형에게 부탁을 해서 그 형네 지하수를 써서 물을 대야한다. 아직까지 문제 없었던 한 해 농사를 막판에 망칠 순 없지. 결국 나란 인간은 막바지에 몰려서야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스타일이다. 물 대고 나서는 2학기 수업준비도 하고, 녹평도 읽어야 한다. 정신 바짝 차리자.
철저하게 자본주의 스타일로 돈을 버는 농업을 해볼까.와 지금처럼 소소하게 벌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까.를 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바뀐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될까? 물론 중간도 있다. 어정쩡한 건 싫은데.
아내에게 우리가 이 좆같은 세상에 밀알이 되자.고 했다가 지랄 똥 싸네.란 대답을 들았다. 밀알은 종교색이 느껴져서 싫고 자기는 밀알이 아니라 콩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에 나온다. 밀알이나 콩알이나 마찬가지다. 땅에 떨어져 썩어야(낮게 살아야) 열매를 맺는다. 권정생 선생님을 생각해본다. 일단 물건을 줄이고 가난하게 살아야 밀알이든 콩일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굶어 죽진 말아야겠지. (요즘도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애초에 내가 이 말을 꺼냈던 것은 농사를 짓고 이번 생을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에 최소한의 밀알이라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지후야. 우리가 이 거지같은 세상에 콩알이 되자. 기왕이면 토종 콩알이 되자.
줄리언 반스의 levels of life를 읽고 생각한건데, 20대 때의 나는 사랑에 30대인 지금은 삶의 유한성(죽음)에 천착하고 있다. 더 이상 사랑에 집착하지 않는 이유는 오직 지후 때문이다. 고맙다. 남에게 보이는 내 모습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내를 만나고 나서부터다. 어느날 지후가 사라진다면 우리가 닿아있던 모든 순간들이, - 내가 티셔츠를 뒤집어 까고 등을 갖다대면 지후가 등을 긁어준다. 컴퓨터 앞에 앉은 아내의 좁은 등에 커다란 내 발바닥을 갖다댄다. 화가 나서 마우스를 쾅쾅 내려치는 네 옆에서 나는 어쩔 줄 모른다. 잠든 그녀의 정수리에 손바닥을 갖다대고 나도 잠든다. - 그러니까 나의 모든 삶이 나를 잃은 것 같은 부재감으로 가득차지 않을까? (줄리언 반스는 그의 아내가 자기 심장의 생명이라고 했다.)
내년에 강릉으로 옮길까 한다.
내년에는 논에 들렀다가 오는 길에 잔뜩 주워 먹는 산딸기도, 집 옆의 우물도, 마을 회관에서 매일 점심을 먹는 겨울도, 장구지 아이(새댁)란 호칭도, 길가에 지천인 인동초와 달맞이 꽃도, 한적골 가는 도중에 있는 원시림도 없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어떤 모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콩알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할까? 응? 지후야.
요즘 머릿속에 비 생각이 가득차 있어서 '비'가 '지후'를 밀어내려고 한다. 걱정이다. 그러니 비여 온몸을 열고 춤을 추며 오라. 너라도 내려야 이 쓰레기 같은 세상이 조금은 깨끗해 질 것 같구나.
일본을 경유해서 돌아오게 됐다. 친구들은 모두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만 혼자 일본에 며칠 있었다. 잘 놀았다.(노는 장면은 꿈에 없었다.)
한국에 돌아오려고 공항에 왔는데, 여권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꿈 속에서 생각했다. '수학여행을 올 때부터 여권이 없었는데, 뭔가 이상하군.'
공항에 한국인 상담소 같은 곳이 있어서 여권이 없다고 했다. 그쪽 직원인 복사본이라도 있으면 된다고 했다. '한국에 전화를 해서 여권을 스캔해서 내 메일로 보내라고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잠시 후, 나는 5층 건물중 3층만 pc방이고 나머지는 전부 목욕탕인 건물의 pc방에 와 있었다. 사장 아줌마한테 스캔할 수 있냐고 했더니 안된다고. 모질게 대답했다. 사정을 설명하고 다섯 시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벌써 네 시다. 이국땅에서 사람이 방랑하게 생겼으니 좀 도와달라고 했다. 사장님이 오케이 했다. 그런데, 내가 스캔하겠다고 꺼낸 것은 운전면허증이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은 한국의 pc방이었다. - 얼마전 꿈에 같은 pc방에서 친구들과 밤새 게임을 하며 놀았다. -
어, 이게 아닌데. 생각하다가 꿈에서 나왔다.
꿈해석 - 세월호가 계속 마음속에 있다. 소방대에서 단체로 2박 3일 제주도 여행을 가는데, 나는 가지 않는다. 친구들이 보고 싶다. 목욕이 하고 싶다.
꿈해석 2 - 일본과 네덜란드는 이 땅과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꿈해석 3 - 목욕탕과 pc방이 함께 있는 5층 건물이 두 번째 꿈에 나왔다. 사장님도 같은 사람이다. 1, 2, 4, 5층 목욕탕은 건물안에서 옷을 벗고 왔다갔다 할 수 있도록 연결되어 있고(전체가 다 남탕임) 3층만 pc방이다. 이 건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어 내려고 해도 모르겠다. 꿈에 한 번 더 나오면 그때 생각해 보자.
요즘 산지 양파값이 싸도 너무 싸다는 뉴스를 자주 본다. 뉴스에 나온 어느 농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양파 농가의 실제 소득을 추산해 봤다.
a농부는 6000평짜리 밭에서 양파 농사를 짓는다. 20kg짜리 양파 한 망에 만 원은 받아야 최소 생산비는 건질 수 있다고 한다. 인건비는 한 망에 3천원이다.
양파 한 망에 만원을 받을 때, a농부의 소득 계산 - 양파는 1평에 25~30kg정도 나온다. 농사가 망해서 1평에 20kg만 나왔다고 가정했을 때, 6000(평) X 7000(원) = 4,200만원이다. 여기서 도지(땅 주인이 아니라면), 기곘대(기계가 없거나 기계 할부금이 남아 있다면), 비닐과 비료값을 제하면 아무리 적게 남아도 1,000만원은 남지 않을까?
농촌에서 자녀를 키우지 않는 두 부부가 일 년에 1,000만원을 벌면 약간 빠듯하긴 해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천 만원은 나의 연간 소득 목표와 같은 금액이다.
그런데 a농부는 빚이 1억 5천이라고 했다. 자녀 교육 때문에 빚을 졌을까? 보증을 잘못서서? 양파값이 좋았을 때 남은 돈을 흥청망청 사용해서? 너무 비싼 농기계를 구입해서? 읍내에 아파트를 구입해서? a농부가 빚을 진 이유는 잘 모르지만 농부가 빚을 지고 살아야 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물론 빚을 지는 것은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세상이 자꾸 빚을 지도록 부추긴다.
빚을 내서 산 주식과 아파트가 대박이 났다더라, 빚을 내서 시작한 자영업이 대박이 났다더라, 빚을 못 갚아도 개인 파산을 신청할 수 있다더라, 요즘 세상에 빚 없이 사는 사람이 있느냐, 자동차는 할부로 사는 거다, 대학등록금은 당연히 대출 받고 나중에 취직해서 갚는 것이다, 결혼 할 때는 다 대출 받아서 집 구하는 거다. 나중에 집값 오르고 나서 집 팔아서 돈 갚으면 되지 않느냐? 같이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이 온 사방에 퍼져있다. 이런 생각이 퍼지는 것은 당연하다. 일단 국가 자체가 부채위에서 굴러가고 있다. 국가도 빚을 지고 국민도 빚을 진다. 2014년 2분기에 영업이익 7조원이 났다고 위기네 뭐네 하고 떠드는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들을 제외하고는 - 그 돈을 나라빚 갚는데 좀 써 버시오.- 빚을 지지 않은 주체가 없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물론 대기업도 부채 위에서 굴러간다.)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올린다.(예전에도 한 번 올렸던 거 같은데...)
p17~18
<소년 무재의 부모는 개연적으로, 빚을 집니다.
개연이요?
필연이라고 해도 좋고요.
빚을 지는 것이 어째서 필연이 되나요?
빚을 지지 않고 살 수 있나요.
그런 것 없이 사는 사람도 있잖아요.
글쎄요, 하고 무재 씨가 나무뿌리를 잡고 비탈을 내려가느라 잠시 말을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그런 것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자칭하고 다니는 사람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조금 난폭하게 말하자면, 누구의 배(腹)도 빌리지 않고 어느 날 숲에서 솟아나 공산품이라고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알몸으로 사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자신은 아마ㅜ래도 빚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뻔뻔한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공산품이 나쁜가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요. 공산품이란 각종의 물질과 화학 약품을 사용해서 대략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 여러 가지 사정이 생길 수 있잖아요? 강이 더러워진다든지, 대금이 너무 저렴하게 지불되는 노동력이라든지. 하다못해 양말 한 켤레를 싸게 사도, 그 값싼 물건에 대한 빚이 어딘가에서 발생한다는 이야기예요.
그렇군요.>
무재 씨의 말이 맞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다 누군가에게 빚을 짐으로서 발생한다. 우리가 강정과 밀양에, 고리원전 반대 운동에, 세월호 사건에, 옆 나라에서 발생한 원전사고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오늘 동네 친구 하나가 대출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리고는 오토바이 사고로 다쳤다. 들것에 누운 그 친구는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어머니를 걱정했고, 씨발씨발 하면서 울었다. 나는 그 친구 마음의 응어리를 풀지못한 그 무엇을 알 것 같았다.
밀양에 농활 다녀왔다. 몇 사람이 모여서 밤 기차로 출발, 새벽에 도착해서 일 하고 점심 먹고 돌아왔다.
전국 깻잎의 30%를 생산하는 곳, 면적이 서울보다 넓은데 10만명이 사는 곳,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곳, 한나라 당이고 인구 많이 줄었고 부산이랑 가까워서 사람들 말씨가 부산 말씨인 곳(영화 밀양에서), 고압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곳이 밀양이다.
들깨 심고, 작은 하우스 하나 철거하고 농성장에 물도랑 파는 일을 했다. 일찍 시작한 만큼 일찍 끝났다. - 깨가 잘 자라야할텐데. - 일 도와준 집에서 점심을 얻어 먹고 여럿이 함께 잎들깨를 포장했다. 들깨밭 주인 아주머니에게 항상 밀양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말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농성장에서 할매 두 분을 만났는데, 우리의 방문을 진심으로 고마워하셨다. 일도 별도 안 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할매들이 고마워하니 많이 미안했다. 잘못한 게 없어도 미안할 수 있거나, 우리 모두가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당연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것이 현재 밀양의 상황이다. 울기만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본에게만 필요하고 인간에게는 필요 없는 것,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일들은 다 그만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들깨 안 올라오면 다시 심으러 갈게요.
오늘 아침배가 결항됐다. 오훗배로 들어왔더니 엊그제 심은 콩은 고라니가 다 잘라 먹고 들깨는 많은 숫자가 말라 죽고 - 깨가 죽은 건 내 불찰이다. - 망고가 왼쪽 앞다리를 많이 다쳤다. 망고를 다시 집으로 들였다. - 망고야 집에서 새끼 낳자. - 다친 망고가 세 다리로 절룩거리며 이동하는 걸 보니 울화가 치밀고 속이 상했다.
밀양에 간다고 아침배로 서울 아버지 집에 왔다. 느긋하게 앉아서 동생이 두고간 돈으로 피자를 시켜 먹으면서 류현진 경기를 보고 - 오랜만이야. - 동생 방에서 잤다. 한참을 자고 일어났다. 눈 앞이 새하얗다. 눈을 뜨려고 하는데, 눈이 떠지질 않았다. 몸이 원하는 만큼 잠을 다 못자서 그런가. 생각하고는 더 잤다. 그러고 일어났는데, 여전히 같은 증상이 이어졌다. 슬슬 두려워졌다. 먼저 일어났을 때는 엄마가 집에 없었는데, 이번에는 마루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방을 나와서 냉큼 엄마한테 달려갔다. "엄마, 나 눈이 안 떠지고 눈 앞이 하얗기만 한데, 어떻하지?" 엄마는 괜찮다고 했던 것 같다.
악몽이네.
꿈에서 깼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꿈이었던 꿈을 오랜만에 꿨다.
꿈해석 - 요즘 무척 피곤하고 엄마가 보고 싶다.
꿈해석 2 - 다정한 농부의 미래는 새하얗고 가족이든 뭐든 의지가 되는 사람에게 기대고 싶다.
성대에서 볼음도에 농활을 왔다. 올해가 삼 년째인데, 재작년엔 내가 없었고 작년엔 내가 작업 일정을 관리했다. 작년에 35명이던 농활 인원이 올해는 67명으로 늘었다. 볼음도 총 주민은 230여명이다. 헌데 그것도 주소가 이곳인 사람들의 숫자일 뿐이고 실제로는 150여명이 아닌가 생각한다. 너무 많은 숫자가 왔다. 오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올해 나는 정식으로 임명되지 않은 농활 총 책임자가 됐다. - 작년에도 그랬다. - 1리 회관과 2리 회관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 인원을 배정하고, 동네 분들과 상의 해서 갯벌에 나가는 일정을 정하고, 학생들과 상의해서 학생들의 계획표를 조정하고, 일도 함께 한다. 전화를 많이 해야 하는 일이라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아내가 항상 아이들에게 상냥하게 대하라고 해서 명심 또 명심하고 지내고 있다.
작년에 1학년이었던 몇몇 학생들이 2학년이 되서 돌아왔다. 작년에 봤을 때는 막 중학교에 입학해서 헐렁한 교복을 입고 어리버리하게 두리번거리면서 등교하는 중학생 같은 느낌이었는데, 올해는 이 친구들이 어른이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체 1년 동안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새로운 세계에서 1년간 쌓인 경험이 학생들에게 완숙함을 준다.
이렇게 시간과 삶이 쌓여서 어른이라는 이름의 모양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시간들 사이에 자신만의 상식과 자신만의 경계가 생긴다.
먼저 녹평 모임에서 누군가가 인간은 모두가 경계에 서있고 그 경계에 대한 경향성들 때문에 사람들과 친하게 모인다고 했다. 무척 감명 받았는데, 결국은 나 좋은 사람들만 만난다는 얘기다. 나는 이 경계를 상식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상식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과만 무리를 짓는다. - 그런데 우리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정말 내 상식 밖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내 상식이 보편성이 없어서일까? -
이제 막 페미니즘을 접한 대학생들과 여자들 알기를 부엌에서도 일하고 밭에서도 일하는 존재로 평생에 걸쳐 알아온 양반들이 만나다보니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 내가 이번에 생긴 트러블을 아주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미 나도 상식이 굳어질만큼 굳어진 반병신이 되어 버린 게 아닌가 생각한다. - 사건의 내용은 66세 아저씨가 23살 여대생에게 43살 형을 왜 오빠라고 부르지 않고 삼촌이라고 부르냐고 한 것이다. -
아저씨가 잘못한 것이 분명한데, 오늘 학생들과 동네사람들 몇 명이 모였던 자리에서 아저씨는 친근하다 보니 그렇게 말했다고만 했지 사과는 하지 않았다.
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고, 여전히 그이를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 원래부터 알았다. -
집 옆에 우물이 있다. 안멀, 샛멀, 당아래 같이 큰 단위로 동네를 부르는 이름도 있지만 장잘, 서고지, 솔제처럼 동네 구석구석을 부르는 이름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계속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이 우물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을 장구지(정구지)라고 한다. 덕분에 나는 장구지 동자, 장구지 아이, 장구지 신랑 등으로도 불린다.
이 우물에 대해서 전해들은 얘기가 많다. 아들을 못 낳던 사람이 아들을 낳았다. 병에 걸렸던 사람이 병을 고쳤다. 여름에 발 담그고 술을 먹다가 몸에 마비가 왔다. 날이 아무리 가물어도 이 우물만은 마르지 않았다.같은 얘기들이다. 실제로 여름이면 물이 무척 차서 작년에 등목하겠다고 물 한바가지 등에 부었다가 심장이 멈추는 게 이런거구나.했다. 우물 청소를 위해서 가끔 바다 사람들이 입는 몸장화를 신고 우물에 들어가서 물을 퍼낸다. 퍼내도 퍼내도 물이 잘 줄지 않아서 물 한 번 퍼내면 몸에 진이 빠진다. 이 우물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마르지 않는 기적의 우물' 되시겠다.
그런데, 요즘 이 우물에 물이 차는 속도가 두드러지게 줄었다.
동네에 지열보일러 사업 때문에 지하 150미터까지 땅을 파는 집들이 많은데, 그 영향 때문이라고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심야전기 보일러는 전기 요금이 너무 많이 나오니까 정부에서 보조해 줄때, 지열로 바꾸는 것이다. 물론 지열 보일러도 전기가 없으면 돌릴 수 없다. 지열보일러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일의 연결에 대해서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좋은 일들이 누군가에겐 좋지 않고 한가지 일에 여러가지 결과들이 생긴다.
밀양을 생각한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사니 세상일이야 별 상관 없다고 자위하면서 농사일이 바쁘다는 핑계 따위나 생각하면서 밀양에 한 번 가보지도 못했다.
아이폰을 썼던 사람은 아이폰만 쓰는것처럼 한 번 익숙해진 일을 버리거나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대형마트, TV, 냉장고, 자가용 없이 못 사는 세상이다. 나만해도 스마트폰 쓰지 말라고 하면 전화 안 쓰고 말 것 같다. 대기업이나 정치인들이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핸드폰처럼 작은것이 아니라 어떤 커다란 권리와 이익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뭐길래 할매들을,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고 가느냐. 이 개 쓰레기 잡것들아. 청와대를 고리원전 옆으로 이전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원전은 비밀스런 곳이니 - 살면서 원전에서 일한다는 사람을 한 번도 못 만나봤다. - 비밀을 좋아하는 국정원도 그리로 보내야겠다.
지난 월요일부터 모내기 중이다. 모내기는 벼농사에서 가장 큰 행사다. 지난 주에 해가 쨍쨍하던 어느날 완이형이 JS형에게 물었다. '형, 안 더워요. 낮에는 좀 쉬었다 해야 하는거 아니에요?' JS형이 답했다. '야, 1년 중에 이때만 일하는데, 햇볕도 좀 쪼이고 그래야지.' 나는 모내기 management를 하고 있다. 고작 30년 조금 넘게 산 나만해도 스스로 컨트롤이 안되는데, 60년 가까이 본인들의 삶을 살아온 네 사람이 포함된 이 팀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제랑 오늘은 비가 왔다. 비가 와도 어지간하면 벼를 심는다. 어제는 우리 논 두 자리에 모를 냈다. 붙어 있는 두 자리 중에 윗논에 물이 잘 빠져서 물이 잘 안빠지는 아랫논에서 윗논으로 물을 대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가 와서 귀찮은 일을 덜었다. 오늘 논에 들러보니 모들이 물에 잠겨서 찰랑거렸다. 헤헤.
지난주에 도반소농에서 오신분이 '어일우씨는 말투에 감정이 없는 것이 참 특이한 것 같아요. 집에서 아내에게도 그렇게 말해요?'하고 물었다. 지후에게 물었더니 밖에서 일할 때, 내 말투가 무미건조하다고 한다. 그런가보다. 나쁘지 않다. 아마도 남에게 내가 먼저 어떤 감정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데서 오는 작용이라고 생각한다. 일하는 중에 장인어른에게 내 음력 생일을 묻는 전화가 왔다. 무미건조하고 경직된 말투로 대답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아버지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왔다. 아내가 말하길 딱딱한 말투가 아니었다고 한다. 장인어른과의 심적 거리는 아직도 멀다.
오늘 아침에 내 몸에서 아버지 냄새가 나는 걸 느꼈다. 뭐랄까 퀴퀴한 냄새인데, 아버지에게서만 맡아본 냄새였다. 어렸을 때, 싫어했던 냄새였는데, 이제 내 몸에서 그 냄새가 난다. 인간이란 냄새로도 대를 잇는다.
6월이다. 엊그제만 해도 봄이었던 산이 여름산이 됐다. 나도 산이나 나무처럼 봄에는 봄이 되고 여름에는 여름이 됐으면 한다. 인간 세상에 살면서 사람보다 나무랑 산이 더 좋으니 큰일이다.
다음주에 녹색평론 모임이 있다. 모내기 기간이지만 꼭 참석하려고 한다. 이 달에는 '농촌과 공동체'를 주제로 각자의 생각을 나누기로 했다. 모임 전에 공동체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나는 내가 꿈꾸는 공동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질 않았다. 공동체에 대한 어떤 기대감이 없기 때문이다. 기대감이 없는 것은 나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불신에 기인한다.
서로 물질적으로 주고 받는 것이 없어도 그냥 상대방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그런 마음이 들게끔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본디 잇속을 생각하는 동물이라 그런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최대치는 가장 편한 친구처럼 마음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함께 일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자주 노는 것이다. 일은 각자 하더라도 놀 때 함께 논다.는 말이다.
각자도생,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삶을 그린다.는 뜻이다. 요즘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말이다. 엄기호 씨가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면서 알게 됐다. 좋게 얘기하면 각자 알아서 행복을 찾아가자.고 나쁘게 말하면 나만 아니면 돼.다. 박명수의 유행어가 괜히 탄생한 것은 아니다.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사람들을 각자도생으로 몰아가고 그 안에서 살아온 내가 생각하는 공동체의 최대치가 자주 얼굴보고 노는 것이다. 그럼 이것으로 막 나가는 국가와 시스템을 그냥 두어도 좋은가? '용산'을 '세월호'를 수 많은 억울함을 그냥 잊어도 좋은가?
'아니다'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에 대한 불신을 가진 내가 아니라고 대답할 자격이 있는가?
'매트릭스'에서는 소수의 사람들과 한 명의 영웅이 세상을 바꾼다. 그들은 진실을 핑계로 다수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해버렸다. 현실에는 영웅이 없다. 영웅이 없는 현실에서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불편한 진실을 깨뜨릴 수 있는가? 그 진실이 진실인가 아닌가? 설국 열차는 그 걸음을 멈추어야 했나?
시스템 안에서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말은 모든 풍요를 누리며 생태와 환경을 얘기하는 사람들의 그것과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시스템)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행사한다. 재벌, 관료, 자본은 자신들이 그 시스템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도 이미 시스템에 흡수된 노예다. 이 노예들은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데만 몰두한다. 세월호 사건이 그런 행태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있나? 우리는 무력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가?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는다. 의문은 끝나지 않아도 삶은 계속된다. 하지만 시간조차 영원하지 않다. 모든 우연은 필연이며, 모든 필연도 우연이다.
장모님 환갑이라 광양에 다녀왔다. 선물은 달랑 제과점의 과자 선물세트였다. 그마저도 약간량은 서울 올라오는 차에서 우리가 먹었다. 가족들끼리 4일 저녁을 먹기로 했었기에 3일은 대학로에서 자고 4일 아침 버스로 광양에 가려고 했다. 3일 저녁에 장인 어른이 전화해서 중요한 일이 있으니 어떻게든 내려오라고 하셨다. 지후랑 나는 용산역에 가서 순천으로 가는 마지막 무궁화호의 입석표를 끊었다. 식당칸 구석에 찌그러져 앉았다. 새벽 3시에 순천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광양에 왔고, 한숨 자고 나서 장모님이 급하게 만드신 점심 약속에 참석할 수 있었다. 장모님은 나랑 지후가 농사짓는다고 하면서 돈도 못 벌고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아주 불안해 하시는데, 점심 먹으면서 만난 (일종의) 도사께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잘 얘기해 줬다. 다행이다. 장모님이랑 장인어른이 걱정을 조금 더셨을까? - 나랑 지후가 전두환, 이순자처럼 전생에 친구였기 때문에 현생에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보너스다. 가족이라도 빚보증은 절대 서지 말라는 얘기는 추가 보너스다. -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작년 8월에 동네에서 주워와서 집에서만 키운 고양이 망고를 얼마전에 집 밖으로 내보냈다. 망고는 암컷인데, 처음 발정을 났을 때는 집에서 울게 놔뒀었다. 며칠후에 또 발정이 왔는데, 중성화 수술도 좋지만 아무래도 자연의 섭리대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집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나서는 계속 신경이 쓰인다. 우리가 집 밖에 둔 밥을 다른 놈들에게 뺏기진 않는지, 다른 놈들에게 상처 입지는 않는지, 수컷 고양이는 만났는지, 어디 추운데서 자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또 걱정한다. 녀석이 있던 자리에 자꾸 녀석이 아른거린다. 내 등에 올라탔던 일, 내 배위에서 꾹꾹이를 하던일, 줄 가지고 놀던 일, 내 손발을 물고 공격하던일, 캣타워랑 창가에 오르던 일, 아침이면 내 얼굴을 앞발로 툭툭 치던 일, 내 품에서 그르렁대면서 자던 모습이 자꾸자꾸 떠오른다. 지금도 이녀석은 밖에서 울고 나는 왠지 속이 상하다. 수컷을 만나서 발정이 끝나면 다시 집으로 들여야 할까?
키우던 고양이도 이러할진데, 자식이라면 더할 것이다. 애지중지 키운 딸이 빈털털이에 농부가 되겠다는 녀석에게 시집을 갔다. 장모님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뿐이다. 나는 그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아내는 내 옆에 있다.
물속의 아이들도 탈출한 선원들도 버러지같은 쇼를 한 관료들과 대통령도 나랑 지후도 장모님의 걱정도 결국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모든것은 사라진다.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내 주변의 공기가, 곳곳에 번지는 초록이, 흐르는 강물이, 나고 드는 바닷물이, 어디에나 부는 바람이 다 무슨 소용일까? 나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사라질 뿐이다. 안쓰러워하고 걱정하고 애쓰는 일들이 다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것은 모두의 자리에 있다. 그리고 사라질 뿐이다.
스스로 멸망하는 종(種)이 있는가? 지금이 8시 32분인 이유를 아는 이가 있는가? 배가 고픈 이유를, 숨을 쉬는 이유를 아는 이가 있는가?
고양이 망고에게, 장모님에게, 바닷속의 사람들에게, 자주 보는 사람들에게,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누군가들에게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언젠가는 사라질 가슴속의 분노를 방치할 수 없는 밤이다. 이런 마음을 언제까지라도 계속 붙잡고 싶은 날들이다.
농번기다. 볍씨 소독하고 물에 담갔다. 동네 트랙터들이 일제히 논을 갈기 시작했다. 기러기들은 몇 마리만 남아서 이곳에서의 마지막 똥을 아무데나 싸지르고 다닌다. 동물들은 이 세상 전부가 화장실이다. 벼농사 시즌에 맞춰서 백로들이 찾아왔다. 저수지에 왜가리랑 오리가 보인다. 길가랑 산이 알록달록 꽃 천지다. 봄이다.
지난주에는 어울림 학교 수업을 했고, 도장리 쌀롱에 다녀왔고, - 황구 형, 너무 좋았어요. - 내 또래의 목사님을 한 명 알게됐다. 그리고 조개를 잡았다. 농사만큼 마음 편한 일이 백합 조개를 캐는 일이다. 갯벌에 나가서 4~5시간 그레를 끌면 12kg 이상 잡는다. 음악을 틀어 놓고 논에서 김매는 것과 비슷한 무아지경의 상태로 온 힘을 다해서 그레를 끌고 끌고 또 끌면서 뒤로 나아간다. 큰 것은 팔고 작은 것은 먹는다. 백합 조개는 판매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바로 현금이 된다. 어쩌면(갯벌에 조개가 바닥나지 않는다면) 농사보다 마음 편한 일인 것 같다. 농사도 갯벌의 조개도 하늘에 달렸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사람이란 이런일을 해야 마음이 편한 법이다.
오늘 낮에 우리 고양이 망고가 현관 밖을 나섰다. 그리고 다른 고양이를 만났다. 망고가 만난 친구는 우리집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살면서 활동반경이 우리집 주변인 삼색고양이다. 삼색고양이는 낯선 녀석의 영역 침입에 몹시 으르렁거렸다. 아기때 우리집에 와서 집 안에서만 살았던 망고는 녀석의 꼬리가 왜 짧은지, 녀석이 어떤 거친 풍파를 헤치고 결국 우리집 주위에 자리잡게 됐는지 모른다. 아무튼 두 녀석이 대치했다. 삼색고양이는 동물적인 살기를 띈 눈빛을 하고 망고를 바라보며 으으렁대는데, 우리 망고는 태풍을 만난 가녀린 나무처럼 우에엥하고 울었다. 계속 울었다. 결국, 지후가 망고를 다시 집 안으로 들였다.
고양이는 눈 앞의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기 때문에 평생을 작은 원룸에서만 살아도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 한다. 우리집 마루에 작은 창이 하나 있는데, 날이 풀려서 그 창을 열었더니 망고가 그 창 위에서 놀기를 즐겼다. 망고 화장실과 밥그릇을 마루 바깥 현관으로 옮기고 문을 계속 열어뒀더니 망고는 그 안의 높은 곳에서 햇볕을 쪼이며 앉아 있기를 즐겼다. 겨울이 와서 창을 닫고 문을 닫아도 망고는 안방과 마루와 부엌에서 놀기를 즐길 것이다. 세상 편하게 산다.
나는 농사 짓고 조개 잡으며 가난하게 사는 것을 즐긴다. 지난주에 쌀롱에 들르고 누군가를 알게 된 것처럼 가끔 나들이를 하기도 한다. 그냥 이게 좋은 것이다. 대의명분은 없다. 자립적 삶을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 순간부터가 자립적이지 않다. 내가 먹는 것, 입는 것, 살아가는 것이 다 누군가의 어떤 희생과 노력과 행동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다 연결이다. 지금의 내 마음이 갠지스 강에서 흰 빨래를 하는 어떤 노인과 연결돼 있지 않다. 라고 어느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양반들도 tv에 나오는 순간 자연인이 아니다. 페이스북을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다들 이렇게 저렇게 본인들이 좋아하는 쪽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사람은 그냥 자기 양심껏 살기만 하면 되는걸까? 아, 나는 고양이처럼 살고 싶다. 그런데 그랬다가는 허삼관이나 아Q가 되지 않을까? 그래도 좋다면 그걸로 좋은걸까?
최근에 양치질 하는 방법을 바꿨다. 예전이 '치카치카'였다면 지금은 '북북'이다. 북북 이를 닦으면서 발을 더운물에 담가둔다. 세수하기 전에 발을 먼저 씻는다. 발 씻은 물에 세수를 하기도 한다 그동안 얼굴과 손을 발보다 먼저 씻은 것에 대한 반발이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왼손으로 글씨 쓰는 연습을 하는 사람들처럼 그냥 생활 패턴을 바꾼 것 뿐이다. 이런일들은 삶에 작은 재미를 준다는 의미가 있다. 인간은 의미 없이 살 수가 없다.
얼마전까지 아내가 무척 힘들어했다. 덕분에 나도 힘들어했다. 문제를 간략히 요약하면 아내는 외롭고 나는 외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 작년에 쓴 메모들을 찾아보니 내가 외로워서 아내를 안고 울었던 날이 있었다. -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으니 대화로 풀어야 하는데 나는 애꿎은 주변환경 탓을 많이 했다. 부끄럽고 조금은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생활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아내랑 함께 어울림 학교 미디어 수업을 하기로 했다. 엊그제는 강화 녹색평론 모임에도 다녀왔다. 좋은분들을 만났다. 생활에 변화를 준 것은 아내가 답답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이 이대로 굳어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결국은 돌고돌아 해답이 없는 얘기일 수도 있다.
엄기호의 단속 사회를 읽었다. 이 책의 핵심은 경청을 통해 함께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서천석은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고 혼탁할 때 일수록 삶 속에 소소한 재미들을 찾아가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지? 이번에 읽은 녹평에는는 개개인을 파편화 하는 것이 현재 자본주의 지배층이 특권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 단속 사회에도 이런 맥락의 챕터가 있다. -
나는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만들어 내는 일에 회의적이다. 그래 본 적도 없고, 인간 자체에 대한 불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 편이다. 동네분들과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은 채 살면서, 이런저런 도움을 받거나 드린다. 작목반 형, 아저씨들과는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마신다. 집에서는 기타를 치고 게임을 하고 야구를 보고 책을 읽는다. 최소 생활비만 벌 수 있다면 참으로 무탈할 수 있는 삶이다. 나는 만족했지만 아내는 그러질 못했고 그런 아내를 보면서 나만 즐겁다고 다 끝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을 했다. 악몽을 연이어 꾸기도 하고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뭔가가 나와 우리를 위한 것들 뿐인듯하다. 나는 이미 파편화된 개인에서 벗어날 수 없게 길들여진 것일까? 밀양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근데 그 뿐이다. 이것은 방관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산 속에 오두막을 짓고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도피다.
생활이라는 굴레 안에 있더라도 달라지고 싶다. 결국은 마음가짐이다. 다음주에 만날 아이들에게도 항상 만나던 사람들에게도 내 위주가 아니라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신중하고 진중하게 나를 열어 보이고 -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듯이 아무렇게나 나를 열어 보이는 편이다. - 그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좀 더 진실한 마음을 가져야겠다. 아무래도 아내에게 많이 배워야겠지.
봄이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것도 봄이 왔으니 어떻게 어떻게 해야겠다고 하는 것도 어떤 마음 가짐으로 그러느냐에 따라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뭐든, 그런가보다 할 것은 그런가보다. 하고 아닌것은 아니라고 해야겠지. 그래서 사람들이 마음 공부를 하나? 이렇게 돌고 도는구나.
어제를 마지막으로 의용소방대 근무가 끝났다. 원래는 셋이 소방대 사무실에 모이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마지막 두 번의 근무는 k형이랑 둘이 섰다. - 근무를 서다. 라는 표현에서 '서다'에 대해서 잠깐 생각한다. - 덕분에 k형 얘기를 많이 들었다.
k형 아버지, 어머니는 형제들 중 유독 k형에게만 엄하게 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려서는 본인만 어디서 주워온 자식이 아닌가 생각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형이 7살이던 어느날, 함께 놀던 동생이 둠벙에 빠졌다. 함께 잘못해도 본인만 혼나는 처지가 싫었던 k형은 동생이 죽어버렸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그 상황에서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오늘 집에 가면 아버지에게 죽도록 맞겠구나.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가까스로 동생을 구하고 집으로 돌아간 그날은 부모님께 맞지 않았다고 했다. k형은 자신이 해병대에 간 것도 부모님이 군에 가서 매 맞으며 고생할 본인을 안타깝게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했다. 결국 군대에서 무릎을 다쳤고 지금은 후회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다른 형제들은 섬을 떠나고 k형이 부모님을 모시게 됐다. 세월은 흘러 부모님은 돌아가실 나이가 됐다. 형은 부모님께 생선과 농산물을 충분히 드렸다고 했다. 부모님은 그것들을 객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에게 보내는 걸로 모자라서 번인들이 농사지은 것도 보내기 위해서 힘든 몸을 이끌고 밭일을 했다고 한다. - 그것이 평생 몸에 밴 생활이었기 때문이었을거다. - 형은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게 싫어서 동생들에게 충분히 보낼만큼 자신이 더 많이 드릴테니 밭일은 그만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랬음에도 고추밭에서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그게 너무 얄미워서 트랙터를 끌고 고추밭 옆을 지날 때, 아들 주려고 박카스 병을 들고 트랙터 쪽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를 못 본 척 외면했다고 했다. 머지않아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k형은 박카스를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고 했다.
결론은 어머니 돌아가시고 교회 사람들이 정성껏 장례를 치르는 것을 보고 k형이 교인이 됐다는 얘기다. 이후로 이 형은 술, 담배 다 끊고 기타도 치고 교회 성가대도 한다.
네시 반에 일어났다가 7시 13분에 잠들었다. 여덟시에 어느집 일 도우러 가기로 했다.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7시 13분이다. 더 잘까, 양치질 하고 이웃집에 쌀 가지러 다녀올까를 고민하다가 눈을 감았다 떴다. 벽에 걸린 시계가 여전히 7시 13분이다. 또 먼저했던 생각을 하다가 눈을 감았다 떴다. 이짓을 무한반복하다가 아차, 싶어 일어났더니 여덟시네. 얼른 집을 나섰다. 가위 눌린 게 참 오랜만이다. 7과 13을 포함해서 로또 번호를 완성해야 하나? 그래봐야 숫자 두 개만 맞을테니 관두자.
언제부턴가 토요일 저녁이면 로또 당첨 번호를 확인하고서 이번주에도 안 사길 잘했다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돈에 대해서 생각하건데, 난 정말 돈을 많이 벌거야. 하고 투철하게 마음 먹은 사람은 돈을 많이 번다. 투철한 마음이 중요한데, 서울대 갈거야. 하고 공부해서 기어코 서울대에 가는 정도의 마음가짐인 것이다. 다들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지만 투철한 마음가짐을 겸비한 사람은 백에 하나일까?
사람 마음이란 것이 세상사 이 풍파, 저 풍파, 이런저런 유혹들 앞에서 흔들리고 변하게 마련이다.
나는 투철하지가 않다. 그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랑하는 사람과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싶다는 꿈을 이루었으니 이제 이 삶을 안정시키고 싶다. 그래서 돈 생각을 했나?
3월에 계속 기분이 안좋다. 시간이 답이 아닌거라 더 답답하다.
이런 와중에도 마을 회관에서 동네할머니들이랑 환담을 나눌때는 기분 좋았다. 오늘은 '장구지 동자' 라는 - 우리집이 우물(정구지)옆임 - 새 호칭을 들었다.
해병대에서 발주한 공사현장에 다녀왔다. 사흘만 일하면 된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오전일만 하고 그만했다.
올해의 첫수입 칠만원이 생겼다. - 올해의 가장 큰 목표는 지난해의 적자를 만회하는 것이다. - 올해 느낌 좋다.
공사는 말도가 보이는 산이랑 죽바위 쪽 산에 cctv를 설치하는 일이다. - 동네 사람들 다 아는 이 사실이 군기밀 사항은 아니겠지? - 돈 없어서 자살하는 사람도 많은데 참 돈이 썩어난다는 생각을 했다. cctv를 설치하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판에 선창에서부터 cctv설치하는 곳까지 미니 전봇대를 박아서 전기를 끌어올 생각이었다. 점심 먹은 사람들의 수로 짐작하건데, 서른명의 사람들이 이 공사에 투입되고 있다. 같이 짐부렸던 60대 아저씨 한 분은 "마누라가 이렇게 고생해서 돈 벌어오는 걸 알까?"라고도 했다. 이런것들을 생각하면 썩어나는 돈도 다 쓰임이 있는 것이긴 하다.
공사 상황을 전해들은 아내가 그렇게 썩어나는 돈은 벌어도 그만 안 벌어도 그만이라고 쿨하게 말했다. 나는 지후가 참 좋다. - 지후는 나보다 망고를 더 아끼는 것 같다. -
아홉시, 눈을 떴다. 안경을 쓰고 잠들었네. 어제 뭣한다고 그렇게 마셔댔을까. 우리는 늦도록 마시고 노래도 불렀지. 숙취가 있다. 열시엔 집을 떠나야 한다. 양치질만 하고 짐을 챙겨 집을 나온다. 아버지가 너무 무리해서 일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럴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652타고 화곡역으로 화곡역에서 송정역으로 송정역에서 3000번을 고촌에서 22번을 양곡터미널에서 60-3번을 탔다.
대곶으로 가는 길에 60-3번 버스가 빠르게 달린다. 버스안에서 안내방송이 나온다. 운전기사님 과속하지 마세요. 몇 번을 반복해도 버스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운전기사 과속하고 있잖아.로 멘트가 바뀐다. 운전기사는 기계를 무시하고 쭉 달린다. 정류장에 누군가 내린 덕분에 버스안이 조용해졌다. 승객이 나 혼자였군.
대곶에서 택시를 타고 초지로 왔다. 초지에서 짐을 챙겨서 온수리로 왔다. 마침 온수리로 가려고 하던 주인집 아저씨 친구분이 태워주셨다. 벤츠를 탔다. 안전띠를 하니까 자동으로 지긋이 조였다가 살짝 풀어준다. 고장나면 계속 조이기만 하겠구나. 온수리에서 스파게티 재료를 구입하고 700번에 올라타서 강화터미널로 왔다. 터미널에서 생도너츠와 방진마스크를 샀다. 터미널 상가에서 승차 대기실로 가는 중간에 왼쪽 화살표 + 화장실 표지가 새로 생겼다. 어서 오십시오의 어서 위에 붙어있다. 그래서 화장실 오십시오가 됐다. 센스 있는 사람이 붙였군.
31번을 타고 외포리에 왔다. 외포리 중국집에 들렀다. 이제 막 점심 피크 타임이 끝난 참이다. 짬뽕을 만든 요리사는 점심밥을 먹고 나는 그 옆에 앉아서 짬뽕을 먹었다. 함께 바둑티비를 보면서 먹었다. 숙취가 가셨다.
외포리에 황사가 심하다. 내가 세상에서 싫어하는 몇 가지 중에 하나가 황사다. 영동지방에 살지 않는한 평생을 함께 하겠구나. 얼마전에 영동지방에는 큰 눈이 내렸다. 하와이에서 살아야 할까. 하와이는 이름이 좋다. 하와이 하와이 하와이.하고 부르면 기분이 괜춘하다. 펀치드렁크 러브 아담 샌들러의 양복을 한 벌 사서 하와이에 놀러갈 궁리를 해본다.
여객터미널에 동네 어른들이 많다. js형 어머니가 나를 무척 반가워하셨다. 어제만 해도 인적이라곤 없는 산 속에서 살까.생각했었는데 동네분들 얼굴을 보니 올 한해도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멀리 볼음도에서 나오는 배가 보인다. 멀리서 내 모습이 보이면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어 댈 포비를 생각해 본다.
지후 할머니 화장터다. 할머니가 화장중이라는 모니터의 설명을 보면서 그 후손들이 소고기 국밥을 먹는다. 열세 개의 화장터에서 열세 구의 시체가 타고 유족들은 서울역 대합실 같은 장소에서 고인의 뼈를 기다린다. 몇 번 화장이 끝났습니다.란 기계음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죽음은 이렇게 시장의 물건처럼 흔한데, 오늘 이곳에서 본 어느 여고생의 영정사진과 그 친구들은 내 마음을 울린다. - 나는 삐뚤개 안경을 쓴 채 웃고있는 소녀의 부모를 생각했다. - 죽음은 이렇듯 귀하기도 하다.
큰이모 돌아가셨던 때가 생각난다. 벌써 오년도 지난 일이다. 큰이모는 많은 조카들 중에 유독 나를 좋아했던 것 같다. 또 많은 동생들 중에 우리 엄마를 가장 좋아했다. 자식 중에도 더 예쁜 녀석이 있고 엄마랑 아빠중에 더 좋아하는 쪽이 분명히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말로 케미가 좋았달까? 그랬던 큰이모였는데도 이모가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게 미안하다. 큰이모 발인날의 하늘은 적도의 바다처럼 푸르렀다. 큰 이모의 인생이 암흑처럼 어두웠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의 큰이모가 그날의 하늘처럼 기분좋은 곳에 계시길 바라본다.
오늘은 볼음도에 온지 365일째 되는 날이다. 그런데 지후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지금 고속버스 기다리고 있다. 섬생활 2년째를 여는 기념 밥을 장례식 장에서 먹게 됐다. 집에 있었으면 고구마 스물 두개 쪄 먹을랬더랬다.
우리 할머니는 치매가 온지 십년이 됐고 지금은 요양원을 나와서 강릉 삼촌집에 계시다. 지후 할머니도 치매인데, 오늘 돌아가셨다. 치매는 정말 무섭다. 초기에 발견해서 주뱐에서 많이 도와주면 증상의 진행을 멈추거나 늦출수도 있다는데, 우리 할머니는 그러질 못했다. 치매는 고통이다. 에니 아르노의 작품은 그것을 감각적으로 묘사했는데, 결국은 (감각적인) 고통이다. 어차피 고통이니까 감수성 넘치는 쪽이 더 좋을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지후는 병에 걸리면 곡기를 끊고 죽겠다고 한다. 묘비명은 밝은 목소리로 "안녕? 얘들아!"로 정했다. 지후는 길가의 나무나 돌, 개나 고양이 물고기에게 항상 밝게 인사하기 때문이다. 나도 병에 걸리면 곡기를 끊고 그냥 죽어야겠다. 병원은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줄만 연장시키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편하게 죽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달까? 내 묘비명은 차분한 말투로 "얘들아 안녕."으로 정했다. 지금 막 정했다.
어제 영일군이랑 술 마시다가 생각했다.
누군가 내 얼굴을 봤을 때, 저 사람 참 평온해 보이는구나. 생각하는 얼굴을 갖고 싶다. 그러려면 근심 걱정 없이 살아야 하는데, 아무일도 하지 않아서 걱정 없는 것이 아니라 시골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그런 얼굴을 원한다. 물론 지금만 해도 몇년 전 보다 많이 좋은 얼굴을 하고 있다.
어제는 '농, 살림을 디자인하다'를 오늘은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를 읽었다. 해는 길어졌지만 겨울은 길고 할일도 시간도 많은데, 아침에 일어나면 밖에 나가긴 싫으니 그동안 지후가 사둔 책들을 읽는다.
유기농이라 ......
유기농업은 무엇일까? 두 책 모두 소비자가 원하는 균일한 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지구와 생명을 사랑하는 농부가 가진 삶의 태도와 실천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개념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들어 낮에는 외국제 유기농 자재를 논밭에 잔뜩 투입하고 저녁에는 에어컨 빵빵 틀어놓고 수입 체리 먹다가 잠드는 농부는 유기농업을 하는 농부가 아니다. - 물론 생산물에는 유기농 인증을 받겠지만 -
그런면에서 나랑 지후는 꽤 잘하고 있다. - 물론 갈길은 멀고 멀고 멀다. - 원자력에 반대하는 의미로 전기도 무척 아껴쓰는 편이고 모든 논과밭을 유기농에 가깝게 일구었으며, - 작년에 고구마밭에는 독일제 화학비료를 넣었다. 논에 넣는 유박도 원재료가 외국제라 앞으로 어떻게 할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 나는 옛날식 화장실에 똥오줌을 모으고 - 지후도 그러기로 함 - 올해는 빗물이용, 태양열 조리기 제작 등의 계획을 세웠다.
지금보다 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을 더 줄여야 - 전기를 자체적으로 얻는다거나 나무를 때는 난방을 도입하고 조리도 가스를 사용하지 않고 해야겠지. 근데 이와중에 아이폰 5s는 갖고 싶고 - 바깥 세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자급하는 옛날식 농부의 삶을 살 수 있겠다. 나는 유명한 유기농부들처럼 책을 쓰는 것도 아니고 볼음도에는 아무런 일자리도 없지만 우리섬에는 백합조개가 있으니 조개 팔아서 시간을 벌 수 있다. 몸을 쓰는 일로 몸을 써서 생활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섬 참 좋다.
그런데 나는 왜 유기농을 추구하는가? 농사가 체질에 맞아서 농부가 되기로 한것처럼 유기농도 그냥 그게 좋고 옳다고 생각해서 원한다. 거창한 철학이 있어도 좋고 언젠간 그런 게 생길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지금대로 좋고 만족하니 좋다.
ebs에서 했던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를 몇 편 보다보니 뭔가 쓰고 싶어져서 끄적거려 본다. 생활의 규모를 줄이고 농사를 짓는 것이 체질에 맞는 대학생들이 많아져서 그네들도 다 농사 짓고 살면 좋겠다. 몇몇이라도 그런 결정을 하려면 우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삶을 경험 해봐야 하는데, - 일단 해봐야 자기 적성을 아니까 - 가장 좋은 방법은 방학 때 변산공동체 같은 곳에 머물렀던 학생들에게 학점을 (많이) 주는거다.
어제 광양에 왔다. 장인어른, 장모님은 평소에 서울에 계셔서 자주 뵙는다. 그렇지만 결혼하고 명절에 한 번도 광양에 오질 않아서 이번 설에는 꼭 내려오고 싶었다. 도착하자마자 저녁을 먹었다. 올해는 소식을 하겠다고 장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런건 집에 가서 하라고 하셔서, 예 하고 대답하고는 차려주신 걸 다 먹었다. 밥 먹고는 과일을 먹었다. - 밥만 먹으면 끝일 거라고 생각해서 밥을 배불리 먹었더랬다. - 곧이어 하드를 먹었다. 곧이어 맥주 얘기를 하셔서 안 먹겠다고 했다. 장모님이 먹겠다는 걸로 들으셨는지 술과 안주를 내오셔서 또 먹었다. 가족의 증명은 과식인데, 잘 먹는 것이야 말로 함께 살지 않는 가족들이 자신들의 유대를 확인하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 함께 고생하는 건 모두가 싫어하지만 최고로 확실한 방법 - 오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잘 먹었다.
20140120 - 달리기를 하는 꿈을 꿨다. 나는 달리기는 단거리건 장거리건 잼병이다. 그런데 꿈에서는 지치지도 않고 잘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지고 전쟁이 났다. 개꿈이다. 인생은 장거리 레이스니까 올해는 너무 초조해하지 말아야지.
인생의 첫 번째 피시앤칩스를 먹었다. 영국에서 많이 먹어봤다는 아내는 제주도에서 먹는다는 점에 감격했다. 흰살 생선이면 오케이라니까 올봄에 숭어 잡으면 한 번 튀겨 먹어야겠다. 볼음도에서 손님이 거의 없는 작은 식당을 하면 어떨까? 메뉴는 온리 피시앤칩스다.
해안도로를 달렸다. 제주도는 정말 바다도 예쁘고 넓은 섬이다. 그래도 우리섬이 더 좋아. 이유는 제주에는 논이 없어서 농촌이란 느낌이 없다. 그리고 너무 넓어서 자동차가 없이 살기가 힘들다. 반면에 우리 동네는 섬 끝집인 우리집에서 오십분만 걸으면 반대편 끝인 선창에 닿는다. 이유가 궁색하네. 그냥 우리 동네가 더 좋다.
목욕탕에서 내 몸뚱이를 봤다. 구리다. 성찰하는 삶의 구체적 실천에 소식도 포함해야겠다. - 금연, 소식, 비폭력 대화 - 몸이 무거워서야 가벼운 삶을 살 수 없다. 가볍고 가뿐하게.
20140121 - 지후 생일이다. 오탄죠비오 오메데또 했더니 아리가또오 한다. 그리고 오늘은 포비랑 망고 보는 날이다. 얼른 보고 싶다. 포비는 이제부터 주인말 듣는 훈련에 돌입한다. 일주일 정도 나와 있어보니 우리동네가 참 좋은 동네란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은 개발과 발전을 원한다. 죄송하지만 나는 이대로가 좋다. 이제 곧 2월이다. 작년보다 모든면에서 나아지려면 슬슬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하면 그러면 된다.
20140117 - 준희형을 만났다. 변산에 있을 때 룸메이트다. 저녁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형은 고향인 제주로 왔지만 모아 놓은 돈이 없고 땅을 구하는 일도 쉽지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가구일을 일년했고 지금은 농업 관련일을 하기 위해서 귤 선과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우리가 가끔 불평하는 우리 섬과 집과 땅이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r형도 제주에서 농사 지으려고 한다고 하고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이런저런 조건들에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20140118 - 휴식일이다. 제주시로 왔다. 제주시에서 가장 좋은 모텔에서 자려고 했지만 검색에 걸리는 게 없어서 그냥 터미널 근처의 모텔에 들어왔다. 큰 테레비가 있고 뜨거운 물이 잘 나오니 안심이다. 주말인데도 방값이 사만원이다. 제주도는 이런점이 - 금요일 오후에도 사만원짜리 모텔방이 있음 - 좋다.
복권을 샀다. 제주에 와서 두 번 같은 꿈을 꿨기 때문이다. 산에서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버섯을 만지는 꿈이었다. 복권은 낙첨이지만 r형이랑 통화했다. 변산에 있을 때 동무다. 얼굴이 보고 싶었는데 때가 안 맞아서 형은 고향인 충청도에 올라가 있었다. 다만 본인집에 문 열려 있으니 마음껏 써도 된다고 했다. 버섯꿈은 그것 때문이었나보다. 역시 돈보다는 사람이다.
준희형과도 r형과도 한 동네에서 주렁주렁 모여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것이다.
20140119 - 망고는 걱정이 없는데, 포비가 보고 싶다. 많이. 완이형한테 연락해서 포비 좀 보살펴 달라고 했다. 형, 고맙습니다.
아내 친구를 만났다. 폐쇄 수녀원에서 청원자로 생활하고 있는데, 마침 시기가 딱 맞아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친구는 기도를 하면서 자기 안의 어둠을 찾는다고 했다. 나는 올해 비폭력 대화를 공부하려고 한다. 끊임없는 자기성찰이 없다면 자본주의의 굴레를 피해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다.
내일은 아내의 생일 전날을 맞아 양도 많고 맛있는 걸 먹을 생각이다. 이 풍요의 유혹을 어찌 없앨꼬.
20140115 - 제주도에 왔다. 비행기가 착륙하는데 왼쪽 눈썹 안쪽 혈관이 끊어질 듯 아팠다. 조금만 더 아팠으면 소리질렀을거다. 혈관이 기압차를 견디지 못한거겠지?
집을 떠나 먼 곳의 땅을 밟아도 설레질 않는다. 외국어가 들리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 외국에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항버스를 타고 서귀포까지 오니 순호형이 마중 나오셨다. 지난 연말에 얼굴 한 번 본 것이 전부인 문창과 89학번 선배다. 내가 알고 있던 이 형에 대한 정보는 제주도에서 혼자 집을 짓고 사신다는 것. 내 생각은 자연스럽게 혼자 사는 제주 농부로 이어졌고 신월동 집에서 햄깡통이랑 꽁치 통조림을 챙겼다. 그런데 왠걸 아이가 둘 있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계셨다. 형수가 형한테 밖에 나가서 홀아비 행세 하고 다니냐며 농담을 던졌다. 일우야 정신 차리자.
20140116 - 강정에 다녀왔다. 바다로 이어지는 강정천 바로 옆에 해군기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어쩌자는 것인가? 미사에 참석하고 공사장 입구에서 율동을 따라하다 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점심 먹고 돌아오는 시간이 됐다. 그분들에게는 생활이 달려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공사를 정당화 할 수는 없다.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하는 입장에 공사 현장 노동자들의 생활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 누구도 위하지 않는 공사를 왜 하는거지? 사람보다 중요한 뭔가가 있나보다. 그게 뭔지 궁금하다.
저녁에는 대중이 형을 만났다. 함께 공연할 뮤지션들이랑 합석해서 마시고 놀았다. 김마스타의 라이브를 봤다. 완전 좋았다. 나랑 동갑내기인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uk의 아웃사이더도 좋았다. 김마스타는 이문세의 '해바라기'를 세 번 불렀는데, 세 번 다 좋았다. 저녁에 놀때는 강정을 잊었더랬다. 하루에 한 번씩 공사중단을 기원해야지.
강정의 상황을 보면서 시스템과 국가 권력 앞에 무력한 인간이란 존재의 존재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한다